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이건 승낙할 수 없어요.”나는 단번에 거절했다. 내가 따로 창업하려는 걸 사장님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으니까.난 비록 위대하고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양심을 속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무시를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선이 존대한다. 만약 내가 오늘 양심을 저버리고 이 일을 승낙하면 단기간 내에 부자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계속 시달릴 거다.사장님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내가 왜 수호 씨를 이렇게 믿는지 알아?”나는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사장님이 말했다.“수호 씨는 절대 쓸데없는 욕심을 안 부려서 믿는 거야. 난 20년 넘게 화인당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 봤어. 가정 형편이 안 좋은 사람도 만나 보고, 잘 나가다가 크게 실패한 사람도 만나보고, 가정 형편이 좋은 사람도 만나 봤어.”“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모두 성실히 일에 임했지만, 눈앞에 이익이 주어지니 유혹을 이기지 못하더라고. 하지만 수호 씨는 달랐어. 수호 씨는 쓸데없는 욕심에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야. 나도 신중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야.”사장님은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사실 나는 절대 그 정도가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사장님 뒤를 잇지 않으면 강북 약재 시장은 분명 엉망이 되어버릴 거다. 그러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당연히 강북 주민들이 될 거다.나는 단 한 번도 정 사장님처럼 대단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단지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이태웅한테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사장님이 여러 번 부탁하는데 계속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마지못해 동의했다.“이 명단은 잘 보관해야 해. 절대 가짜 약재를 만드는 사람들 손에 넘어가면 안 돼.”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종이 쪼가리 한 장이 천근처럼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어깨에 짊어진 짐도 더 무거워졌다.나는 먼저 약속을 하고 사장님 건강이 회복되면 명단을 다시 돌려줄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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