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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1화

문밖에 조용히 서 있던 이승하는 서유가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너졌다. 아내와 아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자였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다만 그가 바라는 건 선택의 끝에서 아내가 무사히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의 삶에 남은 의미도 없을 것이다. 서유는 아기 옷을 품에 안고 여자아이 방 안에서 눈물을 머금은 채 잠들었다. 이승하는 서유 곁에 앉아 밤새도록 그녀의 등을 지켜보며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수술 준비 과정에서 서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병상에 기대어 한 손은 배를 쓰다듬고, 다른 한 손은 아기 옷을 움켜쥔 채, 마치 영혼 없는 도자기 인형처럼 고요했다. 살아 있으나 쉽게 부서질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틈틈이 그녀를 안아주고, 입을 맞추고, 쓰다듬었다. 그녀의 생기를 되찾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수술 당일이 되어서야 서유는 이승하의 손을 붙잡았다. 거의 간청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나 10% 가능성에 걸고 싶어요. 아이를 낳게 해줘요.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이승하는 자신을 꽉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손목을 반대로 잡고는 피곤으로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서유야, 나는 그 10%에 모든 걸 용기가 없어.” 그 한마디가 서유의 희망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녀는 마치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힘을 잃고, 더 이상 날아오를 힘조차 없었다. 서유는 조금씩 손을 풀고 체념한 표정으로 수술복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수술대에 누워 의사들이 자신을 수술실로 데려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수술실 문이 닫히기 직전, 이승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서유야, 걱정 마. 넌 절대 무사할 거야. 내가 그렇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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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2화

수술 도구를 준비하던 두 간호사가 고개를 돌리자 환자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한 명은 그녀를 쫓아갔고, 다른 한 명은 이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 원장은 순간 놀랐지만 곧바로 탈의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사모님께서 갑자기 수술실에서 도망쳤습니다...” 멸균복을 막 갈아입은 이승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탈의실 문을 힘차게 열고 바람처럼 빠르게 서유를 찾으러 뛰쳐나갔다. 한편, 간호사에게 쫓기던 서유는 비틀거리며 도망치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사람과 부딪혔다. 부딪힌 남자는 휘청거리는 서유를 붙잡아 그녀를 지탱해 주었다. 이어 차가운 눈빛으로 당황한 채 뒤돌아본 서유를 응시하며 물었다. “왜 도망치는 거예요?” 부딪힌 사람이 육성재임을 확인한 서유는 급히 죄송하다고 말한 뒤 그를 피해 다시 달리려 했다. 그러나 두 발짝도 가지 못해 육성재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누구를 피해 다니는 건데요?” 서유가 고개를 돌리자 마침 간호사가 복도를 가로질러 자신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육성재의 손은 강하게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서유가 화가 나서 막 욕이라도 하려던 찰나, 육성재는 다가오는 간호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상황인진 모르겠지만, 저 간호사가 당신을 찾는 건 확실해 보이네. 내가 도와줄까요?” 서유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육성재가 간호사를 막아줄 줄 알았던 그녀는 뜻밖에도 그가 몸을 숙여 자신을 번쩍 안아 들고 병원 밖으로 빠르게 걸어 나가기 시작하자 깜짝 놀랐다. 간호사가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서유는 이미 차 안에 있었다. 그녀는 급히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원래는 간호사가 쫓아오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그 순간 병원 입구 계단 위에 서 있는 이승하가 보였다. 그는 멸균복을 입고 있었고, 높고 날카로운 자세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차는 곧 출발했고 서유는 창문에 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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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3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이미 수술복은 벗은 상태였고, 그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 같았다. 냉랭한 기운이 온몸에 맴돌았고 얼굴은 창백하며 눈썹과 눈매에 서린 억눌린 분노는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조수석 쪽으로 걸어가 검은 창문을 통해 차 안에 앉아 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스스로 내릴래? 아니면 내가 이 차를 부수고 널 데리고 나갈까?” 창밖에서 분노로 이글거리는 남자를 바라보던 서유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손을 들어 문을 열었다. 아직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남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만약 그녀가 임신 중이지 않았다면, 아마 그 손에 의해 거칠게 끌어내려졌을 것이다. 그는 서유의 손목을 꽉 잡은 채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리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서 냉혹한 눈빛으로 운전석에 앉아 있는 육성재를 한번 쏘아보았다. 두 남자의 시선이 부딪히는 순간, 육성재는 이승하의 눈에 서린 살기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승하는 서유를 끌고 부가티 쪽으로 걸어갔다. 이승하는 분노를 꾹꾹 참아내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서유가 자리에 앉자, 몸을 숙여 그녀의 손에서 안전벨트를 가져와 직접 채워주었다. 턱선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이승하의 모습을 바라보던 서유는 입을 열려 했지만, 남자는 이미 몸을 일으켜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는 차에 올라타 그녀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채 차를 출발시켰다. 운전은 느리고도 산만했으며, 목적지도 없어 보였다. 길 잃은 듯한 이승하를 지켜보던 서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보, 내가 수술대에 누워 있을 때 아기가 움직였어요. 정말 격렬하게 움직였어요, 마치 저항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래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녀의 말에도 이승하는 여전히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서유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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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4화

이승하는 그녀의 품에 안긴 순간,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얼굴을 서유의 목덜미 깊숙이 파묻었다. 마치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듯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로, 창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며 곧 유리창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잔 이승하는 핏발이 선 눈으로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입가를 힘없이 올려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은 비에 가로막힌 길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10%와 30%의 가능성 사이에서 10%를 선택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키기도 전에, 그날 오후 이승하가 서유를 데리고 블루리도로 돌아가던 길에 서유가 갑작스럽게 출혈을 겪었다. 처음엔 출혈량이 많지 않았지만, 서유가 어지럼증을 느껴 신호등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고 나서야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이미 많은 피가 흘러나와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이승하를 잡으려 했지만,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그의 옷자락만 겨우 닿은 채 앞으로 쓰러졌다. “서유야!” 귓가엔 이승하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서유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승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의식을 잃은 서유를 한 손으로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핸들을 움켜쥔 채 병원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미 병원에 대기 중이던 이 원장은 이승하의 수술 철회 명령을 받지 못했기에 계속 수술실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빗물에 젖은 이승하가 피로 물든 서유를 안고 병원에 뛰어들었다. “뭘 멍하니 있어요! 빨리 구하지 않고 뭐 하는 겁니까!” 이승하의 분노에 이 원장은 정신을 차리고, 즉시 모든 의료진을 소집해 수술실로 향했다. 자신도 서유를 넘겨받으려 다가갔지만, 이승하는 그녀를 넘기지 않고 직접 수술실로 뛰어들었다. 그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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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5화

“그리고... 첫 수술을 시작할 때부터 산모가 이미 대량 출혈을 겪었습니다. 산모를 살리기 위해 분주한 사이에 태아는 자궁 안에서 너무 오래 있었고, 꺼냈을 땐 이미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대고 상체를 약간 앞으로 기댄 이승하는 의사의 말이 이어질수록, 눈빛에서 서늘한 살기를 드러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사의 목을 움켜쥐고 단숨에 벽으로 밀쳤다. “뭐라고?” 놀란 남자 의사는 공중에 들어 올려진 채 온몸을 떨었지만, 이승하의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려 두려움을 억누르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산... 산모가 대량 출혈로... 태아는 심장 박동은 약했지만... 숨을 쉬지 않았고...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승하의 심장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마치 깊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처럼 주위가 적막에 휩싸였다. 온 세상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귓가에는 죽음의 울림만이 맴돌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바닥없는 절벽으로 떨어졌고, 다시 누군가가 손을 붙잡아 절벽 아래에서 간신히 끌어올리는 듯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이승하는 눈빛이 핏빛으로 물든 채 의사를 벽에 내던지고, 맹렬히 걸음을 옮겨 수술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수술실 안에서는 여전히 응급처치가 진행 중이었다. 수술대 아래로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공기 중에는 진한 피 냄새가 가득했다. 차가운 수술실 조명 아래,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이 비쳤다. 이승하는 그 많은 피를 보자마자 시야가 좁아지며 심장이 강렬한 공포를 느꼈다. 그는 그렇게 많은 피를 본 적이 없었다. 사람 몸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마치 그녀의 모든 피가 미친 듯이 작은 몸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 같았다. 그는 흐르는 피를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문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세상에 버려진 사람처럼 쓸쓸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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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6화

고개를 돌리니 의약 상자를 든 하석준이 이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승하는 그의 손목을 잡아당겨 재빨리 수술실로 들어갔다. 서유의 상태를 보니 심정지 상태일 뿐 아직 뇌사 단계는 아니었다. 하석준은 빠르게 지혈겸자를 꺼내 들고 지혈을 시작했다. “다들 모두 나가 있어.”“당장 수술실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머지 의사들은 전부 날 도와.”지혈을 하면서 하석준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임 선생한테 명했다.“지혈을 마치면 얼른 심폐소생술 시작해. 산모가 심장 박동을 회복할 때까지!”“네. 알겠습니다.”하석준이 도착한 후, 수술실 전체는 다시금 정신없이 바삐 돌아쳤고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서유를 구했다. 한편, 이승하와 급히 달려온 정가혜는 수술실을 나갈 생각이 없었다. 서유 곁에 있고 싶은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데 옆에 있던 이연석이 두 사람을 강제로 끌고 나갔다. 그들이 넋이 나간 채 수술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차가운 얼굴을 한 이태석이 긴 복도를 지나 다른 문을 통해 수술실로 들어갔다.“하 박사, 아이부터 구하시게.”서유를 구하고 있던 하석준은 이태석의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아닌가?”“그렇긴 하지만 서유는 이미 죽었네. 죽은 사람을 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태아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어. 호흡이 없을 뿐이지. 하 박사 자네의 능력이라면 반드시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네.”“일시적인 심정지일 뿐이야. 제때 심폐소생술을 한다면 살릴 수 있단 말일세.”“피가 멈추지 않고 있지 않나. 살려도 오래 살지는 못할 걸세. 차라리 그 시간에 아이를 구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마음이 흔들렸지만 하석준은 손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지혈했다. “하 박사, 자네와 난 오래된 친구일세. 내가 증손자를 이리 잃는 것을 자네도 바라지 않겠지.”그 말을 들으며 한참을 망설이던 하석준은 결국 지혈겸자를 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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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7화

“부셔.”상철수의 손짓에 뒤를 따라오던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은 바로 도구를 꺼내 들고 수술실의 문을 잘랐다. 얼마 되지 않아, 수술실 문 전체가 잘려 나갔다.“당장 내 외손녀를 구하거라. 살리지 못하면 다들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해.”“네.”그의 명령에 의사들이 수술실로 몰려들었고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인 임 선생은 도와주러 온 다른 의사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술 자리에서 물러나 그들에게 메스를 넘겨주었다.한편, 아이를 구하고 있던 하석준도 그제야 한시름 놓고 아이를 구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태석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문밖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상철수를 쳐다보았다.저자가 방금 뭐라고 했는가?서유가 외손녀라고?서유가 상철수의 외손녀란 말인가?상씨 가문은 북미에서 엄청난 가문이었다. 서유가 이런 가문의 사람이란 말인가?문밖의 상철수는 새빨간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감히 내 손녀를 포기해? 죽고 싶어 환장했군.”살기 가득한 싸늘한 목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북미의 거물이 되기까지 상철수가 손에 피를 얼마나 묻혔는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점에 대해 이태석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그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이태석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당신은 당신 외손녀 살리고 난 내 증손자를 살릴 거야. 입장이 다를 뿐이지.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니 누구도 잘못이 없네.”상철수가 어두운 얼굴을 들고 이를 악물었다.“잘못이 없다? 그건 당신이 할 소리가 아니야.”상철수는 그동안 북미에서 총을 자주 다루었었고 그 점에서 이태석은 상철수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상철수의 말을 잇지 못하였고 상철수도 더는 소리를 내지 않고 수술하는 걸 지켜봤다. 한쪽은 서유를 주시하고 있었고 한쪽은 아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의사들이 죽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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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8화

이승하는 새빨간 눈을 들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여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라고 한 그의 부탁에 따라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서 돌아왔다. 서유, 당신은 정말 강한 여자야. 돌아와 줘서 고마워.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고마운 적도 두려운 적도 없었다. 그녀가 이리 완강하게 버텨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는데 손바닥의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걸 보니 아직도 등골이 오싹해졌고 몸이 떨려서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힘이 없었다. 이때, 수술실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이승하는 그제야 눈을 들어 하석준의 손에 쥐어진 아이를 바라보았다. 손바닥만 한 작은 몸집의 아이가 엄마를 닮아서 꿋꿋이 버텨냈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심전도 모니터에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처음으로 생명의 위대함을 느꼈고 저도 모르게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갓난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고 지금은 그저 살아있을 뿐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야만 했다. 증손자가 살아난 것을 보고 이태석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승하를 지나치던 그때, 남자가 차가운 손을 뻗어 그의 발목을 덥석 잡았다. 고개를 숙이고 새빨간 이승하의 눈을 마주한 순간, 이승하가 그를 바닥에 쓰러뜨리고는 반응할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미친 사람처럼 온몸의 힘을 다해 주먹질을 했고 이내 선홍색의 피가 이태석의 입가에서 흘러넘쳤다.이태석을 뒤따라온 사람들은 그가 얻어맞는 것을 보고 달려들어 그를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주먹을 휘두르고 있던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움직이기만 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이승하의 복수심이 이렇게 불타오를 줄 이태석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석준에게 먼저 아이를 구하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분명 죽었을 것이다. 아이를 살려준 나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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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9화

고개를 끄덕이던 하석준은 수술실에 남았고 옆에서 대기하며 피터의 분부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예상대로 각종 합병증 증상이 나타났다. 피터는 하석준에게 메스를 맡긴 뒤 이 원장과 임 선생에게 다른 합병증 치료를 맡기고 자신은 심부전 증상에만 집중했다.평생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냈지만 이번 경우는 상황이 아주 어려웠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합병증 증상에 그조차도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응급수술을 하면서 간호사를 내보내어 가족들에게 환자의 위독 상황을 알리게 하였다. 합병증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그도 서유를 살려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실 밖, 다시 절망에 빠진 이승하는 간호사가 전한 소식을 듣고 혼이 빠진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져 버렸다.“이 대표님, 사인해 주시죠.”병세 위급 통지서에 서명한다는 건 서유의 병세가 심각하여 피터조차도 그녀를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 버리는 꼴이었다. 그에게 사인할 용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제발 그녀를 살려주세요.”밖에서 애원하는 소리에 피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구해야 할지. 의사가 열 명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한편, 인큐베이터 속의 아이는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쉴 새 없이 울어댔고 그 모습에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선생님, 제발 부탁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사모님을 살려주십시오.” 피터는 이 원장과 임 선생을 힐끗 쳐다보고는 환자를 살리려고 애쓰는 의사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들의 노력에 젖어 든 것인지 포기하려는 순간 다시 희망이 불타올랐다.“계속해서 환자를 살려.”“네.”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힘을 모은 외침이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졌고 수술실 밖에 서 있던 가족들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한편, 이씨 가문의 형제들은 각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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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0화

비틀거리며 다가선 남자는 차가운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피범벅이 된 손끝이 닿은 순간 남자의 창백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여졌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피범벅이 된 그녀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수술을 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 대신 차라리 자신이 고통받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가능하다면 이 고통을 그가 받고 싶었다. 모든 죄를 그가 감당하고 싶었고 서유만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는 죽어도 좋았다. 피곤이 가득한 얼굴을 숙이고 서유의 손을 꼭 잡았다. 우뚝 솟은 그림자가 수술대 앞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있는 것을 보니 마치 무릎을 꿇고 속죄하는 사람 같았다. 수술실 밖, 멀리 떨어져 있어도 키가 큰 남자가 온몸이 떨릴 정도로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남자가 지금 울고 있는지 그건 중요치 않다. 그가 지금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살고자 해도 살 수 없고 죽고자 해도 죽을 수가 없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남편으로서 아내와 아이가 동시에 생사의 고비를 겪는 것을 지켜봤으니 20시간이 넘는 동안 그가 어떻게 버텨냈는지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산후조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던 정가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통곡하는 그녀를 이연석이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산후조리원에 있던 정가혜는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울었고, 이연석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이미 쓰러졌을 것이다. 옆에 있던 이승연은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서유의 처지를 동정하고 이승하의 무력함을 안타까워하며 할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서유가 이승하한테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태석은 끝내 서유를 버렸다. 이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손자 손녀로서 어찌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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