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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민시후가 의자에 앉아 빙 돌면서 말했다.

“자기소개해달라고 하든가.”

고은서는 이렇게 어이없는 상황이 처음이었다.

‘유부녀의 신분으로 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를 쫓아내야 한다고?’

고은서는 송민아의 의문이 가득한 눈빛과 마주치더니 말했다.

“민 도련님이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 건가요?”

송민아는 딱 봐도 안 믿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꼈다.

“누구를 속이려고 그러세요! 딱 봐도 시후 오빠한테 찝쩍거리려고 온 것 같은데. 외모가 좀 괜찮다 싶은 여자들은 시후 오빠를 꼬셔보려고 사무실까지 찾아오던데. 약혼녀가 있는 줄도 모르고!”

고은서는 민시후가 쫓아내달라고 한 사람이 약혼녀일 줄은 몰랐다.

“정말 죄송해요. 저...”

해명하려고 할 때, 민시후가 경고의 눈빛으로 쳐다보자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저도 둘 사이에 끼고 싶지 않은데 민 도련님께서 저를 잡고 놔주지 않길래요. 아무리 뿌리쳐 봐도 뿌리칠 수가 없었어요.”

이 말에 민시후는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고은서는 담담하기만 했다.

“저를 내버려 둘 수 있게 설득해 주신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송민아는 무슨 웃음거리를 들은 것처럼 말했다.

“오빠가 당신을 쫓아다닌다고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민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신데 당신과 같은 여자를 좋아할 리가요!”

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를 왜 좋아하는지. 못 믿으시겠으면 제가 증명해 드릴까요?”

고은서가 사무실 입구로 걸어가자 두 보디가드가 절대 가면 안 된다는 눈빛을 하고서 앞을 가로막았다.

“이거 봤죠?”

고은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민 도련님은 제가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잖아요.”

송민아가 민시후를 째려보았다.

“시후 오빠, 왜 안 놔주는데요? 정말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예요?”

민시후는 아무 말도 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은서를 쳐다보았고, 고은서는 모른 척하기만 했다.

하지만 송민아의 눈에는 민시후가 인정한 거로 보였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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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약혼녀가 아니에요!”약혼녀라는 호칭이 싫은 민시후가 냉랭하게 말했다.“은서 씨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염치도 없이 제가 은서 씨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죠?”고은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다 도련님을 위해서 한 말이잖아요. 만약 제가 도련님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런 반응이 아니었을 거예요. 도련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야 마음을 접을 거라고요.”“그러면 제가 고마워해야겠네요?”“그럴 필요까지는 없고요. 약속만 지켜주세요.”민시후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밖에서 보디가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불법감금이 의심된다고 경찰이 찾아왔어요.”민시후는 그제야 반응하고 이상한 눈빛으로 고은서를 쳐다보았다.“겁도 없이 제 앞에서 수작을 부려요?”고은서는 태연하기만 했다.“도련님이 또 저를 납치하면 어떡해요. 저도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약혼녀를 쫓아내 주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민시후가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지문 인식으로 핸드폰을 켜 박지연에게 전화했다.박지연은 눈치껏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고은서와 민시후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했다.민시후는 화를 내는 대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고은서를 쳐다보았다.“재미있네요. 은서 씨, 명운을 융자의 기준으로 만들어 주시면 은서 씨 건의를 다시 생각해 볼게요.”고은서는 시종 미소를 유지했다.“네. 이번에는 민 도련님을 실명시키지 않을게요.”잠시 후, 경찰이 걸어들어왔다.고은서는 친구가 신고했고,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민시후는 사무실 한구석을 가리키더니 말했다.“여기 CCTV 있습니다. 모든 걸 기록했으니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CCTV를 확인한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민시후가 일부러 그런 것이다!고은서가 송민아를 내쫓으려고 여자친구인 척 스킨십할 거라고 생각해 일부러 CCTV로 기록해 곽승재에게 수치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민시후는 고은서의 기발한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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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미숙이 달려왔다.“사모님, 외숙모께서 지금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계셔요. 저까지 내쫓으셨어요.”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왜 갑자기 집에 찾아온 거지?’“은서 왔어?”단은숙이 인기척을 느끼고 주방에서 나왔다.“삼계탕 끓여놨어. 조금만 더 끓이면 돼. 아, 조카사위한테도 전화했어. 돌아오는 길인데 곧 도착할 거라고 했어.”고은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외숙모께서는 뭐 하러 오셨어요?”단은숙이 말했다.“애도, 참. 내가 너 어릴 때부터 친딸처럼 키웠는데 딸 집에 와서 뭐 하겠어. 당연히 딸 보러 왔지! 저번에 조카사위가 집에서 별로 밥을 먹지 않는다며? 직접 밥해주려고 왔어.”친딸은 무슨, 단은숙은 고은서를 구박만 했던 사람이었다.아마도 저번 FY 그룹 일을 포기하지 않았거나 고준석이 M•Q 관리팀을 바꾸겠다고 해서 소식을 엿들으려고 왔을 수 있었다.이때, 곽승재의 차 소리가 들려 이미숙이 문을 열어주었다.검은 정장을 입고 작은 캐리어를 들고있는 그는 훤칠한 키에 심상찮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으며 온 하루 힘들었는지 얼굴이 초췌해 보였다.고은서를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먼저 인사를 건네주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두날 전 불쾌했던 일이 떠올라 못 본 척하고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조카사위, 출장 다녀오느라 힘들었지? 얼른 앉아서 쉬어!”단은숙이 대신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심마니한테 부탁해서 얻어온 산삼으로 삼계탕 끓여놨어. 면역력도 보충한다니까 이따 많이 먹어.”고은서는 뻘쭘하기만 했다.“외숙모, 손님이신데 앉아서 쉬세요. 주방일은 아줌마한테 맡기면 돼요.”“그럴 수 없지. 오랜만에 외숙모가 해주는 요리를 맛보는 건데 내가 직접 해줘야지! 아, 맞다. 은서야, 조카사위 물건은 방에 갖다 뒀어.”단은숙은 가르치는 말투로 말했다.“얘도 참. 외할아버지가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웠더니 성질만 나면 물건을 집어 던져. 다음부터 그러면 안 돼!”고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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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가 말했다.“부부 사이에도 냉전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가 지금 냉전 중인 거야. 오빠를 보고 싶지도 않아.”곽승재가 물었다.“우리가 무엇 때문에 냉전 중이지?”“기억을 잃었어? 며칠 전 복싱장 밖에서 누가 무례하게 내 친구를 난처하게 만들었는데?”곽승재가 피식 웃고 말았다.“내 마누라를 훔쳐보고 있는데 내가 왜 예의를 차려야 해?”“미친 거 아니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주인혁을 오해하는 것이 싫었다.“젊은 남자가 나 같은 유부녀를 왜 훔쳐봐!”곽승재가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아직도 그 사람 편을 드는 거야? 너보다 내가 남자를 더 잘 알거든?”고은서는 일그러진 곽승재의 표정을 보더니 무언가 생각했다.“다른 남자가 와이프를 훔쳐봐서 기분이 나빴어?”‘글쎄 왜 부부행세를 하자고 하는 줄 알았더니. 역시 남자는 소유욕이 강한 동물이야!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귀찮아하더니,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까 봐 불안한 거야. 참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야.’곽승재는 가소롭게 쳐다보는 고은서의 눈빛을 확인하고 냉랭하게 말했다.“난 그저 네가 자꾸만 난리를 피우는 것이 싫어 서로에게 조용할 기회를 줬을 뿐이야.”‘핑계도 대단해.’“그래. 서로 조용한 시간을 갖자고. 이제부터 나랑 말하지 마.”고은서는 곽승재를 등지고 소파에 누웠다.곽승재는 화를 억누르고 고은서의 뒷모습을 쳐다보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불 꺼! 너무 밝아서 잠이 안 오잖아!”이제 두 페이지밖에 읽지 않았는데 고은서의 짜증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곽승재는 결국 이를 꽉 깨문 채 책을 내려놓고 소등하고 작은 스탠드 등만 켜놨다.어두운 불빛 아래, 분위기가 차분해졌다.아직 시간이 이른지라 곽승재는 잠이 오지 않았다.고은서가 움직이지도 않길래 잠든 줄 알고 침대에서 내려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움츠린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안정적으로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잠든 것 같았다.잠든 그녀는 시끄러운 평소와는 달랐다.곽승재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책과 핸드폰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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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민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까.”송민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혹시나 또 고집부리면서 기분 나쁘게 할까 봐 오늘 너희랑 만난다는고 얘기하지 않았어.”민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제발 좀 북제로 데려가. 해성에 계속 있게 하지 말고.”송민준은 나긋한 미소를 보이면서 답했다.“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미 ZY 그룹으로 출근하기로 했다던데.”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눈살을 더 세게 찌푸렸다.“우리 아버지가 송민아를 강제로 ZY 그룹에 밀어 넣은 건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나중에 또 고은서를 해치려 하거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또다시 너랑 우리 아버지 때문에 봐주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고은서는 민시후를 쏘아보았다.‘나랑 송민준을 원수 사이로 만들 생각인 거야?’“뭘 쏘아봐?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민시후는 점점 더 흥분해 하며 말했다.“전에도 몇 번이고 널 협박했잖아. 심지어 간호사를 교사하여 우리 아이까지 잃게 한 사람이야. 네가 날 막지만 않았으면 내가 송민아를 가만둘 거 같아?”“...”고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전에 유산한 경과를 민시후에게 간단히 알려주면서 송민아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걸 이렇게 이용할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씩씩거리는 민시후를 보면서 고은서는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은 게 너무 아쉽다고 속으로 감탄했다.송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도 전문가에게 나가보라 하고 직접 민시후에게 차를 따라줬다.“전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해.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그 일 때문이야.”송민준이 말하기를 진희숙은 송민아를 친딸로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돌봐온 사람으로서 그녀가 두 사람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그런 모험을 했다고 한다.그리고 송민아가 간호사랑 만난 모습이 포착된 사진은 진희숙이 그녀를 불러내 우연하게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민아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 어게인, 비긴   제451화

    “형, 형수님이 민시후한테 별다른 마음은 없어 보이는데 걱정하지마.”“내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 그래?”곽승재가 약간 어색해하며 말했다.“이미 이혼한 사이인데 고은서가 누구한테 마음이 가든 누구랑 있든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아까 썩은 표정을 하고 경적을 울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육현석이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그러나 갑자기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면서 변명거리를 찾았다.“맞아, 맞아. 형 말이 맞아. 형수님이 누구랑 있든 형이랑 이젠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 역시 이혼 같은 작은 일 때문에 속상해하는 일은 전혀 없는 우리 형, 상남자답다니까.”곽승재의 얼굴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걸 발견한 육현석은 이내 입을 화제를 돌렸다.“형, 형수님이 형을 보기 싫어하는 것도 화나서 그러는 거잖아. 계속 이렇게 자존심 때문에 고집부려서는 안 된다니까. 형수님한테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내야 할 거 아니야.”그의 말을 들은 곽승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네가 말했다시피 날 싫어하잖아. 그런데 무슨 존재감을 나타내라는 거야?”“지금 상대방을 잊지 못하고 놓아주기 싫은 사람은 형이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형수님이 스스로 돌아올 것 같아? 형, 자존심 따위 버리지 않으면 형수님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육현석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전에 낯선 사람 사이로 지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아주 흔쾌히 된다고 답하던 고은서의 모습이 떠올랐다.어제 점심, 그가 스케줄을 바꾸면서까지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고은서가 이혼해서 무척 기쁘다고 하면서 자신의 뒤담화를 하는 걸 들었다.그러나 방금전 민시후와 다정하게 장난치면서 자신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이건 자존심을 내려놓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고은서가 이젠 진짜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곽승재는 눈살을 질끈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언제 고은서랑 다시 화해하고 싶다고 했어? 인제

  • 어게인, 비긴   제450화

    민시후는 그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는 고은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오글거려 죽겠네.”고은서는 끝내 참지 못하고 방금전 손을 닦던 물티슈를 그를 향해 던졌다.“누가 오글거린다는 거야! 사람 호기심 불러일으켜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짜증 나는 자식아!”“고은서!”물티슈에 얼굴을 맞은 민시후가 물티슈를 다시 주어 그녀를 향해 던지려고 할 때 뒤에서 갑자기 빵빵하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와 민시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고급 SUV 한 대가 뒤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운전석에는 육현석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곽승재였다.육현석은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옆에 있는 곽승재를 힐끔힐끔 보았다. 방금 경적 소리를 낸 게 그가 아니라 곽승재인 것이 분명했다.SUV 차량 높이가 꽤 있었기에 아마 방금전에 그녀와 민시후가 장난치는 걸 본 모양이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빛을 한 채 앉아있는 곽승재를 보며 고은서는 성가시다는 듯 몸을 홱 돌리면서 민시후에게 말했다.“초록불이야. 안 가고 뭐 해?”민시후도 차 안에 앉아있는 육현석과 곽승재를 보았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액셀을 밟기는커녕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백미러를 쳐다보았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여기에서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그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전에 두 사람이 운전하면서 맞부딪친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꼭 쥐고 말했다.“민시후, 우리 약속 있는 거 잊은 거 아니지? 이상한 짓 하지마.”민시후는 불쾌하다는 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전에 내 차를 먼저 박은 사람은 곽승재거든.”‘네가 곽승재 차 앞에 막아서서 시비 걸지 않았으면 곽승재가 널 박을 리도 없었거든.’고은서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민시후가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러면 나 먼저 차에서 내려도 돼?”“너 언제부터

  • 어게인, 비긴   제449화

    민시후는 송민준과 찻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맑은 하늘에 눈 부신 햇살, 날씨가 참 좋았다.민시후는 기사 대신 직접 하늘색 스포츠카를 운전했다.고은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스포츠카를 보며 말했다.“민 도련님, 패션 워크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레스토랑 가는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 눈에 띄는 차를 운전해야 할까요?”“그냥 평범한 스포츠카일 뿐인데 어디가 눈에 띈다는 거야? 잔말 말고 얼른 타. 내가 직접 운전한다는데 영광으로 생각하라고.”민시후가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고은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탔다.스포츠카가 유독 눈에 띄기는 했지만 길에 차들이 적었던 탓에 다행히도 너무 큰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가는 도중에 ZY 그룹 근황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곽승재가 ZY 그룹을 타깃으로 삶고 짓누르려고 할 때 민시후가 제때 빠르게 대응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허 교수님 쪽에 의약 프로젝트가 아주 순리롭게 진행되고 있어. 후기도 꽤 괜찮고. 연구소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민시후는 회사 일을 얘기할 때만은 진지했다.“대리권도 네가 쟁취해 온 거니까 융자에 관한 일도 네가 책임지고 잘 해봐.”고은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그녀는 전에 박지연한테서 곽승재가 융자에 관한 일을 백유미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는지 의문스러웠다.그녀는 궁금증을 덜기 위해 민시후에게 물었다.“곽승재 아버지가 얼마 전에 귀국하셨는데 회사 일에 참여하려 했다가 곽승재한테 거절당했다고 하더라고. 아마 이번 일도 곽승재가 아버지 건의를 거절하고 직접 내린 결정일 거야.”‘그렇구나. 그런데 회장님이신 자기 아버지랑 맞붙는 거 보아서는 아마 두 사람도 사이가 별로인가 보네.’고은서는 이내 민시후 아버지가 전에 편찮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아버지는 괜찮으셔?”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민시후는 피곤하다는

  • 어게인, 비긴   제448화

    백유미는 자신이 누군가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사람 시켜 조사중이니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너도 말했다시피 이미 일은 발생했고 손실도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이 말인즉슨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야. 프로젝트가 대박 나면 넌 명예랑 돈을 얻고 망하면 너랑 아무 상관이 없다? 일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백유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프로젝트 서류에 사인한 사람은 너야. 그리고 회사 최고 결책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너고. 어떤 일이 발생하든 네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네 인생은 여기서 끝이야. 너랑 네 엄마 감방으로 보내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만들 거야.”원지훈은 백유미가 화난 김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가 그를 하늘 정상으로 보낼 능력이 있는 만큼 다시 그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요?”원지훈이 물었다.백유미는 독사처럼 살기 가득한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돈은 당연히 감당하지 못할 테고. 그런데 그 대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방금전까지 덤덤하던 원지훈도 점점 섬뜩해졌다.“무슨 일인데요?”“당연히 이 손해를 메꿀만한 일이지.”원지훈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이 일을 별 탈 없이 해주면 이번 손해는 그냥 넘어가 줄게. 혹은 네 엄마랑 함께 죽을 때까지 감방에 들어가 있든가. 한 가지만 선택해. 삼 일 줄게. 사흘 후에 확답을 주지 않으면 너도 어떤 후과가 있을지 알고 있을 거야.”백유미는 말하고 이내 떠났다.그녀가 떠난 후, 범가온이 부랴부랴 룸으로 들어오면서 물었다.“지훈아, 괜찮아? 유미가 또 너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날 나가 있으라고 한 거지?”그러나 원지훈은 대답 대신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지금 음식이 넘어가?”범가온은 호통치고는 슬쩍 문 쪽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네가 계약 체결할 때 따로 돈 받

  • 어게인, 비긴   제447화

    “고은서 눈에 네가 들어오기나 하겠어?”백유미는 곽승재도 사랑하지 않은 고은서가 원지훈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니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곳이 어디가 있다고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왜 저를 위해 음식까지 주문해주면서 저를 먼저 찾아오겠어요?”“그래, 유미야. 지훈이가 옛날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어. 지방에서 살 때도 여러 여자애들이 얘가 좋다고 쫓아다녔는데 창업한 이후로 더 많은 여자들이 지훈이를 가지지 못해 안달이나 한다니까.”범가온은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백유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고 원지훈에게 캐물었다.“고은서가 오늘 널 만나자고 한 이유는 뭔데?”원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별일 아니었어요. 너무 오래 못 봤다고 밥 사준다고 만나자 했는데 시간 없다고 했어요.”백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지금 원지훈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은서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변해버렸다. 전에는 툭 건들기만 하면 펄쩍 뛰면서 화내는 사람이었는데 요즘 따라 곽승재가 무슨 일을 해도 전혀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심지어 민시후와 무척 가까이 지냈는데 아이가 곽승재의 아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호텔로 간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재 원지훈과 연락을 맺고 있다는 게 너무도 수상했다.‘곽승재의 이목을 끌고 그에게 새로운 인상을 남기려는 수단인 건가?’“설마 이미 고은서에게 들킨 건 아니지?”백유미가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원지훈은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티를 내지 않고 성가시다는 듯 답했다.“뭐가 들켰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누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내가 심심해서 고은서 앞에서 누나 얘기를 꺼내겠어요? 게다가 사람 뒷조사하는 거에 능하잖아요. 의심되면 조사해보면 될 거 아니에요.”나중에 조사는 해볼 것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 어게인, 비긴   제446화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비서는 선 자리에 그댈 얼어붙었다.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가 어두운 얼굴빛을 하고 서 있었다.“대... 대표님, 제가 그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곽승재의 목소리에서 한기가 느껴졌다.“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라는 뜻이 아닌가?”‘갑자기 쓰레기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 거지? 내가 하는 얘기랑 완전 다른 얘기잖아.’비서는 말문이 막혔다.“대표님, 인혜 씨는 그 뜻이 아니라...”옆에서 보고 있던 주민기가 마지못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곽승재가 그를 쏘아보았다.“너도 이번 달 보너스 취소야!”‘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 보너스까지 취소하는 거야?’주민기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레스토랑 룸.원지훈이 룸으로 들어갔을 때, 룸 안에는 차가운 표정을 한 백유미와 범가온이 앉아있었다.테이블에는 여러 음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누구도 입을 대지 않은 듯했다.“유미야, 우리 지훈이 화내지 마. 이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 지훈이가 널 배신할 리가 없어.”범가온은 백유미에게 끊임없이 사과했다.반면 백유미는 걸어들어오는 원지훈을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지훈아, 왜 이제야 왔어. 얼른 유미한테 설명해. 요즘 회사 일로 바삐 보낼 뿐, 유미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원지훈은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가 앉으면서 말했다.“누나, 또 왜 그러는 거예요? 밥 먹자고 부른 거 아니었어요?”“밥 같은 소릴 하고 있네. 너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백유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사진 한 뭉치와 여러 서류들을 원지훈을 향해 던지면서 말했다.“너 대체 고은서랑 무슨 사이야? 고은서랑 개인적으로 연락한 이유는 또 뭐고?”원지훈이 서류와 사진을 들고 확인해 보니 그중에는 오늘 그가 고은서 사무실을 찾아간 모습과 전에 고은서와 복싱관에서 만난 모습이 찍혀있었다.이외에도 그가 고은서에게 연락했던 통화기록과 그녀가 그를 위

  • 어게인, 비긴   제445화

    곽승재는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시선을 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어젯밤 곽승재가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고은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곽승재는 계속 백유미에게 여지를 주면서도 나랑 이혼하기 싫다는 모습을 비췄잖아. 그렇게 보면 쓰레기 같은 본성을 지녔다는 건 사실이잖아.’“대표님, 조리실 구경해 보실 건가요?”누군가가 곽승재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이 사라진거로 봐서는 일행이 자리를 떴다고 생각했다.“주인공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험담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박지연이 물었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향해 눈을 흘기며 답했다.“들으면 듣는 거지 뭐. 난 험담한 게 아니라 사실을 얘기한 거야.”“GS 그룹에서 시찰 나오는 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그것도 곽승재가 직접. 은서야, 혹시 네가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온 거 아닐까?”고은서는 바로 부정했다.“아니야.”박지연이 말했다.“그래도 인연인가 보네.”“그런 인연은 필요 없어.”곽승재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깨진 상황에서 고은서는 더 이상 박지연을 설득하지 않았다.박지연은 언제나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다.또한 사람이라는 게, 남을 설득하는 것은 쉬워도 정작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법이었다.마치 전생의 고은서와 곽승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GS 그룹 대표실에서 주민기는 곽승재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감지했다.요즘 곽승재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화를 누르며 가엾은 직원들에게 화풀이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곽승재는 갑자기 병원 실사를 진행하겠다고 일정을 변경했다.실사를 마치고 돌아온 곽승재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대표실 전체에 한파가 닥친 듯했다.비서가 서류를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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