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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작가: 고운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7-23 19:00:00
온하랑이 이 일을 부승민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밥 먹었어?”

온라랑이 답했다.

“방금 다 먹었어.”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부승민의 허스키한 목소리 외에 야근하는 듯 어렴풋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도 들렸다.

“하랑아, 일은 잘 정리했어? 언제 올 거야?”

불과 몇 시간 전에 부승민이 직접 사진을 골라 잡지사에 피드백했기에 그쪽에서도 지금쯤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온하랑은 흠칫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시아도 본가에 있어?”

갑작스럽게 말을 돌리는 온하랑의 모습에 부승민은 뭔가 예상이라도 한 듯 키보드를 치던 손을 멈추더니 쭈뼛거리며 물었다.

“내가 데려왔어. 그래서 티켓은 언제 살 건데? 내가 데리러 갈게.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

온하랑은 도망칠 구석이 없음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며 솔직하게 고백했다.

“당분간은... 못 갈 것 같아...”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왜?”

부승민은 단호하게 물었다.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어. 의류 브랜드 신상을 찍어달라는 요청인데 잘되면 다음 주에 들어가고 잘 안되면...”

말끝을 흐리자 부승민은 단번에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부승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온하랑은 되레 큰소리치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부승민, 지난번에는 여기서 일해도 된다며? 이미 그쪽에 하겠다고 얘기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온하랑의 경계 어린 말투를 듣던 부승민은 허탈함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난 아무 말도 안했 거든? 왜 제멋대로 몰아붙이는 거야. 내가 싫어하는 걸 알긴 하나 봐?”

“누가 그런 말투로...”

온하랑은 입을 삐죽이더니 이내 웃으며 그를 달랬다.

“알았어. 역시 우리 승민이가 최고야. 솔직히 날 이해해 줄 줄 알았다니까? 이번 일만 마무리하고 금방 돌아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오랜만에 들은 ‘승민’이라는 호칭에 부승민은 심장이 마구 떨렸다.

이때 핸드폰 너머로 앳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숙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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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촌과 조카의 대화는 핸드폰을 통해 고스란히 온하랑의 귀에 들어갔다.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대인배처럼 동의하더니 이제 와서 조카를 앞세워 자기의 기분을 표현하는 부승민의 모습에 온하랑은 바로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하지만 오랫동안 못 본 부시아를 생각하니 너무 보고 싶기도 하고 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곧장 위로했다.“이번 촬영만 마시고 꼭 시아보러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알겠지? 숙모가 이제 시아 선물 잔뜩 사 갈게.”부시아는 입을 삐쭉이며 답했다.“알겠어요. 그럼 시아는 숙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온하랑은 부시아와 한참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눴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문희가 들어와 부시아를 씻기려고 데려갔고 조잘거리는 아기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곧바로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랑아, 너...”온하랑은 그가 말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고 핸드폰에서는 쓸쓸한 연결음만 들려왔다.뚜두뚜두...허탈함에 힘이 쭉 빠진 부승민은 곧바로 핸드폰을 내려놨다.그러자 불과 2분도 안 되어 벨 소리가 울렸다.부승민은 발신자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대표님, 의원님 비서한테서 답장이 왔습니다.”연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뭐래?”“내일 오후에 스케줄이 비니 방문하셔도 좋다고 합니다.”“그래, 알았어. 너무 눈에 띄지 않는 선물로 준비해.”어려운 상황인 만큼 부승민이 실수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는 눈들이 사방에 널렸다.“알겠습니다.”서씨 가문은 별장들로 이루어진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입구를 지키는 보안의 검문을 지나 차는 마당으로 들어가 서정훈이 머무는 별장 앞에 멈춰 섰다.별장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는데 그 안은 푸르스름하게 화초가 잔뜩 심어져 있었다.마침 꽃에 물을 주고 있던 도우미 아줌마는 누군가가 방문하자 곧바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더니 신분을 확인한 후 거실로 안내했다.그 후 차 한잔을 건네며 공손하게 말했다.“차 좀 드세요. 의원님은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 계십니다. 제가 지금 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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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8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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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888화

    이엘리아는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최대한 열심히 듣는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원장은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다시 물었다.“이엘리아 씨, 혹시 더 알고 싶은 게 있으실까요?”드디어 이엘리아에게 입을 열 기회가 왔다.“교실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그럼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마침 아이들이 수업하고 있으니 저희 유치원 선생님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게 될 겁니다. 분명히 마음에 드실 거라고 확신하죠.”이엘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빠른 걸음으로 원장의 뒤를 따랐다.원장은 이엘리아를 상급반 교실 밖 창가로 데려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개했다.“지금 수업하고 있는 배 선생님은 저희 유치원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심지어 우수상까지 받으셨는데...”이엘리아는 단번에 원장의 말을 잘랐다.“제 친구 아이가 4살이거든요. 그럼 보통 중급반이죠?”원장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그렇죠. 중급반도 한번 보실래요?”유치원에는 두 개의 중급반이 있었다. 이엘리아를 데리고 중급반 교실에 온 원장은 또 옆에서 뭔가를 소개했다.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이엘리아가 원장의 말을 들었을 리가 없다. 그녀는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재빨리 훑어보더니 조용히 세어보았다.하나, 둘, 셋...부선월은 이엘리아에게 자기 딸이 두 번째 줄의 네 번째 자리에 앉는다고 얘기했었다.한참 후 이엘리아는 통통한 볼에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앵두 같은 입술과 작고 아담한 코는 귀엽기 그지없었고 딸기 머리끈으로 양 갈래까지 하고 있어 아주 치명적이었다.사뭇 진지하게 수업 듣고 있는 모습은 어찌나 귀여운지 이엘리아는 단번에 마음을 홀랑 뺏겼다.그녀는 천천히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창문으로 아이의 얼굴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날카로운 눈매는 부승민과 아주 판박이였다.부선월이 본인을 속이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엘리아는 입술을 뜯으며 생각에 잠겼다.처음에는 부승민이 다른 여자랑 아이가 있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생모는 이미 죽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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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889장

    원장은 이엘리아의 시선이 부시아를 향해 있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BX 그룹 회장님네 아이예요. 어찌나 똑똑하고 예의가 바른지 아예 걱정이 없다니까요.”원장은 부시아의 칭찬을 늘어놓았다.부시아 외에도 유치원에는 잘나가는 명문가 집안의 아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거나 성지리 고약해서 걸핏하면 눈물을 터뜨리기 일쑤였다.부시아는 편입해서 중급반으로 들어온 케이스다.다른 학교에서 전학해 온 아이는 보통 문제아가 많았다. 하여 원장도 폭탄 안을 준비를 하며 중급반 담임선생님에게 하소연했다.그러나 생각과 달리 부시아는 모든 선생님의 예쁨을 받았고 매번 수업 때마다 칭찬을 받는 우등생이었다.심지어 예의는 어찌나 바른지 원장을 볼때마다 꼭 공손하게 인사를 전하곤 했다.친구들과 노는거에 큰 감흥이 없었던 부시아는 원장을 보자마자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원장님, 안녕하세요.”감미롭고 부드러운 아이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시아야, 안녕. 왜 친구들이랑 안 놀아?”“그게... 마침 지금 가려고 했어요.”부시아는 원장 옆에 있는 이엘리아는 이상하게 생각했다.‘왜 계속 날 쳐다보고 있는 거지?’“잠깐만.”이엘리아가 갑자기 부르자 부시아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왜요?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네가 너무 귀여워서 이모가 선물 하나를 주고 싶어.”말을 하던 이엘리아는 주머니에서 새로 산 열쇠고리를 꺼냈는데 그 위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곰돌이 인형이 달려있었다.“자, 선물이야.”부시아는 단번에 거절했다.“아빠가 다른 사람이 주는 물건은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차피 아빠가 다 사주니까 이 선물은 사양할게요.”유치원에서만큼 부시아는 부승민을 삼촌이 아닌 아빠라고 불렀다.“이모가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아도 돼.”“싫어요. 원장 선생님, 그럼 전 이만 친구들이랑 놀러 갈게요.”부시아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선 후다닥 미끄럼틀로 달려갔다.아이들이 많이 몰려있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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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890화

    “고모 부탁이요?”부승민은 반복하며 물었는데 의심스러운 말투였다.“저 사모님이랑 친한 사이예요. 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셔도 좋고요.”이엘리아는 자신 있게 말했다.“이번에 친척을 만나려고 왔는데 사모님이 어르신이랑 시아 잘 지내는지 봐달라고 해서 온 거예요.”부승민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분한 눈빛에서는 도무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이엘리아는 그런 눈빛을 바라보기만 해도 죄책감이 밀려오는지 곧바로 시선을 돌렸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부시아에게 말을 걸었다.“시아야, 할머니 보고 싶지?”부시아는 부승민을 힐끗 보고선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승민아.”김정숙은 못마땅한 듯이 부승민을 쳐다봤다.어찌 됐든 이엘리아는 손님인데 대접하기는커녕 되레 무례한 행동을 했으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부승민은 눈을 내리깔고 별말 없이 옆에 있는 싱글 소파에 앉았다.때마침 도우미 아줌마가 주방에서 나와 부승민과 부시아가 좋아하는 메뉴 몇 개를 읊더니 이엘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제가 금방 차려드릴게요.”도우미 아줌마의 행동을 보니 김정숙은 그들이 오기 전부터 이미 이엘리아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던 모양이다.이엘리아는 김정숙과 부시아를 보러 온다는 명분으로 찾아왔다. 이제 부시아까지 왔으니 이곳에 남을 충분한 이유가 생긴 거나 다름없다.부승민은 심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묵묵히 이엘리아를 바라봤다.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함이 밀려온 이엘리아는 애써 부승민을 무시하고 김정숙과 부시아에게만 말을 걸었다.그러다 한계에 이르렀는지 웃으며 김정숙에게 물었다.“어르신, 화장실이 어디예요?”“화장실은...”부승민은 단번에 김정숙의 말을 잘랐다.“위층에 있어요.”“위층에 있다고요?”이엘리아는 표정이 굳어졌고 김정숙도 당황한 듯 부승민을 바라봤다.“네. 얼마 전에 1층 화장실이 고장 났는데 수리할 시간이 없어서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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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태로운 제안   제891화

    이엘리아는 부승민이 믿지 앉자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페이가 원해 사릴 스튜디오에서 일한 거 알죠? 제가 그 스튜디오에서 촬영했었거든요. 그때 페이가 제 목걸이를 훔쳐서 사릴 스튜디오에서 해고당했어요. 못 믿겠으면 스튜디오 사장님께 직접 물어보셔도 돼요.”부승민은 말없이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그날 레스토랑에서 승민 씨가 페이랑 같이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어요. 전 페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거든요. 그 여자는 돈을 노리고 지금 승민 씨를 이용하는 거라니까요? 절대 속으면 안 돼요.”이엘리아가 했던 말 중에 부승민이 믿을 수 있는 건 한마디도 없었고 그는 자기보다 온하랑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며 늘 자부했다.부승민은 비웃었다.“도와준다는 게 이거였어요? 그럼 페이가 전재산을 기부해서 재단 설립한 건 알아요?”여전히 온하랑을 굳게 믿는 부승민의 모습에 이엘리아는 마음이 초조해졌다.“솔직히 페이가 갖고 있는 재산 전부 어르신이 물려줬잖아요. 원래 자기 것도 아닌데 기부해서 명성을 얻고 신임을 얻는 게 수지에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재단 설립과 BX 그룹의 사모님 자리. 둘 중 뭐가 더 중요한 건지도 모르고 있잖아요.”부선월은 온하랑이 했던 모든 일을 그녀에게 말해줬다.하여 이엘리아는 온하랑이 음모를 꾸미는 데 능숙할 뿐만 아니라 여우처럼 교활한 면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편견을 바로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를 본 부승민은 더 이상 그녀와 쓸데없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지 싸늘하게 경고하고선 곧장 자리를 떴다.“어떤 사람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괜히 절 돕는다는 핑계로 그 여자를 해치면 이엘리아 씨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물론 삼촌이 나선다 해도 소용없어요.”부승민은 시테니행 비행기에서 이엘리아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때까지 이엘리아는 부승민의 신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반응이었다.그리고 얼마 전 필라시에서 또 만나게 되었는데, 아마 그때쯤 부승민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온하랑과의 관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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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엘리아는 두 눈이 반짝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부승민은 본가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부시아를 향해 손짓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김정숙에게 인사를 건넸다.“할머니, 전 시아랑 이만 가볼게요. 연락할 테니까 나중에 또 찾아뵐게요.”김정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시아랑 가서 즐거운 시간 보내.”말이 끝나자마자 이엘리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시아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올 때 빈손으로 왔어요. 선물도 못 줬는데 이참에 같이 쇼핑하러 가요. 시아야, 이모가 다 사줄 테니까 마음껏 골라.”“이엘리아 씨,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부승민은 경고의 눈빛으로 이엘리아를 바라봤다.순간 압도되는 눈빛에 겁을 먹은 이엘리아는 입만 벙끗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부승민은 부시아와 함께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형 쇼핑몰로 향했고 마침 지하 1층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만한 놀이터가 있었다.줄곧 애어른 같던 부시아도 놀이터에 오자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담하고 왜소한 체구와 달리 어찌나 체력이 좋은지 한 시간 동안 쉬지않고 놀았다.놀다가 지치자 부승민은 부시아를 데리고 쇼핑몰 3층에 있는 밀크티 가게로 가서 밀크티 한 잔을 시켰다.밀크티 가게는 장사가 아주 잘되어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어린 여학생들인데 그들은 곁눈질로 부승민의 쳐다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심지어 젊은 여자 일행도 부승민을 보고선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저기 좀 봐봐. 저 남자 엄청 잘생겼어.”옆에 있던 친구도 부승민을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딸이랑 같이 온 거 아니야? 아쉽네. 솔로였으면 바로 번호를 따는 건데.”“미쳤다. 잘생긴 데다가 심지어 가정적이야. 자기가 왕인 줄 알고 이것저것 지적질하는 내 남자 친구와 아예 딴판이네.”얼마 지나지 않아 알바생이 번호를 불렀고 부승민은 걸어가 밀크티를 가져오고선 빨대를 꽂아 부시아 앞에 놓았다.부시아는 토실토실한 손으로 컵을 안고선 벌컥벌컥 밀크티를 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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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0화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 위태로운 제안   제1269화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 위태로운 제안   제1268화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 위태로운 제안   제1267화

    설윤은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봤어? 다른 사람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돼.”“당연하지.”간하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몰라? 걱정 붙들어 매.”그리고 다정하게 설윤의 팔짱을 끼고 클럽 탈의실로 향했다.아직 아무도 없었고, 간하림은 옷을 갈아입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아, 최 회장님과 어떻게 알게 되었어?”딱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설윤은 대충 둘러댔다.“우연한 기회에 마주쳤어. 전에 일하던 곳에 놀러 왔다가 마침 내가 접대를 담당했거든.”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간하림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손을 뻗어 설윤의 잘록한 허리를 꼬집었고, 뽀얀 피부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최 회장님이 네가 진짜 마음에 드나 봐. 직접 출근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정말 좋겠네.”설윤은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너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든든하긴 개뿔! 하늘과 땅 차이거든?”간하림이 툴툴거렸다.“가게에 오면 지명할 뿐이지 너처럼 최 회장님 전속 담당이 아니야.”심지어 손님마저 감히 설윤에게 집적거리지 못했고, 누가 봐도 사전에 단단히 경고한 게 분명했다. 반면, 그녀는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설윤은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윤아, 나중에 사모님이 되면 날 잊지 마.”“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녕 몰라?”이내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더니 간하림을 흘겨보았다.“국환 씨가 싫증이 나기 전에 돈이라도 두둑이 챙기면 땡큐고, 사모님은 감히 넘보지도 않아.”간하림은 납득할 수 없는 듯 바짝 다가갔다.“우리가 뭐 어때서? 최 회장님 와이프도 결국에는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잖아. 그리고 며칠 전 기사 못 봤어?”“무슨 기사?”곧이어 출입구를 힐끗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누군가 최 회장님 와이프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해서 끔찍한 상처를 입었대.”“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위태로운 제안   제1266화

    임연지는 집에 도착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는 임가희를 발견했다.테이블에 놓인 등기 전용 서류 봉투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이 널브러져 있었다.“고모, 왜 그래요?”말을 마치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고모부가...”이내 나머지 사진도 확인했는데 전부 어떤 젊은 여자와 다정한 스킨십을 하는 최국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결코 가벼운 사이는 아닌 듯싶었다.“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임가희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임연지는 목을 움츠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임가희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고모, 이제 어떡해요?”“어떡하긴?”임가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모른 척해야지. 지금 네 고모부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거야. 괜히 추궁했다가 홧김에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더 손해이지 않겠어?”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었다.지금껏 비슷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같이 머리가 텅 빈 여자들이라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서 부랴부랴 찾아와 따지기 급급했다. 나중에 울면서 최국환에게 하소연하면 정이 떨어진다며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또한 최국환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신분과 집안, 그리고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다.어쨌거나 그 나이 먹고 결혼을 3번이나 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본처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은 이상 고작 여자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뒤에서 몰래 처리하면 그만이었다.“그냥 넘어가려고요?”비록 고모의 말도 맞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했다.“넌 신경 쓰지 마. 고모부 앞에서도 티 내지 말고.”임연지는 사진 속 여자를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여우 년’이라고 욕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임가희는 사진을 모두 치웠다.무언가를 떠올린 듯 임연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고모, 만약 이 여자가 임신하면 어떡해요?”“네 고모부의 컨

  • 위태로운 제안   제1265화

    “침착해.”임연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호텔에서 제공한 가운을 느긋하게 껴입었다.“샤워했어? 나랑 같이 씻을래?”“꿈 깨.”이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면서 문을 열자 알몸으로 나타나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오재원을 발견했다.“연지야.”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슬쩍 피했다.“호텔에서 푹 쉬어. 먼저 가볼게.”“아직 이른데? 좀 더 있다 가.”“안돼.”임연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오재원을 스쳐 지나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쌀쌀맞은 얼굴을 보자 오재원은 꼬리를 내렸다.“알았어. 그럼 언제 다시 올 거야? 그리고 원하는 집이 있으면 알려줘. 부동산에 물어볼게.”“방 3개, 풀옵션. 나머지는 알아서 해.”“그래.”임연지는 옷매무새와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을 나갔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뒤돌아보며 혀를 찼다.‘역겨운 놈.’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고 한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호텔을 벗어나니 공기마저 상쾌한 기분이야.]한진이 대답했다.[하하하! 참,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 오빠가 인맥을 동원해서 각 언론사에 수시로 주시하라고 했잖아. 그중에서 제보받은 회사가 있는데 편집장이 이메일을 보자마자 오빠한테 연락했대.]그러고 나서 이메일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다.본문의 첫 마디가 온하랑이 필라시에서 유학할 때 최동철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임연지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대박인데? 고마워, 한진아. 오빠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줘. 네가 아니었다면 진짜 아프리카로 쫓겨났을지도 몰라.]그동안 한진의 오빠가 사전에 뉴스를 차단하지 못하고 자칫 폭로라도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이제 결과를 확인한 이상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하지만 대체 누가 제보했단 말이지?한진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물론 메일 주소를 역추적한 결과 여전히 너희 집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상 주소를 사용한 것 같아.][미친놈.]임연지는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 위태로운 제안   제1264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임연지는 그 틈을 타서 오재원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오재원은 그녀를 따라 나가려고 했지만 잠시 뒤 자신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끌며 엘리베이터를 나왔다.방에 들어가자 오재원은 서둘러 캐리어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임연지를 끌어안고는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연지야, 빨리 나 주라고. 더는 참을 수 없어.”“오재원! 이거 놔! 먼저 일어나!”“안 돼. 연지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냥 즐기기만 하면 돼.” 그녀는 그를 힘껏 밀쳤고 마음속에서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재원의 힘이 너무 강해 벗어나기 힘들었다. “오재원, 내 말 들어봐. 우리 얘기 좀 해야 해.” 임연지는 차분하게 말하며 그가 자신의 말을 듣길 바랐다.하지만 오재원은 이미 욕망에 눈이 멀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임연지에게 입을 맞추려 했고 손은 그녀의 몸을 함부로 만지기 시작했다.“얘기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알아.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는 말을 마친 후 임연지의 입술을 막았다. “연지야, 잘 생각해. 네가 만약 나를 밀어내면 난 바로 나갈 거야.” 임연지는 속에서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밀치는 손길은 결국 멈춰 섰다.“그래 이거지.”오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충분히 즐겼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오재원은 임연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너 너무 향기로워. 연지야. 어쩌면 이제 우리 아이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네.”임연지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더 이상 그를 피하지 않으면 정말로 오재원에게 뺨을 갈길 것만 같았다.화장실에 들어간 임연지는 핸드폰을 꺼내 한진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진아, 살려줘. 진짜 그 사람이 너무 싫어!][돌아오자마자 나랑 자려고 하고 역겨워 죽겠어!][내가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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