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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위태로운 제안: Chapter 881 - Chapter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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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1화

부승민은 단번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괜히 저랑 엮일까 봐 걱정돼서 보낸 거예요.”부선월은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승민아,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감싸줄 만큼 걔가 그렇게 좋니? 옛정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애가 있어. 설마 잊은 건 아니지?”부선월의 말속에는 가시가 있었다.부승민은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팔걸이에 걸쳤던 큰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이내 곧 풀렸다.“고모, 제가 하랑이를 지키려고 사람을 보냈거든요.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방금 말씀하신 그 사람이라는 게 누구죠? 필라시 사람인가요?”부선월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그건 몰라. 내가 6월쯤에 걔를 만났는데 임신 7, 8개월 정도 된 것 같았어. 당연히 여기 와서 임신한거겠지 뭐.”사진 속의 온하랑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누가 봐도 여름이었다.부승민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지만 온하랑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당연히 그녀의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매번 떠오르고 눈에 보일때 마다 괴로움에 가슴이 미어지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부승민은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고모, 제가 보고 싶어서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줄 알았는데 왜 그런 얘기만 하시는 거죠? 계속 그러실 거면 더 이상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 같네요.”부선월은 온하랑을 감싸는 부승민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마음속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이럴 줄 알았으면 당시 부씨 가문에서 입양하려고 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쫓아야 했어.’기분이 언짢았지만 부승민이 아직 그녀에 대한 효심이 별로 없었기에 이런 일로 얼굴 붉혀서 관계가 멀어질 필요는 없었다.부선월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온하랑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네가 사고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일부러 귀국까지 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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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부선월은 곁눈질로 이엘리아의 모습을 슬쩍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오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오늘 밤 이엘리아가 여기에 나타날 것을 알고 일부러 이곳에서 부승민과의 약속을 잡았고 심지어 이엘리가 분명히 인사하러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역시나 그 예상이 맞았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잠깐 앉아도 될까요?”이엘리아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부선월의 앞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당연하죠.”부선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앨리스는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첫 만남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괜히 실수할 수도 있기에 앨리스는 이엘리아가 오늘 좋은 인상을 남긴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십여 분이 지나도록 이엘리아는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이엘리아는 부선월의 맞은편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렇게 또 몇 분이 지나서야 이엘리아는 술잔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앨리스는 궁금한 듯 본능적으로 물었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누군데? 무슨 얘기를 한 거야?”이엘리아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이엘리아?”그제야 이엘리아가 정신을 차렸다.“승민 씨 어머님이셔. 별다른 얘기는 안 했고 그냥 잠깐 수다 떨었어.”“널 마음에 들어 하시는 모양이네?”부선월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 이엘리아는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럼 됐어. 시작이 아주 좋네.”앨리스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이엘리아는 부선월의 말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아가씨가 진심으로 승민이를 좋아하는 거라면 제가 도와줄게요. 전 승민이의 엄청난 약점을 잡고 있거든요. 아참, 그리고 페이라는 여자는 신경 안 써도 돼요. 승민이의 돈을 보고 접근한 여자라 전 처음부터 두 사람을 반대했어요. 사실 전 아가씨가 누구인지 알아요. 예전에 스치는 인연으로 잠깐 만난 적 있었는데 첫눈에 반한 거 있죠. 전 아가씨가 페이를 대신해서 내 며느리가 되어줬으면 좋겠어요.”이엘리아는 심장이 두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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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도 부승민은 여전히 업무에 전념하고 있었다. 심지어 승무원이 음료나 음식이 필요하냐고 물어볼 때도 시간이 아까운 듯 대충 답하고선 일에 집중했다.이엘리아는 부승민을 힐끗 쳐다보더니 아랫입술을 깨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승무원에게 말했다.“전 우유 한 잔 주세요.”말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곁눈질로 부승민을 바라봤지만 그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지 여전히 노트북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이엘리아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부승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30분 후, 이엘리아는 승무원에게 기내식 일 인분을 더 달라고 요청했고 그때까지도 부승민의 모든 주의력은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음식을 다 먹은 이엘리아는 승무원에게 치워달라고 부탁하며 부승민의 관심을 끌 방법을 생각했다.그녀는 갑자기 가방에서 립스틱과 거울을 꺼내더니 메이크업 수정하는 시늉을 했다.그러다가 손이 미끄러진 듯 립스틱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아주 운 좋게 부승민 쪽으로 굴러갔다.이엘리아는 만족한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더니 모르는 척하며 부승민에게 말을 걸었다.“저기... 죄송한데 립스틱 좀 주워 주실래요?”드디어 부승민이 반응을 보였다.노트북만 보고 있던 시선은 마침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향했고 그는 이엘리아를 발견하고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이엘리아는 이제야 부승민을 알아본 척 깜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승민 씨였네요? 그... 립스틱 좀 주워주실래요?”이엘리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숙이자 발 옆에 있는 립스틱이 보였고 부승민은 곧장 몸을 숙여 그것을 줍고선 이엘리아에게 돌려줬다.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곧바로 다시 일에 집중했다.“고마워요.”이엘리아는 본인에게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부승민의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부승민이 상냥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주기를 바랐지만 자존심이 강한 이엘리아는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얕보이는 건 더더욱 싫었다.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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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김정숙과 부시아는 이틀 전에야 강남으로 돌아왔기에 아직 부승민을 보지 못했다.부승민은 자연스레 아이를 품에 안고 웃으며 말했다.“삼촌도 많이 보고 싶었어.”부시아는 부승민의 목을 껴안더니 얼굴에 뽀뽀하더니 신이 난 듯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삼촌,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어디에 있었어요?”“일이 많이 바빴어.”부승민은 가방을 벗겨주며 부시아를 차에 태웠다.“이제는 안 바빠요? 그럼 안 가도 되는 거죠?”부시아는 헤어지는 게 아쉬운 듯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삼촌 이제 아무 데도 안 가. 우리 예전처럼 그렇게 지낼 거야. 어때?”부시아는 입이 귀에 걸렸다.“너무 좋아요.”세상 밝은 웃음을 짓고 있던 부시아는 뭔가 떠오르는 듯 얼굴에 속상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그럼... 숙모는요? 언제와요? 숙무도 보고 싶어요.”“걱정마. 숙모도 며칠 후면 돌아올 거야.”부승민은 부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정말요? 정말이에요?”부시아는 깜짝 놀라며 부승민을 바라보더니 다시 생기를 되찾고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정말 숙모도 돌아오는 거예요?”연속 세 번이나 ‘정말’인지 확인하는 부시아를 보니 얼마나 온하랑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보였다.“그래.”부승민은 웃으며 답했다.“삼촌은 거짓말 안 해.”“그게...”부시아는 의심의 눈초리로 부승민을 보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숙모가 과연 삼촌을 용서해 줄까요?”순간 말문이 막혔다.부승민은 운전기사에게 본가로 가자고 했고, 부시아와 함께 김정숙을 모시고 저녁을 먹었다.커플링 광고영상도 이미 제출됐고 잡지에 실릴 사진도 편집을 완료하여 검토를 기다리는 상황에 이르렀다.부승민은 온하랑이 하루라도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가자 온하랑도 귀국하는 티켓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나중에 결정하면 벨라와 김시연에게도 알려주기로 했다.이와 동시에 온하랑이 촬영에 참여한 엔터테인먼트 잡지도 발매되기 시작했고 마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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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온하랑이 이 일을 부승민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밥 먹었어?”온라랑이 답했다.“방금 다 먹었어.”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부승민의 허스키한 목소리 외에 야근하는 듯 어렴풋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도 들렸다.“하랑아, 일은 잘 정리했어? 언제 올 거야?”불과 몇 시간 전에 부승민이 직접 사진을 골라 잡지사에 피드백했기에 그쪽에서도 지금쯤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을 것이다.온하랑은 흠칫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시아도 본가에 있어?”갑작스럽게 말을 돌리는 온하랑의 모습에 부승민은 뭔가 예상이라도 한 듯 키보드를 치던 손을 멈추더니 쭈뼛거리며 물었다.“내가 데려왔어. 그래서 티켓은 언제 살 건데? 내가 데리러 갈게.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온하랑은 도망칠 구석이 없음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며 솔직하게 고백했다.“당분간은... 못 갈 것 같아...”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왜?”부승민은 단호하게 물었다.“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어. 의류 브랜드 신상을 찍어달라는 요청인데 잘되면 다음 주에 들어가고 잘 안되면...”말끝을 흐리자 부승민은 단번에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렸다.부승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온하랑은 되레 큰소리치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부승민, 지난번에는 여기서 일해도 된다며? 이미 그쪽에 하겠다고 얘기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온하랑의 경계 어린 말투를 듣던 부승민은 허탈함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난 아무 말도 안했 거든? 왜 제멋대로 몰아붙이는 거야. 내가 싫어하는 걸 알긴 하나 봐?”“누가 그런 말투로...”온하랑은 입을 삐죽이더니 이내 웃으며 그를 달랬다.“알았어. 역시 우리 승민이가 최고야. 솔직히 날 이해해 줄 줄 알았다니까? 이번 일만 마무리하고 금방 돌아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오랜만에 들은 ‘승민’이라는 호칭에 부승민은 심장이 마구 떨렸다.이때 핸드폰 너머로 앳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삼촌, 숙모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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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삼촌과 조카의 대화는 핸드폰을 통해 고스란히 온하랑의 귀에 들어갔다.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대인배처럼 동의하더니 이제 와서 조카를 앞세워 자기의 기분을 표현하는 부승민의 모습에 온하랑은 바로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하지만 오랫동안 못 본 부시아를 생각하니 너무 보고 싶기도 하고 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곧장 위로했다.“이번 촬영만 마시고 꼭 시아보러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알겠지? 숙모가 이제 시아 선물 잔뜩 사 갈게.”부시아는 입을 삐쭉이며 답했다.“알겠어요. 그럼 시아는 숙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온하랑은 부시아와 한참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문희가 들어와 부시아를 씻기려고 데려갔고 조잘거리는 아기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곧바로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랑아, 너...”온하랑은 그가 말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고 핸드폰에서는 쓸쓸한 연결음만 들려왔다.뚜두뚜두...허탈함에 힘이 쭉 빠진 부승민은 곧바로 핸드폰을 내려놨다.그러자 불과 2분도 안 되어 벨 소리가 울렸다.부승민은 발신자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대표님, 의원님 비서한테서 답장이 왔습니다.”연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뭐래?”“내일 오후에 스케줄이 비니 방문하셔도 좋다고 합니다.”“그래, 알았어. 너무 눈에 띄지 않는 선물로 준비해.”어려운 상황인 만큼 부승민이 실수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는 눈들이 사방에 널렸다.“알겠습니다.”서씨 가문은 별장들로 이루어진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입구를 지키는 보안의 검문을 지나 차는 마당으로 들어가 서정훈이 머무는 별장 앞에 멈춰 섰다.별장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는데 그 안은 푸르스름하게 화초가 잔뜩 심어져 있었다.마침 꽃에 물을 주고 있던 도우미 아줌마는 누군가가 방문하자 곧바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더니 신분을 확인한 후 거실로 안내했다.그 후 차 한잔을 건네며 공손하게 말했다.“차 좀 드세요. 의원님은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 계십니다. 제가 지금 모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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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부승민은 이엘리아가 무슨 속셈인지 눈에 훤히 보였다.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한번 무시를 당하자 예전만큼의 용기가 나오지 않았고 그럼에도 계속 엮이고 싶어 주위를 알짱거리니 참 모순적인 모습이다.부승민이 이런 행동을 마지막으로 접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그때 당시 한 여학생은 부승민에게 아침을 챙겨주었는데 부승민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거절하자 얼굴을 붉히더니 금세 태도가 돌변했다.“싫으면 말고. 솔직히 나도 너한테 주고 싶지 않았거든?”여학생은 다시는 말 안 걸 것처럼 짜증을 내며 자리로 돌아갔으나 쉬는 시간에 펜 하나를 들고 쫄래쫄래 뒤를 쫓아다녔다.“이거 바닥에서 주운 건데 혹시 네 꺼야?”이엘리아는 어려서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티가 났다.이런 사람은 부승민의 눈에는 그저 어린아이로만 비쳤기에 아이에게 사적인 감정이 생길 리가 없다.“중요한 일이요.”애매한 답에 이엘리아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하고 싶은 질문이 너무 많았지만 행여나 부승민이 눈치 없는 여자라고 생각할까 봐 차마 말도 못 한 채 본능을 억제했다.곧이어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남자는 쉰 살 남짓 되어 보였는데 세월의 우아함과 진중함이 깃든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도 담겨 있었다.그를 본 부승민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웃음을 머금고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이엘리아는 고개를 돌리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삼촌.”“승민 씨,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서정훈은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 돌려 이엘리아를 바라봤다. 명령하듯 말하는 건 아니었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승민 씨랑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까 넌 이만 올라가 봐.”이엘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10년 만에 이곳에 왔다. 비록 다들 겉으로는 매우 환영했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서정훈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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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이엘리아는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최대한 열심히 듣는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원장은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다시 물었다.“이엘리아 씨, 혹시 더 알고 싶은 게 있으실까요?”드디어 이엘리아에게 입을 열 기회가 왔다.“교실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그럼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마침 아이들이 수업하고 있으니 저희 유치원 선생님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게 될 겁니다. 분명히 마음에 드실 거라고 확신하죠.”이엘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빠른 걸음으로 원장의 뒤를 따랐다.원장은 이엘리아를 상급반 교실 밖 창가로 데려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개했다.“지금 수업하고 있는 배 선생님은 저희 유치원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심지어 우수상까지 받으셨는데...”이엘리아는 단번에 원장의 말을 잘랐다.“제 친구 아이가 4살이거든요. 그럼 보통 중급반이죠?”원장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그렇죠. 중급반도 한번 보실래요?”유치원에는 두 개의 중급반이 있었다. 이엘리아를 데리고 중급반 교실에 온 원장은 또 옆에서 뭔가를 소개했다.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이엘리아가 원장의 말을 들었을 리가 없다. 그녀는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재빨리 훑어보더니 조용히 세어보았다.하나, 둘, 셋...부선월은 이엘리아에게 자기 딸이 두 번째 줄의 네 번째 자리에 앉는다고 얘기했었다.한참 후 이엘리아는 통통한 볼에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앵두 같은 입술과 작고 아담한 코는 귀엽기 그지없었고 딸기 머리끈으로 양 갈래까지 하고 있어 아주 치명적이었다.사뭇 진지하게 수업 듣고 있는 모습은 어찌나 귀여운지 이엘리아는 단번에 마음을 홀랑 뺏겼다.그녀는 천천히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창문으로 아이의 얼굴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날카로운 눈매는 부승민과 아주 판박이였다.부선월이 본인을 속이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엘리아는 입술을 뜯으며 생각에 잠겼다.처음에는 부승민이 다른 여자랑 아이가 있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생모는 이미 죽었기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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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장

원장은 이엘리아의 시선이 부시아를 향해 있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BX 그룹 회장님네 아이예요. 어찌나 똑똑하고 예의가 바른지 아예 걱정이 없다니까요.”원장은 부시아의 칭찬을 늘어놓았다.부시아 외에도 유치원에는 잘나가는 명문가 집안의 아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거나 성지리 고약해서 걸핏하면 눈물을 터뜨리기 일쑤였다.부시아는 편입해서 중급반으로 들어온 케이스다.다른 학교에서 전학해 온 아이는 보통 문제아가 많았다. 하여 원장도 폭탄 안을 준비를 하며 중급반 담임선생님에게 하소연했다.그러나 생각과 달리 부시아는 모든 선생님의 예쁨을 받았고 매번 수업 때마다 칭찬을 받는 우등생이었다.심지어 예의는 어찌나 바른지 원장을 볼때마다 꼭 공손하게 인사를 전하곤 했다.친구들과 노는거에 큰 감흥이 없었던 부시아는 원장을 보자마자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원장님, 안녕하세요.”감미롭고 부드러운 아이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시아야, 안녕. 왜 친구들이랑 안 놀아?”“그게... 마침 지금 가려고 했어요.”부시아는 원장 옆에 있는 이엘리아는 이상하게 생각했다.‘왜 계속 날 쳐다보고 있는 거지?’“잠깐만.”이엘리아가 갑자기 부르자 부시아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왜요?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네가 너무 귀여워서 이모가 선물 하나를 주고 싶어.”말을 하던 이엘리아는 주머니에서 새로 산 열쇠고리를 꺼냈는데 그 위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곰돌이 인형이 달려있었다.“자, 선물이야.”부시아는 단번에 거절했다.“아빠가 다른 사람이 주는 물건은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차피 아빠가 다 사주니까 이 선물은 사양할게요.”유치원에서만큼 부시아는 부승민을 삼촌이 아닌 아빠라고 불렀다.“이모가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도 돼.”“싫어요. 원장 선생님, 그럼 전 이만 친구들이랑 놀러 갈게요.”부시아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선 후다닥 미끄럼틀로 달려갔다.아이들이 많이 몰려있어 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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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고모 부탁이요?”부승민은 반복하며 물었는데 의심스러운 말투였다.“저 사모님이랑 친한 사이예요. 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셔도 좋고요.”이엘리아는 자신 있게 말했다.“이번에 친척을 만나려고 왔는데 사모님이 어르신이랑 시아 잘 지내는지 봐달라고 해서 온 거예요.”부승민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분한 눈빛에서는 도무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이엘리아는 그런 눈빛을 바라보기만 해도 죄책감이 밀려오는지 곧바로 시선을 돌렸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부시아에게 말을 걸었다.“시아야, 할머니 보고 싶지?”부시아는 부승민을 힐끗 보고선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승민아.”김정숙은 못마땅한 듯이 부승민을 쳐다봤다.어찌 됐든 이엘리아는 손님인데 대접하기는커녕 되레 무례한 행동을 했으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부승민은 눈을 내리깔고 별말 없이 옆에 있는 싱글 소파에 앉았다.때마침 도우미 아줌마가 주방에서 나와 부승민과 부시아가 좋아하는 메뉴 몇 개를 읊더니 이엘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제가 금방 차려드릴게요.”도우미 아줌마의 행동을 보니 김정숙은 그들이 오기 전부터 이미 이엘리아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던 모양이다.이엘리아는 김정숙과 부시아를 보러 온다는 명분으로 찾아왔다. 이제 부시아까지 왔으니 이곳에 남을 충분한 이유가 생긴 거나 다름없다.부승민은 심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묵묵히 이엘리아를 바라봤다.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함이 밀려온 이엘리아는 애써 부승민을 무시하고 김정숙과 부시아에게만 말을 걸었다.그러다 한계에 이르렀는지 웃으며 김정숙에게 물었다.“어르신, 화장실이 어디예요?”“화장실은...”부승민은 단번에 김정숙의 말을 잘랐다.“위층에 있어요.”“위층에 있다고요?”이엘리아는 표정이 굳어졌고 김정숙도 당황한 듯 부승민을 바라봤다.“네. 얼마 전에 1층 화장실이 고장 났는데 수리할 시간이 없어서 아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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