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811 - 챕터 820

1191 챕터

제811화

다음 날, 제릉서는 영우를 데리러 곧바로 이수암으로 향했다.마침, 송석석도 있어 제릉서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하였다. "어머니께서 아기를 잘 돌봐줄 것입니다. 동생들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라서 혹 하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그 말에 송석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저와 그대 어머니는 서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심중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였으니 아기를 홀대하시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제 그대 어머니께서 아기의 이름을 물으시기에 내가 '강아'라 답하였고 영우라는 이름을 계속 쓸지에 대해서는 그대들이 알아서 정하시지요."제릉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감사드립니다.""그대들이 아이를 데려가기로 하였는데 혹시 고청묘와 만나게 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릉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러지요. 사실 어머님께서도 만약 아버지께서 그녀를 데려오길 원하신다면 어머님께서도 동의하시겠다 하셨습니다."송석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제 대감께서는 그리 순진한 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분은 그대 어머니이지 않습니까? 어머니를 조금 더 소중히 여겨주시고, 그 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제릉서가 급히 설명했다."오해입니다. 제 어머니는 소인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상황에 대비해 제씨 가문이 오해받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신 것이지요.""오해한 적 없습니다. 그대 어머니께서는 큰 그림을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처받지 않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아버지라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가장 힘들게 견디고 있는 분은 바로 그대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을 안고도, 그대 가문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습은 그대도 본받아야 할 품성입니다." 평소 제씨 가문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자제했던 송석석은 어제 만났던 전숙이 너무 착하다고 여겼고,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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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2화

하지만 고청묘는 고개를 저었다.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 머무르고 싶사옵니다.""따님은 제씨 가문에 있는데도 말입니까?" 송석석의 물음에 고청묘가 고개를 살짝 돌렸는데,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알고 있습니다. 그 애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잘 자랄 것이니 걱정되지 않습니다."그녀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것들이지만 딸은 그 행복을 얻었기에 기뻤다.송석석은 다정하게 말했다."그대가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강요할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씨 가무은 명분도 없어 그대를 억지로 데려가지는 못합니다.”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온 고청묘는 송석석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울먹거렸다."감사하옵니다. 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송 대감께선 모르실 것이옵니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날카로운 칼날이 사라진 것이지요. 이제 더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지요?"송석석이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대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셔도 되니, 조금만 참으시지요." "더 이상 저를 해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침대로 다시 돌아간 고청묘는 가냘픈 미소를 지었지만,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저는 제상서가 싫습니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두려웠습니다. 제가 그의 연민을 바란 것도 아니였는데, 그는 너무도 거칠었사옵니다." 고청묘가 옷을 풀어 헤치자, 몸에 남은 이빨 자국을 드러났다. 새로 생긴 것도 있었고 오래된 흔적도 남아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부드럽고 새하얀 가슴에 빼곡히 새겨진 흉터들이었다.송석석은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누가 그녀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였던가? 그녀들이야말로 진정 궁지에 몰린 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늘어놓는 고부진은 너무나도 위선적이었다.송석석은 그녀의 옷을 다시 입혀주며 말했다. "이제는 아무도 그대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니, 안심하고 지내시지요." "감사하옵니다. 정말로 감사드리옵니다. 대감께서 저희를 구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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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3화

이튿날, 고부진은 참수를 앞두고 있었고, 참수관은 사여묵이다. 경위들은 선으로 형장을 보호하며 질서를 유지했다. 사여묵은 원래 송석석을 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고부진이 괘씸하긴 하지만 주범도 아니고 게다가 목을 베는 장면은 너무 잔인했기에 송석석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하지만 송석석은 그보다 더 잔인한 상황까지 목격한 사람이었다. 고부진이 주범은 아니지만 공리심에 눈이 멀어 악인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나약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았으니 그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다. 그래서 송석석은 무조건 가봐야 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형장 밖은 사람들로 붐볐다. 정오에 형벌을 집행하기 때문에 경위는 아침 일찍 형장에 도착해 질서를 유지하지 못해서 형장 일대가 소란스러웠다. 심지어 가게의 상인들도 밖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겁 많은 백성들은 구경하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도 구경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금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는 아이들을 이런 곳으로 데려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상 어디에나 구경꾼은 부족하지 않았다. 특히 고부진의 신분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이끌었다. 왜냐하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참수를 당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형장은 늘 가을쯤에 사람들로 붐볐다. 사형수들이 가을쯤에 사형을 집행하기 때문이었다. 사시가 되자 필명은 경위를 데리고 와서 질서를 유지했고 형장 주변에 줄을 당겨 경계를 그어 백성들을 모두 선 밖으로 물러나도록 했다. 고부진은 아직 대리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형장에 가기 전에 대리사에서는 그에게 푸짐한 식사를 대접하고 배불리 먹인 후에 출발할 것이었다. 고무진은 처음엔 두렵지 않았지만 술과 음식이 나오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먹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대리사의 허평안이 직접 그를 배웅하러 와서 말했다. “드십시오. 배불리 먹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지 않습니까?”허평안의 말에 고부진은 어리둥절했다. 곧이어 그는 부들부들 떨며 젓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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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4화

고부진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내 뜻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다시 한번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절대로 이러지 않을 것입니다. 고후부가 몰락하긴 했지만 기반이 있으니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거인 출신이라 진사에 응시할 수도 있으니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원래는 앞길이 창창했는데, 현량하고 숙덕 한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첩을 두 세명 들여 아들딸을 서너 명 낳으면 가문을 더욱 번영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내가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게 죽음 길이었을 줄이야.” 그는 충격으로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구고 다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허평안은 담담하게 젓가락을 주워 주며 말했다.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행동이야말로 가장 실질적인 것이지요. 아는 것을 모두 말하면 일말의 희망이 있을 것이고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고부진은 얼굴을 가리고 울다가 손을 놓고 소매로 눈물 콧물을 닦아냈다. 고문을 받은 후 그의 동작은 굼뜨고 둔했고 등은 구부려졌다. “난 이미 죽음길에 들어섰습니다. 더 이상 기회는 없습니다.” 허평안은 오랫동안 공문에서 지내면서 각양각색의 악당들을 만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후회하고 모든 것을 자백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부진은 그런 악당 같지는 않았다. 그는 이성을 잃지 않고 참수형에 직면해서도 이해득실을 따졌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애초에 왜 사운의 이용을 피하지 못했을까? 결국엔 모두 이욕에 눈이 멀어서 그랬던 것이 분명하다. 처음엔 반항했을 수도 있지만 그다음에는 밀당을 하다가 결국 배후에게 조종을 당했을 것이다. 그는 범인이 사온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피해자처럼 행동하면 죄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허평안도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나중엔 고부마도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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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5화

형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호송차에서 끌려 나와 형장 한가운데로 끌려가 무릎을 꿇렸다. 이때 덩치 큰 사형수가 칼을 들고 그의 곁에 서 있었는데 칼이 빛을 반사하는 것을 본 고부진은 놀라서 몸이 나른 해져 무릎도 제대로 꿇지 못하고 구조를 청하는 눈빛으로 구경하는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형장은 시끌벅적했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렸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북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고 당장이라도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는 뒤에 있는 참수관인 사여묵을 보지 못하고 그의 소리만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그의 뒤엔 팻말이 세로로 묶여 있어 고개를 돌릴 수 없고 사형수가 질색을 하는 표정으로 코를 틀어막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대소변을 실금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려움이 순식간에 독사처럼 그의 몸속 살갗을 뚫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너무 두려웠다. 이때 군중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고, 그는 기쁜 나머지 쉰 목소리로 외쳤다. “청영아, 청영아…!” 휘왕은 고청영과 함께 줄 밖에 서 있었고, 고청영은 검은 포도알 같은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마주쳤지만 고청영은 부친의 공포와 기쁨을 전혀 느끼지 못한 듯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이때 휘왕이 옆에 있는 구청영에게 말했다. “먹을 것 좀 갖다 주겠느냐?”그러자 고청영이 말했다.“이미 배불리 드셨을 것입니다.”휘왕이 말했다.“그래, 대리사에서는 참수를 하는 죄인에게 배불리 음식을 먹이긴 하지. 그런데 저 자에게 따로 할 말은 없느냐?”그러자 고청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내가 올라가도 됩니까?”“그래, 마지막으로 작별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그러자 고청영이 말했다.“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가자, 내가 널 데리고 참수관을 만나러 가마. 참수관이 내 조카라 내 부탁이라면 들어줄 것이다. 그는 나에게서 노인네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으니 말이다.”“나도 당신이 늙었다고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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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6화

송석석은 고청영이 정말 특별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에 빠져버릴 수 있었지만 잘 살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고청영은 자신의 부친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싫을 뿐이었다. 그녀는 송석석에게 물었다. “송 대인님, 참수를 한 후 시신을 수습해 줄 사람이 없으면 시신은 어디에 버려집니까? 아니면 그를 매달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겁니까?”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시신을 거둬주는 가족이 없다면 대충 묻어버릴 생각입니다. 그가 역모사건의 주모나 돼야 성문에 걸어 백성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담담히 말한 후 다시 묻지 않고 휘왕 곁으로 돌아갔다. “집에 아직 먹지 않은 대추 떡이 남았으니 얼른 돌아갑시다. 오래 두면 맛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자 휘왕이 물었다. “정말 보지 않을 것이냐?” 고청영은 여전히 거절했다. “나는 피를 보는 게 두려우니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휘왕은 그녀를 총애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럼 이만 가자. 내일 널 데리고 호수로 유람하러 가마.” 그녀는 망토를 두르고 말했다. “추운데 무슨 호수입니까? 집에서 난로를 두르고 차를 끓여 마시고 양고기를 구워 먹으면 얼마나 좋은데요.” “나는 널 데리고 기분전환을 하려고 한 건데, 이 계집애가 고마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 휘왕은 웃으며 사여묵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난 평생 여자에게 사로잡혀 살 운명인가 보구나. 늙어서도 다름이 없는 걸 보니.” 사여묵은 형장에서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즐거워하는 숙부를 보자 그의 흥을 깨지 않고 싶어졌다. “나도 이번 생은 여자에게 잡혀 살 운명인 것 같습다.” 그러자 휘왕이 사여묵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했다. “그래, 넌 어서 가서 참수하거라. 나는 청영과 함께 돌아가겠다.” 사여묵은 마지못해 말했다. “내가 참수하는 게 아니라 저 자가 참수하는 것입니다.” “알겠다.” 휘왕은 웃으며 청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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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7화

고청란은 수육 가게를 차리지 않고 이수암으로 들어가 매입을 맡았다. 이수암은 대부분 몸이 허약한 사람들 뿐이라 장기간 채식만 할 수 없었기에 새로 집을 한 칸 짓고 이수암과 분리해서 그곳에서 육수를 끓여 그곳의 여자들에게 몸을 보양할 수 있게 했다.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은 그곳으로 찾아가면 되었다. 이수암의 주지스님에겐 규칙이 있었는데 이수암이나 따로 지은 집에서 모두 직접 살생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청란은 매일같이 산에서 내려가 고기를 사서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삼일 동안만 팔았을 뿐인데, 이곳의 여자들은 이제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았다. 아마도 암자가 그녀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니 신앙심이 생겨 누구의 말도 필요 없이 스스로 고기 먹는 것을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수암에 산나물들이 많아서 보양식인 약재를 따서 국을 끓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조잡한 물건이지만 관리들도 단삼과 인삼 같은 약재를 보내와서 여자들의 몸을 조리해 줄 수 있었다. 공주부의 사람들 중 처리할 사람은 다 처리한 상태였기에 이젠 방마마만 남았다. 태후는 특별히 지시를 내려 그녀에게 매일 사온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라고만 할 뿐, 시중을 들게 하지는 않았다. 종인부의 문 오른쪽 아래에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거기로 반찬을 들여보낼 수 있었다. 방마마는 가끔씩 엎드리고 반찬을 들여다주며 장공주를 볼 수 있었고, 방마마에겐 그것도 큰 은혜였다.하지만 서지도 못하고 기어서 올 수밖에 없는 장공주를 보고 있자니 방마마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녀 마음속의 부귀 롭고 오만하며 옷이 조금 더러워지기만 해도 내다 버리던 공주가 지금은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 엎드려 먹고 싸니 말이다. 공주의 얼굴은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아졌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고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섞여 있었는데 검은 머리보다 더 많아 보였다. ‘공주도 이제 늙었구나…’ 공주부의 시위장이었던 도준은 남강으로 보내져 5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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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8화

전북망은 부상이 완쾌되고 나서야 정식으로 부임하게 됐다. 그는 우선 그동안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뒤이어 숙청제는 그를 불러다가 한동안 훈계와 조언을 해주면서 그에 대한 충분한 신임을 표명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격에 겨운 전북망은 눈시울을 붉히며 어서방을 나섰다. 한편 궁 중에는 영시위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현재 영시위부의 지휘를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송석석이었다. 그리하여 전북망은 이 틈을 타 대부분의 시간을 영시위부에서 보내고 있는 송석석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한때는 부부사이였지만, 이젠 전북망이 직접 한쪽 무릎을 꿇고 송석석을 맞이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경위 부사 필명, 순방영 오진, 금군 부 사령관 왕정 그리고 어전 시위 사령관 전북망은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 전북망은 내심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송석석이 자신을 괴롭힐 거라 예상한 것과 반대로, 뜻밖에도 그녀는 담담하게 한마디만 하였다. "그만 일어나게." 이내 전북망은 눈을 깔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송 대감님." 그러자 필명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전 대감의 부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조만간 술판이라도 열어서 축하 의식을 갖는 건 어떨까요?" 필명은 어찌 됐든 한때는 전북망의 상사였기에, 전북망은 시종 그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필 대감 시간이 날 때 한번 안배해 보지." "저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경위에도 또 다른 형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필명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그렇네." 전북망은 어색하게 웃더니 이내 송석석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저희 집에서 연회석을 차리지요. 여러분들을 초대하겠습니다." "좋소." 왕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전 대감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가야 되지 않겠소? 그나저나 송 대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줄곧 송석석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갖고 있던 왕정은 일부러 이 틈을 타 송석석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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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9화

필명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송 대감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소. 그 누구든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면 조금도 불복할 생각이 없소. 게다가 그녀는 무려 황제가 직접 임명한 사람이오. 그런데 자네가 그녀를 거역하려는 건, 곧 성지를 거역하려는 게 아니오? 어떻게 금군을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맡아오면서도 여전히 오기를 부리고 여자를 업신여길 수가 있소? 사내로 태어났으면, 만일 정말 그 여자를 무너뜨리고 싶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제대로 승부를 보는 게 좋지 않겠소?" "이제 와서 보니 그동안 정말 나한테 화가 많이 났나 보오." "자네만 성질이 있는 게 아니란 걸 명심하시오." 이내 필명은 그를 뿌리치고 돌아서 버렸다. 결국 왕정은 아무런 소득 없이 다시 영시위부 내당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는 여전히 앉아있는 오진과 전북망을 발견하고는 의자에 털썩 앉아 두 사람에게 물었다. "자네들도 모두 저 여자한테 복종하고 있는 건가? 오진 자네는 오래전부터 복종하고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소. 저 여자의 말이라면 뭐든지 다 잘 따르더군... 그나저나 전북망 자네 또한 순순히 복종하고 있는 건가? 그래도 두 사람은 헤어진 사이잖소. 그 여자는 다시는 자네를 원하지도 않을 텐데." 그러자 오진이 그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왕정, 자네는 그 입으로 더러운 말을 하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것이오…?!" "내 성격이 원래 이렇게 강직하오. 어떤 상황이든지 솔직히 말하려는 걸 좋아하오. 빙빙 돌려서 말했다가는 마음이 편치 않으니 말이오." "대체 누가 자네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거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높여 평가하지 마오. 강직함은 무슨, 그저 입이 독할 뿐이지." 오진은 한마디 저격을 한 후 곧장 자리를 떠났다. 요 며칠 순방영에도 많은 일이 일어난 탓에, 그는 더 이상 이곳에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결국 전북망과 왕정만 남은 채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매부, 신경 쓰지 말게." 뒤이어 왕정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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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0화

전북망은 갓 임관하여 매일처럼 늦게까지 일에 매진하였다. 가끔은 친히 각 처의 궁궐을 순찰하러 나서곤 했지만, 후궁은 제외하였다. 순찰하지 않을 때면 어서방 앞이나 영시위부로 돌아가 교대를 기다렸다가 그날의 일지를 받았다. 교대하는 자들은 반드시 순찰 결과를 기록해야 했으며, 이변이 있으면 기록하고 별다른 일이 없어도 무사하다고 남겨야 했다.그는 유시가 되어야 궁을 떠날 수 있었지만, 항상 유시 말미에 이르러서야 궁을 나섰다. 그날도 마침 궁을 나서다 연왕을 마주쳤던 것이다. 전북망은 연왕이 새벽에 입궐해 밤에 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궁문이 닫히기 전에 나갈거라 생각했기에 오늘은 어찌 이리 일찍 출궁하는지 의아했다. 전북망은 다가가 절하며 인사했다."전북망, 황상을 뵈옵니다."연왕은 미소를 띠며 그를 보았다. "아직 장군이 된 것을 축하해주지 못했구나. 나는 늘 자네를 유능한 인재라고 생각해 왔노라. 이제야 빛을 발하게 된 것 같아 기쁘구나. 자네가 앞으로 더욱 번창하길 바라겠노라."전북망은 뜻밖의 칭찬에 약간 놀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과찬이십니다."연왕은 두 손을 뒤로 깍지 끼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전 장군, 시간이 되면 부인과 함께 연황실에 들르시게. 황후가 이 도성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내가 걱정이 많네. 시간을 내어 함께 나가본다면 매우 기뻐할 것일세." 전북망이 대답하였다."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만, 아내가 몸에 아이를 품고 있어 외출하기엔 불편할 듯하옵니다.""그렇다면 연황실에 들러 차라도 한잔 나누며 이야기하세. 참으로 경사가 많군. 승진하신 데 이어 곧 아버지가 되실 소식이라니, 또다시 축하의 뜻을 전하네."전북망은 연왕이 온화하다고 느끼면서도, 어쩐지 지나치게 다정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간단히 감사만 표한 후 화제를 돌렸다."폐하께서는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출궁하셨습니까?"연왕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모친께서 일찍이 약을 드시고 잠드셨기에 나도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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