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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작가: 십일
소진헌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재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서야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떠나고 나자, 정은은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느라 바빴다.

이미숙과 소진헌은 오랜만에 딸의 거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 두 개에 거실 하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집이었다.

배치와 인테리어는 오래된 느낌이 강했지만, 안에 있는 가구들은 모두 새것이었다. 소파, 서랍장, 전자 기구들까지,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낡아서 개선할 수 없는 흠집들은 아기자기한 장식품들로 가려져 있었다. 흠이 있었지만, 그 흠마저도 나름대로 정성껏 숨긴 흔적이 역력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꽤나 정교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원래 정은의 부모는 낡은 계단을 올라올 때부터 딸의 거주 환경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숙은 그런 딸의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정은이 직접 세낸 집을 이렇게 아늑하고 정성스럽게 꾸며놓았다는 사실에, 그리고 딸이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점에 대견함을 느꼈다.

인생은 대충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생활에 대한 태도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딸이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미숙이 소진헌과 막 결혼했을 당시, 소진헌의 월급은 겨우 60만 원에 불과했다.

그중 40만 원은 부모님께 용돈으로 드려야 했으니, 젊은 부부에게 남겨진 돈은 20만 원뿐이었다.

정은이 태어난 후, 살림살이는 더 빠듯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숙은 반달에 한 번씩 꼭 꽃을 샀다.

형편이 괜찮을 때는 꽃집에서 비싼 꽃을 샀고, 월말이 되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주말에 등산을 가며 들꽃을 따다 꽃병에 꽂았다.

정은은 어릴 적부터 이미숙이 참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심지어 가끔씩 보여주는 ‘대범함’은,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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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진헌이 물었다.“당신이 무슨 경찰이야? 게다가 정은이도 당연히 그 교수님의 개인 사정에 대해 잘 모르겠지. 다음에 직접 조 교수에게 물어보자.”이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죠.”“아니... 진심이야?” 소진헌은 놀랐다.이미숙은 눈을 부라렸다.“정은아, 설탕 있어?”“네, 가져올게요.” 말하면서 정은이 일어섰다.딸이 떠나자, 이미숙은 그제야 소진헌에게 말했다.“정은이 평소에 혼자 지내는 데다가, 이 조 교수님과 이웃이잖아요. 두 사람의 관계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고. 그러니 좀 분명하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요?”“하긴, 역시 우리 마누라가 똑똑하네, 헤헤...”이미숙은 그를 노려보았다.“저리 좀 가요. 이따가 정은이가 나오면 어떡하려고요?”“에헴!” 소진헌은 바로 똑바로 앉았다.“그럼 조심해야지!”방은 이미 다 정리되었고, 정은은 심지어 부모님을 위해 새로운 침대를 바꾸기도 했다.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도 모두 새로 산 것이라, 깨끗이 씻고 햇볕에 말린 다음 침대에 깔았다.“엄마, 아빠, 일단 낮잠 좀 주무세요. 이따가 두 분 데리고 나가서 구경할게요. J시에 몇 번이나 오셨는데, 두 분 데리고 놀 기회가 없었잖아요. 이번에 다 보충할게요.”소진헌과 이미숙은 J시에 온 적이 있었다.정은이 대학 다니는 동안, 그들은 그녀를 보러 세 번 찾아왔다.처음은 신입생으로 입학할 때 정은과 같이 등록하러 왔었다.두 번째는 정은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여름방학할 때 한 번 왔었다.강도겸을 한 번 보고 싶어서.그들이 온 지 3일이나 되었지만, 이틀 동안 줄곧 정은이 그들과 함께 했다. 도겸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나타나더니 황급히 식사를 한 후에 다른 일이 있다는 핑계로 떠났다.세 번째는 정은의 졸업식이었다.두 사람은 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목격하며 무척 기뻤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그녀가 뜻밖에도 스스로 대학원으로 진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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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진헌은 아직 흥을 다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조 교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말하면서 물 두 모금 마신 다음, 입맛을 다시며 계속 감탄했다.“확실히 괜찮네...”정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아빠, 무슨 이상형이라도 만나신 거예요?”“헛소리! 내 이상형은 너희 엄마뿐이야!”‘또 애정을 과시하고 있군!’어제 돌아다니느라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오늘 소진헌과 이미숙은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정은은 자연히 그들의 의사를 존중했다.푹 쉰 다음, 세 식구는 또다시 집을 나섰다.이번에 주로 한옥마을을 구경하러 갔다.정은은 일주일 전에 미리 예약을 했다.이미숙은 특별히 한복을 입고 사진까지 찍었다.스태프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어머, 어쩜 이렇게 우아하세요. 정말 그 시대에서 오신 분 같아요...”이미숙도 덩달아 웃었다.칭찬을 듣기 싫어하는 여자는 없었다.사진사의 안목은 확실히 괜찮았고, 마지막에 나온 사진들은 정말 아름다웠다.이날 밤, 소진헌은 혼자 잤고, 정은은 엄마와 같이 잤다.이미숙은 어릴 때처럼 그녀를 품에 안았다.정은은 어머니의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곧 꿈나라로 들어갔다.이른 아침, 정은은 일어나서 이메일을 확인했다.뜻밖에도 전에 투고한 생물잡지의 답장을 받았는데, 그녀에게 관련 참고문헌을 완전하게 보충하라고 했다.정은은 원고를 확정하기 전에 이미 한 번 검사했지만, 빠뜨린 상황이 있을 수도 있었다.그러므로 만일을 대비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아빠, 엄마, 저 도서관에 좀 다녀올게요. 빠르면 점심에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그래, 가서 일 봐, 우리 신경 쓸 거 없어!”점심에 날씨가 갑자기 변했다.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다가, 밥을 먹은 사이에 하늘이 흐려졌다.이미숙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곧 폭우가 쏟아질 텐데. 정은이가 나갈 때 우산을 안 가지고 나갔잖아요. 우리가 갖다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가까우니 시간도 얼마 안 걸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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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50미터 간격으로 도로 표지판이 있는데, 그 위에 도서관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어요.”재석은 걸으면서 설명했다.“학교는 큰 고리형이라서, 왼쪽은 강의동이고, 오른쪽이 바로 도서관이에요...”소진헌은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노선을 그리려고 노력했다.그런데 세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정은은 마침 위층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쳤다.“엄마 아빠? 나가시려고요? 밖에 곧 비가 내릴 것 같은데...”그리고 재석도 옆에 있었다.“선배님?”이미숙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정은은 바로 재석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그러나 남자는 손을 흔들었다.“천만에, 돌아왔으면 됐어.”네 사람은 다시 올라갔다.“방금 정말 고마웠어. 다음에 집에 와서 밥 먹지 그래? 내가 직접 요리할 테니까 내 요리 솜씨 좀 맛봐!”소진헌은 열정적으로 초대했다.이미숙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그들 일가족은 남에게 밥을 해주기를 좋아했다.하지만 나름 다른 점도 있었다.소진헌은 요리 솜씨를 과시하기 위해서이고, 이미숙은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손을 쓸 필요가 없었으니 그냥 입만 놀리면 됐다.정은은 단순히 음식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많이 하면 혼자 먹을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을 초대했던 것이다.재석은 내색하지 않고 정은을 바라보더니,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돌아오자, 이미숙은 소진헌을 비웃었다.“다급하긴요. 남이 당신 요리 솜씨가 좋다는 것을 모를까 봐 그래요?”소진헌은 헤헤 웃었다.“좋은 요리 솜씨가 있으면 당연히 보여줘야지. 보여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똥폼 잡긴!”정은은 슬리퍼로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아빠, 선배님이랑 언제 이렇게 친해졌어요?”조 교수라 하면서 말까지 놓았다니.“그거 모르지? 사람은 사귀어야 하는 법이거든. 나와 조 교수도 다 물리를 배웠고, 장기를 좋아하니 당연히 친해지는 거 아니겠어?”이미숙은 매정하게 그의 속마음을 들추어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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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마치자, 소진헌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나갔다.정은은 멍해졌다.‘됐어, 두 분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자...’실험실에서.재석은 지난주에 나온 두 조의 데이터를 검사하고 있었다. 제2조 제4열에 편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태민을 부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그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네, 누구시죠?”[선배님, 나예요, 소정은.]재석은 멈칫했다.자료를 쳐다보던 시선을 천천히 옮기며 말투도 누그러졌다.“무슨 일 있어?”[엊그저께 우리 아빠가 선배님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직접 선배님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면서... 시간 없어도 괜찮아요. 내가 다음에...]“시간 있어요.”정은은 잠시 멈칫했다.[실험실은 바쁘지 않는 거예요?]“응.”[그럼...]“저녁에 보자.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 특별히 날 위해 요리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다고.”[천, 천만에요.]전화를 끊은 후, 정은은 좀 어리둥절해졌다.‘뭐지... 어제 미진 언니가 톡으로 최근 진도 때문에 바빠서 미칠 지경이라고 하셨는데. 선배님은 왜 바쁘지 않다고 말한 거지?’진욱은 재석이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의 어깨를 쳤다.“누가 전화를 했는데? 정은이지? 나 정은이 목소리 들은 것 같아.”재석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알면서도 묻는 거야?”진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나는 삼일 째 밤을 새우고 있단 말이야. 미진이와 태민이도 너무 힘들다고 난리야. 그런데 우리 조 교수님은 오히려 바쁘지 않다고 말씀하시다니. 데이트가 있는 남자라서 그런가, 다르긴 정말 다르구나.”사실 재석은 그 누구보다도 밤을 많이 새웠다. 그러나 그는 아주 홀가분하고 유쾌해 보였다.‘설마 우리 모두 가짜 실험을 하고, 가짜 보고서를 내고, 가짜 논문을 쓴 것은 아니겠지?’재석은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진욱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 시계를 가리켰다.“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어제 너에게 초판 실험 데이터를 주지 않았어? 이미 9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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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51화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50화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9화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8화

    “능청스럽게 굴지 마요. 우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 어때요? 나는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했어요. 당신이 본 『7일담』이 바로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에요. 그러니 나는 당신과 재계약을 할 수 없어요. 지난 10년간의 감정을 봐서, 우리는 좋게 갈라지죠.”“좋게 갈라져?” 유보영은 냉소를 지으며 드디어 연기를 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누가 나의 손실을 배상하는 건데?”“당신이 무슨 손실을 입었다는 거죠?” 이미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내가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너와 계약을 했어. 10년, 꼬박 10년, 당신은 좋은 책 한 권도 쓰지 못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아가 계약을 하더니 바로 인기 소설을 출시해? 이미숙, 너 지금 날 갖고 장난하는 거지?”“내가 쓰기 싫어서 그래요? 당신이 줄곧 나의 구상을 부정하고, 나에게 출판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가 당신에게 몇 권의 책의 대강을 주었는지 계산해 본 적 있어요? 마지막에는 예외가 하나도 없이 전부 거절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인기를 끄는 작품을 출판하라는 거예요?”“너...”“당초의 계약비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래요, 당신은 확실히 많은 돈을 주었지만, 당신도 날 10년 동안 ‘감금’했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 예전에 쓴 책의 판권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당신이 잘 알고 있겠죠.”유보영은 시선을 피하더니 다소 마음이 찔렸다.‘이미숙이 어떻게 그 판권에 대해 알았지?’“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죠? 나는 이미 변호사를 청해 계약서를 확인해 보았는데, 당신은 몰래 내 판권을 대리 운영하겠다는 조항을 추가했죠. 사인할 때 나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직접 이름을 쓰라고 했고요.”“허... 그래서? 이제 돈 계산을 하자는 거야? 변호사까지 불렀다고? 진작부터 날 방비했나 보네.”“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어요. 전의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지만, 지금부터 날 방해하지 마요.”이미숙은 일어나더니 손님을 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7화

    이 시각, 소진헌은 학교에 수업하러 갔는데, 집에는 이미숙 혼자밖에 없었다.J시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새 책의 대강을 구상했고, 학교 괴담을 주제로 한 공포 소설을 창작할 계획이었다.그사이 정은이 전화를 걸어 실험실 완공식에 초청했지만, 부부는 아쉬움을 느끼며 거절했다.소진헌은 수업을 해야 했기에 떠날 수 없었고, 이미숙은 창작을 해야 해서 방해를 받으면 안 됐다.이야기가 이미 태반이 완성되고, 곧 마지막 장을 끝내려 해서 이미숙은 요즘 자신을 방에 가두었다.유보영이 문을 두드릴 때도 이미숙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문을 열러 가는 길에 머릿속에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있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유보영은 미소 지었다.“오랜만이에요, 이 작가.”이미숙은 이마를 찌푸렸다.“당신이었어요?”“그래요, 그래도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유보영은 내색하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았다.‘인테리어가 이렇게 호화로운 걸 보니 정말 부자가 된 모양이야.’이미숙이 거절을 하기 전에 유보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이미숙은 비록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유보영이 떠들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웃고 있었기에, 예의상 이미숙은 그녀를 내쫓지 못했다.더군다나 이미숙도 유보영이 오늘 무엇을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앉아요.” 이미숙은 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유보영은 앉은 후,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별장 곳곳을 살펴보았다.“이 작가님, 이사를 해도 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예전에 이 작가님이 살던 곳에 달려가서 얼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전화해도 항상 전원이 꺼져 있어서 나도 이곳을 찾느라 애를 엄청 썼어요.”이미숙은 대답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게요, 우리 계약도 곧 만기 되어 가잖아요. 그동안 우리는 아주 잘 협력했고, 재계약도 형식일 뿐이에요. 하지만 형식이라도 같이 사인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 좀 봐요...”말하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6화

    그리고 유보영의 밑에 이런 작가가 무려 수십 명이나 있었다.“어머!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작가들은 바보 아니에요? 판권 같은 것을 팔려면 작가 본인의 동의를 거치고 사인까지 해야 되잖아요?”장민영은 가볍게 흥얼거렸다.“넌 매일 그렇게 많은 계약을 복사하는데, 위의 상세한 조항을 보지 않았니?”“어?”“유 사장님은 계약을 할 때 이미 작가의 명의로 된 기타 서적의 판권 대리권을 손에 넣었다고. 그럼 작가에게 통지할 필요도 없고, 사인할 필요도 없어. 유 사장님이 가서 잘 이야기한 다음, 작업실 쪽에 공인만 하나 더 찍으면 끝.”“만약 정말 사인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면, 아무나 찾아서 사인하면 되지 않겠어? 그 사람들 정말 작가 본인을 찾아 가서 대조할 수도 없잖아.”“어머, 그럼 유 사장님은 작가에게 주는 배당금까지 절약한 셈이네? 어차피 작가도 모르니, 돈을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겠지.”장민영은 커피 한 모금 마셨다.“그래, 넌 사장님이 좋은 차에 비싼 집을 산 돈이 어디서 났다고 생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명품인데, 내가 듣기로는 그 가방 하나만 해도 수천만 원이라잖아? 정말이야?”“정말이야, 그것도 에르메스.”“쯧쯧...”장민영은 감탄하면서 부러워했다.“가장 비참하게 당한 작가는 추리 소설을 썼다고 들었어. 일찍 엄청난 인기를 끈 두 권의 소설 판권은 유 사장님이 모두 팔았고. 최근 몇년간 또 기타 판권을 연장했는데, 그 작가 혼자만 해도 매달 최소 우리에게 수백만 원의 이익을 가져다줄수 있어.”“추리 소설 작가? 누구지? 요즘 한 추리 소설 작가가 대박 났는데. 이란 책을 써서 지금 아주 난리도 아니야. 작가 이름이... 이미숙이라 한 것 같아!”“이, 이미숙?!” 장민영은 깜짝 놀랐다.“그 제대로 당한 작가도 무슨 미숙이라고 한 것 같은데.”“같은 사람 아니겠지?”“아닐 거야. 유 사장님이 어떻게 새 책을 내줄 수 있겠어?” 장민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45화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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