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6화

Author: 류한나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이때, 며칠 전 성북구 쇼핑물에서 범가온한테 명품 시계를 사지 말았어야 한다고 꾸지람을 듣던 남자가 떠올랐다.

생김새며, 말투를 보니 범가온의 아들인 것 같았다.

그때 범가온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자 집안이 돈 많는 집안이에요. 제가 꾸미지 않으면 어떻게 꼬시겠어요.”

‘설마 그 타깃이 은혜는 아니겠지? 이제 재밌어지려고 하네.’

범가온의 조건을 보면 아들에게 이런 명품을 사줄 리가 없었다.

딱 봐도 백유미가 도와준 것으로 보였다.

백유미가 정신병원은 물론 주위 사람들한테 손을 뻗을 줄 몰았다.

“재벌가로 시집간 사촌 언니예요. 이 차는 형부 거고요.”

조은혜가 자랑하는 식으로 말했다.

“전 세계에서 얼마 없는 메르세데스를 저희 형부가 가지고 있어요. 돈 있어도 못사는 거 알죠? 그 정도의 신분이 받쳐줘야 하거든요.”

남자는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바뀌더니 다시 표정 관리하기 시작했다.

“은혜 씨, 형부라는 분 그렇게 대단해요? 언제 저희한테도 소개해 줘요!”

이때 다른 남자가 말했다.

곽승재의 쌀쌀한 표정이 떠올랐는지 조은혜는 흔쾌히 대답하지 못했다.

“엄청 바쁘신 분이라 나중에 기회 되면 소개해 줄게요. 노래방 가기로 했잖아요. 얼른 가요!”

남자가 탐욕스럽게 메르세데스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몇 명 안 되는데 사촌 언니랑 함께 노는 거 어때요?”

“됐어요. 그러면 무슨 재미에요. 저희끼리 놀아요.”

조은혜는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

남자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똑같은 젊은이인데 같이 놀면 더 재미있을지도 몰라요!”

조은혜는 여태까지 말이 없던 고은서를 보더니 무성의로 물었다.

“갈래?”

저번 생에는 조은혜가 조건이 괜찮은 남자를 만났다고 했는데 별로 관심이 없어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정신병원에서 간호사의 대화를 통해 조은혜가 가정폭력을 당한 것도 모자라 남편이 다른 남자한테 보내 야동까지 찍었다고 했다. 삼촌은 조은혜를 그 집에서 빼내기 위해 전 재산을 털었다고 했다.

원해 하향세를 타고 있던 M•Q는 그 이후로 다시는 살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87화

    한 여자가 부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일반인은 못사는 핸드백인데. VIP만 살 수 있는 건데!”높은 목소리에 원지훈도 이쪽을 쳐다보았다.“돈 많으니까 사는 거죠!”조은혜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재벌가에 시집간 것도 모자라 결혼할 때 할아버지가 혼수로 200억 원이나 줬는데.”고은서는 돈 많은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이때 웨이터 한 명이 들어오자 곽승재가 준 블랙카드를 꺼냈다.사람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을 때 웨이터한테 블랙카드를 꺼냈다.“이 카드로 계산해 주세요. 오늘은 제가 사는 거거든요.”원지훈이 다가와서 말렸다.“안 돼요. 오늘은 제가 사기로 했잖아요.”“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은혜 언니인데 너희들 돈을 쓸 순 없잖아.”고은서는 마치 장난감을 사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블랙카드를 꺼냈다.원지훈은 계속 말리면 눈치 없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동작을 멈췄다.“고마워요.”고은서는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미안, 급한 일이 있는 걸 깜빡했네. 즐겁게들 놀아.”조은혜는 그녀가 꼴보기 싫어 굳이 말리지도 않았다.고은서가 밖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원지훈이 쫓아 나왔다.“누나, 혹시 연락처 좀 추가해도 될까요?”고은서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원지훈을 쳐다보았다.이에 원지훈이 바쁘게 설명했다.“다른 뜻은 없어요. 은혜 씨 언니면 은혜 씨에 대해 잘 알 것 같아서요. 은혜 씨랑 빨리 친해지고 싶은데...”고은서가 태연하게 물었다.“은혜가 마음에 들어?”원지훈이 사실대로 인정했다.“네. 은혜 씨랑 서로 안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많이 좋아해요. 한번 노력해 보려고요.”고은서가 고개를 쳐들면서 말했다.“우리 집안은 아무나 들이지 않아. 우리 외삼촌한테 자식은 은혜 하나뿐이야. 딸을 엄청 아끼시는 분이라 아무한테나 못 줘.”“알아요. 근데 그래도 조건이 괜찮다고 생각해서 은혜 씨를 쫓아다니는 거예요. 저희 아빠가 고향에서 커다란 농산품 회사를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조건이

  • 어게인, 비긴   제88화

    고은서는 핸드폰을 거두었다.아까 자랑하는 척 블랙카드를 꺼낸 이유는 바로 원지훈에게 경제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탐욕스러운 그는 절대 고은서와 친해질 기회를 놓치지 않을 사람이었다.그러면 조은혜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그리고 원지훈은 딱 봐도 백유미 라인인데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지도 몰랐다....고은서는 쇼핑몰에서 최신상 드레스, 액세서리와 금을 샀다.예전에는 금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금의 가치를 알아버렸다.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보기도 좋고 가치도 있고. 돈이 필요할 때는 팔 수도 있고.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이 없었다.쇼핑이 끝나고, 곽승재한테서 연락이 왔다.고은서는 발신인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전화를 별로 받지도 않던 사람이 주동적으로 전화를 하다니!“무슨 일인데? 설마 금 몇 덩어리를 샀다고 나를 탓할 건 아니지? 아침에 분명 마음대로 쇼핑하라고 했잖아.”사레 걸린 곽승재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외할아버지께서 벼루 좋아하시잖아. 하나 좋은 거 얻어놨거든. 내가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네가 할아버지께 갖다드려.”곽승재가 외할아버지의 취향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았다.“알았어.”고은서가 흔쾌히 대답했다.“지금 쇼핑몰에 있는 거야?”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곽승재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응. 인제 가려고.”곽승재가 또 물었다.“무슨 물건을 샀는데?”“옷이랑 액세서리랑 금이랑.”“저번에도 이런 가게에 들렀어?”“아니. 저번에는 지연이가 온 의사 선생님께 옷을 선물하고 싶대서 남성 옷 전문점을 들렀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은서는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왜 묻는데? 사고 싶은 거 있어?”곽승재의 말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알아서 사. 난 회의가 있어서.”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어차피 옷을 사줘도 입지 않는데 돈 낭비할 바에 사지 않는 것이 나아.’고은서는 쇼핑한 물건들을 들고 GS 그룹으로 향했다.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했다.고은서는 갑자기

  • 어게인, 비긴   제89화

    ‘왜 바쁜 줄 알았더니, 이러고 있느라고 바쁜 거였네. 업무가 바쁜 와중에도 일을 찾아서 하다니.’“은서 씨.”백유미가 먼저 고은서를 발견하고 인사했다.그러고는 눈치껏 곽승재에게 이렇게 말했다.“승재야, 다른 일 없으면 먼저 판주 투자은행으로 가볼게.”“응.”백유미가 떠나고, 곽승재는 고은서의 텅 빈 두 손을 쳐다보았다. 마치 왜 자기 물건은 사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듯했다.고은서는 모른 척하면서 물었다.“벼루는?”전화할 때는 괜찮더니 갑자기 말투가 바뀐 고은서의 모습에 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렸다.방금 떠난 백유미가 생각나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유미는 내일 파티 관련해서 보고하러 온 것뿐이야...”“나랑 상관없는 일이야.”고은서가 곽승재의 말을 끊었다.“줄 거면 빨리 줘. 나도 바쁘니까.”침묵을 지키던 곽승재가 서랍에서 벼루가 담긴 선물 박스를 꺼냈다.“회의 취소하고 같이 외할아버지한테 다녀올까?”“안 그래도 돼.”고은서는 벼루를 받아쥐고 뒤도 안 돌아보고 사무실을 떠났다.‘이 이혼, 하고야 말겠어! 내가 왜 대충 살아야 하는데? 오빠 말고 다른 남자를 찾지 못할 정도로 내가 별로인 것도 아니고.’육현석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고은서를 마주치고 인사를 할까 말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가, 고은서가 차가운 얼굴로 옆을 쓱 지나가는 바람에 머쓱해서 코를 만졌다.‘왜 갑자기 안하무인이 된 거지?’육현석은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곽승재의 표정도 안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형, 은서 씨가 또 화를 돋우고 갔어?”곽승재가 짜증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은서 씨? 네가 마음대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이야? 버릇도 없이.”육현석은 할 말을 잃었다.‘계속 이렇게 불러도 뭐라고 하지 않더니.’하지만 연애 경험이 많은 윤현석은 단번에 무슨 일인지 파악했다.‘은서 씨가 좋아져서 이런 호칭까지도 신경 쓰이는 거지.’그래서 눈치껏 호칭을 이렇게 정리했다.“형, 아까 형수님이랑 마주쳤는데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이더라고. 둘이 싸웠어?”

  • 어게인, 비긴   제90화

    ‘늦었으면 늦었지. 내가 왜 화를 풀어줘야 하는데?’곽승재는 육현석의 충고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계획서는 완성했어? 지금 회의실에 가서 브리핑할 수 있을 정도야?”“...”갑작스러운 화제전환에 육현석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형, 좀 봐주면 안 돼?”곽승재의 태도는 단호하기만 했다.“안 돼.”윤현석이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형, 형수님한테서 받은 화를 나한테 풀면 안 되지!”곽승재가 째려보면서 말했다.“쓸데없는 소리할 거면 꺼져.”육현석은 바로 입을 닫았다....고은서는 외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곽승재가 준비한 벼루를 선물했다.외할아버지는 선물을 보자마자 미소가 활짝 폈다.“승재 안목이 괜찮네. 이런 고급 벼루는 보기 힘들어. 내가 얼마나 갖고 싶었는데! 은서야, 너도 한번 볼래?”“아니요.”고은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할아버지한테 선물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가지러 가지도 않았다.“할아버지, 저 작업실에 가서 향초를 좀 만들게요.”저번에 할머니한테 염주 팔찌만 선물해서 다른 선물도 드리고 싶었다.곽승재가 외할아버지한테 벼루를 선물하고 싶다고 할 때부터 할머니한테 잠이 잘 오는 향초를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고은서는 늘 집에서 향초를 만들었기 때문에 고준석은 습관 된 지 오래였다.그는 벼루를 감상하면서 말했다.“그래, 가봐.”마당 제일 끝에 있는 작업실은 공간이 넓고 조용했다. 이곳은 엄마가 살아생전 가장 즐겨 찾던 곳이었다.고은서는 어릴 때부터 향에 민감한 엄마를 닮아 향초 제작을 배우곤 했다.전문적인 퍼퓨머가 되려면 엄격한 향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엄마는 고은서가 고생할까 봐 그저 취미 삼아 만들어 보라고 했다.외할아버지 빼고는 누구도 그녀의 제대로 된 실력을 몰랐다.향초를 만들다 보니 이미 날이 어두워져서 그냥 할아버지 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어떤 향은 오랫동안 정제해야 할 정도로 과정이 번거로웠다.“매일 청소해서 방이 깨끗해. 그냥 쓰면 돼. 온 오후 힘들었는데 얼른 밥이나 먹어.”고은

  • 어게인, 비긴   제91화

    “아, 맞다. 할아버지, 은혜가 외국에 가고 싶어 하던데. 외삼촌한테 유학 보내자고 말해보는 거 어때요?”고은서는 오전에 조은혜를 만났던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지금 성적이 안 좋은데. 환경을 바꾸면 성적이 좋아질지 어떻게 알아요?”조은혜가 외국에 나가면 원지훈이 더는 따라다니지 않을 것이고, 이러면 전생의 비극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고준석이 말했다.“외숙모가 예전에 하나뿐인 딸을 외국에 보내기 싫다고 말한 적 있어. 지금 이미 은혜한테 짝을 찾아주는 것 같던데?”조은혜를 끔찍이 생각하는 단은숙은 절대 고준석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산책을 마치고, 고은서는 고준석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고 그가 잠에 들어서야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그러고 또 몇 시간 뒤, 고은서는 할머니의 취향에 맞춰 베티베르, 베르가모트 등 방향유로 수면에 좋은 향초를 완성했다.저번에 주민기 엄마한테 선물한 향초가 효과 있다고 해서 또 만든 것이다.고은서는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고은서는 기지를 쭉 폈다.‘역시 어릴때부터 사용한 침대가 제일 편하네.’고은서는 이혼하고 집에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차려주는 밥만 먹고, 고준석과 함께하는 시간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고은서는 세수를 마치고 머리가 부스스한 상태로 1층으로 내려갔다.이때 마당에서 고준석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아침부터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 거지?’밖으로 나가자, 고준석이 곽승재와 주민기에게 태극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잘 봐. 이렇게 하는 거야.”정장 차림의 곽승재와 주민기가 진지한 표정으로 서툴게 태극권을 연습하는 모습은 웃기기만 했다.“풉!”고은서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곽승재는 멈칫하더니 그녀를 째려보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주민기가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사모님.”“민기 씨, 제가 향초 좀 만들었는데 이따 가져다드릴게요.”“감사합니다. 사모님.”“은서야, 일어났어? 승재도 온 지

  • 어게인, 비긴   제92화

    고은서는 곽승재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물론 질문도 이상하다고 느껴져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내가 왜 화났다고 생각해?”“그럼 왜 집에 안 들어왔는데?”‘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서로 죽고 못사는 부부처럼 말하네. 자기가 결혼생활 1년동안 집에 자주 돌아오지 않았던 것은 생각하지 않고.’고은서는 의미 없는 말을 하기 싫어 그를 째려보고는 식탁 앞에 가서 앉았다.고은서가 컵에 우유를 따라 먹으려고 하자 곽승재가 말했다.“나도 줘.”“손 뒀다 뭐 하는데?”곽승재는 이를 꽉 깨물고 말았다.“예전에는 맨날 우유며 빵이며 선물하더니, 그때는 착한 척했던 거야?”‘염치도 없이 예전 일을 꺼내?’고은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왜, 난 맨날 오빠만 따라다녀야 해? 이제는 지쳤어.”살기가 가득한 말에 곽승재는 움찔하고 말았다.“고은서, 아침부터 왜 화를 내고 그래!”“오빠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화도 안 날 것 같은데?”“...”곽승재는 화를 참아보기로 했다.“집에 안 들어오는 건 그렇다 치고, 왜 문자는 답장하지 않는 건데?”고은서는 핸드폰을 확인할 시간조차 없었다.“문자는 왜 보냈는데?”곽승재가 애써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어제는 유미 아버님 생신이었어. 그래서 유미한테 영양제를 사서 보내드렸을 뿐이야.”고은서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백씨 가문을 좋아하고 있네. 백유미 생일을 함께 보내더니, 아버님 생신에도 선물을 드려?’“나한테 왜 이런 말을 하는데? 나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신경 쓰이지 않았으면 태도가 바뀔 일도 없었겠지.”곽승재가 불쾌한 말투로 말했다.“고은서,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불만이 있으면 말하라고. 이런 의미 없는 짓이나 하지 말고.”“그래도 저녁에 다른 여자 집에서 샤워하는 오빠보다는 낫잖아!”고은서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두 번째 언급에 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내가 언제 남의 집에서 샤워했다고 그래?”‘아직도 인정 안 하네!’고은서는 핸드폰에 저장

  • 어게인, 비긴   제93화

    곽승재는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마침 전화가 와서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아무렇지 않게 소파 위에 올려놓은 셔츠가 백유미한테 찍힐 줄 몰랐고, 더욱이 이 사진이 고은서의 손에 들어갈 줄도 몰랐다.곽승재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이 사진, 유미가 보내줬어?”고은서가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누가 보내줬든 이 셔츠 오빠 거 맞냐고.”곽승재는 대답 대신 고은서의 앞에서 바로 백유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백유미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물었다.“승재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곽승재는 백유미에게 사진을 보내주면서 물었다.“설명해 봐. 이 사진, 어떻게 된 건지.”백유미는 물론 고은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 몰랐다.전화기 너머의 백유미는 사진을 보고 멈칫하더니 그제야 그날 일을 떠올렸다.“이거 내가 SNS에 올렸다가 삭제한 사진이잖아. 요리 솜씨 자랑한다고 맨날 음식사진을 올리고 있잖아.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지웠었어. 승재야, 이 사진을 왜 저장한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왜 내 셔츠까지 함께 찍은 건데?”“그래?”백유미는 그제야 자세히 확인했다.“정말이네. 승재야, 혹시 은서 씨가 오해한 거야?”곽승재가 직접적으로 말했다.“내가 너의 집에서 샤워하고 잔줄 알잖아.”백유미는 곽승재 옆에 있는 고은서에게 사과했다.“은서 씨, 정말 미안해요. 그런데 오해에요.”백유미는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은서 씨, 그래도 믿지 못하겠으면 CCTV 영상을 보여드릴게요.”곽승재가 고개를 돌린 틈을 타 고은서는 백유미의 비웃음 가득한 눈빛을 읽고 말았다.고은서는 피식 웃더니 곽승재의 넥타이를 잡아끌어 입술에 키스했다.향긋함과 부드러운 촉감에 곽승재는 멈칫하고 말았다.고은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 역시 고개 숙여 키스를 마저 했다.핸드폰이 걸리적거렸는지 곽승재는 테이블 위에 뿌리치고 고은서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계속해서 키스했다.하지만 허리를 꽉 끌어안는 순간 고

  • 어게인, 비긴   제94화

    ...고은서는 고준석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예원 별장으로 돌아갔다.차에서 물건을 내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불청객인 성아연을 발견했다.그녀는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면서 패션잡지를 보고 있었다.“사모님, 성아연 씨께서 사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이미숙이 말했다.“고은서, 왔어? 오래 기다렸어.”성아연이 잡지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고은서는 이미숙더러 일 보러 가라면서 성아연에게 물었다.“왜 왔어?”불친절한 말투에 성아연은 불쾌하기만 했다.“고은서, 아직도 화나 있는 거야? 내가 유미 씨한테 인생 교육한 거 누구 때문인데.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무슨 말투야? 너도 GS 그룹 파티에 참석한다며? 나랑 같이 파티룩도 고르고 메이크업 숍도 같이 가. 파티 현장에 같이 가면 되겠네.”“내가 왜 너랑 이런 걸 같이 해야 하는데?”고은서가 물건을 소파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다시는 나 찾지 않기로 한 거 아니야? 그럼 이만 배웅하러 나가지 않을게.”성아연은 화를 내려다 고은서가 산 드레스를 보고 감탄했다.“와, 최신상이잖아. 내가 얼마 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고은서, 나 이거 선물해 주라. 고르러 가기도 싫어.”성아연이 꺼내 입어보려고 하자 고은서가 확 낚아채면서 냉랭하게 말했다.“갖고 싶으면 가서 사든가. 이거 내 거야. 내가 왜 선물해야 하는데?”성아연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고은서, 왜 이렇게 치사해졌어? 예전에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이면 다 선물해줬잖아!”우정을 끔찍이 생각했던 고은서는 성아연이 마음에 든다면 아깝더라도 전부 다 선물해 줬다.하지만 지금은 이 드레스를 성아연에게 선물해 줄 바에 걸레로 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염치가 없긴.”고은서가 물건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성아연이 말렸다.“고은서, 정말 나랑 절교하고 싶어? 잘 생각해 봐. 사람들이 너랑 놀아주지 않을 때 누가 너랑 놀아줬는지. 승재 씨를 따라다닐 때 누가 옆에서 아이디어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453화

    투약한 간호사도 전에 이미 곽승재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는데 그녀의 증언에도 진희숙만 언급되었다.고은서는 이 모든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백유미의 신중함을 탄복했다. 그녀가 경각심을 낮추지 않고 제때 녹음하면서 증거를 남겼더라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당사자로서 고은서는 경찰 조사에 협조한 후 나머지 일을 변호사에게 맡겼다.“걱정하지 마세요. 증거가 확실하니까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송민준이 말했다.고은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대가를 치르길 바라는 사람은 백유미이지 대신 누명을 쓴 진희숙과 간호사가 아니었다.“우리 민아도 잘못한 곳이 있으니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원하는 보상이라도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하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송민준이 말을 이어갔다.“보상은 필요 없어요. 괜찮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죠.”고은서가 말했다.“무슨 부탁이요?”“백씨 집안에서 요즘 여러 프로젝트를 도맡아 하고 있다던데, 그 프로젝트들을 저 대신 산통 깨주세요.”고은서도 민시후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곽수혁이 GS그룹 일에 끼어들면서 백씨 집안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그녀의 말을 들은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민아 보고 나한테도 그만 집적거리고 해. 나도 스트레스 그만 받고 싶어.”옆에 있던 민시후가 갑자기 말을 보태었다.송민준은 민시후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시후야, 민아가 어릴 적부터 널 좋아한 걸 너도 알고 있잖아. 민아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곁에서 어쩔 수 없어.”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성가시다는 듯 직설적으로 말했다.“난 어릴 적부터 송민아가 싫었다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데는 진짜 짝이 없다니까.”송민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시선을 고은서에게로 돌리며 물었다.“이혼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시후랑 함께 있을 생각이신가요?”‘소식이 빠르네.’이혼한 지 며칠 되지도 않

  • 어게인, 비긴   제452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민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까.”송민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혹시나 또 고집부리면서 기분 나쁘게 할까 봐 오늘 너희랑 만난다는고 얘기하지 않았어.”민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제발 좀 북제로 데려가. 해성에 계속 있게 하지 말고.”송민준은 나긋한 미소를 보이면서 답했다.“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미 ZY 그룹으로 출근하기로 했다던데.”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눈살을 더 세게 찌푸렸다.“우리 아버지가 송민아를 강제로 ZY 그룹에 밀어 넣은 건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나중에 또 고은서를 해치려 하거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또다시 너랑 우리 아버지 때문에 봐주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고은서는 민시후를 쏘아보았다.‘나랑 송민준을 원수 사이로 만들 생각인 거야?’“뭘 쏘아봐?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민시후는 점점 더 흥분해 하며 말했다.“전에도 몇 번이고 널 협박했잖아. 심지어 간호사를 교사하여 우리 아이까지 잃게 한 사람이야. 네가 날 막지만 않았으면 내가 송민아를 가만둘 거 같아?”“...”고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전에 유산한 경과를 민시후에게 간단히 알려주면서 송민아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걸 이렇게 이용할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씩씩거리는 민시후를 보면서 고은서는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은 게 너무 아쉽다고 속으로 감탄했다.송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도 전문가에게 나가보라 하고 직접 민시후에게 차를 따라줬다.“전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해.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그 일 때문이야.”송민준이 말하기를 진희숙은 송민아를 친딸로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돌봐온 사람으로서 그녀가 두 사람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그런 모험을 했다고 한다.그리고 송민아가 간호사랑 만난 모습이 포착된 사진은 진희숙이 그녀를 불러내 우연하게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민아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 어게인, 비긴   제451화

    “형, 형수님이 민시후한테 별다른 마음은 없어 보이는데 걱정하지마.”“내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 그래?”곽승재가 약간 어색해하며 말했다.“이미 이혼한 사이인데 고은서가 누구한테 마음이 가든 누구랑 있든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아까 썩은 표정을 하고 경적을 울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육현석이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그러나 갑자기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면서 변명거리를 찾았다.“맞아, 맞아. 형 말이 맞아. 형수님이 누구랑 있든 형이랑 이젠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 역시 이혼 같은 작은 일 때문에 속상해하는 일은 전혀 없는 우리 형, 상남자답다니까.”곽승재의 얼굴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걸 발견한 육현석은 이내 입을 화제를 돌렸다.“형, 형수님이 형을 보기 싫어하는 것도 화나서 그러는 거잖아. 계속 이렇게 자존심 때문에 고집부려서는 안 된다니까. 형수님한테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내야 할 거 아니야.”그의 말을 들은 곽승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네가 말했다시피 날 싫어하잖아. 그런데 무슨 존재감을 나타내라는 거야?”“지금 상대방을 잊지 못하고 놓아주기 싫은 사람은 형이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형수님이 스스로 돌아올 것 같아? 형, 자존심 따위 버리지 않으면 형수님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육현석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전에 낯선 사람 사이로 지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아주 흔쾌히 된다고 답하던 고은서의 모습이 떠올랐다.어제 점심, 그가 스케줄을 바꾸면서까지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고은서가 이혼해서 무척 기쁘다고 하면서 자신의 뒤담화를 하는 걸 들었다.그러나 방금전 민시후와 다정하게 장난치면서 자신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이건 자존심을 내려놓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고은서가 이젠 진짜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곽승재는 눈살을 질끈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언제 고은서랑 다시 화해하고 싶다고 했어? 인제

  • 어게인, 비긴   제450화

    민시후는 그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는 고은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오글거려 죽겠네.”고은서는 끝내 참지 못하고 방금전 손을 닦던 물티슈를 그를 향해 던졌다.“누가 오글거린다는 거야! 사람 호기심 불러일으켜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짜증 나는 자식아!”“고은서!”물티슈에 얼굴을 맞은 민시후가 물티슈를 다시 주어 그녀를 향해 던지려고 할 때 뒤에서 갑자기 빵빵하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와 민시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고급 SUV 한 대가 뒤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운전석에는 육현석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곽승재였다.육현석은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옆에 있는 곽승재를 힐끔힐끔 보았다. 방금 경적 소리를 낸 게 그가 아니라 곽승재인 것이 분명했다.SUV 차량 높이가 꽤 있었기에 아마 방금전에 그녀와 민시후가 장난치는 걸 본 모양이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빛을 한 채 앉아있는 곽승재를 보며 고은서는 성가시다는 듯 몸을 홱 돌리면서 민시후에게 말했다.“초록불이야. 안 가고 뭐 해?”민시후도 차 안에 앉아있는 육현석과 곽승재를 보았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액셀을 밟기는커녕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백미러를 쳐다보았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여기에서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그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전에 두 사람이 운전하면서 맞부딪친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꼭 쥐고 말했다.“민시후, 우리 약속 있는 거 잊은 거 아니지? 이상한 짓 하지마.”민시후는 불쾌하다는 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전에 내 차를 먼저 박은 사람은 곽승재거든.”‘네가 곽승재 차 앞에 막아서서 시비 걸지 않았으면 곽승재가 널 박을 리도 없었거든.’고은서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민시후가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러면 나 먼저 차에서 내려도 돼?”“너 언제부터

  • 어게인, 비긴   제449화

    민시후는 송민준과 찻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맑은 하늘에 눈 부신 햇살, 날씨가 참 좋았다.민시후는 기사 대신 직접 하늘색 스포츠카를 운전했다.고은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스포츠카를 보며 말했다.“민 도련님, 패션 워크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레스토랑 가는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 눈에 띄는 차를 운전해야 할까요?”“그냥 평범한 스포츠카일 뿐인데 어디가 눈에 띈다는 거야? 잔말 말고 얼른 타. 내가 직접 운전한다는데 영광으로 생각하라고.”민시후가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고은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탔다.스포츠카가 유독 눈에 띄기는 했지만 길에 차들이 적었던 탓에 다행히도 너무 큰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가는 도중에 ZY 그룹 근황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곽승재가 ZY 그룹을 타깃으로 삶고 짓누르려고 할 때 민시후가 제때 빠르게 대응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허 교수님 쪽에 의약 프로젝트가 아주 순리롭게 진행되고 있어. 후기도 꽤 괜찮고. 연구소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민시후는 회사 일을 얘기할 때만은 진지했다.“대리권도 네가 쟁취해 온 거니까 융자에 관한 일도 네가 책임지고 잘 해봐.”고은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그녀는 전에 박지연한테서 곽승재가 융자에 관한 일을 백유미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는지 의문스러웠다.그녀는 궁금증을 덜기 위해 민시후에게 물었다.“곽승재 아버지가 얼마 전에 귀국하셨는데 회사 일에 참여하려 했다가 곽승재한테 거절당했다고 하더라고. 아마 이번 일도 곽승재가 아버지 건의를 거절하고 직접 내린 결정일 거야.”‘그렇구나. 그런데 회장님이신 자기 아버지랑 맞붙는 거 보아서는 아마 두 사람도 사이가 별로인가 보네.’고은서는 이내 민시후 아버지가 전에 편찮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아버지는 괜찮으셔?”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민시후는 피곤하다는

  • 어게인, 비긴   제448화

    백유미는 자신이 누군가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사람 시켜 조사중이니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너도 말했다시피 이미 일은 발생했고 손실도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이 말인즉슨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야. 프로젝트가 대박 나면 넌 명예랑 돈을 얻고 망하면 너랑 아무 상관이 없다? 일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백유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프로젝트 서류에 사인한 사람은 너야. 그리고 회사 최고 결책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너고. 어떤 일이 발생하든 네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네 인생은 여기서 끝이야. 너랑 네 엄마 감방으로 보내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만들 거야.”원지훈은 백유미가 화난 김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가 그를 하늘 정상으로 보낼 능력이 있는 만큼 다시 그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요?”원지훈이 물었다.백유미는 독사처럼 살기 가득한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돈은 당연히 감당하지 못할 테고. 그런데 그 대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방금전까지 덤덤하던 원지훈도 점점 섬뜩해졌다.“무슨 일인데요?”“당연히 이 손해를 메꿀만한 일이지.”원지훈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이 일을 별 탈 없이 해주면 이번 손해는 그냥 넘어가 줄게. 혹은 네 엄마랑 함께 죽을 때까지 감방에 들어가 있든가. 한 가지만 선택해. 삼 일 줄게. 사흘 후에 확답을 주지 않으면 너도 어떤 후과가 있을지 알고 있을 거야.”백유미는 말하고 이내 떠났다.그녀가 떠난 후, 범가온이 부랴부랴 룸으로 들어오면서 물었다.“지훈아, 괜찮아? 유미가 또 너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날 나가 있으라고 한 거지?”그러나 원지훈은 대답 대신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지금 음식이 넘어가?”범가온은 호통치고는 슬쩍 문 쪽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네가 계약 체결할 때 따로 돈 받

  • 어게인, 비긴   제447화

    “고은서 눈에 네가 들어오기나 하겠어?”백유미는 곽승재도 사랑하지 않은 고은서가 원지훈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니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곳이 어디가 있다고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왜 저를 위해 음식까지 주문해주면서 저를 먼저 찾아오겠어요?”“그래, 유미야. 지훈이가 옛날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어. 지방에서 살 때도 여러 여자애들이 얘가 좋다고 쫓아다녔는데 창업한 이후로 더 많은 여자들이 지훈이를 가지지 못해 안달이나 한다니까.”범가온은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백유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고 원지훈에게 캐물었다.“고은서가 오늘 널 만나자고 한 이유는 뭔데?”원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별일 아니었어요. 너무 오래 못 봤다고 밥 사준다고 만나자 했는데 시간 없다고 했어요.”백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지금 원지훈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은서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변해버렸다. 전에는 툭 건들기만 하면 펄쩍 뛰면서 화내는 사람이었는데 요즘 따라 곽승재가 무슨 일을 해도 전혀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심지어 민시후와 무척 가까이 지냈는데 아이가 곽승재의 아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호텔로 간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재 원지훈과 연락을 맺고 있다는 게 너무도 수상했다.‘곽승재의 이목을 끌고 그에게 새로운 인상을 남기려는 수단인 건가?’“설마 이미 고은서에게 들킨 건 아니지?”백유미가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원지훈은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티를 내지 않고 성가시다는 듯 답했다.“뭐가 들켰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누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내가 심심해서 고은서 앞에서 누나 얘기를 꺼내겠어요? 게다가 사람 뒷조사하는 거에 능하잖아요. 의심되면 조사해보면 될 거 아니에요.”나중에 조사는 해볼 것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 어게인, 비긴   제446화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비서는 선 자리에 그댈 얼어붙었다.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가 어두운 얼굴빛을 하고 서 있었다.“대... 대표님, 제가 그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곽승재의 목소리에서 한기가 느껴졌다.“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라는 뜻이 아닌가?”‘갑자기 쓰레기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 거지? 내가 하는 얘기랑 완전 다른 얘기잖아.’비서는 말문이 막혔다.“대표님, 인혜 씨는 그 뜻이 아니라...”옆에서 보고 있던 주민기가 마지못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곽승재가 그를 쏘아보았다.“너도 이번 달 보너스 취소야!”‘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 보너스까지 취소하는 거야?’주민기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레스토랑 룸.원지훈이 룸으로 들어갔을 때, 룸 안에는 차가운 표정을 한 백유미와 범가온이 앉아있었다.테이블에는 여러 음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누구도 입을 대지 않은 듯했다.“유미야, 우리 지훈이 화내지 마. 이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 지훈이가 널 배신할 리가 없어.”범가온은 백유미에게 끊임없이 사과했다.반면 백유미는 걸어들어오는 원지훈을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지훈아, 왜 이제야 왔어. 얼른 유미한테 설명해. 요즘 회사 일로 바삐 보낼 뿐, 유미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원지훈은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가 앉으면서 말했다.“누나, 또 왜 그러는 거예요? 밥 먹자고 부른 거 아니었어요?”“밥 같은 소릴 하고 있네. 너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백유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사진 한 뭉치와 여러 서류들을 원지훈을 향해 던지면서 말했다.“너 대체 고은서랑 무슨 사이야? 고은서랑 개인적으로 연락한 이유는 또 뭐고?”원지훈이 서류와 사진을 들고 확인해 보니 그중에는 오늘 그가 고은서 사무실을 찾아간 모습과 전에 고은서와 복싱관에서 만난 모습이 찍혀있었다.이외에도 그가 고은서에게 연락했던 통화기록과 그녀가 그를 위

  • 어게인, 비긴   제445화

    곽승재는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시선을 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어젯밤 곽승재가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고은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곽승재는 계속 백유미에게 여지를 주면서도 나랑 이혼하기 싫다는 모습을 비췄잖아. 그렇게 보면 쓰레기 같은 본성을 지녔다는 건 사실이잖아.’“대표님, 조리실 구경해 보실 건가요?”누군가가 곽승재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이 사라진거로 봐서는 일행이 자리를 떴다고 생각했다.“주인공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험담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박지연이 물었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향해 눈을 흘기며 답했다.“들으면 듣는 거지 뭐. 난 험담한 게 아니라 사실을 얘기한 거야.”“GS 그룹에서 시찰 나오는 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그것도 곽승재가 직접. 은서야, 혹시 네가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온 거 아닐까?”고은서는 바로 부정했다.“아니야.”박지연이 말했다.“그래도 인연인가 보네.”“그런 인연은 필요 없어.”곽승재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깨진 상황에서 고은서는 더 이상 박지연을 설득하지 않았다.박지연은 언제나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다.또한 사람이라는 게, 남을 설득하는 것은 쉬워도 정작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법이었다.마치 전생의 고은서와 곽승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GS 그룹 대표실에서 주민기는 곽승재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감지했다.요즘 곽승재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화를 누르며 가엾은 직원들에게 화풀이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곽승재는 갑자기 병원 실사를 진행하겠다고 일정을 변경했다.실사를 마치고 돌아온 곽승재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대표실 전체에 한파가 닥친 듯했다.비서가 서류를 챙겨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