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의 모든 챕터: 챕터 261 - 챕터 270

589 챕터

제261화

강변을 따라 앞으로 걷자, 양쪽의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있었다.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도시가 갑자기 조용해져 정은은 시간과 함께 천천히 걷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침묵이 흘렀지만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척 화기애애했다.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사람 곁에 있으면 가장 편한 것 같았다.“다리에 가서 바람 좀 쐴래요?”정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잔머리를 뒤로 넘겼다.재석은 정은의 눈빛을 따라 멀리 바라보았다.“그래. 하지만 좀 먼 것 같은데.”정은은 농담을 했다.“벌써 힘이 든 거예요?”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대답했다.“그럼 시합해볼래?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말을 마치자, 재석은 자신의 말이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나이를 합치면 이미 50살이 넘었는데,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제안을 하다니.정은은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었다.“좋아요, 그럼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는지 봐요. 진 사람은 아이스크림 사기!”만약 수민이 있었다면 진작에 눈을 부라리며 야유했을 것이다.“야, 넌 머릿속엔 아이스크림밖에 없냐?”“달랑 아이스크림만 달라고 하다니. 우리 오빠 돈 엄청 많아. 비싼 걸 사달라고 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걸?”그러나 재석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럼 내가 셋 세면 바로 시작하는 거예요. 셋, 둘, 하나...”정은은 발을 빼며 달렸고, 재석은 그녀의 뒤에서 천천히 뒤쫓았다.달리는 과정에서 재석은 정은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했다.단숨에 다리로 뛰어간 정은은 힘들어서 숨을 헐떡였지만 눈빛은 무척 밝았다.잠시 후, 그녀는 웃으며 남자를 바라보았고, 작은 여우처럼 득의양양했다.“선배님, 내가 이겼어요!”재석은 이미 편의점 입구까지 걸어갔는데, 냉동고를 가리켰다.“어느 거 먹고 싶어?”“딸기 맛이면 돼요, 고마워요.”재석도 자신을 위해 아무 하나를 골랐다.그렇게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가에 나른하게 앉아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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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매번 엄마가 찾아내시면, 나와 아빠는 이를 교훈으로 삼아 돈을 더 은밀한 곳으로 숨겼거든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마치 우리 몸에 카메라라도 장착한 것처럼 아무리 찾기 어려운 곳이라도 바로 찾을 수 있었...”말하면서 정은은 재석이 이미 오랫동안 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선배님, 듣고 있어요?”그녀는 고개를 돌리자, 재석의 그윽한 눈빛과 마주쳤다.정은은 멍해졌다.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어깨까지 자랐는데, 방금 밥을 먹을 때 머리띠가 이미 느슨해졌다. 이때 밤바람이 스치자, 정은의 머리카락은 흩날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그 순간, 뜻밖에도 매혹적이었다.“응, 듣고 있어.” 남자의 목소리는 약간 잠겼다.“아주머니는 아주 똑똑하시고, 더욱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계셔.”정은은 시선을 돌렸다. 목이 좀 말라서 그녀는 침을 삼켰고, 한참 후에야 계속 말했다.“물론이죠, 우리 엄마는 미스터리 소설을 쓰시는 작가잖아요!”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추리하는 능력이었다.만약 소진헌이 정은에게 예의염치를 알게 하고,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이미숙은 정은 자신이 가장 되고 싶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그럼 선배님은요? 선배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책을 보고, 공부하고, 시험을 봤지.”“그게 다예요?”“다른 것도 있겠지만, 이미 기억이 잘 나지 않네.”오늘의 가로등 불빛이 너무 부드러워서인지, 아니면 정은의 눈빛이 너무 밝아서인지, 재석은 강 건너편의 네온등판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하소연하고 싶어졌다.“다섯 살 때였나, 난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물리에 관한 책을 하나 보았어. 이름은 이었고.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물리와 관련된 책을 접했던 거였어. 심지어 난 '물리'라는 두 글자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무척 재밌다는 것을 발견했어.”남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눈빛은 간절하고 뜨거웠다.“‘천지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려면 만물의 이치를 분석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 우주의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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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정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미진 언니, 전 교수님, 왜 저를 이렇게 보고 계시는 거예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미진과 진욱은 바로 이 말을 기다렸다!“정은아, 너와 상의할 일이 하나 있는데.”“무슨 일이죠?”미진이 말했다.“지금 내 손에 두 조의 데이터가 있거든. 양이 엄청 많아. 계산은커녕 정리하기도 어려워. 정은이 넌 프로그래밍을 잘하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생각해 줄 수 있어?”진욱은 얼른 보충했다.“우리는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라서 기껏해야 전통적인 속산법을 사용하고 있거든. 그러나 이번에 데이터 양이 정말 너무 많아서 그래. 인간은 결국 컴퓨터와 비교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에헴... 네가 우리를 도와 프로그래밍 같은 것을 써줬으면 좋겠어. 이 데이터를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으면 더 좋고.”30분 후.“미진 언니, 이 계산 링크와 운행 속도는 어떤가요? 조정해야 할 부분이 있나요?”정은이 자리를 비켜주자, 미진은 앉아서 마우스로 확인했다.원래 5일 넘게 걸려야 계산을 마칠 수 있었지만, 이런 속도라면 하루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정말 대단해! 고마워, 정은아. 정말 사랑한다! 어쩜 이렇게 대단한 거니!” 미진도 원래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정은은 그녀에게 엄청난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주었다!정은은 손을 흔들었다.“천만에요, 어려운 일도 아닌 걸요.”진욱은 얼른 다가왔다.“내가 한 번 해볼게...”재석은 수업이 끝난 후 평소대로 실험실에 들어왔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정은이 불편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억지로 의자에 앉아있었다.그리고 미진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고, 진욱은 방금 뛰어나가서 산 밀크티를 건네고 있었다.“정은아 수고했어. 내가 어깨 두드려 줄게. 우리 남편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어...”“정은아, 밀크티 좀 마셔. 설탕을 많이 넣지 않았으니 혈당에 아무 부담도 없을 거야!”재석은 영문을 몰랐다. 그의 ‘수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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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선생님은 바로 연희를 깨워 질문을 했다.연희는 수업을 아예 듣지 않아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수업하러 온 다른 사람들은 곁눈질로 연희를 바라보더니 은근히 그녀를 비웃었다.연희도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확실히 비싼 옷과 가방을 매우 좋아하지만, 소유하기만 하면 이미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을 어떻게 매치해야 더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색깔의 조합, 쿨톤과 웜톤은 어떤 색깔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연희는 전혀 들을 마음이 없었다.가까스로 수업이 끝나자, 연희는 그 누구보다도 빨리 교실을 나섰다.마침 나가면 백화점이었다. 연희는 전에 복수를 하려고 도겸의 가족카드를 긁은 적이 있었는데, 후에 도겸은 전혀 따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자신의 돈을 썼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지도.’마침 이때 연희는 또 간절히 쇼핑을 통해 마음속의 초조함을 달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브랜드 가게에 들어가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도겸은 정례적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끊임없이 신용카드 문자 알림을 받았다. 진동은 거의 끊어지지 않았다.그는 힐끗 보더니 차갑게 전원을 껐다.서영숙은 수업이 끝나는 시간을 맞추며 연희를 데리러 갔다. 그녀는 기사에게 차를 백화점으로 몰고 가라고 한 다음, 차에서 내려 교실로 가려고 했다.사실 그녀도 오고 싶지 않았다.예전처럼 사모님들과 모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고 차나 마시는 게 더 편하지 않겠는가?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내일 어디로 쇼핑을 갈지, 외국으로 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건 아닐지, 먼저 어느 명품 브랜드의 기성복을 입어보는 것이 좋을지 뿐이었다...지금처럼 연희와 뱃속의 아이를 에워싸고 돌아다녀야 하다니. 매일 제때에 연희에게 수업을 하라고 일깨워줘야 할 뿐만 아니라, 정시에 사람을 데리러 와야 하다니. 마치 사춘기 아이의 엄마처럼 고생해야 했다!그러나 감시하지 않으면 또 안 됐다. 연희가 또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뱃속의 아이도 못된 것만 배울지도 모르니까.그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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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연희는 그동안 서영숙의 비위를 맞추고 싶었지만, 자신의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더 이상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연희도 꾹 참지 않고 직접 서영숙의 말을 받아쳤다.“가방 몇 개 좀 샀다고 뭔 호들갑을 떠시는 거예요? 제가 수업하느라 고생한 자신을 위해서 사면 안 되는 거냐고요? 그 수업들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저 정말 한 글자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제가 꾹 참았기 때문이에요.”“가방 몇 개일 뿐인데, 저 더 살 거예요. 이건 아주머니 아들이 저에게 준 가족 카드예요. 도겸 씨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아주머니가 대신해서 난리를 부리시는 거죠?”서영숙은 화가 나서 혈압이 치솟았다. ‘소정은이 우리 도겸 곁에 있을 때, 종래로 비싼 옷을 사거나 명품 가방 같은 것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만날 때마다 소박하게 입었지만, 취향도 좋고 코디도 잘해서 아무리 입기 어려운 아이템도 정은이 입으면 무척 예뻤다.설령 정말 명품 가방을 메더라도, 모두 중요한 장소에 출석하기 위해서, 또는 도겸이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정은에 비하면 연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서영숙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참지 못하고 전부 말했다.연희는 듣자마자 냉소를 하며 비꼬았다.“소정은이 그렇게 좋으신 이상, 왜 돌아오라는 말조차 하시지 못하는 거죠? 아주머니와 도겸 씨도 정말 우습네요. 예전에 함께 지낼 때는 소정은이 싫다고 투덜대셨으면서. 지금 그 여자가 정작 도겸 씨와 헤어지고 멀리 숨어 있으니 오히려 그리운 거예요? 이러는 자신이 창피하지도 않나 봐요! 저는 소정은이 아니니 절대로 참고 살지 않을 거예요. 아주머니의 괴롭힘을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라고요. 기껏해야 다 같이 죽는 거죠! 지금부터 저는 더 이상 아주머니의 안배를 듣지 않을 거예요. 태교 수업이며 의상 코디 수업이며 다 때려치울 거예요. 아주머니가 원하시면 혼자를 수업을 들으시러 가든가 마음대로 하세요!”말이 끝나자 연희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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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서영숙은 화가 나서 이마에 있는 수건을 내팽개쳤다.“넌 도대체 날 보러 온 거니, 아니면 날 자극하러 온 거니? 서연희 뱃속의 아이가 우리 가문의 손자가 아니었다면, 내가 그런 여자를 거들떠볼 것 같아?”서정은 입을 삐죽거렸다.“그럼 그건 엄마 잘못이죠. 이런 여자는 보기만 해도 딴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하잖아요. 아이를 통해 우리 오빠와 결혼하고 싶은 게 뻔한데, 아마도 엄마만 그 여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할 거예요.”서정은 처음부터 연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서영숙은 이제야 반응을 하다니, 정말 둔한 사람이었다.도겸은 서영숙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회사에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그는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일로 싸우시는 거예요?”서영숙은 아들이 온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서 앉았다. 그리고 더 이상 흥얼거리지도 않더니 즉시 고자질했다.“너 마침 잘 왔다. 네 그 여자 친구는 정말 버릇도 없어! 난 그 아이가 수업을 마쳤다고 호의로 데리러 갔는데, 나에게 잘못된 시간표를 줬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나와 말대꾸를 한 거야! 사람들 보는 앞에서 내가 체면을 다 잃었구나. 너도 알잖아, 내가 혈압이 높아서 현기증이 있다는 거. 서연희 때문에 화가 나서 고질병이 도진 거야!”서정은 이 말을 듣고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엄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서연희도 어쨌든 우리 오빠가 어렵게 선택한 사람이잖아요. 여기서 트집을 잡으시다 나중에 두 사람이 화해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뒤에서 또 엄마를 뭐라고 할지도 모르잖아요.”그녀가 비아냥거리자, 도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대체 왜 소정은과 헤어진 건데? 서연희 같은 비천한 여자를 위해 소정은에게 자유를 돌려주다니. 그 결과, 난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으로 되지 못했잖아. 정말 너무 짜증 나!’도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안색은 갈수록 차가워졌다.그는 어머니의 말과 여동생의 비웃음을 상관하지 않고 사무실에 가서 의사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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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연희는 그동안 쌓은 억울함이 마침내 폭발했다.“그럼 제가 그동안 당신을 위해 바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저는 단지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할 뿐이지만, 도겸 씨는 어쩜 이리도 매정한 거죠? 저에게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다니... 대체 왜요? 당신 마음속에 여전히 소정은이 있는 거 맞죠?! 그 여자를 아직도 잊지 못한 거예요?”남자는 또박또박 대답했다.“맞아, 그래서?”이제 연기조차 하지 않았다.“저도 자신이 소정은보다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도겸 씨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란 말이에요...”연희는 불쌍하게 눈물을 흘리며 도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남자는 차갑게 뿌리쳤다.“넌 정은을 언급할 자격이 없어.”도겸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아올라 마치 인내심이 바닥난 것 같았다.“네 입으로 말하는 것은, 정은을 향한 일종의 모욕이라고.”“딱 하루만 주겠어. 가서 우리 어머니한테 직접 사과하든지 아니면 내 별장에서 꺼지든지. 알아서 해.”말이 끝나자 그는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연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도겸 씨에게 있어 눈에는 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니. 그것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장난감. 난 도겸 씨를 위해 혼전임신을 했고 학업까지 포기했어. 지금은 매일 아주머니의 성질까지 받아줘야 했고. 그런데 난 또 뭘 얻었지? 도겸 씨는 날 싫어할 뿐만 아니라 나더러 꺼지라고 하다니?!’연희는 이를 갈았다.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바쳐 가까스로 오늘 이 자리에 이르렀는데. 재벌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이 고비에서 내가 어떻게 이대로 포기할 수 있겠어?’여기까지 생각하자 연희는 눈물 자국을 지우며 두 손으로 배를 감쌌다.아이가 있는 한 그녀는 지지 않을 것이다....도겸은 차에 앉아 한동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병원에는 의료진이 있어 서영숙은 최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별장은 연희가 있어서 그는 1초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회사에 가자니...도겸은 이미 이틀 연속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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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현빈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대범하게 인정했다.“요즘 술을 끊었으니 확실히 못 마셔”도겸은 현빈을 자극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말문이 막혔다.“심현빈, 네가 술을 끊었다고? 넌 그러고도 남자야?”“첫째, 술을 마시는 것은 이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둘째, 내가 남자인지 아닌지는 장님만 아니면 다 알아볼 수 있을 텐데.”도겸은 냉소를 지었다.“넌 정은이에게 고백할 때도 이렇게 도리를 따지는 거야?”“그럴 리가.” 현빈은 검지를 흔들었다.“정은 씨는 도리를 잘 알고 있어서 내가 말할 필요가 없지.”“허, 그럼 넌 무슨 말을 하는데?”“경력, 에피소드, 전문지식, 시와 책, 또는 인생철학. 심지어 애정 담긴 말을 할 대도 있어. 말할 수 있는게 너무 많아서 일시에 다 열거할 수가 없네.”도겸은 목이 메었다.그러나 현빈은 계속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듣고 싶어? 다음에 시간 내서 너와 얘기해줘?”말로 이길 수 없었던 도겸은 묵묵히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데킬라 두 잔을 마시자, 도겸은 약간 술에 취했다. 넥타이를 풀더니 그는 또 맨 위에 있는 두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현빈은 도겸이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위병 다 나았어?”“아니.”“허, 정은 씨가 떠났으니 이제 아무도 널 상관하지 않는다고 아예 환장하고 있구나?”정은을 언급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이 말을 꺼내자 도겸은 코끝이 찡해졌다.그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거라고 생각했다.이때 도겸은 갑자기 나지막이 말했다.“12박스.”“그게 무슨 뜻이야?”도겸은 고개를 숙이고 있어 현빈은 지금 그의 표정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정은이 떠난 후에 난 위약을 12박스나 먹었어.”현빈은 눈빛이 어두워졌다.“넌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자신을 죽도록 들볶으면 정은 씨가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너한테로 다시 돌아올 것 같냐고?”“왜 그럴 수 없는데?!” 도겸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허,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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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그러니 정은 씨와 같은 여자는 아무리 널 사랑해도 결국 떠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지.”‘6년이라...’현빈은 이 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꼈다.한때 눈부시게 빛났던 여자아이가 사랑에 눈이 먼 꼭두각시 인형이 되었으니까.현빈은 한때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하마터면 포기할 뻔했다.다행히 정은은 결국 도겸에게서 떠나며 본래의 자신을 되찾았다.“그 6년 동안 정은 씨는 너에게 수없이 많은 기회를 주었는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널 사랑했는데...”현빈은 정말 질투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아쉽게도 넌 결국 정은 씨를 실망시켰어. 그래서 정은 씨는 그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고 망설임없이 떠났던 거야.”이게 진정한 소정은이었다!사랑할 때는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뜨겁게 사랑을 했고, 사랑하지 않아도 멋지게 포기하며 혼자 나아갈 수 있었다.이전에 동건은 정은을 ‘사랑에 미친 여자’, ‘정신이 나간 여자’라고 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또 그녀가 너무 독하고 너무 이기적이라며 원망을 했다.그러나 현빈은 정은이 결코 남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사랑은 뜨겁게, 포기는 과감하게.“정은 씨가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 네 위가 어떤지, 너라는 사람이 어떤지는 더 이상 정은 씨의 관심사가 아니야.”도겸은 그 말을 듣고 몸을 약간 비틀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그는 입을 벌렸지만, 말투는 더 이상 전처럼 그렇게 매섭지 않았다.“넌... 넌 또 정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데?”현빈이 웃었다.“여자는 한 권의 책과 같아. 누가 감히 자신이 이 책을 낱낱이 훑었다고 말할 수 있겠어? 그리고 나이와 경력에 따라 같은 책을 펼치면 보는 것과 체득하는 것이 모두 다를 거야. 난 짧은 시간 내에 정은 씨의 마음을 얻을 필요가 없어. 난 단지 평생 정은 씨를 마음속에 품고, 나와 함께 있어주기를 바랄 뿐이거든. 그래서, 네 질문에 향한 나의 대답은 아주 간단해. 난 정은 씨에 대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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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술집을 떠난 도겸은 별장으로 돌아왔다.연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문을 여는 소리에 바로 나와서 맞이했다.도겸은 그녀를 무시하며 곧장 위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연희는 화가 나서 입술을 세게 물었다.안방에서.도겸은 큰 침대에 누웠다.전에 두 사람은 이 침대에서 뒹굴었다. 이 순간, 서로의 몸과 얽히고설킨 화면들이 하나하나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숨을 쉬는 사이, 도겸의 눈빛은 어느새 욕망으로 물들었다.그는 낮은 소리로 욕을 하더니 바로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샤워했다.오늘 밤 두 잔밖에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도겸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빈이 한 그 말들은 더욱 끊임없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사랑한다면 왜 정은 씨와 헤어진 거야?”“넌 단지 6년이란 시간으로 정은 씨를 잃어버렸을 뿐이야.”“너는 말끝마다 정은 씨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전에 한 모든 일은 정은 씨를 짓밟는 것과 다름없었어.”“그러니 정은 씨와 같은 여자는 아무리 널 사랑해도 결국 떠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지.”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못처럼 도겸의 가슴에 박혔다....이른 아침, 도겸은 일찍 일어나 양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회사에 가려고 했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식탁 위에 이미 아침이 차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왕미자가 만든 것인 줄 알았지만, 고개를 돌리자 연희가 웃음을 지으며 주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손에 심지어 만두 한 접시를 들고 있었다.“도겸 씨, 일어나셨어요? 저 오늘 죽도 끓였고 만두도 좀 쪘는데. 좀 드시지 그래요?”“필요 없어.” 도겸은 표정이 차가웠다.연희는 얼른 접시를 내려놓고 도겸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럼... 두유라도 좀 마실래요? 단 거 싫어하시죠? 그래서 설탕 하나도 안 넣었는데...”연희는 말투가 자연스러웠고 태도까지 부드러웠다. 마치 어제 두 사람이 전혀 다투지 않은 것 같았다.도겸은 식탁 위의 아침을 힐끗 보더니, 눈빛은 또다시 연희의 얼굴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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