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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7시 30분, 정은은 실험실에 도착했다.다른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때 휴식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발자국 소리와 함께 재석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 모두 멍해졌다.재석은 자신이 어제 황급히 도망친 것을 생각하니 표정이 좀 부자연스러웠다.정은은 무심코 본 그 장면과 자는 척한 자신을 회상하며 마찬가지로 어색함을 느꼈다.“좋은 아침.”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정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얼른 자신의 실험대로 가서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심지어 가져온 도시락을 냉장고에 넣는 것을 잊어버렸다.“마침 탕비실에 가려던 참인데, 내가 냉장고에 넣어 줄게.”“고마워요, 선배님.”점심시간, 정은은 실험실을 떠났다.강의동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현빈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남자는 셔츠를 입었는데, 옷깃이 약간 열려 있는 데다가 양복 바지까지 더하니 나른할 뿐만 아니라 또 도도해 보였다.“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어요?” “나도 금방 도착했어.”“성 교수님에게 무슨 일 있는 거예요?”남자는 서류 하나를 꺼내 정은에게 건네주었다.“이건 성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낸 기말고사에 시험지야. 교수님은 게으르셔서 쓰고 싶지 않으니 나더러 문제를 푼 다음, 참고 답안까지 하나 더 내라고 하셨어. 그럼 대학원 학생들에게 채점하라고 맡길 수 있으니까.”성달수는 일을 하나도 하고 싶지 않았고, 전부 현빈에게 떠넘겼다.그러나 이것은 가장 지나친 일이 아니었다. “난 문제도 다 풀었고, 참고 답안까지 냈는데 글쎄 안심할 수 없다며 네가 대신 검사를 해야 한다는 거야. 내가 한 게 틀릴 수도 있다면서!”이 문제들은 모두 지난번에 정은이 낸 것이었다.성달수는 이렇게 말했다.“정은이 자신이 낸 문제를 검사하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나 정말 똑똑하다니깐!’현빈이 물었다.“그럼 교수님이 스스로 검사해 보시면 되잖아요?”성달수는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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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정은과 현빈은 돌 탁자 앞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두 사람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여자애는 표정이 엄숙했고, 남자는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은 현빈의 입가에 나타난 미소를 똑똑히 보았다. 이렇게 먼 거리를 두고도 남자가 여자를 꼬시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했다.재석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다음 순간, 그는 핸드폰을 꺼내 진욱에게 전화했다.[어, 재석아, 무슨 일이야?]“밀크티 마실래?”[어?]진욱은 핸드폰을 바라보더니 확실히 재석의 번호인 것을 확인했다.[무슨 일인데? 갑자기 무슨 밀크티야?]“마실 거야? 내가 살게. 다른 사람한테도 물어봐.”진욱은 즉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조 교수님이 밀크티를 사겠다는데, 안 마시는 사람 손 들어! 좋아, 없군. 우리 모두 마실 거야.]“그래. 내가 사올게.”[아니... 그냥 배달시키면 되잖아, 아주 편리한데. 왜 직접 가서 사려는 거니?]“마침 밖에 있어서. 무슨 밀크티 마실 건데?”[어느 가게에 갈 거야?]재석은 아무 밀크티 가게의 이름을 하나 말했다.[난 스페셜 오레오 밀크티 마실래. 우유 추가하고 타로볼 넣어줘. 설탕과 얼음은 싫어. 참, 치즈 좀 많이 넣어달라고 해줘, 고마워. 미진아...]재석은 이마를 짚었다.“이거 너무 복잡해서 기억할 수가 없어.”진욱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장난해! 재석이 넌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기억력을 갖고 있잖아! 평소에 그렇게 복잡한 실험 데이터도 한 번 보면 머릿속에 기억할 수 있는데, 이게 복잡하다니?’“이거 정은이에게 보내. 나 방금 아래층에서 정은이 봤으니 우리 같이 사러 가면 되니까.”[알았어! 이거 좋네! 내가 바로 정은이에게 보낼게...]통화를 마친 후, 진욱은 머리를 숙이고 재빨리 타자를 했다.“됐어! 발송!”그리고 음성 문자를 보냈다.“그럼 우리 정은이가 고생 좀 해줘.”순간, 진욱은 멈칫했다.‘이건 아니지! 재석이 밀크티를 사러 갔으니, 재석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이 더 편리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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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말하면서 정은은 종이와 펜을 건네주었다.“그럼 먼저 갈게요.”현빈은 억지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그래. 또 보자.”“네. 가요, 선배님. 그 밀크티 가게는 마침 우리 아파트 근처에 있어요. 이 길을 건너면 바로 도착할 거예요.”‘지난번에 심현빈 씨와 얘기할 때 갔었는데.’...“밀크티 왔어요!”미진, 진욱과 태민은 이 말을 듣고 얼른 달려왔다.“조 교수 고마워, 수고했어, 정은아!”“바쁜 두 사람에게 심부름을 시켰다니, 정말 미안해요!”진욱은 빨대를 꽂고 홀짝였다.“캬, 맛있네.”미진이 물었다.“그렇게 맛있어?”태민은 자신과 수아의 것을 가지고 웃으며 재석과 정은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그리고 수아 앞으로 달려갔다.“수아야, 이거 네 거야.”“아.”정은이 뜻밖에도 재석과 함께 밀크티를 사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마음이 내려앉더니 입맛이 사라졌다.하필 태민은 옆에서 계속 수아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수아야, 너 왜 안 마셔?”“이따 크림이 녹으면 맛이 없을 거야.”“자, 내가 빨대 꽂아줄게.”수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정말 짜증 나네요! 계속 중얼중얼거리다니! 제발 부탁하는데, 말 좀 줄이면 안 돼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자리를 떴다.태민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입도 마시지 않은 수아의 밀크티를 보았다.“아까 물어볼 땐 안 마신다고 하지 않았는데.”‘왜 사왔는데 오히려 한쪽에 던진 거지? 이건 낭비 아닌가?’아마도 태민은 영원히 수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차이였다. 이런 차이는 학력과 사상에서 생기는 게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자란 환경, 가정의 교육방식이 가져다준 천연적인 차이였다.수아가 거절하지 않은 것은 밀크티를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밀크티를 산 사람이 재석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뿐이었다.그녀는 신선한 공기 좀 마시려고 복도에 나왔다.마침 핸드폰이 울렸고 수아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어, 수아야, 지난번에 집 좀 구해달라고 했잖아, 내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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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수아야?” 태민은 다시 한번 수아를 불렀다.“왜요?” “방금 부동상에게 연락해서 집을 구하고 있었던 거야?”수아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태민이 계속 물을까 봐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뭘 그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선배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태민은 마음이 괴로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난 네 남자친구잖아, 그러니 널 관심하는 것도 당연하지.”“내 남자친구예요 아니면 내 아빠예요? 잔소리가 왜 그렇게 많아요?”“내가 너무 잔소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말 줄일게.”태민은 수아가 자신 때문에 불쾌할까 봐 무척 조심스러웠다.그가 더 이상 집을 구하는 일에 대해 추궁하지 않자, 수아는 은근히 한숨을 돌리며 말투도 누그러졌다.“이거 줘요.”그녀는 손을 내밀었다.“어?”“손에 있는 그 밀크티 말이에요, 저한테 주려고 가져온 거 아니에요?”“어, 맞아! 깜박할 뻔했네...”태민은 웃으며 말했다....또 실험실에서 일주일을 보내자, 정은은 두 조의 데이터를 완성했다.마침내 진도를 따라잡은 셈이었다.토요일, 정은은 자신에게 휴가를 주었다.“정은 씨, 오랜만이에요. 이미 날 잊은 거예요?”수민은 페라리 오픈카를 몰고 그녀의 곁에 멈추었다.창가에 손을 얹고 선글라스를 벗으니 예쁘고 고운 눈이 나타났다.바람은 수민의 부스스한 곱슬머리를 불었고, 검은색 점프슈트에 개성 있는 허리띠를 하니 시크하면서도 멋있어 보였다.정은은 조수석 문을 열고 앉으며 안전벨트를 맸다.“내가 어떻게 감히 널 잊어버리겠어? 누굴 잊어도 우리 여왕님을 잊어서는 안 되지.”수민은 하얗고 여린 정은의 얼굴을 비볐다.“이주 동안 보지 못했는데, 꿀을 먹은 거야? 말을 어쩜 이렇게 잘할까?”“꿀을 먹을 필요가 없어. 나 원래 달콤해.”“네, 네! 네가 제일 달콤하네요. 자, 이 여왕님이 맛있는 거 사줄게!”“그래!”“정은아, 넌 너무 얌전한 거 아니니? 내가 남자라면 바로 너와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거야!”‘그럼 강도겸 그 찌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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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그때 술에 취한 얘기를 꺼내자, 수민은 어색하게 코를 만졌다.“다 우리 엄마 탓이야. 굳이 그 무슨 연회에 가라고 하신 거 있지? 가 보니까 맞선 파티였던 거야.”젊은이들은 마치 물건처럼 사람들의 지적을 받았고, 마음에 들면 번호를 교환했다.백지영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걱정이 많아서 탓이었다.집안이 좋지 않으면 틀림없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도 다 겪어봐서 하는 말이다, 돈이 없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결국 불행해질 것이다.수민은 이런 말만 들으면 짜증이 났다.지난번에 돌아간 후, 그녀는 백지영과 약속을 했다. 재벌 집안 도련님을 찾아도 되지만 사람은 자기가 골라야 한다고.이 조건으로 백지영은 앞으로 더 이상 수민에게 소개팅이나 맞선 파티를 주선할 수 없었다.정은이 물었다.“너 혼자 선택한다고?”“그래, 어차피 집안 형편이 그리 나쁘지만 않으면 우리 엄마는 다 받아들일 수 있거든. 그럼 그냥 J시의 재벌 집 도련님들 중에서 고르면 되지!”“진심이야?”정은은 눈을 깜빡였다.수민은 연하남을 좋아했다. 재벌 집안의 남자들은 연하도 적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을 잘 듣고, 그녀를 달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녀를 받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출신이 우월하면 자연히 일반인보다 오만할 것이다. 모두들 재벌 집안의 도련님 아가씨였으니 그들은 절대로 자존심을 내려놓고 수민을 달래려 하지 않을 것이다.수민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당연히 골라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엄마 또 잔소리를 할걸. 하지만 난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협력 파트너를 고르는 거야.”“파트너?”“그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집안에서 일찍 결혼하라는 강요를 당하기 일수거든. 집안의 안배를 원하지 않은 이상, 서로 협력을 하는 거지.”“어떻게 협력할 건데?”“사람들 앞에서는 연기를 하고, 사람들 뒤에서는 각자들끼리 노는 거지!”이렇게 하면 집안사람들도 안심할 수 있고, 매일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엄호를 빌어 밖에서 자유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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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세 사람은 함께 레스토랑을 나섰다.“오빠, 인기가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그 늙은이들이 오빠를 둘러싸고 있으니까 꼭 팬들이 아이돌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잖아요.”“아이돌?”“그러니까 연예인이요.”재석은 담담하게 웃었다.“이익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야. 연예인은 무슨.”수민은 냄새를 맡았다.“오빠 술 마셨어요? 운전하고 온 거예요?”“술 좀 마셨지만 차는 안 갖고 왔어.”“잘됐네요, 그럼 차에 타요. 내가 오빠와 정은이 데려다줄게요.”수민의 차는 골목 앞에 세워졌고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정은과 재석은 차에서 내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달은 휘영청 밝았고 별이 보이지 않았으며 밤바람은 무척 부드러웠다.조용한 골목에서 가끔씩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재석은 실수로 쓰레기 봉투를 밟았다. 술을 마셨기 때문에 그는 걸을 때 좀 비틀거렸다.“괜찮아요?“미안, 오늘 저녁에 술 좀 많이 마셨어.”술기운 때문에 정은이 불편할까 봐 재석은 일부러 두 사람의 거리를 벌리기도 했다.미안하다는 말이 재석의 입에서 나오자, 정은은 잠시 넋을 잃었다. 그 말에 진심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전에 도겸도 늘 술을 마셨고 툭하면 취했지만, 그는 종래로 정은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래서 사람과 사람은 정말 다르구나.’전에 정은은 남자들이 모두 도겸, 선우, 동건처럼 퇴근하면 술집에 가서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아니면 소진헌처럼 성격이 부드럽고 착실한 일반인이라든가.그러다 그녀는 재석을 만났다.그는 뭇별들에 둘러싸인 달이었고, 도도한 존재였지만 오만하거나 까칠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했다.자신을 단속하는 것과 자신을 방임하는 것, 성공과 오만은 결코 필연적인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재석은 방종하고 구속받지 않은 삶을 살 자격이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더 엄밀하고 자제했다.정은은 의혹을 느꼈다.“교수님들도 접대가 필요한 거예요?”“사회에 처해 있으니, 우리도 인정이 오고 가는 것을 중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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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정은은 처음으로 한 사람을 동경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이런 복잡한 감정이 바로 강자를 숭배하는 마음이란 것을 몰랐다....수민은 두 사람을 집으로 데려다준 뒤, 다시 술집으로 찾아갔다.가는 길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술집 앞에서 차를 세우고 내리려 할 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펑!뒤에서 마세라티 한 대가 나타났는데, 마침 그녀의 차를 들이받았다.수민은 화가 났다.문을 세게 닫으며 직접 상대방의 차 앞으로 달려갔다.“야, 넌 운전할 줄도 모르는 거야?! 브레이크를 밟을 줄 몰라?! 이런 곳에서 그렇게 빨리 운전하는 것도 모자라 길까지 보지 않다니? 난 아직 안으로 주차하지도 않았는데, 넌 눈이 없는 거야 뭐야?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내 차와 충돌할 수가 있는 거냐고?!”마세라티 운전석의 문이 열리자, 한 남자가 웃으며 내려왔다.“아, 난 또 누구라고. 이런 일 가지고 왜 화를 내고 그래?”동건은 히죽거리며 수민 앞으로 걸어갔다.“허, 너였구나, 우리 고동건 도련님.”그녀는 일부러 동건을 비아냥거렸다.동건은 페라리의 상황을 체크했다.‘어... 확실히 좀 심각하네.’그러나 그는 여전히 태연하게 말했다.“에이, 큰 문제가 아니네. 방금 속도가 좀 빠른 데다가 주의하지 않아서 널 들이받은 것일 뿐이야.”“날 들이받았다고?” 수민은 눈을 부라렸다.“말 좀 똑바로 해.”“에헴! 네 차를 들이받았어, 됐지?”수민은 입을 삐죽거렸다.“내 책임이라 치자. 보험회사에게 전화해서 네 차를 수리하라고 할게.”“네 책임이라 치자고? 이거 원래 네 책임이잖아! 네가 보험회사에게 연락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내가 한동안 차를 몰지 못하게 됐잖아...”“우리 조수민 아가씨의 차고에 차가 많을 텐데? 웃기고 있네!”수민은 동건과 말하기 귀찮아서 차 키를 던졌다.“난 아직 다른 일 있으니까 너한테 맡길게.”말을 마치고 바로 술집에 들어가려고 했다.바로 이때, 한 여자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동건의 얼굴을 향해 따귀 한 대 때렸다.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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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여자는 말을 마치고 또각또각 하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동건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가 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사랑의 고통? 허, 내가 어떻게 그런 고통을 받겠어!’여자가 떠나자마자 술집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젊은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하얗고 긴 다리에 곱슬머리를 뒤로 한 그녀는 정교한 화장을 하고 있어 마치 인형과도 같았다.“동건 도련님...”그녀는 애교를 부리며 다가왔다. 남자가 거절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동건은 즉시 몸을 피했다.긴 팔을 뻗더니 오히려 수민의 허리를 안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옆에서 한창 재밌게 지켜보던 수민은 깜짝 놀랐다.동건은 고개를 들어 그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미안, 넌 너무 늦게 왔어.”여자아이는 입술을 깨물고 원망에 찬 눈빛으로 수민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투덜대며 가버렸다.“방금 날 이용한 거야?” 수민은 두 팔을 안고 냉소를 지었다.“그 더러운 손 치우지 못해?!”동건은 원래 손을 떼려고 했지만, 수민이 이렇게 말하니 오히려 그러고 싶지 않았다.“싫어, 네가 뭘 어쩔 건데?”수민은 화가 나서 되려 웃었다.“나랑 놀자 이거야? 그래.”동건은 수민의 사악한 웃음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다음 순간, 여자는 그의 팔을 잡고 한바퀴 돌렸다.“아! 아파, 아프다고!” 남자의 비명소리가 울렸다.“앞으로 계속 이럴 거야?”“아니, 내가 잘못했어! 빨리 놔줘, 내 팔이 부러질 것 같단 말이야!”수민은 눈을 부라렸다.“쫄긴...”말을 마치고 수민은 바로 힘을 풀었다. 그러나 동건을 놓아주는 대신 오히려 그의 손을 자신의 허리에 놓았다.동건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민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제 이 손 좀 치워 줄래? 고마워.”남자는 화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정말 화가 나네. 내 손을 원래의 위치에 올려놓은 다음 다시 치우라고 하다니? 받는 대로 되갚는 스타일이군.’ 마치 부모님이 넘어진 아이에게 제자리에서 얼른 일어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동건은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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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그래도 난 그 진씨 가문의 자식보다 훨씬 낫지.’수민은 자신감 넘치며 허세를 떨고 있는 동건을 바라보더니 눈빛이 좀 이상했다.“정말 나와 합작하고 싶어?”“물론이지. 그 눈빛은 또 뭐야? 누굴 무시하는 거야?”수민은 동건을 위아래로 여러 번 훑어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고씨 가문은 J시의 8대 호족 중 하나로, 진씨 가문보다 훨씬 훌륭했다.‘방금 여자가 자신의 뺨을 때려도 반격하지 않았어. 정서가 안정되고 나름 매너가 있는 셈이지. 비록 바람둥이인 데다가 스캔들도 많지만, 난 진짜 연애하고 결혼할 것도 아니잖아.’‘게다가... 바람둥이라면 나도 마찬가지야! 잘됐네! 서로 간섭할 필요가 없어! 클럽에서 부딪치면 같이 놀 수 있을지도 몰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남자가 깔끔하게 여자와 헤어진다는 거지.’‘좀 찌질하긴 하지만 이렇게 보면 절대로 집적대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앞으로 우리 갈라져도 나한테 매달릴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수민은 보면 볼수록 두 사람 아주 잘 맞다고 생각했고, 생각하면 할수록 동건이 마음에 들었다.“그래, 그럼 우리 들어가서 이야기할까?”동건은 가볍게 흥얼거렸다.“흥, 내가 두려워할 것 같아?”수민은 흐뭇하게 웃었다.“뭐해? 얼른 들어가지 않고.” 그녀는 동건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아!” 동건은 비틀거렸다.‘이 여자는 왜 툭하면 손을 쓰는 거야? 조금도 부드럽지가 않아.’...손자가 없어진 일로 서영숙은 이틀 동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딱 그 이틀뿐이었다.서연희를 챙겨줄 필요가 없고, 심지어 앞으로 다시는 그녀를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서영숙은 마음속으로 무척 기뻤다.그녀는 다시 예전처럼 모임에 나가며 한가로운 나날을 보냈다.이날, 다른 집안의 부인이 티파티를 준비했다.품질이 아주 좋은 차와 정교하고 맛있는 과자가 탁자에 놓여 있었다. 서영숙은 샤넬이 새로 출시한 기성복을 입은 채로 부드럽고 편안한 가죽 소파에 앉아 음악을 즐기면서 다른 부인들과 잡담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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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경비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빨리 이 사람들 좀 막아...”사람들이 몰려오자, 이순정은 즉시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서영숙 지금 어딨어? 나 지금 서영숙을 찾고 있으니까 당장 나오라고 해!”이순정과 아들 서철봉은 이틀전에 J시에 도착했다. 그들은 먼저 병원에 있는 연희를 보러 간 다음 병실에서 밤을 보냈다.이순정이 말했다.“호텔? 공짜로 호텔에서 지낼 수 있는 거야 뭐야? 이 병실은 크고 넓으니까 딱이네. 문제는 돈을 쓸 필요가 없잖아!”“하지만 침대가 하나밖에 없잖아, 엄마랑 철봉이는...”“에이, 우리 두 사람 같이 자면 되지.”점심을 다 먹은 철봉은 이를 쑤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평소에 나도 줄곧 엄마랑 같이 잤단 말이야. 에어컨 한 대만 켜면 되니까 돈을 엄청 절약할 수 있어.”설득할 수가 없자, 이순정과 철봉은 병실에서 묵었다.병원 규정에 따르면, VIP 병실에는 간호 침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환자의 가족은 확실히 이곳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병원 쪽에서도 뭐라 하지 않았다.어차피 돈은 도겸 쪽에서 내는 것이니, 연희는 원하는 대로 병원에 누워있을 수 있었다. 그럼 가족이 여기서 지내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이순정은 병원에서 이틀 보냈다. 이미 소독수 냄새에 습관이 되었지만, 도겸 쪽의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심지어 가정부조차 오지 않았다.“허, 숨어 있으면 될 줄 알아? 절대로 그렇게 할 순 없지!”“엄마,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 철봉은 주먹을 휘두르며 기대를 하고 있었다.“우리를 만나러 오지 않는 이상, 우리가 직접 찾아가면 되잖아!”그렇게 아침에 연희는 SNS를 통해 서영숙이 모임에 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배경은 모 호텔의 룸이었는데, 전에 서영숙이 그녀를 데리고 한 번 간 적이 있었다.연희는 즉시 호텔 주소를 이순정에게 알려주었다.모자 두 사람은 1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달려왔다.서영숙은 원래 먼 곳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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