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601 - 챕터 610

660 챕터

제601화 실수

신재명은 갑작스러운 요구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본능적으로 거절하려고 했던 그는 송재이의 눈빛을 보고 무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는 예의껏 송재이에게 말했다.“너무 갑작스럽네요. 동료한테 전화해서 확인 좀 해야 할 것 같아요.”송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재명이 말한 동료가 설영준이라는 것도 알았다.한쪽으로 걸어간 신재명은 설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송재이의 요구를 전해줬다. 전화 건너편에서 설영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재이 요구대로 계약서 수정해요.”신재명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설영준이 이토록 쉽게 허락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그는 다시 송재이의 앞으로 돌아가서 설영준의 결정을 알렸다. 그녀는 별다른 표정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그렇게 하죠.”신재명은 전화를 끊은 다음에도 한참 진정하지 못했다. 설영준의 결정이 놀라웠던 것이다. 설영준이 협력 대상에게 무조건적 순응하는 건 또 처음 봤다.이는 송재이의 재능에 대한 인정인 동시에 믿음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신재명은 알았다. 송재이는 설영준에게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는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 대표님이 허락하셨으니 계약서는 금방 수정될 겁니다. 그리고 바로 사인하죠.”송재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듯이 말했다.“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이번 일 꼭 성공시키도록 노력할게요.”사인하는 과정에도 신재명은 아주 다정했다. 그는 모든 조항을 자세히 설명하며 훌륭한 제안을 해줬다.사인을 끝낸 다음, 신재명은 반쯤 장난식으로 말했다.“송재이 씨는 행복하겠어요. 설 대표님과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말이에요.”송재이는 피식 웃었다. 신재명의 말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는 않았다.“저희 프로젝트 꼭 성공할 거라고 믿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한 달 후, 송재이는 금방 인테리어를 끝낸 스튜디오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마음속에는 기대와 불안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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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2화 사라지지 않는

젊은 참가자는 송재이의 응원을 받고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연주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한 곡이 끝나고 박수 소리는 조금밖에 들리지 않았다. 젊은 참가자는 실망한 표정으로 묵묵히 무대에서 내려갔다.연주회가 끝나고, 송재이는 텅 빈 무대에 서 있었다. 마음속에는 말 못 할 실망이 맴돌았다. 이런 식으로 훌륭한 인재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다른 인재를 찾는 건 그렇다 쳐도, 지금 있는 직원도 붙잡지 못하게 생겼다. 하나둘 빠져나가는 직원을 바라보며 그녀는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세상은 색채를 잃은 것 같았다. 그녀는 매일 매일 회색 안개 속을 거닐고 있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벗어날 수 없었다.그녀는 아주 고통스러웠다. 출구 없는 고통이었다.송재이는 자신이 내린 모든 선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유난히 조심스러워졌다. 또다시 실패할까 봐서 말이다.이런 기분은 일에도 영향을 줬다. 아이디어는 더 이상 전처럼 샘솟지 않았다. 완전히 고갈된 것 같은 기분이다.어느 하루, 송재이는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완성하지 못한 악보와 기획안을 바라봤다. 눈앞이 흐릿해진 것도 잠시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는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하던 과거가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남은 건 그리움과 슬픔뿐이다. 컴퓨터를 닫은 그녀는 창가로 가서 밤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의 별은 그녀를 향해 미소 짓는 것만 같았다.스튜디오의 운영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나날이 쌓여 가는 적자에 스트레스도 똑같이 쌓였다.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손해는 점점 더 커졌다. 이제는 송재이도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오늘까지 벌써 10억 원의 손해를 봤다는 것을 말이다.설영준은 자신이 송재이에게 준 상처가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준 상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었다.그는 송재이에게 많은 것을 빚졌다. 평생 갚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송재이의 스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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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3화 펑크 난 타이어

송재이는 설영준에게 왜 대신 돈을 갚아줬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일상을 계속할 뿐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사막이 되어버렸다. 빗물을 갈망하면서도 폭풍우의 침식이 두려웠다.그녀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으로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려고 했다. 오늘도 늘 그랬듯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드디어 퇴근한 그녀는 피곤한 몸으로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저녁의 주차장은 유난히 어두웠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는 텅 빈 공간에서 을씨년스럽게 울려 퍼졌다. 차 앞으로 다가가니 펑크 난 타이어가 보였다. 차는 불행을 호소하는 듯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송재이는 자세를 숙여서 타이어를 살펴봤다. 차가운 타이어가 만져지자 약간 황당한 기분이 들어서 웃음이 나왔다.그녀의 웃음소리는 고요한 밤에 이질적인 느낌을 줬다. 웃다 보니 어느샌가 눈가가 촉촉해졌고 눈물도 또르르 떨어졌다.송재이는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손은 여전히 펑크 난 타이어에 닿아 있었다. 마치 다친 친구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미소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흐느낌이었다. 그녀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렸다. 눈물은 뚝뚝 타이어에 떨어졌다.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차만 잊히기라도 한 것처럼 외로이 세워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고독감에 그녀는 이 삭막한 도시에 잊힌 것 같았다.마음속으로는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전부 미지수였다.그녀는 처음으로 무대에 섰던 때가 떠올랐다. 긴장되고 흥분되던 그때의 기분을 말이다. 처음으로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았을 때는 엄청난 성취감이 느껴졌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머나먼 과거가 된 것 같았다. 현재에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뿐이었다.그녀는 설영준도 생각했다. 그녀에게 무한한 믿음을 주던 애인을 말이다. 설영준이 좋은 마음으로 도와줬다는 건 당연히 알았다. 그래도 그녀는 이런 식의 베풂을 마냥 받을 수 없었다. 이는 자존심의 문제였다.스스로 일어나고 싶었지만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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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불필요한

차에서 두 사람은 침묵에 잠겼다. 자동차 엔진 소리만 계속해서 들릴 뿐이었다.설영준은 가끔 고개를 돌려 송재이를 바라봤다. 그녀의 슬픔이 전해진 듯했다.“송재이.”설영준이 먼저 정적을 깨고 말했다.“너 지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거 알아. 넌 그냥 알고 있으면 돼.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송재이는 고개를 돌려서 설영준을 바라봤다. 약간 놀란 눈빛으로 말이다.“대체 왜...”설영준이 말을 끊었다.“이유는 없어. 이건 내가 너한테 빚진 거야. 평생 갚지 못해.”송재이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영준이 한 말이 진심이라는 건 그녀도 알았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문제는 돈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설영준은 송재이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는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떠나갔다.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송재이에게 보상할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집 안에 들어간 송재이는 창가에 서서 점점 멀어지는 설영준의 차를 바라봤다. 마음속에는 약간 모순적인 감정이 들었다. 설영준의 도움을 받아도 될지, 그를 용서해야 하는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는 욕실에 들어가 따듯한 물을 틀었다. 몸에 물이 닿자 하루 내 쌓인 피곤도 함께 씻겨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물안개 속에서 그녀의 생각은 점점 또렷해졌다. 설영준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녀는 자신만의 힘과 방향이 필요했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송재이는 수건을 두르고 밖에 나갔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설영준이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메시지에서 설영준은 한번 만나자고 했다. 진지하게 얘기를 나눌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 말이다. 송재이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고백을 하려는 거라면 미리 거절할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메시지를 보내고 난 송재이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약간 긴장되기도 했다.그녀는 침대 가에 앉아서 설영준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나도 널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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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실패

설영준은 차 안에 앉아서 조용히 밤 풍경을 바라봤다. 거리의 가로등은 차창에 비쳐서 눈부신 느낌을 줬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밤만큼이나 고요했다.송재이의 말은 돌멩이처럼 그의 잔잔하던 마음의 호수에 던져졌다. 그는 이 정도의 무기력감을 처음 느꼈다.예전의 그는 두려울 게 없었다. 자신이 해결 못 하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송재이의 일에 관해서도 똑같았다.하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송재이에게 준 상처는 간단한 보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상한 감정도 그가 원해서 회복이 되는 건 아니었다.이튿날, 설영준은 일찍이 송재이가 일하는 학원으로 갔다. 그는 대문 앞에 서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햇빛은 나뭇잎을 뚫고 그의 피부에 떨어졌다. 그러나 마음속에 낀 어둠은 거둬낼 수 없었다. 그가 오늘 직면하게 될 것은 송재이의 거절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의 아우성이기도 했다.잠시 후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밖으로 나왔다. 설영준은 그 속에서 송재이를 찾았다.오늘 송재이는 간단하게 청바지에 셔츠를 입었다.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걸고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설영준은 크게 숨을 내쉬고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안녕, 송재이.”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송재이는 인사를 듣고 몸을 돌렸다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영준 씨, 여긴 어떻게 왔어요?”“점심밥 사주고 싶어서. 시간 있어?”설영준은 웃으면서 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거절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송재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가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갔다.단아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 들어서서 두 사람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설영준은 주문하고 나서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우리 아무래도 터놓고 얘기할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왔어.”설영준은 송재이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송재이는 이런 말을 듣게 될 줄 안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오해는 없어요. 저희는 다 성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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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함정

송재이는 레스토랑 문을 열었다. 방울 소리가 울리고 그녀는 익숙한 창가 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기 시작했다.음식이 오른 다음 그녀는 한 입만 먹고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 속의 맛과 너무 달랐던 것이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직원을 불렀다.“여기 사장을 만나야겠어요.”직원은 어색한 표정으로 주방에 들어갔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안에서 나왔다. 설영준이었다.송재이는 흠칫 놀랐다. 여기서 설영준을 보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요리사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이 뒤섞여 있었다.“사실 너한테 오른 음식 내가 직접 했어.”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재이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왜요?”“뭐라도 하고 싶어서. 널 기쁘게 하고 싶었어.”설영준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돈으로만 용서 구하는 거 성의 없잖아. 그래서 방법을 바꿔봤어. 괜찮지 않아?”설영준의 성의는 잘 느껴졌다.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한 노력도 함께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요?”“널 좋아하니까.”설영준은 아주 힘 있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내가 전에 잘못한 거 알아. 나 때문에 네가 상처받았어. 너한테 준 상처는 어떻게든 보상하도록 노력할게.”송재이의 마음은 물씬 따듯해졌다. 설영준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던 것이다.그녀는 흐느끼면서 말했다.“고마워요, 영준 씨. 저 정말 기뻐요.”설영준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앉아 손을 맞잡았다.“나한테 기회를 줄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하는 기회.”설영준을 바라보며 송재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조차 안 주면 영원히 아물지 못하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송재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설영준이 벌떡 일어나서 그녀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움직임은 아주 단호했다. 눈빛에는 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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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보고 싶다

설영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송재이의 조건은 과거를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고, 미래를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알았어. 네 생각을 존중할게.”“고마워. 그럼 이제 다시 반말할게.”이튿날, 설영준은 여진을 보내 송재이의 이사를 도왔다.송재이의 짐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래도 여진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송재이의 짐이 무사히 설영준의 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말이다.송재이와 설영준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영준은 집에 자주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회사 일이 바빠 보였다. 어쩌면 송재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약간 미묘해졌다.송재이는 혼자 커다란 별장을 쓰는 게 아주 좋았다. 그녀는 방을 마음껏 꾸밀 수 있었다.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설영준이 계속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면 오히려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송재이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비를 쫄딱 맞은 설영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와서 그녀를 바라봤다.송재이는 깜짝 놀랐다. 설영준이 이런 날씨에 돌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면서 걱정했다.“왜 이 날씨에 돌아왔어? 춥지 않아? 감기 걸리겠다.”설영준은 말없이 조용히 송재이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빗물이 머리카락에서 떨어져 옷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봤다. 공기 중에는 말로 이루 설명하지 못할 감정이 맴돌았다. 설영준의 마음은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송재이는 동정하는 기분이 들었다.설영준의 눈빛은 점점 더 깊어졌다. 수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눈빛에 홀려 잠시 바라보던 송재이는 커다란 압박을 느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서 도망가려고 했다.하지만 설영준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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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8화 선물

송재이는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너무나도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써 가벼운 말투로 말을 꺼냈다.“너 밥은 먹었어?”설영준은 피곤한 기색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 일이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못 먹었어.”송재이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내가 간단하게 면이라도 해줄게. 속이라도 든든하게.”설영준은 말리지 않았다. 송재이의 음식은 언제나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빈속에 술까지 마신 그는 마침 속이 안 좋던 참이었다. 뭘 먹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주방에 들어간 송재이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고 그녀는 소면을 넣었다. 그리고 달라붙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저어줬다. 그다음에는 야채와 계란을 준비해서 함께 넣었다.식탁에 앉은 설영준은 조용히 그녀의 분주한 모습을 바라봤다. 송재이의 마음은 벌써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기분도 훨씬 좋아졌다.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해결할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지 않을까?얼마 지나지 않아 송재이는 뜨거운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신선한 야채와 노릇한 계란 후라이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식기 전에 먹어.”송재이는 설영준의 앞에 그릇을 내려놓고 젓가락까지 건네줬다. 설영준은 젓가락을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뜨끈한 국물은 한 입 마시는 것만으로도 속을 시원하게 했다. 야채의 향이 배서 맛도 아주 좋았다.식탁 맞은쪽에 앉은 송재이는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봤다. 그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자 이상하게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고마워, 재이야.”다 먹고 난 설영준은 진심 어린 인사를 했다.“너무 맛있었어. 속도 덕분에 편해졌어.”송재이는 생각이 약간 복잡했다. 1년 동안 거리를 두자는 조건은 그녀가 꺼낸 것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하지만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타났다가 실망한 설영준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약간 의혹스러운 것도 있었다.‘내가 정말 기회를 줄 마음가짐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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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9화 불안

송재이는 핸들을 꽉 잡았다. 새 차는 언제나 새로운 느낌을 줬다.그녀는 설영준의 선물을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설영준의 설득 끝에 결국 타협하기로 했다.속으로는 이걸로 두 사람 사이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차는 산길을 따라 서서히 움직였다. 송재이와 설영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에 맴도는 것은 정적뿐이었다.두 사람은 오래간만의 고요함을 즐겼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이때 설영준의 핸드폰이 울리며 정적을 깼다. 전화를 받고 난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전화 온 사람은 문예슬의 가족이었다. 상대는 문예슬이 정신병원에서 도망쳤다고 알려줬다. 송재이를 찾으러 갔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말이다.전화를 끊은 설영준은 침묵에 잠겼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송재이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한편, 만약 문예슬의 목적이 진짜 그녀라면 알 권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으니 말이다.설영준의 변화를 눈치챈 송재이는 나지막하게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설영준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알리기로 했다.“문예슬 씨의 가족이 전화 왔어. 문예슬 씨가 정신병원에서 도망쳤는데, 너... 너를 찾으러 올 가능성이 높다고.”송재이는 핸들을 꽉 잡았다. 힘을 하도 줘서 손가락 마디가 다 창백해졌다.그녀는 분노 서린 표정을 지었다.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분노는 문예슬을 향한 것인지, 비극적인 과거를 향한 것인지 몰랐다.혜원은 그녀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아이가 문예슬 때문에 생을 다 하고 말았다.“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송재이는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진짜 만나게 된다면 꼭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설영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혜원이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그도 잘 알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쓰다듬으면서 위로하려고 했다.“일단 진정하자. 문예슬 씨가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떤 짓을 할지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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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0화 위험

송재이와 설영준은 빠르게 집에 돌아갔다.송재이는 먼저 별장의 안전 시스템을 점검했다. 그리고 출입문과 창문이 전부 닫힌 걸 확인한 다음 CCTV까지 작동시켰다. 수시로 CCTV를 확인할 준비도 했다.반대로 설영준은 복잡한 기분으로 거실에 있었다. 그는 문예슬의 탈출이 송재이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문예슬의 존재가 그녀에게 얼마나 큰 위협인지도 알았다.그는 또다시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이미 출발했음을 확인하려고 말이다.이때 송재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말이다. 그녀는 설영준을 힐끗 보고 나서 전화를 받았다.“나야, 문예슬.”전화 건너편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송재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핸드폰을 꽉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무슨 일이야?”문예슬은 잠깐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가 날 미워하는 거 알아. 나... 나도 그래. 오늘 전화한 건 나쁜 의도가 아니야. 너한테 알려주고 싶은 일이 있어.”예상치 못한 말에 송재이는 멈칫하다가 물었다.“아, 알려주고 싶은 일이라니?”“혜원의 죽음에 관해서 네가 모르는 게 있어.”문예슬은 잔뜩 피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정신 상태가 불안했던 건 사실이야. 나도 잘못하기는 했지. 근데 혜원이를 죽이지는 않았어.”송재이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증거 있어? 네가 죽인 게 아니라면 혜원이가 왜 그렇게 됐는데?”전화 건너편에서 문예슬은 주저하는 듯했다. 호흡도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지, 지금은 알려줄 시간이 없어. 근데 힌트는 줄 수 있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를 이용하고 있어. 내 정신 상태를 이용해서 죄를 뒤집어씌우는 거야.”송재이는 피식 웃었다. 문예슬의 터무니없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터놓고 말하지 않고 질문만 계속했다.“그렇다면 왜 경찰서에 가서 말하지 않고 나한테 전화해?”“경찰은... 내 말을 믿지 않을 거야. 날 도와줄 사람은 너밖에 없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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