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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1화

문을 열고 들어선 온하랑은 신발을 갈아신고 소파에 앉았다.부시아는 온하랑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 들어갔다. 아이는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잘못을 안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왜 기사 아저씨랑 같이 안 돌아갔어? 왜 혼자 여기까지 온 거야?”온하랑은 무표정으로 부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부시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차오르며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왜?”“그야... 그야 이상한 아줌마가 우리 학교까지 찾아왔는데, 친구들이 그 장면을 봐 버린 바람에 다들 저한테 사생아라고 했단 말이에요...”맑은 눈물방울이 아이의 백옥 같은 피부를 타고 진주 방울처럼 똑똑 떨어졌다.아이는 붉은 눈시울에 눈물을 방울방울 매단 채 겁먹는 눈빛으로 훌쩍거렸다.“숙모, 저 미워하지 마세요. 네? 말도 잘 듣고 화나게도 안 할게요. 동생이랑 여동생도 제가 잘 돌볼게요...”말을 마치자 부시아의 눈에서 또 한줄기의 눈물이 흘렀다.아이의 눈빛이 어미 잃은 짐승처럼 불쌍했다. 아이는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혹시라도 그녀가 자신을 싫어할까 두려워했다. 아이의 눈빛을 마주한 온하랑은 순간적으로 본인이 너무 무자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귀엽고 기특한 아이를 어떻게 감히 싫어할 수가 있을까?부시아가 이렇게나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데 온하랑이 어떻게 아이를 밀어내고 버릴 수가 있을까?부시아는 죄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신분을 미리 정하고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테니.온하랑은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손으로 주먹을 살짝 쥐었다 놓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부시아를 자신의 앞으로 데리고 와 아이의 얼굴에 맺혀있던 눈물방울을 살살 닦아주며 말했다.“울지 마, 시아야. 숙모는 널 싫어한 적 없어.”부시아는 새끼 고양이처럼 온하랑의 손길을 느꼈다.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아이의 코는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부시아가 계속해서 훌쩍이며 말했다.“정말요?”“정말이지.”온하랑의 마음이 사르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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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지금 온하랑은 결혼이라는 존재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는 상태이다.어차피 부승민과 재혼 할 생각이 없으니 같이 살든 말든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아이를 낳게 되면 그저 같이 키우면 그만이었다.만약 부승민과 함께 산다고 하면 이엘리아와 부선월이 찾아와 귀찮게 할 게 뻔했다. 임신 중인 온하랑은 좋은 것만 생각하며 배 속에 있는 아이를 건강하게 품는 것에만 집중해야 했다.차라리 이엘리아와 부선월에게는 자신과 부승민이 정말 끝난 사이라고 여기게 하는 편이 더 편할 것이다. 그래야 그녀들이 자신이 아닌 부승민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테니 말이다.부시아는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간을 찡그렸다.“하지만 숙모, 이러면 그냥 할머니 뜻대로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그 이상한 아줌마가 빈틈이라도 노려서 제대로 들어앉으면 어쩌려고요?”온하랑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만약 네 삼촌이 정말 그 여자가 들어올 빈틈을 준다면, 내가 더는 좋아할 가치도 없다는 거잖아? 그땐 완벽히 버리면 돼.”부시아가 미련이라도 남은 듯 온하랑의 품에 안겨 주위를 둘러보았다.“시연 아줌마는요?”“출장 갔어.”“알겠어요.”부시아가 천천히 온하랑의 품을 벗어났다.“저는 송이 찾으러 갈게요.”온하랑은 요리를 하던 중 부승민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시아 지금 너희 집에 있어?”“응.”“귀찮게 해서 미안해. 지금 시아 데리러 갈게.”부승민은 혹시나 온하랑이 화라도 났을까 걱정이었다.“그래, 이쪽으로 와.”프라이팬 손잡이를 잡고 있던 온하랑은 다른 한 손으로는 뒤집개를 든 채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낀 채 불편한 자세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또 할 말 있어? 다른 용건 없으면 끊을게.”생각보다 흔쾌한 온하랑의 대답에 부승민의 마음이 무거워졌다.부시아는 부승민이 다른 여인과 어떠한 관계가 발생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그 자체로도 이미 온하랑에게는 가슴에 꽂힌 비수였다. 부시아를 마주할 때마다 그 비수가 가슴을 더 깊게 파고들었을 것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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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고개를 든 부승민의 눈빛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시아를 위한다는 걸 명분으로 내세우시면 본심이 가려질 거라 생각하세요? 시아가 누군지 진작 알고 있었으면서 왜 이제야 밝히신 건데요?”“내 사심이 좀 담겼던 것쯤은 인정할게. 하지만 다 널 위해서였어. 이엘리아가 집안이며 얼굴이며 너한테 안 어울리는 게 뭐니? 게다가 시아 친엄마라는데, 이거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 아니겠니?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여전히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선 본인이 옳은 줄로만 알고 계시네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장님을 위해서겠죠.”부선월은 부승민과 부시아를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했지만 지금 부승민과 부시아 모두 부선월의 선택에 만족하지 못했다.만약 정말 부승민과 부시아를 위한 것이었다면 부승민이 좋아하는 여자가 온하랑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부시아가 누구의 딸인지 밝히며 억지로 이엘리아를 부승민과 엮으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부선월은 부승민이 다시 온하랑을 마주할 수 있는 면목조차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온하랑은 부승민에게 풀 수 없는 응어리가 생겨버렸다.부선월은 온하랑이 부승민의 아내가 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던 나머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둘의 재결합을 막았던 것이다.부시아는 그저 부선월의 도구에 불과했다.부선월이 부시아의 정체를 밝히던 그 날부터 부승민은 그녀를 어머니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승민아, 난 네가 날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실망이구나.”부선월은 마음 아프단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널 낳지도 않는 건데. 너만 아니었으면 내 반평생을 해외에서 보낼 일도 없었어.”“회장님께서 반평생을 해외에서 보내신 건 저 때문이 아니라 최국환 때문이었겠죠.”부선월은 아직도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임가희의 잘못으로 돌리며 온하랑을 계속해서 증오하고 있었다.“나랑 네 아빠도 한때는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어. 임가희가 그이만 안 꼬셨으면...”남자는 다 똑같다. 최국환이 술자리 도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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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부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친자 확인 검사하기 전에 한 번 왔었어요. 그때 막 저 보고 귀여워서 선물 주고 싶다고 했었는데 진짜 이상했어요.”“알겠어. 다시는 유치원 가서 애 방해하지 말라고 내가 잘 말해둘게.”“네.”“가서 놀아.”들어올 때부터 주방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을 느꼈던 부승민은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큰 보폭으로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하랑아.”“왔구나.”온하랑은 그저 눈길 한 번 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밥은 먹었어?”“아직.”“그럼 같이 먹자.”온하랑이 먼저 자신에게 식사 요청을 했다는 사실에 부승민의 마음이 좋아졌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오늘은 미안했어. 시아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데리고 나갈게. 다음부터는...”“내가 왜 시아를 안 보고 싶어 하는데?”온하랑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아, 나는 그냥...”온하랑이 부승민을 훑어보며 말했다.“내가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야? 며칠 전만 해도 시아 안고 자던 사람인데 시아 정체 하나 알았다고 안 보고 싶어 지게?”“아니, 아니.”부승민은 웃음을 터뜨리며 바로 말을 바꾸었다.“하랑이 착하지, 그러니까...”“오늘 돌아가면 시아 다시는 본가로 보내지 마.”서프라이즈가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부승민은 믿기 힘든 마음에 가까스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 넌 나가봐도 돼, 남은 건 내가 할게.”온하랑이 정말 이렇게 쉽게 부승민을 용서하는 걸까?부승민은 온하랑에게 부시아를 계속 본가에 둬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필요 없어진 걸까?며칠 동안 계속 고민해오던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건가?다음 채소를 손질하는 내내 부승민의 마음은 계속 들떠있었다.“좋아.”온하랑은 앞치마를 부승민에게 건네주고는 주방을 벗어났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승민은 알아서 접시와 그릇들을 한데 모아 주방으로 옮겨 설거지를 시작했다. 온하랑은 식탁을 정리하고 있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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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그 순간, 부승민은 아이가 임신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했다.부시아가 두 눈을 깜빡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숙모 임신했는데요!”“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부승민은 몸을 낮춰 부시아와 시선을 맞추었다. 깊은 곳에서부터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것 같은 희망이 끓어올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현승 삼촌 결혼하던 날에요. 숙모가 유치원에 저 데리러 왔을 때 말해줬었어요. 저녁에 삼촌은 집에 안 들어왔었고 그다음 날에 숙모가 집을 나갔어요. 그래서 삼촌한테는 얘기 안 했던 것 같은데요.”부승민은 너무 기쁜 나머지 속으로는 이미 날뛰고 있었다.온하랑이 임신을 했다!이제 그들 사이에도 아이가 생겼다!부승민과 온하랑 두 사람의 아이였다!감히 기대해본 적도 없는 좋은 소식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부승민은 잔뜩 흥분한 마음을 어찌할 방도를 몰랐다.몸을 일으킨 부승민은 그대로 곧장 온하랑의 집으로 다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그런 부승민을 부시아가 옆에서 말렸다.“삼촌, 일단 진정해봐요. 아무리 그래도 숙모는 삼촌한테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부승민이 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말이야?”“할머니랑 그 이상한 아줌마가 숙모랑 삼촌이 재결합 하는 거 두고만 보진 않을 거라고요. 지금 숙모 데리고 가봤자 그 두 사람이 계속 숙모 괴롭히고 귀찮게 할 거예요. 그럼 숙모 배 속에 있는 아기한테도 안 좋아요. 숙모랑 재결합하고 싶으면 먼저 할머니랑 이상한 아줌마부터 처리해야 할걸요.”부시아가 또박또박 말했다.그 이상한 아줌마가 여기 남아 있는 이상, 부승민과 온하랑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지기만 할 게 뻔했다.부승민은 부시아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의 자신은 지나친 기쁨에 뇌를 지배당한 나머지 너무 충동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온하랑의 몸으로 다시 임신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이번 태교에는 무조건 신경을 써야 했다.만약 이번 아기까지 잃는다면 온하랑이 입는 마음의 상처가 상당할 것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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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곁눈질로 봤을 때는 정장을 입은 키 큰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다만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를 뿐이었다.김시연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앉은 남자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김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돌리며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재수가 없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보질 않는 건데.“그거 무슨 표정이야?”연도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거들떠볼 가치도 없고 귀찮아서 좀 비웃어봤어.”김시연의 입에서 정 없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김시연의 다른 한쪽에 앉아있던 매니저가 두 사람의 말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태연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매번 밖에 나와서 일을 할 때면 연도진이 김시연을 찾아오는 걸 볼 수 있었다.그런다고 딱히 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김시연과 입씨름만 하며 서로를 공격할 뿐이었다.그 횟수가 점점 늘어나가 매니저도 김시연이 지금 천천히 끓는 물 속에 갇힌 개구리가 되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네 아버지가 오라고 해서 와본 거야.”“...”김시연이 코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네가 그렇게 우리 아빠 말을 잘 들어? 아주 그냥 아빠라고 부르지 그래?”연도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아빠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장인어른이라면 몰라도.”“꺼져.”김시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괜히 내 덕 보려고 덤비지 말고, 이럴 시간에 네 여자친구나 찾아가시지.”연도진의 여자친구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김시연은 순간적으로 이엘리아가 부승민과 함께 낳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아이가 이제 다섯 살이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연도진은 과연 알고 있을까?설마 바람 핀 사실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정말 이럴 것이라 생각하니 김시연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나한테 여자친구가 어디 있다고... 왜 웃어?”“아무것도 아니야.”입을 꼭 틀어막은 김시연의 눈꼬리가 휘었다. 누가 봐도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연도진이 미간을 가볍게 좁히더니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이 근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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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연도진은 듣는 순간, 온하랑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하지만 연도진은 이미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날에 바로 사람을 시켜 CCTV를 확인했고 해당 부분만 잘라 휴대폰에 저장해두었다.김시연의 질문에 연도진은 바로 그 영상을 보내주었다.“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니야. 내가 알아서 거절했어.”김시연은 연도진이 보내준 영상을 보더니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연도진 씨 해외에서 인기 많으신가 봐?”“그래도 난 너 하나만 원하잖아.”“가져도 돼요? 김시연 씨?”연도진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한 손을 의자 등받이에 올리고는 몸을 김시연에게로 기울였다. 연도진의 상체가 점점 김시연에게 가까워지며 옅은 향수 냄새가 탐욕적인 수컷의 향기가 어우러져 서서히 김시연을 감쌌다.연도진은 금색 테두리로 된 안경을 벗으며 온화한 얼굴을 드러냈다. 표정은 웃는 듯 안 웃는 듯했지만,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 있는 모습이 꼭 전형적인 겉모습만 멀쩡한 쓰레기 같았다.김시연은 순간적으로 넋이 나간 듯했다.“김시연 씨?”눈앞의 잘생긴 얼굴이 점점 커지며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김시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얼굴을 뒤로 빼며 놀란 가슴을 두드렸다.“깜짝이야... 가자, 뭐 먹으러.”김시연은 몸을 일으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김시연의 뒷모습은 늑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당황스러워 보였고 걸음걸이 하나하나도 불안해 보였다.연도진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더니 몸을 일으켜 빠른 걸음으로 김시연을 뒤쫓아갔다.맨 뒷줄에서 마스크를 낀 한 여인의 눈길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두 사람이 선후로 자리를 뜨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스크를 낀 그 여인도 몸을 일으켜 조용히 그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연도진이 두세 걸음 만에 김시연을 따라잡으며 말했다.“내 차 지금 지하 2층에 있어. 엘리베이터는 이쪽이고.”연도진이 김시연과 함께 걸으며 물었다.“아까는 왜 웃었어?”“아, 아까워라. 난 또 네가 네 여친 바람피우는 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김시연이 한숨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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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연도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이 선후로 올라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코너 쪽에는 마스크를 쓴 여자가 서있었다. 조금 전, 자신이 목격했던 장면이 떠오른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원망만 잔뜩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만약 온하랑도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그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인의 정체가 앨리스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앨리스가 강남에 온 이유는 오직 연도진을 위해서였다. 이틀 전, 연도진이 C 시에 도착했을 때, 앨리스도 같은 곳에 도착했다.이엘리아가 연도진의 비서를 통해 연도진이 묵는 호텔을 알아내 앨리스에게 전해주었다.앨리스는 정말 연도진이 C시로 온 이유가 단순히 비즈니스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딘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눈치챘다.연도진은 전혀 바빠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얼마나 한가한 건지 C 시의 로컬 맛집, 먹자골목, 관광지와 같은 것들을 여기저기서 알아보고 있었다. 그 모습만 보면 출장보다는 오히려 여행에 더 가까워 보였다.오늘에서야 조금 전 그 장면을 목격함으로써 앨리스는 모든 걸 알게 되었다.카이사르가 좋아하던 사람은 페이가 아니라 페이의 친구인 김시연이었다!C 시까지 찾아온 것도 출장이 아니라 김시연 때문에 온 것이었다!사전에 C 시의 유명 관광지며 맛집이며 다 알아봤던 이유도 오늘 김시연을 데리고 나오기 위한 준비였다!앨리스는 그런 김시연에게 질투가 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카이사르는 윌슨 가문으로 돌아간 후부터 쭉 따사롭고 우아한 태도로 사람을 대해왔다. 그는 항상 성숙하고 무게 있는, 냉정하고 절제된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카이사르만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한 선구안을 지닌 사람처럼 행동했다.그의 따사로움은 진정한 따사로움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을 끌어당기기 위해 카이사르가 만들어낸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거절할 때의 카이사르는 그 누구보다도 냉혹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그는 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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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일전, 연도진은 강남에 머물면서 수시로 이엘리아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주시했었다. 그녀가 매일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걸 연도진은 그저 오락에만 빠져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넘겼었다.김시연은 절대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일을 함부로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김시연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그녀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말하자면 좀 긴데, 우선 부승민의 고모인 부선월이 해외에서 한 고아 여자아이를 입양했어. 지금은 이미 다섯 살이고. 작년에 하랑이가 유산을 했는데 마침 그때 여사님께 일이 생겨서 아이를 부승민한테 대신 돌봐달라면서 맡겼거든. 그때 부승민이 하랑이 잘 꼬드겨 보겠다고 애를 아예 국내에 남겨두곤 하랑이랑 자주 만나게 했거든. 아이는 부승민 호적에도 같이 올랐어. 그런데...”연도진은 그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예측이라도 한 듯 김시연의 말을 이어 말했다.“그런데 며칠 전에 갑자기 그 여자애가 부승민이랑 이엘리아의 아이라는 게 밝혀진 거고?”“응, 맞아. 자세한 건 나도 얘기해줄 수 없긴 한데, 부승민이랑 부선월이 사이가 좀 안 좋았던 것 같아. 부선월은 처음부터 아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계속 하랑이를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있었거든. 어차피 지금 하랑이는 나랑 같이 살고 있고 그렇게 부승민이랑도 또 멀어졌지.”연도진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했다.“그 아이가 부승민이랑 이엘리아의 아이라는 건 어떻게 확신하는데? 친자 검사라도 해봤어?”“했어. 부승민이 직접 사람 부쳐서 BX 그룹이 후원하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모양이더라고. 이런 검사 결과면 딱히 문제는 없을 거야.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는 하랑이도 하랑이겠지만 나도 너무 믿기 힘들더라.”연도진의 눈빛이 무거워지더니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이렇게 된 이상 친자 확인 결과는 진짜가 맞을 것이다.배 속에 있는 아이를 낳는 데는 10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숨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예전으로 시간을 돌려본다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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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강남 쪽에서 알아주는 큰 도시였던 C 시에는 간식거리의 종류가 아주 많았다. 그중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취두부, 킬바사 소시지, 쌀국수, 새우튀김 등이 있었다.김시연은 예전에 출장으로 C 시에 와본 적이 있었지만 촉박했던 시간 탓에 다른 곳들만 대충 돌아보고 이곳 먹자골목은 처음이었다.그녀는 우선 킬바사 소시지 두 개를 구매해 하나를 연도진에게 쥐여주었다.소시지를 절반 정도 먹은 김시연은 모찌를 파는 구역으로 가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쓰레기통 어디 있어요?”“남은 거 안 먹으려고?”“응.”“맛없어?”“아니, 완전 맛있어. 근데 다른 것도 많잖아, 배 남겨둬야지.”“...”“나 줘,”연도진은 김시연의 손에서 절반 정도 남은 소시지를 건네받더니 아무런 무리도 없이 바로 자신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그러는 사이, 김시연은 이미 모찌를 구매했다.김시연은 일제강점기에 쳐들어온 왜놈이라도 된 것처럼 한 군데도 놓치지 않고 몇 입 맛만 본 후 남은 것들은 다 연도진에게 처리했다.연도진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7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지긋지긋한 공부가 끝나면 주말마다 둘이서 몰래 나와 이런 식으로 데이트를 하곤 했다.그 시절, 연도진의 아버지가 병원비로 집안의 전 재산을 털어 써버리는 바람에 연도진의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학비도 연도진의 성적을 괜찮게 여기고 있던 선생님이 어떻게든 방법을 대 받게 된 후원금으로 댔다.그리고 평소 생활비 같은 것은 방학마다 간단히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해가며 천천히 모아 겨우 써왔다.그러니 두 사람의 데이트 비용은 대부분 김시연이 냈다.연도진도 김시연의 가정 형편이 좋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산의 정도를 떠나 김시연만 돈을 내는 것이 불편했던 연도진은 가끔 모은 돈으로 자신이 감당 가능한 김시연을 먹자골목 같은 곳으로 데려가고는 했다.김시연은 다양하게 사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한두 입 정도만 먹고 남은 것은 다 연도진의 몫이었다.가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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