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재는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마침 전화가 와서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아무렇지 않게 소파 위에 올려놓은 셔츠가 백유미한테 찍힐 줄 몰랐고, 더욱이 이 사진이 고은서의 손에 들어갈 줄도 몰랐다.곽승재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이 사진, 유미가 보내줬어?”고은서가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누가 보내줬든 이 셔츠 오빠 거 맞냐고.”곽승재는 대답 대신 고은서의 앞에서 바로 백유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백유미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물었다.“승재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곽승재는 백유미에게 사진을 보내주면서 물었다.“설명해 봐. 이 사진, 어떻게 된 건지.”백유미는 물론 고은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 몰랐다.전화기 너머의 백유미는 사진을 보고 멈칫하더니 그제야 그날 일을 떠올렸다.“이거 내가 SNS에 올렸다가 삭제한 사진이잖아. 요리 솜씨 자랑한다고 맨날 음식사진을 올리고 있잖아.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지웠었어. 승재야, 이 사진을 왜 저장한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왜 내 셔츠까지 함께 찍은 건데?”“그래?”백유미는 그제야 자세히 확인했다.“정말이네. 승재야, 혹시 은서 씨가 오해한 거야?”곽승재가 직접적으로 말했다.“내가 너의 집에서 샤워하고 잔줄 알잖아.”백유미는 곽승재 옆에 있는 고은서에게 사과했다.“은서 씨, 정말 미안해요. 그런데 오해에요.”백유미는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은서 씨, 그래도 믿지 못하겠으면 CCTV 영상을 보여드릴게요.”곽승재가 고개를 돌린 틈을 타 고은서는 백유미의 비웃음 가득한 눈빛을 읽고 말았다.고은서는 피식 웃더니 곽승재의 넥타이를 잡아끌어 입술에 키스했다.향긋함과 부드러운 촉감에 곽승재는 멈칫하고 말았다.고은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 역시 고개 숙여 키스를 마저 했다.핸드폰이 걸리적거렸는지 곽승재는 테이블 위에 뿌리치고 고은서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계속해서 키스했다.하지만 허리를 꽉 끌어안는 순간 고
...고은서는 고준석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예원 별장으로 돌아갔다.차에서 물건을 내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불청객인 성아연을 발견했다.그녀는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면서 패션잡지를 보고 있었다.“사모님, 성아연 씨께서 사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이미숙이 말했다.“고은서, 왔어? 오래 기다렸어.”성아연이 잡지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고은서는 이미숙더러 일 보러 가라면서 성아연에게 물었다.“왜 왔어?”불친절한 말투에 성아연은 불쾌하기만 했다.“고은서, 아직도 화나 있는 거야? 내가 유미 씨한테 인생 교육한 거 누구 때문인데.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무슨 말투야? 너도 GS 그룹 파티에 참석한다며? 나랑 같이 파티룩도 고르고 메이크업 숍도 같이 가. 파티 현장에 같이 가면 되겠네.”“내가 왜 너랑 이런 걸 같이 해야 하는데?”고은서가 물건을 소파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다시는 나 찾지 않기로 한 거 아니야? 그럼 이만 배웅하러 나가지 않을게.”성아연은 화를 내려다 고은서가 산 드레스를 보고 감탄했다.“와, 최신상이잖아. 내가 얼마 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고은서, 나 이거 선물해 주라. 고르러 가기도 싫어.”성아연이 꺼내 입어보려고 하자 고은서가 확 낚아채면서 냉랭하게 말했다.“갖고 싶으면 가서 사든가. 이거 내 거야. 내가 왜 선물해야 하는데?”성아연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고은서, 왜 이렇게 치사해졌어? 예전에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이면 다 선물해줬잖아!”우정을 끔찍이 생각했던 고은서는 성아연이 마음에 든다면 아깝더라도 전부 다 선물해 줬다.하지만 지금은 이 드레스를 성아연에게 선물해 줄 바에 걸레로 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염치가 없긴.”고은서가 물건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성아연이 말렸다.“고은서, 정말 나랑 절교하고 싶어? 잘 생각해 봐. 사람들이 너랑 놀아주지 않을 때 누가 너랑 놀아줬는지. 승재 씨를 따라다닐 때 누가 옆에서 아이디어
수신 거부가 아니라 통화 버튼을 누른 것이다!전화기 너머에서는 곽승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고은서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았다.‘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수신 거부를 눌렀는데?’곽승재가 시선을 가슴으로 돌리자 고은서는 정신을 번쩍 차리더니 얼굴이 뜨거워지고 말았다.“이런 변태!”고은서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핸드폰 화면을 누르고 바닥에 던졌다.“아, 쪽팔려!”고은서는 창피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잘 보고 누를 것이지! 그러면 이렇게 뻘쭘한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런 변태 새끼! 가만히 소리도 내지 않고 옷 갈아입는 걸 훔쳐보고 있었다니!’“고은서, 일 때문에 데리러 못가. 기사님이 대신 데리러 갈 거야.”고은서가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직도 안 끊었어?’고은서는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하지만 잠깐 생각하고는 다시 핸드폰을 켜 곽승재에게 문자를 보냈다.[나 친구 한 명 데려갈게.][누구?][말해줄 수 없어.][내가 동의할 만한 이유를 대야겠는데?][방금 날 훔쳐봤잖아.]곽승재는 당황했는지 한참 후에야 답장했다.[파티 제때 참석하는 거 잊지 말고.][걱정하지 마. 잊지 않을 거니까.]곽승재가 더는 답장이 없자 동의한 거로 알고 있었다....파티는 5성급 호텔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고은서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민기가 마중 나왔다.“사모님, GS 그룹 회장님께서 오셔서 대표님이 바쁘고 계십니다. 2층으로 모시겠습니다.”“괜찮아요. 아직 기다릴 사람이 있어요.”주민기가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누구신데요? 친구 성아연 씨요? 이미 와계시는데.”“아니요.”이때,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검은색 차량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저기 오고 있어요.”뒤돌아보자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있는 나이가 40살 되어 보이는 한 여인이 차에서 내렸다.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고 주민기는 감탄을 자아냈다.‘명운 전직 회장님의 전처이자 현직 명운 대표인 도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데려와도 된다고 했으니까요.”고은서는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곽승재가 보내준 문자를 보여주었다.당연히 [훔쳐봤잖아.]라는 내용은 삭제한 지 오래였다.“이제 문제없죠?”고은서가 묻자 주민기가 안으로 모셨다.“사모님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고은서는 도아름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연회장 내부는 불빛이 반짝거렸고, 화려한 하객들로 북적거렸다.주민기는 곽승재 찾으러 갔고, 고은서와 도아름은 하객 대기실로 향했다.사람들은 도아름을 보자마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명운 도 사모님 아니야? 왜 왔대?”“사모님은 무슨. 이혼했잖아. 이제는 도 대표님이라고!”“투자를 받고 싶어서 여기 온 거 아니야? 서인수가 명운 핵심기술을 빼돌린 것도 모자라 자금도 빼돌려서 지금 회사 운영이 어렵다잖아.”“그럴 수도 있겠네. 봐봐, 젊고 예쁜 여자를 데려온 걸 보니 무조건 홍보 매니저야!”“사모님, 대표님 이따 오실 거예요. 저는 이만 일 보러 가보겠습니다.”이때 주민기가 다가와서 고은서에게 깍듯하게 인사했고, 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이 모습에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주민기의 “대표비서”라는 명찰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방금 사모님이라고 했나? 저 여자가 설마 곽 대표님의 와이프?’‘곽 대표는 왜 이렇게나 예쁜 와이프와 함께 공식석상에 참석하지 않았지?’‘그리고, 왜 도아름과 함께 있는 거지?’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고은서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오늘 특별히 도아름을 초대한 이유는 명운이 망하는 단계가 아니라 뒤를 봐주는 믿음직스러운 회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그 회사가 GS 그룹일지 아닐지는 각자 알아서 상상하면 되었다.오늘 명운 책임자가 곽 사모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절대 명운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또 궁금한 마음에 명운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이것이 바로 고은서가 원했던 효과였다.도아름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표정을 보더니
백유미가 달려오면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말투로 고은서에게 인사했다.“죄송해요. 사모님, 잠깐 대표님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대표님, 곽빈 씨한테 가봐야할 것 같아요.”백유미가 말했다.곽승재는 고은서를 힐끔 쳐다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여기서 잠깐 쉬고 있어. 이따 찾으러 올게.”고은서는 시종 얼굴에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응.”“곽 대표님, 일 보세요. 제가 사모님 잘 챙겨드릴게요.”도아름이 말했다.곽승재는 도아름을 보고도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마치 진작에 올 거라고 알고있는 듯이 말이다. 이에 백유미는 의아하기만 했다.하지만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어 곽승재와 함께 이곳을 떠났다.곽승재가 일 때문에 간 거지만 고은서는 버림받은 거나 다름없었다.아까까지만 해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하지만 도아름이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했다.“곽 대표님께서 일 처리하러 가셨으니 사모님은 여기서 쉬고 계시면 될 것 같아요. 아, 사모님들. 저희 회사에 새 제품이 출시되었는데 이따 맛 좀 보시고 의견 좀 주세요. 이따 가실 때 몇 박스 더 챙겨드릴 테니 절대 제 선물을 마다하시면 안 돼요.”사람들은 거절하기도 그랬다.도아름은 역시 슈퍼우먼이라 결단력도 있고 타이밍도 잘 잡았다.고은서는 그녀가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과 수군거리는 소리를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만 같았다.오히려 이 기회를 빌어 새 제품을 홍보하고 있었다.“고은서, 이제야 찾았네.”사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성아연이 눈에 들어왔다.‘오후에 그렇게 싸워놓고 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지?’“무슨 일인데?”고은서가 인내심 부족한 말투로 물었다.“잠깐 이리 와봐.”성아연은 직장 엘리트로 보이는 여자들 무리로 고은서를 끌고 갔다.“눈 뜨고 잘 보세요! 이 사람이 바로 곽 사모님이에요! 백유미 씨는 그저 이사일 뿐이고요. 누굴 보고 미래 대표
고은서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녀를 쳐다보았다.“비웃는 건 괜찮은데 인신공격하면 안 되죠. 자연미인은 아니지만 예쁘다고 말하는 거랑, 마음만큼 못생긴 얼굴을 가리려고 성형했다고 하는 것이 엄연히 다른 말인 것처럼 말이에요.”“누구한테 못생겼다고 그러세요!”그녀는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은서의 팔을 덥석 잡았다.“뭐 하는 거예요!”이때, 곽승재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뒤돌아보자 곽승재와 백유미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사모님, 괜찮으세요?”백유미가 관심하는 척 물었다.고은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억울한 것처럼 말했다.“곽 사모님이면 뭐 어때서요! 그저 3대 재무제표랑 현금 흐름을 물어봤을 뿐인데 모른다고 제가 성형한 걸 가지고 놀리면 안 되죠!”“대표님, 은서가 화나서 말실수한 것 같아요. 은서 탓하지 마세요.”성아연이 옆에서 덧붙이자 고은서는 피식 웃고 말았다.‘여기까지 끌고 와서 싸움까지 붙이더니. 오빠 입에서 철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싶었나 봐?’“이런 일 때문에 제 와이프한테 손댔어요?’고은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곽승재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제 와이프가 왜 당신한테 3대 재무제표와 현금 흐름을 말해줘야죠? 딱 봐도 성형한 얼굴인데. 왜, 말하면 안 돼요?”곽승재가 고은서를 보호하는 모습에 성아연은 물론 고은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저번에 GS 그룹 프론트 데스크에서 오해받았을 때도 묻고 따지지도 않고 보호해주던 그였다.아마도 좋은 남편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곽승재의 말에 상처받은 그녀는 얼굴을 감싸 쥐고 울면서 도망쳤다.다른 여자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곽 대표님, 저희는 그저 사모님께서 CFA 증을 땄다고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맞아요. 사모님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사모님 실력을 의심하실 필요 없습니다.”백유미가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고 했다.“저번 판주 투자은행에서 명운에 사용하려던
곽승재는 고은서가 이러는 것이 아까 불쾌한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따 민기 씨한테 저 회사 잘 알아보라고 해야겠어. 너랑 마주칠 일이 없게 이 업계에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할게.”“됐어. 내가 능력도 없으면서 남을 업신여긴다고 소문나겠어.”곽승재는 왠지 모르게 이 말이 익숙했다.그러다 자신이 고은서한테 했던 말이라는 것이 떠올랐다.‘그럼 나 때문에 화난 건가?’곽승재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다른 일을 물었다.“일부러 명운 도 대표님을 여기까지 데려온 목적이 뭐야?”“내가 왜 아름 언니를 데려오면 안 되는데?”고은서가 되물었다.“아름 언니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남편한테 배신당하고 명운까지 짊어지기까지, 용기가 얼마나 대단해. 그냥 도와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뭐 잘못되기라도 했어?”곽승재가 고은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정말 다른 목적이 없어?”고은서는 오늘 하이힐을 신고 있어 곽승재와의 키 차이가 줄어 고개만 살짝 들면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걱정하지 마. 있다고 해도 GS 그룹에 영향 주지 않을 거니까.”“...”파티가 시작되고, 곽승재의 간단한 고마움 표시 후 식사 시간과 왈츠 시간이 다가왔다.첫 번째 왈츠는 곽승재와 고은서가 함께했다.백유미는 자리에 앉아 곽승재가 고은서의 허리에 손을 얹어놓은 모습을 묵묵히 쳐다보았다.이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사랑하는 부부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백유미는 아침에 곽승재가 사진을 보여주면서 캐묻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이때, 한 남자가 춤을 신청했다.하객들은 저마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우아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은서는 허리에 얹어진 곽승재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아무리 왈츠가 가까이 붙어서 추는 춤이라지만 곽승재가 너무 꽉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곽승재가 전체 손바닥으로 등을 당기고 있어 밀어내려고 힘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조금만 잘못하면 그와 신체접촉을 가지게 되었다.“고은서, 몸을 좀만 더 붙여봐.”고은서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곽승재의 마력
하지만 곽승재는 못 본 척했고 아예 내쫓아 내기도 했다.고은서는 이런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더는 곽승재와 말다툼하기도 싫었다.‘어차피 할머니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때 되면 나의 결심을 알게 되겠지.’이때, 고은서는 백유미가 다른 남자와 춤추는 모습을 발견했다.긴 드레스를 입고있는 백유미는 그 남자와 호흡이 아주 잘 맞았다.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수줍게 웃기도 했다.곽승재는 고은서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바라보았다.“왜, 여사친이 다른 남자랑 춤추고 있으니까 질투나?”고은서가 깨 고소해하면서 말하자 곽승재는 어두운 표정으로 변했다.“나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왜 질투 나야 하는 건데?”곽승재의 말투를 들어보면 백유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만 같았다.고은서는 무슨 말을 하려다 백유미 머리 위에 있는 등이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반응할 새도 없이 그 등이 떨어지려고 했다.백유미와 춤추고 있던 남자는 이상한 낌새를 채고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백유미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퍽!고은서의 허리를 잡고 있던 곽승재는 백유미한테 달려갔다.온갖 비명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팔을 다치기도 했다.고은서는 우두커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다.마치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곽승재가 다친 백유미를 안고 떠나가는 모습, 사람들이 비웃는 모습 등등.“은서 씨?”한참 후, 귓가에서 도아름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안 다치셨죠?”도아름이 걱정스레 묻자 고은서는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하객들이 전부 나가고 현장에는 유리 조각만 남았다.갑작스러운 사고에 하객들은 스태프의 안내하에 밖으로 나갔다.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고은서를 쳐다보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몰래 찍으려고 하기도 했다.“집으로 돌아가실래요? 기사님더러 데려다주라고 할까요?”도아름은 일부러 카메라를 막으면서 고은서를 관심해 주었다.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투약한 간호사도 전에 이미 곽승재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는데 그녀의 증언에도 진희숙만 언급되었다.고은서는 이 모든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백유미의 신중함을 탄복했다. 그녀가 경각심을 낮추지 않고 제때 녹음하면서 증거를 남겼더라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당사자로서 고은서는 경찰 조사에 협조한 후 나머지 일을 변호사에게 맡겼다.“걱정하지 마세요. 증거가 확실하니까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송민준이 말했다.고은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대가를 치르길 바라는 사람은 백유미이지 대신 누명을 쓴 진희숙과 간호사가 아니었다.“우리 민아도 잘못한 곳이 있으니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원하는 보상이라도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하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송민준이 말을 이어갔다.“보상은 필요 없어요. 괜찮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죠.”고은서가 말했다.“무슨 부탁이요?”“백씨 집안에서 요즘 여러 프로젝트를 도맡아 하고 있다던데, 그 프로젝트들을 저 대신 산통 깨주세요.”고은서도 민시후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곽수혁이 GS그룹 일에 끼어들면서 백씨 집안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그녀의 말을 들은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민아 보고 나한테도 그만 집적거리고 해. 나도 스트레스 그만 받고 싶어.”옆에 있던 민시후가 갑자기 말을 보태었다.송민준은 민시후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시후야, 민아가 어릴 적부터 널 좋아한 걸 너도 알고 있잖아. 민아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곁에서 어쩔 수 없어.”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성가시다는 듯 직설적으로 말했다.“난 어릴 적부터 송민아가 싫었다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데는 진짜 짝이 없다니까.”송민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시선을 고은서에게로 돌리며 물었다.“이혼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시후랑 함께 있을 생각이신가요?”‘소식이 빠르네.’이혼한 지 며칠 되지도 않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민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까.”송민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혹시나 또 고집부리면서 기분 나쁘게 할까 봐 오늘 너희랑 만난다는고 얘기하지 않았어.”민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제발 좀 북제로 데려가. 해성에 계속 있게 하지 말고.”송민준은 나긋한 미소를 보이면서 답했다.“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미 ZY 그룹으로 출근하기로 했다던데.”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눈살을 더 세게 찌푸렸다.“우리 아버지가 송민아를 강제로 ZY 그룹에 밀어 넣은 건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나중에 또 고은서를 해치려 하거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또다시 너랑 우리 아버지 때문에 봐주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고은서는 민시후를 쏘아보았다.‘나랑 송민준을 원수 사이로 만들 생각인 거야?’“뭘 쏘아봐?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민시후는 점점 더 흥분해 하며 말했다.“전에도 몇 번이고 널 협박했잖아. 심지어 간호사를 교사하여 우리 아이까지 잃게 한 사람이야. 네가 날 막지만 않았으면 내가 송민아를 가만둘 거 같아?”“...”고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전에 유산한 경과를 민시후에게 간단히 알려주면서 송민아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걸 이렇게 이용할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씩씩거리는 민시후를 보면서 고은서는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은 게 너무 아쉽다고 속으로 감탄했다.송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도 전문가에게 나가보라 하고 직접 민시후에게 차를 따라줬다.“전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해.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그 일 때문이야.”송민준이 말하기를 진희숙은 송민아를 친딸로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돌봐온 사람으로서 그녀가 두 사람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그런 모험을 했다고 한다.그리고 송민아가 간호사랑 만난 모습이 포착된 사진은 진희숙이 그녀를 불러내 우연하게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민아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형, 형수님이 민시후한테 별다른 마음은 없어 보이는데 걱정하지마.”“내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 그래?”곽승재가 약간 어색해하며 말했다.“이미 이혼한 사이인데 고은서가 누구한테 마음이 가든 누구랑 있든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아까 썩은 표정을 하고 경적을 울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육현석이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그러나 갑자기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면서 변명거리를 찾았다.“맞아, 맞아. 형 말이 맞아. 형수님이 누구랑 있든 형이랑 이젠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 역시 이혼 같은 작은 일 때문에 속상해하는 일은 전혀 없는 우리 형, 상남자답다니까.”곽승재의 얼굴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걸 발견한 육현석은 이내 입을 화제를 돌렸다.“형, 형수님이 형을 보기 싫어하는 것도 화나서 그러는 거잖아. 계속 이렇게 자존심 때문에 고집부려서는 안 된다니까. 형수님한테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내야 할 거 아니야.”그의 말을 들은 곽승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네가 말했다시피 날 싫어하잖아. 그런데 무슨 존재감을 나타내라는 거야?”“지금 상대방을 잊지 못하고 놓아주기 싫은 사람은 형이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형수님이 스스로 돌아올 것 같아? 형, 자존심 따위 버리지 않으면 형수님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육현석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전에 낯선 사람 사이로 지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아주 흔쾌히 된다고 답하던 고은서의 모습이 떠올랐다.어제 점심, 그가 스케줄을 바꾸면서까지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고은서가 이혼해서 무척 기쁘다고 하면서 자신의 뒤담화를 하는 걸 들었다.그러나 방금전 민시후와 다정하게 장난치면서 자신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이건 자존심을 내려놓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고은서가 이젠 진짜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곽승재는 눈살을 질끈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언제 고은서랑 다시 화해하고 싶다고 했어? 인제
민시후는 그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는 고은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오글거려 죽겠네.”고은서는 끝내 참지 못하고 방금전 손을 닦던 물티슈를 그를 향해 던졌다.“누가 오글거린다는 거야! 사람 호기심 불러일으켜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짜증 나는 자식아!”“고은서!”물티슈에 얼굴을 맞은 민시후가 물티슈를 다시 주어 그녀를 향해 던지려고 할 때 뒤에서 갑자기 빵빵하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와 민시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고급 SUV 한 대가 뒤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운전석에는 육현석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곽승재였다.육현석은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옆에 있는 곽승재를 힐끔힐끔 보았다. 방금 경적 소리를 낸 게 그가 아니라 곽승재인 것이 분명했다.SUV 차량 높이가 꽤 있었기에 아마 방금전에 그녀와 민시후가 장난치는 걸 본 모양이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빛을 한 채 앉아있는 곽승재를 보며 고은서는 성가시다는 듯 몸을 홱 돌리면서 민시후에게 말했다.“초록불이야. 안 가고 뭐 해?”민시후도 차 안에 앉아있는 육현석과 곽승재를 보았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액셀을 밟기는커녕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백미러를 쳐다보았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여기에서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그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전에 두 사람이 운전하면서 맞부딪친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꼭 쥐고 말했다.“민시후, 우리 약속 있는 거 잊은 거 아니지? 이상한 짓 하지마.”민시후는 불쾌하다는 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전에 내 차를 먼저 박은 사람은 곽승재거든.”‘네가 곽승재 차 앞에 막아서서 시비 걸지 않았으면 곽승재가 널 박을 리도 없었거든.’고은서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민시후가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러면 나 먼저 차에서 내려도 돼?”“너 언제부터
민시후는 송민준과 찻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맑은 하늘에 눈 부신 햇살, 날씨가 참 좋았다.민시후는 기사 대신 직접 하늘색 스포츠카를 운전했다.고은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스포츠카를 보며 말했다.“민 도련님, 패션 워크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레스토랑 가는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 눈에 띄는 차를 운전해야 할까요?”“그냥 평범한 스포츠카일 뿐인데 어디가 눈에 띈다는 거야? 잔말 말고 얼른 타. 내가 직접 운전한다는데 영광으로 생각하라고.”민시후가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고은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탔다.스포츠카가 유독 눈에 띄기는 했지만 길에 차들이 적었던 탓에 다행히도 너무 큰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가는 도중에 ZY 그룹 근황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곽승재가 ZY 그룹을 타깃으로 삶고 짓누르려고 할 때 민시후가 제때 빠르게 대응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허 교수님 쪽에 의약 프로젝트가 아주 순리롭게 진행되고 있어. 후기도 꽤 괜찮고. 연구소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민시후는 회사 일을 얘기할 때만은 진지했다.“대리권도 네가 쟁취해 온 거니까 융자에 관한 일도 네가 책임지고 잘 해봐.”고은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그녀는 전에 박지연한테서 곽승재가 융자에 관한 일을 백유미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는지 의문스러웠다.그녀는 궁금증을 덜기 위해 민시후에게 물었다.“곽승재 아버지가 얼마 전에 귀국하셨는데 회사 일에 참여하려 했다가 곽승재한테 거절당했다고 하더라고. 아마 이번 일도 곽승재가 아버지 건의를 거절하고 직접 내린 결정일 거야.”‘그렇구나. 그런데 회장님이신 자기 아버지랑 맞붙는 거 보아서는 아마 두 사람도 사이가 별로인가 보네.’고은서는 이내 민시후 아버지가 전에 편찮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아버지는 괜찮으셔?”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민시후는 피곤하다는
백유미는 자신이 누군가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사람 시켜 조사중이니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너도 말했다시피 이미 일은 발생했고 손실도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이 말인즉슨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야. 프로젝트가 대박 나면 넌 명예랑 돈을 얻고 망하면 너랑 아무 상관이 없다? 일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백유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프로젝트 서류에 사인한 사람은 너야. 그리고 회사 최고 결책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너고. 어떤 일이 발생하든 네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네 인생은 여기서 끝이야. 너랑 네 엄마 감방으로 보내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만들 거야.”원지훈은 백유미가 화난 김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가 그를 하늘 정상으로 보낼 능력이 있는 만큼 다시 그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요?”원지훈이 물었다.백유미는 독사처럼 살기 가득한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돈은 당연히 감당하지 못할 테고. 그런데 그 대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방금전까지 덤덤하던 원지훈도 점점 섬뜩해졌다.“무슨 일인데요?”“당연히 이 손해를 메꿀만한 일이지.”원지훈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이 일을 별 탈 없이 해주면 이번 손해는 그냥 넘어가 줄게. 혹은 네 엄마랑 함께 죽을 때까지 감방에 들어가 있든가. 한 가지만 선택해. 삼 일 줄게. 사흘 후에 확답을 주지 않으면 너도 어떤 후과가 있을지 알고 있을 거야.”백유미는 말하고 이내 떠났다.그녀가 떠난 후, 범가온이 부랴부랴 룸으로 들어오면서 물었다.“지훈아, 괜찮아? 유미가 또 너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날 나가 있으라고 한 거지?”그러나 원지훈은 대답 대신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지금 음식이 넘어가?”범가온은 호통치고는 슬쩍 문 쪽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네가 계약 체결할 때 따로 돈 받
“고은서 눈에 네가 들어오기나 하겠어?”백유미는 곽승재도 사랑하지 않은 고은서가 원지훈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니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곳이 어디가 있다고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왜 저를 위해 음식까지 주문해주면서 저를 먼저 찾아오겠어요?”“그래, 유미야. 지훈이가 옛날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어. 지방에서 살 때도 여러 여자애들이 얘가 좋다고 쫓아다녔는데 창업한 이후로 더 많은 여자들이 지훈이를 가지지 못해 안달이나 한다니까.”범가온은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백유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고 원지훈에게 캐물었다.“고은서가 오늘 널 만나자고 한 이유는 뭔데?”원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별일 아니었어요. 너무 오래 못 봤다고 밥 사준다고 만나자 했는데 시간 없다고 했어요.”백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지금 원지훈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은서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변해버렸다. 전에는 툭 건들기만 하면 펄쩍 뛰면서 화내는 사람이었는데 요즘 따라 곽승재가 무슨 일을 해도 전혀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심지어 민시후와 무척 가까이 지냈는데 아이가 곽승재의 아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호텔로 간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재 원지훈과 연락을 맺고 있다는 게 너무도 수상했다.‘곽승재의 이목을 끌고 그에게 새로운 인상을 남기려는 수단인 건가?’“설마 이미 고은서에게 들킨 건 아니지?”백유미가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원지훈은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티를 내지 않고 성가시다는 듯 답했다.“뭐가 들켰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누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내가 심심해서 고은서 앞에서 누나 얘기를 꺼내겠어요? 게다가 사람 뒷조사하는 거에 능하잖아요. 의심되면 조사해보면 될 거 아니에요.”나중에 조사는 해볼 것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비서는 선 자리에 그댈 얼어붙었다.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가 어두운 얼굴빛을 하고 서 있었다.“대... 대표님, 제가 그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곽승재의 목소리에서 한기가 느껴졌다.“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라는 뜻이 아닌가?”‘갑자기 쓰레기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 거지? 내가 하는 얘기랑 완전 다른 얘기잖아.’비서는 말문이 막혔다.“대표님, 인혜 씨는 그 뜻이 아니라...”옆에서 보고 있던 주민기가 마지못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곽승재가 그를 쏘아보았다.“너도 이번 달 보너스 취소야!”‘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 보너스까지 취소하는 거야?’주민기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레스토랑 룸.원지훈이 룸으로 들어갔을 때, 룸 안에는 차가운 표정을 한 백유미와 범가온이 앉아있었다.테이블에는 여러 음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누구도 입을 대지 않은 듯했다.“유미야, 우리 지훈이 화내지 마. 이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 지훈이가 널 배신할 리가 없어.”범가온은 백유미에게 끊임없이 사과했다.반면 백유미는 걸어들어오는 원지훈을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지훈아, 왜 이제야 왔어. 얼른 유미한테 설명해. 요즘 회사 일로 바삐 보낼 뿐, 유미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원지훈은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가 앉으면서 말했다.“누나, 또 왜 그러는 거예요? 밥 먹자고 부른 거 아니었어요?”“밥 같은 소릴 하고 있네. 너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백유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사진 한 뭉치와 여러 서류들을 원지훈을 향해 던지면서 말했다.“너 대체 고은서랑 무슨 사이야? 고은서랑 개인적으로 연락한 이유는 또 뭐고?”원지훈이 서류와 사진을 들고 확인해 보니 그중에는 오늘 그가 고은서 사무실을 찾아간 모습과 전에 고은서와 복싱관에서 만난 모습이 찍혀있었다.이외에도 그가 고은서에게 연락했던 통화기록과 그녀가 그를 위
곽승재는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시선을 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어젯밤 곽승재가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고은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곽승재는 계속 백유미에게 여지를 주면서도 나랑 이혼하기 싫다는 모습을 비췄잖아. 그렇게 보면 쓰레기 같은 본성을 지녔다는 건 사실이잖아.’“대표님, 조리실 구경해 보실 건가요?”누군가가 곽승재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이 사라진거로 봐서는 일행이 자리를 떴다고 생각했다.“주인공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험담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박지연이 물었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향해 눈을 흘기며 답했다.“들으면 듣는 거지 뭐. 난 험담한 게 아니라 사실을 얘기한 거야.”“GS 그룹에서 시찰 나오는 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그것도 곽승재가 직접. 은서야, 혹시 네가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온 거 아닐까?”고은서는 바로 부정했다.“아니야.”박지연이 말했다.“그래도 인연인가 보네.”“그런 인연은 필요 없어.”곽승재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깨진 상황에서 고은서는 더 이상 박지연을 설득하지 않았다.박지연은 언제나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다.또한 사람이라는 게, 남을 설득하는 것은 쉬워도 정작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법이었다.마치 전생의 고은서와 곽승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GS 그룹 대표실에서 주민기는 곽승재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감지했다.요즘 곽승재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화를 누르며 가엾은 직원들에게 화풀이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곽승재는 갑자기 병원 실사를 진행하겠다고 일정을 변경했다.실사를 마치고 돌아온 곽승재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대표실 전체에 한파가 닥친 듯했다.비서가 서류를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