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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1화

정유진은 혼자 차를 몰고 뛰쳐나갔고 경호원이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당연히 임미연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이고 본가에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신호등 네댓 개를 지나자 정유진은 마음이 점점 안정됐다.이제 K그룹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아예 일찍 퇴근해 집으로 돌아갔다.오늘 날씨가 꽤 좋아 정명학과 이명자는 연우를 데리고 놀러 갔다.냉장고에 반찬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정유진은 동네 슈퍼에 가서 야채와 과일을 좀 샀다.이렇게 장을 보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른다. 대부분 어르신들과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샀기에 매우 만족스러웠다.집에 돌아와 물건을 내려놓자마자 임우연에게서 전화가 왔다.조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임우연은 휴대전화 너머로 내일 일정을 보고했고 회의를 내일로 미뤘다고 말했다.“지찬 씨가 회사에 있지 않아요?”“정 대표님, K그룹의 일은 관여하지 않겠다고 강 대표님이 말했어요. K그룹은 정 대표님이 와서 지시하기를 기다려요.”그 인간 어디 아픈 거 아닐까?샤워하면서도 강지찬의 오늘 행동을 떠올린 정유진은 생각할수록 수상했다.에이프릴 홀.강원훈과 고남준이 잔을 들고 건배했다.“강지찬이 임미연의 복수를 위해 정유진의 사무실을 부순 일을 K그룹 모두가 알고 있으니 거짓은 아닐 거야. 고 대표님, 어떻게 할 생각이야?”고남준이 말했다.“그 여자가 정말로 태안병원에서 쉬고 있어?”강원훈이 바로 대답했다.“맞아. 강지찬이 아들을 많이 중시하나 봐. 그렇게 화를 내고 말이야. 정유진보고 임미연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잖아..”고남준이 웃었다.“그럼 임미연 씨에게 협조 부탁해야겠네.”임미연은 지금 기분이 매우 나쁜 상태이다.몇 명의 고모들을 호텔로 데려다준 후 아랫배가 더부룩하고 온몸이 불편했다. 화장실에 갔을 때 하혈한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태안병원에 와서 바로 입원했다.이참에 강지찬 앞에서 불쌍한 척하려고 했는데 강지찬이 지금까지 안 온 줄 누가 알았겠는가.장혜수는 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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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날씨가 매우 좋았다.강지현은 친구를 불러 산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얘기가 끝나자 상대방은 바로 자리를 떴다.이곳은 바람도 없고 태양도 강했다. 이렇게 따뜻한 겨울 태양 아래 앉아 햇볕을 쬐고 차를 마시며 눈앞의 서울과 먼 산을 바라보니 강지현의 마음은 모처럼 평온해졌다.맞은편에 마음속에 그 사람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참지 못하고 정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그녀를 위해 좋은 일을 했기에 말투는 아주 여유로웠다.“유진 씨, 일이 해결됐어요. 시간은 예약했어요. 모레 오후 3시예요.”강지현이 이 일을 정말 해내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정유진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지현 씨, 고마워요.”“고맙긴요. 나도 K그룹의 주주잖아요.”강지현은 더 이상 ‘유진 씨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강지현은 걸어오는 남자를 바라보며 휴대폰 너머로 정유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그럼 일 보세요. 나는 만날 사람이 있어서.”말이 끝나자마자 고남준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앞에 빈 찻잔을 들여다본 고남준은 웃는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둘째 도련님, 일이 잘 돼가나 봐요. 차도 다 마셨네요.”강지현은 깨끗한 컵을 집어 들더니 차를 한 잔 따르며 말했다.“차는 다 마시지 않아도 되니 고 대표님은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그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린 고남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둘째 도련님, 우리가 그래도 한 때는 협력한 사이였는데 이렇게 체면을 안 세워주다니요. 너무한 것 아닙니까?”강지현은 미간을 찌푸렸다.“고 대표님 마음속에 나라는 파트너가 있긴 했네요. 정말 영광입니다.”다들 똑똑한 사람들이었기에 강지현은 이내 상대방이 차를 마시러 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다만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고남준은 예전에 분명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강원훈과 협력한 이후로 그들은 접촉하지 않았다.따져보면 이미 파탄 난 파트너이다. 고남준이 설마 강지현이 북쪽 교외의 땅을 파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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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강지찬은 강홍식에게 불려가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들었다.잔소리라고 해봤자 K그룹에 돌아가 정유진을 내쫓고 이혼한 뒤 임미연과 결혼하라는 것이다.요즘 본가가 시끌벅적하다. 장혜수가 강씨 집안 사촌 고모할머니를 데려왔고 고모할머니는 아침 일찍 와서 점심을 먹고 갔다.강홍식과 다투는 것이 귀찮은 강지찬은 가만히 서 있었다. 말하는 사람은 계속 말을 하고 듣는 사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강홍식의 마당에서 나온 부하가 강지찬의 앞에 다가와 말했다.“대표님, 임미연 씨가 병원을 떠났다고 합니다.”강지찬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다시 말했다.“사모님 쪽은?”“사모님께서 오늘 회사에 있습니다.”“예정대로 일을 진행해.”“예.”이날 임우연은 한창 자료 준비에 바쁜 정유진을 찾아왔다. 서류에 사인을 받기 위해서이다.서명을 마친 정유진은 의심스러운 듯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임우연은 안경을 위로 밀며 솔직하게 말했다.“정 대표님, 강 대표님이 무슨 속셈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정 대표님을 꼭 데리고 오라는 말만 하고 다른 말은 없었어요.”말을 마친 뒤 한마디 덧붙였다.“장형준 쪽도 마찬가지예요. 강 대표님의 최근 행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요.”정유진은 임우연의 말을 믿었다.안경을 낀 임우연의 눈빛이 반짝였다.“정 대표님, 뭘 의심하시는 거예요?”정유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갑자기 사무실로 달려와 난장판을 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의인 것 같아요.”임우연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정 대표님, 사실 고민하실 필요 없어요. 때가 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하던 대로 하면 돼요. 시기가 되면 다 드러날 거예요.”정유진이 말했다.“그 말뜻은 임우연 씨도 강지찬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임우연이 웃으며 말했다.“강 대표님이 정 대표님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어요.”정유진은 순간 멍해졌다.차라리 의심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지금은 마음속에 의심이 가득해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저녁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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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4화

에이프릴 홀에 도착한 강지찬은 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핸드폰으로 낯선 번호가 동영상을 보냈다.영상 속 임미연은 배를 움켜쥔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한 남자가 차분한 말투로 말을 했다.“강 대표님, 아들의 상황이 안 좋아 보이는데 우리 얘기 좀 할까요...”뒤에 그 사람이 무슨 말을 더 했는지 모르지만 강지찬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준비 다 됐어?”강지찬이 조수석에 앉은 사람에게 물었다.“대표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이미 들어갔어요.”강지찬이 말했다.“그럼 기다려.”영상 속 임미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남준과 강원훈은 30분을 기다렸지만 강지찬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점점 더 조급해졌다.“강지찬이 아들을 소중히 여긴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거야?”고남준은 급해서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이었다.“내일 그 토지 서류가 나오는데 K그룹이 제일 먼저 계약하러 갈 거야. 전에 우리가 그렇게 여러 번 접촉했지만 위에서 우리 회사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바람에 안팎으로는 그 땅을 K그룹에 주기로 했다고 소문이 났어. 강 대표, 우리에게 이제 시간이 정말 없어.”강원훈이 일어나 옆방으로 가자 고남준의 얼굴이 굳어졌다.강지찬이 마음에 걸려 강원훈이 감히 손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고남준은 알아차렸다.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무슨 큰일을 하겠는가? 차라리 강지현이 더 악랄했다.강원훈은 본인의 우유부단함이 고남준의 불만을 샀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임미연에게 휴대전화를 돌려줬다.“강지찬에게 전화해서 당장 오라고 해.”마음을 졸이고 있는 임미연은 당장이라도 죽을 지경이었다. 바로 조금 전, 또 한 번 하혈했고 지금은 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배를 감싸고 있었다.“셋째, 셋째 어르신, 나 정말 아파요. 내가 전화하면 병원에 데려다주실 수 있어요?”임미연은 강원훈의 옷을 손으로 움켜쥐며 말했다.“제발 부탁해요. 이 아이를 잃으면 안 돼요.”강원훈은 그녀의 팔을 뿌리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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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5화

강원훈이 화를 내자 임미연은 덜컥 겁이 났다.이 사람은 애초에 중상을 입은 강지찬을 죽이려고 했다. 그녀가 갖은 방법으로 시간을 끌지 않았더라면 혼수상태에 빠진 강지찬은 진작 죽었을지도 모른다.또한 어려서부터 사생아라는 딱지를 달고 산 강원훈은 핏줄이라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어려서부터 ‘사생아’라는 딱지를 달고 있었고 이제 임미연이 그의 아들을 빌미로 그의 조카에게 시집오려고 했다. 정말 우스꽝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내가 너 하나 못 키울까 봐? 왜 이렇게 창피하게 구는 거야?”강원훈이 사실을 알아챈 것을 안 임미연은 아예 대놓고 말했다.“내가 강지찬에게 시집가면 앞으로 강씨 집안 전체가 당신 아들 거잖아요. 당신은 나에게 뭘 줄 수 있는데요? 내 아들이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사생아라고 손가락질받게 하고 싶지 않아요!”임미연은 바로 강원훈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그럼 낳지 마!”임미연도 소리쳤다.“그럼 이 아이 없는 거로 쳐요. 난 처음부터 강지찬을 좋아했어요. 당신이 나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내가 왜 당신 같은 사람과 자겠어요?”하지만 그녀의 고함과 함께 몸 아래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임미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내 아이, 내 아이!”임미연은 강원훈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빨리 병원에 데려다주세요. 피가 흘러요.”이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강원훈은 그녀를 밀어젖혔다.“없어지면 없어지는 것이지, 어차피 소용없는 아이야.”“닥쳐요!”임미연은 이런 강원훈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다 당신 탓이에요. 계획대로 잘 되고 있었는데. 이 아들만 낳으면 강지찬과 결혼할 수 있었는데. 그때가 되면 강씨 집안 안주인은 나인데. 만약 이 아이를 지키지 못하면 절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강원훈이 콧방귀를 뀌었다.“강지찬이 너와 결혼할 거라고? 바보 같은 년, 배 속의 아이를 정말 소중히 여긴다면 왜 너를 구하러 오지 않았겠어? 예전에 정유진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알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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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6화

오후에 중요한 일이 있는 정유진은 점심을 먹은 뒤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알람을 설정하고 한 시간 동안 자려고 했다.휴게실에는 암막 커튼이 쳐져 있어 방 안이 어둡고 조용해 얼른 잠이 쏟아졌다.비몽사몽인 상태에서 누군가가 휴게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누가 들어왔다!눈을 번쩍 뜨니 큰 몸이 정유진을 향해 다가왔다.방이 어두웠지만 단번에 누구인지 알아차렸다.“여긴 왜 왔어요? 당분간 회사에 안 나올 거라면서?”강지찬은 입꼬리를 올렸다.“다른 방법이 없어서. 한 번만.”정유진은 머리만 드러낸 채 이불을 꼭 잡고 있었다.“왜 이래요? 뭐 하려는 거예요?”강지찬은 손목시계를 벗어 한쪽 캐비닛에 올려놓더니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정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 뭐 하는 거예요?”“뭐 하는 거냐고? 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강지찬의 동작에 정유진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강지찬이 웃통을 벗고 바지를 벗기 시작하자 정유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리에 앉았다.“뭐 하는 거예요? 나가세요!”강지찬은 단숨에 바지를 벗더니 이불을 힘껏 잡아당겼다.정유진은 흰 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강지찬의 시선은 그녀의 하얀 두 다리에 멈추더니 이내 점점 위로 올라갔다. 눈빛도 점점 짙어졌다.“이 셔츠, 내 셔츠인 것 같네?”정유진은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때 왜 갑자기 이 사람의 셔츠를 잠옷으로 가져왔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지금 벗으면 늦은 것일까?하지만 강지찬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이내 달려들어 사람을 깔아뭉갰다.정유진이 거세게 반항하자 강지찬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흐뭇한 얼굴로 숨을 들이마셨다.“움직이지 마. 여보, 안아줘.”“이거 놔요. 당신 애인이나 안아요.”강지찬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내 애인이 어디 있는데?”정유진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강지찬 씨,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강지찬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나도 농담 아니야. 여보. 나에게 애인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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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7화

강지찬이 확 달라진 얼굴로 사무실에서 나오자 대표이사실 사람들은 얼이 빠졌다.손에 서류 가방을 든 임우연은 한결같은 표정으로 말했다.“강 대표님, 약속한 시각이 다 됐으니 정 대표님도 이만 출발해야 합니다.”강지찬은 소맷부리를 정리하며 말했다.“내가 갈게.”주차장에 도착한 임우연은 경호원이 여러 명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강지찬은 정유진의 운전 기사에게 물었다.“정 대표가 평소에 어느 차를 타나요?”운전기사는 하얀색 카니발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대표님이 요즘 이 차를 타고 다닙니다.”강지찬은 임우연을 향해 말했다.“네가 뒤에 차를 타.”임우연은 바로 강지찬의 속셈을 짐작할 수 있었다.“강 대표님...”“헛소리 그만하고 차에 타.”강지찬은 임우연의 말을 끊고 정유진의 차에 올라탔다.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임우연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강지찬의 차는 저 멀리 달려갔고 임우연은 멀찌감치 뒤따랐다. 운전 기사더러 차를 빨리 몰라고 했지만 기사는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강 대표의 차가 큰 사거리를 지날 때 갑자기 옆으로 큰 트럭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이때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딪힌 것은 대형트럭과 강지찬이 탄 카니발이 아니라 대형트럭 두 대였다.5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있던 임우연은 충격 가득한 얼굴로 바라봤다. 강지찬이 탄 그 흰색 승용차는 두 대의 트럭 사이를 ‘쌩'하고 빠져나갔다.임우연은 손에 땀을 쥐었다.앞에 교통사고가 나자 운전사는 빠른 속도로 차선을 바꿔 우회했고 강지찬의 차는 마치 조금 전 교통사고와 무관한 것처럼 무사히 도로를 달렸다.이 모든 것은 분명 준비된 것이다.임우연은 속으로 만약 저 차에 정유진이 타고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정유진은 누군가 길에 손을 댄 것을 몰랐을 것이고 그 트럭의 속도라면 그녀가 탄 카니발은 분명 전복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했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임우연은 또 한 번 식은땀을 흘렸다.목적지에 도착한 강지찬은 하얗게 질린 임우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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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8화

“실수했다고? 그 트럭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건데?”고남준은 펄쩍 뛰었고 강원훈의 안색도 많이 어두웠다.“강지찬은 진작부터 우리의 계획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정유진이 타던 차를 본인이 탄 거야. 그 차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두 트럭 사이로 지나갔다고? 빌어먹을! 대체 우리 계획을 어떻게 안 거야?”고남준은 오히려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그 기사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아뇨, 그 자식은 음주운전을 한 기록이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큰일이 없었으니 본인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거예요.”고남준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강지찬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X발!”서울에 온 후 사업이 순탄치 않았고 모처럼 강지찬이 사고를 당한 틈을 타 회사의 발전이 조금 나아지나 싶었는데 뜻밖에도 강지찬은 죽지 않았다.하지만 고남준보다 더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강원훈이었다.임미연은 아직 갇혀있었기에 이쪽 일을 망친 강원훈은 얼른 에이프릴 홀로 갔다.침대에 누워있는 임미연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고 침대 옆 캐비닛 위에는 태아 보호제 한 통이 놓여 있었다.강원훈을 본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셋째 어르신, 제발 놓아주세요. 앞으로 무엇을 시키든지 다 할게요. 정말 이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아요!”강원훈은 코웃음을 쳤다.“재벌 집 사모님이 되려는 꿈에서 아직도 안 깼네?”임미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절대 당신 말 믿을 수 없어요. 당장 날 데리고 가요!”강원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데려다줄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지?”강원훈이 너무 미웠지만 임미연은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걱정 마세요. 그렇게 멍청하지 않으니까.”임미연이 에이프릴 홀을 떠나자마자 강지찬은 이내 소식을 접했다.하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임미연은 지금 그의 손바닥에 있기에 어떤 수완도 부릴 수 없다.강지찬의 목표는 그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사람이다.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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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9화

자현거의 침대에 있는 정유진은 다시 다가오는 남자를 참다못해 발로 걷어찼다.“당신이 먼저 나를 건드린 거잖아.”정말 악인이 먼저 고자질한다는 말이 맞다.“염치도 없어.”정유진은 힘이 빠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을 정도였다. 단지 먼저 키스한 것뿐인데 그 결과가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다.이 사람은 마치 800년을 굶은 사람 같았고 확실히 임미연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았다.시간을 힐끗 바라본 강지찬은 시계가 벌써 9시를 가리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퇴근하자마자 이곳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저녁도 먹지 않고 있었다.“배고프지? 먹을 것 좀 가져다 달라고 할게. 뭐 먹고 싶어?”“죽.”강지찬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긴 바지나 집어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더니 사람을 시켜 저녁 사 오라고 지시했다.정유진은 한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샤워하고 나오니 강지찬은 이미 침대 시트를 갈아놓았다.“내일 쉬니까 집에 들러 얼굴이라도 보여줘요.”정유진의 말을 들은 강지찬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여러 번 가봤어. 우리 딸이 키가 또 훌쩍 컸더라고. 생긴 것도 당신과 똑같고.”정유진의 나른한 눈망울에는 그녀도 모르게 애교가 묻어났다.“얘기해봐요. 어떻게 된 거예요? 구조대가 그 강을 샅샅이 뒤졌지만 당신 신발 한 짝만 찾았어요.”아내를 품에 안은 채 그때 일을 떠올린 강지찬은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두려웠다.“차가 아래로 떨어졌을 때 강물에 빠졌어. 너무 심하게 다쳐 강에서 바로 의식을 잃었고. 머리를 다쳤는데 머릿속에 핏덩어리가 고여 기억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몇 달 동안 계속 혼수상태에 빠졌어. 그때 임미연이 계속 내 곁에 있었어. 나중에 수술을 받고 나서야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는데 그 여자가 글쎄 본인이 임신을 했대. 하지만 나는 그 여자를 건드린 적이 없어.”“임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의심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나 강지찬이 누구야? 기억을 잃어 혼수상태에 빠져도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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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0화

강지찬과 정유진은 지엘 별장으로 돌아갔다.강지찬을 본 어르신 부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말 한마디를 못 했고 이명자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그저 단순히 강지찬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아빠가 출장을 다녀온 줄로 생각하고 있는 연우는 그의 품에 안기더니 화가 난 얼굴로 그를 꾸짖었다.강지찬은 이곳에서 점심까지 먹은 뒤 본가로 향했고 일부러 정유진과 같이 오지 않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저택 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저택과 점점 가까워지자 강지찬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안에 사는 어르신이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짜로 지엘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을 지경이었다.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고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있는 그곳이야말로 진짜 집인 것 같았다.어쩐지 강지아가 소란을 피우더라니, 고모할머니가 또 임미연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강홍식은 강지찬을 보자마자 정유진과 언제 이혼하냐고 물었다.이 말을 들은 강지아는 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자기 오빠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오빠가 정신이 나가 갑자기 확답을 할까 봐 두려웠다.“유진 씨와 왜 이혼해야 하는데요?”메인 자리에 앉은 강지찬이 담담한 표정을 짓자 고모할머니는 임미연의 손을 잡고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미연이는 너에게 진심이야. 지금 아이까지 생긴 마당에 책임질 생각이 없는 거야?”강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책임져야죠.”“그러면 너...”“하지만 서두를 필요 없잖아요.”강홍식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왜 서두를 필요 없는데? 너는 급하지 않을지 몰라도 미연이는 점점 배가 불러와. 내 손주가 명분 없이 태어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아.”옆에 있던 고세연은 말없이 눈을 희번덕거렸다.임미연과 관련된 일이면 고세연은 그리 따지고 싶지 않았다.이 여자가 어떻게 강지찬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정유진을 미워하지만 강지찬도 증오한다. 이 두 사람을 원수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너무 한스러웠다.하지만 임미연이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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