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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고은서는 명운의 현재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도아름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고은서는 대화를 멈추었다.“아름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자금 문제는 방법을 찾아볼게요.”“평소엔 누구나 도와주려 하지만 어려울 때 도와주는 건 쉽지 않죠.”도아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명운의 현재 상황은 나도 잘 알아요. 누구도 감히 투자하지 않을 거예요.”고은서도 당연히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도아름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명운을 나온 고은서는 박지연의 전화를 받았다.그녀도 명운의 뉴스를 봤던 것이다.“서인수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자선이란 이름으로 비열하고 더러운 짓을 하다니, 경찰이 그를 체포해 조사하지 않아?” 박지연이 분개했다.“아름 언니가 이 일로 이미 신고했어. 하지만 복지원의 여자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술자리에 갔고 서인수와 함께 있는 것도 자발적이라고 했대.”“복지원 쪽 사람들은 서인수와의 사적인 교류가 모두 복지원 업무를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어. 그래서 도덕적 비난 외에는 그들을 실제로 처벌하기 어려워.”“그럼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거야?” 박지연이 화를 냈다.“서인수는 현재 명운을 떠났고 이런 추문도 있어서 다시 주류 공장을 열어도 재기하기 어려울 거야. 이것도 일종의 업보라고 볼 수 있지.”“그게 무슨 업보야. 여전히 돈 있고, 평판만 나빠졌을 뿐 아무런 손해도 없잖아!”박지연은 몇 마디 욕을 하더니 도아름의 현재 상황에 대해 물었다.고은서는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아름 언니를 어떻게 도울 계획이야? 미래 투자은행에서 명운에 다시 투자할까?” 박지연이 물었다.“아마 안 할 거야.”고은서는 자신과 민시후와의 사이가 틀어진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이익 측면에서 민시후는 쉽게 투자하지 않을 거야.”고은서는 200억의 자금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명운 상황으로는 긴급한 위기를 모면하는 정도밖에 안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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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고은서는 정말 박지연이 정신을 차리길 바랐다. “남편의 과거 연애사에 관심을 갖는 건 절대 나쁘지 않아. 지금 당장 온 선생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줘 봐. 관심하는 동시에 그 여자 동창을 관찰할 수도 있잖아.”“알았어, 알았어. 갈게.”박지연과의 통화를 끝낸 후에도 고은서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녀는 박지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시어머니가 옥을 좋아하신다고 했지? L국의 옥 제품이 유명하잖아. 팔찌 하나 골라서 선물로 드리는 게 어때?]전생에 박지연의 말에 따르면 온 선생님의 이 첫사랑은 수준이 꽤 높았다고 한다. 박지연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온 선생님 부모님 마음도 잘 사로잡았다.이번에 귀국 후 그녀가 온 선생님 집안을 방문했을 때 가져간 선물이 바로 옥팔찌였고 온 선생님 어머니가 매우 좋아하셨다.그래서 박지연은 온 선생님과 함께 L국에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었다.이번 생에는 박지연의 노력이 그녀와 온 선생님의 결말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선물 얘기가 나오자 고은서는 할머니의 생일이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할머니께 특별한 선물을 골라 드리고 싶었다.손자며느리로서 할 수 있는 작은 효도라고 생각했다.앞으로 할머니의 생일을 함께 보낼 때 그녀는 기껏해야 평범한 후배일 뿐일 테니까.고은서는 먼저 쇼핑몰에 가서 보리수 염주를 주문했다. 할머니가 불교를 믿으시니 이 선물이 적합할 것 같았다.그리고 사진 액자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곳을 찾아갔다. 지난번 레스토랑 정원에서 찍은 사진들 중 예쁜 것들을 골라 할머니를 위해 정교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급 옷 몇 벌만 사라고 했는데, 꼭 이렇게 비싼 시계를 사야겠니? 돈 좀 아낄 줄 모르는구나!”사진을 고르고 있는데 약간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를 들리자 고은서는 손을 흠칫 떨었다.고은서가 환생한 지 꽤 되었지만 이 목소리를 들으니 두피가 조건반사적으로 찌릿해졌다.전생에 이 목소리의 주인공인 범가온은 그녀를 2년 넘게 괴롭혔다.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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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떠나기 전, 그녀는 ‘수리 중’ 표지판을 밖에 세워두었다.그리고 주인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컴퓨터에 아주 능숙한 친구가 있다고 했죠? 그 친구에게 부탁 좀 해줘요. XX 쇼핑몰 1층의 지난 30분간 감시 카메라 영상을 해킹해서 지워달라고요.”주인혁은 약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승낙했다. “알겠어요, 구체적인 위치를 보내줘요.”고은서는 주인혁의 SNS를 통해 그의 밴드에 실력 있는 컴퓨터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난 생에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농담 삼아 그 친구가 악기에 빠진 해커 재목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모든 것을 처리하고 나니 고은서의 마음속 분노가 조금은 해소되는 듯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고은서는 어젯밤에 침실 밖으로 던져놓은 물건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명운의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성명은 이미 발표되었기에 모두가 명운의 사장이 스캔들에 휘말렸고 부부가 신속하게 이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사람들은 또한 명운이 핵심 기술을 잃었고, 서인수가 새 회사를 설립해 경쟁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어떻게 하면 이 화제성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도아름에게 불쌍한 척하라고 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는 건 동정이 아니라 모욕과 키보드 워리어들의 공격일 수도 있었다.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모두 실행하기 어려워 보였다. 고은서는 휴대폰을 열어 뉴스를 훑어보기 시작했다.그러다 한 기사를 발견했다.판주 인수를 축하하기 위해 GS 그룹이 성대한 파티를 개최하고 각계 엘리트들을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지난 생에도 GS 그룹은 업계에 파티를 열었었다. 하지만 그때는 판주가 명운에 성공적으로 투자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이번엔 투자가 성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판주를 위한 성대한 파티가 열리게 된 것이다.GS 그룹이 판주를 인수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지금 파티를 여는 건 명운 사건의 실수를 덮으려는 의도였다.어쨌든 이것도 판주를 대중의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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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고은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니에요. 물 마시러 내려왔을 뿐이에요.”“도련님께서 전화하셨어요. 오늘 출장 가서 돌아오지 않으신대요.”이미숙은 이해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사모님, 도련님께서는 사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저한테 전화하신 거예요. 사실 사모님께 일정을 보고하시는 거죠.”“도련님께서 먼저 침실로 돌아오신 건 좋은 일이에요. 사모님, 도련님과 더 이상 다투지 마시고 물건들을 침실로 옮겨놓으시는 게 어떨까요?” 이미숙이 간곡히 권했다.“아주머니, 번거로우시겠지만 객실 하나를 정리해 주시겠어요? 침실은 곽승재한테 양보하겠어요.”“...”물을 들고 방으로 돌아온 고은서는 주인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분께 저 대신 감사 인사 전해주세요. 다음에 식사 대접할게요.]주인혁이 답장했다. [괜찮아요, 누나.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요.】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감시 카메라를 해킹해야 했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이렇게 존중받는 느낌에 고은서는 주인혁에 대한 인상이 더욱 좋아졌다.다음 날, 고은서는 다시 도아름을 만나러 갔다.개인 명의로 200억을 투자하겠다고 말하며, 우선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당면한 위기를 먼저 해결하고 나중 일은 그때 가서 다시 방법을 찾으면 되었다.도아름은 고은서가 너무 고마웠다. 그녀는 시장 가격보다 높은 주식으로 환산해 주겠다고 고집했고 즉시 변호사를 불러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은서 씨, 이렇게 의리 있게 나서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건 은서 씨가 마땅히 받아야 할 거니까 사양하지 마요!”고은서도 도아름의 진심을 알았기에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도아름의 식사 초대를 정중히 거절하고 고은서는 명운을 나섰다.차를 얼마 운전하지 않았을 때 타이어 공기압이 부족하다는 표시가 나왔다.고은서가 차에서 내려 상황을 확인하려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양복을 입은 두 명의 큰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들의 모습을 보니 계속 그녀의 차를 따라온 것 같았고 그녀에게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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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쾅 소리와 함께 민시후가 책상 위에 쌓여있던 높은 서류 더미를 발로 차버렸다. 서류들이 떨어지면서 그의 잘생기고 방탕한 얼굴이 드러났다.경호원들은 이런 모습에 익숙한 듯 고은서를 민시후 앞으로 안내한 후 문밖으로 물러났다.“고은서 씨, 앉으시죠.”민시후는 와인 잔을 들고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무례한 태도로 말했다. “내가 왜 당신을 불렀는지 알아요?”“글쎄요.” 고은서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도련님한테 사과드리고 싶어요. 지난번 서인수 일은 제가 오해했어요.”민시후가 코웃음을 쳤다. “꽤 눈치가 빠르군요, 먼저 사과할 줄도 알고. 곽승재가 내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든 일에 대해서는 사과할 생각이 없나 보죠?”고은서는 민시후가 트집 잡으려 한다는 걸 알았다. “미안해요. 저도 그 이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그렇게 큰 소동을 일으킬 줄 몰랐어요.”고은서는 사과만 했을 뿐, 민시후가 먼저 그녀를 납치하려 했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이 말에 민시후의 기분이 확실히 좋아진 듯했다. 그는 바 카운터 위에 있는 큰 병의 XO를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고은서를 바라봤다.“당신이 잘못을 인정했으니, 진심으로 사과하는 자세를 보여줘요. 저 술을 다 마시면 그 다음 정신적 손해배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죠.”고은서의 주량이 보통이라는 것은 뒤로하고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큰 병을 다 마시면 쓰러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도련님, 저는 그 술을 다 마실 수 없어요. 지난번 술집 일은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당신도 조사해 보셨겠지만, 곽승재가 서인수의 소식을 알게 된 건 저와 무관합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속였다는 일은 없어요.”“하지만 곽승재가 당신을 위해 내 가게를 망가뜨린 건 사실이지.”민시후가 와인 잔을 흔들며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과 대립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곽승재는 당신 일에 여러모로 신경 쓰고 있네요. 이렇게 하는 건 나를 이용해 당신들 부부의 로맨스에 자극을 주려는 거 아닌가요?”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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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고은서가 바라보면서 물었다.“무슨 일인데요?”민시후가 말했다.“이따 어떤 여자가 찾아오면 이유를 둘러대서 보내주세요.”고은서가 귀를 의심하면서 물었다.“어떤 여자길래 이유를 대면서까지 쫓아내야 하는데요?”민시후는 싫증난 표정으로 말했다.“아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여자요.”고은서는 민시후의 반응을 보고 아마도 관계가 심상찮은 사이라고 생각했다.민시후는 집안 어르신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그 여자와 멀리할 수 없어 고은서의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었다.그냥 일반 여자였다면 민시후의 성격으로는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하지 않고 진작에 내쫓았을 것이다.“민 도련님도 참 유별나네요. 제가 어떻게 내쫓아요? 민 도련님을 좋아하는 사람인 척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고은서가 묻자 민시후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그건 그쪽이 생각할 문제고, 저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쫓아내는 데 성공하면 지난번 일은 없었던 일로 해드릴게요. 아니면 이 술을 한 병 다 마시든가요. 그러면 제가 기분을 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지 말지 생각해 볼게요. 곽 대표가 구하러 올 거라고 기대하지 말고요. 한번 본 손해, 두 번 다시는 안 당할 거예요. 곽 대표가 와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고은서는 민시후가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더욱이 곽승재는 출장 중이라 올 수도 없었다.고은서가 진지하게 물었다.“민 도련님, 이런 일은 왜 꼭 저를 찾으세요? 여자 하나 내쫓는 거, 저보다 잘하는 사람도 많잖아요.”“아니요. 그쪽보다 더 어울릴 만한 사람은 없어요.”민시후가 인내심 가득한 말투로 설명했다.“예쁘고, 나한테 매달릴 일도 없고, 나한테 빚진 거 있고, 내가 원하고 있고.”“...”고은서는 할 말이 없었다.그제야 민시후가 이곳까지 부른 이유를 알았다.납치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일부러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화가 풀렸기 때문이다.“도련님, 송민아 씨가 오셨습니다.”이때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이 틈을 타 핸드폰을 찾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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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민시후가 의자에 앉아 빙 돌면서 말했다.“자기소개해달라고 하든가.”고은서는 이렇게 어이없는 상황이 처음이었다.‘유부녀의 신분으로 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를 쫓아내야 한다고?’고은서는 송민아의 의문이 가득한 눈빛과 마주치더니 말했다.“민 도련님이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 건가요?”송민아는 딱 봐도 안 믿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꼈다.“누구를 속이려고 그러세요! 딱 봐도 시후 오빠한테 찝쩍거리려고 온 것 같은데. 외모가 좀 괜찮다 싶은 여자들은 시후 오빠를 꼬셔보려고 사무실까지 찾아오던데. 약혼녀가 있는 줄도 모르고!”고은서는 민시후가 쫓아내달라고 한 사람이 약혼녀일 줄은 몰랐다.“정말 죄송해요. 저...”해명하려고 할 때, 민시후가 경고의 눈빛으로 쳐다보자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저도 둘 사이에 끼고 싶지 않은데 민 도련님께서 저를 잡고 놔주지 않길래요. 아무리 뿌리쳐 봐도 뿌리칠 수가 없었어요.”이 말에 민시후는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고은서는 담담하기만 했다.“저를 내버려 둘 수 있게 설득해 주신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송민아는 무슨 웃음거리를 들은 것처럼 말했다.“오빠가 당신을 쫓아다닌다고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민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신데 당신과 같은 여자를 좋아할 리가요!”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를 왜 좋아하는지. 못 믿으시겠으면 제가 증명해 드릴까요?”고은서가 사무실 입구로 걸어가자 두 보디가드가 절대 가면 안 된다는 눈빛을 하고서 앞을 가로막았다.“이거 봤죠?”고은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민 도련님은 제가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잖아요.”송민아가 민시후를 째려보았다.“시후 오빠, 왜 안 놔주는데요? 정말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예요?”민시후는 아무 말도 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은서를 쳐다보았고, 고은서는 모른 척하기만 했다.하지만 송민아의 눈에는 민시후가 인정한 거로 보였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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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제 약혼녀가 아니에요!”약혼녀라는 호칭이 싫은 민시후가 냉랭하게 말했다.“은서 씨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염치도 없이 제가 은서 씨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죠?”고은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다 도련님을 위해서 한 말이잖아요. 만약 제가 도련님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런 반응이 아니었을 거예요. 도련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야 마음을 접을 거라고요.”“그러면 제가 고마워해야겠네요?”“그럴 필요까지는 없고요. 약속만 지켜주세요.”민시후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밖에서 보디가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불법감금이 의심된다고 경찰이 찾아왔어요.”민시후는 그제야 반응하고 이상한 눈빛으로 고은서를 쳐다보았다.“겁도 없이 제 앞에서 수작을 부려요?”고은서는 태연하기만 했다.“도련님이 또 저를 납치하면 어떡해요. 저도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약혼녀를 쫓아내 주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민시후가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지문 인식으로 핸드폰을 켜 박지연에게 전화했다.박지연은 눈치껏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고은서와 민시후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했다.민시후는 화를 내는 대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고은서를 쳐다보았다.“재미있네요. 은서 씨, 명운을 융자의 기준으로 만들어 주시면 은서 씨 건의를 다시 생각해 볼게요.”고은서는 시종 미소를 유지했다.“네. 이번에는 민 도련님을 실명시키지 않을게요.”잠시 후, 경찰이 걸어들어왔다.고은서는 친구가 신고했고,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민시후는 사무실 한구석을 가리키더니 말했다.“여기 CCTV 있습니다. 모든 걸 기록했으니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CCTV를 확인한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민시후가 일부러 그런 것이다!고은서가 송민아를 내쫓으려고 여자친구인 척 스킨십할 거라고 생각해 일부러 CCTV로 기록해 곽승재에게 수치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민시후는 고은서의 기발한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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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미숙이 달려왔다.“사모님, 외숙모께서 지금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계셔요. 저까지 내쫓으셨어요.”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왜 갑자기 집에 찾아온 거지?’“은서 왔어?”단은숙이 인기척을 느끼고 주방에서 나왔다.“삼계탕 끓여놨어. 조금만 더 끓이면 돼. 아, 조카사위한테도 전화했어. 돌아오는 길인데 곧 도착할 거라고 했어.”고은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외숙모께서는 뭐 하러 오셨어요?”단은숙이 말했다.“애도, 참. 내가 너 어릴 때부터 친딸처럼 키웠는데 딸 집에 와서 뭐 하겠어. 당연히 딸 보러 왔지! 저번에 조카사위가 집에서 별로 밥을 먹지 않는다며? 직접 밥해주려고 왔어.”친딸은 무슨, 단은숙은 고은서를 구박만 했던 사람이었다.아마도 저번 FY 그룹 일을 포기하지 않았거나 고준석이 M•Q 관리팀을 바꾸겠다고 해서 소식을 엿들으려고 왔을 수 있었다.이때, 곽승재의 차 소리가 들려 이미숙이 문을 열어주었다.검은 정장을 입고 작은 캐리어를 들고있는 그는 훤칠한 키에 심상찮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으며 온 하루 힘들었는지 얼굴이 초췌해 보였다.고은서를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먼저 인사를 건네주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두날 전 불쾌했던 일이 떠올라 못 본 척하고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조카사위, 출장 다녀오느라 힘들었지? 얼른 앉아서 쉬어!”단은숙이 대신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심마니한테 부탁해서 얻어온 산삼으로 삼계탕 끓여놨어. 면역력도 보충한다니까 이따 많이 먹어.”고은서는 뻘쭘하기만 했다.“외숙모, 손님이신데 앉아서 쉬세요. 주방일은 아줌마한테 맡기면 돼요.”“그럴 수 없지. 오랜만에 외숙모가 해주는 요리를 맛보는 건데 내가 직접 해줘야지! 아, 맞다. 은서야, 조카사위 물건은 방에 갖다 뒀어.”단은숙은 가르치는 말투로 말했다.“얘도 참. 외할아버지가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웠더니 성질만 나면 물건을 집어 던져. 다음부터 그러면 안 돼!”고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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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곽승재는 입술만 깨물 뿐 고은서의 태도를 신경 쓰지 않고 평온하게 말했다.“예전에 네가 해주고 싶어 했잖아. 네 마음대로 하라는데 뭐가 잘못됐어?”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오빠 말대로 그건 예전 일이잖아. 오빠가 싫다고 했는데 나도 이제는 싫어. 그냥 화끈하게 이혼합의서에 사인이나 해!”“고은서, 정말 싫은 거 맞아? 그럼 왜 외숙모한테 내 물건을 이쪽 방으로 옮겨달라고 했어? 그리고 왜 자주 집에서 밥 안 먹는다고 했어?”고은서는 뻘쭘하기만 했다.외숙모가 이 말을 그대로 곽승재에게 전했다니!“내가 불러온 거 아니야.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고은서! 조카사위! 얼른 내려와! 밥이 다 됐어!”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1층에서 단은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애써 표정을 감추고 곽승재에게 말했다.“나중에 얘기해. 이따 외숙모가 어떤 요구를 하든 절대 들어주지 마.”곽승재는 무표정으로 그녀를 힐끔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옷을 갈아입으려다 말고 1층으로 내려갔다.1층에서는 이미숙이 단은숙이 해놓은 요리를 주방에서 꺼내오고 있었다.식탁 위에는 삼계탕, 전복 등 고급 요리가 많았다. 딱 봐도 돈을 많이 쓴 모양이었다.분명 부탁할 것이 있을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가만히 서서 뭐 해. 조카사위는? 얼른 손 씻고 밥 먹으라고 해!”단은숙은 적반하장으로 이 집 주인 행세를 했다.고은서가 직접적으로 말했다.“외숙모. 다음부터 우리 집에 와서 요리하지 마세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아줌마께서 다 해줘요.”단은숙은 고은서의 뜻을 알아차리고 꾸지람했다.“은서야, 내가 이러는 거 다 너를 위해 하는 거잖아. 난 네가 조카사위랑 가까워졌으면 해. 부부 사이가 돈독해지면 얼마나 좋아. 뭐 문제라도 있어? 왜 내가 오지랖을 떨고 있는 것처럼 말해?”고은서가 말했다.“함부로 저희 둘 사이의 일에 끼어들면 안 되죠!”고은서의 아이디어라고 곽승재가 오해했으니 말이다!단은숙은 미처 무슨 뜻인지 몰랐다.“내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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