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소란을 듣고, 룸에서 모임을 즐기고 있던 사모님들은 전부 나와서 구경을 했다.한 여자가 서영숙의 머리채를 꽉 붙잡으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어머! 이게 무슨 일이래?!’사모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이순정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는 것을 보고 더욱 신이 났다.“다들 좀 보세요. 이 여자의 아들이 내 딸을 가지고 놀았어요. 내 딸을 임신시켰는데,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며 바로 차버린 거예요! 내가 귀하게 키운 딸의 인생을 망쳐 놓고 뜻밖에도 우리를 피하고 다니다니! 지금 우리에게 돈이 없다고 무시하는 거야?”이순정은 말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였다.“다들 빨리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요. 강씨 가문이 얼마나 더러운지, 서영숙은 또 얼마나 악독한지를. 그리고 그 찌질한 아들은 책임감도 없는 남자일 뿐이에요!”철봉은 호텔 직원을 막으면서 자기 어머니의 말에 따라 핸드폰을 꺼내 서영숙을 찍기 시작했다.동시에 욕설을 퍼부었다.“정말 싸네요! 강씨 가문은 사람도 아니에요. 우리 누나를 임신시켰으면서 되려 책임을 지려 하지 않다니! 우리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 없죠!”서영숙은 그제야 반응하더니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또 자신을 잡아당기고 있는 이순정을 피해야 했기에 무척 낭패했다.“찍지 마! 네 딸이 일부러 임신한 건데, 내 아들이랑 무슨 상관이야? 난 그 아이에게 충분히 잘해 주었어. 스스로 이상한 짓을 꾸미다 아이가 없어진 거라고! 계속 이렇게 억지를 부린다면, 나, 난 바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이순정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허리를 짚으며 냉소를 지었다.“신고해. 마침 나도 경찰에게 물어보고 싶군. 도대체 누가 옳고 그른지 한번 보자고! 난 시골 사람이라서 자존심 따위를 버릴 수 있는데, 재벌 집 사모님인 당신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네.”서영숙은 멈칫했다.이 말은 그녀의 마음을 찌른 셈이었다.“경고하는데, 오늘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
[너 지금 어디야? 내가 그동안 전화를 그렇게 했는데 왜 하나도 받지 않은 거야?! 이제 네 친엄마까지 무시하는 거야?]서영숙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호통을 쳤다.도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출장 때문에 바빠서 전화 받을 시간이 없었어요.”[지금 당장 돌아와!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앞으로 날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마!]서영숙이 엄숙하게 말하자, 도겸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본가로 달려갔다.현관에 도착하자마자 꽃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도겸은 멈칫하더니 집으로 들어갔다.“어머니, 저 왔어요.”서영숙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도겸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넌 왜 그렇게 사람 보는 눈도 없는 거야?! 서연희 그 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여자의 가족들도 얼마나 건방지게 구는지. 특히 서연희의 엄마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촌놈과 다름없어!”“야비하고 천박해서 생각하기만 해도 징그럽다고! 난 서연희가 악독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런데 넌 기어코 그 여자를 원하다니. 심지어 임신까지 시켰어! 이제 그 여자가 유산했는데, 모든 죄를 우리에게...”“잠깐만요.” 도겸은 서영숙의 말을 끊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서연희가 유산을 했다고요?”“그래, 너 몰랐어?!”설령 서영숙이 자신의 아들이 나쁜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도겸도 은근히 놀랐다. 그러나 그는 곧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 아이는 원래 이 세상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없어진 것도 다행이지.’서영숙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오늘 서연희의 엄마가 모임이 열린 호텔에 찾아가서 한바탕 소란을 피웠는데, 지금 아마 온 J시에 퍼졌을 거야. 만약 네 아버지에게 이 일이 알려지면...”강구염의 그 차가운 얼굴을 떠올리자, 서영숙은 참지 못하고 몸서리를 쳤다.부부로 30여 년을 함께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남편이 두려웠다.“어차피 난 더 이상 서연희와 관련된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 네가 저지른
“기다리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가면 되잖아. 누군 네가 보고 싶은 줄 알아?” 수민은 입을 삐죽거렸다.“이런 태도로 남에게 부탁하는 거야?”동건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참자, 내가 참자. 이 여자는 태권도를 배워서 괜히 화나게 한다면 손해를 보는 건 나 자신일 뿐이야.’“화내지 마.”동건은 바로 미소를 지었다.“급한 일이라고 말했는데, 네가 천천히 나오니까 나도 마음이 좀 급했을 뿐이야.”“용건이나 말해.” 수민은 동건의 차를 힐끗 쳐다보았다.“그 뭐지... 담배 있어?”“왜?”“하나 줘.”동건은 고개를 저으며 차 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수민은 받지 않고 오히려 팔을 안고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래.” 동건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협력 상대를 찾은 게 아니라 아주 조상님을 모시고 있구나.”말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수민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동건은 처음으로 여자에게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담배를 이렇게 예쁘게 피우는 사람도 처음 봤다.“말해봐, 무슨 일이야?” 수민은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자, 점차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우리 엄마가 내가 너와 연애하고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꼭 널 데리고 집에 오라잖아. 방금 나한테 전화했는데, 널 데리고 가지 않으면 날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했어. 그때 우리 서로를 돕고 각자 노는 것은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기억하지?”“응.”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이미 너를 도와 네 어머니를 대처했으니, 이제 네가 나를 도와줄 차례야.”“그래.” 수민은 흔쾌히 대답했다.“그냥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거잖아?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 내가 도와줄게.”“정말이야?”동건은 그다지 믿지 않았다.“하지만 아주 작은 요구가 있어.”“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일단 네 요구부터 말해 봐.”“네 차 말이야, 며칠 빌려줘.” 수민은 한 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다른 한 손으로 보닛을 두드렸다.탕탕, 엄청 큰 소리가 들려왔다.동건은
“젠장!” 수민은 자신의 어깨에 걸쳐있는 손을 뿌리치며 얼른 똑바로 섰다.‘담배꽁초를 버려서 다행이야.’정은은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다물 수 있었다.“그, 수민아. 네 가방...”그녀는 정말 가방을 주러 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런 장면을 볼 줄이야?수민은 뜻밖에도 한 남자와 어깨동무를 하며 엄청 친밀해 보였다.‘그런데 이 남자의 뒷모습이 왜 그렇게 낯이 익지?’두 사람이 돌아서는 순간, 정은은 더욱 놀랐다. ‘고동건?! 그래서... 이 사람이 바로 수민이 말한 협력 상대인가?’수민은 앞으로 다가가서 정은의 손에 있는 가방을 받았다.“고마워, 정은아! 한밤중에 나와서 가방을 가져다주다니, 이제 빨리 돌아가. 너무 늦었으니 안전하지 않아. 난 여기서 네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게. 도착하면 베란다에서 손 흔들어. 그럼 나도 안심하고 갈 수 있어.”“응.”정은은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그녀는 수민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보기엔 만만하고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다 자신의 속셈이 있었다.그래서 정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친구로서 가끔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바로 가장 큰 존중이었다.수민은 약속한 대로 정말 제자리에 서 있었다. 정은이 베란다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고 떠났다.“아니... 내 차를 몰고 갔으니 날 태워줘야 하는 거 아니야?!”동건이 쫓아갔다.“방향이 다른데 어떻게 태워주라는 거야?”동건은 말을 하지 않았다.“그냥 택시 타.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데.”수민은 진심으로 제안했다.말하는 동시에 그녀는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고,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센 순간, 차는 화살처럼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갔다.남자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조수민, 너 차 다 수리됐잖아?! 왜 내 차를 빌리는 건데?! 좀 살살해, 새로 산 거라서 긁히게 하지 말고. 나도 아깝단 말이야.”그러나 동건이 고통을 참으며 빌려준 차는 다음날 도심에 나타났다. 그는 수민이
이튿날 정은은 아침 일찍 조깅을 하러 나갔다.한가해진 후, 그녀는 다시 조깅하기 시작했다. 매번 조깅을 마치면 온몸에 땀을 흘렸는데, 집에 가서 샤워를 하면 하루 종일 무척 정신이 맑았다.“좋은 아침이에요, 선배님.”“응.”재석은 이미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은을 보자, 그는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가자, 내가 같이 달려줄게.”“실험실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새 과제는 전 교수가 책임지고 있어서. 난 요즘 그다지 바쁘지 않아.”“그럼 전 교수님도 수고가 많으시네요.”정은이 농담을 했다.“원망을 하고 싶어도 할 건 해야지.”그는 정색했다.만약 진욱이 이 말을 들었다면 아예 미쳐버릴 것이다.두 사람은 공원을 따라 두 바퀴 돌았는데, 정은은 점점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재석은 이 상황을 보고 입을 열었다.“호흡을 조절하고, 달리는 리듬에 주의를 돌려. 날 따라해 봐. 숨 들이쉬고, 내뱉어.”정은은 따라했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다.“많이 좋아졌어요!”“계속 달릴 거야?”“오늘은 충분해요.”“좋아.”모처럼 만난 두 사람은 아침을 먹은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투고된 논문에 답장은 없었어?”정은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이에요.”“그것도 정상이야. 외국의 학과 잡지의 원고 심사 절차는 국내와 달리 아주 복잡해. 권위 있는 잡지라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거고.”논문을 언급하자, 정은도 기세를 몰아 고마움을 표시했다.“선배님, 실험실을 빌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렇지 않았다면 난 이 세 편의 논문을 완성하지 못했을 거예요. 임대료를 준다면, 선배님은 절대로 받지 않겠죠? 물론 이렇게 보답하는 것도 너무 촌스러운 것 같아요.”“하지만 아무것도 보답하지 않으면, 또 마음속으로 늘 미안한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인데, 선배님에게 밥 사주는 건 어때요?”재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누군가 한턱 내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그럼 뭐 먹을래요? 내가...” 정은
지금의 정은은 무척 태연했다.금방 헤어졌을 때처럼 걸핏하면 도겸을 떠올리며 쉽게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다.시간은 좋은 약이었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치유할 수 있었으니까.지금의 정은은 벌써 감정을 내려놓았다.그리고 한때 이 남자가 자신에게 준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희석되어 결국 잊혀졌다.“무슨 일로 찾아온 거죠?” 정은이 물었다.“앉아서 얘기하면 안 돼?”“우리 사이에 무슨 할 말이 더 남은 거죠?”“정은아...”“강 대표님, 내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마세요. 우린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니까.”도겸은 좌절감을 느꼈다.그리고 그는 재석을 바라보았다. 눈치가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이럴 때 자리를 비켜줬을 것이다.그러나 재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가 눈짓을 해도 모르는 척했다.도겸이 전에 미친 짓을 너무 많이 했기에 정은은 그와 단둘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별일 없으면 우리 먼저 갈게요.” 그녀는 재석을 바라보고 재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우리? 그럼 난 뭐야?” 도겸은 이를 악물며 눈은 점점 붉어졌다.포악한 기색이 용솟음쳤지만 그는 곧 이런 감정을 억눌렀다.도겸은 말투를 누그러뜨리더니 정은의 두 눈을 주시했다.“내가 온 것은 너에게 그날 너의 '축하'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야.”‘아빠가 된 날 축하한다고? 허...’정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너...”“날 용서하지 않는다면, 난 평생 아빠가 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내 아이의 엄마는 반드시 너여야만 하니까.”정은과 재석은 모두 말문이 막혔다.‘이게 말이야 방귀야?! 진짜 징그러워서 못 들어주겠네!’“그냥 병원에 가보세요.”도겸은 영문을 몰랐다.“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일찍 치료해야죠.”말을 마치자, 정은은 재석에게 빨리 가자고 눈짓했다.그녀는 1초도 도겸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빌딩 안에 들어서서야 정은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미안해요, 선배님, 그
정은은 웃으며 말했다.“에이, 손님이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되죠!”“손님이 돕고 싶다고 해서.”재석이 도와주니 음식을 준비하는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정은은 농어를 물에서 건져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물기를 닦은 다음 표면에 식용유를 발라 생선의 신선함을 유지했다.재석은 할 일이 없어서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도와줘?”“위에 찜통 좀 꺼내줄래요?”“응.”그는 키가 커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었지만, 찜통이 걸린 위치가 마침 정은의 머리 위에 있어서 꺼내기가 좀 불편했다.재석이 그것을 꺼내려면 정은의 뒤에 서야 했다.손을 뻗으면 마치 여자를 품에 안은 것 같았다.다행히 눈 깜짝할 사이에 찜통을 꺼냈기에,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이리 줘요.” 정은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재석은 찜통을 건네주었다.그 순간, 두 사람의 손이 닿았다.남자는 숨이 멎었다.정은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찜통을 솥에 올려놓고는 생선을 찌기 시작했다.“에헴! 더 도와줄 거 없어?” 재석은 손을 거두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정은은 탁자 위의 그릇을 바라보았다.“음... 식재료는 이미 다 준비되었고, 모든 양념도 다 만들었으니 선배님 먼저 나가요. 나머지는 나에게 맡기면 되니까.”낡은 아파트인 데다가 또 평수가 작기 때문에 주방이 많이 좁았다. 남자가 떠나자, 공간은 순식간에 넓어졌다.정은의 착각인지, 그녀는 주방이 많이 시원해진 것 같았다.20분 후, 정은은 가스를 끄고 앞치마를 벗으며 음식을 상에 올렸다.재석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이미 그릇과 젓가락을 차려놓았다.“주방에 국이 하나 더 있지? 내가 가져올게.” 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재석은 이미 주방으로 걸어갔다.아니나 다를까 버섯 전골이 주방에 놓여 있었다.정은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더니 다시 머리를 돌려 냉장고를 훑어보았다. 생각하다 그녀는 일어나서 맥주 두 캔을 꺼냈다.고개를 돌리자마자 그녀는 남자의 평온한 눈빛과 부딪쳤다.정
“앉아서 말해, 너무 정식적으로 나오니까 나도 좀 어색해서 그래.”정은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난 네가 만든 요리를 좋아하니까, 이번 식사가 가장 좋은 답례야.”말하면서 그는 국그릇을 들고 그녀와 가볍게 부딪쳤다.이어 치킨 하나를 집었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치킨은 바삭하고 즙이 있어 무척 맛있었다.“밖에서 이렇게 맛있는 치킨을 먹으려면 쉽지가 않거든.”정은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남은 치킨을 모두 선배님에게 맡길까요?”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환하게 웃었다.“그럼 더 좋고.”식사를 마치자, 시간은 벌써 오후 2시가 되었다.함께 주방을 정리한 다음 두 사람은 외출했다.재석은 실험실에 가야 했고 정은은 도서관에 가려 했으니 마침 동행할 수 있었다.갈림길에 이르자, 재석은 왼쪽으로 걸어갔다. 도서관은 오른쪽에 있었지만 정은은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실험실의 방향으로 걸어갔다.잠시 후, 정은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자신이 더 이상 실험실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정은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도망치듯 도서관에 들어갔다....이튿날, 정은은 실험실에 찾아갔다.물론 빈 손이 아니라 직접 만든 간식을 챙겼다.미진 그들은 도시락통에 담긴 정교한 케이크를 보며 분분히 감탄했다.“정은아, 이거 네가 만든 거야? 너무 예뻐.”“먹기가 좀 아까운데.”“이건 키티, 이건 제리... 어머! 범블비도 있다니? 손재주가 너무 좋은 거 아니니?”태민도 와서 구경했는데, 수아가 좋아하는 스텔라루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정은아, 이거 나 줘도 돼?”“네, 가져가세요.”미진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수아에게 주려고?”“네.” 태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욱은 이미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으면서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맛있네, 하나도 질리지 않아.”그는 평소에 단 음식을 별로 먹지 않았지만, 지금 오히려 이 케이크를 단숨에 다 먹었다.“그동안 선배님들의 보살핌과
더군다나 이미숙이 실종되었을 때, 이미 스물두 살이었다. 당시 어려서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 하더라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만약 정말 살아있다면 무슨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자신의 부모님에게 연락할 것이다.그런데 전화 한 통도, 문자 한 통도 없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남은 인생을 편하게 향수해야 나이에 두 사람은 이국 타향에서 분주히 뛰어다녔다.현빈은 마음이 약해졌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정원에 한 번 가보세요.”“그래! 미숙이는 정원에 있는 그네랑 자등나무를 제일 좋아했지...”현빈이 봉수진을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갈 때,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발신 번호를 확인한 후, 내색하지 않고 봉수진이 보지 못하게 손바닥으로 번호를 가렸다.“할머니, 저 전화 좀 받으러 나갈게요.”“그래.”본관을 나서자, 현빈은 그제야 수신 버튼을 눌렀다.“어머니, 무슨 일이시죠?”[왜 이제야 전화를 받는 거야?]맞은편의 이미윤은 기분이 좀 좋지 않았는데, 기다리다 짜증이 났던 것이다.[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현빈은 그녀의 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일 때문에 좀 바빴어요. 지금 밖에 있고요.”[뭐가 바쁜데? 너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어머니, 전 범인이 아니니까 저를 그렇게 심문하실 필요 없어요.”[범인?! 허--]이미윤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지금 누굴 말하는 거야? 범인은 나 아니니? 그래서 너희들 다 날 속이고 있는 거잖아? 지금 날 뭘로 보고?!]“어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그럼 넌 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귀국하셨는데, 왜 나에게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니?]현빈은 말문이 막혔다.[그럴 줄 알았어!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어머니...” 현빈은 씁쓸하게 웃었다.[너 지금 네 외할아버지 그들과 함께 있는 거지? 맞지? 나 방금 이미 본가에 갔었는데, 집사가 그러더라, 네가 두 분을 데리
이미숙은 길치였다.이렇게 큰 정원은 말할 것도 없고, 가본 적이 없는 작은 골목에 들어서도 늘 길을 잃곤 했다.“엄마, 어떻게 길을 찾으신 거예요?”이미숙은 단번에 말문이 막혔다.“나도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가면 된다는 직감을 받아서? 그런데 바로 나올 줄은 몰랐어...”소진헌도 감탄을 했다.“역시 아내를 믿어야 되는 거야!”부녀는 모두 이미숙이 운 좋게 맞혔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미숙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정교한 정원, 은폐된 작은 문, 이 모든 것은 전부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곳에 숨겨 있었던 장면이었다....같은 시간, 같은 정원에서.현빈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예전에 살던 정원에 왔다.십여 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두 노인은 본관의 인테리어가 여전히 예전과 똑같다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그리움을 드러냈다.당시 이 정원을 상납할 때, 그들은 요구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본관의 물건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미숙이가 돌아와서 이 낯선 집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워할까?’봉수진은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그들 가족이 십여 년 동안 살았던 이 곳을 똑똑히 보려고 했고, 머릿속에는 이미숙이 어렸을 때 정원에서 놀던 장면이 가득했다.“미숙아, 물고 좀 봐. 대나무 잎을 따서 누구에게 주려고?”“아빠한테 줄 거예요, 헤헤!”딸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맴돌았고, 그때의 기억도 마치 어제 금방 일어난 일인 것만 같았다.“당신,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난 자꾸만 미숙이가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아요...”봉수진은 복도 기둥을 만지며 말했다.“봐요, 미숙이가 그린 그림이 아직 남아 있잖아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가능하다면 봉수진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봉수진은 딸을 지키며 딸에게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미숙이 우리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잘 보호할 거야! 미숙아, 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동안 잘 지내고
정은은 다시 한번 자세히 훑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이미숙은 걸어가서 자신의 딸과 함께 전시판 앞에 섰다.“전쟁이 끝난 후, 이원은 이씨 가문의 후손들에게 돌려주었다고 적혔는데, 돌려준 이상 이 정원은 개인 정원인 거잖아?”‘개인의 것이니 왜 모든 관광객들이 참관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티켓을 살 필요도 없고. 마치 자선하는 것처럼 말이야. 정말 이상해!’그러나 이미숙도 깊이 연구하지 않고, 일가족은 계속 동쪽으로 걸어갔다.이 정원은 정말 컸는데, 10여 분을 걸어서야 다음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건물 옆에는 작은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대나무 숲 밖에는 청석판이 깔려 있었고, 대나무 숲 깊은 곳까지 뻗어 있었다.구불구불한 길은 신비한 느낌을 더해주었다.바람이 불자, 대나무 잎도 따라서 소리를 냈다. 바람도 대나무의 맑은 향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일가족은 안내판을 따라 앞으로 걸었고, 소진헌은 사진을 찍으면서 감탄했다.“정말 너무 예쁘네!”세 식구가 작은 정원을 지나, 좁은 문을 나가자, 눈앞이 탁 트였다. 평지의 끝에는 기품 있는 집이 하나 있었다.웅장하면서도 화려했다.한가운데에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위에는 ‘본관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안에는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 그들은 바깥에서 참관할 수밖에 없었다.이미숙은 천천히 다가가더니, 노란색 선 밖에 멈춰 섰다.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도저히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그녀는 망연히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그 익숙한 느낌이 갈수록 강렬해졌다.나... 여기에 온 적이 있는 것 같은데?’정은은 여전히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이미숙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심지어 곤혹을 드러내고 있었다.“엄마?” 그녀가 소리쳤다. “왜 그래요?”소진헌도 고개를 돌렸다.“햇볕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좀 쉴까?”이미숙은 웃으며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괜찮아요, 그냥... 여기가 너무 예뻐서 그래요. 만약
“뭐가요?” 선우는 영문을 몰랐다.“그때 정은과 헤어진 거 말이야, 내가 잘못한 거야?”“형...”도겸을 바라보는 선우의 눈빛은 많이 복잡했다.“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예요?”도겸은 말을 하지 않았다.“정은 누나가 얼마나 좋은 여자인데! 나 같으면 어디 다칠까 봐 평생 아껴줄 거예요...”말실수 했다는 것을 깨달은 선우는 즉시 말을 바꾸었다.“물론 난 누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가 만약 형이었다면, 정은 누나를 꽉 붙잡았을 거예요.”좋은 여자는 흔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손을 놓은 순간,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이끌 것이다.“그때 내 생일날 말이에요, 정은 누나는 기분 좋게 와서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는데, 형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헤어지자고 말했잖아요. 나 그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동건이 형도 그래요! 그날 후에 조용히 나에게 말했는데, 형이 조만간 후회를 할 거라고.”다만 그런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두 사람도 꽤 오랫동안 사귀었으니, 6년이 지난 지금,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다시 화해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 정은이 정말 떠났을 줄이야.“도겸이 형, 지금 심정을 잘 알겠는데, 지금 정은 누나는...”“난 이미 잘못을 깨달았고, 또 잘못을 인정했어.”도겸은 눈을 드리우며 손에 든 담배를 꽉 쥐었다.“그러나 정은은 여전히 날 용서하려 하지 않잖아... 선우야,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일을 만회할 수 있을까?”이 질문에 선우도 골치가 아팠다.‘정은 누나는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하지만 그는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슬퍼해하는 도겸을 보며 선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형, 사실 좋은 여자는 엄청 많아요. 이제 앞을 보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또 다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도겸은 가볍게 웃었다. 담배는 이미 구겨졌고,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그래, 좋은 여자는 많지만 정은은 하나밖에 없잖아.”선우는 어안이 벙벙했다.‘이
밖에 나오자, 세 사람은 모두 술을 마셨기에 각자의 전화로 대리운전을 불렀다.기다리는 사이에 선우는 갑자기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그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 했지만 라이터를 찾지 못했다.동건에게 달라고 할 때, 그는 자신의 차를 가리켰다.“뒷좌석에 있으니까 혼자 가지러 가.”선우는 차 문을 열고 라이터를 찾았다.“아, 여깄었네...”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라이터를 동건에게 돌려주었다.방금 뒷좌석에서 본 숄을 떠올리며 선우는 입가를 실룩거렸다.“형 이제 차에서 그런 짓 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동건은 영문을 몰랐다.“그런 짓? 무슨 말을 하는 거야?”“모르는 척할 거예요? 뒤에 숄이 있잖아요? 그건 여자만 입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노란색. 솔직히 말해요, 어느 여자가 남긴 거예요?”동건은 어이가 없었다.“헛소리 하지 마.”“어머, 인정 안 하는 거 좀 봐요, 이건 형 답지가 않은데.”“인정하긴 개뿔! 그거 정은 씨 어머니의 숄이야. 내일 돌려주려고 했다고. 그런데 무슨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너 야동 좀 그만 봐!”선우는 깜짝 놀랐다.“정은 누나 어머니요? 그 분의 물건이 왜 형의 차에 있는 거죠?”한쪽에 있던 도겸은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동건은 방금 입을 열려고 했는데, 선우와 도겸이 모두 궁금해하고 있는 것을 보고 헤헤 웃으며 갑자기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글쎄, 그건 당연히 이유가 있겠지...”선우는 계속 추궁했다.“무슨 이유인데요?”“아니, 왜 질문이 이렇게 많아? 너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당연히 상관이 있죠! 난 이미 오랫동안 정은 누나의 소식을 듣지 못했거든요. 지난번에 다리가 부러져 이주 넘게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정은 누나가 병문안 하러 왔었거든요. 날 그렇게 걱정하고 있으니 나도 당연히 누나를 관심해야 하지 않겠어요?”“뭐? 정은 씨가 병문안을 갔었다고?” 동건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하며 곁눈질로 줄곧 도겸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는 몸을 살짝 기울이더니, 눈썹을 치켜
동건은 얼마 전에 도겸의 회사에 가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서연희의 어머니와 양아치 같은 남동생을 떠올렸다.“아이가 없어졌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서영숙은 아마 울다 기절할지도 모른다동건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곧 그가 부른 대리도 도착했다.“저기요! 대표님! 잠시만요!”동건이 뒷좌석 차 문을 열고 앉으려 할 때, 레스토랑 지배인이 그를 불렀다.“무슨 일이에요?”“방금 저희가 룸을 청소할 때 이 숄을 발견했습니다. 그 위에 브로치가 하나 있는데, 아마도 여성분이 빠뜨린 것 같습니다...”정은네 일가는 이미 떠났기에, 지배인은 그들과 함께 밥을 먹은 동건을 보자마자 즉시 그를 불렀다.“이리 줘요, 내가 돌려주면 되니까.’“네, 감사합니다.”동근은 숄을 뒷좌석에 놓고는 내일 사람 시켜 정은에게 돌려주려 했다.“가요, 선생님.”“네.”도중에 선우에게 전화가 왔다.[형! 왜 아직도 안 온 거예요? 지금이 몇 시인데. 우리 지금 형 하나만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요 며칠 너무 신나게 놀다가 몸이 약해진 거예요?]선우가 있는 곳은 좀 시끄러웠는데, 클럽이 아니면 술집이었다.“꺼져, 이 미친 자식아! 말도 참 더럽게 하네! 딱 기다려, 곧 도착할 테니까!”동건은 주소를 물어본 다음 직접 대리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슬라이드 바에서.선우가 나와서 동건과 어깨동무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왜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거예요? 어느 여자의 품에 있다 온 건 아니겠죠?”“꺼져, 정상적인 식사를 했을 뿐이니 함부로 말하지 마.”선우는 입을 삐죽거렸다.“내가 믿을 것 같아요?”“난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니 이상한 루머 좀 퍼뜨리지 마세요.”“가짜 여자친구잖아요?” 선우는 히죽거리며 말했다.동건은 멈칫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누가 그래?”“수민 누나가요.”“언제?”선우는 잠시 생각했다.“지난 주말이었을 걸요? 테니스를 치러 갔는데, 한 남자와 아주 다정하게 옆방에서 공을 치고 있더라고요...”남자는 수민의
이미숙은 이렇게 말했다.“뭘 먹을지 모르겠으면 제일 비싼 레스토랑으로 정해. 가격은 모든 것을 대표할 순 없지만 적어도 성의를 표시할 수 있으니까.’그래서 동건은 레스토랑의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또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이미숙은 감사 인사를 해야 했으니 틀림없이 식사 자리를 비싼 곳으로 정할 것이다.금요일, 저녁.동건은 10분 앞당겨 도착했는데, 정은네 일가는 그보다 더 일찍 도착할 줄이야. 그들은 이미 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원래 정은은 수민까지 불렀지만, 그녀는 너무 바빠서 이미 연속 이틀동안 야근을 했기에 정말 시간이 없었다.“정말 안 올 거야? 고동건 씨도 있는데.”수민은 눈을 부라리더니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래서? 그 남자가 있으면 내가 가야 하는 건가?]“두 사람 지금 사귀고 있잖아. 다 먹으면 동건 씨는 또 네 기사가 되어 널 집에 데려다줄 수 있고.”[쳇, 누가 데려다 달라고 했어? 나한테 차가 없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는 가짜 커플이잖아. 넌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지금 자꾸 비아냥거릴 거야...]룸 안에서.동건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두 분도 참, 저도 간단하게 도와드렸을 뿐인데, 이렇게 특별히 밥을 사주시다니!”“당연히 그래야지.”소진헌은 웃으며 그와 악수했다.‘네가 나석천 편집장님을 정은에게 소개해준 덕분에 지금의 『7일담』이 있게 된 거야.”이미숙도 옆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부부는 동건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젊었다.소진헌은 훤칠하지만 우아한 기질을 선보이고 있었다. 옷이든 하는 말이든 모두 지식인만이 가지고 있는 기질을 내뿜었다.이미숙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파란 원피스에 긴 머리를 걷어올린 채로 소진헌의 곁에 서 있으니 침착하면서도 도도했다.그녀가 서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곧 음식이 올라왔다.소진헌은 좋은 술 한 병을 가지고 왔다. 가득 따른 후, 그는 먼저 마시며 동건을 바라보았다.“작은 은
“정말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재석은 잠시 멈칫했다.“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뭐?!” 소진헌은 갑자기 흥분해졌다.“정말이야? 고백은 했어? 왜 아직도 사귀지 않은 거야?”잇단 질문에 재석은 말문이 막혔다.‘이럴 줄 알았으면 대답하지 말걸 그랬어.’네 사람은 집 앞에서 헤어졌다.재석은 왼쪽으로 향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고, 정은네 일가족은 명이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이미숙은 웃으며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오늘 덕분에 잘 먹었어.”“에이,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저는 오늘 아주머니의 사인을 받았잖아요.”이 말 한마디에 이미숙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정은은 샤워하러 갔다.평소처럼 머리를 묶고 머리가 젖지 않도록 샤워모자를 썼다.그러나 손을 뒤로 뻗은 순간, 딱딱한 집게핀을 만진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머리가 이미 묶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정은은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음, 정말 대단한 수법이야. 그런데 왜 나만 못하는 거지? 말도 안돼,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 짜증나!’이미숙과 소진헌은 씻은 다음 이미 방으로 돌아가 누워있었다. 부부는 불을 켜고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나석천이 이때 문자를 보내왔다.[이 작가님, 축하드립니다!][『7일담』은 오늘 판매량이 또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미 몇 개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이 책의 영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받고 싶다고 했어요.][30분 전에 출판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첫 번째로 인쇄한 책은 이미 품절되었고, 공장은 밤새 인쇄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가님의 다른 배당금도 이미 도착했고요. 잠시 후에 계좌로 넣어드릴게요.][원래 전화로 말하고 싶었지만, 이 시간에 이미 주무셨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이렇게 문자를 보냈어요. 내일 전화로 말할 수도 있지만, 정말 너무 흥분해서요.]이미숙은 문자를 보고 나서 자신의 남편을 꽉 껴안았다.소진헌은 갑작스런 포옹에 흠칫 놀랐다.
“자.”정은은 목을 움직이더니 또 고개를 저었다. ‘어, 정말 안 떨어지네. 꽤 단단하게 묶었나 봐.’“어머! 아가씨 남자친구는 정말 빨리 배웠네요. 나보다 더 잘 하는 것 같아요!” 사장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재석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정은은 설명하려 했다.“제 남자친구 아닌...”그러나 사장님은 그녀에게 말을 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예전에는 시집간 여자들이 머리를 걷어올렸어요. 시집간 후, 금슬이 좋다면 남편이 직접 부인을 위해 머리를 묶어주었고요. 이게 다 의미가 있는 거예요. 우리 고향에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빗겨주며 백년해로하고 영원히 한마음을 맺는다는 뜻이 있어요.”“안타깝게도 지금 이 남자들은 머리를 묶어주긴커녕 빗으로 간단하게 빗겨주는 것도 귀찮다고 하니 정말 게으름뱅이와 다름이 없다니깐요. 하지만 아가씨 남자친구는 정말 대단해요.”사장님은 재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빨리 배울 뿐만 아니라 인내심이 있어서 직접 아가씨를 위해 머리를 말아올렸잖아요.”“이 사람은 제 남자...”“아가씨, 이 총각 꼭 소중히 여겨야 돼요. 요즘은 좋은 남자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정은은 속이 답답해졌다.‘내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순 없는 거야?’두 사람은 노점을 떠나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재석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제 할 줄 아는 거야?”“뭘요?”“머리카락을 걷어올리는 거.”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다.‘난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배우라는 거야?!’재석이 말했다.“내가 다시 한번 가르쳐줄까?”“아니요!” 정은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굳이 안 걷어올려도 되니까 그냥 마음대로 묶으면 되지.’“날 못 믿겠어?”정은은 쓴웃음을 지었다.“나 자신을 믿지 않아서 그래요.”재석은 말문이 막혔다.어차피 봐도 제대로 배울 수 없으니 차라리 포기하는 게 더 나았다.두 사람은 걷다가 멈추었고, 거리를 나갈 때에야 이미숙, 소진헌과 합류했다.“엄마...”“어? 이 집게핀은...”이미숙은 바로 정은의 걷어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