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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1화

하필이면 쓸데없이 약점만 잡혀서!임연지가 차에 올라타는 것을 본 미화원은 가슴을 살살 치며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눈빛이 어쩜 저리도 살벌한지.뱃속 아이에게 덕담을 해줬는데도 기뻐하긴커녕 계속 노려만 보니 말이다.딸을 갖고 싶은 거라 해도 사람을 이렇게까지 살벌한 눈빛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차에 올라탄 임연지는 운전 기사에게 경주로 가달라고 분부했다.경찰에 체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연지는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번에 다시 강남으로 소환되었다.임연지는 차 시트 등받이에 몸을 기대앉았다. 지금 그녀의 마음은 먹구름으로 가득 찬 끊이지 않는 장마철처럼 우울하고 답답했다.마치 거대한 바위에 가로막혀 끝이 보이지 않는 그녀의 삶과 같았다.기뻐할 만한 일이라고는 없었다.구치소에서 임신 소식을 알게 된 그녀는 진실을 거부하고 싶었다.그날 밤 차고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임연지는 구역질이 나 토할 것만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작은 생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이 작은 생명으로 보석으로 풀려나고 감형도 받아야 했고 형량이 정해진 후에도 어느 정도의 유예를 선고받아야 했다...그래서 무조건 이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임연지가 주먹을 꽉 쥐었다.최씨 가문의 본가에 도착한 임지연은 친구들의 모임에 초대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심보도 악랄하고, 욕심도 많고, 쓸데없이 허영심만 많고 수치심도 없는 사람이라며 비난하는 것을 들어버렸다...그날 이후로 누군가가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만 봐도 임지연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고 있을 것이라는 피해망상이 생겨버렸다.임연지가 밤마다 불룩하게 올라온 자신의 배를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칼을 찔러넣어 버리고 싶은 심정을 얼마나 힘들게 억제해왔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하지만 지금 임연지에게는 자신의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지금 임연지는 아무것도 할 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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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2화

이들을 갈라놓으려는 사람들만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이엘리아를 떠올린 부승민의 눈빛이 서늘해졌다.연도진은 분명히 이엘리아가 강남에 남아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서정훈도 이엘리아를 필라시로 돌려보내고 싶어 했다.부승민은 그 둘에게 약간의 도움만 주면 되었다.“왜 왔어?”온하랑이 물었다.“숙모랑 송이랑 같이 놀고 싶어서 왔죠.’“오늘 오후에 어디 갔다 왔어?”부승민이 고개를 들어 잠시 온하랑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숙여 노트북에 시선을 집중했다.“경찰서 다녀왔어. 추서윤이 죽었대. 사건 조사도 끝났고...”온하랑을 말을 하며 부승민을 빤히 쳐다보았다.“야.”“응?”부승민이 온하랑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추서윤이 죽었다고.”“알아, 일주일 전부터 알고 있었어.”“...”“전혀 슬프다거나 안타깝지는 않아? 그래도 한때는 연인이었잖아...”“넌 내가 추서윤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으면 좋겠어?”부승민이 눈썹을 들썩이며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온하랑은 부승민의 질문에 입만 꾹 닫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돌려 부시아와 대화를 시도했다.부승민이 웃으며 몸을 일으켜 온하랑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내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좋겠어?”“그러든지 말든지.”부승민은 웃는 얼굴로 온하랑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추서윤이 죽었다고 했을 때 감회가 좀 새롭더라고.”“그게 끝이야?”온하랑이 곁눈질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조금 아쉬웠어.”“아쉽다고?”“응, 너무 늦게 죽은 것 같아서. 조금만 더 빨리 죽어줬으면 내가 걔 손에 놀아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우리도 어쩌면 이렇게 남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온하랑이 아버지를 잃고 혼자 외로운 나날들을 버티고 있던 때, 부승민은 병원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 중 한 명인 추서윤의 간호를 해주고 있었다.그때까지만 해도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다만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의 온하랑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어쩌면 이건 부승민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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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3화

온하랑이 시계를 흘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얼른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시연이가 곧 돌아올 예정이라서.”“시연 씨가 돌아오는데 우리가 왜 나가야 해?”부승민이 물었다.“그러니까요!”부시아가 동의하며 말했다.“시연이가 여기서 너희들이랑 마주치면 내가 좀 곤란해져.”부시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시연 아줌마 이제 저 안 좋아해요?”“아니, 시연이는 너희 아빠를 싫어하는 거야.”김시연은 어느 정도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무 죄 없는 아이에게 반감을 품지는 않았지만 항상 부시아가 이엘리아와 부시아의 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었다.“그럼 삼촌, 삼촌 혼자 돌아가는 건 어때요?”아이는 온하랑의 곁을 떠나기가 싫었다.부시아는 온하랑의 집에 남고 싶으면 남고, 함께 자고 싶으면 잘 수 있었던 예전이 그리웠다!부승민이 아이를 안아 들며 말했다.“그건 안돼. 너 혼자 여기 남는 건 숙모한테도 민폐야. 같이 가자.”“흥.”부시아는 어쩔 수 없이 부승민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온하랑에게 손을 흔들었다.“숙모, 안녕히 계세요.”“그래, 안녕.”두 사람이 집을 떠나기 무섭게 김시연이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원래는 온하랑이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갈 예정이었지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운전기사를 따로 고용해 스스로 운전을 하지 않았다. 며칠 전, 촬영을 나갈 때도 운전기사가 데려다줬던 것이었다.이번에도 운전기사가 직접 공항까지 가 김시연을 데리고 왔다.“왔어?”“응.”김시연은 캐리어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온하랑이 눈썹을 들썩였다. 오늘따라 김시연이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예전 같았으면 김시연은 캐리어를 한쪽 구석에 버려두고 대자로 소파에 뻗어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하소연해야 했다. 왜 오늘은 아무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는 거지?온하랑이 몸을 일으켜 김시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시연아, 괜찮아?”“괜찮아.”방 안에서 김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가도 돼?”“그래, 들어와.”온하랑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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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4화

“조건은, 연도진이랑 계약 결혼하는 거였어.”온하랑이 눈썹을 들썩이며 김시연을 바라보았다.“설마 흔들린 거야?”김시연은 온하랑의 등 위로 걸어가 그녀를 끌어안고는 턱을 온하랑의 어깨에 기댔다.“... 난 어느 정도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때?”온하랑이 턱을 괸 채 잠시 생각했다.“법적으로 계약 결혼은 허용이 인정이 안 돼. 연도진이 서정훈이라는 엄청난 빽을 지고 그때 가서 너랑 한 계약을 파기하고 진짜 부부가 되려고 하기 십상이야.”연도진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연도진은 아마 진심으로 김시연을 도와주고 싶은 게 맞을 것이다. 다만 김시연과 몇 년 동안이라도 어떤 수단으로라도 함께 묶여있고 싶을 뿐이었다.두 사람에게는 옛정이라는 게 존재했고 연도진의 외모도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었으니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지붕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예전의 감정이 되살아나 불꽃이 붙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계약 결혼이 진짜 결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하지만 김시연이 이미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이상, 온하랑은 그녀를 막기보다 김시연을 위한 다른 방법을 생각해줄 것이다.“그럼 어떡해?”“만약 네가 그 조건을 받아들일 거라면 차라리 너희 결혼 증명서도 위조해서 너희 아빠랑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속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냥 연도진을 사위의 신분으로 입사시켜. 그리고 재산이랑 회사에 대해서는 따로 변호사를 찾아서 계약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알겠어.”김시연은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온하랑의 얼굴에 입술을 맞췄다.“하랑아, 내가 너 진짜 사랑하는 거 알지!”“...”다음날 월요일이 되자 부승민은 온하랑을 데리고 산부인과를 가기 위해 집 앞까지 찾아왔다.1층으로 내려온 온하랑은 자신의 차 옆에 서 있는 부승민을 발견했다.온하랑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부승민은 차 뒷좌석의 문을 열고 그녀를 부축했다.“조심해.”온하랑이 차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한 부승민은 다른 쪽으로 가 그녀의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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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5화

병원에 도착한 온하랑은 의사에게서 진단서를 건네받고 태아 심장 박동 검사, 초음파 검사 및 다운증후군 검사를 받으러 이동했다.온하랑의 손에서 진단서를 건네받은 부승민은 진단서를 확인하는 순간 눈썹을 들썩였다.“16주?”“응.”온하랑의 표정은 평온했다.보아하니 부승민도 온하랑처럼 아이가 필라시에서 생겼을 것이라 예상한 모양이었다.부승민은 조용히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네 달 전이라면 혹시...두 시선이 공중에서 맞물렸다. 부승민의 눈빛에서 은근한 자랑스러움의 감정을 읽어낸 온하랑은 얼굴이 순간 화끈 달아올라 부승민의 옆구리를 세게 꼬집으며 시선을 피했다.“그래, 너 대단하다.”부승민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웃으며 온하랑의 허리를 끌어안고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무어라 속삭였다.온하랑의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더니 부끄러우면서도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화에 부승민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반짝이는 두 눈동자가 데구루루 구르더니 이내 배를 부여잡고 혹시라도 아이가 들을까 걱정하는 모습으로 말했다.“너 한 마디만 더 해봐?”“안 할게.”부승민은 온하랑에게 쫀 듯 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눈가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그녀의 애교 섞인 분노가 귀엽게만 느껴졌다.여기가 병원만 아니었더라면 부승민은 아마 온하랑의 살짝 올라간 붉은 입술에 바로 진득하게 입을 맞췄을 것이다.온하랑은 곧장 고개를 돌리더니 부승민이 따라서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앞으로 걸어갔다.차라리 따라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이 사람 머릿속에는 온통 그런 생각 들 뿐인 것 같다.부승민은 큰 보폭으로 온하랑을 뒤쫓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진료실 밖에 도착하자 온하랑은 자리를 찾아 자신의 차례가 되길 기다렸다.부승민은 그녀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온하랑의 손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 가볍게 어루만졌다.그러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살짝 몸을 기울여 낮게 속삭였다.“다행이다. 아기 건강해서...”“응?”“우리 필라에서 고생 꽤 했잖아...”온하랑은 또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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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6화

7시 5분, 편집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 웃으며 말을 건넸다.“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방금 누구 한 명 마중 갔다가 오느라...”그렇게 말을 하는 그의 뒤로 한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상의는 캐주얼한 티셔츠에 하의는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를 입고 있던 남자의 팔뚝은 꽤 튼튼해 보였고 종아리 근육까지 뚜렷했다. 남자는 키도 크고 외모도 준수했다.“동철 오빠?”“서프라이즈라고 할까?”최동철이 웃으며 들어와 그녀의 옆자리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았다.“네가 귀국했다는 걸 알고 연수한 편집장님께 추천했어.”온하랑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저야 감사하죠, 동철 오빠. 어쩐지 연수한 편집장님께서 왜 저 같은 아마추어를 찾는지 궁금했는데, 다 동철 오빠 덕분이었네요.”모델은 그들의 옆에서 긴장감에 덜덜 떨고 있었다.조금 전 두 사람이 즐겁게 얘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온하랑이 젊고 유능한 사진작가라고 생각했다.지금 들어보니 그냥 낙하산이었네!촬영 결과물이 재앙 수준만은 아니길 빌어야 했다.“하랑 씨 너무 겸손하시네요. 저도 아무나 받는 사람 아닙니다.”연수한이 웃으며 말했다.“하랑 씨 작품 보고, 하랑 씨가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연락 드린 겁니다.”편집장의 말을 들은 모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그러셨군요. 그럼 전 편집장님의 신뢰에 감사드려야겠네요. 이렇게 주신 기회니까 기대 절대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그럼 저도 하랑 씨 작품 기대해볼게요.”“너 필라시에서 잘 지내고 있었잖아. 왜 돌아온 거야?”최동철이 느긋하게 몸을 뒤로하더니 한쪽 팔꿈치를 의자 등받이에 걸쳤다.온하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돌아온 건 알면서 왜 돌아왔는지는 모르세요?”부승민이 승리를 쟁취하고 필라시로 갔던 일은 강씨 일가쪽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최동철이 입술을 다물더니 말을 꺼냈다.“둘이 화해하기로 한 거야?”최동철도 뒤늦게 온하랑과 부승민의 결별은 강씨 일가와의 싸움을 위한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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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7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동철 오빠?”“우리 외삼촌 때문에...”최동철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술잔을 들어 술을 들이켜고는 천히 또 한 잔을 따랐다.“외삼촌이 너희 아버지 사건을 재조사하려던 부승민을 막아서... 죄를 부민재한테 덮어씌우려고...”“저번에 내가 그랬지, 강씨 가문이랑 부승민이 척을 졌던 이유가 단순히 이익 때문이라고... 사실은 그게 아니야.”온하랑이 입술을 달싹였다.귀국 후, 온하랑은 일부러 최동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그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이거 봐. 딱히 부정도 안 하네. 내가 싫어진 거지?”“...”온하랑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싫어한다고까지는 못하지만, 그냥 이해가 안 될 뿐이에요.”필라시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온하랑은 최동철의 말을 굳게 믿었다.하지만 뒤늦게 부승민에게서 부승민과 강씨 일가의 싸움이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시절 온하랑은 부승민이 강씨 일가의 소행을 모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부승민이 온하랑에게 그 일에 관해 얘기할 때 어떻게 그토록 태연하게 강씨 일가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었을까?하지만 지금 부승민은 자신이 온하랑을 속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니 그때의 부승민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이해가 안 된다면서 왜 직접 나 찾아와서 안 물어봤어?”최동철은 이마에 팔을 갖다 대더니 가늘게 실눈을 뜬 채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온하랑도 왜 최동철이 강씨 일가에 대한 조사를 막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하지만 생각해보니 물어본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최동철과 온하랑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 최동철은 온하랑에게 모든 일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다.최동철이 몇 번 온하랑을 도와줬다고 해서 그녀의 모든 걸 다 도와줘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제가 아버지 사건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뻔히 아는 동철 오빠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분명 그만한 이유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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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8화

여기까지 말을 꺼내자 최동철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말끝을 흐렸다.그는 바로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부승민의 성장배경을 다시 떠올려본 온하랑은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부승민이 바로 예전 부선월과 최국환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어머니가 세상을 떴지만, 어머니를 죽인 그 범인은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게 최동철이 부씨 가문을 싫어하는 이유였다.그래서 강씨 일가가 사건 재조사를 꺼렸던 것이다. 부승민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어쨌든 판결만 내려지면 부씨 가문의 장남이 살인범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BX 그룹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 기회를 틈타 최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물론이고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사람들이 개떼처럼 달려들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부씨 가문은 살아남는다고 해도 예전 같은 파워는 다시 얻을 수 없을 것이다.온하랑은 문득 예전에 자신과 최국환이 했던 통화를 떠올렸다.어쩐지 수화기 너머의 최국환이 지나치게 친절한 것 같았는데 그 이유가 이제야 밝혀졌다. 온하랑이 자신의 전 며느리였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임연지가 자신에게 자꾸 찝쩍댄 탓에 부승민이 직접 부씨 가문으로 찾아갔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최국환이 그토록 쉽게 부승민의 부탁을 들어줬던 이유도 부승민이 자기 아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동철 오빠, 저도 오빠 감정 어느 정도는 이해해요. 저도 어릴 때 엄마가 없었거든요. 다행히 저를 위해선 목숨도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저를 사랑하는 아빠가 계셨죠. 그래서 저는 아빠가 왜 죽었는지 그 사건의 진상을 꼭 알아내야만 해요.”하지만 최동철은 온하랑처럼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와 최국환의 관계는 그저 평범하고 서먹서먹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최동철의 입에서 자신의 유일한 친혈육인 최국환 대신 외삼촌, 외할머니 같은 단어들만 나올 리가 없었다.최국환이 조금만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도 벌어질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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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9화

온하랑은 자신의 옆방을 최동철에게 잡아주고 자신의 두 경호원을 시켜 최동철을 침대에까지 부축했다. 침대 위에 뻗어버린 최동철이 마음 놓고 잘 수 있도록 신발까지 벗겨주었다.온하랑은 내친김에 에어컨도 적정한 온도로 맞춰주고 주전자로 물까지 데워 침대 맡에 놓아두었다.이 모든 일을 끝내고서야 온하랑은 최동철의 방을 벗어나려 했다.그 순간, 최동철이 온하랑의 손목을 잡고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슬픈 꿈이라도 꾸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속삭였다.“가... 가지 마...”그 모습을 본 온하랑은 침대 곁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최동철을 달랬다.“안 갈 테니까 편히 자요.”사실 진지하게 말하면 둘의 우정 관계에서는 최동철의 일방적인 도움이 더 컸다. 촬영 쪽으로도 그렇고 필라시에 있을 때도 그렇고 장국호를 다시 체포할 때도 최동철의 도움을 받았지만 온하랑은 최동철을 도운 적이 딱히 없었다.온하랑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최동철을 착하고 좋은 오빠로 여겼다.저번 일로 온하랑은 최동철을 서서히 멀리하긴 했지만 그가 강씨 일가의 편에 섰다고 해서 최동철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생각은 없었다.최동철은 온하랑을 책임져주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러니 온하랑을 도울 의무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이 일에는 부승민의 영향이 컸던 탓에 일부는 부승민 때문이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온하랑은 여전히 최동철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가지 마...”최동철은 여전히 편히 잠들지 못했다. 그는 계속 입술을 달싹이며 미세한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온하랑은 몸을 숙여 자신의 귀를 최동철에게 가까이 갖다 대고 나서야 겨우 몇 글자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보고 싶어요, 어머니, 어머니...”아마 꿈에서 어머니를 만난 모양이다.어머니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강씨 집안 사람들이 말해준 어머니의 생전 이야기 덕분에 최동철의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구체화 된 듯했다.“...”온하랑은 최동철의 덕을 볼 생각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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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0화

“아니, 동철 오빠랑 편집장님만 마셨고 편집장님께선 먼저 가셨어.”온하랑이 해명했다.“다른 용건 있어? 없으면 나 먼저 씻으러 들어갈게.”“그래.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응.”“잠깐만.”“왜?”“휴대폰 갖고 들어가. 끊지 말고.”온하랑이 멈칫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왜? 물소리가 듣고 싶은 거야? 그건 집에도 있잖아. 듣고 싶으면 아무 때나 듣든지.”“온하랑,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난 그냥 너랑 얘길 나누고 싶은 거지. 나중에 너 쉬는 거 방해 안 하려고.”“아... 아...”온하랑은 어색하게 대답하며 작은 소리로 반박했다.“내가 이상한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네가 이상한 요구를 하니까 그러지.”온하랑은 부승민과 대화를 나누며 욕실로 들어가 물이 튀지 않는 곳에 휴대폰을 놓고 수건과 샤워가운을 한쪽에 걸어둔 채 샤워기를 틀었다.욕실 안에는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소리로 가득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승민이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최동철이 너한테 뭐라 한 말 없었어? 예를 들면 강씨 집안이 왜 사건을 재조사하고 싶지 않아 했는지 같은 거 말이야.”온하랑은 옷을 벗으며 대답했다.“했어.”“뭐라고 했는데?”“동철 오빠는 부씨 가문이 싫다고 했어. 부선월 때문에 동철 오빠 어머니께서 오빠 낳으시자마자 투신자살하셨대. 그래서 부민재를 제압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부씨 가문을 찢으려고 했던 거래.”수화기 너머의 부승민이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들리는 거자?”온하랑이 물었다.“들려.”부승민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넌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온하랑이 웃으며 샤워기 아래에서 두 손으로 물줄기를 따라 몸을 문질렀다.“뭘 물어봐? 동철 오빠가 네 이복형이라는 거 알고 있냐고?”온하랑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부승민이 입술을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할머니께서 내가 누군지 알려주신 적이 있었는데 난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고. 넌 우리 고모가 왜 널 안 좋아하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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