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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1화

부승민이 구치소에서 무사히 나온 뒤 부현승과 서혜민의 결혼식 일정도 다시 잡혔다.달라진 게 있다면 임신한 서혜민의 배가 눈에 띄게 커졌다는 것이다.하여 결혼식은 심플하게 진행되었다.이제 막 결혼하는 신부가 임신해서 배가 나온 게 보기 안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신부와 배 속의 아이가 힘들까 봐 간단하게 준비했다.서혜민은 불만이 많았지만 그녀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한 번뿐인 결혼식을 럭셔리하게 치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이런 요구를 말했다가 괜히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는 엄마로 비칠까 봐 입을 꾹 다물었다.웨딩카는 아침 5시에 강남으로 출발했고 8시쯤에 신부에게 도착했다.서혜민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부현승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많은 친척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팔짱을 끼고 신혼집으로 들어갔다.온하랑은 부씨 가문 식구로서 소청하 및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찾아온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그러다가 10시쯤에 모두가 함께 호텔로 출발했다.양가 친척들만 참석하는 단출한 결혼식을 치른다고 했지만 호텔은 그에 비해 매우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졌다. 부씨 가문은 신부 쪽을 위해 버스 두 대를 빌려 직접 신부 측의 친척들을 모셔 와 피로연에 참석시켰다.온하랑도 소청하와 함께 서혜민의 부모님께 인사를 마친 후 결혼식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는데 부선월이었다.부선월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핸드백을 들고 안으로 걸어갔다.순간 소청하와 눈이 마주친 온하랑은 급히 입을 열었다.“신부 측 사촌 언니가 아직 안 온 것 같네요. 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싫어하는 사람에게 굳이 인사할 필요가 없었기에 온하랑은 무시한 채 걸음을 옮기려 했다.“알겠어요.”소청하가 답했다.그런데 이때 온하랑을 발견한 부선월은 목을 한껏 치켜들고선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여긴 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하랑은 마치 부선월을 보지 못한 듯 일부러 시선을 돌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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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그 상대가 온하랑의 사촌오빠인 줄은 이제야 알았다.온하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씨 가문에 입양되었으니 사촌 오빠라는 사람도 부씨 가문인 게 틀림없었다.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부승민도 나타날 것이다.부승민과의 거래가 떠오른 서수현은 옆에 있는 온하랑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선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온하랑은 두 사람을 이끌고 홀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게 했다.하객들이 거의 도착하자 온하랑은 단상 바로 옆에 놓인 원형의 테이블로 걸어갔다.이 테이블에는 김정숙, 소청하, 부윤민 그리고 가까운 친척 이모들로 모인 부씨 가문의 식구들이 앉았다.부선월은 김정숙의 왼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테이블에 온 온하랑은 부선월에서 한 자리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의자를 꺼내 앉았다. 부선월과 가까운 중간의 빈자리는 부승민을 위해 남겨두었다.부선월은 온하랑을 째려보며 속으로 궁시렁댔다.‘버르장머리 없는 것.’인기척 소리에 주위에 있던 모든 친척이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쳐다봤다.사실 사촌 중 온하랑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 부씨 가문에 입양됐을 때 다들 별로라는 티를 팍팍 내다가 부승민과 결혼한 후에야 조금 나아졌다.온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고모님도 오셨네요? 언제 가시게요?”부선월은 어이가 없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왜? 빨리 갔으면 좋겠어? 쫓아내지 못해서 안달 났네.”“그럴 리가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코빼기도 안 보이셔서 당연히 오늘도 안 오는 줄 알았죠. 이제 보니까 오빠가 그래도 체면이 좀 있는 편이네요.”“너...”김정숙은 재빨리 부선월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렸다.“이 좋은 날에 결혼식 망칠 일 있어? 이제 그만해.”결혼식이 시작되려 할 때 어디선가 큰 손이 나타나 온하랑 옆에 있던 의자를 잡아당겼다. 자리에 앉은 남자는 온하랑의 다리에 손을 얹더니 자연스럽게 만지며 입을 열었다.“고모, 언제 오셨어요?”“어제.”부선월은 부승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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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신랑과 신부는 서로 반지를 교환했고 곧이어 무대 아래로 내려가 양가 부모님께 절을 올리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서수현은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무대를 꾸민 아름다운 꽃바구니가 앞을 가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들었다.인사를 끝낸 후 신랑 신부는 양가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서수현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매니저님 어머님이 왜 집주인 아주머니랑 닮은 것 같지?’서석철도 뭔가 이상한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수현에게 물었다.“수현아, 저 사람 집주인이랑 닮은 것 같지 않니?”“저도 마침 그 생각 했어요.”결혼식이 끝나면서 신랑신부가 퇴장했고 곧이어 종업원들이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신부는 임신 중이라 음주하면 안 됐기에 신랑만 어른들과 함께 술 한잔을 기울였다.그렇게 잔을 비우고선 다시 술을 채워 어른들의 지시를 따라 다음 테이블로 향했다.걸음을 옮기던 부현승은 낯익은 사람을 보고선 걸음을 멈췄고 혹시나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부릅뜨고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옆에 앉은 서석철도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님을 깨달았다.그는 이전에 서씨 가문의 친척들로부터 ‘현이’라는 이름을 자주 들었지만 그 사람이 서수현인 줄은 아예 상상도 못 했다.서혜민의 사촌 언니가 서수현이라니, 참 공교로운 일이다.마침 고개를 든 서수현도 부현승과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잔을 채웠다.신랑이 테이블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젓가락질을 멈췄다.윗사람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부현승은 옆에 있던 술잔을 들며 입을 열었다.“저와 혜민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혜민이는 몸이 안 좋아서 인사드리러 못 왔는데 제가 그 마음까지 담아서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 테니 잘 지켜봐 주세요.”서수현도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음료수를 들어 보이며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셨다.그렇게 몇 마디의 안부를 주고받다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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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그 여자 피 확실하지?”“확실합니다. 못 믿겠으면 직접 cctv를 돌려보셔도 됩니다.”종업원의 답을 들은 부선월은 말없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비밀번호는 없어.”그렇게 말 한 뒤 피 묻은 접시 조각이 담긴 유리병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먼저 들어갈게.”차에 탄 온하랑은 운전기사에게 말했다.“근처에 있는 가장 가까운 보건소로 가주세요.”기사는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길일이라서 그런지 오늘따라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호텔 근처 곳곳이 자가용 차들로 꽉 막혔고 짧은 거리는 이동하는데 적어도 10분 정도 걸렸다.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몸에 난 상처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건 종아리였다.순간 아랫배도 아파왔다. 비록 틍증이 심한 건 아니었지만 식은땀이 맺힐 정도로 쑤셨다.“기사님, 병원으로 가주세요.”온하랑은 등받이에 기대여 허약하게 말했다.차라리 병원에 가서 검사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기사더러 차를 돌리라고 했다.병원에 도착한 온하랑은 의사 선생님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고 의사 선생님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지막 생리가 언제죠?”“20일 전쯤?”온하랑은 생각에 잠기더니 긴가민가해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이번에는 양이 너무 적었어요. 다음 날에 바로 없어져서...”“다음날에 없어진 거면 생리가 아니라 출혈인 것 같은데요?”온하랑은 몇초간 침묵했다.“그럴 수도 있겠네요.”기억이 맞다면 그날은 부승민과 침대에서 오랫동안 사투를 벌이다가 나중에 출혈이 발생했다.‘설마 잠자리를 가져서... 질염이 생긴 건가?’“산부인과에 가보세요.”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번호표를 뽑은 후 온하랑은 산부인과에 가서 자신의 순서가 되기를 기다렸다.10분 후, 온하랑의 순서가 되었고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책상 옆 의자에 앉았다.“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온하랑 씨 맞으시죠? 어디가 불편해서 찾아오셨죠?”온하랑은 자신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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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온하랑은 표정이 밝아지더니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어찌나 기쁜지 머리카락마저 신이 나서 바람에 흩날렸다.그녀는 테스트지를 들고 다시 진찰실로 돌아갔고 이를 확인한 의사는 웃음 가득 머금은 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축하합니다.”“감사합니다.”온하랑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병원에 들어왔을 때 비해 아예 사람이 바뀐 듯 이제는 아랫배를 쑤시는 고통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일단 채혈부터 하시고 초음파검사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약은 제가 처방해 드릴게요.”“알겠습니다.”“잠깐만요. 혹시 혼자 오셨어요?”“아니요.”기사님이랑 같이 왔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진찰실을 나온 온하랑은 곧바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쏜살같이 달려온 기사는 온하랑을 대신하여 줄을 섰고 한편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녀는 차례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기사는 온하랑과 부승민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온하랑이 다시 임신한 것을 보고선 자기 일마냥 매우 기뻐했다.두 시간 후 온하랑은 착잡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든 채 진찰실로 돌아왔다.아이는 필라시에서 임신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검사 결과에 따르면 임신 14주 차라고 한다.그렇다는 건 임신한 지 3개월이 넘었다는 걸 뜻했기에 필라시에 오기 전에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시간을 계산해 보면 임가희가 약을 먹인 시점과 매우 일치했다.당시 약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지만 부승민의 말에 따르면 그날 관계를 가진 게 아니라 그저 서로 맞닿은 채 안고 있었다고 했다.물론 임신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희박한 확률도 임신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온하랑은 기분이 착잡했다.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고선 약을 처방하며 신신당부했다.“여기 오기 전에 다치셨죠? 태아가 아직 불안정하니 이런 상황에서는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하랑 씨의 경우 다른 여성분들에 비해 몸이 허약하여 유산할 확률이 훨씬 높거든요. 늘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게 아이한테도 좋습니다. 아참, 임신 중에는 절대 잠자리를 가지면 안 돼요. 반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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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비록 할머니도 너무 좋았지만 부시아는 삼촌과 숙모랑 같이 있는 게 훨씬 행복했고 그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얼마 전 부시아와 같은 반을 다니는 친구가 갑자기 유치원을 그만두는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불임이었던 양부모님에게 입양된 아이였는데 뜻밖에도 최근에 임신이 되어 다시 아이를 시골에 있는 부모에게 돌려줬다는 것이다.부시아의 말을 들은 온하랑은 가슴이 미어졌다.어렸을 때 온하랑은 밖에서 주워 온 잡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질책을 받았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지는 않을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버림받지는 않을까 늘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두려움에 떨었고 심지어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그래서 그녀는 지금 부시아가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이렇게 귀엽고 똑똑한 아이를 버린 부모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걱정하지 마. 숙모는 시아를 다시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거든. 아기가 태어날 때면 시아는 여섯 살이네? 동생이랑 잘 놀아줄 수 있지? 단언컨대 아기도 시아를 엄청 좋아할 거야.”부드러운 목소리에 모성애까지 더해지자 친근함이 물씬 느껴졌다.부시아는 그제야 웃음을 머금고 온하랑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반드시 동생을 잘 보살펴줄 거예요.”온하랑은 그런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시아도 아직 아기야. 동생 보살펴줄 필요 없으니까 같이 놀아주면 돼.”“좋아요.”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도착한 후 온하랑은 부시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사모님, 아가씨. 돌아오셨네요.”안문희는 인사를 하고선 다시 부랴부랴 부엌으로 들어가 바삐 움직였다.손에 약봉지와 검사 보고서를 들고 있던 온하랑은 바로 부승민에게 말할지 아니면 서프라이즈를 줄지 고민했다.“승민이 위에 있죠?”“아직 안 돌아오셨습니다.”안문희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아직 안 왔다고요?”온하랑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네. 사모님이랑 같이 결혼식에 참석하신 거 아니에요? 전 당연히 두 분이 같이 오실 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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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이른 아침, 눈부실 햇살이 베갯머리에 비쳤고 비몽사몽 침대에서 일어난 온하랑은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한 옆자리 침대 시트를 보더니 어제 일이 떠오른 듯 본능적으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아이가 생긴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임신을 떠올리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얼굴에 넘쳤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부승민이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까?얼른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온하랑은 두 눈이 반짝였다.하지만 아침을 먹은 후에도 부승민은 돌아오지 않았다.어쩌면 본가에서 바로 출근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온하랑은 보고서를 들고 부시아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기사는 부시아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온하랑을 BX 그룹으로 데려다줬다.그러나 그녀가 유치원을 떠났을 때 누군가가 부시아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BX 그룹.프런트 직원은 온하랑을 보자마자 밝은 웃음으로 맞이했다.“하랑 씨, 대표님 만나러 오셨어요? 지금 회사에 안 계십니다.”온하랑은 흠칫했다.“출근했다가 다시 나간 거예요?”“아니요. 출근을 안 하셨습니다.”방금 전에도 부승민을 찾는 사람이 있어 프런트 직원은 이미 대표 사무실에 확인을 마친 상황이었다.온하랑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보통 이 시간에 부승민이 출근을 안 할 리가 없다.온하랑은 홀 구석으로 가서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고 10초간의 연결음 끝에 핸드폰 너머로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하랑아?”온하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 지금 어디야?”몇초간의 정적이 흘렀다.“회사지. 무슨 일 있어?”흥미로운 상황에 온하랑은 속으로 비웃었다.‘부승민, 이제는 대놓고 거짓말하네? 잘하는 짓이다. 이제 만나면 가만 안 둬.’“아니야. 별일 없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부승민은 망설였다.“하랑아, 나 곧 출장 가야 할 것 같아. 무슨 일 있으면 연 비서한테 연락해.”“응. 알았어. 먼저 일 봐.”온하랑은 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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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설마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야. 이제부터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다 털어놓기로 약속했잖아. 이렇게 대놓고 속이는 건 말이 안 되지. 뭔가 이상해.’비록 약속했지만 부승민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말을 믿거나 그와의 약속을 믿으면 안 된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면 부승민을 만나 직접 물어보는 게 최선이다.부승민은 온하랑 앞에서만큼은 거짓말을 못 했으니까.아마 지금쯤 본가에 있을 거라 생각해 온하랑은 차에 타자마자 기사한테 본가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온하랑은 멀리서 본가 입구에 주차된 마세라티 한 대를 발견했다.번호판을 보니 뭔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며칠 전 앞 유리를 깨뜨렸던 그 차다.그 말인즉 이엘리아도 지금 본가에 있다는 뜻이다.이엘리아가 부선월의 핑계를 대며 할머니를 뵈러 종종 본가에 온다고 부승민이 말해준 적이 있었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승민이 지금 그녀를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온하랑은 기사더러 본가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라고 시켰다. 그러고선 절대 부승민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 조용히 본가까지 걸어갔다.본가의 거실 문은 열려있었고 온하랑은 조용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안에서는 부선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민아, 친자 확인서가 이렇게 버젓이 놓여있는데 왜 못 믿는 거니? 내가 직접 사람 시켜서 검사 한 거야. 심지어 네가 신뢰하는 임 원장님한테서 한 거라고. 여기 좀 봐봐. 너랑 시아는 부녀 관계, 이엘리아랑 시아는 모녀 관계라고 적혀있잖아. 이제 믿을 수 있겠어?”부선월의 말을 듣는 순간 온하랑은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머리에서는 이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숨이 점점 막혀왔다.분명히 아직 무더운 여름인데 서늘함이 밀려와 살을 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내가 잘못들은 건 아니겠지? 시아가 부승민과 이엘리아의 딸이라고? 시아가 부승민의 친딸이라는 말이야?’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온하랑은 이게 전부 가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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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본가의 거실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1인용 소파에 앉아 있던 부승민은 감정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푹 숙였고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그의 눈을 가리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어제 부선월이 그를 찾아가 부시아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려줬다. 사실 부승민도 부시아가 친딸이라는 예감이 들긴 했었다.친자 확인을 고집했던 건 단지 확실한 답을 원했기 때문이다.부선월은 정적을 깨고 웃으며 부시아를 바라봤다.“시아야, 넌 고아가 아니야. 이제 엄마랑 아빠가 생겼으니까 너무 행복하지?”부시아는 김정숙의 옆에 앉아 부선월과 이엘리아의 눈치를 살폈고 또 부승민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침에 온하랑이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승민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누군가 데리러 갈 테니 함께 병원을 가라는 얘기였고 병원에서 피를 뽑고선 다시 본가로 데려다줬다. 그 후 이상한 아줌마가 대뜸 본인이 엄마라며 주장했고 부승민이 삼촌이 아닌 아빠라는 사실도 듣게 되었다.사실 부승민의 딸이 되고 싶은 건 맞지만 이상한 아줌마가 자신의 엄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한참 후 부승민은 고개를 들며 부시아를 향해 손짓했다.“시아야, 아빠 쪽으로 와.”부시아는 잔뜩 긴장한 듯 눈을 깜짝이며 조심스럽게 부승민에게 걸어갔다.부승민은 아이를 다리에 앉히며 부드럽게 물었다.“무서워?”사실 부승민은 아직 이 진실을 부시아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선월은 반드시 알려야 한다며 고집했고 사람을 시켜 부시아를 데려오고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선포해 버렸다.설령 부승민이 기를 쓰며 말렸다 해도 부선월의 성격상 아마 유치원에 찾아가서 모든 걸 털어놓았을 것이다.부시아는 조심스럽게 이엘리아를 쳐다보고선 재빨리 부승민의 품에 머리를 파묻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이엘리아는 표정이 잔뜩 굳어진 채로 입을 열었다.“시아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동안 못 줬던 사랑을 앞으로 조금씩 갚아나갈 예정이에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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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그러나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가늠하지 못했다.아무리 사랑한들 다른 여자와 낳은 아이마저 받아들일 수 있을까?어젯밤 부승민은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온하랑과의 과거를 회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온하랑이 이 일을 받아들일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점점 기분이 착잡해졌다.부시아를 옆에 두기로 결정한 사람이 부승민이다. 그런데 친딸이 밝혀진 마당에 다시 돌려보낸다는 게 부시아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이엘리아는 부승민이 침묵하는 걸 보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온하랑 씨는 저랑 다툼이 있었어요. 시아가 그런 여자랑 같이 지낸다는 게 너무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도 온하랑 씨를 엄마라고 부르는 게 싫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랑 애를 낳았는데 좋아할 여자가 어딨어요? 시아를 키우겠다면 온하랑 씨랑 이만 헤어져요. 그게 싫다면 시아는 제가 데려가서 키울 겁니다.”“승민아, 시아가 네 딸인 걸 알잖아. 어제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봐. 시아는 아직 엄마 아빠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야. 이엘리아 씨는 윌슨 가문의 아가씨이기도 하고 외모는 물론 몸매도 아주 좋잖니. 너랑도 잘 어울리고. 이참에 잘해봐. 시아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게 너도 힘써야지.”부승민은 고개를 들더니 이엘리아를 무시한 채 곧장 부선월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거절했다.“싫습니다. 하랑이가 시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정말 이것 때문에 헤어지더라도 이 여자랑 잘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그건...”부승민의 말은 이엘리아의 뺨을 때리는 것처럼 그녀에게 끝없는 굴욕을 안겨줬다.“도대체 온하랑 그 X은 너한테 무슨 수작을 부렸길래 이렇게 홀린 거니? 제발 정신 좀 차려.”부선월은 버럭 호통을 쳤다.“그만하거라.”김정숙이 상황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시아는 며칠 동안 여기에 있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넌 하랑이랑 한번 진지하게 얘기해 봐. 받아들인다면 좋겠지만 안 된다고 해도 별수 없지.”부승민은 씁쓸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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