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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작가: 고운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3-20 19:26:13
”온하랑.”

온하랑은 부승민의 목소리임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주혁은 차에 오르려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웃으며 인사했다.

“부 대표님, 추서윤 씨를 병원에 데려다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기사님이 데려다주기로 했습니다.”

부승민이 온하랑을 보며 말했다.

“하랑아,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난 할 말 없어.”

온하랑은 그를 보지도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이주혁이 놀란 눈으로 온하랑을 보며 그렇게 쌀쌀맞게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부승민이 이주혁에게 말했다.

“이주혁 씨, 먼저 돌아가세요. 하랑이는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

부승민은 온하랑의 작은 오빠였고 이번 작품의 투자자이기도 했기에 이주혁은 그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다만 온하랑의 태도를 보면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조금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주혁이 온하랑을 보며 물었다.

“하랑아. 내가 안 데려다줘도 돼?”

“먼저 돌아가.”

온하랑은 부승민과 얘기를 잘 끝내지 않으면 그가 앞으로 계속 귀찮게 굴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둘 사이의 일에 이주혁을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온하랑이 그렇게 말하자 이주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난 먼저 가볼게.”

그는 몸을 숙여 온하랑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 대표님이랑 싸운 거면 얼른 서로 화해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고.”

'화해하고 싶다고 쉽게 화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온하랑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주혁의 마음을 알았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고마워.”

하지만 그 모습이 부승민의 눈에는 퍽 친밀해 보였는지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주혁이 차를 몰고 떠나자 주차장에는 온하랑과 부승민 둘만 남았다.

온하랑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왜? 추서윤 씨 대신 나한테 한마디 하려고 왔어?”

“온하랑, 난 그럴 생각 없었어.”

“그게 아니라면 난 먼저 가볼게.”

온하랑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떠나려 하자 부승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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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부승민과 추서윤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그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평소였다면 온하랑도 부승민이 추서윤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화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의 관계는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하지만 온하랑과 부승민의 결혼기념일과 추서윤의 생일이 겹친 게 문제였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결혼기념일 날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의 생일을 쇠 주러 가겠다는 걸 용납할 수 있을까.처음부터 그녀는 추서윤의 상대가 아니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그날은 그냥 선물만 전해주고 올 생각이었어...”“선물만 전해주고 온다고?”온하랑이 차갑게 웃었다.“올 수는 있고? 그날 한밤중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온 거 내가 모를 거 같아? 네가 전화 받을 때부터 나는 이미 깨어있었어!”부승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그가 기를 쓰고 속이려던 사실을 온하랑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도 말하지 않았을뿐...하긴, 그녀는 원래 잠귀가 밝은편이니 전화 소리에 깨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온하랑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부승민, 그냥 인정해. 너는 추서윤을 사랑하는 거야. 아무리 할아버지랑 약속했어도 우리는 그냥 사이좋게 지내는 게 최선일뿐이야. 넌 결국 날 사랑하지 않을 거고 그래서 우리는 언젠간 이혼할 수밖에 없어.”“아니, 그렇지 않아.”부승민이 두 손으로 온하랑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만약 그런 거면 차라리 다행이지,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연기만 하면 되니까.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닌가 봐. 나도 내가 서윤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하지만 요즘 눈을 감기만 하면, 심지어 꿈속에서도 온통 너 밖에 생각이 안 나.”“하랑아, 나 널 진짜로 좋아하게 됐나 봐.”온하랑은 움찔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부승민을 보았다.방금,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나?그럴 리가!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니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진짠가?그녀가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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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부승민에 대한 신뢰를 거의 다 잃었다.온하랑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부승민이 이어서 말했다.“앞으로는 절대 추서윤과 단둘이 만나지 않을게. 너만 괜찮다면 앞으로 꼭 만나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우리 셋이 같이 만나자. 네가 가지 않겠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꼭 데리고 갈게. 혹은 그냥 네 사람 한 명을 내 비서로 보내서 날 계속 감시해도 돼.”“감시는 됐고, 만약 앞으로 추서윤이 또 전화 와서 발작했다거나 혹은 또 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어쩔 건지나 말해봐.”“앞으로는 가지 않을게. 만약 정말 꼭 내가 직접 가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너랑 같이 갈게.”온하랑은 추서윤이 절대 이대로 순순히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그래서 앞으로 또 추서윤이 매달렸을 때 부승민이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했다.하지만 그녀는 부승민에게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그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편안하고 기쁘게 보내시기를 바랄 뿐이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그녀가 그를 완전히 용서한 줄로 착각했다.그가 숨을 길게 내쉬며 온하랑을 끌어안았다.“하랑아, 고마워.”부승민은 온하랑의 허리를 당기고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기대며 더 깊이 그녀를 끌어안았다.온하랑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그를 밀어냈다.부승민은 그 행동에서 약간의 경계심을 읽어내고는 그녀를 놔주며 말했다.“집에 가자.”“응.”온하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승민이 호텔 지배인에게 연락했고, 곧이어 호텔 지배인이 그들을 집으로 모실 차를 준비했다.얼마 후, 차가 더원 파크힐에 멈춰 섰고 부승민과 온하랑이 차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정원을 가로질러 걸었다.도우미 아주머니가 두 사람이 같이 걸어 들어오는 걸 발견했다.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분명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두 사람 드디어 화해했나?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화해한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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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승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내가 말한 대로 하면 돼.”노준형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알겠다고 대답했다.부승민은 전화를 끊은 후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온하랑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두 사람 사이에 말은 없었다.얼마 후, 온하랑이 입을 열었다.“준형 오빠가 나한테 사과하는 자리에 효건 오빠도 부르면 어떡해. 준형 오빠더러 창피당하라는 거야?”“왜?”“내 말은, 효건 오빠랑 다른 사람들은 부를 필요 없을 거 같은데.”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었지만 그녀는 상상만큼 기쁘지 않았다.굳이 따지자면, 친구들에게 소개해 줘도 그만, 소개해 주지 않아도 그만이었다.만약 두 사람이 금방 결혼했을 때 부승민이 친구들 앞에서 온하랑을 공개했다면 그녀는 아주 기뻐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와서 공개하면, 그의 친구들도 부승민과 추서윤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 알고 있는 이상 온하랑이 부승민을 뺏었다고 생각할 것이다.부승민을 봐서라도 앞에서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겠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노준형이 그랬던 것처럼.부승민이 걸음을 멈추고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왜 필요 없는데?”온하랑이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나더러 추서윤 씨한테 새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던 거 기억나?”얼마 전, 부승민은 추서윤을 그의 친구들에게 소개해 줬다.그런데 그 일이 있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의 파트너는 어느새 온하랑으로 바뀌어 있었다.이 남자의 마음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부승민이 엄지손가락으로 온하랑의 손목을 조심조심 매만지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어 줄게.”그가 옆에 있는 이상 그의 친구들은 아무리 그녀가 싫어도 꾹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노준형이 속마음과는 다르게 그녀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처럼.부승민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온하랑도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두 사람은 동네를 잠시 더 산책하다가 별장으로 돌아왔다.화장실에서 나온 부승민은 온하랑의 앞에 물잔과 약 두 병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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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기 너머로 임가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임연지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을까 봐 걱정하며 바로 물었다.“오늘 센트럴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아? 모르셨어요?”간하림은 간단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따귀를 맞은 일로 설윤은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래서 지금 사모님께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그 말을 듣자 임가희는 안심했다.뺨 한 대 맞고 참지 못해 도망가는, 겨우 스무 살짜리 감정적인 계집애 따위는 신경 쓸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무심하게 말했다.“이틀 후에 너희 가게로 갈 거야. 그때까지 설윤을 잘 부추겨서 나한테 덤비게 만들어.”간하림은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챘다.“알겠습니다. 사모님,”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드는 장면은 반드시 녹화되어 최국환에게 전달될 것이다.하지만 어떻게 하면 설윤이 임가희에게 대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리우 그룹.최국환은 회의를 마치고 몇몇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갔다.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비서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찾았다.“오전에 사모님과 설윤 씨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설윤 씨는 가방을 사지 않겠다고 하시며 환불해 달라고 하셨습니다.”“갑자기 왜?”“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화에서 설윤 씨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최국환은 한창 젊은 애인에게 푹 빠져 있던 터라 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거의 끊어지려는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설윤의 목소리는 살짝 쉰 듯했다.“국환 씨.”“김 비서 말로는 가방 환불해 달라고 했다던데.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설윤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싫어졌어요. 이유는 없어요.”“이유가 없어? 그럼 목소리는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누군지 말만 해. 감히 내 여자를 괴롭히다니!”“묻지 마세요. 저 때문에 국환 씨와 사모님 사이가 나빠지는 건 싫어요.”“오? 내 마누라와 관련된 일이야?”“말했잖아요, 묻지 마시라고요. 더 물으면 저 진짜 삐질 거예요.”“아이고, 또 어린애

  • 위태로운 제안   제1271화

    “정말... 어이가 없어...”설윤은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어딜 가요? 방금 구매 기록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못 보여주는 건데요?”임연지는 설윤의 길을 막아서며 그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잡고 비꼬듯 말했다.“젊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뻔뻔해요? 유부남인 거 뻔히 알면서 끼어들다니. 내 고모부가 그쪽 아빠보다 나이도 많은데, 역겹지도 않아요? 몸 팔아서 얻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좋아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손님 몇 명이 임연지의 말을 듣고 문 앞에서 수군거렸다.설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임연지를 밀치고 가게를 나서 황급히 도망쳤다.간하림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저기요. 설윤 씨, 가방은...”점원은 임연지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보고 두 번 불렀다.그러나 설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그만 불러요. 안 올 거예요.”임연지는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내려다봤다.“저 여자가 싫다고 두고 갔으니 이 가방 저 주세요.”“임연지 씨, 죄송하지만 설윤 씨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걱정 마세요, 분명히 환불할 거예요. 환불하면 이 가방 저한테 남겨 두세요.”임연지는 선물 상자를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임연지의 배경을 생각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설윤 씨가 환불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네.”가방을 못 사서 한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는데 상황이 반전되고 내연녀까지 혼내주고 나니 임연지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윤아, 괜찮아?”마침내 매장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자 설윤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간하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넋이 나간 채 앞으로 걸어갔다.“윤아, 어디 가서 좀 앉을까?”설윤은 마침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간하림이 그녀를 위로했다.“윤아, 너무 속상해하지

  • 위태로운 제안   제1270화

    한진은 큰 도움을 주고도 단지 가방 하나 사달라는 부탁만 했을 뿐인데 실망을 안겨주게 생겼으니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심지어 가방을 선물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는데 무슨 생각 할지 걱정되었다. 설마 공짜로 주기 싫어서 쪼잔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연지가 물었다.“다음번에 언제 입고되나요?”점원은 임연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회원 가입하시면 나중에 재고를 확보할 때 연락드리고 있어요.”“그래요. 할게요.”임연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연락처가 어떻게 돼요?”점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임연지는 전화번호를 말하며 머릿속으로 한진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설윤 씨, 어서 오세요. 가방 찾으러 오셨죠? 잠깐 앉아 계시면 금방 가져다드릴게요.”다른 점원의 반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네, 고마워요.”소리의 출처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임연지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발견하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윤아, 여기 점원이랑 아는 사이야? 물건을 엄청 많이 샀나 보네? 부러워.”나지막이 속삭이는 여자 목소리가 임연지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내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촌년들. 잠깐! 왼쪽에 있는 여자가 낯이 좀 익은데?’그리고 고개를 돌려 찬찬히 뜯어보았다.분명 어딘가 본 듯한 얼굴이다.기억을 되짚어보던 찰나 점원이 정교한 선물 상자를 들고나와 두 여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가방을 보여주었다.“설윤 씨가 구매한 가방이에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설윤은 가방을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확인했어요.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점원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대뜸 울려 퍼졌다.“재고가 없다면서요? 분명 제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한테 주는 거죠?”싸늘한 표정으로 따지는 임연지를 보자 점원이 서둘러 해명했다.“이 가방은 손님께서

  • 위태로운 제안   제1269화

    일과를 마친 설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돌아갔다가 간하림과 다시 마주쳤다.이내 먼저 입을 열었다.“하림아, 내일 쉬는 날인데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임가희가 부탁한 일을 떠올리자 간하림은 흔쾌히 동의했다.다음 날, 두 사람은 약속 시간에 맞춰 센트럴 백화점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일단 만나자마자 설윤은 밀크티 두 잔을 주문했고, 백화점으로 걸어가면서 쪽쪽 빨아 마셨다.간하림이 말했다.“여긴 명품밖에 없을 텐데?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발견했다가 가격 보고 기겁했잖아. 그나저나 꽤 익숙한 곳인가 봐? 여기 자주 와?”“내가 무슨 재주로? 국환 씨 따라 몇 번 다녀갔을 뿐, 며칠 전에 가방 하나 주문했는데 오늘 픽업하러 가는 거야.”“헐! 회장님 너무 근사하잖아.”설윤을 바라보는 간하림의 눈빛에 부러움이 가득했다.“그러니까 얼른 행동 개시해야 한다고. 사모님과 이혼시키고 너랑 결혼할 방법을 찾아야 해.”비록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정이었다.사실 그녀는 속으로 뻔했다. 최국환과 임가희는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설윤에게 준 돈은 부부의 공동 재산에 속하지 않는지라 다시 빼앗아 갈 자격이 없었다. 물론 최국환이 직접 개입하면 회수가 가능했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나중에 임가희가 설윤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나 최국환의 마음이 식는다고 해도 그동안 받았던 값비싼 선물은 여전히 가져갈 것이며 현금화하면 그래도 두둑이 챙길 수 있다.결국 임가희가 손을 쓰는 이상 설윤은 곧 최국환에게 찬밥 신세 당하므로 얼추 비슷한 액수의 보수를 받을뿐더러 임가희라는 인맥까지 확보하기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그제야 간하림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설윤의 표정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어젯밤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말이 맞아. 국환 씨 아내와 적이 된 이상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봐주는 건 아니지. 고작 돈 몇 푼

  • 위태로운 제안   제1268화

    “자, 이제 그만하고 출근하자. 아니면 매니저한테 또 혼날라.”설윤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탈의실을 나가려고 했다.“먼저 가. 나 립스틱만 바르고.”“알았어.”설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간하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사모님이 부탁한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군.’...병원에 도착한 최동철은 올라가는 대신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부승민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유치원 확인하러 직접 다녀온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차에 타고 나서 메이슨을 데리러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과 달리 최동철이 말했다.“별장에 계신 이모님이 연락이 와서 오늘 메이슨이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프다고 했다네. 아마도 어제 강행군이었나 봐. 그래서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가면 돼.”온하랑은 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어제 많이 걸어 다니긴 했죠. 메이슨을 말렸어야 했는데...”“네 탓 아니야. 내가 너무 바빠서 녀석이랑 놀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무리한 거지.”이에 온하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동철 오빠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메이슨도 철이 들었고.”최동철이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남사스럽게 뭔.”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면서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동언 국제 유치원에 도착하자 젊은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개와 함께 내부를 구경시켜주었다.“우리 유치원은 총 3개의 반으로 나뉘는데 최대 학생 수를 각각 20명 이내로 확보하여 교사들이 모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게끔 노력하죠. 교실에는 멀티미디어 교육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며 전용 독서 공간, 놀이 공간, 수공예 공간, 실내외 감시 카메라, 그리고...”꼼꼼하게 알아본 결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온하랑은 꽤 만족했다.이내 유치원을 나서고 최동철에게 의견을 물었다.최동철이 말했다.“몇 군데가 노후한 것만 빼고 기본적인 인프라는 괜찮네. 시설 개조 명목으로 2억을 기부할 생각이야. 게다가 메이슨도 특별한 케이스라

  • 위태로운 제안   제1267화

    설윤은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봤어? 다른 사람한테 절대 얘기하면 안 돼.”“당연하지.”간하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나 몰라? 걱정 붙들어 매.”그리고 다정하게 설윤의 팔짱을 끼고 클럽 탈의실로 향했다.아직 아무도 없었고, 간하림은 옷을 갈아입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아, 최 회장님과 어떻게 알게 되었어?”딱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설윤은 대충 둘러댔다.“우연한 기회에 마주쳤어. 전에 일하던 곳에 놀러 왔다가 마침 내가 접대를 담당했거든.”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간하림은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손을 뻗어 설윤의 잘록한 허리를 꼬집었고, 뽀얀 피부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최 회장님이 네가 진짜 마음에 드나 봐. 직접 출근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정말 좋겠네.”설윤은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너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잖아.”“든든하긴 개뿔! 하늘과 땅 차이거든?”간하림이 툴툴거렸다.“가게에 오면 지명할 뿐이지 너처럼 최 회장님 전속 담당이 아니야.”심지어 손님마저 감히 설윤에게 집적거리지 못했고, 누가 봐도 사전에 단단히 경고한 게 분명했다. 반면, 그녀는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설윤은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을 다듬었다.“윤아, 나중에 사모님이 되면 날 잊지 마.”“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녕 몰라?”이내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더니 간하림을 흘겨보았다.“국환 씨가 싫증이 나기 전에 돈이라도 두둑이 챙기면 땡큐고, 사모님은 감히 넘보지도 않아.”간하림은 납득할 수 없는 듯 바짝 다가갔다.“우리가 뭐 어때서? 최 회장님 와이프도 결국에는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잖아. 그리고 며칠 전 기사 못 봤어?”“무슨 기사?”곧이어 출입구를 힐끗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누군가 최 회장님 와이프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해서 끔찍한 상처를 입었대.”“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위태로운 제안   제1266화

    임연지는 집에 도착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손에 든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는 임가희를 발견했다.테이블에 놓인 등기 전용 서류 봉투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이 널브러져 있었다.“고모, 왜 그래요?”말을 마치고 나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고모부가...”이내 나머지 사진도 확인했는데 전부 어떤 젊은 여자와 다정한 스킨십을 하는 최국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결코 가벼운 사이는 아닌 듯싶었다.“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임가희가 싸늘한 얼굴로 그녀를 흘겨보았다.임연지는 목을 움츠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임가희를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고모, 이제 어떡해요?”“어떡하긴?”임가희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모른 척해야지. 지금 네 고모부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거야. 괜히 추궁했다가 홧김에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더 손해이지 않겠어?”그렇다고 마냥 당할 수는 없었다.지금껏 비슷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하나같이 머리가 텅 빈 여자들이라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서 부랴부랴 찾아와 따지기 급급했다. 나중에 울면서 최국환에게 하소연하면 정이 떨어진다며 다시는 만나주지 않았다.또한 최국환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신분과 집안, 그리고 사회적 지위 때문이었다.어쨌거나 그 나이 먹고 결혼을 3번이나 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본처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은 이상 고작 여자 문제로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뒤에서 몰래 처리하면 그만이었다.“그냥 넘어가려고요?”비록 고모의 말도 맞지만 그래도 왠지 꺼림칙했다.“넌 신경 쓰지 마. 고모부 앞에서도 티 내지 말고.”임연지는 사진 속 여자를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여우 년’이라고 욕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임가희는 사진을 모두 치웠다.무언가를 떠올린 듯 임연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참, 고모, 만약 이 여자가 임신하면 어떡해요?”“네 고모부의 컨

  • 위태로운 제안   제1265화

    “침착해.”임연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호텔에서 제공한 가운을 느긋하게 껴입었다.“샤워했어? 나랑 같이 씻을래?”“꿈 깨.”이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면서 문을 열자 알몸으로 나타나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오재원을 발견했다.“연지야.”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슬쩍 피했다.“호텔에서 푹 쉬어. 먼저 가볼게.”“아직 이른데? 좀 더 있다 가.”“안돼.”임연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오재원을 스쳐 지나가 침대 옆으로 걸어가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쌀쌀맞은 얼굴을 보자 오재원은 꼬리를 내렸다.“알았어. 그럼 언제 다시 올 거야? 그리고 원하는 집이 있으면 알려줘. 부동산에 물어볼게.”“방 3개, 풀옵션. 나머지는 알아서 해.”“그래.”임연지는 옷매무새와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을 나갔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뒤돌아보며 혀를 찼다.‘역겨운 놈.’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고 한진에게 답장을 보냈다.[호텔을 벗어나니 공기마저 상쾌한 기분이야.]한진이 대답했다.[하하하! 참,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우리 오빠가 인맥을 동원해서 각 언론사에 수시로 주시하라고 했잖아. 그중에서 제보받은 회사가 있는데 편집장이 이메일을 보자마자 오빠한테 연락했대.]그러고 나서 이메일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다.본문의 첫 마디가 온하랑이 필라시에서 유학할 때 최동철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임연지는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대박인데? 고마워, 한진아. 오빠한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줘. 네가 아니었다면 진짜 아프리카로 쫓겨났을지도 몰라.]그동안 한진의 오빠가 사전에 뉴스를 차단하지 못하고 자칫 폭로라도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이제 결과를 확인한 이상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하지만 대체 누가 제보했단 말이지?한진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물론 메일 주소를 역추적한 결과 여전히 너희 집으로 되어 있어. 아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가상 주소를 사용한 것 같아.][미친놈.]임연지는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 위태로운 제안   제1264화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임연지는 그 틈을 타서 오재원의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오재원은 그녀를 따라 나가려고 했지만 잠시 뒤 자신이 들고 있던 캐리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끌며 엘리베이터를 나왔다.방에 들어가자 오재원은 서둘러 캐리어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임연지를 끌어안고는 침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연지야, 빨리 나 주라고. 더는 참을 수 없어.”“오재원! 이거 놔! 먼저 일어나!”“안 돼. 연지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냥 즐기기만 하면 돼.” 그녀는 그를 힘껏 밀쳤고 마음속에서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재원의 힘이 너무 강해 벗어나기 힘들었다. “오재원, 내 말 들어봐. 우리 얘기 좀 해야 해.” 임연지는 차분하게 말하며 그가 자신의 말을 듣길 바랐다.하지만 오재원은 이미 욕망에 눈이 멀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임연지에게 입을 맞추려 했고 손은 그녀의 몸을 함부로 만지기 시작했다.“얘기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알아.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는 말을 마친 후 임연지의 입술을 막았다. “연지야, 잘 생각해. 네가 만약 나를 밀어내면 난 바로 나갈 거야.” 임연지는 속에서 역겨움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밀치는 손길은 결국 멈춰 섰다.“그래 이거지.”오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충분히 즐겼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오재원은 임연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너 너무 향기로워. 연지야. 어쩌면 이제 우리 아이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네.”임연지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더 이상 그를 피하지 않으면 정말로 오재원에게 뺨을 갈길 것만 같았다.화장실에 들어간 임연지는 핸드폰을 꺼내 한진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진아, 살려줘. 진짜 그 사람이 너무 싫어!][돌아오자마자 나랑 자려고 하고 역겨워 죽겠어!][내가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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