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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작가: 류한나
민시후가 의자에 앉아 빙 돌면서 말했다.

“자기소개해달라고 하든가.”

고은서는 이렇게 어이없는 상황이 처음이었다.

‘유부녀의 신분으로 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를 쫓아내야 한다고?’

고은서는 송민아의 의문이 가득한 눈빛과 마주치더니 말했다.

“민 도련님이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 건가요?”

송민아는 딱 봐도 안 믿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꼈다.

“누구를 속이려고 그러세요! 딱 봐도 시후 오빠한테 찝쩍거리려고 온 것 같은데. 외모가 좀 괜찮다 싶은 여자들은 시후 오빠를 꼬셔보려고 사무실까지 찾아오던데. 약혼녀가 있는 줄도 모르고!”

고은서는 민시후가 쫓아내달라고 한 사람이 약혼녀일 줄은 몰랐다.

“정말 죄송해요. 저...”

해명하려고 할 때, 민시후가 경고의 눈빛으로 쳐다보자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저도 둘 사이에 끼고 싶지 않은데 민 도련님께서 저를 잡고 놔주지 않길래요. 아무리 뿌리쳐 봐도 뿌리칠 수가 없었어요.”

이 말에 민시후는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고은서는 담담하기만 했다.

“저를 내버려 둘 수 있게 설득해 주신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송민아는 무슨 웃음거리를 들은 것처럼 말했다.

“오빠가 당신을 쫓아다닌다고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민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신데 당신과 같은 여자를 좋아할 리가요!”

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를 왜 좋아하는지. 못 믿으시겠으면 제가 증명해 드릴까요?”

고은서가 사무실 입구로 걸어가자 두 보디가드가 절대 가면 안 된다는 눈빛을 하고서 앞을 가로막았다.

“이거 봤죠?”

고은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민 도련님은 제가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잖아요.”

송민아가 민시후를 째려보았다.

“시후 오빠, 왜 안 놔주는데요? 정말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예요?”

민시후는 아무 말도 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은서를 쳐다보았고, 고은서는 모른 척하기만 했다.

하지만 송민아의 눈에는 민시후가 인정한 거로 보였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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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약혼녀가 아니에요!”약혼녀라는 호칭이 싫은 민시후가 냉랭하게 말했다.“은서 씨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염치도 없이 제가 은서 씨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죠?”고은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다 도련님을 위해서 한 말이잖아요. 만약 제가 도련님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런 반응이 아니었을 거예요. 도련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야 마음을 접을 거라고요.”“그러면 제가 고마워해야겠네요?”“그럴 필요까지는 없고요. 약속만 지켜주세요.”민시후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밖에서 보디가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불법감금이 의심된다고 경찰이 찾아왔어요.”민시후는 그제야 반응하고 이상한 눈빛으로 고은서를 쳐다보았다.“겁도 없이 제 앞에서 수작을 부려요?”고은서는 태연하기만 했다.“도련님이 또 저를 납치하면 어떡해요. 저도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약혼녀를 쫓아내 주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민시후가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지문 인식으로 핸드폰을 켜 박지연에게 전화했다.박지연은 눈치껏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고은서와 민시후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했다.민시후는 화를 내는 대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고은서를 쳐다보았다.“재미있네요. 은서 씨, 명운을 융자의 기준으로 만들어 주시면 은서 씨 건의를 다시 생각해 볼게요.”고은서는 시종 미소를 유지했다.“네. 이번에는 민 도련님을 실명시키지 않을게요.”잠시 후, 경찰이 걸어들어왔다.고은서는 친구가 신고했고,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민시후는 사무실 한구석을 가리키더니 말했다.“여기 CCTV 있습니다. 모든 걸 기록했으니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CCTV를 확인한 고은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민시후가 일부러 그런 것이다!고은서가 송민아를 내쫓으려고 여자친구인 척 스킨십할 거라고 생각해 일부러 CCTV로 기록해 곽승재에게 수치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민시후는 고은서의 기발한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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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미숙이 달려왔다.“사모님, 외숙모께서 지금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계셔요. 저까지 내쫓으셨어요.”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왜 갑자기 집에 찾아온 거지?’“은서 왔어?”단은숙이 인기척을 느끼고 주방에서 나왔다.“삼계탕 끓여놨어. 조금만 더 끓이면 돼. 아, 조카사위한테도 전화했어. 돌아오는 길인데 곧 도착할 거라고 했어.”고은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외숙모께서는 뭐 하러 오셨어요?”단은숙이 말했다.“애도, 참. 내가 너 어릴 때부터 친딸처럼 키웠는데 딸 집에 와서 뭐 하겠어. 당연히 딸 보러 왔지! 저번에 조카사위가 집에서 별로 밥을 먹지 않는다며? 직접 밥해주려고 왔어.”친딸은 무슨, 단은숙은 고은서를 구박만 했던 사람이었다.아마도 저번 FY 그룹 일을 포기하지 않았거나 고준석이 M•Q 관리팀을 바꾸겠다고 해서 소식을 엿들으려고 왔을 수 있었다.이때, 곽승재의 차 소리가 들려 이미숙이 문을 열어주었다.검은 정장을 입고 작은 캐리어를 들고있는 그는 훤칠한 키에 심상찮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으며 온 하루 힘들었는지 얼굴이 초췌해 보였다.고은서를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먼저 인사를 건네주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두날 전 불쾌했던 일이 떠올라 못 본 척하고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조카사위, 출장 다녀오느라 힘들었지? 얼른 앉아서 쉬어!”단은숙이 대신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심마니한테 부탁해서 얻어온 산삼으로 삼계탕 끓여놨어. 면역력도 보충한다니까 이따 많이 먹어.”고은서는 뻘쭘하기만 했다.“외숙모, 손님이신데 앉아서 쉬세요. 주방일은 아줌마한테 맡기면 돼요.”“그럴 수 없지. 오랜만에 외숙모가 해주는 요리를 맛보는 건데 내가 직접 해줘야지! 아, 맞다. 은서야, 조카사위 물건은 방에 갖다 뒀어.”단은숙은 가르치는 말투로 말했다.“얘도 참. 외할아버지가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웠더니 성질만 나면 물건을 집어 던져. 다음부터 그러면 안 돼!”고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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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뭐 인맥도 없고, 배경도 없는 작은 회사가 아닌데 왜 돈 벌 기회를 다른 사람한테 떠넘겨 줘야 해!”단은숙은 바로 곽승재에게 요구했다.“조카사위, 사실대로 말할게. 오늘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어. 외삼촌이 FY 그룹이랑 손잡고 싶어 하는데 그쪽에서 싫다고 해서 말이야. 조카사위가 중간에서 이어주면 안 될까?”“승재 오빠 바빠요. 저희 집안일을 신경 쓸 새 없으니까 부담 주지 마세요!”고은서가 냉랭하게 말했다.“은서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승재도 이제는 고씨 가문 사람인데 처가 좀 도와주면 안 돼? 이게 그렇게 부담될 일이야? 조카사위는 어떻게 생각해?”단은숙은 다시 곽승재에게 물었다.곽승재는 표정이 차가운 고은서를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외숙모, 이따 자료 남겨두고 가세요. 확인해 보고 연락드릴게요.”“아이고, 고마워. 난 조카사위가 도와줄 줄 알았어.”단은숙은 기쁜 마음에 또 곽승재에게 삼계탕을 떠주었다.“조카사위, 많이 먹어. 외숙모만큼 삼계탕을 잘 끓이는 사람이 없어.”고은서는 할 말을 잃었다.밥을 다 먹고, 단은숙은 자료를 남겨두고 만족스럽게 이곳을 떠났다.고은서는 불쾌한 표정으로 곽승재를 째려보았다.“외숙모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했잖아.”“고씨 가문 사업이 나랑 엮이는 거 싫어?”곽승재가 되물었다.고은서는 더는 그에게 숨길 수 없어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우리 언젠간 이혼할 거잖아. 이제부터는 오빠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미리 적응해야지.”곽승재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너한테는 내가 그렇게 냉혈 인간으로 보여?”고은서가 피식 웃고 말았다. 지난 생에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로 한 번도 고씨 가문을 보살피지 않았던 그였다.심지어 M•Q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발목을 잡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말이다.띠링띠링.마침 외할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와서 2층으로 올라갔다.외숙모가 집에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하러 전화한 것이다.“너희 삼촌이랑 상의했던 내용을 듣고 찾아간 모양이야.”외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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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가 말했다.“부부 사이에도 냉전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가 지금 냉전 중인 거야. 오빠를 보고 싶지도 않아.”곽승재가 물었다.“우리가 무엇 때문에 냉전 중이지?”“기억을 잃었어? 며칠 전 복싱장 밖에서 누가 무례하게 내 친구를 난처하게 만들었는데?”곽승재가 피식 웃고 말았다.“내 마누라를 훔쳐보고 있는데 내가 왜 예의를 차려야 해?”“미친 거 아니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주인혁을 오해하는 것이 싫었다.“젊은 남자가 나 같은 유부녀를 왜 훔쳐봐!”곽승재가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아직도 그 사람 편을 드는 거야? 너보다 내가 남자를 더 잘 알거든?”고은서는 일그러진 곽승재의 표정을 보더니 무언가 생각했다.“다른 남자가 와이프를 훔쳐봐서 기분이 나빴어?”‘글쎄 왜 부부행세를 하자고 하는 줄 알았더니. 역시 남자는 소유욕이 강한 동물이야!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귀찮아하더니,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까 봐 불안한 거야. 참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야.’곽승재는 가소롭게 쳐다보는 고은서의 눈빛을 확인하고 냉랭하게 말했다.“난 그저 네가 자꾸만 난리를 피우는 것이 싫어 서로에게 조용할 기회를 줬을 뿐이야.”‘핑계도 대단해.’“그래. 서로 조용한 시간을 갖자고. 이제부터 나랑 말하지 마.”고은서는 곽승재를 등지고 소파에 누웠다.곽승재는 화를 억누르고 고은서의 뒷모습을 쳐다보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불 꺼! 너무 밝아서 잠이 안 오잖아!”이제 두 페이지밖에 읽지 않았는데 고은서의 짜증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곽승재는 결국 이를 꽉 깨문 채 책을 내려놓고 소등하고 작은 스탠드 등만 켜놨다.어두운 불빛 아래, 분위기가 차분해졌다.아직 시간이 이른지라 곽승재는 잠이 오지 않았다.고은서가 움직이지도 않길래 잠든 줄 알고 침대에서 내려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움츠린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안정적으로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잠든 것 같았다.잠든 그녀는 시끄러운 평소와는 달랐다.곽승재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책과 핸드폰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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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919화

    육현석의 관심사는 정말 유별나게 독특했다.고은서가 걱정하는 것이 육현석이 생각하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녀는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갈 생각이었다.‘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곽승재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게 뻔해.’“삼촌 일 때문에 영향 받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예요. 곽 회장님께서 곽승재의 꼬투리를 잡을 만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으니까요.”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육현석도 고국성의 일에 관해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곽현수 성격에 확실히 그럴만 하지.’“그날 삼촌 일이 승재 형 아버님이랑 연관 있다고 했잖아. 나중에 확인해 봤어?”육현석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곽현수는 애초부터 숨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그러나 이걸 그대로 육현석에게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은서는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며 부인했다.“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어요.”“그럼 오늘 나랑 승재 형 찾으러 온 것도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야?”육현석이 무언 갈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그렇죠.”어이가 없었지만 고은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그후로 한참 동안 사무실에서 기다려 보았지만 곽승재는 나타나지 않았다.고은서는 육현석의 말을 듣고 곽승재한테 연락해 보았으나 여전히 그녀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은서는 이내 주민기한테 연락했다.얼마 후, 주민기가 전화를 받았다.“고 대표님, 무슨 일이시죠?”고은서는 주민기의 아주 공식적인 말투를 들으면서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주민시 씨, 곽승재 혹시 다쳐서 병원에 있는 건 아니죠?”주민기는 멈칫하다가 이내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등을 다치긴 했으나 지금은 별다른 문제 없습니다.”‘그날 정말 다친 거였어? 그런데 왜 병원도 가지 않고 나한테 거짓말이라고 한 거지?’고은서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났다.“곽승재 지금 어디 있죠?”주민기는 그녀의 물음을 예상했다는 듯이 덤덤하게 답했다.“지금 GS그룹의 주주분을 만나러 와서

  • 어게인, 비긴   제918화

    고은서는 육현석을 막았다.“그래도 곽승재 사무실인데 그냥 들어온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물건은 함부로 다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러나 육현석은 괜찮다면서 손짓했다.“괜찮아. 우리가 낯선 사람도 아니고 설마 내가 승재 형 물건을 훔치겠어? 게다가 네 물건을 가지는 건데 뭐가 어때.”“...”고은서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육현석은 이미 사무실 책상 옆으로 걸어가더니 그곳에 있는 캐비닛을 열고 가지런히 접혀있는 회색 담요 하나를 꺼냈다.“계속 여기 있을 줄 알았다니까.”육현석은 이내 담요를 고은서한테 건네주었다.“은서야, 봐봐. 익숙하지 않아?”익숙하다고 느낀 고은서는 문뜩 자신이 예원 별장에 있을 때 귀비 의자에 깔고 발을 덮는데 썼던 담요라는 걸 발견했다.“이 담요가 왜 여기 있는 거죠?”고은서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승재 형이 넣어둔 거겠지.”그러나 육현석은 이내 놀라 하며 물었다.“설마 네가 승재 형한테 준 건 아니지?”‘승재 형이 고은서가 준 담요까지 소장할 정도로 변태적인 사람이었어?’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부인하려고 할 때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예원 별장에 있을 때 이미숙이 한 번 소파에 있는 곽승재한테 관심을 표해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마침 곽승재의 도움을 받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담요 하나를 이미숙한테 건네주면서 그에게 덮어주라고 했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발을 놓는데 쓰던 낡은 담요를 아줌마가 이미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곽승재 사무실에 있는 거야?’“진짜 형이 훔친 거야?”육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은서를 보면서 깜짝 놀라 하며 물었다.고은서는 어색해하며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부인했다.“그럼 네가 준 거네.”육현석이 이내 흥분해 하며 말했다.“은서야, 형이 이 담요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내가 한 번 우연하게 덮고 있었는데 형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날 꾸짖기까지 했다니까.

  • 어게인, 비긴   제917화

    육현석은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고은서가 회사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멀리서 그의 차가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고은서가 차에 오르자마자 육현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은서야, 무슨 일 있었어? 승재 형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야?”그의 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던 고은서는 방금전에 경찰과 했던 통화내용을 육현석한테 다 알려주었다.그도 듣자마자 약간 의아해했다.“갑자기 진짜 정신병 환자가 되었다고? 전에 갔을 땐 다 연기였잖아.”“전에는 연기지만 그사이에 정신병 환자가 될만한 일을 겪었을 수도 있잖아요.”고은서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신병원에 갇혀서 자유의 몸도 아닌 사람이 무슨 일을 겪겠어?”육현석이 어리둥절해 하며 묻자 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그래서 정신병원에 가서 백유미를 만나보려고 했는데 경찰 측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걸 피면하기 위해 특별 병실에 안배해 놓았다고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그 말을 들은 육현석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헛된 생각은 그만하고 승재 형 찾으러 가자. 승재 형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백유미가 정말 전문가까지 속일 정도의 정신병을 앓고 있거든 곽승재도 그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곽승재의 생각을 한번 들어봐야겠어.’고은서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육현석과 함께 GS그룹으로 향했다.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고은서를 알아보고 공손하게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다가왔다.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약간 불편했던 고은서는 호칭을 바꿔 달라고 당부했다.“죄송하지만 현재 저랑 곽승재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러니 그냥 은서 씨라고 불러주세요.”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뜻대로 고은서 씨라고 불렀다.그리고 이내 공손하게 물었다.“곽 대표님 찾으러 오신 거죠?”“네. 승재 형 찾으러 왔어요. 위에 있죠?”“요즘 바쁘셔서 지금 회사에 안 계세요. 찾으시려거든 직접 전화하시는 게 더 나을 것

  • 어게인, 비긴   제916화

    유일 투자 은행에 도착한 후, 고은서는 먼저 직원들과 함께 간단한 업무 회의를 열고 곽승재의 스케줄을 알아보기 위해 육현석한테 연락했다.“은서야,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육현석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요즘 승재 형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연락이 안 되어서 그러는데 혹시 승재 형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게 있어?”정보를 캐내려고 전화했는데 도리어 정보를 알려주는 입장이 될 줄은 미처 생각 못 했다.“저도 잘 몰라요. 연락이 안 되나요?”고은서가 물었다.육현석은 곽승재가 연락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주민기도 연락이 안 되어서 비서실에 전화 해보았는데 비서는 그저 곽승재가 바쁘다고만 했다고 말했다.“은서야, 혹시 승재 형이랑 싸웠어?”고은서는 곽승재가 그녀 대신 스테인리스 철봉 공격을 막아준 그 날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뱉은 탓에 그가 약간 기분 나빠했던 일이 떠올랐다.‘내가 한 말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건가? 아니면 그날 진짜 다치기라도 한 거야?’고은서는 또 그날 육현석이 곽승재한테 전화했을 때 전화 너머로부터 여자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온 게 떠올랐다.‘그럼 그 여자는 곽승재가 다쳐서 마음 아파서 운 거야?’“은서야, 우리 승재 형 찾으러 같이 GS그룹으로 가보지 않으래?”평소 같으면 단호하게 거절했을 텐데 지금은 곽현수가 준 임무를 완수해야 했기에 곽승재를 어떻게서든 만나야 했다.그러나 육현석의 의심을 받는 걸 피면하기 위해 그녀는 한참 동안 망설이는 척하다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나 마침 볼 일이 있어서 유일 투자 은행 근처에 있는데 내가 데리러 갈게.”그 말을 들은 고은서가 가방을 들고 내려가려고 할 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육현석이 까먹은 일이라도 있는가 해서 폰을 들고 확인해 보았는데 낯선 유선전화 번호였다.받아보니 다름 아닌 해성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상대방은 아주 예의 바르게 백유미가 거의 완치 되어서 전에 얘기했던 정신병 위장 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끔

  • 어게인, 비긴   제915화

    고은서는 고씨 집안 본가에 들렀다.비록 며칠 전에 고준석을 만났지만 지금도 너무 보고 싶었는지라 가서 함께 앉아 소소한 대화라도 나눌 생각이었다.그날 고은서가 고국성 집에서 나오면서 고준석한테 고국성 일에 관해 다 알린 탓에 그는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화를 내긴 했으나 그녀가 유성준과 함께 고국성을 도와 일을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잘 달랜 덕분인지 아니면 나이도 있고 유성준을 굳게 믿어서인지 직접 나서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았다.고국성도 이미 마흔이 넘어갔고 MQ의 현 관리자로서 회사 일에 이미 손을 뗀 고준석이 계속 모든 일을 일일이 신경 써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은서가 본가에 도착했을 때 고준석은 오춘식과 함께 정자에서 바둑을 하고 있었다.그녀가 고준석을 향해 할아버지라고 부르자 오춘식은 눈치 있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준석은 다가와 다정하게 자신의 어깨에 기대는 고은서를 보면서 웃으며 물었다.“아이고, 우리 은서 얼마 만에 애교를 부리는 거야? 할아버지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고준석은 고은서를 매우 아꼈는데 그녀가 애교만 부리면 아무리 무리한 요구라도 다 응해 줬었다.그 때문에 고은서는 자신이 모든 걸 쉽사리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차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전생에 자신이 곽승재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고은서는 자신만만하게 전미자한테 곽씨 가문 며느리 직책을 잘 이행하고 꼭 곽승재가 자신을 사랑하게끔 만들겠다고 약속했었다.그러나 고은서는 정신병원에서 자살하고서야 이 세상엔 원하는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이 쉽다고 느낀 건 누군가가 대신 그 대가를 치러줬기 때문이라는 것도 깊게 깨달았다.이번 생만큼은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에 항상 조심스럽게 살아왔다.그녀는 곽승재랑 이혼만 하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현실은 그보다 더 잔인했다.“은서야,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 누가 널 괴롭혔어?”

  • 어게인, 비긴   제914화

    고은서는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면 삼촌 일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승재가 도와준다고 한 번 더 넘어갈 생각이야?”곽현수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고은서는 곽현수가 직접 나선 이상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어제 오미나의 반응을 보아서는 그녀의 배 속의 아이가 십중팔구 고국성의 아이가 맞을 것이다.아이를 지우지 않는다면 시한폭탄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과 다름없었다.그리고 곽현수가 마음만 먹는다면 경찰에 잡힌 강현철을 데리고 나오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어느 날엔가 갑자기 고준석 앞에 나타나거나 또는 고국성을 대하듯이 똑같은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고은서는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곽승재는 현재 회사 일을 처리하기도 바쁠 텐데 더는 민폐를 끼쳐서는 안 돼.’시가 가게의 부드러운 불빛이 유독 눈부시게 느껴지는 때이다.사실 곽현수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곽승재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자신을 좋아하든 원망하든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었다.생각을 마친 고은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곽현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고은서가 떠난 후 곽현수는 VIP룸 뒤에 있는 실내 정원으로 갔다.그곳에는 트위드 자켓을 입은 여시은이 고양이를 그네 위에 앉아 함께 놀고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저도 모르게 미소가 나오는 장면이었다.곽현수를 발견한 여시은은 이내 그네에서 내려오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버님이라고 불렀다.“시은아, 많이 기다렸지?”곽현수가 웃으면서 물었다.“아니에요. 여기 풍경도 좋고 캣닢도 있어서 쿠아랑 엄청 재밌게 놀고 있었어요.”여시은이 달달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저기 가서 앉자.”곽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손짓했다.“좋아요!”여시은은 쿠아를 캣닢 옆에 내려놓고 곽현수와 함께 파라솔 아래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직원은 두 사람을 위해 차와 주스를 가져다주었다.여시은은 한 입 맛보고는 이내 똘망똘망한 눈

  • 어게인, 비긴   제913화

    고은서는 순간 죄책감에 휩싸였다.육현석도 전에 곽승재가 회사 내부에서 곽현수와 기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고 했는데 또 고국성 일로 꼬투리까지 잡힌 이상 많이 힘들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제인 제약 사건은 판주 투자 은행과도 연관된 일이었기에 곽현수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고국성 일은 확실히 공사가 선명하지 못하다고 꼬투리가 잡힐 만 했다.방금전 곽현수가 한 말도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가 곽승재를 쫓아내려거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승재가 너 때문에 이성을 잃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난 그게 무지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곽현수가 말을 이어갔다.“입으로는 승재랑 더는 같이 있을 리가 절대 없다고 하지만 한두 번은 그렇다 쳐도 승재가 열 번 심지어 스무 번이 되도록 너를 향해 구애한다고 해도 네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 시간만 나면 네 할아버지랑 바둑하고 얘기 나누러 고씨 가문 본가로 찾아가는데 아버지인 나도 그런 혜택을 누린 적이 없어. 게다가 네 가족들도 두 사람이 이혼하지 않은 것처럼 승재를 계속 사위로 대하면서 걔한테서 얻을 만큼 얻어 가졌잖아.”곽현수가 하찮다는 듯 비아냥거렸다.“네가 말로만 하는 보장은 단지 너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하는 거겠지.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이거야. 그런데 내가 그걸 믿을 것 같아?”고은서는 순간 난감해졌다.‘할아버지한테는 곽승재가 스스로 찾아간 게 맞겠지만 삼촌이랑 숙모 쪽은 분명히 아닐 거야. 곽승재가 나랑 재혼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일부러 나를 속이고 MQ 일로 여러 번 찾아간 게 분명해.’고은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보장이 없는 거짓말로 들릴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확실히 곽승재의 도움으로 혜택을 누릴 만큼 누린 이상 곽현수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곽현수가 삼촌 일로 나를 만나자 한 것도 또 이런 말을 한 것도 아마 다 원하는 바가 있어서겠지.’고은서는 더는 변명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

  • 어게인, 비긴   제912화

    전미자 생일 연회 때마침 성씨 집안 소개로 새로운 사업 계약서를 체결한 고국성은 눈에 띄게 우쭐대며 다녔는데 곽씨 집안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의 업적을 적지 않게 으리으리하게 포장해서 떠벌리고 다녔었다.그래서 곽현수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저도 모르게 어색해 났다.그녀는 그가 자신은 고국성처럼 천한 사람을 직접 처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고은서는 화내는 대신 아주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우리 삼촌이 약간 잘난 체하면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과 친해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긴 해요. 하지만 이건 삼촌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 이 이유로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죠. 회장님께서 우리 삼촌이 면한 일에 관해 잘 모르신다면 제가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그녀는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는지라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면 어제 오미나 씨랑 대화한 내용을 녹음해 두었는데 직접 들어보실래요?”곽현수는 당연하게도 고은서의 설명과 녹음파일 같은 걸 계속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그는 오미나에 관해서도 더는 묻지 않고 찻잔을 들고 아주 거만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앉으면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오늘 찾아온 이유가 대체 오미나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야 아니면 네 삼촌 일을 해결하고 싶어서야?”“삼촌 일을 해결할 겸 오미나가 누구인지도 알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사실 그보다 우리 삼촌이 어느 면에서 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더 알고 싶네요. 이유를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은데 회장님께서 알려줬으면 좋겠네요.”고은서도 꿀리지 않고 곽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생각보다 더 총명하네.”곽현수는 여전히 거만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총명해 보았자 당신 같은 사람 눈에는 들지 않겠지.’고은서는 티 내지 않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곽현수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잠시 후, 곽현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승재가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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