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Chapter 81 - Chapter 90
140 Chapters
제81화
“사모님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배 비서님이 사모님이라고 하는 거 습관이 안 되기도 하고 게다가 지금은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요.”진호는 부부 사이를 왜 굳이 숨기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평소 호칭으로 불렀다.“그럴게요, 지유 씨.”지유는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경매가 열리는 쪽으로 향했다.그러다 누군가와 부딪히고는 습관처럼 먼저 사과를 했다.“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괜찮아요, 지유 씨.”고개를 들어보자 부딪힌 사람은 장다희였다.“다희 씨.”다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악수했다.“오늘 너무 예쁘시네요. 여이현 대표님이 반할 만해요.”“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대표님 비서이고 오늘은 그저 파트너 자격으로 옆에 있는 것뿐이에요. 이미 결혼하신 분인데 저와 괜한 구설에 휘말리면 안 되죠.”다희는 지유를 잠깐 바라보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경솔했네요. 앞으로는 주의하죠.”“책망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안으로 들어갈까요?”지유는 미소를 지으며 안쪽을 가리켰다.“그래요.”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경매장 안으로 들어갔다.오늘 파티의 메인인 자선 경매가 시작되었다.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여진 그룹은 매년 자선 경매를 열었다. 경매로 벌어들인 수익금은 전부 자선 단체에 기부하게 된다.지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현이 승아와 함께 웬 영화감독과 얘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셋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그쪽으로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자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사람들의 쉬쉬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현이 결혼을 인정하기는 했으나 승아와의 관계도 여전히 애매한 상태였고 결혼 상대가 나타나지 않으니 이현과 승아가 여전히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추측이 많았다.지유는 애써 신경 쓰이지 않는 척했지만 시선은 계속 두 사람을 쫓았다.경매가 시작되고서야 세 사람은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승아는 이현의 옆이 아닌 여진숙의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정말 모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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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10캐럿은 되는 메인 보석 옆에 1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가 붙어 있어 상당히 소장 가치가 있는 액세서리였다.지유는 여진숙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마침 승아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승아는 그녀를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눈빛에는 일말의 도발도 묻어있었다.확실히 자랑할 말도 했다.지유는 결혼하고 나서 여진숙에게서 그 어떤 선물도 받은 적 없으니 말이다.첫 입찰 결과 사파이어 목걸이 세트는 여진숙에게 60억이라는 거금으로 낙찰 당했다.경매품은 곧바로 승아의 앞에 전달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여진숙의 선물을 받게 된 승아는 이제야 체면이 사는 것 같아 활짝 웃었다.“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아주머니.”여진숙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답했다.“그래. 네가 좋아하는 것 같으니 나도 기쁘구나.”사람들은 모두 승아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자기 며느리도 아닌데 이렇게 챙기는 게 말이 돼? 부럽다.”“누가 알아? 조만간 며느리가 될지.”“하지만 여이현 대표 결혼했다며?”“아직 와이프가 누군지는 얘기 안 했잖아. 그리고 아까 뒤쪽에서 사모님이 노승아가 자기 예비 며느리라고 했다는 거 못 들었어? 여이현 대표가 노승아 연예계 진출에 힘 써주는 것도 그렇고 확실히 평범한 사이는 아닐 거야. 이러다 며칠 뒤에 사실 그 와이프는 노승아였습니다 라고 할지 또 누가 알겠어, 안 그래?”“어머,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니지, 지금으로 봐서는 확실히 그럴 것 같아!”지유는 이 대화들을 전부 묵묵히 듣고 있었다.경매는 어느새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고 드디어 제일 마지막 경매품이 모습을 드러냈다.지유가 담담한 얼굴로 구경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이현이 입을 열었다.“30억.”“40억.”그때 누군가가 입찰해왔다.“100억.”이현이 또다시 외쳤다.2배가 넘는 가격이기에 상대도 포기하나 싶던 찰나 또다시 음성이 들려왔다.“110억!”이현도 지지 않고 또다시 불렀다.“120억!”지유는 이현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경매품 쪽을 바라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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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케이스 안에는 다름 아닌 아까 이현이 낙찰받았던 에메랄드 보석 팔찌가 들어있다.지유는 안쪽으로 들어와 이현에게 말했다.“무슨 일로 부르셨어요?”“이쪽으로 와.”지유가 그의 옆으로 다가가자 이현은 케이스를 열더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팔찌를 지유의 손목에 끼워주었다.그 모습에 승아의 얼굴은 굳어지고 여진숙은 당황한 듯 다급하게 물었다.“너, 너 그거 승아 주려고 낙찰받은 거 아니었니?”“승아는 엄마가 옆에서 챙겨주잖아요. 저까지 챙겨줄 필요 있어요?”이현이 단호하게 얘기하자 여진숙이 입을 꾹 닫고 미간을 찌푸렸다.지유는 갑자기 손목이 무거워지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200억짜리 팔찌였다.한 번도 이런 비싼 물건을 지닌 적 없는 그녀였던 터라 지금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했다.“이건 너무 비싸요. 이 팔찌 끼고 다니다가 보석에 흠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지유가 서둘러 다시 팔찌를 빼려고 하자 이현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으며 의미심장한 얼굴로 얘기했다.“이건 내가 너 주려고 낙찰받은 거야. 그러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간직해.”올곧게 마주 오는 그의 시선을 보고 있자니 이 팔찌가 그에게는 무척이나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그 의미 있는 물건은 지금 그녀의 손목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다.이건 그가 그녀에게 주는 일종의 명분 대신일까?지유는 팔찌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한참 뒤에야 답했다.“네, 그럼 잘 간직할게요.”이현은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 웃었다.“이제 와서라고 하기 민망하지만 이 팔찌 너랑 결혼할 때 못 해줬던 선물이라고 생각해.”“새삼스럽게 무슨 선물이에요. 이미 충분히 많은 걸 주셨잖아요.”그들의 혼인에 사랑은 없었지만 이현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았다. 언제나 제일 좋은 것들로만 주었다.그런 점을 고려해 보면 이 남자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었다.승아는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방을 뛰쳐나갔다.“승아야, 승아야!”여진숙은 승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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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그 말에 지유의 발걸음이 멈췄다.싸늘한 한기가 발끝으로부터 천천히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었다.지금 저게 무슨 말이지?그녀와 결혼한 게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지분 때문이라니?지유는 몸을 뻣뻣하게 돌려 서재 쪽을 바라보았다. 작은 문틈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여희영은 지금 화가 잔뜩 난 채 서 있었고 여이현은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네.”짤막한 그의 대답에 지유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현이 그녀와 결혼을 결심한 건 할아버지 지분이라는 조건 때문이었다.결혼식 당일 밤 그녀와는 아무런 사이로도 발전할 생각이 없다고, 그녀에게 주제를 알라는 듯이 말했던 것 모두 그 이유 때문이었다.그녀는 처음부터 그저 장기 말일 뿐이었다.“네가 쉽게 타협할 애가 아닌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 지유는? 너 이거 지유한테 못 할 짓 하는 거야.”이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보상해줄 생각이에요.”여희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태도에 더욱더 화가 났다.“지유한테 잘해준 게, 그게 다 보상이었다는 소리니?”이현은 잠깐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맞아요.”지유는 그의 말에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밀려와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뒤로 휘청거리며 벽을 짚었다.보상 때문이었다고?다정하게 챙겨주던 그 모습이 전부 다 보상 때문이라고?이용한 게 미안해서 마음에 걸려서 그래서 잘해줬던 건가?지유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여이현, 너 대체 왜 이렇게 됐니? 대체 언제부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된 거냐고! 지금의 널 보고 있으면 네 엄마가 보이는 것 같아서 치가 떨려. 정말 실망이다.”여희영은 지금 상당히 흥분하고 있어 목소리도 무척이나 컸다. 지유는 두 사람의 대화를 더 들을 용기가 없었다. 여기서 더 많은 걸 알게 되면 상처받는 건 어차피 자신일 테니까.지유는 도망치듯 그 서재에서 멀어져 황급히 계단을 내려오더니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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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밖으로 뛰쳐나온 지유는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전혀 추운 줄 몰랐다. 그저 지금은 어디론가 도망가고만 싶을 뿐이었다.얼마나 달렸을까, 그녀는 서서히 발걸음을 멈추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바닥을 바라보니 어디선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지유는 그제야 자신이 눈물범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물들이 볼을 타고 쉴 틈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모든 게 다 가짜였다.그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순간들도, 설렐 만큼 다정했던 그의 모습들도 전부 가짜였다.그는 그저 그녀에게 보상해준 것뿐이었다. 단지 그의 죄책감 때문에.지유는 이제야 노승아가 했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여이현이 그녀와 결혼한 건 이용하기 위한 것뿐이라는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그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일말의 호감도 작은 떨림도 없었다.지유는 지금 부는 차가운 바람보다 마음이 더 시리고 추워 자신의 두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마치 상처받기 싫은 아이처럼 얼굴을 묻은 채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하지만 이미 상처는 받았고 마음은 너덜너덜해졌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지유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뒤에 있는 큰 별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처음부터 저 자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지유는 지금 지갑도 핸드폰도 아무것도 손에 쥐고 있지 않아 이 밤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두 손으로 팔을 감싸고 정처 없이 길가를 거닐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가 흐릿하나 싶더니 이내 그녀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한편, 여희영은 서재 문고리를 잡고는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이현에게 경고했다.“네가 한 말 꼭 지켜야 할 거야. 지유는 상처받아도 되는 그런 애 아니야. 그 노승아인지 뭔지 하는 애보다 훨씬 더 나은 아이니까 처신 똑바로 해. 노승아가 눈에 밟혀도 이제는 눈길도 주지 마! 만약 지유가 상처받기라도 한다면 내가 너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알아들어?!”“저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이현은 냉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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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전화기 너머에서 확신하지 못하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온지유 씨가 사무실에 있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는 건 맞습니다만 쭉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이현도 한때는 지유를 의심한 적이 있었으나 언제나 선을 지키고 실수 한 번 없었던 그녀였기에 그 의심도 머지않아 곧바로 사그라들었다.그날 일에 관해 물었을 때 그녀가 많이 긴장한 듯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이현은 전화를 끊고 또 컴퓨터도 끄더니 드디어 서재에서 나왔다.안방에 도착해 보니 불은 켜져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지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의 핸드폰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이리저리 찾아보다 그 어디에도 지유가 보이지 않자 이현은 결국 도우미에게 물었다.“집사람은 어디 갔습니까?”“아까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긴 했습니다만...”도우미도 잘 모르는듯한 눈치였다.지유는 별장 그 어디에도 없었고 핸드폰을 지니지 않아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이현은 슬슬 걱정됐는지 다급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지유가 사라졌습니다. 지금 당장 어디 있는지 찾아내세요!”...지유는 힘겹게 눈꺼풀을 떴다.그녀는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운 듯 눈을 뜨자마자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병원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깨셨어요, 환자분?”그때 마침 간호사가 옆으로 다가왔다.지유는 그녀를 보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뭐가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왜 여기...”“환자분이 길가에 쓰러져있던 걸 어떤 마음 착한 분이 병원에 데리고 오셨어요. 핸드폰도 없이 왜 추운 날 혼자 밖에 돌아다니셨어요. 그분 아니었으면 환자분 정말 길가에서 동사할 수도 있었다고요.”지유는 그제야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밖을 보니 벌써 다음날 낮이었다.“저혈당 때문에 쓰러지셨어요. 핸드폰 빌려드릴 테니까 얼른 가족분들에게 연락하세요. 입원 절차도 아직이라 그것도 해주시고요.”가족?부모님에게 연락하면 걱정하실 게 뻔했다.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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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잖아요. 기다려요. 형한테 전화하고 올게요. 아마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지유가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알리지 말아주세요.”“아까 간호사가 한 얘기 못 들었어요? 가족분한테 연락 안 하면 퇴원은 안 된다고 한 거.”지유는 석훈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괜한 참견하지 말고 알리지 말아주세요.”지유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고집은 무척이나 셌다. 게다가 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말하는 태도도 이현과 똑 닮아있었다.“형 지금 형수님 찾는다고 난리에요. 그리고 저는 의사로서 형한테 연락해야겠으니까 그렇게 아세요.”지유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석훈은 이현의 동생이기에 그와 마주한 순간 이렇게 될 걸 예상했어야 했다.석훈은 행여나 지유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이현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잠시 뒤, 이현이 거친 숨을 내쉬며 병실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지유의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안심이 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어떻게 된 거야?”이현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려는데 지유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이에 손이 어색하게 공중에 굳어버린 그는 그녀의 얼굴색을 한번 보더니 천천히 손을 내렸다.“길가에서 쓰러졌다며. 대체 왜 그 시간에 집이 아닌 거기에 있었던 건데?”그는 다그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침착하게 물었다.지유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만 했다.“심심해서 산책 좀 하다가 갑자기 저혈당으로 쓰러진 것뿐이에요. 어제 얼마 못 먹어서 그런 가봐요.”이현이 고개를 돌려 석훈을 바라보았다.“저혈당은 맞아.”뭐가 됐든 일단 사람은 찾았으니 큰 근심은 덜었다.지유는 그 뒤로 줄곧 창문만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이현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은 걸 눈치채고 있었다.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하룻밤 사이에 그녀는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석훈은 두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더니 일단 이현을 복도로 데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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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더는 그에게 분에 맞지 않는 걸 바라면 안 된다. 두 사람 사이를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이게 그녀가 해야 하는 일이다.이현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간 것 같으면서도 또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에 뭐라고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그럴 마음도 싹 사라졌다.“다음번에는 혼자 나가지 마. 나가거든 핸드폰이라도 가지고 가던가, 아니면 누구랑 같이 가던가 해. 그래야 바로바로 널 찾을 수 있으니까.”지유는 그 말에 쓰게 웃었다.대체 언제까지 걱정하는 척을 하려는 거지?그는 아마 이렇게 걱정해주는 것도 보상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겠지?“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지유는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랐다.이현은 의자를 가져와 병상 옆에 앉고는 그녀를 한번 쭉 훑어보다 확실히 아무 문제 없는 걸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혹시 그날 밤 일 기억해?”“그날 밤 일이라뇨?”“내가 술에 취한 그날 밤 말이야.”담담한 그의 말에 지유는 순간 심장이 움찔했다.갑자기 왜 또 그 일을 묻는 거지?혹시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묻는 건가?지유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날 밤 일은 왜요?”“그날 밤 그 여자 아직 못 찾았어.”이에 지유가 긴장을 내려놓으며 주먹을 쥔 손을 풀었다.“그 일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어요?”이현이 미간일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기억하면 안 되나 봐?”“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지유가 서둘러 답했다.이현이 그녀를 이용했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더욱더 그날 밤 그 여자가 자신인 걸 들킬 수는 없었다.만약 자신인 걸 알기라도 하면... 아마 그때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몰랐다.“제가 대표님 찾으러 호텔에 갔을 때 확실히 어떤 여성분이 나오셨어요.”“너는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이현이 묻자 지유가 다시 긴장하며 티 안 나게 그와 시선을 피한 뒤 답했다.“글쎄요?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물론 그 여성분과 함께 한 건 대표님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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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온지유.”이현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네?”지유가 그를 바라보았다.“그 여자 너지?”지유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지만 그녀는 빠르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대표님, 농담도 참. 저는 둘째 날이 돼서야 도착했잖아요. 게다가 윤정 씨 보고 대표님 옷도 가져드리라고 했고요. 만약 제가 그 여성분이었으면 대표님께서 진작 알아채지 않았겠어요? 차라리 저였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지금쯤 아이가 생겼을지도 모르잖아요.”웃으면서 얘기하는 그 모습을 보니 이현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다는데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그러면 쓸데없는 추측하지 말고 누군지 알아 와!”이현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병실을 나가버렸다.그가 나간 뒤 지유는 곧바로 웃음을 지워버렸다.그리고 몇 초 뒤 그녀가 한숨을 돌릴 새도 없이 의사 한 명이 병실로 들어왔다.의사는 병실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가족분은요?”“괜찮아요. 저한테 얘기해주시면 돼요.”의사는 진단서를 보더니 미간을 미세하게 찡그리고 말했다.“환자분 혹시 임신한 거 알고 있었어요?”그 말에 지유가 화들짝 놀라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임신?설마...고작 그 한 번으로 임신이 됐다고?지유는 조금 현실감이 없었다.“선생님, 혹시 다른 환자분과 헷갈리신 거 아니에요?”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온지유 씨 맞으시잖아요. 온지유 씨는 지금 임신한 상태입니다. 이제 막 한 달 정도 됐네요.”가만히 생각해보니 생리가 며칠 늦어지기는 했다.하지만 몸이 피곤할 때면 이런 일도 많았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설마 임신일 줄이야.“어제는 정말 위험했어요. 온지유 씨는 물론이고 아이한테도요. 그러니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 없도록 하세요. 그리고 남편분한테는 계속 옆에 있으라고 몇 마디 당부해야겠네요.”“선생님!”지유가 다급하게 말했다.“저 임신한 거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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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그날 승아는 울면서 뛰쳐나갔지만 지금은 한껏 여유 있는 얼굴로 웃고 있다.그녀가 활짝 웃을 만한 즐거운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지유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데 승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조만간 그쪽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테니 일단 며칠은 봐주도록 할게요. 어차피 당신은 곧 오빠한테 버림받을 테니까요.”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지유는 벌써 이긴듯한 승아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지유는 주먹을 꽉 쥐더니 자기도 모르게 배를 바라보았다.아이가 생긴 이상 희망은 품어야 했다.사무실에 도착한 후 그녀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대표이사실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현은 온라인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보더니 잠깐 회의를 스톱하고 물었다.“무슨 일 있습니까?”“네.”이현은 컴퓨터를 끄고 소파에 앉아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일인데?”그의 맞은편에 앉아 눈을 똑바로 마주쳐오는 모습이 뭔가 중요한 할 말이 있는 사람 같았다.지유는 순간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 일단 아무 말이나 던졌다.“아까 올라오는 길에 노승아 씨를 만났어요. 즐거워 보이더라고요.”“할 말이 그거야?”지유는 입을 달싹이더니 그와 다시 눈을 마주치고 본론을 꺼냈다.“저한테 그날 밤 함께 했던 그 여성분 찾아내라고 하셨잖아요.”“그랬지?”이현은 아직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만약에 말이에요. 정말 만약에 그 여성이 임신했다고 하면 대표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지유는 이현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서둘러 한마디 덧붙였다.“술 취한 상태라 아무리 대표님이어도 피임을 못 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만약 그 여성분이 임신이라도 했으면 어떡하실 생각이세요?”“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데 참 세심해?”지유는 흠칫하더니 이내 최대한 자신은 그날 밤 그 여자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말했다.“우리 아직 이혼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만약 다른 여자가 대표님 아이를 임신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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