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Chapter 1881 - Chapter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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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1화

이혜성을 빤히 보던 은서우는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고개를 젓다가 손에 든 부케를 보았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했다. 더는 부케를 누구에게 줘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빠르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부케를 던지는 순서가 되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서우는 부케를 어느 한 방향으로 높이 들어 올렸지만 꽃은 떨어지지 않았다. 던지려고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긴장감이 조금 풀리게 되었다. 그 순간 은서우는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이혜성이 있는 곳으로 휙 던져버렸다.지금 이 순간 이혜성 옆에 있던 사람들은 뭔가라도 눈치챈 것처럼 전부 옆으로 비켜주었다. 부케는 이혜성이 있는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혜성은 부케를 받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그녀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그녀가 받지 않는다면 부케는 잔디 바닥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부케가 바닥에 떨어지려고 하자 이혜성은 결국 앞으로 달려가 떨어지기 직전에 품으로 받아버렸다.그런데 행동이 너무도 컸는지 저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밟게 되었다. 중심을 잃은 그녀는 넘어질 것이 분명했지만 뜻밖에도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의 따스한 품이 느껴졌고 머리 위로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괜찮아요?”이혜성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고개를 저었다.“네, 괜찮아요.”너무도 다급하게 움직였던 탓인지 아니면 남자의 품으로 넘어지면서 무언가가 남자의 옷에 걸렸던 탓인지 그녀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단추 하나가 잔디 위로 떨어졌다.민망해진 이혜성은 얼른 허리를 굽혀 줍고 그에게 건넸다.“이거 돌려드릴게요.”말을 마친 후 이상한 기분에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그에게 단추를 건넸다.“전 바느질 할 줄 몰라요.”그러자 상대는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정식적인 절차가 끝나고 다들 잔디 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외에서 진행하는 결혼식이었던지라 그들은 사전에 함께 할 수 있는 게임도 준비했고 뷔페와 술도 가득했다.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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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2화

이혜성을 언급하자 은서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혜성이가 마지막에 마음 약해져서 부케를 받아서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헛수고가 될 뻔했잖아요.”오늘 이혜성의 옆에 서 있던 사람들도 전부 미리 그녀의 말을 듣고 피한 것이었다. 다들 그녀가 이혜성에게 부케를 던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이혜성이 부케를 받았다. 그런데 이혜성도 피할 줄은 몰랐다. 만약 정말로 피했다면 그녀의 계획은 실패로 넘어가게 된다.“그러고 보니.”은서우는 뭔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인명진을 보았다.“오늘 혜성이가 넘어질 뻔한 걸 잡아준 사람이 누구예요? 애인이 없겠죠? 겉보기엔 꽤 괜찮은 사람 같던데. 애인이 없다면 혜성이한테 소개해주고 싶네요.”그러자 인명진은 바로 미간을 구겼다.“오늘은 서우 씨와 나의 결혼식인데 다른 남자 볼 여유가 있나 봐요.”죄를 씌우려면 얼마든지 핑계가 있다고 은서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인명진을 째려보았다. 곧 화를 낼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인명진은 그제야 장난기를 거두고 말했다.“내 친구예요. 인성은 문제없고 예전에는 바이오에 관한 기술을 연구했던 사람이기도 하죠.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뒀지만요. 소개하는 건 딱히 문제가 되진 않는데 혜성 씨가 흔쾌히 소개받을는지는 모르겠네요.”은서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혜성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감정이라는 것은 노력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은 운명일 때도 있었다.“아무리 운명에 맡긴다고 해도 부케도 이미 받았고 이참에 소개까지 해주면 남은 건 혜성이가 알아서 하겠죠.”인명진은 화장을 고치는 은서우의 옆에 한참 머물렀다. 옷도 갈아입은 은서우가 문밖을 나서자 이미 그들이 술잔을 든 채 문 앞에서 인명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술잔들은 인명진을 위해 준비한 것임이 분명했다. 인명진은 분위기를 깨지 않고 받아 들었다. 일전에 이미 숙취해소제와 위장약을 챙겨 먹었던지라 그들과 즐겁게 웃으며 술을 마셨다.주량을 조금 넘어버리자 은서우는 슬쩍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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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3화

은서우는 바로 다가가 이혜성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인명진과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도 돌아갔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던 은서우는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오니 집안 곳곳에 그녀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있어 은서우는 마음이 너무도 편안해졌다. 예전이었다면 볼 수 없는 집안 모습이었다.“수고했어요.”어깨에 커다란 두 손이 올려지고 적당한 압력으로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은서우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의 손을 잡았다. 인명진은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내리며 말했다.“괜찮으니까 긴장 풀어요.”은서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렇네. 깜빡 잊고 있었네. 지금과 예전은 다르잖아. 난 이젠 명진 씨 아내라고.'“고마워요.”인명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대체 언제까지 거리감이 느껴지게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셈이에요? 이참에 우리 말도 놔요.”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보는 인명진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인명진은 민망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그윽한 모습으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욕실에 물 받아뒀는데 오늘은 같이 씻을까?”은서우는 하마터면 말하는 법을 잊을 뻔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인명진의 목으로 올라간 팔이 지금 그녀의 기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인명진은 바로 그녀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렸다. 신혼 생활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혼자 살던 때와 달리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가야 했다. 처음에 은서우는 너무도 적응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옆에 누군가 누웠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멍한 얼굴로 보다가 어젯밤 보냈던 오붓한 시간들이 떠올라 얼굴이 한참 동안 붉어졌다.함께 사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더는 낯설어하지도 않았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 적응되었고 화목하게 지냈다. 병원으로 오자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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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4화

“응, 내가 보육원도 이미 알아봤어. 그런데 왜 자꾸 존댓말이야?”인명진이 말하자 은서우는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반말은 아직 좀 어색해서요. 넌 나중에 천천히 할게요. 그런데 이미 알아봤다고요? 전에... 새로 지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인명진은 고개를 저었다.“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새로 짓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사람들의 믿음을 얻기도 힘들잖아. 새로 지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믿고 아이들을 맡기겠어.”그들의 보육원에는 원장과 보육교사도 필요했다. 받는 월급이 적었던지라 보육원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 시간을 낭비라면서 보육원에 일하려 하지 않았다.“마침 적당한 보육원이 하나 있더라고. 운영 부진으로 폐업되었는데 그곳엔 여전히 보육교사들과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살고 있어. 보육원이 파산당하긴 했지만 갈 곳도 없어서 계속 남아 있었나 봐. 게다가 보육교사들도 어떻게든 다시 보육원을 되살리려고 애를 쓰고 있더라고.”그의 말을 들은 은서우는 눈을 반짝였다.“그래서 새로 짓지 않고 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한 거예요?”그녀는 기쁜 얼굴로 인명진의 얼굴을 감싸더니 뽀뽀를 해주었다. 쪽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려 퍼졌다.“완전 좋은 생각이잖아요!”그러나 은서우는 너무 기쁜 나머지 점점 어두워지는 인명진의 눈빛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 순간 그녀는 인명진에게 확 끌어당겨 졌다.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그의 품에 꽉 끌어안겼다. 이내 그녀의 입술로 그의 입술이 닿더니 거친 키스가 이어졌다.점차 숨이 차는 은서우는 그의 옷깃을 꽉 잡았다.“잠깐만요... 여긴 병원이잖아요. 명진 씨 진정 좀 해요.”인명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병원으로 돌아온 뒤로 고강도의 업무에 시달렸던지라 두 사람은 며칠 동안이나 부부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인명진은 현재 불만이 가득 쌓인 상태였다. 겨우 이런 기회가 찾아왔으니 그는 당연히 놓칠 생각이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인명진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얼굴이 빨갛게 물든 은서우는 그를 밀어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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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5화

기획안은 빠르게 완성되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래도 직접 보육원으로 찾아가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은서우는 시간을 내서 인명진과 함께 보육원으로 출발했다.보육원은 위치가 아주 좋았지만 그다지 환영받지 않았다. 마치 사람들에게 잊혀버린 곳처럼 보육원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전부 낡은 것이었고 건물도 몇십 년 전에 지어진 것처럼 대문마저 녹슬어 있었다.보육원으로 도착했을 때 은서우는 바로 페인트 떨어진 벽을 보게 되었다.“이런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요? 확실해요? 이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집이잖아요.”그녀가 묻자마자 모직 코트를 입은 여자가 안에서 나왔다. 그녀의 말을 들은 것인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여긴 보육원인데 올해 가을에 철거한다는 결정이 났어요. 보육원엔 아직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과 보육교사, 그리고 저까지 전부 합쳐서 총 마흔 명이 있어요. 만약 이 보육원이 철거된다면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전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지금까지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지금까지 여기서 버티게 되었네요. 그러니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은서우는 중년의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온화하게 생겼지만 입고 있는 모직 코트는 낡아 색도 바랬다. 보아하니 아주 오래 입은 것 같았다. 여자의 옷차림에서도 보육원이 얼마나 가난한지 알 수 있었다.“죄송해요. 그런데 혹시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은서우는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알고 바로 사과했다. 중년의 여자는 이곳 보육원의 원장이라고 그들에게 소개했다. 그 말은 들은 은서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원장이라니 말이다.“아가씨, 뭘 그렇게 놀래요? 대부분 아가씨와 같은 반응이더라고요. 밖은 추우니까 일단 들어가서 계속 얘기해요.”원장은 그들을 안으로 초대했다. 안으로 들어간 은서우는 이곳 보육원이 얼마나 가난한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곳은 정말이지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다. 원장이 그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음료수도 그저 따듯하게 끓인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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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6화

은서우는 원장이 정말로 너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원장이 진정하길 기다린 후 그녀는 보육원의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장은 흔쾌히 대답했다.“그래요. 제가 우리 아이들을 보여드릴게요. 다만 아이들 중에 조금 혼자 동떨어져 있는 특별한 아이가 보일 거예요. 그래도 너무 개의치 말아요.”원장은 말을 하다가 진지해졌다. 은서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조금 놀랐고 원장의 입에서 나온 특별한 아이가 궁금해졌다.빠르게 그들은 어느 한 교실로 도착했다. 이곳에서 보육교사들은 하나의 방을 쓰고 있었고 다른 곳은 학교 교실처럼 만들었다. 보육원에 아이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비를 대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지원을 받는 것도 너무도 오랜만이었다.하지만 학교 다녀야 할 아이들이 아무런 지식도 없는 채 자라게 될까 봐 보육교사들은 서로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지금 교실에선 한창 수업 중이었다.은서우는 갑자기 들어가면 아이들이 놀라게 될까 봐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창문으로 조용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빠르게 그녀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남자아이를 발견했다.다른 아이들은 아주 활발하게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도 하고 함께 게임도 했지만 유독 구석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만 혼자 블록 하나를 손에 꼭 쥐고 멍 때리고 있었다.“원장님이 말씀하신 특별한 아이가 혹시 저 아이인가요?”마음이 흔들린 은서우는 바로 물었다.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를 보는 두 눈빛엔 근심과 자애로움이 가득했다.“네, 저 아이가 맞아요. 아이의 이름은 천유민이고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아빠와 이혼한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원래라면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아이의 아빠도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버렸어요. 더는 남은 가족이 없어 우리 보육원으로 오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아주 활발하고 잘 웃는 아이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후로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대요. 저와 선생님들이 아무리 말을 걸어봐도 계속 저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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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7화

은서우는 고개를 끄덕였고 보육교사가 나가자마자 아이가 앉아 있는 책상 옆으로 다가갔다. 몸을 굽힌 그녀는 블록만 멍하니 보고 있는 남자아이를 보았다.“그거 어떻게 맞추는 건지 알고 있는데. 가르쳐줄까?”남자아이는 멈칫했다. 은서우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못 본 척했다.“블록 맞추는 거 어렵지? 그리고 네가 들고 있는 그 블록은 하나뿐인 것 같네. 혹시 블록 더 없어?”남자아이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은서우는 아이가 자신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아이는 입을 열었다.“네. 더 있어요. 방에 있어요.”간단하게 대답했지만 아이가 입을 열었던 사실에 은서우는 충분함을 느꼈다. 아이가 입을 열기만 한다면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러고 난 후 은서우는 아이를 따라 방으로 가서 블록을 가져왔고 그렇게 오후 내내 블록을 맞췄다.도중에 보육교사가 아이의 식판을 들고 들어왔지만 아이는 음식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설령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먹지 않았고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은서우는 당연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열심히 블록을 맞추고 있는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내가 방법을 알려주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더 알고 싶어? 그런 거라면 일단 밥부터 먹을까?”“배고프지 않아요.”아이가 말을 하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은서우는 못 들은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내가 배고픈걸. 우리 먼저 밥 먹으면 안 될까?”남자아이는 한참 생각했다. 기껏해야 다섯 살쯤 되는 아이가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은서우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머리가 좋았다. 심지어 어느 한 분야에서 천재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가는 평생 바깥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침묵하고 있는 것도 생각에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말을 들을지 말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은 좋은 현상이었기에 은서우는 인내심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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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8화

원장은 아주 기뻐했다.“전부 서우 씨 덕분이에요.”은서우는 겸손한 얼굴로 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고소한 밥 냄새를 맡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은 확실히 아이들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그전에도 그녀는 자주 밥 냄새를 맡았다.하지만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상하게도 지금은 너무도 메슥거렸다. 속에 있는 것이 역류하는 느낌에 은서우는 빠르게 쓰레기통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 헛구역질해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원장은 긴장한 얼굴로 보았다.“서우 씨, 왜 그래요. 괜찮아요? 속이 안 좋은 거예요?”은서우는 대답하려고 했지만 순간 머릿속에 자신의 생리가 늦어졌다는 것을 떠올랐다. 이 생각에 저도 모르게 긴장해진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올려 배를 만졌다. 그녀의 생리 주기는 절대 늦어지는 법이 없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서우 씨, 속이 안 좋은 거라면 얼른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봐요.”원장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가 그녀를 정신 차리게 했다. 은서우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울렁거리는 속을 무시할 수 없었던 그녀는 더는 보육원에서 머물지 않았고 원장과도 먼저 돌아가 보겠다고 말했다.병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명진을 찾아가지 않고 산부인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 의사는 마침 은서우와 아는 사람이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의사는 바로 웃으며 말했다.“축하해요. 은 선생님. 임신 3주 차네요.”엄청난 소식에 은서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배에 올리며 눈을 깜빡였다.“정말, 정말로 임신한 거예요?”검사 결과는 확실히 그녀가 임신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를 본 은서우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인명진과 밤을 보낸 후 단 한 번도 피임을 한 적 없었다. 여하간에 두 사람은 나이가 꽤 있었고 게다가 은서우는 집안의 영향으로 항상 아이를 바랐다. 아이와 남편과 함께 오손도손 사는 것이 꿈이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아이가 찾아올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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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9화

은서우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얼른 내려달라고 했다. 인명진은 그제야 진정할 수 있었다.“미안해. 내가 깜빡 잊고 있었어.”인명진은 조금 전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 하지만 은서우는 아무렇지 않았다. 비록 임신 초기엔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끌어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와중에 은서우는 보육원이 떠올라 잠깐 망설였다.“이 상태면 그럼 보육원은...”인명진은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가고 싶어?”“당연하죠!”은서우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보육원은 아직 공사도 시작하지 못했을뿐더러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가 나아지는 모습도 계속 지켜보고 싶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아이의 마음의 문을 열었는데 어떻게 도중에 그만둘 수 있겠는가.하지만 은서우는 인명진이 허락해주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 그가 침묵하고 있던 때 그녀는 이미 그를 설득할 말을 머릿속에 생각해두었다. 입을 열려던 순간 인명진이 먼저 말했다.“그럼 가. 조심하기만 하면 괜찮을 거야.”은서우는 놀란 얼굴로 그를 보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막아서 뭐해. 결혼은 자유를 속박하는 게 아니야. 난 네가 여전히 너로 살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말이야.”그의 말에 은서우는 감동하고 말았다. 그와의 결혼은 너무도 잘한 선택인 것 같았다. 다만 그녀는 기껏해야 한 달 정도 된 배 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도 무리하면 안 되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이틀에 한 번씩 찾아가던 보육원을 사나흘에 한 번씩 방문했다.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던 천유민은 사흘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녀에 먼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보육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은서우는 놀라긴 했지만 기쁘기도 했기에 아이가 이끄는 대로 들어갔다. 빠르게 아이는 그녀를 책상 앞으로 데리고 왔다.이 책상은 천유민이 평소 수업을 들을 때 사용하는 책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완성된 블록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이 블록은 그날 은서우가 빌려 갔었기에 절반만 맞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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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0화

웃고 있던 은서우는 그만 굳어진 얼굴을 하고 말았다.“소태훈?”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았다.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사람은 정말로 소태훈이었다. 은서우는 그를 만나는 것이 얼마 만인지 알지 못했다. 만약 오늘 소태훈이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여하간에 그때의 기억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괴로웠으니 말이다.소태훈은 휠체어 바퀴를 돌려 그녀의 앞으로 갔다. 무언가 그녀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검은색 승용차가 은서우 앞에 멈춰서며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안에 있는 사람은 인명진이었다.인명진도 소태훈을 발견한 듯했지만 소태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오로지 은서우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타. 집으로 가자.”인명진이 입을 열자 유난히도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그와 전화 통화할 때 이미 그가 곧 도착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가 그녀의 앞에 있어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돌려 뒤에 있는 소태훈을 힐끗 보았다.“지금 상태가 꽤 많이 나아진 것 같네. 약은 이미 끊은 것 같고 다른 건 할 말이 없으니까 이만 갈게.”말을 마친 은서우는 차에 올라타려고 했다. 한번 떠난 사람은 뒤돌아보는 법이 없었고 기억이란 쉽게 잊히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은서우는 더는 소태훈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소태훈은 뻔뻔하게 그녀를 다시 불러세웠다.“네가 날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 나도 알아! 하지만 그래도 우린 20년 넘게 함께 살았던 가족이었잖아. 곧 태연이 기일이야. 설마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은 아니지?”은서우는 그대로 멈칫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소태훈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깊은숨을 내쉰 후 계속 말을 이었다.“한 번이라도 와줘. 함께 식사라도 하자. 예전의 일은 나와 부모님이 너한테 못되게 굴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동안 우린 줄곧 널 그리워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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