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37화

Author: 십일
소진헌은 아직 흥을 다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 교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말하면서 물 두 모금 마신 다음, 입맛을 다시며 계속 감탄했다.

“확실히 괜찮네...”

정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아빠, 무슨 이상형이라도 만나신 거예요?”

“헛소리! 내 이상형은 너희 엄마뿐이야!”

‘또 애정을 과시하고 있군!’

어제 돌아다니느라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오늘 소진헌과 이미숙은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정은은 자연히 그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푹 쉰 다음, 세 식구는 또다시 집을 나섰다.

이번에 주로 한옥마을을 구경하러 갔다.

정은은 일주일 전에 미리 예약을 했다.

이미숙은 특별히 한복을 입고 사진까지 찍었다.

스태프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머, 어쩜 이렇게 우아하세요. 정말 그 시대에서 오신 분 같아요...”

이미숙도 덩달아 웃었다.

칭찬을 듣기 싫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사진사의 안목은 확실히 괜찮았고, 마지막에 나온 사진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날 밤, 소진헌은 혼자 잤고, 정은은 엄마와 같이 잤다.

이미숙은 어릴 때처럼 그녀를 품에 안았다.

정은은 어머니의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곧 꿈나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 정은은 일어나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뜻밖에도 전에 투고한 생물잡지의 답장을 받았는데, 그녀에게 관련 참고문헌을 완전하게 보충하라고 했다.

정은은 원고를 확정하기 전에 이미 한 번 검사했지만, 빠뜨린 상황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을 대비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빠, 엄마, 저 도서관에 좀 다녀올게요. 빠르면 점심에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가서 일 봐, 우리 신경 쓸 거 없어!”

점심에 날씨가 갑자기 변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다가, 밥을 먹은 사이에 하늘이 흐려졌다.

이미숙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곧 폭우가 쏟아질 텐데. 정은이가 나갈 때 우산을 안 가지고 나갔잖아요. 우리가 갖다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가까우니 시간도 얼마 안 걸리잖아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38화

    “여긴 50미터 간격으로 도로 표지판이 있는데, 그 위에 도서관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어요.”재석은 걸으면서 설명했다.“학교는 큰 고리형이라서, 왼쪽은 강의동이고, 오른쪽이 바로 도서관이에요...”소진헌은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노선을 그리려고 노력했다.그런데 세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정은은 마침 위층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쳤다.“엄마 아빠? 나가시려고요? 밖에 곧 비가 내릴 것 같은데...”그리고 재석도 옆에 있었다.“선배님?”이미숙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정은은 바로 재석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그러나 남자는 손을 흔들었다.“천만에, 돌아왔으면 됐어.”네 사람은 다시 올라갔다.“방금 정말 고마웠어. 다음에 집에 와서 밥 먹지 그래? 내가 직접 요리할 테니까 내 요리 솜씨 좀 맛봐!”소진헌은 열정적으로 초대했다.이미숙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그들 일가족은 남에게 밥을 해주기를 좋아했다.하지만 나름 다른 점도 있었다.소진헌은 요리 솜씨를 과시하기 위해서이고, 이미숙은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손을 쓸 필요가 없었으니 그냥 입만 놀리면 됐다.정은은 단순히 음식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많이 하면 혼자 먹을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을 초대했던 것이다.재석은 내색하지 않고 정은을 바라보더니,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돌아오자, 이미숙은 소진헌을 비웃었다.“다급하긴요. 남이 당신 요리 솜씨가 좋다는 것을 모를까 봐 그래요?”소진헌은 헤헤 웃었다.“좋은 요리 솜씨가 있으면 당연히 보여줘야지. 보여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똥폼 잡긴!”정은은 슬리퍼로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아빠, 선배님이랑 언제 이렇게 친해졌어요?”조 교수라 하면서 말까지 놓았다니.“그거 모르지? 사람은 사귀어야 하는 법이거든. 나와 조 교수도 다 물리를 배웠고, 장기를 좋아하니 당연히 친해지는 거 아니겠어?”이미숙은 매정하게 그의 속마음을 들추어냈다.“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39화

    말을 마치자, 소진헌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나갔다.정은은 멍해졌다.‘됐어, 두 분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자...’실험실에서.재석은 지난주에 나온 두 조의 데이터를 검사하고 있었다. 제2조 제4열에 편차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태민을 부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그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네, 누구시죠?”[선배님, 나예요, 소정은.]재석은 멈칫했다.자료를 쳐다보던 시선을 천천히 옮기며 말투도 누그러졌다.“무슨 일 있어?”[엊그저께 우리 아빠가 선배님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직접 선배님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면서... 시간 없어도 괜찮아요. 내가 다음에...]“시간 있어요.”정은은 잠시 멈칫했다.[실험실은 바쁘지 않는 거예요?]“응.”[그럼...]“저녁에 보자.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 특별히 날 위해 요리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다고.”[천, 천만에요.]전화를 끊은 후, 정은은 좀 어리둥절해졌다.‘뭐지... 어제 미진 언니가 톡으로 최근 진도 때문에 바빠서 미칠 지경이라고 하셨는데. 선배님은 왜 바쁘지 않다고 말한 거지?’진욱은 재석이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의 어깨를 쳤다.“누가 전화를 했는데? 정은이지? 나 정은이 목소리 들은 것 같아.”재석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알면서도 묻는 거야?”진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나는 삼일 째 밤을 새우고 있단 말이야. 미진이와 태민이도 너무 힘들다고 난리야. 그런데 우리 조 교수님은 오히려 바쁘지 않다고 말씀하시다니. 데이트가 있는 남자라서 그런가, 다르긴 정말 다르구나.”사실 재석은 그 누구보다도 밤을 많이 새웠다. 그러나 그는 아주 홀가분하고 유쾌해 보였다.‘설마 우리 모두 가짜 실험을 하고, 가짜 보고서를 내고, 가짜 논문을 쓴 것은 아니겠지?’재석은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진욱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 시계를 가리켰다.“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어제 너에게 초판 실험 데이터를 주지 않았어? 이미 9시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40화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자, 이미숙은 재석이 가져온 와인을 열었다. 정은도 오늘 술을 조금 마실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그 결과, 그녀는 두 잔이나 마셨다.소진헌은 말을 하느라 바빴고, 이미숙은 음식에 집중했기에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러나 재석은 달랐다.“정은아, 이미 세 잔째야.”“앗!” 술병을 들던 정은은 그 자리에 몸이 굳어졌다.소진헌과 이미숙은 그제야 그녀가 엄청 많이 마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얘! 좀 마시라고 허락했지, 한 잔 한 잔 마시라는 게 아니잖아!”이미숙은 화가 났지만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그녀도 와인을 즐겨 마셨고, 여태껏 취한 적이 없었다. ‘이 바보 같은 딸을 어쩜 좋을까...’소진헌도 정은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는 오히려 다른 일을 관심했다.“조 교수는 정말 과학연구를 하는 사람답네. 어쩜 관찰력이 이렇게 뛰어난 거야! 어쩐지 젊은 나이에 이렇게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더라니...”그렇다, 소진헌은 이미 각종 경로를 통해 물리분야에서의 재석의 성과를 전부 알아냈다.그야말로 감탄이 끊어지지 않았다.이미숙이 말했다.“네 아빠가 이미 중독됐어.”정은은 전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재석의 성과에 대해서, 오직 그를 접촉한 사람만이 재석이 얼마나 훌륭하고 얼마나 두드러지며 얼마나 불가사의한지를 알 수 있었으니까.그러나 지금, 정은은 이미숙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 정도로 칭찬을 할 수 있다니? 우리 아빠 설마 눈에 콩깍지라도 씐 아니야! 그것도 엄청 많이 씐 것 같은데?’“자네 우리 정은이를 이렇게 많이 관심하다니. 이런 사소한 디테일까지 주의를 했잖아. 아버지인 내가 정말 부끄럽군...”소진헌은 이렇게 말하면서 술을 한 모금 마셨다.이때, 그는 갑자기 컵을 내려놓더니 정중하게 말했다.“우리 의형제를 맺는 건 어떤가? 앞으로 정은이가 자네를 삼촌이라고 부르게 하자!”“풉-”이미숙은 하마터면 금방 마신 와인을 토할 뻔했다.정은과 재석도 깜짝 놀랐다.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41화

    재석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어때, 동생아? 맛있지?”“네, 맛있어요...”소진헌은 기분이 좋아지더니,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그럼 많이 먹어! 그리고 이 소고기도 먹어 봐. 내가 직접 만든 소스에 찍어 먹으면...”재석은 줄곧 몇 마디 말만 반복했다.“맛있네요, 향기롭네요, 정말 특별하네요, 여태껏 먹어본 적이 없네요...”그래서 소진헌은 더욱 신이 났다.밥을 다 먹은 뒤, 재석은 일어나서 작별을 고했다. 이 순간, 그는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았다.하지만 다음 순간, 소진헌의 목소리가 울렸다.“정은아, 가서 네 재석 삼촌 좀 바래다줘.”재석은 심신이 지쳤다.“네!”정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와인의 도수가 높았기에, 그녀는 지금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반응이 그리 빠르지 않았다.하지만 표정은 여전했고, 눈빛도 무척 맑았다.재석을 문 앞으로 데려다준 다음, 밖으로 나가자마자 뒤의 문이 바람에 날려 펑 하는 소리를 냈다.사실 배웅할 것도 없었다, 재석은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으니까.정은은 재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뭘 잘못 먹었는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안녕, 재석 삼촌.”재석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 정은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그윽하여 마치 깊이가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와 같았다.그는 천천히 다가오며 또박또박 말했다. “방금 날 뭐라고 부른 거야? 응?”듣기 좋은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위험이 담겨 있었다.정은의 귀에 떨어지자. 마치 찌릿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눈을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남자의 눈빛에 빠져들기 시작했다.1초, 2초.5초가 지나서야 정은은 정신을 차렸다.어색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취한 건지, 정은의 볼에 홍조가 나타났다. 그리고 점차 퍼지더니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맑고 새까만 정은의 두 눈은 마치 샘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순수했다. 입술을 깨무는 동작과 함께 수줍은 기색이 점점 떠올랐다.“미, 미안해요... 나, 나도 왜 그렇게 불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42화

    정은은 이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렸다.‘아빠가 선배님을 배웅하러 나가라고 한 것만 기억하는데... 그 다음엔? 무슨 일 있었지?’다음 날 아침, 정은은 침대에 누워 기지개를 켰는데, 전혀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이미숙이 문을 밀고 들어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깼어?”정은은 일어나서 물을 마셨다. 이때 그녀는 소진헌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너 앞으로 또 술을 그렇게 많이 훔쳐 마실 거야? 술주정을 부리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다니. 정말 정신이 나간 것 같아.”‘술주정? 내가?’정은은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이상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침을 간신히 삼킨 다음, 정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빠, 저 어제... 뭐 했어요?”“흥! 뭐했냐고? 너 기억이 안 나는 거야?”정은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그녀는 확실히 기억하지 못했다.“네가 조 교수를 데려다주면서, 남의 머리카락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거야. 조 교수는 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널 업고 돌아왔어...”“됐어요.” 이미숙은 그의 말을 끊었다.“더 이상 뭐라 하지 마요. 정은이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졌잖아요! 가요, 정은이 혼자 있게 놔둬요.”말을 마치자 이미숙은 소진헌을 쫓아냈고, 또 친절하게 문을 닫아주었다.1초.2초.3초.침실에서 정은은 부끄러워서 비명을 질렀다.“아아아아!”‘이게 뭐야! 너무 창피하잖아!’소진헌과 이미숙은 눈을 마주치더니 웃음을 참지 못했다.“당신 딸은 당신과 똑 닮았어요. 술이 너무 약하잖아요.”“당신과 닮기도 해.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마시기 좋아하다니.”이미숙은 소진헌을 노려보았다.“맞고 싶어요?”소진헌은 즉시 손을 흔들었다.“에이, 그럴 리가.”...정은 일가는 매일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서영숙은 점점 초췌해져만 갔다.이순정 모자는 지난번 호텔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워도 아무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43화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화가 날수록 외출하고 싶었다.“장 기사.” 서영숙은 기사를 불렀다.“가서 준비해요, 20분 후에 외출할 테니까.”“네, 사모님.”서영숙은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다음 화장까지 했다.기사는 이미 대기 중이었고, 그녀는 허리를 굽혀 차에 올라탔다.“가요.”차가 대문을 나서기도 전에, 멀리서 그 모자가 철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았다.“사모님, 이 두 사람은 줄곧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만일 차라도 막으면 어떡하죠?”기사가 이렇게 말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며칠 전에 차를 몰고 정비하러 나갔을 때, 이 두 사람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차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갔던 것이다.기사도 짜증이 났다. 이 두 사람은 딱 봐도 뻔뻔스럽고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깡패들이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며 매달 월급을 받고 싶을 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다.서영숙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상관할 필요 없어요. 그냥 멈추지 말고 계속 페달을 밟아요.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기사는 좀 무서웠지만, 서영숙의 명령을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차가 나갈 때, 그 두 사람은 똥 냄새를 맡은 파리처럼 바로 다가왔다.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지만, 서영숙이 뒷좌석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는 감히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기사는 이를 악물고 가속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이순정과 철봉도 차를 여러 번 가로막았기에 이번에도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전의 기사들은 모두 순순히 멈추었는데, 이번엔 왜...’이순정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얼른 아들을 끌고 옆으로 피했다.다음 순간, 차는 그들이 방금 서 있던 곳에서 돌진했고, 속도가 매우 빨랐다.그들이 피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뭐야! 지금 우릴 치어 죽이려는 거야! 생각할 필요도 없지. 그 여편네 틀림없이 그 차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44화

    “엄마, 장지성이 그 남자의 회사를 알아냈어!”장지성은 건달이었는데, 평소에 정당한 직업이 없었지만 수단이 아주 많았다.철봉도 기대를 하지 않고 그를 찾아갔는데, 정말 도겸의 회사를 알아낼 줄은 몰랐다.“잘됐네! 마침 우리도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잖아. 가자, 철봉아, 그 남자 찾아가자...”이순정은 흥분을 드러내며 바로 몸을 움직였다.그동안 강씨 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서, 서영숙을 괴롭게 하며 외출을 감히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30분 후.“이것이 바로 강도겸의 회사라고? 이렇게 높은 건물을 사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철봉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빌딩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탐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이순정도 혀를 찼다.“이야, 네 누나 이번에 정말 큰 물고기를 낚았네. 이 사람들 돈이 기똥차게 많은 것 같아!”만약 이번 기회를 틈타 큰 돈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남은 인생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이순정 모자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고, 결심한 듯 단호하게 발걸음을 안으로 내디뎠다.그러나 도겸의 회사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최고급 보안 시스템을 갖춘 빌딩이었다. 들어가고 싶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이순정은 그곳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청소부를 발견하고는 몰래 창고로 들어가 청소부 옷 두 벌을 찾아냈다.그렇게 두 사람은 청소부로 변장한 후에야 비로소 빌딩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건물 내부에 들어선 두 사람은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탐색하기 시작했다.그들의 어설픈 행동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처럼 서툴렀고, 사무실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두 사람은 전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엉성한 움직임을 계속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두 사람은 무심히 다른 사람들을 따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야, 네 친구는 그 사람이 몇 층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45화

    철봉은 순식간에 자신감이 넘쳤다.“남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빨리 강도겸을 불러와요! 지금 급한 일로 찾고 있으니까!”비서는 두 사람이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눈살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 경비에게 전화를 하려는 순간, 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왔다.“대표님...”비서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도겸은 비즈니스 협상을 끝내고 나왔다. 멀리서 두 명의 청소부와 비서가 자신의 사무실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두 사람이 욕하는 것을 듣고, 그는 며칠 전에 서영숙이 말한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도겸은 이 두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먼저 가서 일 봐.” 그는 비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입을 열 필요도 없이 이순정과 철봉은 거들먹거리며 들어왔다.도겸은 그제야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여자는 피부가 푸석푸석했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눈이 움푹 들어갔다. 그러나 이목구비는 나름 정교하여 젊었을 때 그래도 미녀였을 것이다.아쉽게도 턱이 뾰족하고 입술이 얇으며 눈알을 마구 굴리는 것을 보니, 각박하면서도 까다로운 사람이었다.‘서연희도 이 여자와 똑같이 생겼는데. 정말 신기하군.’그리고 철봉은 원숭이처럼 생겼는데, 양아치처럼 차려입어 보기만 해도 백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도겸이 그들을 훑어보는 동시에 이순정도 마음속으로 은근히 궁리하고 있었다.‘이 남자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네. 양복차림을 하고 있으니 마치 드라마에서 나온 엘리트 남자 주인공과 같아. 그저 눈빛이 좀 차가워서 보기만 해도 까칠하고 똑똑해 보이는데.’이순정은 도겸의 손에 있는 손목시계를 훑어보았다. 비록 구체적으로 어떤 브랜드인지 알지 못했지만, 많은 다이아몬드가 위에 박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매우 비쌀 것이다.‘계집애, 남자 하나는 아주 잘 골랐네!’이순정은 침을 삼켰고, 눈빛 속의 탐욕이 거의 새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모든 절차를 뛰어넘어 직접 가격을 말하고 싶었다

Latest chapter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2화

    처음엔 진영매도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아이고... 또 오타네... 이걸 또 지우고 다시... 에구구...’속도도 느리고, 자꾸 엉뚱한 단어가 입력돼서 정말 진땀을 뺐다.하지만 어느 날, 자판 옆에 있는 마이크 버튼을 눌러봤고, ‘음성 입력'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모든 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어머, 말만 하면 글자가 나오네? 이거 진짜 신기하네...’그 뒤로 점점 익숙해지면서 진영매는 ‘두부 단톡방’을 직접 관리하게 되었고, 주문 확인도 척척 해냈다.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서 택배 보관소를 운영하는 이웃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언니도 공동구매 한번 해보는 거 어때요? 요즘 동네 맘카페나 톡방에서 다 그걸로 부수입을 벌어요.”“공동구매요?”“네, 단톡방에 링크만 올리면 되는데, 그 링크로 누가 주문하면 언니한테 수수료가 떨어져요. 요즘 그런 플랫폼이 많아요.”그 말에 진영매는 ‘일단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은 물건 몇 개부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무작정 링크만 던져놓는 식으로 하지는 않았다.직접 샀다. 직접 써봤다. 직접 먹어봤다.그리고 진심 담긴 후기를 함께 적어 올렸다.[이건 제가 직접 삶아봤는데, 식감도 쫄깃하고 가격도 괜찮아요. 혹시 필요하신 분만 구매하시고, 안 맞을 것 같으면 굳이 안 사셔도 돼요.]‘괜히 민폐 되기 싫으니까... 무조건 좋다고는 못 하지.’그런데 이렇게 정성껏 올린 글이 톡방 안에서 반응이 꽤 좋았다.처음엔 몇 개, 그러다 열 개, 스무 개... 요즘은 많을 땐 하루에 백 개 넘는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하루 수익만 몇만 원 되는 날이 생기자, 남봉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진짜? 당신 하루 종일 집에 앉아서 그렇게 번 거야?”그는 아침마다 두유를 끓이고, 비지 짜고, 순두부 포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단지 세 군데씩 배달을 돌곤 했다.‘점심엔 다시 나가 광장에 작은 천막을 치고 두부 요리 판매, 해 질 무렵에야 집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1화

    어느새 정은이 실험실에서 지낸 지 거의 2주가 되었다. 이번 집중 실험은 처음 계획대로라면 이틀 정도 일찍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불꽃 열정 모드로 돌입했다.“정은 언니! 우리 이참에 2차 실험안도 다 밀어붙여요! 타이밍 완벽하잖아요! 이왕 하는 김에 끝까지 가보자고요!”진일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했다.‘어차피 난 어제도 오늘도 실험실에서 잘 운명인데... 집에서 자나 여기서 자나... 거기서 거기지 뭐.’서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민지 편. 민지가 하자고 하면, 그냥 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지 뭐.정은은 그런 셋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자.” 그렇게, 예정보다 이틀 더 실험실에 갇혀 살며 2차 실험안까지 초안 작업을 마무리했다.민지의 슬로건은 이랬다.“오세요! 같이 말아봐요! 끝없는 연구의 늪!”그리고 마침내 모든 걸 정리한 날.“정은 언니! 헤헤. 저요... 연차 쓸게요! 푹 쉬어야겠어요!”‘뭐야, 이 모든 열정의 뿌리는 결국... 편하게 놀기 위한 전주곡이었어?’정은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승인.”오후엔 서준이 조용히 다가왔다.“누나...”“혹시 너도 연차 쓰려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둘이 같이...? 이건 무슨 흐름이지?’그렇다면 정은은 결단을 내렸다.“그냥 모두 이틀씩 쉬자. 다들 수고했으니까.”‘일도 일이지만, 쉬는 것도 중요하지. 그래야 오래 가지.’특히, 실험복을 벗지도 않고 앉아 있는 진일을 보며 정은은 단호히 말했다.“진일 선배는 특히 금지! 쉬는 날에 실험실 들어오면, 바로 벌금이에요!”진일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었다.“벌금...? 아니, 요즘은 연차 쓰라고 협박하는... 그런 시대인가...?”정은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그럼... 집에 좀 다녀올게. 이맘때쯤이면 우리 집은 옥수수 수확 시즌이라... 도와야 하거든, 헤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0화

    정은은 순간 멈칫했다.“조 교수님? 그분이 여길 다녀가셨어?”“네, 두 시쯤 오셨던 것 같아요. 한참이나 언니를 기다리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한 시간 넘게 앉아 계시다가 10분 전에 그냥 가셨어요.”‘10분 전...?’정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가 돌아오기 직전...’“언니, 조 교수님... 요즘 스트레스가 좀 많으신 것 같지 않아요? 혹시 다른 실험실에 새로운 과제라도 시작한 걸까요? 지난번 과제 마무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시작이라니... 진짜 무서워요, 그 열정...”정은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그런 생각이 들어?”“그게... 오늘 조 교수님 상태가 좀 이상했어요. 뭐랄까... 눈 밑 다크서클이 거의 좀비 수준...? 적어도 이틀은 연달아 밤을 새우신 것 같았어요.” “게다가 표정도 되게 딱딱하고... 그냥 누가 봐도 기분 안 좋아 보이는 그런... 음... 미간 주름으로 모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그랬구나.’정은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뭐, 늘 바쁘시잖아.”정은은 애써 담담하게 넘기려 했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복잡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민지는 입을 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숙였다.‘근데 진짜... 이상하게 느껴졌단 말이지...’‘그냥 피곤해 보인 게 아니라, 뭔가... 속이 무너진 느낌?’...한편, 재석은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몰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그리고 차를 멈춰 세우자,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정은이는 오늘 차를 가져갔었네.’‘그럼... 차를 가져갔으면서, 왜 장은혁 차를 타고 왔지?’입술이 아주 얇게 다물어졌다.표정 하나 없이, 그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 건 사람은 진욱이었다.[나, 어제 분명히 퇴근 전에 분석 리포트를 너한테 넘겼었잖아? 그런데 지금 보니 없어졌어. 어디 간 거지?] 재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기본적인 실수는 애초에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9화

    은혁은 뭔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느낌. ‘이런 게 설렘인가...?’“은혁 씨, 고마워요.”멀리서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넨 정은은 조용히 걸어가며 귀걸이를 착용했다. “정... 정은 씨!”그 순간, 정은이 멈춰 서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네? 무슨 일 있어요?”은혁은 당황해서 말이 꼬였다.“저, 그게...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식사 한번...” “아니면,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시간 되실 때... 제가 꼭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정은은 순간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식사요...? 왜요?”“그게...”은혁은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잽싸게 핑계를 떠올렸다.“아! 제 사촌 여동생이요, 예전에 정은 씨가 보내준 시험 대비 정리자료를 되게 잘 봤다고...”“꼭 밥 한번 사드리라고... 신신당부해서요! 감사 인사 겸해서요!”정은은 시선을 실험실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죄송해요. 오늘은 당장 들어가서 실험해야 해요... 그리고 요즘은 계속 이 안에서 지내느라, 언제 시간이 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은혁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정은은 살짝 웃으며 말을 끊었다.“그럼, 전 이만 들어갈게요.”말이 끝나자마자, 정은은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해 실험실로 들어갔다.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혁. 문 옆에 붙어 있는 간판을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무한 실험실?”차로 돌아온 은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무한 실험실... 설립, 소정은, 연구 성과...]‘정은 씨... 서비대 대학원을 나왔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였다고?’논문 게재 수, 영향력 지수, 직접 설립한 실험실, 정부 과제 주도...은혁은 화면을 스크롤 하며, 점점 입꼬리가 올라갔다.‘이 정도면... 그냥 똑똑한 수준이 아니네. 완전 대단하잖아...’그렇게 넋을 놓고 화면을 보고 있던 찰나, 갑작스러운 경적이 들렸다. 빵!까맣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8화

    명주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들켰네요... 좋아요, 그럼 제가 0.1% 더 양보할게요. 이게 정말 마지막 양보입니다.”정은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0.3이요. 저도 그게 최선이에요.”명주의 미소가 순간 굳었다. 정은은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딱 알맞게 비워진 컵.“그럼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연락드릴게요.”정말로 가려는 발걸음이었다.명주는 예상치 못한 정은의 단호한 태도에 급히 따라 일어났다. “아, 잠깐만요! 가격이라는 게... 원래 대화하면서 맞춰가는 거잖아요!”정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저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잡담은 별로 안 좋아해요. 0.3이 괜찮으시다면 바로 계약서 쓰시고, 아니라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요.”‘이 분위기, 진짜다... 장난 아니네, 이 사람...’명주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정은이 진짜 나갈 기세라는 걸 느끼자,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요. 그렇게 하죠.”정은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계약 성사네요.”서류는 빠르게 정리됐다.두 사람은 계약서에 사인하고, 장비 납품 일정과 설치 세부 사항까지 깔끔하게 조율했다.완벽한 비즈니스 매듭이었다.서류를 챙겨 일어서려던 정은은 명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은 씨!”“혹시...사람들한테 ‘심리 꿰뚫는 거 잘한다’는 말, 자주 듣지 않아요?”명주는 씁쓸하게 웃었다.“사실, 장비를 오늘 꼭 팔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은 씨는 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태도로 딱 버티시더라고요. 그걸 알아챘을 땐... 이미 계약이 끝나고 난 다음이었어요. 하하...” 정은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아뇨, 그런 말은 들은 적 없어요.”“거짓말.”정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대신,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뭔데요?”정은은 돌아서며 미소를 흘렸다. “먼저 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7화

    ‘아니지. 정은 언니 원래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잖아... 으앙, 괜히 비교돼!’“무슨 생각 그렇게 골똘히 해?”정은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사람이야, 쇳덩이는 아니란 뜻이지. 급하지도 않은 일정인데 밤새우는 게 뭐 그렇게 재밌겠어.” “맞아요! 근데 언니는...”“너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것뿐이야.”민지는 안도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장난스럽게 물었다.“그 ‘조금’이... 얼마나 조금인데요?”“음...”정은은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두 시간.”민지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하... 내가 묻지 말아야 할 걸 물었네.’ 바로 그때, 건너편 검사용 실험실 문이 열리며 서준이 샘플 봉투와 리포트를 들고나왔다.“서, 서준아... 언제 일어났어...?”민지는 거의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서준은 솔직하게 답했다.“6시. 왜?”민지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나만 8시까지 잤네. 이럴 거면 알람은 왜 맞췄냐고... 으악...!!!’그렇게 오전 내내, 민지는 그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르게, 집중력도 세 배로 끌어 올렸다.그리고 드디어 점심시간.민지는 실험대에서 털썩 내려와 길게 숨을 내쉬었다.같이 집중 근무에 들어간 팀원이 많으니, 정은은 미리 모두의 하루 세 끼 도시락을 예약해 두었다. 밥 짓고 반찬 할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식자재가 가득한 냉장고를 털어 요리할 사람조차 없었으니 말이다.민지는 반찬을 한 입 먹고는 입안에서 퍼지는 고급스러운 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헐, 이거 SAMES 거다... 가격 꽤 나가는데...”남진일은 뭐가 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와, 밥 진짜 맛있다. 이거 쌀도 좀 다르지 않아? 완전 길고 쫀쫀한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일은 밥을 세 그릇이나 비웠다. 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실험실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그걸 멍하니 보고 있던 민지.‘왜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 쉴 땐 좀 쉬라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6화

    장마가 시작되자, 날씨는 마치 기분이라도 있는 듯 변덕을 부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햇살 좋던 하늘은 오늘 아침부터 부슬비로 젖어 있었다.재석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채 귀가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옷이 이미 흠뻑 젖어 있었기에, 그대로 샤워실로 향했다.뜨거운 물로 몸을 데운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다가, 휑한 침대를 바라보며 손을 멈췄다.며칠 전, 침구를 몽땅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새로운 걸 깔지 않은 채로 며칠 밤을 그냥 잤다.그는 말없이 장롱에서 깨끗한 시트를 꺼내어, 이불까지 정돈했다.‘그날 정은이가 그랬지... 아버님이 장조림이랑 김치까지 챙겨주셨다고. 가지러 오라고 했었는데...’그때, 재석은 머리를 말렸고, 내복을 갈아입은 후 맞은편 정은의 집 앞으로 향했다. “정은아, 안에 있어?”“정은아...?”대답은 없었다.재석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9시였다.‘평소 같으면 실험실에서 돌아왔을 시간인데...’그 후로 두 시간. 재석은 몸은 집 안에 있었지만, 신경은 늘 현관 쪽에 쏠려 있었다.작은 인기척만 나도 바로 고개를 들어 도어락을 확인하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현관문 앞에 섰다.하지만 그 누구도, 정은은 아니었다.새벽 1시. 정은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오늘도 실험실에서 자려나...’재석은 조용히 불을 끄고 침실로 향했다.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뭐랄까... 괜히 허전하네.’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건 단순한 우연이겠거니,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실험실로 출근했다.그날 저녁. 재석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야간 러닝을 나섰다.8시부터 10시까지. 아파트 단지 아래 골목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그 사이, 정은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재석은 또다시 시간을 더 보냈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기다리는 동안, 몇몇 이웃들과 마주쳤다.“조 교수님, 오늘도 러닝하세요?”“운동을 정말 꾸준히 하시네요. 올해에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5화

    정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재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선배님, 아빠가 장조림을 잔뜩 가져왔어요. 선배님 것도 있는데, 언제 집에 계세요? 가져다드릴게요.]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반찬 봉투, 가지런히 담긴 장조림, 그리고 열무김치 세 통.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줘... 근데 요즘은 계속 실험실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휴... 병원 간 건 아니구나.’정은은 마음을 놓고는, 바로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공기 샘플 분석 결과 나왔어요.]그리고 곧바로 분석 리포트 파일도 함께 전송했다. 하지만 이번엔 곧장 답장이 오지 않았다.정은은 씻고 오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10분 전 도착한 메시지.정은은 손에 수건을 쥔 채 그대로 메시지를 열었다.[경찰 측 보고서랑 거의 일치해. 환각이나 각성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어.]‘그래... 그래서 미제 처리된 거구나.’M시 경찰은 결국 사건을 입건하지 않았다. 재석이 수아를 바로 해고하지 않고 며칠을 기다린 건, 바로 이 수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만약 정식 수사가 들어갔다면, 이수아가 마주할 건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겠지.’정은은 머리를 닦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정은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전화를 받았다.“그 약, 기존에 유통되던 제품이 아닌 것 같아요. 성분이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기기에서도 검출이 안 될 정도라면...”“제작한 사람도, 유통한 사람도 단순하지 않을 거예요. 인맥이나 자금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선배님, 조심하셔야 해요.”[응. 알겠어.]말이 끝난 후, 찰나의 정적. 전화 속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렸다.“선배님...”정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요즘... 아예 집에 안 들어가세요?”그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짧게 대답했다.[응...]‘그냥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4화

    5월 말, 이미숙은 원작 소설 영화 제작 발표회 참석차 J시에 왔다. 주말 일정이라 남편 소진헌도 함께였고, 겸사겸사 정은에게 나눠 줄 장조림 한가득과 직접 담근 김치 여섯 통도 챙겨왔다.“완전 유기농! 방부제 제로! 아, 조 교수 것도 좀 나눠줘. 혼자 다 먹지 말고.”말을 끝내기 무섭게, 소진헌은 또 바람처럼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바빴고, 떠날 땐 미련도 없었다.이번 일정은 주최 측에서 식사며 숙소까지 전부 제공했는데, 행사 장소가 이춘재 집에서 거리가 좀 있었던 탓에 소진헌 부부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래도 짬을 내어, 오후 한나절을 이춘재, 봉수진 부부와 보내며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 한 끼는 함께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딸이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사위는... 뭐, 그냥 딸을 따라다니느라 바쁜 걸로 치부하고 이해해 줬다.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두 노인도 L시로 내려갈 텐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당에 굳이 소진헌 부부를 집에 머물라고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정은은 아버지의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발밑에 놓인 장조림 봉투를 내려다봤다.‘이걸 내가 다 먹을 순 없지.’정은은 장조림 반 정도를 덜어, 다른 봉투에 담았고, 김치도 세 통 넣었다. ‘재석 선배님 오면 같이 주자.’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녀가 이미 논문 세 편을 다 읽을 때까지도 맞은편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정은은 혹시나 놓쳤나 싶어 직접 문 앞으로 가서 노크했다.“선배님, 집에 계세요?”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또 실험실에서 밤샘 중이겠지.’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요즘 정은도 실험실에서 자는 날이 부쩍 늘었고, 남진일은 아예 실험실을 제 집처럼 쓰고 있었다.민지는 심지어 진지하게 조언까지 했다.“진일 선배, 옷장 두 개 더 넣고, 정은 언니가 냄비랑 밥그릇만 좀 들고 오면 그냥 자기 집 완성인 거 알죠?”‘진짜 그렇게 될까 봐 무서울 정도라니까.’며칠 지나지 않아, 진일은 정말로 중고 옷장을 하나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