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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작가: 류한나
고은서가 말했다.

“부부 사이에도 냉전이라는 것이 있어. 우리가 지금 냉전 중인 거야. 오빠를 보고 싶지도 않아.”

곽승재가 물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냉전 중이지?”

“기억을 잃었어? 며칠 전 복싱장 밖에서 누가 무례하게 내 친구를 난처하게 만들었는데?”

곽승재가 피식 웃고 말았다.

“내 마누라를 훔쳐보고 있는데 내가 왜 예의를 차려야 해?”

“미친 거 아니야?”

고은서는 곽승재가 주인혁을 오해하는 것이 싫었다.

“젊은 남자가 나 같은 유부녀를 왜 훔쳐봐!”

곽승재가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직도 그 사람 편을 드는 거야? 너보다 내가 남자를 더 잘 알거든?”

고은서는 일그러진 곽승재의 표정을 보더니 무언가 생각했다.

“다른 남자가 와이프를 훔쳐봐서 기분이 나빴어?”

‘글쎄 왜 부부행세를 하자고 하는 줄 알았더니. 역시 남자는 소유욕이 강한 동물이야!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귀찮아하더니,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까 봐 불안한 거야. 참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야.’

곽승재는 가소롭게 쳐다보는 고은서의 눈빛을 확인하고 냉랭하게 말했다.

“난 그저 네가 자꾸만 난리를 피우는 것이 싫어 서로에게 조용할 기회를 줬을 뿐이야.”

‘핑계도 대단해.’

“그래. 서로 조용한 시간을 갖자고. 이제부터 나랑 말하지 마.”

고은서는 곽승재를 등지고 소파에 누웠다.

곽승재는 화를 억누르고 고은서의 뒷모습을 쳐다보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불 꺼! 너무 밝아서 잠이 안 오잖아!”

이제 두 페이지밖에 읽지 않았는데 고은서의 짜증 가득한 말투가 들려왔다.

곽승재는 결국 이를 꽉 깨문 채 책을 내려놓고 소등하고 작은 스탠드 등만 켜놨다.

어두운 불빛 아래,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라 곽승재는 잠이 오지 않았다.

고은서가 움직이지도 않길래 잠든 줄 알고 침대에서 내려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움츠린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안정적으로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잠든 것 같았다.

잠든 그녀는 시끄러운 평소와는 달랐다.

곽승재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책과 핸드폰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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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스토랑을 예약한 후 고은서는 고국성 집에 들렀다.고국성은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고은혜는 상을 찌푸리고 폰을 놀고 있었다.집안 분위기는 여전히 싸했다.고은혜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그녀 옆으로 다급히 걸어오며 말했다.“언니, 엄마가 방문을 잠그고 계속 나오지 않으면서 아빠랑 이혼한다고 변호사까지 찾았어.”기자 회견 일로 많은 사람들이 고국성이 오미나와 부정당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동시에 단은숙은 오미나 배 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아이가 생겼다는 건 두 사람이 정말 관계를 맺었다는 걸 의미했고 이런 일은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고은서는 고은혜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고국성 앞으로 다가가 일은 자신이 해결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오미나가 아이를 없애겠대?”고국성이 고개를 번쩍 쳐들며 물었다.“동의할 거예요.”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정말이야? 엄마한테 이 소식을 알려줘야지.”그녀의 말을 들은 고은혜는 펄쩍 뛰면서 좋아했다.그러나 고국성은 낙관적인 고은혜와 달리 고은서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아직 동의하지 않았단 얘기야?”고은서는 고국성 옆에 앉으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삼촌, MQ를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MQ를 더 크게 이끌고 나가려거든 다른 사람한테 너무 의지해서도 안 좋아요. 그러니까 이후부터 곽승재한테 민폐 끼치는 일은 그만 하세요. 이 또한 제가 이번 일을 처리해주는 대신 삼촌이 들어줘야 할 조건이기도 해요.”고은서가 엄숙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고국성은 약간 어리둥절했다.‘내가 곽승재를 찾아간 건 어떻게 안 거지? 분명히 유승준도 모르게 몰래 찾아갔는데.’그는 결연한 태도의 고은서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사업계에서 곽승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를 도와주는 게 도리어 좋은 일이 아니

  • 어게인, 비긴   제923화

    발신자가 곽승재라는 걸 확인한 고은서는 받을지 말지 약간 망설여졌다.‘전에 다툰데다가 삼촌 일 때문에 연루까지 받았고 심지어 그날 날 구하다가 다치기까지 했는데 하필 난 또 곽현수가 요구한 일을 완성해야 하고. 대체 이후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지?’“은서야, 누구 전화야? 왜 안 받는 거야?”옆에 있던 육현석이 말했다.고은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잠시 나가 전화 받고 올게요.”그녀는 조용한 곳에 가서야 곽승재의 전화를 받았다.“곽승재.”“무슨 일이야?”곽승재의 목소리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육현석이 며칠 동안 당신한테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던데 무슨 일 있어?”“지금 내가 걱정되어서 날 찾은 거야?”곽승재가 덤덤하게 되물었다.고은서는 멈칫하다가 화제를 바꾸었다.“민기 씨한테 당신이 등을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어?”“낫든 안 낫든 넌 아무런 관심이 없잖아.”“...”고은서는 서로 동문서답하는 대화 모드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날 은혜가 당신한테 연락해 도움을 청한 걸 모르고 있었어. 오해하고 듣기 싫은 소리 해서 미안해. 이후로 당신한테 민페를 끼치는 일은 삼가라고 가족들한테 말해 둘게.”전화너머에서 곽승재가 콧방귀를 끼는 소리가 들려왔다.“할 말 다했어?”고은서는 곽승재가 아직도 그날 일로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평소 같으면 화를 내건 말건 전화를 뚝 끊어버렸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은혜가 그날 일로 자책하면서 삼촌이랑 얘기 해봤는데 당신한테 사과할 겸 같이 밥 한 끼 먹자고 하는데 언제 시간 돼?”고은서가 고민끝에 말했다.“또 누가 있는데?”‘누가 더 있겠어. 알면서 묻기는.’“나랑 삼촌 가족만 있어.”곽승재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덤덤하게 답했다.“주민기랑 스케줄 확인해. 시간나는 대로 갈 테니까.”‘이 남자가 정말. 어디서 꼰대 짓이야.’“조금이따 민기 씨한테 얘기해볼게.”고은서가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곽승재가 갑자기 입을

  • 어게인, 비긴   제922화

    한 비서는 그제서야 승진하게 된 이유가 자신 능력 덕분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안배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그러나 계약까지 체결한 탓에 거액의 보상금을 내지 않고는 사직을 할 수가 없었다.위약금보다 더 중요한 건 이렇게 GS그룹을 떠나게 되면 외부 사람들이 그녀가 곽승재를 건드렸다고 오해하면서 해성에서 일자리 하나도 못 찾게 된다는 것이었다.“육 도련님, 고은서 씨, 백유미가 현재 매우 폭력적이고 불안정하다고 하는데 저 그곳에 갔다가 죽을지도 몰라요. 다가가는 것조차 두렵다고요.”한 비서가 울부짖었다.육현석은 곽승재 T국에서 있었던 일로 백유미를 샅샅이 조사해보았다는 걸 깨달았다.‘아마 백유미랑 한 비서 사이가 범상치 않다는 걸 발견하고 이런 방식으로 벌을 주려는 거겠지.’“사직하려거든 GS그룹 내부 문제야. 내가 함부로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야.”육현석이 단호하게 거절했다.한 비서는 이내 고은서의 다리를 잡고 빌었다.“고은서 씨,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는 그저 정보를 몇 번 전달했을 뿐이에요.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요. 전에 백유미를 돌보던 사람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저는 죽기 싫어요...”고은서는 덜덜 떨고 한 비서를 보면서 그제야 그녀가 겁에 질려하는 이유를 깨달았다.그러나 그녀는 GS그룹의 일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마침 백유미가 진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 비서를 보내면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이익을 위해 우리를 해치려는 사람을 돕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 코스플레이를 하면서 도와달라고 비는게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저를 해치려한 사람을 쉽게 용서해줄 만큼 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에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저에게 더 절실하게 와닿거든요. 그러니 제 도움을 받으려거든 제 요구부터 들어줘야 해요.”고은서는 희망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 비서에게 자신의 부탁을 말했다.육현석도 현장에 있었지만 그녀는 그를 피

  • 어게인, 비긴   제921화

    육현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도 어리둥절해졌다.만약 간단한 스케줄만 알려줬다면 이정도로 겁에 질려 있을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더 큰 일과 엮여 있는 건가?’아니나 다를까 육현석의 엄숙한 모습을 본 한 비서는 얼굴이 방금전보다 더 창백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한 번 커피 가져다 드릴 때 곽 대표님한테 고은서 씨 친구분과 백유미 사이의 조사해보겠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 그걸 백유미한테 알렸어요...”육현석은 그제야 곽승재가 자신더러 성아연과 백유미 사이에 관해 조사해보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그러나 당시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두 사람은 몇 번 만나고 연락한 것 외에는 경제적 래왕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그 일로 백유미가 산장에서 곽승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약을 잘못 복용한 거라고 의심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곽승재로부터 백유미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고은서의 혐의를 씻어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육현석은 백유미가 고은서를 해치려거든 왜 고은서를 대신해 진상을 밝힌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그러니까 백유미가 한 비서를 통해 내가 자신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미리 알고 그런 대책을 세웠다는 거야?’고은서도 문뜩 곽승재가 육현석한테 백유미와 성아연 두 사람 사이에 관해 조사하라고 시켰다면서 자신도 백유미를 찾아가 따졌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그런데 그녀는 당시 곽승재가 이 일을 얼버무리고 넘어가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오해하면서 그를 향해 비아냥거렸었다.‘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나랑 곽승재 사이의 모순이 거의 다 백유미 때문에 생긴 거네.’백유미가 현재 정신병원에 갇혀있다고 한들 고은서는 아직도 생각하면 할 수록 공포감이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정말 악독한 여자야.’한 비서는 계속 자신이 했던 행위를 후회한다면서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육현석은 이마가 빨개진 한 비서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이익을 탐내는 동시에 그 대가도 따르는 법이야. 백유미한테 몰래 소식을 전달한 건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죽

  • 어게인, 비긴   제920화

    육현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여자가 털썩하고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육 도련님, 저예요. 제발 경호우너을 부르지 말아 주세요.”“한 비서?”고은서가 아직도 겁에 질려 있을 때 육현석은 그 여자를 알아 보았다.삼십 대 좌우로 보였는데 GS그룹의 검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비서들처럼 자랑스럽고 우월한 면을 뽐내는 대신 공포에 질린 듯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대체 무슨 일인데 주차장에 숨어 있는 거야?”육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그의 말을 들은 한 비서는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치면서 갑자기 그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육 도련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죄를 지었는데 용서를 빌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주차한 곳 뒤에는 나무들이 주지어 있었고 차들이 빼곡히 들어선 탓에 사람이 숨어있는 걸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한 비서는 무릎을 꿇은 채 끊임없이 육현석을 향해 사과했다.그녀는 육현석의 차를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이곳으로 오는 걸 알고 일부러 차 뒤에 숨어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이러지 말고 일어나서 말해.”“아니요. 그냥 꿇고 말하겠습니다.”한 비서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말했다.그녀는 방금전에 머리를 땅에 박으며 절을 한 탓에 이마가 빨갛게 부어올랐고 공포 질린 듯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사람들이 오가는 곳인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니면 일부러 보여주기 식으로 연기하려는 거야?”육현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니요. 저는 그저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한 비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사과하려거든 조용한 곳에 가서 무슨 일인지 똑바로 말해.”육현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한 비서는 더는 거절하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를 본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현석 씨, 일 봐요. 저는 혼자 차 불러서 가면 돼요.”“안 돼요. 고은서 씨 용서도 받아야 하니까 같이 가요.”육현석이 말을 꺼내기도

  • 어게인, 비긴   제919화

    육현석의 관심사는 정말 유별나게 독특했다.고은서가 걱정하는 것이 육현석이 생각하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녀는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갈 생각이었다.‘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곽승재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게 뻔해.’“삼촌 일 때문에 영향 받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예요. 곽 회장님께서 곽승재의 꼬투리를 잡을 만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으니까요.”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육현석도 고국성의 일에 관해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곽현수 성격에 확실히 그럴만 하지.’“그날 삼촌 일이 승재 형 아버님이랑 연관 있다고 했잖아. 나중에 확인해 봤어?”육현석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사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곽현수는 애초부터 숨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그러나 이걸 그대로 육현석에게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은서는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며 부인했다.“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어요.”“그럼 오늘 나랑 승재 형 찾으러 온 것도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야?”육현석이 무언 갈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그렇죠.”어이가 없었지만 고은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그후로 한참 동안 사무실에서 기다려 보았지만 곽승재는 나타나지 않았다.고은서는 육현석의 말을 듣고 곽승재한테 연락해 보았으나 여전히 그녀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은서는 이내 주민기한테 연락했다.얼마 후, 주민기가 전화를 받았다.“고 대표님, 무슨 일이시죠?”고은서는 주민기의 아주 공식적인 말투를 들으면서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주민시 씨, 곽승재 혹시 다쳐서 병원에 있는 건 아니죠?”주민기는 멈칫하다가 이내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등을 다치긴 했으나 지금은 별다른 문제 없습니다.”‘그날 정말 다친 거였어? 그런데 왜 병원도 가지 않고 나한테 거짓말이라고 한 거지?’고은서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났다.“곽승재 지금 어디 있죠?”주민기는 그녀의 물음을 예상했다는 듯이 덤덤하게 답했다.“지금 GS그룹의 주주분을 만나러 와서

  • 어게인, 비긴   제918화

    고은서는 육현석을 막았다.“그래도 곽승재 사무실인데 그냥 들어온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물건은 함부로 다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그러나 육현석은 괜찮다면서 손짓했다.“괜찮아. 우리가 낯선 사람도 아니고 설마 내가 승재 형 물건을 훔치겠어? 게다가 네 물건을 가지는 건데 뭐가 어때.”“...”고은서는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육현석은 이미 사무실 책상 옆으로 걸어가더니 그곳에 있는 캐비닛을 열고 가지런히 접혀있는 회색 담요 하나를 꺼냈다.“계속 여기 있을 줄 알았다니까.”육현석은 이내 담요를 고은서한테 건네주었다.“은서야, 봐봐. 익숙하지 않아?”익숙하다고 느낀 고은서는 문뜩 자신이 예원 별장에 있을 때 귀비 의자에 깔고 발을 덮는데 썼던 담요라는 걸 발견했다.“이 담요가 왜 여기 있는 거죠?”고은서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승재 형이 넣어둔 거겠지.”그러나 육현석은 이내 놀라 하며 물었다.“설마 네가 승재 형한테 준 건 아니지?”‘승재 형이 고은서가 준 담요까지 소장할 정도로 변태적인 사람이었어?’고은서가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부인하려고 할 때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예원 별장에 있을 때 이미숙이 한 번 소파에 있는 곽승재한테 관심을 표해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마침 곽승재의 도움을 받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담요 하나를 이미숙한테 건네주면서 그에게 덮어주라고 했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발을 놓는데 쓰던 낡은 담요를 아줌마가 이미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곽승재 사무실에 있는 거야?’“진짜 형이 훔친 거야?”육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은서를 보면서 깜짝 놀라 하며 물었다.고은서는 어색해하며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부인했다.“그럼 네가 준 거네.”육현석이 이내 흥분해 하며 말했다.“은서야, 형이 이 담요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내가 한 번 우연하게 덮고 있었는데 형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날 꾸짖기까지 했다니까.

  • 어게인, 비긴   제917화

    육현석은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고은서가 회사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멀리서 그의 차가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고은서가 차에 오르자마자 육현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은서야, 무슨 일 있었어? 승재 형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야?”그의 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던 고은서는 방금전에 경찰과 했던 통화내용을 육현석한테 다 알려주었다.그도 듣자마자 약간 의아해했다.“갑자기 진짜 정신병 환자가 되었다고? 전에 갔을 땐 다 연기였잖아.”“전에는 연기지만 그사이에 정신병 환자가 될만한 일을 겪었을 수도 있잖아요.”고은서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신병원에 갇혀서 자유의 몸도 아닌 사람이 무슨 일을 겪겠어?”육현석이 어리둥절해 하며 묻자 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그래서 정신병원에 가서 백유미를 만나보려고 했는데 경찰 측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걸 피면하기 위해 특별 병실에 안배해 놓았다고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그 말을 들은 육현석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헛된 생각은 그만하고 승재 형 찾으러 가자. 승재 형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백유미가 정말 전문가까지 속일 정도의 정신병을 앓고 있거든 곽승재도 그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곽승재의 생각을 한번 들어봐야겠어.’고은서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육현석과 함께 GS그룹으로 향했다.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고은서를 알아보고 공손하게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다가왔다.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약간 불편했던 고은서는 호칭을 바꿔 달라고 당부했다.“죄송하지만 현재 저랑 곽승재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러니 그냥 은서 씨라고 불러주세요.”프론트 데스크 직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뜻대로 고은서 씨라고 불렀다.그리고 이내 공손하게 물었다.“곽 대표님 찾으러 오신 거죠?”“네. 승재 형 찾으러 왔어요. 위에 있죠?”“요즘 바쁘셔서 지금 회사에 안 계세요. 찾으시려거든 직접 전화하시는 게 더 나을 것

  • 어게인, 비긴   제916화

    유일 투자 은행에 도착한 후, 고은서는 먼저 직원들과 함께 간단한 업무 회의를 열고 곽승재의 스케줄을 알아보기 위해 육현석한테 연락했다.“은서야,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육현석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요즘 승재 형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연락이 안 되어서 그러는데 혹시 승재 형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게 있어?”정보를 캐내려고 전화했는데 도리어 정보를 알려주는 입장이 될 줄은 미처 생각 못 했다.“저도 잘 몰라요. 연락이 안 되나요?”고은서가 물었다.육현석은 곽승재가 연락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주민기도 연락이 안 되어서 비서실에 전화 해보았는데 비서는 그저 곽승재가 바쁘다고만 했다고 말했다.“은서야, 혹시 승재 형이랑 싸웠어?”고은서는 곽승재가 그녀 대신 스테인리스 철봉 공격을 막아준 그 날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뱉은 탓에 그가 약간 기분 나빠했던 일이 떠올랐다.‘내가 한 말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건가? 아니면 그날 진짜 다치기라도 한 거야?’고은서는 또 그날 육현석이 곽승재한테 전화했을 때 전화 너머로부터 여자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온 게 떠올랐다.‘그럼 그 여자는 곽승재가 다쳐서 마음 아파서 운 거야?’“은서야, 우리 승재 형 찾으러 같이 GS그룹으로 가보지 않으래?”평소 같으면 단호하게 거절했을 텐데 지금은 곽현수가 준 임무를 완수해야 했기에 곽승재를 어떻게서든 만나야 했다.그러나 육현석의 의심을 받는 걸 피면하기 위해 그녀는 한참 동안 망설이는 척하다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나 마침 볼 일이 있어서 유일 투자 은행 근처에 있는데 내가 데리러 갈게.”그 말을 들은 고은서가 가방을 들고 내려가려고 할 때 마침 전화가 울렸다.육현석이 까먹은 일이라도 있는가 해서 폰을 들고 확인해 보았는데 낯선 유선전화 번호였다.받아보니 다름 아닌 해성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상대방은 아주 예의 바르게 백유미가 거의 완치 되어서 전에 얘기했던 정신병 위장 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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