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959화

Author: 고운
온하랑은 자신의 옆방을 최동철에게 잡아주고 자신의 두 경호원을 시켜 최동철을 침대에까지 부축했다. 침대 위에 뻗어버린 최동철이 마음 놓고 잘 수 있도록 신발까지 벗겨주었다.

온하랑은 내친김에 에어컨도 적정한 온도로 맞춰주고 주전자로 물까지 데워 침대 맡에 놓아두었다.

이 모든 일을 끝내고서야 온하랑은 최동철의 방을 벗어나려 했다.

그 순간, 최동철이 온하랑의 손목을 잡고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슬픈 꿈이라도 꾸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속삭였다.

“가... 가지 마...”

그 모습을 본 온하랑은 침대 곁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최동철을 달랬다.

“안 갈 테니까 편히 자요.”

사실 진지하게 말하면 둘의 우정 관계에서는 최동철의 일방적인 도움이 더 컸다. 촬영 쪽으로도 그렇고 필라시에 있을 때도 그렇고 장국호를 다시 체포할 때도 최동철의 도움을 받았지만 온하랑은 최동철을 도운 적이 딱히 없었다.

온하랑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최동철을 착하고 좋은 오빠로 여겼다.

저번 일로 온하랑은 최동철을 서서히 멀리하긴 했지만 그가 강씨 일가의 편에 섰다고 해서 최동철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생각은 없었다.

최동철은 온하랑을 책임져주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러니 온하랑을 도울 의무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일에는 부승민의 영향이 컸던 탓에 일부는 부승민 때문이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온하랑은 여전히 최동철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가지 마...”

최동철은 여전히 편히 잠들지 못했다. 그는 계속 입술을 달싹이며 미세한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온하랑은 몸을 숙여 자신의 귀를 최동철에게 가까이 갖다 대고 나서야 겨우 몇 글자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보고 싶어요, 어머니, 어머니...”

아마 꿈에서 어머니를 만난 모양이다.

어머니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강씨 집안 사람들이 말해준 어머니의 생전 이야기 덕분에 최동철의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구체화 된 듯했다.

“...”

온하랑은 최동철의 덕을 볼 생각은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위태로운 제안   제960화

    “아니, 동철 오빠랑 편집장님만 마셨고 편집장님께선 먼저 가셨어.”온하랑이 해명했다.“다른 용건 있어? 없으면 나 먼저 씻으러 들어갈게.”“그래.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응.”“잠깐만.”“왜?”“휴대폰 갖고 들어가. 끊지 말고.”온하랑이 멈칫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왜? 물소리가 듣고 싶은 거야? 그건 집에도 있잖아. 듣고 싶으면 아무 때나 듣든지.”“온하랑,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난 그냥 너랑 얘길 나누고 싶은 거지. 나중에 너 쉬는 거 방해 안 하려고.”“아... 아...”온하랑은 어색하게 대답하며 작은 소리로 반박했다.“내가 이상한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네가 이상한 요구를 하니까 그러지.”온하랑은 부승민과 대화를 나누며 욕실로 들어가 물이 튀지 않는 곳에 휴대폰을 놓고 수건과 샤워가운을 한쪽에 걸어둔 채 샤워기를 틀었다.욕실 안에는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소리로 가득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승민이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최동철이 너한테 뭐라 한 말 없었어? 예를 들면 강씨 집안이 왜 사건을 재조사하고 싶지 않아 했는지 같은 거 말이야.”온하랑은 옷을 벗으며 대답했다.“했어.”“뭐라고 했는데?”“동철 오빠는 부씨 가문이 싫다고 했어. 부선월 때문에 동철 오빠 어머니께서 오빠 낳으시자마자 투신자살하셨대. 그래서 부민재를 제압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부씨 가문을 찢으려고 했던 거래.”수화기 너머의 부승민이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들리는 거자?”온하랑이 물었다.“들려.”부승민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넌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온하랑이 웃으며 샤워기 아래에서 두 손으로 물줄기를 따라 몸을 문질렀다.“뭘 물어봐? 동철 오빠가 네 이복형이라는 거 알고 있냐고?”온하랑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부승민이 입술을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할머니께서 내가 누군지 알려주신 적이 있었는데 난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고. 넌 우리 고모가 왜 널 안 좋아하는지 알아?

  • 위태로운 제안   제961화

    부승민이 말을 다 마치지도 않았지만 온하랑은 부승민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들었다.온하랑의 얼굴이 붉어졌다.그녀는 절대 알고 싶지 않았다.이게 다 부승민과 김시연 때문이었다. 그 둘이 점점 온하랑이 타락시킨 것이나 다름없다!온하랑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부승민은 그녀의 겉과 속이 다른 표정을 떠올리며 소리 죽여 웃으며 낮게 말했다.“너도 하고 싶잖아, 그렇지?”“난 아니...”“나도 네가 뭘 원하는지 알아... 착하지. 천천히 두 손을 가슴으로 올려봐.”부승민의 낮은 목소리가 지옥의 악마가 선한 신으로 위장해 순진한 소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듯 매혹적이었다.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온하랑은 마치 귀신에게 올리기라도 한 듯 순간적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악마의 목소리가 조용한 화장실 안에서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그리고 주물러봐, 힘껏. 전에 내가 너한테 해줬던 것처럼.”샤워가운이 바닥에 떨어졌다.하지만 온하랑은 그걸 다시 주워들지 않았다.온하랑의 숨소리가 저절로 거칠어지더니 눈을 반쯤 감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악마가 계속해서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순진한 소녀는 그게 신이 내려준 명령인 줄로만 알고 모든 지시를 성실히 수행했다.역시 신이 말한 대로--그녀는 곧 극락에 이를 것만 같았다...부승민은 온하랑의 변화를 감지하기라도 한 듯 더욱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소리 참지 마.”온하랑은 눈을 감고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으흥...”“내 이름 불러 봐.”“부승민.”여운이 가시자 온하랑은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몇 초 동안 숨을 고르다가 이내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부승민.”수화기 너머로 몇 초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온하랑은 희미한 한숨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침묵이 계속 퍼져나갔다.부승민은 자신의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다시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언제 끊은 것인지 전화가 끊겨있었다.부승민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정신을 

  • 위태로운 제안   제962화

    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홀에서 식사하며 대화도 나눈 덕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하지만 그러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대화 주제가 갑자기 임가희와 임연지로 넘어갔다.온하랑이 멈칫하며 물었다.“임연지? 연지 씨 지금 강남 구치소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너 몰랐구나? 연지 임신해서 보석으로 풀려났어. 지금은 집에서 태교 중이고.”온하랑이 입술을 앙다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연지 씨가 왜 임신을 한 거죠?”일반적인 경우, 임산부는 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임연지는 알고 있었다.임신만으로 임연지는 1년이 넘는 징역형을 피할 수 있었고 만약 운만 좋다면 특별 병력을 만들어 아예 집행유예를 받을 수도 있었다.“그건 얘기 안 해줘서 몰라. 근데 이미 임신 6개월 차라고 하더라.”온하랑의 입술이 떡 벌어졌다.얘 봐라.그렇다면 처벌을 피하려고 일부러 임신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동철이?”밖에서 가게 안으로 들어온 세 남자 중 앞장서던 한 명이 최동철을 발견하자 이쪽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여기서 밥 먹는 거야? 어쭈, 이 예쁜 아가씨는 누구시래? 소개 좀 해주지?”남자의 웃음은 전혀 진심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남자의 시선이 계속 온하랑의 몸에 머물렀다.온하랑이 미간을 찌푸렸다.독사가 노려보는 듯한 남자의 눈빛이 온하랑은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다.“친구야.”최동철이 대충 얼버무리며 화제를 전환했다.“셋은 어떻게 모인 거야?”“어휴, 다 안기태 때문이지, 뭐. 내가 분명 그 리조트는 못 미덥다고 했는데 계속 우리랑 같이 가겠다고 떼를 써서. 지금 이렇게 된 거지, 뭐. 그나저나 둘이 그냥 단순한 친구 사이는 아니지?”남자는 온하랑과 최동철을 두어 번 훑어보며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았다.최동철은 남자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그랬구나. 그럼 올라가서 어떻게 할지 잘 토론해봐.”“알았어, 다음에 봐.”남자는 최동철에게 작별인사를 건넨 후, 온하랑을 계속

  • 위태로운 제안   제963화

    김시연은 변호사와 상담을 마치고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두 계약서를 작성해 연도진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전에 네가 말했던 그 제안, 일리 있는 것 같아서 받아들이도록 할게. 일단 계약서 두 개부터 확인해줘. 문제없으면 변호사 앞에서 같이 서명하자.”10분 정도 지나가 연도진에게서 답장이 왔다.“몇 가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시간 괜찮아? 만나서 직접 얘기하고 싶어.”김시연이 잠시 망설이다가 답장했다.“그럼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카페로 와. 거의 다 올 때쯤에 나한테 얘기해줘.”“알겠어.”20분 후, 김시연은 카페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연도진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2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문 앞에 우아하고 박학다식 해 보이는, 금테 안경을 낀 남자가 등장했다.그는 카페 안으로 들어와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도진은 구석에 앉아 있는 김시연을 발견하자마자 그쪽으로 걸음을 옮겨 그녀의 맞은편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왔어? 계약서는 봤겠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한 번 얘기해봐.”김시연이 말했다.당연히 연도진이 무슨 말을 하든 김시연은 무시할 생각이었다.김시연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연도진이 말했다.“그럼 안 돌리고 바로 얘기할게. 일단 첫 번째, 계약서에 ‘우리가 애정 넘치는 잉꼬부부를 연기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던데, 이게 무슨 뜻이야?”분명 계약 결혼 아니었나?“그 말은, 우리가 결혼 증명서만 안 받고 결혼식을 올린다는 뜻이야. 필요하면 결혼 증명서를 위조할 수도 있어.”“...”어쩐지 그래서 두 번째 계약서가 재산 관련이었구나.대체 이런 아이디어는 누가 생각해준 거지?!연도진이 잠시 침묵을 유지하며 진지한 얼굴로 김시연을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반대 의견을 내놓으며 말했다.“그럼 쉽게 들킬 거야.”“아니, 우리가 결혼식만 올린다면 누가 우리가 진짜 혼인신고를 했는지 궁금해하기나 할 것 같아? 어차피 계약 결혼도 결국엔 이혼으로 끝날 텐데, 증명서가 있든

  • 위태로운 제안   제964화

    “응.”김시연이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연도진의 말이 들려왔다.“맞다, 계약서에는 결혼 시기가 없던데. 10월로 정하는 게 어때?”김시연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바로 거절했다.“안돼. 이미 다 9월 초인데 10월은 너무 빨라. 더군다나 난 지금 남자친구도 없는데 갑자기 결혼 상대가 나와버리면 부모님께선 무조건 반대할 거야. 어쩌면 우리 아빠는 의심부터 할 거고. 아무튼, 부모님 앞에서 연인 행세부터 하고 내년 초쯤에나 결혼해야 해.”“내년 초까지면 늦을 텐데. 네 동생 지금 대학교 몇 학년이야?”“막 2학년 됐어.”“그럼 4학년쯤엔 인턴으로 들어갈지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는 2년 안에 회사를 손에 넣고 고위 임원들의 신임을 얻어야만 해. 우리가 결혼해야 네 아버지께서 내가 회사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실 거야. 그럼 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1년 반뿐인데, 이건 너무 짧잖아. 안 그래?”김시연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정말 짧아?”“너무 짧아. 나도 업무에 적응해야지.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실적도 내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해. 안 그럼 누가 우릴 따르려고 하겠어?”그 주주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뭘까?당연히 눈에 보이는 이익이지, 말뿐인 빈 약속이 아니다.누군가 회사를 성장시키고 실적을 올리고 주가를 더 올려 배당금도 많이 준다고 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 누군가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아무 준비도 없이 부모님께 결혼하겠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도 반대하실 거야.”“그건 간단해. 우리가 서로한테 첫사랑이었고 내가 유학을 가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거라고 얘기해. 그리고 작년에 내가 귀국하고 나서 널 다시 만나려고 노력했다고 둘러대면 되잖아. 네가 나랑 잘 될지 말지에 확신이 없어서 부모님께는 말 못 했다고.”김시연은 입을 벌리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이렇게 해도 돼?”“이게 제일 쉬운 방법이야. 부모님께 우리가 원래 감정을 품고 있던 사이라도 하면 이 결혼이 절대 갑작스러운 결혼이 아닐 거야.

  • 위태로운 제안   제965화

    “뭔데?”“뭔데?”김시연의 부모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말을 마친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김시연의 아버지가 20년 전에 이미 불륜을 저질렀고 그렇게 태어난 사생아가 대학생이 되었다. 김시연의 어머니도 한때는 히스테리를 미친 듯 부렸었다.하지만 그녀는 꽤 빨리 이성을 되찾고 이혼을 해야 할까 말까에 대해 고민해보았었다.그 답은 아니었다.이혼을 해버리는 순간, 그 내연녀가 김씨 집안으로 들어올 기회를 줘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었기에 이혼은 하지 않았다.자신이 곁에서 직접 키운 딸인 김시연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김웅은 김시연에게만 더욱 관대하게 대했다. 그러니 만약 김웅이 지금 세상을 뜬다면 김시연에게 상당한 재산이 생길 것이다.하지만 내연녀가 들어와 버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김웅은 건강도 좋으니 언제든 첩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고 게다가 그는 이미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니 10년, 20년 후면 김시연은 점차 소외되어가다가 결국은 김씨 집안에서 쫓겨날 것이다.김시연은 어릴 때부터 대범하고 단순한 성격에 고집까지 있던 탓에 김시연의 어머니는 그녀를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자신은 이미 50대 중반이 되어 여생에 별다른 희망도 없고, 이혼도 의미가 없었지만, 이혼을 포기하고 지금 상황을 유지하며 어떻게든 딸을 위해 뭐라도 차지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이혼하지 않기로 한 후 김시연의 어머니는 차분함을 되찾고 김웅과 제대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녀는 김웅의 가슴 속에 남아있던 죄책감을 이용해 일부 재산을 김시연의 이름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겉으로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놀라지 말아요.”김시연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제 남자친구가 내일 인사드리러 찾아오고 싶대요.”김시연의 말에 부모님은 놀란 듯 멍하니 있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김웅이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김시연을 질책했다.“언제부터 남자친구가 있었던 거야? 난 들은 바가

  • 위태로운 제안   제966화

    “아, 그...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대요. 아버지는 자세히 안 물어봐서 잘 모르겠어요.”김시연이 잠시 망설이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망했다. 연도진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김시연이 기억하건대 고등학생 시절 연도진의 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셨다. 지금 계속 살아계시는지도 김시연은 모르고 있었다.어머니가 길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부모님까지 찾아뵐 정도가 됐는데 아직도 가정환경을 모른다고? 걔는 너 데리고 부모님 뵈러 갈 거라는 말했어?”이렇게 생각 없는 아이인데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가 있을까?“아뇨.”김시연이 생각에 잠겼다. 연도진의 아빠는 아마 세상을 떴을 것 같았다.그렇다면 연도진의 주위에는 친인척이 없을 테니 김시연을 데리고 굳이 부모님을 찾아뵐 필요도 없었다.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금은 뭐 하는 사람인데? 어느 회사라도 들어간 거야, 아니면 다시 창업 시작한 거야?”김시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망했다. 이것도 미리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이번엔 준비를 충분히 못 한 것 같다.다 연도진 탓이다. 왜 쓸데없이 이렇게 급하게 굴어서는.김시연이 급하게 머리를 굴리며 부모님을 향해 웃어 보였다.“일단 너무 급해 하지 마시고, 내일 오면 직접 물어보시면 되잖아요.”“그냥 이미 기본 정도만 알겠다는 거잖아. 이런 것도 얘기 못 해?”“제가 지금 알려드려도 내일이면 무조건 직접 물어보고 경제 상황 물어보실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굳이 지금 얘기해서 뭐해요?”“너도 참, 억지다.”김웅이 말했다.“말 안 하겠다 하면 더 안 물어보면 되지. 어차피 내일 만날 사람인데. 내가 내일 사람 통해서 좋은 술 두 병 구해올게.”그날 밤, 김시연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연도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이미 내일 부모님을 찾아뵐 예정이라는 말을 전했으니 내일 오전에 시간 맞춰 오라는 내용이었다.이튿날 아침, 김시연이 내려와서 밥을 먹으려던 때 아버지가 반팔 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

  • 위태로운 제안   제967화

    “안녕, 도진아.”김시연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연도진을 맞이하며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았다.연도진은 검은 셔츠, 검은 정장 바지에 검은 구두를 착용해서인지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 게다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깊은 눈동자, 높은 코에 걸려있는 안경이 연도진의 세 보일 수도 있는 인상을 온화하고 품격 있게 만들어주었다.“얼른 앉아, 손에 든 것도 내려놓고. 무거워 보이는데.”어머니는 연도진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지만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듯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오래 기다리셨죠.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간단히 몇 가지 준비해 봤습니다. 이건 아주머니께 선물로 챙겨온 목걸이인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아저씨께서는 와인을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우리 집에 있는 라피트 두 병 챙겨와 봤습니다.”연도진은 선물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김시연의 어머니가 앉은 쪽으로 밀었다.선물상자를 열자 거대한 진주 목걸이가 어머니의 눈에 들어왔다. 진주알들은 일반적인 불빛 밑에서도 거울처럼 사람을 비출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광채를 뿜어냈다.커다랗고 빛나는 것이 그녀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적어도 몇백만 원은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김웅은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두 병의 포장지에 적힌 연도를 흘끔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한 병에 적어도 몇천만 원은 하는 술이었다.어머니가 입을 열었다.“도진아, 돈 너무 많이 쓴 것 같은데. 다음부턴 이런 거 준비할 필요 없어. 나랑 저 아저씨도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이라서. 너랑 시연이만 잘 지내면 되는 거지.”한꺼번에 이 정도로 비싼 선물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연도진의 경제적 여건이 괜찮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나중에 김시연이 물질적인 부족함을 느끼며 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게다가 연도진의 당당하고 예의도 바르고 말도 잘하는 모습에 김시연이 아주 만족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주머니. 시연이는 제가 잘 돌볼 겁니다.”연도진이 소파에 앉으며 웃는 얼굴로 자신의 곁에 있던 김시연을 바라보더니 어머니의 두 

Latest chapter

  • 위태로운 제안   제1383화

    “그렇다면 다행이네.”최국환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동림이도 이 병원에 있어. 천식이 재발해서 입원 중인데 같이 가서 보러 갈래?”온하랑은 잔잔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전 또 일이 있어서요.”“바로 아래층인데. 금방이면 돼.”최국환이 설득하듯 덧붙였지만 온하랑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회장님. 제가 좀 바빠서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맺고 최국환을 지나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녀의 생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내가 필라시에서 메이슨을 낳았다는 얘기... 처음엔 믿기 어려웠지. 하지만 사진도 있었고 메이슨이 다시 내 품에 돌아온 뒤로는 받아들이게 됐어. 그렇다면 메이슨이 유실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온하랑은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첫 번째 가능성은 출산한 후 며칠 지나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였다.그 사고로 기억을 잃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이 갓난아기 메이슨은 집에 혼자 남겨졌고 우는 소리에 놀란 이웃이나 행인이 아이를 구조했다가 연락처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떠돌다 양부모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 혹은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틈타 누군가 아이를 빼돌렸을 수도 있었다.두 번째는 임신 후반기에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였다.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기억을 잃고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입원 생활을 이어갔고 아이는 병원의 판단이나 제삼자의 개입으로 다른 곳에 보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특히 병원 측이 메이슨의 혈액형이 특이하다는 걸 알고 그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무엇보다 그때 그녀에게는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온하랑은 두 번째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라 생각했다.사고로 깨어난 뒤 그녀의 휴대폰에는 최동철이나 벨라, 혹은 진도원 등 사람들의 연락처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 사고에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그리고 오늘 메이슨의 희귀 혈액형을 알게 된 뒤로

  • 위태로운 제안   제1382화

    온하랑은 조심스럽게 일반 병실 문을 밀어 열었고 문틈 사이로 소독약 특유의 냄새가 훅하고 밀려왔다.병실 안에서는 운전기사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있었고 오른쪽 다리는 깁스를 한 채 이마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온하랑이 들어오자 기사는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말했다.“아가씨, 죄송합니다.”“움직이지 마세요.”온하랑은 재빨리 다가가 그를 제지하고는 다정하게 말했다. “지금은 푹 쉬셔야 해요.”기사는 눈에 띄게 미안한 기색이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그때 반응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기사님 잘못 아니에요.”온하랑은 그의 곁에 앉아 방금 사 온 과일 바구니를 건넸다. “CCTV 확인해 보니까 상대 차량이 고의로 신호를 어긴 게 맞아요. 경찰이 이미 수사에 들어갔어요.”기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었다.“그럼... 메이슨 도련님은요?”“아직 중환자실이에요.”온하랑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은 고스란히 전해졌다.“하...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요. 어서 나아야 할 텐데...”“의사들이 최선을 다해주실 거예요. 기사님께서 필요한 거 있으면 간병인이나 비서한테 바로 말씀하세요. 전 이제 아주머니 병실도 보고 올게요.”“네, 고맙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온하랑은 장 선생 병실을 나온 뒤 가정부 아주머니의 병실도 들렀고 마지막으로 메이슨이 있는 중환자실 앞으로 향했다.아직 깨어나지 않은 메이슨을 보기 위해 간호 스테이션에 들러 서류에 서명하고 푸른색 보호복과 마스크, 모자를 착용한 뒤 무거운 격리실 문을 밀었다.침대 위 메이슨은 생각보다 더 창백했다.그의 긴 속눈썹이 병실 조명 아래 거의 투명해 보였고 여러 장비와 관이 그 작은 몸을 감싸고 있었고 의료 기기에서는 규칙적인 삑삑 소리가 들렸다.온하랑은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고 엄지로 손등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낮게 속삭였다.“메이슨...”그녀는 고개를 돌려 간호사에게 물었다.“언제쯤 깰 수 있나요?”“수술 끝난 지 이제 다섯 시간

  • 위태로운 제안   제1381화

    온하랑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예전에 강남시에서 마주친 소년이 떠올랐고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그들은 비록 이복남매 사이지만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었다.게다가 지금 최동림이 입원 중이라면 보호자는 거의 확실하게 임가희일 것이고 온하랑은 그 여자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그래. 그럼 내가 잠깐 내려갔다 올게.”“네.”최동철은 조용히 병실로 내려가 잠시 임가희와 인사를 나누고 최동림의 상태를 확인한 뒤 수술실 앞으로 돌아왔다.보모가 먼저 수술을 마쳤고 이어 병원에서 혈장을 수급해 수술이 이어졌으며 결국 메이슨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그는 현재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의사는 메이슨이 깨어나려면 대략 4~6시간 정도 걸릴 거라 설명했다.최동철은 곧장 비서 김지환과 간병인 두 명을 병동에 상주시키도록 지시했다.한편, 메이슨과 같은 희귀 혈액형을 가진 친구도 병원에 도착했다.비록 실제 수혈은 필요 없었지만 최동철과 온하랑은 감사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하고 고급 담배와 술도 선물했고 연락처도 서로 교환했다.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레 희귀 혈액형 이야기가 나왔다.그 친구는 자신의 혈액형이 확인된 후 가족 전체가 무료 혈액형 검사를 받았고 그중 동생도 같은 혈액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현재는 희귀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의 상호 도움 단체에 가입해 있으며 메이슨도 가입해 두라고 권했다.지금은 어린 나이라 헌혈이 안 되지만 이후 혹시 모를 수혈 상황에 대비해 혈액 공급망을 넓혀 두는 게 좋다는 것이다.메이슨이 성인이 되면 직접 헌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식사를 마친 뒤 온하랑은 협력사 미팅에 가야 했기에 최동철은 그녀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자신의 업무로 향했다.협력사 미팅을 마친 온하랑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고 택시에서 막 내린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부승민이었다.온하랑은 병원 안으로 들어서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어때? 장 대표님은 만났어?”수화기 너머에서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위태로운 제안   제1380화

    온하랑은 지금 경주 출장을 온 상태였다.그는 오늘 막 도착해 협력사 직원의 안내로 호텔에 체크인했지만 아직 현지 담당자와는 만나지 못한 상황이었다.원래는 저녁에 메이슨을 잠깐 보러 갈지 생각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최동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메이슨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었고 그래서 온하랑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입구에는 최동철이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를 보자 온하랑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며 다급히 물었다.“동철 오빠, 메이슨은 어때요?”그러자 최동철은 깊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과다 출혈이 있어서 수혈이 필요해.”그 말에 온하랑은 아까 전화로 자신에게 혈액형을 물어본 이유가 떠올랐고 마음속 불안이 더욱 커졌다.“메이슨 혈액형이... 뭔가 문제라도 있어요?”“검사 결과, 메이슨은 Kidd 혈액형 중 Jk(a-b-)형이래. Rh 음성보다 더 희귀한 혈액형이야.”최동철의 목소리에는 짙은 걱정이 묻어 있었고 온하랑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그런 혈액이... 혈액은행에 있긴 있어요?”“응. 병원에서 이미 확보 요청했어.”그래도 온하랑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메이슨이 어쩌다 그런 희귀 혈액형을 갖게 된 거지? 혹시 혈액이 부족하면 어쩌지...’그러자 최동철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예전에 경주에서 같은 혈액형 가진 사람 중 헌혈 계약을 맺은 분들이 있어서 지금 연락 중이야. 메이슨 상태도 많이 안정됐고 잘 버틸 수 있을 거야.”만약 사고가 메이슨이 처음 귀국했을 때 터졌다면 정말 위험했을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병실로 가는 길에 최동철은 메이슨의 혈액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Kidd 혈액형은 ABO 혈액형과는 별개 체계로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ABO 혈액형상으로 메이슨은 O형이다.하지만 Kidd 혈액형 시스템에서는 적혈구 표면 항원의 존재 여부에 따라 Jk(a+b-), Jk(a-b+), Jk(a+b+), Jk(a-b-) 이렇게 네 가지로 나뉜다

  • 위태로운 제안   제1379화

    아침이 밝고서야 최국환이 병원에서 돌아왔다.설윤은 그의 눈 밑이 시커멓게 팬 걸 보고 곧바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조심스레 물었다.“동림이는요?”“원래 있던 증상이지. 의사 말론 어제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그랬다고 했어. 당분간 입원해서 안정 취해야 한대. 지금 병원에 동림이 엄마랑 하인이 같이 있어.” 최국환은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가 몰려와 그는 이제 더 이상 밤새우는 게 버겁다고 느꼈다.알레르기 유발성 천식과 감정 기복으로 인한 천식 발작은 증상이 조금 달랐다.경험 많은 의사가 문진과 혈액 검사 끝에 감정적 요인이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큰일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회장님도 아주 피곤해 보이세요. 아침 드시고 바로 좀 쉬시는 게 어때요?”설윤이 조용히 말하자 최국환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그는 2층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했고 임연지는 외출해 오재원을 만나러 나갔다.집에 혼자 남은 설윤은 심심하던 차에 기사에게 부탁해 병원으로 향했다.명분은 최동림의 병문안이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임가희의 신경을 긁어놓는 데 있었다.병원에 도착해 입원실 방향으로 걷던 중 그녀는 익숙한 뒷모습 하나를 발견했다.그 사람은 통화 중이었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설윤보다 먼저 병동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최동철? 설마 동림이를 보러 온 걸까?’설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엘리베이터에 올라 최동림의 병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창밖으로 병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최동림은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었고 곁의 보호자 침대엔 임가희가 쉬고 있었다.설윤은 병실 문을 똑똑똑 세 번 두드렸다.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녀는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그 소리에 임가희는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고 그녀의 눈빛은 곧장 경계심으로 바뀌었다.“설윤 씨, 여긴 무슨 일이죠?”임가희는 빠르게 몸을 돌려 병상 앞을 가로막았고 설윤은 손에 든 과일 바구니를 살짝 흔들며 부드럽게 웃었다.“당연히 동

  • 위태로운 제안   제1378화

    임연지는 설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분에 겨워 발을 굴렀다.‘진짜 싸가지 없는 여자야. 예전에 백화점에서 따귀 한 대 맞았을 땐 개처럼 쫄아서는 말도 못 하더니 지금은 고모부가 뒤를 봐준다고 어디 감히 자기를 상대로 맞불을 놓다니.’설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고 금세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런데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려 억지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한편, 임연지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핸드폰을 들어 한진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오늘 있었던 일을 죄다 털어놓았다.[이 년은 진짜 너무 교활해. 내가 못 봤으면 동림이는 완전히 넘어갔을 걸? 아무도 몰랐을 거야. 아까는 대놓고 동림이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뭐냐고 묻더라니까? 고모부는 갑자기 노망이 났는지 그냥 다 알려주라고 하질 않나.]그러자 한진의 답장도 빠르게 도착했다.[이 여자 수위가 장난 아닌데.] [그렇지. 내 말 맞지!] [너네는 못 이겨. 이런 애 상대하려면 그냥 권력으로 찍어 눌러야 해. 지금처럼 고모부가 뒷배 봐주니까 애가 깝치는 거지. 그러니까 넌 빨리 오재원이랑 결혼하는 게 답이야.][곧 할 거야. 오씨 집안에서도 이번 주 안에 날짜 잡자고 올라온다고 했어.][근데 결혼했다고 끝난 건 아니야. 오재원이 예전처럼 아무 능력 없는 철부지라면 권한도 없고 집안에서 힘도 없을걸.]임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오재원네 집안 권력은 오형일, 큰아들 오하운, 그리고 작은아버지 오정우에게 집중돼 있었다.사실 그녀도 예전엔 오재원의 형 오하운에게 접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워낙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고 간신히 만나도 말도 안 섞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근데 솔직히 오재원은 회사에서 일할 깜냥도 안 돼.][그럼 그냥 가르치면 되지. 저 정도 집안이면 선생 몇 명 붙이는 거 일도 아니잖아. 회사 나가서 일하게 만들고 진심으로 개과천선은 못 해도 적어도 모양새는 갖춰야지. 부모님 눈에도 달라졌다고 보이게 말이야. 연지야, 지금은 오

  • 위태로운 제안   제1377화

    “회장님! 동림 도련님이 천식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모시려는 중이에요. 어서 내려와 보세요.”복도에서 다급한 하인의 외침이 들려왔다.최국환은 눈을 번쩍 뜨고 곧장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 조명을 켠 뒤 겉옷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를 따라 일어난 설윤이 몸을 일으키자 그는 말했다. “그냥 자. 내가 가볼게.”하지만 설윤은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동림이 천식이 있어요?”“응. 태어날 때부터 있었어.”“그럼 저도 같이 가볼게요.”설윤은 외투를 꺼내 입고 최국환과 함께 급히 방을 나섰다.1층 거실로 내려가 보니 최동림은 이미 약을 복용했지만 여전히 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곁에서 지키고 있던 임가희는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도대체 왜 갑자기 발작이 난 거야?” 최국환이 조급하게 묻자 임가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확실하진 않은데 혹시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노출된 게 아닐까 싶어요... 다만 의사 말로는 감정적인 변화 특히 슬픔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이런 감정이 심할 경우 몸속 자율신경 중 미주신경이 자극돼 기관지가 수축하고 천식 발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최동림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천식 판정을 받았고 그 뒤로 집안은 온통 방역과 청소, 위생 관리에 신경 써 왔다.최동림이 자라면서 체질도 좋아져 요즘엔 거의 발작이 없었고 학교에도 특이 사항을 알려 기숙사 생활을 하게 했던 터였다.“알레르기 때문은 아닐 거야. 아마 낮에 너무 놀랐던 것 같아.”최국환은 최동림 옆에 앉아 등을 두드리며 숨을 고르게 도와주었다.“동림아, 아빠가 너무 심했어. 미안해.”그때 임연지가 옆에서 코웃음을 치며 설윤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글쎄요, 고모부. 오늘 오후에 설윤 씨가 동림이 방에 다녀갔는데 혹시 몸에 뭐 안 좋은 걸 묻히고 온 건 아닐까요? 동림이 건강 생각하면 확인

  • 위태로운 제안   제1376화

    방금까지 부모에게 혼나 속이 뒤집힌 상태였던 최동림은 설윤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다가온 그 순간 그녀에 대한 인상이 한껏 좋아졌다.그녀는 확실히 임가희가 지금껏 상대해 온 사람 중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였다.최동철 쪽과도 특별히 친하지 않고 이 집에서 그녀가 기대고 있는 건 허공에 떠 있는 최국환의 사랑 말고는 오직 최동림이라는 아들뿐이었다.그리고 설윤은 단번에 그 약점을 정확히 찔러 들어왔다.임가희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는 조용히 말했다.“연지야, 넌 먼저 나가 있어.”임연지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최동림을 노려보다가 억지로 돌아섰고, 문을 쿵 하고 세게 닫고 나갔다.그러자 방 안에는 모자 단둘만 남았다.짙은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임가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아들 앞에 앉았다.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최동림은 피하듯 몸을 틀었다.허공에 멈춘 임가희의 손끝이 서글프게 떨리다가 조용히 내려왔다.“동림아.”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게임기... 엄마한테 줄래?”최동림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더 꼭 안으며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이건 제 거예요!”임가희는 눈빛을 거두며 일어섰다.“동림아, 엄마 정말 실망했어.”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몰라? 새 옷 사주고 장난감 사주고 아프면 병원에서 밤새 지켜봐 주고 늘 네 곁에 있었잖아. 그런데 네가 이런 식으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해?”그 말에 최동림의 눈이 붉어지며 금세 눈물이 고였고, 그는 와락 게임기를 내려놓고 임가희를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게임기 필요 없어요. 제발 화 풀어요...”임가희는 아들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이며 말했다.“그래야 우리 동림이지.”그는 흐느끼며 품에 안겼고 임가희는 조용히 속삭였다.“아직 넌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속셈이 오가는 거야. 설윤이란 여자는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은 달라. 그러니까 절대로 설윤한테 선물 받지 마. 가까이하

  • 위태로운 제안   제1375화

    “누나, 무슨 일이에요?”최동림은 게임을 계속하고 싶어 속으로 짜증을 삼키며 물었다.“방금... 설윤이 여기 왔었지?”“네...”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던 최동림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안 왔어요.”임연지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고 어딘가 어색했다. 그런데 정확히 뭐가 이상한 건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리려다 문득 책상 위의 선물 포장 상자와 그가 들고 있는 게임기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이 게임기는... 누가 사준 거야?”최동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게... 엄마가... 사줬어. 왜?”“정말?”임연지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되물었다.“그럼 고모한테 물어볼게.”최동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아, 잠깐만! 누나, 그게…”그의 말을 끊고 임연지는 단단히 다그쳤다. “동림아, 솔직히 말해. 이 게임기는 진짜 누가 사준 거야?” 최동림은 두 손으로 게임기를 꼭 쥐었고 손등이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그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말이 없다가 결국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설윤... 아줌마가 줬어.”“설윤... 아줌마?” 임연지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너 지금 그 여자를 아줌마라고 불러? 이렇게 비싼 걸 받았다고? 동림아, 설윤이 어떤 여자인지는 알고 있는 거야?”갑작스러운 고함에 최동림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설... 설윤 아줌마는 착한 사람이야. 그냥...” “착하다고?”임연지는 분노에 찬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착한 여자가 남의 가정을 깨뜨리냐? 넌 그런 사람한테 선물 받으면서 고맙다고 하는 거야?”그녀는 그대로 손을 뻗어 최동림의 품에 있던 게임기를 낚아채더니 바닥에 내리꽂았다.“쾅!”새 게임기는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화면은 깨지고 기계 외관도 부서져 부품이 여기저기 흩어졌다.최동림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 곧장 무릎을 꿇고 깨진 게임기를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