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Chapter 1871 - Chapter 1880

1945 Chapters

제1871화

좁은 욕실 공간에 뜨거운 물이 가득 차올랐고 은서우는 빌린 속옷 세트를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이즈가 커서 입으면 헐렁했고 어깨끈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아무리 끈을 조절해 봐도 여전히 몸에 맞지 않았고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내서 속옷을 사야겠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나서 그녀는 목욕 가운을 두르고 욕실을 나섰다.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어깨에 걸쳐져 있었고 물방울이 머리끝을 따라 미끄러져 카펫 위로 떨어졌다.머리를 닦고 있을 때, 갑자기 초인종이 맑게 울렸고 그녀는 흠칫했다.‘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혜성인가?’그녀는 슬리퍼를 끌고 빠른 걸음으로 문 앞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인명진이 꼿꼿한 자세로 문밖에 서 있었고 그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황급히 목욕 가운을 단단히 감싼 뒤 천천히 문을 열었다. 긴장한 탓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원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어요?”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뺨을 쳐다보던 그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그가 손에 들고 있던 옷을 건네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급하게 짐을 싸느라고 아마 깜빡하고 못 챙긴 물품이 있을 것 같아서요. 마침 한 벌 더 준비했으니까 아마 쓸모가 있을 거예요.”그녀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의 목소리가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확인해 보니 속옷이었고 사이즈는 평소 그녀가 입던 사이즈였다.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어색한 분위기에 발가락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가 한참 만에 겨우 한마디 꺼냈다.“정말 고마워요. 방금 혜성이한테서 빌렸어요.”약간 얼굴을 찡그리던 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마음속으로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고 생각했다. 은서우가 한발 먼저 남에게 도움을 청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받아요. 하나 더 준비해도 나쁠 게 없잖아요. 내일 사러 나가기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이혜성 씨의 사이즈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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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2화

이혜성은 그제야 하품을 하며 입을 열었다.“알았어. 10분만 기다려.”두 사람은 곧 호텔을 나와 길을 따라서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이국적인 거리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다양한 가게들로 가득했다.마침내 길모퉁이에서 속옷 가게를 찾았고 은서우는 이혜성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속옷을 골라 입어본 후 마침내 몸에 맞는 속옷을 샀다.계산하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인명진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전화기 너머로 낮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 있어요? 호텔 로비에 나왔는데 서우 씨가 안 보여서요. 오전에 화성 제약 쪽 사람들과 만나기로 약속했잖아요. 약속 시간 거의 다 되었어요.”은서우는 황급히 대답했다.“뭐 좀 사러 나왔어요. 금방 들어갈게요. 죄송해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이혜성을 끌고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고 뛰어가면서 이번 미팅이 자신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머리카락은 이미 바람에 헝클어져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저 멀리 로비 중앙에 서 있는 늘씬한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초조한 얼굴로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미친 듯이 달려갔고 숨이 차오르고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정말 죄송합니다.”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그가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표정이 환해졌다. 붉어진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보니 마음속의 불쾌함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괜찮아요. 얼른 차에 타죠. 밖에 차 대기 중입니다.”이혜성은 뒤를 따라가면서 몰래 인명진을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평소에는 침착하고 냉담해 보였는데 왜 서우와 연관된 일이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거지? 재미있네...’세 사람은 황급히 차에 올라탔고 바로 화성 제약으로 향했다.차 안의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은서우는 숨을 고르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프로젝트 자료를 되짚어 보면서 컨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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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3화

인명진의 표정이 진지해지고 수시로 옆에 있는 은서우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며 약 성분을 토론하고 있었다. 임상시험에서 발견한 문제에 관해서도 토론을 하며 호흡이 척척 맞았다.옆에 앉아 있던 이혜성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곤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아 묵묵히 화성제약에서 나온 직원들의 안색을 관찰했다.그러다가 무심코 그녀는 임성한의 비서가 인명진과 은서우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의미심장한 눈빛을 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그녀는 이내 생각에 잠겼다.그들의 열띤 토론 끝에 초보적인 방안이 점차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임성한은 얼굴에 웃음기를 띤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똑똑 두드렸다.“오늘 토론 덕에 그래도 뭔가 성과를 얻은 것 같으니까 이쯤에서 끝내요. 다들 쉴 사람은 쉬고 점심 식사할 사람은 식사하고 오후에 다시 구체적으로 연구해 봐요.”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 임성한은 일부러 은서우 앞으로 다가가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말했다.“은 선생님은 젊은 나이에 정말 대단하세요. 뭐든 척척 이해하시고 앞으로의 협력에서도 티키타카를 기대하고 있을게요.”은서우는 겸손하게 웃기만 할 뿐 자신을 시험하는 듯한 임성한의 눈빛을 눈치채지 못했다.점심이 되자 건물 최상층에 있는 구내식당에선 퀄리티가 높은 음식들이 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프로젝트에만 신경이 쏠렸던 은서우는 입맛이 없었던지라 대충 몇 젓가락 집어 먹다가 내려놓고 다시 연구 자료를 훑어보았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인명진이 나직하게 말렸다.“너무 열심히 해도 안 좋으니까 쉬면서 해요. 그래야 오후에 다시 연구할 힘이 나죠.”은서우는 고개를 들자 걱정스럽게 자신을 보고 있는 그의 눈빛과 마주쳤다. 가슴 한구석이 따스해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느덧 오후가 되고 회의는 계속 이어갔다. 임상시험 표본 앞을 둘러싼 그들은 중요한 부분만 계속 관찰하며 토론했다. 토론이 길어질수록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고 분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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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4화

그러나 임상시험에서 제일 중요한 단계로 들어갈 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실험 표본에 갑작스럽게 혼동이 생기면서 여러 개 팀의 데이터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곧이어 실험 기기가 고장이 나는가 하면 수리 기사님은 실험 기기 고장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은서우는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매일 실험실에 박혀 두 눈이 충혈될 때까지 자료를 훑어보았고 인명진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조절해보려고 애썼다.이날은 은서우가 혼동이 생긴 표본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다급하게 들어온 인명진의 표정이 너무도 좋지 않았다.“이건 분명 우연이 아닐 거예요. 누군가 일부러 우리 임상시험을 망치고 있는 거예요. 반드시 배후에 있는 그 사람을 잡아서 우리 프로젝트에 더는 문제가 생기지 않게 막아야 해요.”은서우는 입술을 틀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요?”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다가 최근에 방문한 적 있는 직원부터 하나씩 배척해보기로 했다. 말하고 있던 와중에 임성한이 몇몇 비서들과 함께 들어오며 미소를 지었다.“인 원장님, 은 선생님. 지금 상황에 관해 전해 들었어요. 혹시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인명진은 그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임 대표님, 갑자기 문제들이 줄줄이 생겨나서요. 뭔가 의심스러워서 그러는데 임 대표님 직원들을 하나씩 조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히 우리의 프로젝트에 더 큰 문제라도 생기면 안 되는 거잖아요.”임성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고 헛웃음 지으며 말했다.“하하, 당연하죠. 이미 하나씩 조사해보고 있으니까 뭔가를 발견하면 두 분께 꼭 먼저 알려드리죠.”말을 마친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기 옆에 서 있는 비서를 보았다. 비서는 빠르게 시선을 피하며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예민한 은서우는 당연히 비서의 그런 모습을 포착했고 인명진과 시선을 주고받더니 무언가 알아낸 듯한 모습이었다.임성찬과 그들이 떠나자 인명진은 나직하게 말했다.“비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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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5화

인명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러네요. 그대로 혜성 씨 덕분에 병원 일도 많이 해결되고 고맙네요. 이번에 돌아가면 확실히 제대로 보답을 해야겠어요.”말을 하면서 그는 손을 들어 은서우의 손을 잡았다. 마주 잡은 두 손은 따스했다.“가요. 돌아가기 전 시간이 조금 남으니까 내가 아는 좋은 곳으로 가요.”은서우는 그에게 끌려다니며 궁금한 얼굴로 보았다. 인명진을 쫄래쫄래 따라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어느 한 오래된 거리로 왔다. 길가엔 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가게가 많았고 창가엔 독특한 디자인과 문양이 새겨진 예쁜 옷들이 전시되었다.인명진은 고개를 돌려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은서우를 보았다.“그동안 프로젝트로 엄청 바쁜 시간을 보냈잖아요. 쇼핑할 시간도 없이 바삐 보냈으니까 한번 골라봐요. 마음에 드는 거 전부 골라도 돼요. 서우 씨한테 예쁜 옷 선물하고 싶어서 그래요.”그의 말에 은서우는 얼굴이 붉어졌고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옷가게로 들어갔다.인명진은 옆에 서서 옷 고르는 은서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은서우는 연하늘색의 원피스를 고르더니 거울 앞으로 가 몸에 대보았다. 치맛자락이 휘날리고 거울 보며 웃음 짓는 그녀의 모습에 인명진은 감탄했다.“정말 예뻐요. 서우 씨한테 아주 잘 어울려요.”그의 칭찬에 은서우는 민망해져 웃었다. 이번엔 심플한 셔츠를 몇 개 골랐다. 인명진은 하나씩 전부 담아주며 전부 계산했다.가게에서 나온 인명진의 두 손엔 쇼핑백이 가득했지만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손으로 모아 전부 다 들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행여라도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녀를 놓칠까 봐 말이다.길을 걷다가 우연히 빈티지 사진관을 발견한 은서우는 빤히 보았다. 사진관에 걸린 사진들은 전부 나무로 만든 액자 속에 있었고 세월의 흔적이 있어 보였다.눈을 반짝이던 그녀는 인명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우리도 들어가서 몇 장 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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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6화

“이 옷 이상하지 않아요?”인명진은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눈을 반짝였다.“그럴 리가 없잖아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으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요. 이 한복은 서우 씨를 위해 만든 것처럼 너무 잘 어울려요. 이따가 사진에서도 아주 잘 나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사진사도 옆에서 호응해 주었다.“아가씨, 걱정하지 말아요. 이 차림새는 완전히 아가씨한테 찰떡이니까. 이따가 포즈만 잘 해주면 분명 엄청난 사진들이 나올 거예요.”은서우는 그제야 결심을 내리고 우물쭈물 배경 앞으로 갔다. 인명진도 한복차림이었고 평소보다 더 우아한 분위기였다.곧이어 그들은 몇 세트의 사진을 찍었고 콘셉트도 바꿔가며 찍었다. 커플티를 입고 익살스러운 표정도 짓기도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셔터 소리는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카메라에 찍힌 것은 전부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들이었다.두 사람이 사진관에서 나왔을 때 하늘엔 어느새 예쁜 노을이 졌다. 사진을 보고 있는 은서우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길 수 없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던 인명진은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보다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아무리 봐도 실물이 훨씬 더 낫네요. 그래도 나중에 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오늘을 떠올리면 되겠네요.”은서우는 주먹으로 그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누가 보고 싶어 한다고 그래요.”말과는 달리 그녀는 사진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호텔로 돌아온 은서우는 여전히 사진을 찍으면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떠올리고 있었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낮에 산 새 옷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수시로 사진을 꺼내 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인명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쇼핑백을 정리한 뒤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을 올렸다.“오늘 하루 피곤했을 텐데 얼른 씻고 쉬어요.”인명진은 일부러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따듯한 온기가 귓속으로 불어 들어오자 은서우의 귀가 빨갛게 물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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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7화

매캐한 연기가 코와 입안으로 들어오자 괴로워진 은서우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설령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있다고 해도 구조를 기다리기까지 아마 버티기 힘들 것이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옆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인명진은 그녀를 품에 꼭 안고 있었고 불씨가 두 사람과 멀지 않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돌려 그녀를 자신의 뒤로 밀었다. 그가 그녀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그런 그의 행동에 코끝이 찡해 난 은서우는 너무도 울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만약 이것이 두 사람의 운명이라면 너무도 짧게 주어진 것 같았다.점점 더 세게 타오르는 불길에 그녀는 언제 정신을 잃을지 몰랐다. 어쩌면 두 사람은 이대로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설령 지금 드는 생각이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는 말하고 싶었다.결국 입을 연 은서우는 갈라져 버린 목소리로 말했다.“다음 생에도 명진 씨랑 알콩달콩 살 거예요.”말을 마친 그녀는 허리에서 자신을 꽉 잡는 힘이 느껴졌다. 인명진이 그녀의 허리를 더 세게 끌어안고 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어떤 의미로 자신을 끌어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헛소리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화가 난 그의 모습에 은서우도 더는 입을 열 수 없었다.새카만 연기 때문에 그녀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주위의 온도는 점점 더 높아져 흘러내린 땀이 옷을 흠뻑 적셔버렸다.귓가엔 어디서인지 모를 뭔가가 타는 소리가 자꾸만 시끄럽게 들려왔다. 만약 그녀 혼자만 이 불길 속에 있었다면 아마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했을지도 모를 테지만 그녀의 옆에는 인명진이 있었다.인명진이 단단한 몸으로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져 그녀가 느끼던 공포도 처음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은서우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려던 때 멀지 않은 곳에서 물줄기가 뿌려지는 것이 느껴졌다.활활 타오르던 불길도 억센 물줄기에 꺼져버렸고 몇 명의 소방관이 달려왔다. 그들은 그렇게 구출된 것이다.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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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8화

은서우는 그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인명진을 보았다....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회복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은서우이다. 분명 화재 현장에 똑같이 있었지만 인명진은 그녀보다 더 빨리 회복되고 있었고 심지어 그녀를 정성껏 돌봐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인명진은 사람 돌보는 것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가끔 그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은서우는 자신이 그의 전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퇴원한 후 은서우는 며칠 동안 휴가를 더 연장했다. 인명진은 그녀의 기분전환을 위해 거리로 나왔다.두 사람은 깍지를 낀 채 천천히 걷고 있었고 모든 게 화재가 일어나기 전처럼 돌아간 듯했다. 다만 가끔 은서우는 그래도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다.밤에 부는 바람은 조금 차가웠다. 은서우는 그 순간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잡고 있는 인명진의 손바닥을 살짝 간질이며 물었다.“땀이 났네요?”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인명진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때 은은한 노랫소리가 들리고 어둑어둑한 밤 아래로 수많은 전구가 번쩍 켜졌다. 은서우는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로 멍하니 보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향해 프러포즈 자세하고 있는 인명진의 모습이 보였다.“미안해요. 급하게 준비하느라 조금 초라해 보일 수 있는데 더는 기다릴 수 없었어요.”그의 입에서는 고백의 말이 흘러나왔다. 은서우는 멍하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엔 인명진만 보였고 주위는 동화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환상적이게 아름다워 현실 같지 않았다.인명진이 중간에 뜸을 들이고 있을 때 그녀는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네, 할게요.”무릎을 꿇은 인명진은 그녀의 말에 멈칫하더니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아직 묻지도 않았어요.”심지어 그는 반지도 이제 막 꺼내려던 참이었다. 은서우는 두 눈에 흙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계속 눈을 깜빡였다.“저도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명진 씨가 분명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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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9화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는 과정에서 은서우는 정말이지 어디 숨을 곳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숨고 싶었다. 인명진의 눈빛이 너무도 노골적이기 때문이다.그녀는 주위에서 피팅을 도와주는 직원들이 자신과 인명진을 힐끗힐끗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원래부터 민망했던 은서우는 더 민망해졌고 얼른 다른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려고 하는 것으로 민망함을 숨겨보았다. 그러자 피팅을 도와주는 직원이 부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분 정말 서로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게 느껴지네요.”순간 당황해진 은서우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직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제가 여기서 일한 지 몇 년 되거든요. 그런데 신랑님처럼 그런 눈빛으로 신부님을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마치 애정이 흘러넘쳐 이 웨딩숍을 담가버릴 정도였다. 은서우는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입꼬리는 생각이 다른 듯 자꾸만 올라갔다.“아, 그렇군요.”두 사람 사이가 좋다는 의미였기에 인명진이 계속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아도 그녀는 더는 민망해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디자인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은서우는 머리가 아팠다.그러자 인명진은 큰 손을 올리더니 문제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그럼 다 입으면 되죠.”은서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하객들은 제 패션쇼가 아니라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죠.”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인명진의 곁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대더니 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전부 다 사요. 그리고 나한테만 보여주면 되죠.”은서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내 그녀는 그가 미래를 암시하려고 이 말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곤 작게 대답했다.“누가 웨딩드레스를 이렇게나 많이 사요.”그녀가 거절하자 인명진도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내 아내는 예쁘니까 어떤 옷이든 전부 다 소화해내죠. 예쁜 모습을 볼 기회는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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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0화

이혜성은 원래 조금 더 버텨보려고 했지만 인명진과 인명진의 친구들이 힘으로 밀어버린 덕에 문이 열려버렸다.분명 그와 만난 지 엊그제인 것 같았지만 눈앞에 이런 상황이 펼쳐지니 은서우는 감회가 남달랐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손에 든 부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인명진이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왔다...은서우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혜성은 먼저 인명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가갈 수 없게 했다.“이렇게 쉽게 우리 서우를 데려가게 할 수는 없죠. 꿈 깨요!”이 말을 마친 이혜성은 손가락을 튕겼고 이내 들러리들과 함께 말했다.“앞으로 결혼 후 돈 관리는 누가 하죠?”인명진은 은서우를 힐끗 보았다.“당연히 아내한테 맡겨야죠!”그들은 이어서 물었다.“앞으로 누구 말만 들어야 하죠?”“당연히 아내 말만 들어야죠!”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웃음을 터뜨려 버렸고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집안일은 누가 하죠?”“내가 해야죠.”...연거푸 10개가 넘는 질문을 하고 나서야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혜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축하해요. 남편감으로 합격이네요.”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인명진이 은서우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한 걸음만 움직였을 뿐인데 이혜성은 또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눈을 깜빡였다.“설마 한 입으로 두말할 건 아니죠? 만약의 상황을 위해 저희가 이렇게 각서를 준비해왔어요. 말로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종이에 증거를 남기는 게 더 좋잖아요.”이혜성이 손뼉을 치자 들러리들은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의자와 테이블을 그의 앞에 대령했다. 테이블 위엔 종이와 인장이 있었다. 글씨로 빼곡한 종이엔 전부 그녀들이 방금 했던 질문과 그가 지켜야 할 서약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끝 모서리엔 인명진이 인장을 찍을 수 있는 빈 곳도 있었다. 들러리들은 인명진의 손을 잡더니 인장을 쥐여주며 종잇장에 꾹 찍게 했다. 한 장, 두 장... 꽤나 많은 종이가 휙휙 지나갔다. 인명진은 너무도 빨리 종이를 빼버리는 그들 때문에 뭐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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