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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비긴의 모든 챕터: 챕터 121 - 챕터 130

453 챕터

제121화

남편까지 동의하자 단은숙은 단호하게 고은서를 끌고 나갔다.“승재야, 이혼은 생각도 하지 마. 은서가 충동적으로 한 말일 거야, 우리가 가서 잘 타이를게.”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고국성이 한마디 더 덧붙이자 곽승재는 짜증만 부리는 고은서를 보며 말했다.“삼촌, 억지로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저도 할머니 아니었으면 이혼 고민할 이유도 없었을 거예요.”“절대 억지 아니지, 억지일 리가 없잖아.”고국성이 다급하게 부정을 했다.“고 여사님이 우리 은서를 얼마나 예뻐하시는데, 여사님을 봐서라도 우리 은서 한 번만 봐줘.”말을 마친 고국성도 발버둥 치는 고은서를 같이 밀며 방을 나섰고 곽승재는 쓰레기통에 던져진 종이 쪼가리를 한번 보더니 주름 하나 없는 정장을 쓸어내리고는 회의실로 들어갔다....차 안의 분위기는 엄숙하기 그지없었다.화를 눌러 참는듯한 얼굴의 고국성과 단은숙은 고은서가 도망가는 걸 막으려고 표정을 굳히고 그녀의 양옆을 지키고 앉았다.한편 고은서는 이혼합의서까지 다 받아냈었는데 반응할 시간도 없이 벌어진 뜻밖의 상황에 모든 일이 수포가 되자 우울해져 있었다.지금 상황을 보니 삼촌과 외숙모는 절대 그녀의 이혼을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고은서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엄마와 함께 살았고 삼촌은 도시에 따로 살았기에 가끔 만나 밥을 먹을 때도 어른들끼리 일 얘기를 하느라 고국성도 고은서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아서 둘 사이가 그리 가깝진 못했다.하지만 고국성은 어쨌든 할아버지의 아들이고 또 고 씨 집안의 사업을 책임지고 있었기에 고은서는 그에게 모르는 사람한테 대하는 것처럼 아무 상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일단은 할아버지도 곧 이혼 사실을 알게 되실 테니 그 관문부터 넘어야 했다.이혼합의서는 어쩔 수 없이 곽승재에게 다시 한번 사인을 받아내야 할 것 같았다.생각 정리를 마친 고은서는 창문에 기대어 잠든 척을 했다.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차는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고 고은서는 바로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가려 했지만 단은숙에 의해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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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이혼?”이혼이란 두 글자에 고준석도 놀라긴 한 건지 손에 든 찻잔마저 미끄러질 뻔했다.“할아버지, 조심해요!”그때 고은서 얼른 그 찻잔을 받아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손으로 할아버지의 가슴을 쓸어주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줬다.“뭐 인제 와서 효도하는 척이야. 정말 할아버지 화나게 하고 싶지 않으면 이런 바보 같은 짓 좀 그만해!”“조용히 해.”화가 나서 씩씩대는 단은숙의 말을 막은 고국성이 고준석을 향해 말했다.“아버지도 이제 더는 은서 봐주시면 안 돼요.”“오늘 저희들이 마침 승재 찾아갔다가 이 사람이 이혼합의서를 빨리 봤으니까 망정이지 하마터면 이혼하는 것도 모를 뻔했다니까요.”“은서야, 네 삼촌이랑 외숙모 말이 다 사실이냐?”고준석이 표정을 굳히고 묻자 고은서는 서러웠는지 코를 먹으며 대답했다.“할아버지, 사실 할아버지가 걱정하실까 봐 계속 못 했던 말이었어요...”“왜 이혼을 하고 싶은 거냐?”전에 고은서가 장난스레 이혼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승재와 싸우고 나서 그런 줄로만 알고 그냥 넘겼는데 이혼합의서까지 받아낸 걸 보니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고준석은 다시 고은서를 보며 물었다.다들 왜 이혼을 하고 싶냐 물어대는 탓에 대답하는 것도 귀찮기만 했던 고은서지만 존경하는 할아버지께는 그 이유를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았다.“할아버지, 저랑 승재 오빠는 결혼 초기부터 행복하지 않았어요. 우리 둘 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냥 결혼에 묶여있는 건 둘에게 다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이만 끝내고 싶은 거예요.”“세상에 천생연분이 어딨어?! 옛날 사람들은 얼굴 한 번 못 봐도 잘만 살잖아!”그때 단은숙이 화를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그리고 결혼할 때도 네가 울며불며 그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한 거잖아. 그래놓고 인제 와서 힘들다고 이혼한다는 게 말이 돼? 결혼이 애들 장난이야?”“그래요, 제가 결혼하자고 한 거 맞아요. 그래서 저는 이 결혼이 불행해도 참고 살아야 하나요? 삼촌이랑 숙모는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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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곽승재는 차 유리의 파편도 직접 막아주고 운전도 가르쳐주며 민시후에게 납치당할 뻔했을 때도 바로 나타나 고은서를 구해주었다.고은서가 온갖 짜증을 부려댈 때도 곽승재는 참아왔었고 오히려 정상적인 부부처럼 같은 방을 써보자고 제안하기도 했었다.예전의 곽승재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들이었다.“은서야, 할아버지가 보기엔 승재가 너를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그날도 승재는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네가 전날 밤에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널 걱정하느라 온 거였어.”“나에게 옛날 벼루를 선물한 것도 네가 기뻐했으면 해서 그랬던 거잖아. 너뿐만 아니라 너의 가족들도 신경 쓴다는 걸 보여주려고.”고준석이 한 이 말들을 예전의 고은서가 들었다면 당연히 감동하고 기뻐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처량하게만 느껴졌다.고은서가 온 마음을 다해 곽승재를 사랑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이제 지쳐서 이혼하려고 하니 또 아쉽다는 듯이 잘해주는 게 달갑지 않았다.“할아버지, 그 정도로 이 결혼을 지속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그냥 그 사람에게도 자유를 주고 싶어요. 그리고 더 이상 그 사람과 관련된 일에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요.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제 승재 오빠한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거예요.”고은서의 대답에 고준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꼭 같이 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야. 그냥 내가 아는 너는 사람이든 뭐든 네가 확신하는 건 절대 바꾸지 않는 성격이라 하는 말이야.”“어릴 때 갖고 놀던 토끼 인형도 네가 맨날 안고 돌아다니니까 다 해져서 내가 다른 인형들 많이 사줬잖아. 그런데도 넌 그 인형만 고집했지. 그게 낡아서 더는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버렸잖아. 하지만 그 뒤로 너는 다른 인형은 원하지 않았지.”“네가 결혼할 때도 나는 둘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희들의 결혼을 허락했어. 네가 승재가 아닌 다른 사람은 다시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서.”“은서야, 할아버지는 네가 네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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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삼촌 회사의 계약이 하나 성사 안 된 게 있어서 오빠한테 도와달라고 온 거래.”박지연은 고은서가 말한 이유도 그럴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곽승재와 관련된 것 같았다.“아무튼 이혼 못 했으니까 내 말이 맞는 거야!”“상상력이 그렇게 풍부하면 간호사 말고 소설가를 하지 그래?”“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 이라는 소설 쓸까 하는데 어때?”“그런 노골적인 글 쓸 거면 그냥 계속 간호사 해.”박지연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내까지 들어와 있었다.어둠이 깃든 시내를 보던 고은서는 주인혁에게 오늘 헬스장을 가겠다고 약속한 일이 떠올랐다.그래서 고은서는 기사더러 헬스장 근처의 식당에 차를 세우게 하고 간단히 배를 채우고는 바로 헬스장으로 갔다.헬스장 대표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바로 전에 운동을 도와줬던 피티쌤을 끌어다 그녀에게 사과했다.이미 다 지난 일이라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고은서가 그들을 보며 손사래를 쳤다.“괜찮아요. 앞으로 주인혁 씨 난처하게 만들지만 않으면 돼요.”“주인혁 씨는 당분간 우리 헬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됐어요. 사모님이 원하시면 담당 직원을 바꾸던지 환불을 하던지 전부 가능합니다.”“왜 아르바이트를 못하는데요?”어제 밥을 같이 먹을 때도 못 들은 말이었기에 고은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곽승재가 그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닐 텐데.“본인이 오늘 저한테 직접 한 말입니다. 오디션에 나가야 한다고 하더군요.”대표의 말을 듣고 보니 미래에 있을 오디션이 떠올랐다.고은서는 그 오디션에서 주인혁이 많은 주목을 받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오디션이 정확히 언제 시작하는지는 몰랐었다.“은서 씨.”저 앞에서 주인혁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은서는 바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오늘은 일찍 왔네요.”주인혁은 고은서와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화를 시작했다.“운동 끝나면 같이 나가서 뭐라도 마실래요? 저 할 말 있어요.”그에 고은서는 웃으며 대답했다.“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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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고은서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주인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귀 끝까지 빨개진 주인혁은 다급하게 부인했다.“저기요! 그런 게 아니라 여자가 호신술 많이 배워두면 좋으니까 하는 말이거든요. 위험할 때 본인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야죠.”주인혁의 반응을 본 고은서는 예상대로라는 듯 웃고는 말했다.“장난인데 뭘 그렇게 긴장해요.”주인혁은 여전히 빨개진 귓볼을 하고 물었다.“제가 혹시 은서 씨 귀찮게 했어요?”“귀찮게 한 건 아니고요.”고은서는 이참에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그냥 내가 저번에 도와준 일로 나를 너무 좋게 볼까 봐요. 내 모든 게 다 좋아 보여서 생겨서는 안 될 생각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그래요.”“그런 건 걱정 마세요. 저도 제 신분을 아는데 어떻게 감히 은서 씨 같은 사람을 넘봐요.”“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절대 아니에요.”고은서는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상황은 그냥 잠시뿐이에요. 곧 엄청난 성공을 이룰 거고 많은 사람들이 주인혁 씨한테 관심 가져주고 주인혁 씨를 좋아할 거에요.”“그리고 나를 넘본다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인혁 씨보다 나이도 많고 이미 결혼도 했잖아요. 인혁 씨는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어울려요.”고은서의 말에 긴장이 조금 풀린 주인혁은 고은서를 향해 웃어 보였다.“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그러니까 컨디션 조절 잘해서 하고 싶은 일만 잘해요, 힘내요!”그렇게 응원을 마친 고은서는 헬스장을 나와서 택시를 부르려고 하는데 마침 원지훈에게서 온 문자 두 개를 보게 되었다.[누나, 시간 좀 있어요? 은혜 씨 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누나 시간 괜찮나 해서요.][미안해요, 귀찮게 해서. 은혜 씨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7시에 첫 번째 문자를 보내고 한 시간 뒤에 온 두 번째 문자였다.고은서가 답장하지 않으니 귀찮은 거로 여긴 것 같았다.고은서는 조금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아까는 운동 중이어서 핸드폰 보관함에 넣어뒀었어. 물어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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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원지훈은 “낚시”하는 법을 잘 알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말 대신 사리에 맞는 말을 먼저 꺼냈다. “사촌누나, 저한테 보내주세요. 제가 다른 보통의 헬스장과 비교 해볼게요.” 그의 말에 고은서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전화를 끊고 그녀는 복싱관의 이름을 그에게 보내주었다. 그와 조은혜 사이가 어느 정도로 진전이 있는지는 그와 많이 접촉해야봐야만 알 수 있다. ‘꼬투리 하나라도 잡는다면 더 좋을 텐데.’ [감사합니다. 사촌누나.] 원지훈이 고은서에게 감사의 말을 담은 문자를 보내왔다. [괜찮아. 너랑 은혜 사이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면 사촌누나라고 부르지 말아줘. 그냥 은서 씨라고 해.] [네. 은서 씨 일찍 쉬세요.] ... 어느 한 병원 안, 백유미는 이마와 팔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어두운 안색으로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유미야, 병실이 너무 좋은데? 곽씨 일가의 도련님께서 꽤나 잘해 주나봐?” 범가온은 그녀의 병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백유미는 그의 말을 못들은 척 무시하며 냉랭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나를 찾아온 거예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달라고 말했었는데 잊었나요?” “네가 다쳤다기에 얼른 와서 너 괜찮은지 보려고 했지.” 범가온은 냉랭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녀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유미 너는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다행히 그 등이 살짝 빗나가서 망정이지, 제대로 떨어져 네 머리에 부딪혔다면 큰 구멍 정도는 남았겠다.” 백유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왜 통화할 때 안 말하고 꼭 나한테 직접 온 거죠?” 범가온은 두 손을 비비적거리며 이곳에 온 목적에 대해 말을 했다. “요즘 원지훈 그 놈이 조 씨 그 여자를 쫓아다니는 바람에 이것저것 다 사재기 하고 있어. 하루는 밥을 산다고 나가고 다른 하루는 같이 놀러간다고 나가고해서 돈을 거의 다 썼지 뭐야.” 백유미는 범가온에 손목에 있는 금팔찌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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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또 한 가지, 제발 신경 좀 많이 쓰라고 전해주세요. 보통의 방법이 안 통한다면 다른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서라도 꼭 성공하라고 하시구요. 전 제 돈이 물처럼 새어나가면서 아무런 성과도 보지 못하는건 싫어서요.” 범가온은 은행 카드를 손에 꼭 쥐고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 “걱정하지마, 지훈이가 힘을 낼 거야. 어제 원래 지훈이가 백마 탄 왕자님처럼 등장해 그 여자를 구해줄 계획이었는데 조 씨 그 여자가 일이 생겼다고 미리 가버린거 있지? 다른 방법 좀 생각해봐서 꼭 성공하겠다고 말했으니까 기다려보자!” 백유미는 더 물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연신 범가온에게 당부의 말들만 했다. “나중에 일이 생기면 제가 찾아 갈게요.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대로 저한테 오지 말아주세요.” 전에 고은서와 곽승재는 범가온이 백유미 앞에 몇 번이나 나타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은 친척 관계라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는 않겠지만 원지훈이 목적을 가지고 조은헤에게 다가가고 있기에 조심해야만 했다. 만약 들킨다면 뒤에서 몰래 도와준 백유미까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범가온은 카드를 가방 안에 소중히 잘 넣어두고는 백유미에게 말했다. “유미야, 난 오늘 원래 네 상황이 어떤지 보고 가려고 했어. 혼자 입원한 것도 모자라 가족도 없이 병 치료를 해야 하는 네가 너무 안쓰러워서 말이야.” 백유미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며 범가온에게 말했다. “조금 잇다가 간호사에게 말하세요. 제가 쓰러졌다고. 그러면 알아서 처리 해줄 거예요.” 범가온은 순식간에 백유미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알겠어. 곽 대표님이 나보다는 더 잘 챙겨줄 테니까! 내가 지금 당장 가서 간호사 불러 올게.” ... 예원 별장으로 돌아온 고은서는 별장 안에 누구의 인기척도 없어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문을 여는 순간, 고은서는 방 안에 조금 변화가 생긴 사실을 알아차렸다. ‘승재 오빠의 물건이 많아졌네?’ 원래 고은서가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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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곽 선생님, 백유미 씨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빨리 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곽승재는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그는 고은서를 슥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잠옷을 갈아입고는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곽승재와 가까운 거리에 서있던 고은서는 당연하게도 수화기 너머 간병인의 목소리를 들었고 곽승재가 지금 어디로 향할지도 알아차렸다. 할아버지는 늘 고은서에게 곽승재도 그녀에게 애정이 꽤 있는 것 같으니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잘 지내보라는 말을 했었다. ‘다른 여자가 쓰러졌다는 전화만 받고 달려 나가는 남자한테 내가 왜?’ 그 시각, 병원. 백유미는 넘어져서 퍼렇게 멍이든 자신의 팔을 어루만지며 곽승재에게 말했다. “승재야,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해. 침대에서 내려가서 조금이라도 걷고 싶었는데 머리가 휭 해나면서 어지러워지는거 있지? 살짝 넘어졌는데 간병인이 깜짝 놀라서는 너한테 전화 했나봐.” 곽승재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여기 간병인 있잖아? 근데 왜 혼자 침대에서 내려오는 거야?” 백유미가 대답했다. “난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해서 퇴원하고 싶었어. 그래야 명운의 항목을 다시 가져올 것 같아서.” “그 일은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고작 명운 하나 없다고 판주가 안 돌아가지는 않으니까.” 곽승재가 백유미의 말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백유미는 자신의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는지 백승재의 말에 반박을 했다. “다른 사람이 투자했다면 상관도 안 하겠지만 민시후 씨가 너랑 겨뤄보겠다는 의도가 너무 선명하잖아. 그래서 난 그 사람이 널 이기게 하고 싶지 않아.” “들어보니까 오후에 부하 직원까지 불러서 회의까지 하려고 했다면서?” 백승재가 입을 열었다. “민 대표가 나랑 그러는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항목에 투자를 한다 해도 나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어.” “회사일은 부하 직원에게 잘 부탁하고 넌 치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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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다음날 아침, 고은서는 어떤 것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눈이 저절로 떠질 때까지 잠을 잤다. 어제 주인혁과 함께 호신술을 열심히 연습한 탓에 집으로 돌아온 고은서는 샤워를 마친 후 바로 침대에 누워 쓰러지듯 잠에 들어버렸다. 상쾌한 컨디션으로 아침을 맞은 고은서는 기지개를 쫙 편 뒤, 핸드폰으로 새로 나온 뉴스를 확인하려고 했다. 핸드폰을 가지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고은서는 침대 맡의 서랍 위에 못 보던 와인 색상의 선물 상자가 놓아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선물 상자를 살짝 열어본 고은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반짝이고 예쁜 한 쌍의 귀걸이였다. 빛나는 보석들이 가득 박혀있는 귀걸이였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라 하나도 과해보이지 않아 일상용으로 착용하기에 아주 좋아보였다. 이런 귀걸이를 지금까지 산 적이 없던 고은서는 자신의 침대 맡에 있었으니 당연히 누군가 선물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재오빠가 놓은 건가?’‘어젯밤에 돌아 왔었나?’너무도 깊은 잠에 빠져있던 고은서는 곽승재가 집으로 돌아온 줄도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곽승재는 일부로 그녀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선물 상자를 잘 배치해두었다. 아마 그는 어젯밤 나가서 백유미를 만나고 온 것에 미안한 감정을 느껴 고은서에게 작은 보상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전에 곽승재는 고은서가 생일이나 기념일 같은 날에 선물을 사달라고 졸랐어도 늘 시간이 없어서 혹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니 혼자 가서 고르라는 말로 거절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곽승재는 마치 늘 하던 일 인 냥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고은서는 귀걸이를 먼저 내려놓고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돌아온 그녀는 그 귀걸이를 손에 들어 자신의 귀에 가져다대며 예쁜지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문득 손에 들려있는 귀걸이가 묘하게 눈에 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하던 고은서는 무릎을 탁 쳤다. ‘아, 그래!’전생에 고은서는 백유미가 이 귀걸이를 낀 채 인스타에 사진을 찍어 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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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쓰레기통에 처참히 버려진 귀걸이를 본 곽승재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은서, 너 지금 이게 아침부터 뭐 하는 짓거리야?” “아침부터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오빠잖아!” 고은서는 냉랭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선물 사주고 싶지 않으면 아예 사주지 마. 내가 무슨 쓰레기통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지 않는 물건은 나도 필요 없다고!” “고은서 너는 꼭 이렇게 막무가내로 화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곽승재는 행여나 고은서가 귀걸이를 선물한 사람이 백유미라는 것을 알아차릴까 봐 마음이 급해졌다. “이게 어딜 봐서 다른 사람이 버린 물건인데? 이렇게 태그도 달려 있잖아. 새것이라고!” “태그 하나 걸려있으면 새 물건인 거야?” 고은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어갔다. “오빠, 공평공정하게 대하고 싶은 거라면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부터 잘 물어봤어야지. 전처럼 내 의견 따위를 무시하지 말고!” 고은서의 날카로운 지적의 말들을 들은 곽승재는 인내심이 바닥이 나버렸다. “그럼 내가 그냥 쓸데없는 일 하나 했다고 생각해! 누가 네 의견 따위에 관심을 해주는데?” 곽승재는 화가 나 씩씩대다가 바로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고은서 또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귀걸이가 있던 선물 상자마저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졌다. ‘곽승재 진짜 나쁜 놈이야!’ ‘원래 백유미한테 줬어야 할 물건을 나한테 주다니, 내가 그렇게 하찮은 사람 같아 보이나? 자기가 준 거면 내가 다 기뻐할 줄 아는 거야? 그게 똥이라도 나는 향기롭다고 말할 것 같았나 보네?’ 생각하면 할수록 미친 듯이 화가 나는 고은서는 홧김에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발로 툭 차버렸다. 그러는 바람에 귀걸이는 쓰레기통 안에서 굴러 나왔고 조명 아래에서 반짝이는 작은 다이아몬드들은 고은서의 눈에 무척이나 거슬렸다. 고은서는 화를 못 이겨 귀걸이를 몇 번이고 밟아 망가뜨린 다음 변기에 내려 보내려고 생각했지만 정교한 모양과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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