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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Author: 류한나
전화기 너머에서 확신하지 못하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온지유 씨가 사무실에 있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는 건 맞습니다만 쭉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현도 한때는 지유를 의심한 적이 있었으나 언제나 선을 지키고 실수 한 번 없었던 그녀였기에 그 의심도 머지않아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그날 일에 관해 물었을 때 그녀가 많이 긴장한 듯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현은 전화를 끊고 또 컴퓨터도 끄더니 드디어 서재에서 나왔다.

안방에 도착해 보니 불은 켜져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지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핸드폰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이리저리 찾아보다 그 어디에도 지유가 보이지 않자 이현은 결국 도우미에게 물었다.

“집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아까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긴 했습니다만...”

도우미도 잘 모르는듯한 눈치였다.

지유는 별장 그 어디에도 없었고 핸드폰을 지니지 않아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이현은 슬슬 걱정됐는지 다급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유가 사라졌습니다. 지금 당장 어디 있는지 찾아내세요!”

...

지유는 힘겹게 눈꺼풀을 떴다.

그녀는 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운 듯 눈을 뜨자마자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병원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깨셨어요, 환자분?”

그때 마침 간호사가 옆으로 다가왔다.

지유는 그녀를 보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왜 여기...”

“환자분이 길가에 쓰러져있던 걸 어떤 마음 착한 분이 병원에 데리고 오셨어요. 핸드폰도 없이 왜 추운 날 혼자 밖에 돌아다니셨어요. 그분 아니었으면 환자분 정말 길가에서 동사할 수도 있었다고요.”

지유는 그제야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밖을 보니 벌써 다음날 낮이었다.

“저혈당 때문에 쓰러지셨어요. 핸드폰 빌려드릴 테니까 얼른 가족분들에게 연락하세요. 입원 절차도 아직이라 그것도 해주시고요.”

가족?

부모님에게 연락하면 걱정하실 게 뻔했다.

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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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서우는 밖으로 나간 후 얼른 얼굴을 두드리며 자신을 진정시켰다.절대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는 안 되었다.“은 선생님?”은서우가 돌아보니 자신이 진료했던 환자의 가족이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고 갑자기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변했다.물어보니 지병이 재발한 것이었다.그녀는 환자를 데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세심하게 검사를 시켰다. 5분 후, 그녀는 결과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위장에는 문제가 없는데 어디가 불편한 거죠?”그녀는 환자의 가족이 잘못 알고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그 어머니는 우물쭈물했다.은서우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괜찮으니까 말해봐요.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에요. 애가 어디가 아픈지 제게 말씀해주세요.”그러자 그 어머니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은서우는 멍해 있다가 다급히 위로했다.“울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말씀하세요.”중년 여자는 한참을 울다가 멈추고 자기 딸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은서우가 하마터면 경찰에 신고할 뻔했다.그녀는 전형적인 가정주부였다.학력이 높지 않고 농촌 출신인 그녀의 고향에는 여자가 나이가 들면 중매쟁이가 찾아오고 집안의 부모님도 하루빨리 자식의 혼사를 결정했다.그녀는 마을에서 자기보다 여덟 살 많은 남자와 결혼했고 결혼 후 딸을 낳았다. 그러나 아들을 중시하는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계속 가혹하게 대했다.여자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날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는데 얼마 전 그 짐승이 내 딸에게 손을 댄 걸 알았어요. 이제 겨우 몇 살이라고. 어떻게 아버지가 딸에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죠?”은서우는 깜짝 놀랐다.이 사실은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그녀는 즉시 또 한 번의 검사를 준비했다.그 여자아이가 전에 위장염이 있어서 아까는 내과 검사를 했지만 이번에는 부인과 검사였다.검사 결과 은밀한 부위가 이미 찢어져 있었다. 은서우는 검사 결과를 보며 손이 부들부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824화

    하지만 그는 해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차라리 오해하는 것이 나았다.여자 간호사는 은서우를 보고 또 인명진을 보더니 굴욕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다.은서우는 그녀와 부딪히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섰다.“난 방금... 실례한 줄 알았어요.”그녀는 머뭇거리며 말했다.방금 인명진의 말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듯한 질식감도 사라지고 호흡도 원활해졌다. 다만 가슴에 약간의 질투가 남아 있어 방금 간호사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계속 추측했다.인명진은 그녀를 쳐다보며 설명했다. “방금 그 사람, 난 몰라요. 노크하고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우 씨가 들어왔어요.”은서우의 안색이 훨씬 좋아졌다. “아마 최근 병원에서 도는 소문 때문일 거예요.”인명진은 미간을 찌푸렸다.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헛소리하는 사람들을 잘 단속해야겠다고 다짐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요?”은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충격으로 인해 10할 기쁘던 심정이 2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나 시험에 통과했고 이제 논문 발표만 남았어요.”인명진은 미간을 펴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논문은 어떻게 쓰는지 알아요?”은서우는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인명진은 컴퓨터를 켜고 자신의 논문을 그녀에게 참고로 보여주었다.도중에 실수로 소매가 부딪쳤다. 방금 인명진이 여자 간호사에게 냉담하게 대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또 그에게는 결벽증이 있었고 그녀는 방금 많은 것을 만졌지만 미처 손을 소독하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그녀는 바로 손을 거두었다.“깜빡하고 소독하지 못했어요. 지금 당장...”“필요 없어요. 와서 이 부분을 어떻게 쓰는지 보세요.”인명진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은서우는 멍하니 있다가 그의 의자로 끌려갔다. 자세를 보면 인명진이 거의 뒤에서 그녀를 안고 있었다.쿵쿵쿵, 가슴이 너무 뛰어 목구멍을 통해 튀어 나올 것 같았다.너무 가까웠다.가까이서 그녀는 남자의 차가운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끝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823화

    은서우가 그렇게 말해도 병원에서의 루머를 막을 수는 없었다.어디서 흘러나온 소문인지 그녀가 인명진과 관련이 있고 낙하산 인사라는 소문이 자자했다.이혜성은 화가 났다. “그 사람들 정말 웃기네? 질투 나면 당사자 앞에서 말하면 되지 꼭 뒤에서 잔꾀를 부려야겠어?”오히려 은서우가 그녀를 위로했다.“일단 화내지 말고 차 한 잔 마시며 목부터 축여.”그녀가 인터넷에서 구매한 차였다.정통 대홍포라고 하는데 정품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마셔보지 않았다.이혜성은 한 모금 마시더니 입맛을 다시고 나서야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소문의 주인공은 너잖아! 근데 화가 전혀 안 나?”은서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난 이미 겪었던 일들이라 별로 화날 것도 없어.”소문을 들었을 때 약간 그 느낌이 그립기까지 했다.경성의 그 병원에 있을 때, 그녀가 인명진과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아주 듣기 싫은 말도 많았었다.그래서 그녀는 이미 습관 되어 화가 나지 않았다.이혜성은 듣고 나니 그녀가 더욱 불쌍하여 머리를 쓰다듬었다.“우쭈쭈 우리 서우, 많이 힘들었어요?”“닥쳐.”은서우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친해졌고 말도 전처럼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참, 너 오늘 성적 나오는 날이지?”그렇다.그녀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은서우는 정말 까먹을 뻔했다. 그녀는 얼른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했다.역시 메일 한 통이 들어왔다.긴장과 설렘을 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누른 후 환호성을 질렀다.“나 통과했어!”은서우는 너무 기뻐 소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졌다.시험에 통과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이혜성도 진심으로 기뻐했고 밖에서 아직도 소문을 퍼 나르고 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너 실력 없다고 떠드는 사람들,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보라 그래. 흥! 실력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학원에 가겠어?”은서우가 그녀를 위로했다.“됐어, 그만해. 그런 사람들 때문에 화내지 마. 참,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822화

    은서우와 아주머니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끌려가면서도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인명진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쏠렸고 그가 의미심장하게 묻는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 혹시 열이 나요?”그가 말을 하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로 향했고 그녀는 급히 그의 손길을 피했다.열이 나는 게 아니었고 그가 이마를 만진다면 아마 얼굴이 더 빨개질 것이다.“괜찮아요. 그냥 좀 더워서 그런 것 같아요.”말하면서 아주 더운 듯 손으로 부채질했다. 그녀의 작은 속임수를 다 꿰뚫어 보고 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웃음을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 순간, 먼저 다가가라는 김민재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좋은 생각인 것 같다.그날 저녁, 은서우는 요리 실력을 한껏 뽐냈고 맛있는 대게 요리를 만들었다. 인명진도 그녀의 체면을 생각해 여러 마리의 대게를 먹었다.한편, 병원에서의 업무는 이전에도 했던 일이라 그는 부임한 이후 바로 능숙하게 병원 업무를 처리했다.병원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은서우의 시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인명진한테서 부원장을 뽑을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를 향해 놀란 표정을 지었다.“설마 나한테 부원장 자리를 맡으라는 건 아니죠?”“맞아요. 당신한테는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날 너무 높게 평가한 것 같아요.”그동안 열심히 한 건 사실이다. 그녀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걸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 또한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노력만 있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고 경력이 필요했다. 의사한테 가장 중요한 건 경력이다. 능력 있는 원장과 부원장은 거의 다 4, 50대의 의사들이었다. 그 생각을 하며 그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821화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정리 좀 하고 나서요.”그녀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그의 집에 도착해서 보니 그곳은 지난번에 그가 임시로 살던 집이었고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긴 친구네 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잠깐 빌려 쓴 거라고 하더니 왜 아직도 여기 살아요?”“친구한테서 샀어요.”그는 말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시선이 향했고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나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인명진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녀 또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지난번 그 가사 도우미의 모습이 보였다. 두 번째 만남이라 가사 도우미는 그녀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다만 중간에 가스가 끊겼고 냉장고 안의 야채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가사 도우미는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아이고, 이를 어째요? 장 보는 것을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지금 바로 가서 사 올게요.”“아닙니다. 저희가 갔다 올게요.”이때, 인명진이 한마디 내뱉었다. 그 말에 가사 도우미는 물론 은서우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싫은 것은 아니었다. 장을 보는 것뿐이었고 예전에도 많이 했던 일이다. 다만 인명진과는 단둘이 장을 본 적이 없었다. 함께 장을 보고 식사를 하는 건 그녀의 기준에서 매우 사적인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심장이 저도 모르게 쿵쾅거렸다. 그녀의 표정 변화를 한눈에 알아본 가사 도우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얼른 갔다 오세요.”인명진은 외투와 차 키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차를 몰고 근처에 있는 마트로 가서 야채와 고기 그리고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시간이 늦은 편이 아니라 아직은 세일을 하지 않아 가격이 좀 비쌌다.은서우는 혼자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조금 더 늦게 올걸.”인명진이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옆에서 할인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대게를 판매하고 있었다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820화

    한껏 조롱하고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은서우는 그제야 원장이 자리를 옮긴 뒤 병원에 자리가 하나 비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말인 즉 누군가 이 병원으로 온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펜을 깨물며 중얼거렸다.“누구일까?”그러나 이혜성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이혜성은 병원의 소식통이었다. 병원의 소식이라면 그녀가 모르는 것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가슴을 치며 내기를 걸었다. “내가 장담하는 데 분명 배경이 있는 사람일 거야. 그것도 엄청난 배경을 가진 사람.”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알아내지 못할 리가 없다. 은서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가십거리에 대해 그녀는 대충 흘려듣고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오든 그게 그녀랑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윗사람들이니 누가 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이 오는 것도 아니고.그런데 뜻밖에도 정말로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히 알고 있는 사람.원장 취임식 날, 은서우는 원장 사무실에 물건을 건네주러 갔다. 마침 새로 온 원장의 얼굴이라도 좀 볼까 하고 문을 열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인명진 씨, 당신이 여긴 어떻게?”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너무 우스꽝스러웠던 건지 그가 환하게 웃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앞에서 이렇게 활짝 웃었고 얼굴의 차가움도 싹 사라져 버렸다. “놀랐어요? 서프라이즈해 주고 싶었는데. 당신 표정을 보니까 왜 경악하는 것 같지?”은서우는 손을 뻗어 가슴을 누를 뻔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던 그녀는 그의 말에 속으로 중얼거렸다.‘당연히 놀라지 어떻게 안 놀랄 수가 있겠어요?’정말 놀라서 죽을 지경이었다. “왜 여기로 온 거예요? 경성에 잘 지내고 있었잖아요. 왜 갑자기...”병원 사람들은 새로 온 원장이 분명 배경도 있고 실력도 있다고 추측했지만 그녀는 그 사람이 인명진일 줄 전혀 몰랐다.알았다면 분명히 그를 막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819화

    인명진의 말에 은서우는 잠시 멍해 있다가 곰곰이 생각한 후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그냥 여기 있을래요.”이번에는 인명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건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그 당시 경성을 떠나온 건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사람들이 날 뭐 어찌하겠어요? 죽이기라도 하겠어요? 그저 내가 귀찮아서 도망쳐 온 거예요.”가정은 한 사람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소씨 가문에 자란 그녀는 늘 일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귀찮아했다. 그러나 많은 일을 겪고 나니 이젠 두렵지가 않다. 귀찮은 게 뭐가 어때서?결국은 다 해결할 방법이 있는 것인데.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흘렸다.잠시 후,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내가 당신의 마음을 저버린 건가요?”“아니요.”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웃음소리가 처음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봄날의 바람처럼 따뜻하고 연인의 목소리처럼 다정했다.“그렇게 생각하다니 나도 기뻐서요.”이 일은 그렇게 지나갔고 인명진은 더 이상 전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얼마 후, 그녀는 시험을 마쳤다. 시험 당일 인명진은 추천서를 메일로 보냈다.성적이 나오기 전에 뭐 하러 이리 급히 보냈냐고 했더니 그가 그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르긴요. 언젠가는 쓰게 될 텐데.”그녀는 살짝 혀를 내둘렀다.왠지 모르게 인명진이 그녀보다 더 자신이 있어 보이는 것 같았다.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다시 말길을 돌렸다.“요즘 많이 바빠요?”“왜 갑자기 그걸 물어요?”“그냥... 오랜만에 통화하는 거 같아서요.”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예전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통화했었다. 두 사람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고 익숙하다 못해 그가 옆에 없어도 항상 곁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게 점점 더 익숙해졌다. 그래서 연락을 안 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적응이 잘 안됐다. 오늘 이 전화도 그녀가 먼저 한

  •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1818화

    그의 말을 들었지만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 저항하는 인명진이 있다고 생각하니 전혀 외롭지가 않았다. 돌아온 후, 이혜성은 협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은서우는 일부분을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혜성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세상에. 그래서 정말 거절했단 말이야? 너 진짜 대단하다. 존경심이 막 생겨.”그녀는 이혜성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그만해. 그만 놀려. 나 정말 긴장돼 죽는 줄 알았어.”은서우는 한숨을 내쉬며 겉옷을 벗더니 의자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 “왜 그래? 조금 전까지 내가 그렇게 칭찬했는데. 왜 갑자기 김이 빠진 거야? 들어올 때 그 패기는 다 어디 갔냐?”“패기는 무슨. 다리가 떨려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어.”은서우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비웃었다. 옛날 사람들이 툭 하면 무릎을 꿇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긴장이 안 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돌이켜 보니 아까 겉으로는 괜찮은 척 보였지만 사실은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날 저녁, 인명진은 이미 소식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도 별일 없었죠?”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은서우는 전화를 받으며 책상 위의 물건들을 정리했다.“뭐 늘 똑같죠. 당신도 병원에서 근무하니까 잘 알 거 아니에요?”매일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특히 이 병원에는 외과의사가 몇 명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교대로 당직을 설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툭하면 그녀를 외과로 불렀다. 그녀는 혼자 내과와 외과 사이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쳤다. 전화기 너머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잘못 들은 줄 알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방금 누가 웃었어요?”웃은 사람이 인명진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 주변에 있는 누군가 웃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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