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피 확실하지?”“확실합니다. 못 믿겠으면 직접 cctv를 돌려보셔도 됩니다.”종업원의 답을 들은 부선월은 말없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비밀번호는 없어.”그렇게 말 한 뒤 피 묻은 접시 조각이 담긴 유리병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먼저 들어갈게.”차에 탄 온하랑은 운전기사에게 말했다.“근처에 있는 가장 가까운 보건소로 가주세요.”기사는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길일이라서 그런지 오늘따라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호텔 근처 곳곳이 자가용 차들로 꽉 막혔고 짧은 거리는 이동하는데 적어도 10분 정도 걸렸다.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몸에 난 상처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건 종아리였다.순간 아랫배도 아파왔다. 비록 틍증이 심한 건 아니었지만 식은땀이 맺힐 정도로 쑤셨다.“기사님, 병원으로 가주세요.”온하랑은 등받이에 기대여 허약하게 말했다.차라리 병원에 가서 검사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기사더러 차를 돌리라고 했다.병원에 도착한 온하랑은 의사 선생님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고 의사 선생님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지막 생리가 언제죠?”“20일 전쯤?”온하랑은 생각에 잠기더니 긴가민가해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이번에는 양이 너무 적었어요. 다음 날에 바로 없어져서...”“다음날에 없어진 거면 생리가 아니라 출혈인 것 같은데요?”온하랑은 몇초간 침묵했다.“그럴 수도 있겠네요.”기억이 맞다면 그날은 부승민과 침대에서 오랫동안 사투를 벌이다가 나중에 출혈이 발생했다.‘설마 잠자리를 가져서... 질염이 생긴 건가?’“산부인과에 가보세요.”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번호표를 뽑은 후 온하랑은 산부인과에 가서 자신의 순서가 되기를 기다렸다.10분 후, 온하랑의 순서가 되었고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책상 옆 의자에 앉았다.“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온하랑 씨 맞으시죠? 어디가 불편해서 찾아오셨죠?”온하랑은 자신의
온하랑은 표정이 밝아지더니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어찌나 기쁜지 머리카락마저 신이 나서 바람에 흩날렸다.그녀는 테스트지를 들고 다시 진찰실로 돌아갔고 이를 확인한 의사는 웃음 가득 머금은 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축하합니다.”“감사합니다.”온하랑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병원에 들어왔을 때 비해 아예 사람이 바뀐 듯 이제는 아랫배를 쑤시는 고통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일단 채혈부터 하시고 초음파검사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약은 제가 처방해 드릴게요.”“알겠습니다.”“잠깐만요. 혹시 혼자 오셨어요?”“아니요.”기사님이랑 같이 왔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진찰실을 나온 온하랑은 곧바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쏜살같이 달려온 기사는 온하랑을 대신하여 줄을 섰고 한편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녀는 차례가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기사는 온하랑과 부승민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온하랑이 다시 임신한 것을 보고선 자기 일마냥 매우 기뻐했다.두 시간 후 온하랑은 착잡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든 채 진찰실로 돌아왔다.아이는 필라시에서 임신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검사 결과에 따르면 임신 14주 차라고 한다.그렇다는 건 임신한 지 3개월이 넘었다는 걸 뜻했기에 필라시에 오기 전에 이미 임신했다는 것이다.시간을 계산해 보면 임가희가 약을 먹인 시점과 매우 일치했다.당시 약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지만 부승민의 말에 따르면 그날 관계를 가진 게 아니라 그저 서로 맞닿은 채 안고 있었다고 했다.물론 임신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희박한 확률도 임신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온하랑은 기분이 착잡했다.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고선 약을 처방하며 신신당부했다.“여기 오기 전에 다치셨죠? 태아가 아직 불안정하니 이런 상황에서는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하랑 씨의 경우 다른 여성분들에 비해 몸이 허약하여 유산할 확률이 훨씬 높거든요. 늘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게 아이한테도 좋습니다. 아참, 임신 중에는 절대 잠자리를 가지면 안 돼요. 반드
비록 할머니도 너무 좋았지만 부시아는 삼촌과 숙모랑 같이 있는 게 훨씬 행복했고 그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얼마 전 부시아와 같은 반을 다니는 친구가 갑자기 유치원을 그만두는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불임이었던 양부모님에게 입양된 아이였는데 뜻밖에도 최근에 임신이 되어 다시 아이를 시골에 있는 부모에게 돌려줬다는 것이다.부시아의 말을 들은 온하랑은 가슴이 미어졌다.어렸을 때 온하랑은 밖에서 주워 온 잡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질책을 받았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지는 않을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버림받지는 않을까 늘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두려움에 떨었고 심지어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그래서 그녀는 지금 부시아가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이렇게 귀엽고 똑똑한 아이를 버린 부모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걱정하지 마. 숙모는 시아를 다시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거든. 아기가 태어날 때면 시아는 여섯 살이네? 동생이랑 잘 놀아줄 수 있지? 단언컨대 아기도 시아를 엄청 좋아할 거야.”부드러운 목소리에 모성애까지 더해지자 친근함이 물씬 느껴졌다.부시아는 그제야 웃음을 머금고 온하랑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반드시 동생을 잘 보살펴줄 거예요.”온하랑은 그런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시아도 아직 아기야. 동생 보살펴줄 필요 없으니까 같이 놀아주면 돼.”“좋아요.”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도착한 후 온하랑은 부시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사모님, 아가씨. 돌아오셨네요.”안문희는 인사를 하고선 다시 부랴부랴 부엌으로 들어가 바삐 움직였다.손에 약봉지와 검사 보고서를 들고 있던 온하랑은 바로 부승민에게 말할지 아니면 서프라이즈를 줄지 고민했다.“승민이 위에 있죠?”“아직 안 돌아오셨습니다.”안문희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아직 안 왔다고요?”온하랑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네. 사모님이랑 같이 결혼식에 참석하신 거 아니에요? 전 당연히 두 분이 같이 오실 줄
이른 아침, 눈부실 햇살이 베갯머리에 비쳤고 비몽사몽 침대에서 일어난 온하랑은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한 옆자리 침대 시트를 보더니 어제 일이 떠오른 듯 본능적으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아이가 생긴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임신을 떠올리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얼굴에 넘쳤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부승민이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까?얼른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온하랑은 두 눈이 반짝였다.하지만 아침을 먹은 후에도 부승민은 돌아오지 않았다.어쩌면 본가에서 바로 출근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온하랑은 보고서를 들고 부시아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기사는 부시아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온하랑을 BX 그룹으로 데려다줬다.그러나 그녀가 유치원을 떠났을 때 누군가가 부시아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BX 그룹.프런트 직원은 온하랑을 보자마자 밝은 웃음으로 맞이했다.“하랑 씨, 대표님 만나러 오셨어요? 지금 회사에 안 계십니다.”온하랑은 흠칫했다.“출근했다가 다시 나간 거예요?”“아니요. 출근을 안 하셨습니다.”방금 전에도 부승민을 찾는 사람이 있어 프런트 직원은 이미 대표 사무실에 확인을 마친 상황이었다.온하랑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보통 이 시간에 부승민이 출근을 안 할 리가 없다.온하랑은 홀 구석으로 가서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고 10초간의 연결음 끝에 핸드폰 너머로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하랑아?”온하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 지금 어디야?”몇초간의 정적이 흘렀다.“회사지. 무슨 일 있어?”흥미로운 상황에 온하랑은 속으로 비웃었다.‘부승민, 이제는 대놓고 거짓말하네? 잘하는 짓이다. 이제 만나면 가만 안 둬.’“아니야. 별일 없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부승민은 망설였다.“하랑아, 나 곧 출장 가야 할 것 같아. 무슨 일 있으면 연 비서한테 연락해.”“응. 알았어. 먼저 일 봐.”온하랑은 싸
‘설마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야. 이제부터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다 털어놓기로 약속했잖아. 이렇게 대놓고 속이는 건 말이 안 되지. 뭔가 이상해.’비록 약속했지만 부승민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말을 믿거나 그와의 약속을 믿으면 안 된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면 부승민을 만나 직접 물어보는 게 최선이다.부승민은 온하랑 앞에서만큼은 거짓말을 못 했으니까.아마 지금쯤 본가에 있을 거라 생각해 온하랑은 차에 타자마자 기사한테 본가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온하랑은 멀리서 본가 입구에 주차된 마세라티 한 대를 발견했다.번호판을 보니 뭔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며칠 전 앞 유리를 깨뜨렸던 그 차다.그 말인즉 이엘리아도 지금 본가에 있다는 뜻이다.이엘리아가 부선월의 핑계를 대며 할머니를 뵈러 종종 본가에 온다고 부승민이 말해준 적이 있었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승민이 지금 그녀를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온하랑은 기사더러 본가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라고 시켰다. 그러고선 절대 부승민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 조용히 본가까지 걸어갔다.본가의 거실 문은 열려있었고 온하랑은 조용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안에서는 부선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민아, 친자 확인서가 이렇게 버젓이 놓여있는데 왜 못 믿는 거니? 내가 직접 사람 시켜서 검사 한 거야. 심지어 네가 신뢰하는 임 원장님한테서 한 거라고. 여기 좀 봐봐. 너랑 시아는 부녀 관계, 이엘리아랑 시아는 모녀 관계라고 적혀있잖아. 이제 믿을 수 있겠어?”부선월의 말을 듣는 순간 온하랑은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머리에서는 이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숨이 점점 막혀왔다.분명히 아직 무더운 여름인데 서늘함이 밀려와 살을 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내가 잘못들은 건 아니겠지? 시아가 부승민과 이엘리아의 딸이라고? 시아가 부승민의 친딸이라는 말이야?’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온하랑은 이게 전부 가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
본가의 거실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1인용 소파에 앉아 있던 부승민은 감정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푹 숙였고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그의 눈을 가리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어제 부선월이 그를 찾아가 부시아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알려줬다. 사실 부승민도 부시아가 친딸이라는 예감이 들긴 했었다.친자 확인을 고집했던 건 단지 확실한 답을 원했기 때문이다.부선월은 정적을 깨고 웃으며 부시아를 바라봤다.“시아야, 넌 고아가 아니야. 이제 엄마랑 아빠가 생겼으니까 너무 행복하지?”부시아는 김정숙의 옆에 앉아 부선월과 이엘리아의 눈치를 살폈고 또 부승민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침에 온하랑이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승민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누군가 데리러 갈 테니 함께 병원을 가라는 얘기였고 병원에서 피를 뽑고선 다시 본가로 데려다줬다. 그 후 이상한 아줌마가 대뜸 본인이 엄마라며 주장했고 부승민이 삼촌이 아닌 아빠라는 사실도 듣게 되었다.사실 부승민의 딸이 되고 싶은 건 맞지만 이상한 아줌마가 자신의 엄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한참 후 부승민은 고개를 들며 부시아를 향해 손짓했다.“시아야, 아빠 쪽으로 와.”부시아는 잔뜩 긴장한 듯 눈을 깜짝이며 조심스럽게 부승민에게 걸어갔다.부승민은 아이를 다리에 앉히며 부드럽게 물었다.“무서워?”사실 부승민은 아직 이 진실을 부시아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선월은 반드시 알려야 한다며 고집했고 사람을 시켜 부시아를 데려오고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선포해 버렸다.설령 부승민이 기를 쓰며 말렸다 해도 부선월의 성격상 아마 유치원에 찾아가서 모든 걸 털어놓았을 것이다.부시아는 조심스럽게 이엘리아를 쳐다보고선 재빨리 부승민의 품에 머리를 파묻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이엘리아는 표정이 잔뜩 굳어진 채로 입을 열었다.“시아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동안 못 줬던 사랑을 앞으로 조금씩 갚아나갈 예정이에요
그러나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가늠하지 못했다.아무리 사랑한들 다른 여자와 낳은 아이마저 받아들일 수 있을까?어젯밤 부승민은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온하랑과의 과거를 회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온하랑이 이 일을 받아들일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점점 기분이 착잡해졌다.부시아를 옆에 두기로 결정한 사람이 부승민이다. 그런데 친딸이 밝혀진 마당에 다시 돌려보낸다는 게 부시아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이엘리아는 부승민이 침묵하는 걸 보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온하랑 씨는 저랑 다툼이 있었어요. 시아가 그런 여자랑 같이 지낸다는 게 너무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도 온하랑 씨를 엄마라고 부르는 게 싫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랑 애를 낳았는데 좋아할 여자가 어딨어요? 시아를 키우겠다면 온하랑 씨랑 이만 헤어져요. 그게 싫다면 시아는 제가 데려가서 키울 겁니다.”“승민아, 시아가 네 딸인 걸 알잖아. 어제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봐. 시아는 아직 엄마 아빠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야. 이엘리아 씨는 윌슨 가문의 아가씨이기도 하고 외모는 물론 몸매도 아주 좋잖니. 너랑도 잘 어울리고. 이참에 잘해봐. 시아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게 너도 힘써야지.”부승민은 고개를 들더니 이엘리아를 무시한 채 곧장 부선월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거절했다.“싫습니다. 하랑이가 시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정말 이것 때문에 헤어지더라도 이 여자랑 잘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그건...”부승민의 말은 이엘리아의 뺨을 때리는 것처럼 그녀에게 끝없는 굴욕을 안겨줬다.“도대체 온하랑 그 X은 너한테 무슨 수작을 부렸길래 이렇게 홀린 거니? 제발 정신 좀 차려.”부선월은 버럭 호통을 쳤다.“그만하거라.”김정숙이 상황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시아는 며칠 동안 여기에 있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넌 하랑이랑 한번 진지하게 얘기해 봐. 받아들인다면 좋겠지만 안 된다고 해도 별수 없지.”부승민은 씁쓸한
“말해봐.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김시연은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온하랑은 무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이가 있었어.”“뭐라고?”그 말을 들은 김시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아이가 있다니?”“응... 나랑 결혼하기 전에 생긴 아이야. 너도 알아. 부시아.”“X발. 말도 안 돼. 시아가 부승민 씨 딸이라고?”“응...”“야, 부승민 씨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어떻게 자기 딸을 데려와서 같이 키울 수가 있지? 이제 막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는데 이런 걸 얘기해줬다고? 정말 미친 거 아니야? 누가 봐도 지금 널 가스라이팅 하는 거잖아. 잘못은 묻지도 말고 일단 아이부터 키워라? 이거잖아. X발. 듣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넌 오죽하겠냐.”“승민 씨는 시아의 존재에 대해서 몰랐던 것 같아.”“그 입 닥쳐. 이런 상황에서 승민 씨 편을 들고 싶냐? 또 이딴 소리 할 거면 당장 나가.”세상 난폭한 김시연의 모습에 온하랑은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그래서 누구랑 낳은 딸인데?”“이엘리야...”정말 듣고도 믿기지 않지만 현실이었다.너무나 충격적인 말에 김시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두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언제 만난 거야?”“그건 나도 모르겠어.”“설마... 그 여자 이번에 돌아온 게 승민 씨 때문인 건 아니겠지?”“아마 그런 것 같아.”온하랑은 고개를 푹 숙였다.처음에 이엘리아는 부선월의 핑계를 대며 본가를 방문했다.부시아는 태어나자마자 부선월에게 입양되었으니 어쩌면 둘 사이에 일종의 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게다가 온하랑을 향한 혐오의 감정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부승민과 둘이 잘되어 가는 것 같으니 이때다 싶어 출생의 비밀을 밝히며 이엘리아와 맺어줄 발판으로 삼았다.강남 BX 그룹의 대표와 필라시 윌슨 가문의 아가씨.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인가?“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끝까지 버티더니 이제 정신 좀 차릴 것 같아? 어쩌면 애가 있는 남자
최국환의 말을 들은 온하랑은 멈칫했다.“최 회장님,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메이슨은 상황이 특별하기에 반드시 진심으로 그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 옆에서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동철 씨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던 최 회장님은 정성껏 메이슨을 보살필 수 있을까?’게다가 최씨 가문에는 임가희가 있기 때문에 온하랑은 그녀가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최동림의 후계자 계승을 위하여 걸림돌인 그를 해칠 수 있다고 예측했다.메이슨은 최동림보다 두세 살 어렸다.“동철이가 현재 실종되었기에 나의 손자인 메이슨을 내가 반드시 잘 돌볼 거야. 이미 결정된 일이야. 하랑이 너랑 상의하려고 온 거 아니야.”최국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온하랑이 엄마라는 점을 고려해 그가 직접 온 것이었다. 아니면 경호원더러 메이슨을 데려오라고 했을 것이다.온하랑은 최국환이 끝까지 막으면 그와 메이슨은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최 회장님께서 메이슨을 위하여 저의 몇 가지 조건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말해봐.”“첫째, 제가 떠난 후 메이슨을 최씨 가문에 데려가서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이 계속 돌보게 해주세요. 최 회장님께서는 매일 시간을 내셔서 메이슨의 학습 상황을 물어봐 주세요.”온하랑이 없는 상황에서 최국환은 메이슨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언젠가 임가희는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기에 최국환의 옆에 둔다면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다.메이슨이 계속 별장에 머물면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은 권력과 힘이 없기에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그를 노릴 기회를 줄 수 있다.온하랑의 말을 들은 최국환은 머리를 끄덕였다.그는 메이슨을 옆에 두고 잘 가르칠 생각이었다. 만약 좋은 후계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반대로 그가 자질이 평범해도 최국환은 그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잠시 후 최국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잠깐만. 먼저 통화 좀 할게.”“네, 최 회장님. 편안한 대로 하세요.”통화 중
설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네.”설윤의 쓸쓸한 모습을 본 최동철은 그녀에게 물었다.“함께 갈래요?”설윤은 돈을 좋아하기에 그도 그녀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었다.그러나 설윤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저 여기 더 있고 싶어요.”최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나중에는?”“나중에? 그때 다시 얘기해요.”설윤은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저 혼자예요. 저만 신경 쓰면 돼요.”최동철은 평온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최동철이 떠난 후 자신을 구해준 설윤에게 보답의 의미로 많은 금액의 돈을 송금해 주었다....회사에 처리할 일이 많았던 부승민은 첨단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사람들과 함께 강남시로 돌아갔다.경주에 며칠 더 머무른 온하랑은 여전히 최동철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최동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오랫동안 경주에 머물렀던 온하랑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가려고 했다.만약 최동철이 돌아온다면 온하랑은 메이슨을 다시 데려오면 되고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녀가 메이슨의 유일한 보호자이다.아줌마에게 메이슨의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던 중 별장에 불청객이 찾아왔다.거실에서 아줌마가 짐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던 메이슨은 최국환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온하랑의 뒤로 숨어버렸다.“최 회장님, 어떻게 오셨어요?”최국환을 본 온하랑도 깜짝 놀랐다.“하랑아, 미리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최국환은 온하랑 뒤에 숨은 메이슨과 땅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물었다.“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간다고?”그는 오래전부터 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네, 맞아요. 동철 오빠가 돌아오기 전에 제가 메이슨을 강남시로 데려가 돌보려고 해요.”온하랑이 대답했다.“승민이는 동의한 거야?”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였다.“혹시 어떤 일로 찾아오셨어요?”그녀는 눈길로 아줌마에게 먼저 메이슨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설윤 씨, 일어났어요?”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 설윤은 최동철과 눈이 마주쳤다.최동철은 웃으면서 말했다.“일어났으면 와서 아침을 먹어요.”최동철은 이미 건조된 설윤의 옷을 가져왔다.“네.”설윤은 베갯머리에 두었던 핸드폰을 보고 열 시가 넘었음을 확인했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이불 밑에서 속옷을 찾아 천천히 입었다.최동철은 쓰레기통을 옆으로 걷어차고 설윤에게 칫솔 컵과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주고는 그녀가 이를 닦은 후 따뜻한 수건도 건네주었다.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누구도 어젯밤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아침을 먹은 후 발목 찜질을 한 설윤은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려고 했다. 집 앞까지 다음날 배송될 수가 있기에 아주 편리했다.옷을 몇 벌 고른 설윤은 소파에 앉아 있던 최동철을 보며 물었다.“최 대표님, 제가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면 내일 도착하는데, 혹시 대표님도 필요하신가요?”조건이 우월한 최동철과 같은 귀공자는 사람을 시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기에 온라인으로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의 말을 들은 최동철은 머리를 끄덕였다.“갈아입을 옷 두 벌만 골라주세요, 부탁드려요.”구체적인 요구는 없었다.“네, 알았어요.”머리를 끄덕인 설윤은 남성 의상을 검색하며 물었다.“사이즈는 얼마 입어요?”“신장은 185, 몸무게는 75킬로로예요.”“네.”설윤은 최동철이 말한 사이즈에 따라 내의 한 벌과 니트 및 팬티 두 벌을 고르고는 그에게 말해주었다.최동철은 설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말을 마친 후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오후쯤 부하의 전화를 받은 최동철은 통화 중 계획 하나를 언급했으나 설윤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과 관련이 없기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저녁이 되자 설윤은 샤워 후 침대에 누웠다.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그녀는 최동철이 그의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
설윤이 차례로 밖에 씌워져 있는 랩과 붕대를 제거하니 몇 바늘 꿰맨 상처가 드러났다.그녀는 알코올로 주변을 부드럽게 닦은 후 다시 연고를 꺼내 면봉으로 고르게 발랐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드러난 옆모습은 매끄러운 얼굴 라인을 자랑했다. 아마 스무 살 어린 나이어서인지 볼에는 젖살이 있어 통통했고 피부는 희고 섬세해서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거즈를 몇 바퀴 두른 후 설윤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다 됐어요.”“고마워요.”“별말씀을요.”설윤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난 샤워하러 가고 싶어요. 욕실에 걸상 하나 놔줄 수 있어요?”최동철은 몸을 일으켜 동그란 걸상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오면서 그는 다치지 않은 팔을 내밀려 말했다.“부축해 줄게요.”설윤은 느릿느릿 침대로 옮겨 한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먼저 땅에 대고는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갔다.그녀를 안쪽 욕실로 데려다준 후 최동철은 샴푸 등을 욕실 벽에 있는 선반 위에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설윤은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속옷은 팬티는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빨면 곧 마를 수 있겠지만 마르기 전에는 그저...이틀 전에는 혼자 살아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곁에 남자가 한 명 많아졌다.그러나 씻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 더 사는 건데...’고민 끝에 설윤은 속옷을 빨았다. 다 빤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10분 정도면 다 마를 수 있었다.이때 설윤은 문득 최동철이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이 떠올랐는데 보아하니 드라이어로 팬티를 말린 것 같았다.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설윤은 팬티를 씻고 말린 후 간단히 머리도 말렸다. 그런후 속옷과 팬티를 입고 목욕 수건을 둘렀는데 다행히도 이 수건은 충분히 길어서 가슴부터 무릎까지 감쌀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다 씻었어요?”“...네.”“그럼 제가 들어갈까요?”
그녀의 최근 행동을 보면 물질, 환경, 품질 등에 큰 요구가 없는 것 같다."물론이죠."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은 일반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설윤은 회억에 잠겨 말했다.“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웃들이 그러는데 엄마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찍 퇴원했기 때문에 병세를 끌어서 돌아갔다고 했어요.”엄마가 돌아간 후 집주인은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녀를 보육원에 보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최동철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미안해요.”그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문서에는 간단히 ‘6살 때 생모 병으로 사망’으로만 적혀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괜찮아요. 다 지나갔어요.”설윤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동철 씨는 돈이 싫으세요?”최동철은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최국환과 임가희와 암투를 벌였을까?“돈은 나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죠.”최동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설윤은 아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최동철을 끌어들인 후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왔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았을 뿐이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저녁을 먹은 후 설윤은 또 얼음찜질하고 연고를 한 번 더 발랐다.발목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최동철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며칠 동안 피해 살다가 드디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 이르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어깨에 부상이 났다고 설윤이 일깨워주었지만 최동철은 신경 쓰지 않고 랩으로 상처를 감싼 후 씻으러 갔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본 화면이 떠올랐다.넓은 어깨와 가슴,
최동철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그런데, 젊은이. 아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정말 잘 어울리네.”둘 다 잘생기고 아름다웠으니까.“저희는... 대학 동기입니다.”“그래? 몰라보겠어. 아내는 참 어려 보이는데 벌써 스물여섯이라니.”최동철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동안이라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스물여섯은 설윤의 가짜 나이였다.집주인은 작은 양념병을 들고 나와 최동철에게 건넸고 우유 두 병도 함께 내주었다.돌아온 후, 최동철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설윤에게 전했다.설윤은 웃으며 말했다. “동철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잘 맞춰주니 완벽하네요.”최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었다.점심은 밥에 감자 볶음과 돼지고기였다.최동철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삼겹살을 바삭하게 볶아내 느끼함 없이 밥과 잘 어울렸다.다행히도 다친 쪽은 왼팔이라 오른손으로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으나 속도는 다소 느렸다.식사 후, 설윤은 다시 한 번 발목에 냉찜질을 했다.냉찜질을 끝낸 후 최동철이 약을 가져오자 설윤이 말했다. “제가 할게요.”“그래요.” 최동철은 순순히 응했다. 한 손으로는 불편했으니까.바쁜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외출할 수 없는 민박집 안, 두 사람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윤은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동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설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옆모습은 뚜렷한 이마선과 오똑한 콧대가 더해져 눈매가 깊어 보였고 날카로운 턱선이 또렷했다.정말 잘생겼다.그의 이목구비는 최국환과 약간 닮았다.하지만 나잇살이 들어 퉁퉁해진 최국환과는 달리 최동철은 참으로 젊었다. 눈빛 속에도 서른 살 남자의 단단함으로 가득했고 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노련한 최국환과 완전 달랐다.잠시 머뭇거리던 설윤이 말했다. “동철 씨, 피곤하면 여기서 주무세요.”그의 키는 너무 커서 작은 소파에선 편히 쉴 수 없었다.설윤은 발목 부상
최동철은 약품이 담긴 봉지를 찾아 안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설윤이 느릿느릿 신발을 벗고 있었다.그는 연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해줄게요.”신발과 양말을 벗자 뽀얗고 작은 발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웠다. 발톱은 깔끔한 곡선을 이루며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등의 뼈선은 유려하게 흐르며 섬세한 곡선을 그렸다.발목 근처에는 큼직한 멍과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최동철은 그녀의 발바닥을 받쳐 들고 부은 부위를 살짝 눌러보았다.“앗...” 설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찡그렸다.“아파요, 누르지 마세요.”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침대까지 옮겨줄 테니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마요.”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그녀를 안으려 했다.“안 돼요!” 설윤은 급히 손으로 그를 막았다. “동철 씨도 팔 다쳤잖아요.”최동철은 몸을 숙여 다친 왼팔은 내리고 오른팔로 그녀의 다리 밑을 감싸 안았다.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요. 이쪽 팔은 힘을 쓰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한 손으로 안으려고?설윤은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두 걸음 만에 침대 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얼음팩 좀 받아올게요.”“네.”최동철은 약 10분 뒤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발목에 살며시 대주었다.얼음의 차가운 감촉에 설윤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손으로 얼음주머니를 누르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20분은 찜질해야 해요.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요.”설윤은 그에게 붕대를 가져와 얼음주머니와 발목을 단단히 감도록 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둘 다 밖에 나가지 말죠. 배달 앱으로 장을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철 씨,
의사는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이, 앞으로는 아내 말 잘 들어요.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여보, 들었지?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최동철은 잠시 입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봉합이 끝난 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병원을 나서며 설윤은 최동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누가 데리러 와요?”최동철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짧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설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설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그녀는 두 걸음 앞서 걸으며 말했다.“이 작은 도시는 꽤 조용하네요.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동철 씨도 안 간다니까 같이 지낼까요? 서로 보호도 되고.”최동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호텔은 눈에 띄니까 단기 임대 민박을 찾는 게 더 안전하고 편리할 거예요.”“좋아요.”“근데 검색해 보니까 민박은 대부분 더블침대 방이더라고요. 괜찮으세요?”“설윤 씨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럼 예약할게요.”최동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거예요?”대부분의 예약 앱은 신분증 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한 번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설윤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이 폰은 제 이름으로 등록된 게 아니에요. 추적 못 할 거예요.”최동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준비가 철저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임가희한테 이렇게 몰렸어요?”“임가희가 이렇게 빨리 제 존재를 눈치챌 줄 몰랐거든요. 그랬다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요.”최동철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 곳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민박은 단일 방 구조로, 면적은 47㎡. 방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고 가스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