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는데 딱 봐도 제대로 휴식을 못 한 모양새였다.“괜찮아요. 내가 할게요. 요즘 좀 바빠서 머리가 복잡한 것뿐이에요. 수호 씨는 괜찮아요?”사모님이 나를 보는 눈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심지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전의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사모님 손에서 약재를 빼앗아 들었다.“괜찮아요.”“정말이에요? 임천호가 강북에 왔다고 들었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그걸 어떻게 아세요?”“어떻게 알긴요. 여정한테서 들었지. 임천호가 여기에 직접 온 것만 봐도 여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어요. 수호 씨가 이번에 고비를 넘긴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예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운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저도 이런 게 싫은데 매번 소여정 씨가 저를 찾아와서 저도 할 수 없어요.”“여정이 왜 자꾸 수호 씨를 찾아오는지 알아요?”‘날 놀리려는 것밖에 더 있을까?’물론 나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그때 사모님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보아하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나 보네요. 여정은 아직 기억하던데.”사모님의 말에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이죠? 저랑 소여정 씨가 예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거예요?”“나도 상세한 건 몰라요. 여정이 말로는 임천호를 만나기 전에 수호 씨한테 도움받은 적이 있다더라고요. 그것도 여정이 연 파티에서. 전에 수호 씨 형과 형수랑 함께 파티에 참석한 적 있죠? 그 파티에서 수호 씨 형이 수호 씨를 여정한테 밀어줬고요. 그때부터 여정은 수호 씨를 알아봤대요. 수호 씨는 잊은 것 같았지만.”‘내가 전에 소여정을 만난 적이 있다고? 게다가 도와주기까지 했다고?’소여정처럼 예쁜 여자를 한번 만나면 절대 잊을 리 없는데, 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그러자 사모님이 말을 이었다.“너무 오래전이라 기억 못
“그래도 받을 수 없어요.”“4억인데 정말 안 받는다고요? 이 돈이면 차와 집을 살 수 있고 수호 씨가 그리워하는 애교 누나와 결혼도 할 수 있을 텐데요.”사모님도 본인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단호하게 거절하니 시험해 보고 싶었다.다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전 조력해서 제 실력으로 애교 누나와 결혼할 거예요.”비록 4억을 이대로 날려 보내는 건 아쉬웠지만 난 그 카드를 받을 수 없었다.내가 그 돈을 받은 걸 임천호가 알아 버리면 난 아마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다.사실 난 위대하게 소신을 지키려는 게 아니었다. 지름길이 있다면 아마 누구라도 그 길을 선택할 거다. 하지만 임천호는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기에 더 이상 소여정과 엮이지 않는 게 나로서는 최선이었다.사모님은 내 단호한 태도에 카드를 도로 집어넣었다.“알았어요. 그럼 여정한테는 이대로 전할게요.”“전 사장님 상태 체크해 볼게요.”나는 그 말을 남기고는 얼른 침실로 들어갔다. 무엇보다 거실에 계속 남아 있으면 후회할까 봐 겁났다.4억이라는 돈은 얼마나 벌어야 그 정도를 벌 수 있을지 가늠이 가지 않는 액수다.내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모님은 베란다로 가서 소여정에게 전화했다.“네가 말한 대로 얘기했어.”전화 건너편에서 소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뭐래?]“뭐라긴, 네가 지어낸 얘기인데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사실 나는 소여정과 만난 적이 없다. 내가 소여정을 도와줬던 적은 더더욱 없고. 이건 단지 소여정이 나를 속이기 위해 한 거짓말이었다. 물론 소여정이 이런 거짓말을 한 건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나를 지켜주기 위해서였으니까.소여정은 평생 임천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임천호는 소유욕이 강한 남자라 그녀가 다른 이성과 만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본인이 계속 나와 엮이면 분명 나한테 피해가 올 게 뻔했고 임천호가 나를 또 찾아오는 것도 걱정
[됐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소여정은 더 이상 이 주제로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당사자로서 느끼는 무력감과 슬픔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거고, 그렇다고 소여정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이건 소여정 본인이 선택한 길이기에 기어서라도 가야 했다.사모님은 얘기를 더 하려고 했지만 소여정은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어버렸다.결국 사모님은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윤지은은 소여정이 임천호 정부로 지내는 게 파렴치하고 뻔뻔한 행동이라고 했지만, 소여정이 소씨 가문을 위해 마지못해 이런 선택을 한 걸 아는 건 사모님뿐이었다.더군다나 이 불구덩이에 뛰어든 이상 다시 빠져나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그 쓰라림을 아는 건 당사자뿐이다....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탕약을 준비해 사장님 방으로 향했다.그동안 약욕으로 몸조리를 한 덕분에 사장님의 혈색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얼굴에 홍조가 돌았고 입맛도 다시 돌아왔다.나는 방금 준비한 탕약을 사장님에게 건네며 말했다.“사장님, 축하드려요.”“뭘 축하한다는 거야?”“약욕의 효능이 꽤 좋아 보여요. 맥을 짚어 봤는데 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여기에 봉섭 할아버지 치료까지 더하면 사장님 병도 억제될 수 있을 거예요.”사장님은 웃으며 약이 담긴 그릇을 받아 들었다.“아직 치료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희망을 줬다가 나주에 실망하면 어쩌려고 그래?”“분명 좋아질 거예요. 전 봉섭 할아버지를 믿어요.”사실 나도 확신이 드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환자에게 희망을 줘야지 기죽이면 안 된다.사장님은 순순히 탕약을 마시더니 말했다.“뭐가 됐든 수호 씨한테 참 고마워. 수호 씨가 아니었다면 난 이미...”“사장님, 허튼 생각 하지 마세요. 사장님은 몸조리에만 전념해요. 내일이면 약욕도 끝날 거라 제가 봉섭 할아버지를 다시 모셔올게요.”나는 사장님이 불길한 얘기를 하는 걸 막
“사장님, 이건 승낙할 수 없어요.”나는 단번에 거절했다. 내가 따로 창업하려는 걸 사장님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으니까.난 비록 위대하고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양심을 속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무시를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선이 존대한다. 만약 내가 오늘 양심을 저버리고 이 일을 승낙하면 단기간 내에 부자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계속 시달릴 거다.사장님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내가 왜 수호 씨를 이렇게 믿는지 알아?”나는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사장님이 말했다.“수호 씨는 절대 쓸데없는 욕심을 안 부려서 믿는 거야. 난 20년 넘게 화인당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 봤어. 가정 형편이 안 좋은 사람도 만나 보고, 잘 나가다가 크게 실패한 사람도 만나보고, 가정 형편이 좋은 사람도 만나 봤어.”“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모두 성실히 일에 임했지만, 눈앞에 이익이 주어지니 유혹을 이기지 못하더라고. 하지만 수호 씨는 달랐어. 수호 씨는 쓸데없는 욕심에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야. 나도 신중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야.”사장님은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사실 나는 절대 그 정도가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사장님 뒤를 잇지 않으면 강북 약재 시장은 분명 엉망이 되어버릴 거다. 그러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당연히 강북 주민들이 될 거다.나는 단 한 번도 정 사장님처럼 대단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단지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이태웅한테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사장님이 여러 번 부탁하는데 계속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마지못해 동의했다.“이 명단은 잘 보관해야 해. 절대 가짜 약재를 만드는 사람들 손에 넘어가면 안 돼.”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종이 쪼가리 한 장이 천근처럼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어깨에 짊어진 짐도 더 무거워졌다.나는 먼저 약속을 하고 사장님 건강이 회복되면 명단을 다시 돌려줄 계획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약을 분리 수거하고 주방과 식탁을 정리하고 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갑자기 노동했더니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고 심지어는 피가 흘러나온 느낌이었다.서둘러 옷을 벗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피가 흘러나왔다. 다행히 심한 정도는 아니라 나는 혼자 처리할 생각이었다.그때 마침 화장실을 나선 사모님이 내 어깨의 상처를 보고 다급히 물었다.더 이상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정태곤한테 죽을뻔한 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참 명도 기네요. 정태곤 손에서 살아 돌아오다니. 여정 말로는 정태곤이 해외에서 용병으로 일하면서 정말 사람을 죽인 적이 있대요.”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정태곤의 눈빛을 볼 때마다 섬뜩한 게 사람을 죽인 적 있는 것 같다고 여겼는데 그 짐작이 진짜였을 줄이야.“앉아 봐요. 내가 치료해 줄게요.”“네? 아니에요. 이따 가게에 가서 치료하면 돼요.”“앉으라면 앉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사모님이 갑자기 화를 내는 모습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사모님이 이러는 모습은 매우 드물었기에 나는 순순히 의자 위에 앉았다.그러자 사모님은 약상자를 챙겨 오더니 나더러 티셔츠를 벗으라고 명령했다. 나는 사모님 요구에 따라 순순히 옷을 벗었다.사모님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상반신을 본 순간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다만 나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사모님이 슬립 차림이라 고개를 들었다가 보지 말아야 할 거라도 볼까 봐 두려웠으니까. 더욱이 나는 의자에 앉고 사모님은 서 계셔서 보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다만 내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바람에 사모님의 뽀얗고 긴 다리가 내 눈에 들어왔다.사모님의 피부는 하얗고 맑았는데 살짝 붉은 빛을 띠고 있어 매우 여려 보였다. 심지어 발뒤꿈치마저 핑크빛이 돌아 부드러워 보였다.그런 사모님 곁에 있으니 가뜩이나 거친 내 피부가 더 거칠어 보였다. 나는 이렇게 몰래 훔쳐보는
‘설마 그날 밤 상대가 유미 사모님인가?’‘아니야. 그럴 리 없어. 사모님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나는 즉시 마음속 생각을 부인했다.다만 나와 함께 용천 호텔에 간 누나들과 모두 잔 적이 있는데 그중 누구도 나비 문신이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그런데 사모님 몸에 나비 문신이 있었다니.나는 그쪽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이 자꾸만 그쪽으로 흘러갔다.만약 그 상대가 정말 사모님이라면 나는 사장님께 죄를 지은 거나 다름없다.‘아니야. 하정현 씨일 수도 있잖아.’그날 저녁 용천 호텔에 있었던 여자는 총 여섯 명인데, 유미 사모님 외에 하정현과 자보지 못했다. 게다가 하정현을 마사지해 줄 때 항상 가슴만 해준 터라 허리 아래를 본 적이 없다.‘언제 한 번 시간 내서 정현 씨 몸에 나비 문신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나는 애써 이쪽으로 생각을 돌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심장이 벌렁거렸다.내가 한창 헛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모님이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 사모님을 보니 내 추측이 너무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모님처럼 우아하고 점잖은 분은 절대 술에 취해 성관계를 할 사람이 아니다.더욱이 난 그 당시 술에 취해 내가 본 게 나비 문신인지 아니면 진짜 나비가 날아들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나는 절대 터무니없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얼마 뒤, 사모님은 상처 소독을 끝낸 뒤 말했다.“전에 처방해 준 약 고마워요. 그걸 마셨더니 요즘 많이 좋아졌어요.”사모님은 말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넋이 나가 더 이상 사장님 댁에 있을 수 없었다. 결국 화인당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남긴 뒤 집을 나섰다.집에서 내려와 차에 올라탄지 한참이 지났지만 내 마음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하정현에게 문자를 보내 몸에 나비 문신이 있는지 확인했다.하정현의 답장은 매우 빨랐다.[그건 왜 갑자기 묻는데?][그냥 좀 궁금해서요. 있는지 없는지만 대답해 줘요.]나는 당
한참 동안 기다리니 주해진과 김진호가 나타났다.그동안 늘 거만하던 김진호는 기세가 한풀 꺾여 줄곧 고개를 숙인 채 주해진 뒤를 따랐다.우리는 서로 소개를 한 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주해진이 건넨 계약서를 확인해 보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때문에 나는 형빈도 함께 하고 싶어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그 말에 주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다섯씩이나? 주주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형빈은 주주에만 가입할 뿐이지 경영에는 참가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천수당의 경영과 관리는 나와 민우한테 맡기기로 했잖아. 두 사람 목적은 돈 버는 거 아니야? 돈만 벌게 해주면 되잖아.”그때 계속 침묵하던 김진호가 입을 열었다.“형, 나도 한의학 지식이 있고 의술을 아니 나도 같이 경영에 참여하는 건 어때요?”나는 바로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너도 경영에 참여한다면 협력은 없던 일로 해.”김진호는 워낙 우리와 의견이 맞지 않아 만약 그도 경영에 참여하면 앞으로 분명 문제가 끊이지 않을 거다.주해진은 급히 김진호의 말을 잘랐다.“넌 끼어들지 마. 네가 경영에 참여하면 내가 네 뒷수습하고 다녀야 할 게 뻔해.”“그리고 수호 동생, 파트너 더 끌어들이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지분은 본인들이 알아서 나눠. 우리 지분은 나눠줄 수 없으니까.”“오케이.”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그러자 주해진은 이내 싱글벙글 웃었다.“그렇다면 문제없네. 사인해.”주해진의 목적은 단지 돈 버는 거였기에 본인 이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바로 동의했다. 이번 협상은 매우 순조로웠다. 우리는 계약서에 사인한 뒤 바로 현장에서 돈을 이체했다.이후의 식사는 말할 것도 없이 화기애애했다. 어쨌든 이제 운명 공동체가 되었으니 천수당을 일으켜 세워 잘 운영해 그 이익을 챙기면 그만이었으니.그날 밤, 현성은 또 술김에 우리 집에서 지내겠다고 고집부렸다. 결국 나는 그 뒤처리를 민우한테 맡겼다. 나는 오늘 밤 사장님 댁에 가야 했으니까.윤미화는 매일 본인 일로 바쁜 터라 사모
나는 그날 나와 몸을 섞었던 사람이 사모님일까 봐 두려워 생각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내가 아무리 사모님처럼 우아하고 고귀한 분위기의 미녀를 좋아한다지만, 그날 밤 여인이 사모님이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나는 사장님께 미안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시선을 거두고 사장님의 상태를 확인한 뒤 곧장 욕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절대 내가 생각한 게 아니기를 기도했다.오늘 밤 사모님 몸매를 본 뒤로 나는 더 조마조마하고 심란해졌다. 심지어 내 추측이 들어맞을까 봐 사모님과 접촉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하지만 마음속 한편으로는 아닐 거라고 요행을 바랐다. 나는 그날 밤 사모님의 반응을 떠올렸다. 내 알몸을 본 사모님은 무척 부끄러워했었다. 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사장님을 제외한 이성의 몸을 본 적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거고. 만약 사모님이 아니면 하정현일 가능성밖에 없다. 다만 하정현은 용천 호텔에서 지내는 동안 반응이 늘 똑같았고 이상할 게 없었다.나는 결국 내 추측을 다시 한번 뒤엎었다.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지는 기분이었다.두 사람 모두 가능성 있을 것 같다가도 자세히 생각하면 모두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면 그날 밤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닐까? 그게 그저 꿈이었을지도 모르잖아?’‘하.’어쩜 생각할수록 더 심란해지기만 하는 건지.’“수호 씨.”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사모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나는 너무 당황해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났다.“사모님, 무슨 일이세요?”사모님의 얼굴은 발그스름해서 마치 잘 익은 복숭아 같았다. 하지만 시선이 내 정중앙에 닿은 숙나 부끄러운 듯 이내 고개를 돌렸다.“뭐, 뭐 했던 거예요?”고개를 숙여 확인한 순간 나는 너무 난감했다.방금 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바람에 내 그곳은 어느새 발딱 서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걸 사모님께 들키다니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나는 너무 당황해 다급히 해명했다.“오해하지 마세요. 저 나쁜 짓한
“한 번 더 해요. 한 번 더...”이다연은 신이 나서 점점 게임에 몰입했다.하지만 나는 바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늦었어. 이제 자.”“아직 12시도 안 됐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요?”“너 생활 패턴이 너무 불규칙적이야. 계속 이러면 호르몬 분비에 영향 줄 거야.”나는 말하면서 이다연의 맥을 짚었다.“이것 봐, 속에 열이 많잖아. 어쩐지 얼굴에 여드름이 많고 성격이 급하다 했네.”이다연은 내 손을 탁 쳐냈다.“오빠도 왜 우리 아빠랑 똑같아요? 잔소리 대마왕, 짜증 나!”나는 이제야 이다연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다연은 몸에 화가 많아 다른 사람이 저를 귀찮게 하는 걸 싫어하고 조금만 잔소리해도 화내고 짜증 낸다.“이거 병이야. 알아 몰라?”이 다연은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병 있는 건 오빠겠죠. 우리 아빠도 의사거든요. 내가 병이 있는지 없는지 아빠가 모르겠어요?”“네가 이 선생님과 말도 안 섞으려 하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 네가 그럴 기회를 줬어?”이다연은 할 말이 없었는지 조용해졌다.나는 이내 말투를 누그러뜨렸다.“하나만 묻자. 너 이런 증상 몇 년이야?”“이런 증상이라니요?”“화가 많고 인내심이 없고 자꾸만 짜증 내고, 사람을 만났다 하면 싸우고 소통하기 싫어하는 거 말이야. 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지?”이다연은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어떻게 알았어요? 아빠한테서 들었어요?”“이 선생님은 그런 말씀 없으셨어. 이건 네 맥을 짚어보고 안 거야.”“못 믿겠어요. 지금 내 문제를 알아낸 건 둘째 치고 예전에 어땠는지까지 안다고요?”이다연은 눈을 부라렸다.나는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네가 예전에 어땠는지 난 확실히 몰라. 하지만 네 부모님이 저렇게 좋은 분들이신데, 네가 두 분 자식이니 인성이 나쁘지는 않겠다 생각한 거지.”“게다가 네 맥을 짚어봤는데, 너 몸에 문제 많아. 지금 네가 이러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이다연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그 모습에 나는
윤지은은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 지금 모습 고릴라 같은 거 알아?”“일부러 그런 거예요. 이러지 않으면 지은 씨가 안 웃을 거잖아요.”윤지은이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윤지은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일은 상관 마.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정말이에요? 절대 무리하지 마요. 두 사람 지난번에 싸웠을 때, 지은 씨가 잔뜩 취해서 내 앞에서 술주정했잖아요.”윤지은은 손을 뻗어 내 다리를 꼬집었다.“그건 옛날 일이야. 왜 또 그 자식 얘기는 꺼내는 건데? 그때는 내가 어리석었어. 그 자식과 나눈 게 사랑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제는 알았어. 그 자식은 그냥 쓰레기야. 그런 자식 때문에 눈물 흘릴 가치가 없어.”나는 윤지은이 꼬집은 곳을 문지르며 위로했다.“맞아요. 내 눈에도 보여요. 지은 씨 많이 성장했어요. 하지만 우선 나를 좀 놔주면 안 돼요? 아파요.”윤지은은 그제야 손을 풀었다.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윤미화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젠장.’윤미화는 뭔가 오해한 게 틀림없었다.윤미화는 안 그래도 나와 윤지은 사이에 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방금 우리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그 추측을 확신했다.나는 작은 소리로 윤지은에게 귀띔했다.“앞으로 저기에 앉은 윤미화 사장님을 만나면 조심해요. 저 사장님이 우리 사이를 의심하고 있어요.”“의심하는 게 뭐 어때서? 증거도 없는데 무서워할 거 뭐 있어?”윤지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나야 괜찮죠. 난 지은 씨가 안 괜찮아할까 봐 걱정했던 거예요. 지은 씨가 괜찮다면 난 상관없어요.”그렇다면 나도 이제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윤지은은 또다시 나를 노려보았다.“밥 먹으면서 좀 조용할 수 없어? 말 참 많네.”‘흠. 또 내가 눈치 없이 굴었네.’식사 자리는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나는 이 선생님 가족을 집에 데려다주려고 민우와 현성한테 다른 사람을 부탁했다.이 선생님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다연은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다이아라고요? 정말이에요?”나는 직접 핸드폰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러자 이다연은 바로 관심을 가졌다.“오빠는 어떤 캐릭터 좋아해요?”“다 돼. 넌 어떤 거 좋아하는데? 내가 서포트줄게.”“난 아리요. 마법사.”“그럼 내가 유미할게. 서포터. 어때?”“좋아요. 해 봐요.”이다연은 말하면서 캐릭터를 골랐다.하지만 나는 서둘러 고르지 않고 입을 열었다.“이거 끝나면 안에서 식사도 끝나겠어. 우리도 먼저 들어가서 밥부터 먹자. 그러고 나서 같이 해줄게.”이다연은 나를 꿰뚫어 볼 듯 훑어봤다.“지금 장난해요?”“나 다이아야. 골드인 너랑 뭐 하러 장난해? 뭐든 정도가 있어야지. 너처럼 일만 있었다 하면 쌩 나가버리면 네 부모님이 난처해하셔. 이 오빠 체면 살려준다 생각하고 같이 들어가자. 약속할게. 밥 다 먹으면 같이 놀아줄게.”이다연은 화가 난 듯 콧방귀를 뀌었다.“됐어요. 딱 보면 아빠 대신 나 설득하러 왔네. 가요.”“그래. 그럼 말하지 않을게. 너 혼자 여기서 놀아. 너처럼 그렇게 놀면 백날 놀아 봐야 레벨이 안 오를 거야.”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안으로 들어갔다.그 말에 이다연은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이다연은 평소 게임을 즐기지만 실력은 확실히 부족해 골드 이상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때문에 내가 데리고 놀아 주기를 무척 기대했다.결국 이다연은 내가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이내 뒤따라왔다.“잠깐만요. 아까 말 지킬 거죠? 밥 다 먹으면 데리고 놀아준다는 거?”“당연하지. 하지만 너도 약속해. 앞으로 그렇게 자리 박차고 나가지 마. 네 가족 체면 깎지도 말고.”나는 이 기회에 요구를 제기했다. 이다연은 잠깐 생각하다가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일은 조급히 해결하면 안 된다. 우선 상대 마음을 잘 달래고 협조할 수 있도록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내가 이다연을 데리고 들어오자 이 사모님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자기가 나은 딸이기에 그녀는 딸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내가 정말
“이걸 빼고 평소 유입량만 기준해서 계산하면 매일 6백만에서 천만 원 정도라도 괜찮은 편이야.”“거기에 임대료, 직원들 월급, 약재 비용 등등을 제외하면 한 달에 3천만 원 정도 남을 거고.”게다가 계속 이런 수익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그때 민우가 의욕적으로 말했다.“노력해야지. 어찌 됐든 사업하기로 했으니 잘해봐야지.”“늦었는데 아직도 안 갔어?”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윤미화였다.나는 놀라운 듯 물었다.“윤 사장님도 오셨네요?”“낮에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지 못해 퇴근하고 왔어. 이건 개업 선물.”윤미화는 커다란 마네키네코를 선물했다. 나는 그걸 카운터에 진열했다.내가 윤미화와 얘기하는 도중에 민우의 여자 친구 임설아도 왔다.주선영, 하정현, 한지영 그리고 이다연까지...이 사람들은 낮에 일이 있어 오지 못하고 밤이 되어서야 온 거였다.마침 우리도 바쁜 시간이 지난 터라 나는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윤지은은 아침에 와서 선물을 주고 간 뒤 저녁에도 또 왔다.나는 개업식 날이 되니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렇게 축복을 보내줄 줄은 몰랐다.나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감동했다.나는 역시 다연 한식당을 예약했다. 이 한식당이 가게와 가깝기도 했고 음식도 괜찮았으니까.우리는 둘러앉아 먹으면서 대화했다. 분위기는 매우 즐거웠다.하지만 유독 한 사람이 계속 어울리지 못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선생님의 딸 이다연이었다.이다연은 여전히 예전처럼 손에 핸드폰을 들고 게임을 했다.이 선생님이 주의를 줬지만, 이다연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이 선생님은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나는 얼른 다가가 이 선생님께 술을 한 잔 따랐다.“이 선생님, 됐어요. 상관하지 마세요. 큰일도 아닌데요 뭘.”이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다 내 탓이야. 내 탓. 내가 자식 교육 잘못했어.”“됐어요. 안 좋은 얘기는 그만하세요.”내가 이 선생님과 하
“형, 어떻게 됐어? 정수호가 동의해?”김진호는 온 신경이 이 일에 쏠려 있어 주해진이 다가오자마자 쪼르르 달려가 물었다.주해진은 돌아오는 길에 김진호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부터 고민했다. 때문에 이내 허허 웃으며 말했다.“아직은 가게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네.”“나중에? 나중에 언제? 이거 분명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거예요. 형, 우리도 계속 참을 수만은 없어요. 안 그러면 정수호가 우리를 점점 무시할 거라고요.”주해진은 김진호가 제 말을 들으면 분명 화를 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도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말했다.“우선 조급해하지 말고 앉아서 들어 봐.”“형. 제가 조급하지 않게 생겼어요? 천수당은 우리가 인수한 가게예요. 그런데 정수호 사람들만 가게에서 돌아다니고 우리는 공기처럼 아무 역할도 못 한다고요.”“지금 짜증 내 봐야 소용 있어? 짜증 낸다고 문제가 해결돼?”주해진은 이내 얼굴을 굳힌 채 물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차분히 달랬다.“우선 앉아서 내 말 들어 봐.”주해진은 자기 생각을 말했다.“가게에 돌아오는 건 당연해. 하지만 정수호는 가게가 아직 안정된 기로에 서지 않았다는 말로 거절하는데 나라고 어떻게 하겠어? 우선 인내심을 갖고 한 달만 기다려 보자. 가게 장사가 안정되면 내가 무조건 너를 여기에 꽂아줄게.”“네 말이 맞아. 우리는 절대 가게를 완전히 정수호한테 맡길 수 없어. 안 그러면 그 자식들이 장부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그 말을 들은 김진호는 형이 아직도 자기편을 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한 달은 너무 길지 않아요? 형, 조금 더 앞당길 수는 없어요?”김진호는 마음이 조급해 한 달 동안이나 기다릴 수 없었다.주해진은 웃으며 김진호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큰일을 할 사람이 왜 이 정도도 못 받아들여? 한 달이면 마침 가게 월매출을 볼 수 있잖아. 그때면 나도 기회를 잡을 수 있고.”김진호는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형 말에 일리가 있어
나는 고수연이 만든 장부를 보고 있었다.고수연이 작성한 장부는 아주 명확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문외한인 나마저도 단번에 이해했다.보아하니 내가 참 보물을 찾은 모양이다.주해진이 다가오자 나는 장부를 얼른 고수연에게 건넸다. 나도 주해진을 조금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주해진과 김진호는 우리와 같은 마음이 아니니 경계할 수밖에.애초에 내가 자금만 충족했어도 두 사람과 손잡을 일은 절대 없다.남을 해치는 마음은 있으면 안 되지만 경계하는 마음은 없으면 안 된다. 모든 건 다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다.“수호, 잠깐 할 말이 있는데.”나는 휴게실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주해진도 이내 따라왔다.주해진은 방금 내가 장부를 내려놓는 걸 목격했지만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파트너인 자기마저 경계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때문에 김진호를 여기 붙여 놓는 건 정확한 결정이었다.우리는 각자 꿍꿍이를 갖고 있었다.그때 주해진이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까 진호가 가게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았다는데 앞으로도 진호한테 잡일거리라도 맡겨주면 안 될까? 도움이라도 될 수 있게.”“우리 술집은 너도 알잖아. 장사가 잘됐다 안 됐다 해서 요즘은 거의 손님도 없어. 진호가 거기 있어도 쓸모가 없고.”주해진은 눈을 접고 배시시 웃으며 내가 거절하지 못하게 뒷길마저 막아두었다.하지만 나도 내 생각이 있는지라 웃으며 말했다.“주해진, 애초에 약속했잖아. 가게 일은 내가 혼자 관리하기로. 직원 모집도 포함해서. 이건 다 계약서에 있는 내용일 텐데.”“알아, 나도 다 알아. 그래서 이렇게 상의하는 거잖아. 우리가 그래도 파트너인데. 이제 같은 배를 탄 사람 아니야? 그러니 예전 일은 이제는 내려놓을 때도 됐잖아.”“원수가 원한을 풀기는 쉬워도 친구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 친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원수가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역시 사회에서 구른 사람이라 그런지 말은 참 그럴듯하게 했다.나도
오후에는 그렇게 바쁘지 않았다. 사장님들을 모두 보낸 것도 있었고 손님도 오전보다 훨씬 줄었다.그제야 다들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우리가 돌아왔을 때 김진호는 배우 바삐 보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면서도 불평도 하지 않았다.민우는 그 모습이 무척 의외라는 듯 말했다.“저 자식 왜 저렇게 좋아해?”현성은 의아한 눈빛으로 김진호를 바라봤다.“저 자식 무슨 꿍꿍이지? 수호야, 차라리 저 자식 쫓아내는 건 어때?”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김진호도 주주야. 비록 비중은 작다고 해도 아예 무시하면 안 돼. 저렇게 하고 싶어 한다면 하라고 해. 그런데 너희 둘이 잘 지켜보면서 잡일거리면 시켜. 절대 기밀 손대게 해서는 안 돼.”나는 김진호에 대해 여전히 큰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무슨 일이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래야 오래 가고.재무, 약재 구매 경로 그리고 중요한 고객 정보 등은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게 더 안전했다.김진호는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는지 자기도 겨우 일할 수 있다고 좋아하며 만족해했다. 비록 땀투성이가 되어도 그는 여전히 흐뭇해했다.주해진은 그런 김진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너 이럴 필요 있어? 우리는 밖에서 맛있는 거 먹으며 즐기고 있을 때 혼자 여기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고. 너 바보야?”김진호는 주해진이 가져온 밥을 먹으며 싱글벙글 웃었다.“형, 그건 틀린 말이에요. 내가 왜 남은 줄 알아요?”“지금 가게는 정수호가 권력을 쥐고 있고 우리는 아예 아무런 권한도 없잖아요. 우리도 이 가게 주주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으면 가게 직원들이 우리를 알아나 봐요?”“그런데 내가 오늘 가게에 얼굴을 비추니 달라지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나와 형도 주주인 걸 알았어요. 이렇게 되면 나중에 가게가 안정되면 내가 다시 들어오는 것도 문제없잖아요.”주해진은 그 말을 듣고 너털웃음을 지었다.“너 이 자식, 그런 속셈이었구나. 몰라봤는데 너 은근히 머리 잘 굴리네?”김진호는 형의 칭찬에 더 흐뭇해하
그리고 이 순간 김진호는 희망을 보았고 서서히 자기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하지만 그것도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오늘이 개업 첫날이라 정 사장님은 많은 손님을 소개해 주며 한 명씩 소개해 주었다.“조 사장님, 안녕하세요!”“연 사장님, 안녕하세요!”“신 사장님, 안녕하세요!”나는 사장님들께 일일이 인사하며 접대했다.그러면서 모든 사람의 모습과 전화번호를 마음속에 기억했다.이왕 혼자 하기로 했으니 인맥과 관계는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정 사장님이 나한테 소개해 준 인맥은 모두 어렵게 얻은 것이라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했다.손님들을 한 바퀴 접대하고 나니 나는 목이 말라 타는 것 같았다.민우가 때마침 나에게 물 한 컵을 건넸다.“얼른 물 마셔. 너 목소리 갈라졌어.”나는 컵을 받아 물을 단숨에 마셨다. 그제야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비록 피곤했지만 나는 아주 보람이 느껴졌다.이건 가게 발전에 두 도움 되는 것들이었다. 현성마저 엄지를 추켜세우며 나를 연신 칭찬했다.“수호, 너 정말 대단하네. 기억력 너무 좋다. 모든 사람을 제대로 기억하네. 난 사람 얼굴이 너무 헷갈려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어.”민우도 맞장구쳤다.“나도 사람 얼굴이 헷갈리는 것 같아. 문제는 다 비슷한 옷을 입기도 했고 생긴 게 정말 너무 비슷해.”솔직히 나도 이런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이 정도 할 수 없었을 거다.하지만 이제는 천수당의 발전을 등에 업고 수억을 투자한 이상 절대 돈 낭비해서는 안 된다.사람의 잠재력은 모두 극단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오늘 이렇게까지 할 수 있던 건 나 스스로도 매우 놀라웠다.물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나는 또 귀한 손님들을 접대하러 갔다.민우와 현성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우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점심에 나는 민우더러 다연 한식당에 프라이빗 룸을 예약하라고 당부하고는 사장님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나는 당연히 함께 가야 했기에 다른 사람을 가게에 남겨두기로 했다
“잠깐.”그때 내가 소리쳤다.연승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나를 바라봤다.“또 뭐 하려고 그래?”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눈빛으로 연승호를 빤히 바라봤다.“연승호 씨,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지 모르겠으나 한마디 경고하죠. 오늘 같은 일은 이번 한 번뿐이어야 할 겁니다. 만약 다음에 또 이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아요!”연승호는 주먹을 꽉 그러쥐며 눈에서 불꽃을 뿜어냈다. 그가 화를 내려고 할 때 백연우가 얼른 그를 끌어당겼다.“승호 씨, 우리 가요. 얼른 쇼핑해요.”연승호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발산할 수 없었다.나는 윤지은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말했다.“고마워요.”“계속 이런 환경에 처하면 영향 안 받을 리 없잖아? 앞으로 조심해.”윤지은의 말속에는 뭔가를 내포하고 있었다.나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게 뭐 내 탓인가? 백연우가 먼저 나를 찾아왔고 그 때문에 연승호가 나를 질투하는 건데 뭐.’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만약 연승호가 또다시 찾아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작은 사고가 있고 난 뒤 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나타났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임천호 옆에 있는 시커먼 떡대, 이제는 이름도 아는데 바로 강용재였다.나는 임천호가 사람을 보내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강용재는 선물도 가져오지 않고 임천호의 말만 전했다.“임 회장님께서 정수호 씨더러 시간 날 때 소여정 씨를 보러 오라고 하십니다.”나는 임천호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나를 믿는 건지 아니면 시험하는 건지도 의문이었다.하지만 어떤 것이든 좋은 의도는 아니다.오늘은 천수당 개업일인데 수많은 사람 앞에서 거절하면, 사람들은 우리 천수당 의술이 별로라고 생각할 거다.때문에 잠깐 고민한 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민우는 다급히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수호야. 동의하면 어떻게? 임천호는 분명 좋은 의도가 아닐 거야.”현성마저 그렇게 얘기했다.그때 나는 내 생각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