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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1화

세 사람이 함께한 마지막 식사를 그녀도 기억하고 있었다.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그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그래. 같이 가자.”그녀는 손을 뻗어 단단한 남자의 팔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집에 가요. 여보.”남자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배를 잡고는 그녀와 함께 나란히 블루리도로 들어갔다.두 사람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주태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셰프한테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였고 또 사람을 보내 연이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오랫동안 연이를 보지 못한 서유는 아이가 보고 싶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아직 어린아이한테 달랑 편지 한 통만 남기고 떠난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주태현이 한마디 거들었다.“연이가 참 착해요. 이모랑 이모부한테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가끔 칭얼거리는 해도 떼를 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울지도 않았어요?”“심이준 씨랑 조지가 곁에 있어 주고 달래주니 아이가 울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었네요. 밤에 자다가 가끔은 울다가 깬 적이 있었죠. 어르고 달래니 또 금방 잠이 들더라고요.”아이가 몇 번 울었다는 말에 서유는 마음이 아파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주태현은 급히 그녀를 다독였다. “이모부한테만 화가 났다고 했어요.”“왜요?”“도련님이 얼마 전에 돌아왔었는데 연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오기도 전에 떠났었거든요. 얼굴도 안 보고 갔다고 아이가 어찌나 화를 내던지. 이모부가 돌아오면 다시는 말 걸지 않겠다고 했어요.”그 얘기에 안색이 어두워진 그를 보며 서유는 피식 웃었다.“아직 어려서 그래요. 애들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그러나 학교에서 돌아온 연이는 정말 이승하를 무시했다. 아무리 선물을 사서 달래봐도 소용없었다. 아이가 이제는 좀 컸다고 얼마나 고집이 센 건지, 이승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더 이상 달래주지도 않았다.이모부가 자신을 외면하자 연이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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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2화

그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그녀가 얘기하길 기다렸다.“전에 사월이랑 약속했었거든요. 다리가 회복되어 다시 일어서게 되면 큰 선물을 해주겠다고요.”그가 오해할까 봐 그녀는 한마디 더 보탰다.“육성재 씨가 날 살려준 은혜도 갚아야 하고요. 그리고 연이를 돌봐준 이준 씨와 조지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요...”해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 뜻대로 해. 내 허락 구할 필요 없어.”그녀는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살짝 치켜들고는 입술을 맞추었다. “당신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지금 바로 선물 몇 가지 준비해서 주 집사님한테 전달해달라고 부탁할게요.”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그가 그녀를 잡았다.“뭘 선물할 건지 나한테 말해. 내가 준비할게.”그는 조금도 그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남편이라...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선물하고 싶었은 물건들은 일일이 그한테 얘기했더니 그는 바로 아랫사람들에게 준비하라고 명했다. 잠시 후, 그가 그녀를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갔다.서유가 혼자 샤워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녀를 씻겨주었다.샤워를 마친 뒤 그녀에게 가운을 입혀주고는 그녀를 안아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욕실로 다시 들어가 찬물에 샤워를 하며 들끓는 욕망을 가라앉혔다.욕망이 이글거리는데 안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괴로운지. 그가 턱을 약간 젖히고 차가운 물에 얼굴을 적셨다. 살짝 벌어진 얇은 입술과 야릇한 자세에 욕정이 가득했다.잠시 후, 그가 간신히 참으며 서유의 곁에 다가가 누웠다. 품에 안겨 있는 그녀의 향긋한 살냄새를 맡으며 침을 꿀꺽 삼키던 그는 애써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연이는 학교에 갔고 주태현은 선물을 전달하러 집을 나섰으며 이승하와 서유는 다시 전용기에 올랐다. 두 사람이 치앙라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다 된 무렵이었고 푸른 하늘에 햇볕이 내리쬐고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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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3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김선우는 너무 놀라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리 못하였다. 이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원수 사이인데 이승하의 관계로 친척이 되었으니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김종수는 가족이니 복수는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이씨 가문에서 김씨 가문을 상대로 뒤에서 칼을 찌르는 사람이 없는 한 이승하를 찾아가 복수할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김종수가 이렇게 당부한 이유는 바로 김선우의 머리로는 이승하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을 지키기 위해 김종수는 좋은 말로 그를 타일렀다. 그 관계를 빌미로 설득한 걸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김씨 가문의 사람들이 아닌 이승하였다. 어찌 됐든 이제부터는 김종수를 만나면 외삼촌이라고 불러야 했고 촌수로만 놓고 보면 이씨 가문에서 피해를 본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 말을 듣고 김선우는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며 허벅지를 탁 내리쳤다. 그러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김종수의 팔을 흔들어댔다.“아버지, 진짜 대단하세요. 촌수로만 보면 우리 김씨 가문이 우세 아닌가요? 이제부터 허리 쭉 펴고 다니겠네요.”바보같이 천진난만한 아들의 모습에 김종수는 손을 뻗어 등짝을 한 대 때리고는 발로 걷어찼다. 그러나 김선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이내 짐을 싸서 치앙라이로 달려왔다. 이 기쁜 소식을 사촌 형과 사촌 누나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이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흥분에 겨운 김선우는 한 가지 일을 생각지 못하였다.“형, 이 대표님이 우리 아버지한테 외삼촌이라고 불러야 하고 고모한테 이모라고 불러야 한대. 그리고...”김선우가 손가락을 뻗어 뒷좌석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서유를 가리켰다.“누나가 우리 김씨 가문의 사람은 아니지만 누나의 엄마가 우리 가문에서 자랐으니 나한테는 작은이모가 되는 거지. 이 대표님도 작은이모라고 불러야 하는 거잖아. 너무 웃기는 관계 아니야?”말을 마치고는 입을 가린 채 껄껄 웃었다. 귀에 거슬리는 웃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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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4화

그가 입을 삐죽거리며 한마디 내뱉었다.“왜 그래? 성질 좀 죽여.”화가 난 육성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당장 내려! 꺼지라고.”김선우은 안전벨트를 꽉 잡고 반항적인 표정을 지었다. “싫은데.”육성재가 발로 그를 차려고 할 때, 뒷좌석에 앉아 있던 이승하가 매혹적인 눈을 들어 앞쪽을 쳐다보았다. “그만들 하지. 너희 형수 홑몸도 아닌데 운전에만 집중해. 싸우지 말고.”...덤덤한 그의 말 한마디에 얼굴을 붉히며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김선우가 입을 다문 건 사촌 형 때문이었고 육성재가 입을 다문 건 형수인 서유 때문이었다. 임산부인 서유를 생각해 육성재는 이내 차 속도를 늦추었고 김선우를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 묵묵히 차를 운전하여 절로 향했다. 한편, 육성아는 부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있었다. 매일 오후마다 10분씩 주지 스님이 불경을 낭독하는 것을 들으러 오곤 했다. 불경을 들으며 택이를 생각하고 절의 향기를 맡으니 비통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매일 밤 택이가 꿈에 나타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니 그 고통이 어찌 하루아침에 잊혀지겠는가? 창가에 앉아 밤하늘의 밝은 달을 바라보며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웠다. 별을 쳐다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비추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자신의 눈에 들어본 별이 분명 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그녀의 눈에만 자꾸 들어오는 것일까?그렇게 자신을 속여가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러면 택이가 나타날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택이는 약속대로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 남자는 불교를 믿는 신도로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가 부처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 택이의 명복을 빌고 있을 때,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부처님, 속세를 떠나면 속세의 번뇌가 말끔히 사라진다고 하던데 왜 전 아직도 평안하지가 않은 것인지요?”“속세의 인연이 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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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5화

주진모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택이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1년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진모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고 잔잔했던 그녀의 삶에 또다시 파도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타일렀다. 그 사람은 택이가 아니라고. 택이의 눈에는 점도 없고 택이는 고수도 싫어하고 택이는 캐주얼한 옷도 싫어하고 불경을 읽는 것도 싫어한다고 했다. 주진모는 택이가 아니었고 그와 택이의 취향은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택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저 택이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택이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라고 믿으면서 주진모를 귀찮게 하며 출가를 하겠다고 결정한 그를 기어코 붙잡았다. 그날 주진모가 그녀의 앞에 다가갔을 때, 그녀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택이를 돌려준 부처님께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소원을 이루기도 전에 가늘고 긴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고개를 들어 주진모의 눈을 바라보는데 그의 눈에 있는 점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냥 모른 척하면서 똑같이 생긴 눈앞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내 마음을 빼앗아 간 당신은 다른 남자를 그리워하고 있어. 난 누군가의 대역이 되고 싶지 않아. 당신 마음속에 내 자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기 남을게. 그러나 조금도 없다면 난 이곳을 떠날 거야.”“우리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야. 아이까지 있었던 사이인데 대역이라니?”그녀의 대답에 반짝이던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말없이 떠난 그 때문에 육성아는 미친 듯이 그를 찾아다녔고 결국 그를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육성재에게 애원했다. 육성재는 여동생이 미쳐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주진모는 정말 택이가 아니었으니까. 출가를 하겠다는 그의 인생을 이렇게 망쳐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주진모가 나타난 후 삶의 희망을 되찾은 여동생을 지켜보며 그는 또다시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진모에 대해 조사를 한 결과 그는 동남아의 한 명문 가문의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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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6화

그 후, 주진모는 택이의 부탁 때문에 그리고 마음이 가는 대로 기꺼이 택이로 살게 되었고 그녀가 진모라는 이름을 불러주기조차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 그는 택이가 되었고 택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완전히 택이가 되어버렸다. 가끔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자신이 택이인지 주진모인지 물어보곤 했었다. 몇 년 후, 두 아이를 낳고 살다가 그녀는 갑자기 그가 택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충격에 그를 떠나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으려 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택이인지 주진모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이 택이라고 기억을 잃었을 뿐이라고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때의 육성아는 이미 눈앞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주진모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택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택이에게 미안했다. 평생 택이만 사랑하겠다고 다짐해놓고는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주진모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와 아이까지 낳게 되었다. 택이는 어떡하라고...그녀는 고통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했다. 주진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고 결국 그녀는 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가 택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택이를 잊지 못하였다. 매년 기일이면 아이를 데리고 택이를 보러 갔었다. 아이를 데리고 간 이유는 택이한테 태어나지 못한 그 아이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생은 택이와 먼저 떠난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그다지 행복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택이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인생이 복잡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찌 됐든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부처님 앞에서 기도했다. 다음 생에는 택이를 꼭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다시 만나면 절대 택이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계속되었고 그녀는 여전히 주진모를 택이로 여겼다. 주진모도 그 꿈 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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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7화

택이와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던 이승하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그 순간, 택이가 뱀굴에서 기어 나와 비틀거리며 그의 앞으로 다가와서는 말을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보스, 나 대단하죠? 이런 곳에서 살아 돌아왔잖아요.”이런 결말이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꿈을 꿨었는데. 그러나 눈앞의 담담한 남자는 택이가 아니었다. 온갖 고통을 겪었지만 여전히 그의 눈은 빛이 났고 속세를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승하는 한눈에 택이와 주진모를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똑같이 생긴 얼굴을 보면서 그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담담하게 물었다.“그쪽을 찾아왔어.”이승하의 목소리에 꿀물을 마시고 있던 육성아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러나 그동안 부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마음을 다스린 게 효과가 있었는지 그녀는 예전처럼 욱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화를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 서유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온 이승하를 쳐다보았다.“택이 씨가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다면 당신을 죽였을 거예요.”육성아를 마주하니 이승하는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귀여운 아이와 함께 행복한 일생을 보냈어야 했던 택이는 그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로 인해 택이를 사랑한 육성아는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늘 당당하고 여유가 넘쳤던 남자의 차가운 눈에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미안함이 가득 차 올랐다. “미안해.”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남편을 잃었어. 나 때문에 택이가 돌아오지 못한 거야. 그러나 이승하는 이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희망을 끊어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가끔은 어리석은 인생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진모가 택이라고 계속 착각하며 살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그녀한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살아갈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생기는 거니까. 이승하가 이렇게 죄책감에 빠져 있는 모습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육성아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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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8화

맑고 깨끗한 남자의 미소가 서유와 이승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택이를 만날 생각에 들떠있던 마음도 그 웃음으로 인해 평온해졌다. 밖에서 아무거나 마시지 않던 이승하는 알록달록한 유리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은은한 차의 향기가 금세 입술 사이로 퍼져 나왔고 맛도 나름 괜찮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주진모를 쳐다보았다.“두 사람이 많이 닮은 건 사실이지만 넌 택이가 아니야.”그 말은 이승하의 마음속에 택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한테 택이는 유일한 존재였고 그 누구도 택이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닮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승하의 말에 주진모는 기쁘기도 했고 안심이 되었다.“대표님께서 저희를 구별할 수 있다는 건 택이가 대표님께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뜻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네요.”이승하는 눈을 내리며 쓸쓸한 마음을 감추었다.“네가 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널 본 순간 그게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후회로 가득 찬 남자의 얼굴을 보며 주진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어 그를 위로했다. “절 택이로 생각해 주세요. 택이 대신 보스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힘들게 살아온 동생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혼자 가문의 덕을 보고 자라왔고 근심 걱정 없이 여태껏 살아왔다. 반면 택이는 비바람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니 불공평한 삶을 살아온 동생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평소 택이가 자신을 부르던 호칭- 보스. 그 말을 듣는데 떠났던 택이가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이 험난하고 생사의 고비를 넘길 만큼 어려운 여정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는 주진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방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찻잔을 내려놓고는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이승하를 향해 짙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보스요.”예전에 택이도 그를 보스라고 부르는 것을 좋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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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9화

요리를 하는 것이 서툰 이승하는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접시를 들고나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큰 접시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위에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서유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고 주진모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다. 소금을 그렇게 들이부은 걸 직접 봤으니 젓가락질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승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주진모에게 건넸다.“먹어봐.”그의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주진모는 손을 뻗어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쥐고 스테이크를 잘랐다. 한참을 잘라도 썰어지지 않는 스테이크를 포기하고 다른 접시로 포크를 옮겼다. 접시 위에는 노란 한 덩어리 음식이 있었는데 보아하니 카레 소스로 만든 것 같았다. 카레 향이 나는데 비주얼은 말이 아니었다. 식욕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체면을 생각해 숟가락을 들고 한 입 떠서 먹었다. 그 순간, 이상한 식감과 맛에 구역질이 났다.그러나 평소에 도를 닦아온 사람인지라 그는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메스꺼움을 참으며 억지로 그 노란 카레 소스 덩어리를 꿀꺽 삼켰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은 것을 보고 서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 사람이 여기 오기 전에 몰래 요리라도 배운 건가? 주진모 씨가 어떻게 저걸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지?서유가 의심하는 반면 이승하는 꽤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가 접시를 들어 주진모의 앞에 놓아주었다.“탕수육이야. 한번 먹어봐.”택이는 단 음식을 좋아했다. 특히 탕수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주진모도 동남아에서 자라서 택이만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승하는 특별히 설탕을 많이 넣었다. 시커먼 탕수육을 쳐다보며 주진모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뱉은 말이 있으니 아무리 소금을 많이 넣었다고 하더라도 참고 먹어야 했다. 그가 다시 포크를 집어 작은 탕수육을 하나 골라 입에 넣었다.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나이프와 포크를 던지고 휴지를 꺼내 입술에 갖다 대고 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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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0화

이승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차갑게 그를 쳐다보았다.“왜요? 강중헌을 찾지 못하니 칩으로 절 통제하여 찾을 생각인가요?”강도윤의 말로는 그동안 상철수는 강중헌을 찾으려고 사방을 수소문했지만 강중헌은 이 세상에서 증발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상철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를 찾아온 것이겠지.이승하의 의심에 상철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난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네. 자네한테 알려주고 싶은 게있어서 이리 찾아왔어. 이미 폭파 시스템을 파괴해 버렸으니 이제부터 칩의 통제를 받지 않을 걸세.”그 말에 이승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김해 3구역에서 돌아온 후에도 폭파 시스템을 파괴하려고 시도해 봤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칩을 직접 만든 자가 시스템을 직접 파괴했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충격받았다. “폭파 시스템은 파괴되었지만 그 칩은 바이러스가 있어. 칩을 꺼낸다면 감염되어 폭발할 수도 있어. 아마도 그 칩은 영원히 자네 머릿속에 있어야 할 것 같군.”이미 다 알고 있었던 이승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아마 자네의 수명에도 영향을 주겠지. 정확히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이 칩은 사람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었지만 사람의 몸에서 실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이승하가 처음이었다. 결국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는 상철수도 예측할 수 없었다.여전히 말이 없는 이승하를 보고 그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먼 곳에서 상연훈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서유를 쳐다보았다.“서유가 아직까지 날 찾아와 따지지 않는 걸 보면 자네가 서유한테 칩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군.”이승하가 서유에게 비밀로 한 것은 칩 때문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가 자신을 걱정하는 게 싫어서 그녀한테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남자답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서유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네 머릿속의 칩 바이러스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어. 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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