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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제안의 모든 챕터: 챕터 161 - 챕터 170

1275 챕터

제161화

추서윤은 온하랑에게 철저하게 패배하고 말았다.부승민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다른 일 없으면 끊을게. 난 이만 일 봐야 해서.”말을 마친 그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옆으로 치워버렸다.다시 한번 전화가 걸려 오자 그는 핸드폰을 아예 무음으로 돌려놓고 탁자에 엎어놓았다.그가 의자에 깊이 기대며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예상외로 너무 후련했다.아마 마음이 바뀐 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겠지.한편, 꺼진 핸드폰을 본 추서윤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왜?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부승민은 분명 온하랑과 곧 이혼 한다고 했는데.곧 추서윤이 부승민의 안사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정말 조금만 더 있으면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었는데.하지만 지금, 이 모든 희망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추서윤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 증오가 차올랐다.온하랑!이게 다 온하랑 때문이야!그녀만 아니었다면 추서윤과 부승민은 진작 결혼하고도 남았을 것이다.추서윤은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 없었다....이번 출장은 4날 정도로 스케줄을 잡았었다.하지만 3일 차 오전에 모든 일은 다 끝마쳤기에 거의 두 날의 자유시간을 얻게 되었다.온하랑은 비서들에게 휴가를 주며 그들더러 B시에 온 김에 여행이나 하라고 했다.그때, 이주혁에게서 문자가 왔다.[요 며칠 시간 있어? 나 요즘 한가한데 너도 시간 되면 밥 사줄게.][너 촬영 안 해?][뉴스 못 봤어? 추서윤 일 때문에 촬영장 정비한다고 며칠 동안 촬영 중단됐어. 나 지금 드라마 홍보 때문에 B시에 와 있는데 내일 돌아가.][대박, 나도 지금 B시에 출장 와 있는데.][진짜? 너 일 끝났어? 밥 먹으러 나올래? 내가 살게.][좋아, 내가 식당 찾아볼게.]온하랑은 맛 평가도 좋고 사람도 꽤 적은 개인 레스토랑으로 골랐다.먼저 도착한 이주혁이 룸에 들어가 먼저 몇 가지 주문했다.“앉아.”“홍보하러 여기까지 왔어?”“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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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추서윤 씨 화상 입은 거 아니었어?”“사고 난 당일에 병문안 가봤는데, 별로 심각하지 않아.”“아, 그래.”그럼 왜 그날 노준형은 마치 추서윤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얘기했던 걸까.“너도 딱히 할 일 없는 거 아니야? 나랑 같이 갈래?”“그럼 안 되는 거 아니야?”추서윤의 생일 파티라고 했으니 부승민도 참석할 것이다.그녀는 지금 부승민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안 될게 뭐가 있어? 초대장에 여자 파트너 데려와도 된다고 쓰여 있었어. 그리고 부 대표님이 네 작은 오빠니까 추서윤씨는 네 미래의 새언니 아니야? 그러니까 생일 파티에 가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지. 그때 발표회 때처럼, 네가 피하면 피할수록 사람들은 더 어처구니없는 루머를 만들어 낼 거야. 네가 당당하게 나가야 오히려 그 사람들이 말을 못 해.”온하랑이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물었다.이주혁은 그녀를 한번 보더니 이어서 말했다.“내 말 한번 들어봐. 부대표님이 이번 추서윤의 생일파티에 적지 않을 돈을 썼다고 해. 장소는 특별히 국제적으로 유명한 실내 디자이너를 불러서 꾸미고, 예복은 리미티드 에디션인데 이번 파티를 위해 특별히 해외에서 가져온 거래. 그리고 생일케익도 유명한 파티시에를 불러서 만든 거고.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데 진짜 안 갈 거야?”이주혁의 말을 들을수록 온하랑의 안색은 더 어두워졌다.부승민이 추서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이 생일 파티는 아마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던 거겠지?추서윤은 9월 20일 당일에 기어코 부승민을 불러내 그녀의 곁에 머물게 했고, 부승민이 그녀를 위해 준비한 생일 파티도 특별히 돈을 많이 들였다. 추서윤은 지금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그런데 온하랑이 오늘 그녀의 생일파티에 나타나면 추서윤의 얼굴은 아마 보기 좋게 굳을 것이었다.“좋아, 그럼 같이 가자.”비행기에서 내린 후 두사람은 바로 숍으로 갔다가 파티장으로 출발했다.추서윤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는 연예인이 적었다. 그래서 이번 파티에 초대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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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그 말을 들은 온하랑이 자리에 굳었다.어쩐지 멜로디가 익숙하더라니.‘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부승민이 그녀에게 알려주었던 곡의 이름이었다.연주할 줄 아는 곡이었구나.둘의 인연을 이어준 곡이었구나.어쩐지 그날 레스토랑에서 부승민이 듣자마자 알아차렸나 했다.온하랑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러다가 추서윤이 손에 끼고 있는 반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반지는 아마 그날 부승민의 차에서 발견했던 그 반지일 것이다.파티장에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추서윤이 굳이 격식을 차리지 않았기에 파티의 분위기는 편하고 긴장되지 않았고 덕분에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좁혀졌다.그녀가 말을 끝마치자 마침 부승민의 연주도 거의 끝나갔다.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추서윤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손을 잡고는 파티장 중앙으로 에스코트했다.부승민이 추서윤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추서윤이 부승민의 어깨에 손을 올린 후, 두 사람은 클래식한 사교댄스로 파티의 오프닝을 장식했다.연회장에 음악이 울려 퍼졌고 둘은 박자에 맞춰 발을 움직이며 호흡을 맞춰갔다.온하랑은 바라보는 입장에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춤사위는 더없이 잘 어울렸고 마치 하늘이 빚어준 한 쌍 같았다.무용을 배웠던 추서윤은 마치 나비를 연상케 하는 가벼운 몸짓으로 음악에 따라 부승민에게 몸을 맡기고 움직였다.저렇게 자연스러운 걸 보니 아마 여러 번 호흡을 맞춰본 것 같았다. 예전에 이런 걸 전혀 해본 적이 없던 온하랑은 일전에 부승민과 춤을 출 때 그의 신발을 밟기도 했었다.그녀는 왜 추서윤이 그녀의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고 우월감에 가득 차 있을 수 있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왜냐면 그녀는 항상 부승민의 따뜻함을 경험한 첫 사람이었으니까.부승민은 그녀를 위해 연주하고, 그녀와 춤을 추고, 독일어를 가르쳐주고, 독일어 이야기를 읽어주고, 그녀를 위해 케익을 사주고, 밥을 해주었다.온하랑은 항상 추서윤보다 한 발 뒤처져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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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승민아, 손에 너무 힘 주지 마.”추서윤이 말했지만 부승민은 대답하지 않으며 구석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사람들은 두 사람이 춤을 추며 대화하는 걸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춤을 추면서 서로 약간의 대화를 하는 건 두 사람의 관계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춤을 췄던 그날을 떠올렸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뺨을 그가 부드럽게 매만졌고,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며 둘 사이를 확 끌어당겼다.추서윤의 전화만 아니었다면 그날 밤은 두 사람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추서윤의 존재는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세웠다.첫 곡이 끝나자 사람들은 서로 짝을 맞춰 연회장 가운데로 왔다.부승민이 정신이 딴 데 팔린 채 추서윤의 손을 놓으려 하자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승민아, 더 안 출 거야?”“너한테 약속한 건 이미 다 지켰어.”추서윤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고는 부승민의 소매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부승민은 그런 그녀를 한번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여기 사람도 많은데 이쯤에서 적당히 해, 창피당하지 말고.”그 말을 들은 추서윤은 하는 수 없이 부승민의 소매를 놓아주었다.“서윤아,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 너도 알지? 앞으로 계속 이러면 너한테 남아있던 정까지 다 떨어질 수 있어. 그러니까 알아서 정도껏 했으면 좋겠어.”“승민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난 그냥 그날 네가 오지 않을까 봐 너무 무서워서,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그날, 부승민은 추서윤을 위해 반지를 준비했었다.그녀가 노준형을 시켜 부승민을 부르지 않았어도 그는 그녀를 찾아갔을 것이다.하지만 추서윤이 벌인 자작극을 알아버린 이상 그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예전에 들었던 변명을 또 한 번 듣고 있으려니 부승민의 인내심이 점점 사라져갔다.부승민이 추서윤의 말을 끊었다.“그만 말해도 돼.”추서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부승민은 그런 그녀를 내버려둔 채 몸을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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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온하랑은 멀리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이주혁이 그녀에게 물었다.“케익 먹을래? 내가 가져다줄까?”“아니야, 됐어. 좀 이따 직접 가서 가지지 뭐. 그리고 추서윤 씨한테 인사도 해야 하고.”이주혁은 온하랑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게 좋겠다.”하지만 온하랑은 사실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추서윤의 생일 파티가 순조롭게 끝나가려는 와중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추서윤의 앞에 나타나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면 추서윤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질지 기대되었다.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케익 주위에 모여있던 사람들도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추서윤이 아직 케익을 못 받은 사람이 있냐고 묻자 온하랑이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저요.”“잠시만요...”온하랑을 보자마자 오늘 내내 추서윤의 얼굴에 걸려있던 웃음이 사라지며 표정이 굳었다.그걸 보는 온하랑은 대조적으로 더 환하게 웃었다.“추서윤 씨, 생일 축하해요.”말은 마친 온하랑은 추서윤의 손가락을 보았다. 역시 그날 부승민의 차에서 보았던 그 반지가 맞았다.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더없이 다정한 장면이었지만, 추서윤은 온하랑이 그녀를 일부러 약 올리기 위해 왔다는 걸 알아챘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대할 수밖에 없었다.“고마워.”“별말씀을요.”부승민은 온하랑을 보더니 딸기가 박혀 있는 쪽을 잘라서 그녀에게 주었다.“고마워, 오빠. 내가 딸기 좋아하는 걸 다 기억해 주고.”부승민이 입술을 깨물었다.온하랑은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그는 온하랑이 돌아오면 자신을 차갑게 대하거나 무시하거나 싸움이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밖으로 온하랑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온하랑이 케익을 들고 자리를 뜨며 말했다.“승민 오빠, 오늘 집에 일찍 들어와.”“알겠어.”자칫하면 오해를 살 만한 말이었지만, 사람들은 온하랑이 말하는 집이 그들의 본가인 부씨 저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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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추서윤은 온하랑이 일부러 애매하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부승민이 그녀에게 이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게 분명했다.그래서 온하랑이 오늘 당당하게 그녀의 생일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던 거겠지.추서윤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온하랑, 너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 부승민은 널 좋아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자존심이 좀이라도 있으면 이혼해!”“안 할 건데요? 왜요? 급하세요? 절 어쩌기라도 하시게요?”“너...”“할 말이 이것뿐이면 전 먼저 갈게요.”“나랑 내기할래? 승민이가 마지막에 누구를 선택할지?”“당신은 그런 걸로 자존감을 채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저는 그럴 시간 없어요.”온하랑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할 때 갑자기 추서윤이 뒤에서 달려들었다.온하랑은 당황하지 않고 추서윤을 피해 옆으로 비켜섰고, 추서윤은 그대로 허공을 날아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아!”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추서윤이 계단을 굴렀다.“서윤아!”그때 부승민이 비상계단으로 들어오며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하고는 한달음에 앞으로 달려가 추서윤을 품에 안았다.“괜찮아?”추서윤은 부승민의 품에 안긴 채 창백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승민아, 나 아파.”“말하지 마, 병원에 데려다줄게.”부승민은 추서윤을 안고서 계단 위에 서있는 온하랑을 한 번 보더니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부승민이 보지 못하는 틈을 타 추서윤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온하랑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내가 이겼어.”부승민의 뒷모습을 보며 온하랑은 쓰게 웃고는 덤덤하게 계단을 내려갔다.오해 할 테면 오해하라지. 그녀도 더는 설명하기 지쳤다.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녀는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그 감정을 가라앉혔다.추서윤은 부승민의 품에 안겨 그를 바라보았다.깊은 눈빛과 오뚝한 콧날, 그리고 각진 턱선까지. 모든 게 매혹적인 이 남자를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부승민은 그 상황에서 추서윤을 먼저 병원에 데려다 줄 생각부터 했으니 아직 그녀에게 마음이 남아 있을 것이다.“온하랑이랑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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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온하랑.”온하랑은 부승민의 목소리임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이주혁은 차에 오르려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웃으며 인사했다.“부 대표님, 추서윤 씨를 병원에 데려다주시는 거 아니었어요?”“기사님이 데려다주기로 했습니다.”부승민이 온하랑을 보며 말했다.“하랑아, 나 너한테 할 말 있어.”“난 할 말 없어.”온하랑은 그를 보지도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옆에서 보고 있던 이주혁이 놀란 눈으로 온하랑을 보며 그렇게 쌀쌀맞게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부승민이 이주혁에게 말했다.“이주혁 씨, 먼저 돌아가세요. 하랑이는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작은 오빠였고 이번 작품의 투자자이기도 했기에 이주혁은 그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다만 온하랑의 태도를 보면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조금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주혁이 온하랑을 보며 물었다.“하랑아. 내가 안 데려다줘도 돼?”“먼저 돌아가.”온하랑은 부승민과 얘기를 잘 끝내지 않으면 그가 앞으로 계속 귀찮게 굴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둘 사이의 일에 이주혁을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다.온하랑이 그렇게 말하자 이주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그럼 난 먼저 가볼게.”그는 몸을 숙여 온하랑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부 대표님이랑 싸운 거면 얼른 서로 화해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고.”'화해하고 싶다고 쉽게 화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온하랑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주혁의 마음을 알았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고마워.”하지만 그 모습이 부승민의 눈에는 퍽 친밀해 보였는지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이주혁이 차를 몰고 떠나자 주차장에는 온하랑과 부승민 둘만 남았다.온하랑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왜? 추서윤 씨 대신 나한테 한마디 하려고 왔어?”“온하랑, 난 그럴 생각 없었어.”“그게 아니라면 난 먼저 가볼게.”온하랑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떠나려 하자 부승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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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사실 부승민과 추서윤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그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평소였다면 온하랑도 부승민이 추서윤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화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의 관계는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하지만 온하랑과 부승민의 결혼기념일과 추서윤의 생일이 겹친 게 문제였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결혼기념일 날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의 생일을 쇠 주러 가겠다는 걸 용납할 수 있을까.처음부터 그녀는 추서윤의 상대가 아니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그날은 그냥 선물만 전해주고 올 생각이었어...”“선물만 전해주고 온다고?”온하랑이 차갑게 웃었다.“올 수는 있고? 그날 한밤중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온 거 내가 모를 거 같아? 네가 전화 받을 때부터 나는 이미 깨어있었어!”부승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그가 기를 쓰고 속이려던 사실을 온하랑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도 말하지 않았을뿐...하긴, 그녀는 원래 잠귀가 밝은편이니 전화 소리에 깨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온하랑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부승민, 그냥 인정해. 너는 추서윤을 사랑하는 거야. 아무리 할아버지랑 약속했어도 우리는 그냥 사이좋게 지내는 게 최선일뿐이야. 넌 결국 날 사랑하지 않을 거고 그래서 우리는 언젠간 이혼할 수밖에 없어.”“아니, 그렇지 않아.”부승민이 두 손으로 온하랑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만약 그런 거면 차라리 다행이지,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연기만 하면 되니까.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닌가 봐. 나도 내가 서윤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하지만 요즘 눈을 감기만 하면, 심지어 꿈속에서도 온통 너 밖에 생각이 안 나.”“하랑아, 나 널 진짜로 좋아하게 됐나 봐.”온하랑은 움찔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부승민을 보았다.방금,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나?그럴 리가!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니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진짠가?그녀가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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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온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부승민에 대한 신뢰를 거의 다 잃었다.온하랑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부승민이 이어서 말했다.“앞으로는 절대 추서윤과 단둘이 만나지 않을게. 너만 괜찮다면 앞으로 꼭 만나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우리 셋이 같이 만나자. 네가 가지 않겠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꼭 데리고 갈게. 혹은 그냥 네 사람 한 명을 내 비서로 보내서 날 계속 감시해도 돼.”“감시는 됐고, 만약 앞으로 추서윤이 또 전화 와서 발작했다거나 혹은 또 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어쩔 건지나 말해봐.”“앞으로는 가지 않을게. 만약 정말 꼭 내가 직접 가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너랑 같이 갈게.”온하랑은 추서윤이 절대 이대로 순순히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그래서 앞으로 또 추서윤이 매달렸을 때 부승민이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했다.하지만 그녀는 부승민에게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그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편안하고 기쁘게 보내시기를 바랄 뿐이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그녀가 그를 완전히 용서한 줄로 착각했다.그가 숨을 길게 내쉬며 온하랑을 끌어안았다.“하랑아, 고마워.”부승민은 온하랑의 허리를 당기고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기대며 더 깊이 그녀를 끌어안았다.온하랑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그를 밀어냈다.부승민은 그 행동에서 약간의 경계심을 읽어내고는 그녀를 놔주며 말했다.“집에 가자.”“응.”온하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승민이 호텔 지배인에게 연락했고, 곧이어 호텔 지배인이 그들을 집으로 모실 차를 준비했다.얼마 후, 차가 더원 파크힐에 멈춰 섰고 부승민과 온하랑이 차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정원을 가로질러 걸었다.도우미 아주머니가 두 사람이 같이 걸어 들어오는 걸 발견했다.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분명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두 사람 드디어 화해했나?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화해한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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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온하랑은 그가 가리키는 사람이 추서윤이라는 걸 눈치챘다.고개를 돌린 부승민이 씻을 옷가지들을 들고 내려오는 온하랑을 발견했다.“방에 놔둬, 아주머니한테 씻어달라고 하면 되잖아.”“그냥 내려오는 김에 가져온 거야.”온하랑이 더러운 옷들을 1층의 세탁실에 가져다 놓았다.그때, 아주머니가 스파게티 자료들을 장 봐왔고, 부승민이 그녀에게서 물건들을 건네받았다.“이리 주세요, 제가 할게요.”아주머니는 부승민이 직접 요리를 해 온하랑에게 점수를 따려 한다는 걸 눈치채고는 순순히 재료를 건네주며 그가 편히 실력 발휘할 수 있게 주방에서 비켜주었다.부승민은 주방에 들어서더니 앞치마를 찾아 맸다.온하랑은 소파에 앉아서 그런 그를 자꾸 흘깃거렸다.부승민은 밖에서 돌아온 후 외투만 벗어 두어서 지금 위에는 회색 셔츠, 아래는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셔츠 단추는 두어 개 정도 풀려있었고 옷소매는 아무렇게나 걷어 올려 근육이 잘 자리 잡힌 팔뚝을 드러냈다.그런 엘리트 같은 모습을 한 채 앞치마를 두르고 있으니 그 괴리감이 약간 웃기면서도 묘했다.부승민이 온하랑의 눈길을 눈치채고는 웃으며 물었다.“왜?”온하랑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아니야.”부승민이 주방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스파게티 두 그릇을 들고 식당으로 나왔다. 스파게티는 야채 샐러드, 마카로니와 새우를 곁들여 더 맛있어 보였다.온하랑이 부승민의 맞은 편으로 가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먹어 봐.”부승민이 앞치마를 풀어 옆에 놓았다.온하랑이 그를 한번 보더니 포크로 새우를 찔러 입에 넣었다. 새우가 육즙을 뱉어내며 입맛을 더 돋웠다.부승민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오랜만에 해서 맛있을지 모르겠네.”“추서윤한테 자주 요리해 주는 거 아니었어?”온하랑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덤덤하게 물었다.“자주는 아니고, 그냥 그때 딱 한 번뿐이었어.”“그래.”온하랑이 짧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부승민은 그런 온하랑을 보더니 물었다.“왜? 안 믿겨?”“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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