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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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남하준은 몸에 꼭 맞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훤칠한 체구에 고고하고 우아한 자태를 한껏 뽐냈다.서다인은 한없이 매력적인 그의 검은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봤다.매번 남하준을 볼 때마다 그녀는 저도 몰래 심장이 빨리 뛴다. 피가 역류하여 온몸이 굳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바짝 긴장하니 하려던 말도 생각이 안 났다.남하준은 날카로운 눈길로 그녀의 옷차림을 훑어보다가 눈가에 은은하게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다만 그는 서다인의 선택을 존중하기에 왜 자신이 보낸 이브닝드레스를 안 입었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할머니 뵀어?”남하준이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서다인은 머리만 내저을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입을 여는 순간 속상하고 서러운 마음이 왈칵 쏟아져 나올까 봐.남하준은 그녀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남자였다.그녀는 이 남자에게 마음껏 기대고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아무도 눈치 보지 않고 원 없이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하지만 서다인은 그럴 자격이 없다.남하준이 짙은 표정으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할머니도 못 뵀는데 그냥 간다고?”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의 물음에 묵인했다.남하준은 속절없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서다인의 손목을 잡았다.그의 제스처에 화들짝 놀란 서다인은 시선을 올리고 망연자실한 눈길로 그를 올려다봤다.남하준이 나지막이 말했다.“연회 끝나고 가.”말하면서 그녀의 손목을 꼭 잡고 인파들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손을 잡은 건 아니지만 이 또한 애틋한 스킨쉽인지라 서다인은 걷잡을 수 없는 긴장감에 휩싸였고 심장이 마구 쿵쾅대며 알 수 없는 따뜻한 전류가 가슴에 파고들었다.남하준이 옆에 있으니 그녀도 좀 전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남하준은 그녀를 데리고 귀빈을 접대하러 갔다. 사람들이 그녀가 누구냐고 물을 때마다 남하준은 아주 대범하게 소개했다.“제 아내 서다인이에요.”아주 간단한 한 마디지만 서다인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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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서다인은 무척 감동 받고 옆에 있는 이 남자를 지그시 올려다보았다.키가 185밖에 안 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백 미터가 되는 큰 산처럼 거대하고 듬직하여 마음을 설레게 했다.이때 백하린이 그림을 들고 은경애의 앞으로 다가와 활짝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저 하린이에요. 아직 기억하시죠?”은경애는 순간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눈을 가늘게 떴다.‘상간녀 네년은 내가 죽어서 재가 돼도 못 잊지!’“기억이 잘 안 나는데 누구신지?”은경애가 담담하게 말했다.백하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할머니는 어차피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시니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니까.백하린은 은경애의 생각 따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녀는 오직 이 생신 연회에서 포커스를 받고 남하준과 남씨 일가의 모든 사람 앞에서 더 완벽한 이미지를 남기고 싶을 따름이었다.미모나 효심 전부 장내의 모든 이를 압도하게끔 만들고 싶었다.“여기요, 들여오세요.”백하린이 갑자기 높은 소리로 외쳤다.곧이어 몇몇 도우미가 테이블을 몇 개 들여오더니 다 함께 붙여놨다.장내의 모든 이가 어안이 벙벙해졌다.백하린은 유가영을 불러와 함께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어서 손에 쥔 그림을 펼쳐서 길이가 무려 2미터나 되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기세가 웅장한 수묵화가 펼쳐지고 모두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백하린은 앞으로 다가가 할머니를 부축하여 자리에서 일으켰다.“할머니께서 Z국 문화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수집하는 취미가 있으시고 고전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수묵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거든요.”“제가 엄청 공들여서 당대 유명한 화가 지완 님의 진품 ‘가을’을 경매에서 낙찰해왔어요. 할머니께 생신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쭉 만수무강하세요 할머니.”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전부 고귀한 신분이라 골동품 매매나 명화 수집 등에 조예가 깊다. 다들 당대 유명 화가 지완의 진품이란 말에 흥미를 느끼고 둘러서서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백하린은 은경애의 속내를 훤히 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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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서다인은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그녀의 얼굴이 살짝 빨갛게 물들었다.은경애는 오직 백하린에게 망신을 줄 생각이라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모조품이라도 괜찮아. 마음만 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너도 더는 진품이라고 떠벌리고 다니진 마.”장내의 모든 이가 어안이 벙벙해졌다.백하린은 사색이 되어 버럭 화내면서 서다인에게 쏘아붙였다.“네가 뭘 알아? 수묵화를 알기나 해? 수묵화 진품을 본 적은 있냐고? 대체 네가 뭔데 내 그림을 가짜라고 하는 거야?”서다인도 몹시 난감했다. 만약 그녀의 판단이 잘못됐다면 너무 창피한 일이니까.하지만 은경애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이런 명화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힘들다. 지금 누군가가 가짜라고 말하기만 한다면 다들 이 그림이 가짜라고 여길 것이다.영수증과 증명 서류를 내놓아도 다들 백하린이 사기를 당한 거라고 믿을 따름이다.명화 수집가 어르신 한 분이 서둘러 돋보기를 끼고 허리를 굽힌 채 머리 숙여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백하린은 남하준의 옆으로 달려가 그의 팔을 안으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말해봐요. 다인이가 무슨 자격으로 내 그림을 가짜라고 말하는 거죠? 쟤가 뭘 알아요? 개뿔도 모르면서! 감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날 창피하게 해요? 이건 진짜 너무하네요.”남하준이 차분한 얼굴로 시큰둥하게 그녀의 손을 밀쳐냈다.“나도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진짜인지 가짜인지 막론하고 네가 할머니를 향한 마음만 잘 전달하면 되지 뭐.”백하린은 화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남하준이 이전처럼 자신을 감싸주지 않으니 화가 나서 어리광을 부렸다.“그런 거 아니에요. 다인 언니는 일부러 날 망신 주는 거라고요.”유가영도 그녀를 대신해 말했다.“확실히 도가 지나치네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심사위원을 할 기세잖아요. 할머니의 신임을 얻고 허튼소리만 내뱉는 게 말이 돼요? 하린 씨 정성만 수포로 만들었어요.”진효은도 말을 이었다.“그러게 말이에요. 실력 있으면 진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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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서다인은 힘없이 남하준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에 남하준은 한없이 마음이 약해졌다.그녀의 나른하고 무기력한 눈빛이 이토록 강렬한 살상력을 안겨줄 줄이야.남하준은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숙이고 서다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다인아, 여긴 모두 우리 가족이랑 친구들이야. 사실 다들 명화의 진위나 예술적 조예의 높고 낮음에 관심이 없어. 할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니까 효심만 닿으면 돼. 다른 건 다 허명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그려.”서다인은 그의 말을 듣더니 또 다른 차원으로 승화된 것처럼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다.남하준이 질문을 이었다.“모사는 할 줄 알아?”서다인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가능할 것 같아요. 모사는 딱히 어렵지 않거든요.”남하준은 침착하게 말했다.“그럼 지완 거장의 작품을 하나 모사해. 어차피 지금 이것도 가짜잖아. 마침 네 앞에 펼쳐져 있고.”일이 코앞에 닥쳤으니 서다인도 눈 딱 감고 해나가야만 했다.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붓을 들고 먹을 골고루 묻혔다.다른 손으로 백지를 세 번 쓰다듬었는데 제스처마다 부드럽고 가벼울 따름이었다.이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제스처까지 지완 거장을 따라 하는 것 좀 봐. 아무래도 지완님 작품을 모사하려는 모양이야.”누군가는 유심히 지켜보고 누군가는 기대에 차 있으며 또 누군가는 그녀가 망신을 당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이쪽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계속 연회에서 사교 영역을 넓혀갔다.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졌다.서다인은 ‘가을’ 작품을 열심히 살펴보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림을 그렸다.첫 획을 그리는 순간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녀의 수준은 절대 보통이 아니었다.힘찬 붓놀림으로 한 획씩 그릴 때마다 마무리가 깔끔하고 시원시원했다.서다인은 딱 한 번 살펴본 이후로 더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근육 기억처럼 힘 조절과 선 처리가 완벽했고 아예 대뇌의 사고를 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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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살아생전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지완님을 이렇게 뵐 수 있다니, 정말 너무 행운입니다.”“지완님은 여자분이셨네요. 전에 영상으로 작품을 볼 때 섬섬옥수가 여자일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면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웅장한 포부와 막강한 기세, 그리고 힘찬 기개가 느껴졌어요. 사람을 감탄하게 하는 파워가 있거든요.”“지완님 수묵화는 심금을 울리고 시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어요. 심도가 깊고 경지가 있어서 정말 너무 좋아요.”연이은 찬사에 서다인은 머리가 어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멍하니 넋 놓은 채 갈피를 잡지 못했다.은경애는 일찌감치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고였고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서다인이 다재다능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숨겨진 유명 화가일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옆에 있는 백하린은 화나서 안색이 다 짙어졌다. 그녀는 원래 서다인에게 망신을 줄 생각이었는데 이런 신분이 숨겨있을 줄이야. 덕분에 서다인만 사람들 앞에서 실력을 한껏 뽐내고 장내의 모든 이를 감탄케 했다.남씨 일가의 사람들도 입이 쩍 벌어졌다. 다들 놀라움 속에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었다.이때 류청이 남하준 옆으로 다가와 깍듯이 휴대폰을 건넸다.남하준은 휴대폰을 건네받고 동영상 재생을 클릭했다.영상 속 화면에서 가늘고 새하얀 손이 나왔고 백지 한 장에 붓과 먹이 놓여 있었다.지완은 습관적으로 백지를 세 번 쓰다듬은 후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오른쪽 손등에는 티 나지 않은 검은 점이 하나 있었다.류청이 말했다.“도련님, 사모님이 바로 지완님인 것 같아요.”남하준은 영상을 끄고 휴대폰을 류청에게 돌려준 후 나지막이 분부했다.“이 계정 당장 조사해봐. 운영하는 회사와 배후에서 계정을 등록한 사람, 그리고 작품을 경매하는 경로와 돈을 기부하는 경로까지 전부 샅샅이 조사해.”“네.”류청은 대답을 마치고 연회장을 떠났다.서다인은 모두의 열정 어린 칭찬 속에서 드디어 진실을 알게 됐다.그녀는 감히 부인할 수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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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며칠 후, 사무실 안.류청이 조사 결과를 남하준에게 보고했다.“도련님, 지완 씨가 영상을 업로드하는 계정은 Z국의 한 고아원 공식 계정으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라이브 방송과 실시간 선물로 받은 보상까지 포함한 모든 수입은 고아원 공금 계좌에 바로 입금되었고 원장님은 지완 씨 본인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지완 씨 작품의 판매 경로도 아주 특이했어요. 온라인으로 직접 입찰하고 입금 계좌는 각 지역의 고아원이나 자선단체였어요. 모든 수입은 지완 씨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았어요.”“따로 운영해주는 회사나 팀도 없고 라이브 방송 때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림만 그렸습니다.”“3년 전에 이 계정은 업데이트가 중단됐고 지완이라는 사람도 갑자기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어요.”남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 두 눈을 감고 류청의 보고를 묵묵히 들으며 속으로 서다인을 떠올렸다.이토록 평범한 여자의 배경이 점점 더 종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다니.남하준은 자석처럼 감미로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차 대기시켜.”류청이 물었다.“어디로 가시게요 도련님?”남하준은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부드럽게 말했다.“다인이 만나러 가야겠어.”...안성시 번화가.노을이 지고 화려한 등불이 켜지면서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서다인은 평상시처럼 구석진 곳에서 생화를 팔고 있었다.그녀의 작은 노점은 아늑하고 로맨틱하며 매우 아름답게 꾸며졌다.간혹 주문이 한두 개 들어오기도 했다.“다인아, 오랜만이야.”서다인이 한창 바삐 돌아칠 때 상당히 거슬리는 남자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녀는 머리를 들더니 눈빛이 짙어지고 수중의 장미꽃을 천천히 내려놓은 후 옆에 뒀던 가위를 집어 들었다.서지석은 바짝 긴장해서 침을 꼴깍 삼키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경계에 찬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아양을 떨었다.“서다인!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화 안 풀렸어?”“지난번에 네게 맞아서 다리가 부러진 뒤로 아직도 걸음걸이가 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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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서지석은 식겁하여 사색이 된 채 이를 악물고 서다인을 노려봤다. 그는 결국 뒤로 물러서며 욕설을 퍼부었다.“서다인 너 딱 기다려. 조만간 혼내준다 내가.”그는 으름장을 놓은 후 줄행랑을 쳤다.서다인은 휴대폰을 거둬들이고 피식 웃으며 서지석의 경고를 새겨듣지도 않았다.앞을 내다보자 훤칠한 체구에 늠름한 자태의 남자가 인파들 속에 서 있었다.위엄이 차 넘치고 기질이 출중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확 집중시켰다.류청이 그의 옆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감개무량하게 말했다.“도련님, 사모님은 정말 원칙적인 분이시네요.”남하준은 아무런 대답 없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류청이 재빨리 뒤따라갔다.서다인은 작은 걸상에 앉아 이제 막 장미꽃 잎과 가시를 다듬고 있었는데 눈앞에 불쑥 늘씬한 다리가 나타났다. 그녀는 손님인 줄 알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어서 오세요, 필요한 거...”“있으... 실까요?”서다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겨우 말을 이었다. 눈앞의 이 남자를 본 순간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다.남하준이 왜 야시장의 거리에 나타난 걸까?그녀는 남하준의 임무 수행 차량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사방을 기웃거렸다.남하준은 놀라면서도 호기심에 찬 그녀의 모습이 마냥 귀여울 따름이었다.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어떤 꽃이 더 예뻐?”서다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장미꽃을 내려놓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여자분께 드리는 거예요 아니면 어르신께 드리는 거예요?”남하준이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여자.”서다인은 문득 마음이 씁쓸해졌다.이어서 안색도 저도 몰래 어두워졌다.많고 많은 꽃가게 중에 왜 하필 그녀를 찾아와서 백하린에게 선물할 꽃을 사려는 걸까?이 남자는 분명 일부러 이러는 거겠지!서다인은 대충 하얀 국화 한 다발을 집어 들었다.“이 꽃도 이쁘네요.”남하준은 하얀 국화를 건네받았다.부부도 돈 계산은 명확히 해야 하는 법, 서다인은 스스럼없이 말을 꺼냈다.“4천 원이에요.”남하준도 전혀 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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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돌아가는 길.남하준이 그녀에게 물었다.“남원으로 갈까 아니면 네가 지내는 곳으로 갈까?”서다인의 작은 빌라는 노점과 비교적 가깝고 남원은 백하린의 집이나 다름없기에 딱히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빌라로 가요.”15분 후.차가 낡은 빌라 앞에 도착했다. 서다인은 차에서 내려 남하준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어두운 밤, 낡은 건물 복도는 좁고 흐릿할 따름이었다. 서다인은 휴대폰으로 조명을 켜고 난감한 듯 말했다.“이 복도 센서등이 자주 고장 나요.”남하준에게 이곳의 주거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서다인은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불을 켠 후 어색하게 가장자리에 서서 남하준을 안으로 들였다.10평 남짓한 작은 빌라에 발을 들인 순간, 남하준이 받은 첫인상은 바로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서다인이 문을 닫고 돌아서자마자 남하준이 들고 있던 하얀 국화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자.”그의 말투가 너무 침착해 감정 기복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고 이 꽃을 왜 주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서다인은 멍하니 넋 놓고 국화를 바라보다가 심장이 마구 떨리고 온몸의 세포가 미친 듯이 뛰어댔다.그녀는 줄곧 백하린에게 주는 꽃이라고 생각했다.갑작스러운 이벤트에 서다인은 아무런 반응도 못 했다.남하준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별로야?”서다인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그의 손에서 꽃을 건네받았다. 그녀는 두 볼이 빨개지고 가슴이 따뜻해지며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너무 예뻐요. 고마워요.”서다인은 전에 자신이 무슨 꽃을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가장 좋아하는 꽃은 바로 하얀 국화일 것이다.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재빨리 주방에 들어가 꽃병을 꺼내서 국화꽃을 꽂았다.남하준은 집안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쭉 둘러보다가 더블 소파에 가서 앉았다.탁자 위에 놓인 몇 권의 책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그는 책을 들어서 대충 펼쳐보았는데 죄다 알아볼 수 없는 문자였다.서다인이 M국어와 Z국어를 할 줄 아는 건 이미 아는데 지금 또 다른 나라의 책을 읽는다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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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서다인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그들은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남하준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반면에 서다인은 어린아이처럼 조바심이 난 것 같아 보였다.그녀의 머릿속엔 이상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드라마에서 보면 여우짓 하는 못된 여자들이 이런 수법으로 남자를 꼬시던데? 하준 씨가 이렇게 덤덤해 보이는 것도 내가 여우짓 해서 자기를 꼬신다고 생각해서겠지? 남하준은 별 감흥이 없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는 귀찮음이 담겨 있었다.서다인은 마른침을 삼킨 후 다급하게 일어서고는 뒷걸음질을 치며 잘못을 저지를 어린아이처럼 허리 굽혀 사과했다.“미안해요.”남하준은 한숨을 푹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화장실과 헤어드라이어 잠깐 써도 돼?”“네.”서다인은 부랴부랴 화장실을 가리켰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드라이어는 화장실 서랍 안에 있으니 꺼내서 쓰면 돼요.”남하준은 느긋하고 침착하게 화장실로 걸어갔다.하지만 문을 닫는 순간,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세면대에 기대고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목울대가 저도 모르게 울렁였다.‘젠장! 내가 언제부터 유혹에 이렇게 약해진 거야?’드라이어 소리가 화장실에서 한참 울렸다.잠시 후, 남하준이 걸어 나왔다.서다인은 여전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를 유지한 채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물 한 잔이 더 놓여 있었고, 소파 위에는 방수 매트가 깔려 있었다.남하준은 다시 자리에 앉은 후 옆에 있는 나무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앉아.”“네.”서다인은 조용히 나무 의자를 끌어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딱딱한 자세로 허리를 곧게 폈는데 꼭 면접을 보는 사회초년생 같아 보였다.남하준은 워낙 카리스마가 있어 어딜 가든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것 같았다.지금 이 순간, 서다인보다 남하준이야말로 이곳의 주인 같았다.그를 똑바로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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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남하준의 말을 들은 서다인은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되물었다.“내가 지완 아니라면요? 나도 그저 표절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면 어떡하려고요?”남하준은 DNA 검사 결과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차가운 얼굴을 보이더니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취미가 참 많나 봐? 유명한 화가의 작품으로 바꿔치기할 정도로 그림 실력이 대단하고, 또 책 읽는 것을 좋아해 한 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지. 그뿐만 아니라 화학 물질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어려운 외국어조차 손쉽게 읽어내는데 정말 대단한걸?”서다인은 가슴이 턱 막히는 듯했다.“그래서 내가 아직도 블랙 섀도우에서 보낸 스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남하준은 침묵을 유지했다.그는 워낙 경계심이 높은 사람이었다. 서다인의 신분은 그녀가 선보인 능력, 그리고 품격과 정반대였다.서다인은 지적이고 일거수일투족이 품위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았거나, 아니면 후천적으로 강도 높은 특별 훈련을 받은 게 아니라면 이런 능력과 품격을 보일 수 없을 것이다.서다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제안했다.“이러는 건 어때요? 내 몸에 도청기를 달고 나를 블랙 섀도우의 아지트에 보내요. 그러면 진실이 밝혀지지 않겠어요?”‘뭐야? 이 순진한 생각은.’남하준은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더니 허리 숙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블랙 섀도우가 어떤 조직인지 알아?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죽는 길밖에 없어. 만약 당신이 정말 블랙 섀도우 사람이라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이상 돌아가도 죽는 것뿐이야. 당신이 블랙 섀도우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 빨리 죽을 것이고.”분노가 치밀어 오른 서다인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그럼 날 가둬서 죽여요. 잘못 죽일지언정 의심이 가는 사람을 놓아주면 안 되잖아요.”남하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이가 없어 미간을 구겼지만 그의 말투는 한껏 부드러워졌다.“왜 맨날 삐지기만 해?”평소에 과묵하기만 남하준이 부드러운 말투로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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