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50미터 간격으로 도로 표지판이 있는데, 그 위에 도서관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어요.”재석은 걸으면서 설명했다.“학교는 큰 고리형이라서, 왼쪽은 강의동이고, 오른쪽이 바로 도서관이에요...”소진헌은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노선을 그리려고 노력했다.그런데 세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정은은 마침 위층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쳤다.“엄마 아빠? 나가시려고요? 밖에 곧 비가 내릴 것 같은데...”그리고 재석도 옆에 있었다.“선배님?”이미숙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정은은 바로 재석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그러나 남자는 손을 흔들었다.“천만에, 돌아왔으면 됐어.”네 사람은 다시 올라갔다.“방금 정말 고마웠어. 다음에 집에 와서 밥 먹지 그래? 내가 직접 요리할 테니까 내 요리 솜씨 좀 맛봐!”소진헌은 열정적으로 초대했다.이미숙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그들 일가족은 남에게 밥을 해주기를 좋아했다.하지만 나름 다른 점도 있었다.소진헌은 요리 솜씨를 과시하기 위해서이고, 이미숙은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손을 쓸 필요가 없었으니 그냥 입만 놀리면 됐다.정은은 단순히 음식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많이 하면 혼자 먹을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을 초대했던 것이다.재석은 내색하지 않고 정은을 바라보더니,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돌아오자, 이미숙은 소진헌을 비웃었다.“다급하긴요. 남이 당신 요리 솜씨가 좋다는 것을 모를까 봐 그래요?”소진헌은 헤헤 웃었다.“좋은 요리 솜씨가 있으면 당연히 보여줘야지. 보여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똥폼 잡긴!”정은은 슬리퍼로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아빠, 선배님이랑 언제 이렇게 친해졌어요?”조 교수라 하면서 말까지 놓았다니.“그거 모르지? 사람은 사귀어야 하는 법이거든. 나와 조 교수도 다 물리를 배웠고, 장기를 좋아하니 당연히 친해지는 거 아니겠어?”이미숙은 매정하게 그의 속마음을 들추어냈다.“네
말을 마치자, 소진헌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나갔다.정은은 멍해졌다.‘됐어, 두 분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자...’실험실에서.재석은 지난주에 나온 두 조의 데이터를 검사하고 있었다. 제2조 제4열에 편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태민을 부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그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네, 누구시죠?”[선배님, 나예요, 소정은.]재석은 멈칫했다.자료를 쳐다보던 시선을 천천히 옮기며 말투도 누그러졌다.“무슨 일 있어?”[엊그저께 우리 아빠가 선배님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직접 선배님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면서... 시간 없어도 괜찮아요. 내가 다음에...]“시간 있어요.”정은은 잠시 멈칫했다.[실험실은 바쁘지 않는 거예요?]“응.”[그럼...]“저녁에 보자.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 특별히 날 위해 요리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다고.”[천, 천만에요.]전화를 끊은 후, 정은은 좀 어리둥절해졌다.‘뭐지... 어제 미진 언니가 톡으로 최근 진도 때문에 바빠서 미칠 지경이라고 하셨는데. 선배님은 왜 바쁘지 않다고 말한 거지?’진욱은 재석이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의 어깨를 쳤다.“누가 전화를 했는데? 정은이지? 나 정은이 목소리 들은 것 같아.”재석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알면서도 묻는 거야?”진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나는 삼일 째 밤을 새우고 있단 말이야. 미진이와 태민이도 너무 힘들다고 난리야. 그런데 우리 조 교수님은 오히려 바쁘지 않다고 말씀하시다니. 데이트가 있는 남자라서 그런가, 다르긴 정말 다르구나.”사실 재석은 그 누구보다도 밤을 많이 새웠다. 그러나 그는 아주 홀가분하고 유쾌해 보였다.‘설마 우리 모두 가짜 실험을 하고, 가짜 보고서를 내고, 가짜 논문을 쓴 것은 아니겠지?’재석은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진욱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 시계를 가리켰다.“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어제 너에게 초판 실험 데이터를 주지 않았어? 이미 9시간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자, 이미숙은 재석이 가져온 와인을 열었다. 정은도 오늘 술을 조금 마실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그 결과, 그녀는 두 잔이나 마셨다.소진헌은 말을 하느라 바빴고, 이미숙은 음식에 집중했기에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러나 재석은 달랐다.“정은아, 이미 세 잔째야.”“앗!” 술병을 들던 정은은 그 자리에 몸이 굳어졌다.소진헌과 이미숙은 그제야 그녀가 엄청 많이 마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얘! 좀 마시라고 허락했지, 한 잔 한 잔 마시라는 게 아니잖아!”이미숙은 화가 났지만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그녀도 와인을 즐겨 마셨고, 여태껏 취한 적이 없었다. ‘이 바보 같은 딸을 어쩜 좋을까...’소진헌도 정은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는 오히려 다른 일을 관심했다.“조 교수는 정말 과학연구를 하는 사람답네. 어쩜 관찰력이 이렇게 뛰어난 거야! 어쩐지 젊은 나이에 이렇게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더라니...”그렇다, 소진헌은 이미 각종 경로를 통해 물리분야에서의 재석의 성과를 전부 알아냈다.그야말로 감탄이 끊어지지 않았다.이미숙이 말했다.“네 아빠가 이미 중독됐어.”정은은 전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재석의 성과에 대해서, 오직 그를 접촉한 사람만이 재석이 얼마나 훌륭하고 얼마나 두드러지며 얼마나 불가사의한지를 알 수 있었으니까.그러나 지금, 정은은 이미숙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 정도로 칭찬을 할 수 있다니? 우리 아빠 설마 눈에 콩깍지라도 씐 아니야! 그것도 엄청 많이 씐 것 같은데?’“자네 우리 정은이를 이렇게 많이 관심하다니. 이런 사소한 디테일까지 주의를 했잖아. 아버지인 내가 정말 부끄럽군...”소진헌은 이렇게 말하면서 술을 한 모금 마셨다.이때, 그는 갑자기 컵을 내려놓더니 정중하게 말했다.“우리 의형제를 맺는 건 어떤가? 앞으로 정은이가 자네를 삼촌이라고 부르게 하자!”“풉-”이미숙은 하마터면 금방 마신 와인을 토할 뻔했다.정은과 재석도 깜짝 놀랐다.소
재석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어때, 동생아? 맛있지?”“네, 맛있어요...”소진헌은 기분이 좋아지더니,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그럼 많이 먹어! 그리고 이 소고기도 먹어 봐. 내가 직접 만든 소스에 찍어 먹으면...”재석은 줄곧 몇 마디 말만 반복했다.“맛있네요, 향기롭네요, 정말 특별하네요, 여태껏 먹어본 적이 없네요...”그래서 소진헌은 더욱 신이 났다.밥을 다 먹은 뒤, 재석은 일어나서 작별을 고했다. 이 순간, 그는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았다.하지만 다음 순간, 소진헌의 목소리가 울렸다.“정은아, 가서 네 재석 삼촌 좀 바래다줘.”재석은 심신이 지쳤다.“네!”정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와인의 도수가 높았기에, 그녀는 지금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반응이 그리 빠르지 않았다.하지만 표정은 여전했고, 눈빛도 무척 맑았다.재석을 문 앞으로 데려다준 다음, 밖으로 나가자마자 뒤의 문이 바람에 날려 펑 하는 소리를 냈다.사실 배웅할 것도 없었다, 재석은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으니까.정은은 재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뭘 잘못 먹었는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안녕, 재석 삼촌.”재석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정은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그윽하여 마치 깊이가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와 같았다.그는 천천히 다가오며 또박또박 말했다. “방금 날 뭐라고 부른 거야? 응?”듣기 좋은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위험이 담겨 있었다.정은의 귀에 떨어지자. 마치 찌릿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눈을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남자의 눈빛에 빠져들기 시작했다.1초, 2초.5초가 지나서야 정은은 정신을 차렸다.어색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취한 건지, 정은의 볼에 홍조가 나타났다. 그리고 점차 퍼지더니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맑고 새까만 정은의 두 눈은 마치 샘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순수했다. 입술을 깨무는 동작과 함께 수줍은 기색이 점점 떠올랐다.“미, 미안해요... 나, 나도 왜 그렇게 불렀
정은은 이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렸다.‘아빠가 선배님을 배웅하러 나가라고 한 것만 기억하는데... 그 다음엔? 무슨 일 있었지?’다음 날 아침, 정은은 침대에 누워 기지개를 켰는데, 전혀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이미숙이 문을 밀고 들어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깼어?”정은은 일어나서 물을 마셨다. 이때 그녀는 소진헌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너 앞으로 또 술을 그렇게 많이 훔쳐 마실 거야? 술주정을 부리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다니. 정말 정신이 나간 것 같아.”‘술주정? 내가?’정은은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이상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침을 간신히 삼킨 다음, 정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빠, 저 어제... 뭐 했어요?”“흥! 뭐했냐고? 너 기억이 안 나는 거야?”정은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그녀는 확실히 기억하지 못했다.“네가 조 교수를 데려다주면서, 남의 머리카락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거야. 조 교수는 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널 업고 돌아왔어...”“됐어요.” 이미숙은 그의 말을 끊었다.“더 이상 뭐라 하지 마요. 정은이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졌잖아요! 가요, 정은이 혼자 있게 놔둬요.”말을 마치자 이미숙은 소진헌을 쫓아냈고, 또 친절하게 문을 닫아주었다.1초.2초.3초.침실에서 정은은 부끄러워서 비명을 질렀다.“아아아아!”‘이게 뭐야! 너무 창피하잖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눈을 마주치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당신 딸은 당신과 똑 닮았어요. 술이 너무 약하잖아요.”“당신과 닮기도 해.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마시기 좋아하다니.”이미숙은 소진헌을 노려보았다.“맞고 싶어요?”소진헌은 즉시 손을 흔들었다.“에이, 그럴 리가.”...정은 일가는 매일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서영숙은 점점 초췌해져만 갔다.이순정 모자는 지난번 호텔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워도 아무런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화가 날수록 외출하고 싶었다.“장 기사.” 서영숙은 기사를 불렀다.“가서 준비해요, 20분 후에 외출할 테니까.”“네, 사모님.”서영숙은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다음 화장까지 했다.기사는 이미 대기 중이었고, 그녀는 허리를 굽혀 차에 올라탔다.“가요.”차가 대문을 나서기도 전에, 멀리서 그 모자가 철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았다.“사모님, 이 두 사람은 줄곧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만일 차라도 막으면 어떡하죠?”기사가 이렇게 말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며칠 전에 차를 몰고 정비하러 나갔을 때, 이 두 사람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차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갔던 것이다.기사도 짜증이 났다. 이 두 사람은 딱 봐도 뻔뻔스럽고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깡패들이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며 매달 월급을 받고 싶을 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다.서영숙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상관할 필요 없어요. 그냥 멈추지 말고 계속 페달을 밟아요.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기사는 좀 무서웠지만, 서영숙의 명령을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차가 나갈 때, 그 두 사람은 똥 냄새를 맡은 파리처럼 바로 다가왔다.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지만, 서영숙이 뒷좌석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는 감히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기사는 이를 악물고 가속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이순정과 철봉도 차를 여러 번 가로막았기에 이번에도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전의 기사들은 모두 순순히 멈추었는데, 이번엔 왜...’이순정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얼른 아들을 끌고 옆으로 피했다.다음 순간, 차는 그들이 방금 서 있던 곳에서 돌진했고, 속도가 매우 빨랐다.그들이 피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뭐야! 지금 우릴 치어 죽이려는 거야! 생각할 필요도 없지. 그 여편네 틀림없이 그 차
“엄마, 장지성이 그 남자의 회사를 알아냈어!”장지성은 건달이었는데, 평소에 정당한 직업이 없었지만 수단이 아주 많았다.철봉도 기대를 하지 않고 그를 찾아갔는데, 정말 도겸의 회사를 알아낼 줄은 몰랐다.“잘됐네! 마침 우리도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잖아. 가자, 철봉아, 그 남자 찾아가자...”이순정은 흥분을 드러내며 바로 몸을 움직였다.그동안 강씨 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서, 서영숙을 괴롭게 하며 외출을 감히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30분 후.“이것이 바로 강도겸의 회사라고? 이렇게 높은 건물을 사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철봉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빌딩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탐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이순정도 혀를 찼다.“이야, 네 누나 이번에 정말 큰 물고기를 낚았네. 이 사람들 돈이 기똥차게 많은 것 같아!”만약 이번 기회를 틈타 큰 돈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남은 인생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이순정 모자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고, 결심한 듯 단호하게 발걸음을 안으로 내디뎠다.그러나 도겸의 회사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최고급 보안 시스템을 갖춘 빌딩이었다. 들어가고 싶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이순정은 그곳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를 발견하고는 몰래 창고로 들어가 청소부 옷 두 벌을 찾아냈다.그렇게 두 사람은 청소부로 변장한 후에야 비로소 빌딩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건물 내부에 들어선 두 사람은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탐색하기 시작했다.그들의 어설픈 행동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처럼 서툴렀고, 사무실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엉성한 움직임을 계속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두 사람은 무심히 다른 사람들을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야, 네 친구는 그 사람이 몇 층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철봉은 순식간에 자신감이 넘쳤다.“남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빨리 강도겸을 불러와요! 지금 급한 일로 찾고 있으니까!”비서는 두 사람이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눈살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 경비에게 전화를 하려는 순간, 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왔다.“대표님...”비서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도겸은 비즈니스 협상을 끝내고 나왔다. 멀리서 두 명의 청소부와 비서가 자신의 사무실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두 사람이 욕하는 것을 듣고, 그는 며칠 전에 서영숙이 말한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도겸은 이 두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먼저 가서 일 봐.” 그는 비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입을 열 필요도 없이 이순정과 철봉은 거들먹거리며 들어왔다.도겸은 그제야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여자는 피부가 푸석푸석했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눈이 움푹 들어갔다. 그러나 이목구비는 나름 정교하여 젊었을 때 그래도 미녀였을 것이다.아쉽게도 턱이 뾰족하고 입술이 얇으며 눈알을 마구 굴리는 것을 보니, 각박하면서도 까다로운 사람이었다.‘서연희도 이 여자와 똑같이 생겼는데. 정말 신기하군.’그리고 철봉은 원숭이처럼 생겼는데, 양아치처럼 차려입어 보기만 해도 백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도겸이 그들을 훑어보는 동시에 이순정도 마음속으로 은근히 궁리하고 있었다.‘이 남자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네. 양복차림을 하고 있으니 마치 드라마에서 나온 엘리트 남자 주인공과 같아. 그저 눈빛이 좀 차가워서 보기만 해도 까칠하고 똑똑해 보이는데.’이순정은 도겸의 손에 있는 손목시계를 훑어보았다. 비록 구체적으로 어떤 브랜드인지 알지 못했지만, 많은 다이아몬드가 위에 박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매우 비쌀 것이다.‘계집애, 남자 하나는 아주 잘 골랐네!’이순정은 침을 삼켰고, 눈빛 속의 탐욕이 거의 새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모든 절차를 뛰어넘어 직접 가격을 말하고 싶었다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
이미숙의 일을 해결하고 정은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J시로 돌아갔다.곧 기말고사가 다가왔기에 대학원은 이미 휴교하고 정식으로 복습기간에 들어섰다.이틀 동안 학교에 없었으니, 비록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실험 진도가 적지 않게 지체되었다.민지와 서준은 아직 정은이 데이터를 체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쉬지 않고 실험실로 달려갔다.그다음 며칠도 정은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짐을 풀지 않아 수고까지 덜었다.밀린 데이터를 처리한 후에야 정은은 인훈과 현빈에게 결산해야 할 잔금이 남았단 것을 떠올렸다.이날 저녁, 그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불러냈다.여전히 서비대학교 밖의 그 레스토랑에서.인훈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미숙이 입원했다는 것을 듣고 정은에게 상황을 물었다.“다 해결됐어. 오늘 내가 오빠와 심 대표님을 불러낸 것은 주로 잔금에 관해서야...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공사대금은 3분기로 나누어 지불해야 하잖아. 앞의 2분기는 이미 입금되었고, 오빠 쪽으로 마지막 1분기의 돈을 넣어야 할 텐데. 한번 확인해 봐. 맞다면 지금 바로 잔금 입금해줄게.”“심 대표님, 그동안 줄곧 오빠와 소통했기 때문에 나도 심 대표님의 비용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빠가 계산을 끝내면 심 대표님도 한번 계산해 봐요. 오늘 모두 여기에 모인 이상,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인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지만, 정은이 이렇게 엄숙한 것을 보고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체크해 보았다.“아무 문제도 없어.”“응.”다음은 인훈과 현빈이 결산할 차례였다.두 사람은 모두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신속하게 끝냈다.모든 일을 마치자, 세 사람은 마침내 젓가락을 들었다.그동안 인훈과 현빈의 도움을 떠올리며 정은은 차를 따른 잔을 들었다.“오빠, 심 대표님, 실험실을 순조롭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다 두 분 덕분이에요. 쓸데없는 말 대신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인훈은 어
“사장님이 하신 그 일들은 이미 인터넷에 올라왔고, 지금 수십 명의 작가들이 연합하여 사장님을 고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이미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요. 만약 정말 소송을 한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길 리가 없단 말입니다!”유보영은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데요?! 이미숙만 날 고소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합의를 거절하실 때, 이 소식이 전해지면 사장님한테 당한 다른 작가들도 다 같이 연합하여 배상을 요구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신 거예요?!”수십 명이 동시에 배상을 요구하다니, 유보영은 아무리 멍청해도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변, 지금 가서 이미숙에게 말해요. 합의서에 사인할 테니까, 원하는 만큼 배상할 거라고!”“늦었어요! 오기 전에 전 이미 피해자의 따님에게 연락했는데, 합의를 거절했어요.”“왜, 왜요? 전까지만 해도 합의를 원하지 않았어요?”오지후는 한숨을 쉬었다.“기회는 한 번 뿐이고, 놓치면 더 이상 없어요. 사장님이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협조하는 게 아니잖아요.”유보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다리가 나른해졌다.인터넷에 폭로된 이상, 유보영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으며, 마지막에 이 일이 해결되더라도 그녀는 더 이상 이 업종을 종사할 수 없었다.그리고 거액의 배상금은 유보영의 가산을 탕진하기에 충분했다.“오 변호사, 나 좀 살려줘요...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제발. 방법 좀 생각해 봐요...”오지후는 안타까움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돈을 얼마 원하든 다 괜찮으니까, 제발요. 꼭 소송에서 이겨야 돼요!”오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이겨? 그럴 리가. 상대방이 손에 쥔 증거는 사장님을 감옥에 넣기에 충분하다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장님이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 가능한 한 적은 배상금을 내시도록 쟁취하는 것뿐이에요.”“감, 감옥?! 그
재생 버튼을 누르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명한 작가와 계약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그 작가에게 유명작이 있기 때문이지! 이 책들은 대부분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돈을 좀 써서 이 작가와 계약을 하고, 겉으로는 상대방을 다시 대단한 작가로 만들겠다고, 꽃길을 걷자고 뻥을 치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기존 작품 판권을 전부 자신의 손에 쥐는 거지.]유보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직원이었다.“양심도 없는 것!”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녹음은 어디서 났어요?”“피해자 따님이 제공했고, 녹음을 한 이 두 직원도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를 제공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은 사장님에게 매우 불리합니다.”유보영은 이미숙이 기껏해야 고의상해죄로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숙을 밀치지 않았으니, 나중에 기껏해야 고의로 타인의 재물을 파손한 죄로 배상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이미숙이 저작권 침해로 자신을 고소할 줄이야.“정말 양심이 없는 사람이군! 내가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계약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날 고소해! 오 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오 변호사 오지후는 그녀를 직시했다.“지금 진실을 말씀하셔야 해다. 몰래 작가들의 판권을 운영하여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판권을 판매하신 적이 있습니까?”유보영은 눈을 깜박였다.“나도 다 계약서에 따라서...”“있다, 없다만 말씀하세요. 솔직히 말해야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유보영은 입술을 깨물고 상대방의 압박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있어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알아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지후는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이런 짓을?!”“내가 그 사람들과 계약을 했고, 그럼 그 작품들도 다 내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자선가가 아니니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에 따라 사장님
J시, 무한 실험실에서.정은은 실험대 앞에 서서 데이터를 세 번이나 수정했다.서준과 민지는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해!’“정은 언니,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나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어. 오늘 계속 마음이 불안하네.”“오늘 아침부터요?”“그래.”...점심에 정은은 낮잠을 잤는데 상황이 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고, 마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저녁 무렵, 가까스로 일을 마친 정은은 데이터를 대조한 후 기지개를 켰다.“후, 드디어 끝났다.”민지가 말했다.“나도 다 끝냈는데. 쮼, 너는?”“나도.”“잘됐네! 오늘 밤 드디어 밤을 새울 필요가 없어. 같이 밥 먹으러 갈까? 내가 쏠게.”정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 가, 난 쉬고 싶어.”그동안 정말 피곤했기에 정은은 지금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민지도 뭐라 하지 않았다.“그래요, 정은 언니,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요.”“좋아.”도중에 정은은 택시에 앉아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다“어, 아빠.”[정은아, 네 엄마 다쳤으니 얼른 집으로 와!]“네? 엄마가 다쳐요? 왜요? 어쩌다가요?!”[오늘 유보영이 집에 찾아왔다...]이미숙은 컴퓨터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그 순간 피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다행히 소진헌이 제때에 돌아왔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그런데도 세 바늘을 꿰매었는데,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면 이틀 동안 입원하여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유보영 그 여자는요?”[도망갔어.]정은은 이를 갈았다.그날 저녁, 그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은 후, 마침내 새벽 3시에 L시에 도착했다.이튿날 아침, 정은은 자신이 만든 죽과 3시간 동안 끓인 보신탕을 가지고 병원에 찾아왔다.“정은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모두 놀랐다.“언제 돌아왔어?”“왜 말 안 했어? 내가 데리
“능청스럽게 굴지 마요. 우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건 어때요? 나는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했어요. 당신이 본 『7일담』이 바로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에요. 그러니 나는 당신과 재계약을 할 수 없어요. 지난 10년간의 감정을 봐서, 우리는 좋게 갈라지죠.”“좋게 갈라져?” 유보영은 냉소를 지으며 드디어 연기를 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누가 나의 손실을 배상하는 건데?”“당신이 무슨 손실을 입었다는 거죠?” 이미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내가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너와 계약을 했어. 10년, 꼬박 10년, 당신은 좋은 책 한 권도 쓰지 못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을 찾아가 계약을 하더니 바로 인기 소설을 출시해? 이미숙, 너 지금 날 갖고 장난하는 거지?”“내가 쓰기 싫어서 그래요? 당신이 줄곧 나의 구상을 부정하고, 나에게 출판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가 당신에게 몇 권의 책의 대강을 주었는지 계산해 본 적 있어요? 마지막에는 예외가 하나도 없이 전부 거절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인기를 끄는 작품을 출판하라는 거예요?”“너...”“당초의 계약비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래요, 당신은 확실히 많은 돈을 주었지만, 당신도 날 10년 동안 ‘감금’했잖아요. 이 10년 동안 내 예전에 쓴 책의 판권으로 얼마를 벌었는지, 당신이 잘 알고 있겠죠.”유보영은 시선을 피하더니 다소 마음이 찔렸다.‘이미숙이 어떻게 그 판권에 대해 알았지?’“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죠? 나는 이미 변호사를 청해 계약서를 확인해 보았는데, 당신은 몰래 내 판권을 대리 운영하겠다는 조항을 추가했죠. 사인할 때 나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직접 이름을 쓰라고 했고요.”“허... 그래서? 이제 돈 계산을 하자는 거야? 변호사까지 불렀다고? 진작부터 날 방비했나 보네.”“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어요. 전의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겠지만, 지금부터 날 방해하지 마요.”이미숙은 일어나더니 손님을 내
이 시각, 소진헌은 학교에 수업하러 갔는데, 집에는 이미숙 혼자밖에 없었다.J시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새 책의 대강을 구상했고, 학교 괴담을 주제로 한 공포 소설을 창작할 계획이었다.그사이 정은이 전화를 걸어 실험실 완공식에 초청했지만, 부부는 아쉬움을 느끼며 거절했다.소진헌은 수업을 해야 했기에 떠날 수 없었고, 이미숙은 창작을 해야 해서 방해를 받으면 안 됐다.이야기가 이미 태반이 완성되고, 곧 마지막 장을 끝내려 해서 이미숙은 요즘 자신을 방에 가두었다.유보영이 문을 두드릴 때도 이미숙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문을 열러 가는 길에 머릿속에서 줄거리를 구상하고 있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그...”유보영은 미소 지었다.“오랜만이에요, 이 작가.”이미숙은 이마를 찌푸렸다.“당신이었어요?”“그래요, 그래도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유보영은 내색하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았다.‘인테리어가 이렇게 호화로운 걸 보니 정말 부자가 된 모양이야.’이미숙이 거절을 하기 전에 유보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이미숙은 비록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유보영이 떠들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웃고 있었기에, 예의상 이미숙은 그녀를 내쫓지 못했다.더군다나 이미숙도 유보영이 오늘 무엇을 하러 왔는지 궁금했다.“앉아요.” 이미숙은 물 한 잔을 따라 탁자 위에 놓았다.유보영은 앉은 후,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별장 곳곳을 살펴보았다.“이 작가님, 이사를 해도 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예전에 이 작가님이 살던 곳에 달려가서 얼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전화해도 항상 전원이 꺼져 있어서 나도 이곳을 찾느라 애를 엄청 썼어요.”이미숙은 대답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그게요, 우리 계약도 곧 만기 되어 가잖아요. 그동안 우리는 아주 잘 협력했고, 재계약도 형식일 뿐이에요. 하지만 형식이라도 같이 사인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 좀 봐요...”말하면
그리고 유보영의 밑에 이런 작가가 무려 수십 명이나 있었다.“어머!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작가들은 바보 아니에요? 판권 같은 것을 팔려면 작가 본인의 동의를 거치고 사인까지 해야 되잖아요?”장민영은 가볍게 흥얼거렸다.“넌 매일 그렇게 많은 계약을 복사하는데, 위의 상세한 조항을 보지 않았니?”“어?”“유 사장님은 계약을 할 때 이미 작가의 명의로 된 기타 서적의 판권 대리권을 손에 넣었다고. 그럼 작가에게 통지할 필요도 없고, 사인할 필요도 없어. 유 사장님이 가서 잘 이야기한 다음, 작업실 쪽에 공인만 하나 더 찍으면 끝.”“만약 정말 사인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면, 아무나 찾아서 사인하면 되지 않겠어? 그 사람들 정말 작가 본인을 찾아 가서 대조할 수도 없잖아.”“어머, 그럼 유 사장님은 작가에게 주는 배당금까지 절약한 셈이네? 어차피 작가도 모르니, 돈을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겠지.”장민영은 커피 한 모금 마셨다.“그래, 넌 사장님이 좋은 차에 비싼 집을 산 돈이 어디서 났다고 생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명품인데, 내가 듣기로는 그 가방 하나만 해도 수천만 원이라잖아? 정말이야?”“정말이야, 그것도 에르메스.”“쯧쯧...”장민영은 감탄하면서 부러워했다.“가장 비참하게 당한 작가는 추리 소설을 썼다고 들었어. 일찍 엄청난 인기를 끈 두 권의 소설 판권은 유 사장님이 모두 팔았고. 최근 몇년간 또 기타 판권을 연장했는데, 그 작가 혼자만 해도 매달 최소 우리에게 수백만 원의 이익을 가져다줄수 있어.”“추리 소설 작가? 누구지? 요즘 한 추리 소설 작가가 대박 났는데. 이란 책을 써서 지금 아주 난리도 아니야. 작가 이름이... 이미숙이라 한 것 같아!”“이, 이미숙?!” 장민영은 깜짝 놀랐다.“그 제대로 당한 작가도 무슨 미숙이라고 한 것 같은데.”“같은 사람 아니겠지?”“아닐 거야. 유 사장님이 어떻게 새 책을 내줄 수 있겠어?” 장민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긴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