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찬과 정유진은 지엘 별장으로 돌아갔다.강지찬을 본 어르신 부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말 한마디를 못 했고 이명자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그저 단순히 강지찬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아빠가 출장을 다녀온 줄로 생각하고 있는 연우는 그의 품에 안기더니 화가 난 얼굴로 그를 꾸짖었다.강지찬은 이곳에서 점심까지 먹은 뒤 본가로 향했고 일부러 정유진과 같이 오지 않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저택 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저택과 점점 가까워지자 강지찬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안에 사는 어르신이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짜로 지엘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을 지경이었다.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고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있는 그곳이야말로 진짜 집인 것 같았다.어쩐지 강지아가 소란을 피우더라니, 고모할머니가 또 임미연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강홍식은 강지찬을 보자마자 정유진과 언제 이혼하냐고 물었다.이 말을 들은 강지아는 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자기 오빠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오빠가 정신이 나가 갑자기 확답을 할까 봐 두려웠다.“유진 씨와 왜 이혼해야 하는데요?”메인 자리에 앉은 강지찬이 담담한 표정을 짓자 고모할머니는 임미연의 손을 잡고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미연이는 너에게 진심이야. 지금 아이까지 생긴 마당에 책임질 생각이 없는 거야?”강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책임져야죠.”“그러면 너...”“하지만 서두를 필요 없잖아요.”강홍식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왜 서두를 필요 없는데? 너는 급하지 않을지 몰라도 미연이는 점점 배가 불러와. 내 손주가 명분 없이 태어나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아.”옆에 있던 고세연은 말없이 눈을 희번덕거렸다.임미연과 관련된 일이면 고세연은 그리 따지고 싶지 않았다.이 여자가 어떻게 강지찬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정유진을 미워하지만 강지찬도 증오한다. 이 두 사람을 원수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너무 한스러웠다.하지만 임미연이 사모님 자리에 오르는 것
임미연은 어린 며느리처럼 강지찬 남매의 뒤를 따랐고 그런 모습에 강지아는 화를 냈다.“오빠가 너에게 궁궐 같은 집을 사줬잖아. 그런데 왜 이사를 안 가, 여기가 네가 살 수 있는 곳이야?”“지찬 오빠 옆을 떠나고 싶지 않아.”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가지 않은 강지찬은 강지아를 향해 말했다.“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 오늘 밤엔 안 올 거야. 너는 여기에 있을 거야, 아니면 지금 사는 곳으로 갈 거야?”“이 여자와 한 지붕 아래에 있고 싶지 않아.”강지아는 혹시라도 참지 못하고 미연이를 밀까 봐 너무 두려웠다.“그럼 내가 데려다줄게.”강지찬이 강지아를 데리고 가자 임미연은 황당한 얼굴로 멀어지는 강지찬의 뒷모습을 봤다.강지찬은 시종일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거지?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참지 못하고 강원훈의 마당을 바라봤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차마 강원훈을 찾아가 상의할 엄두가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의사는 태아가 매우 불안정하다고 했고 그녀더러 좀 더 입원해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지만 임미연 혼자 걱정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왔다.그런데 그녀를 대하는 강지찬의 태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변할 줄은 몰랐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 누구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임미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용기를 내어 강원훈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강지찬은 강지아를 집에 데려다준 후 얼른 지엘 별장으로 향했다.밤에도 이곳에서 잤고 두 사람은 딸의 곁을 지키다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정유진의 방으로 돌아갔다.욕실에서 샤워를 한 뒤 문을 밀고 들어오던 강지찬은 정유진의 촉촉한 눈과 마주쳤다.“뭘 그렇게 쳐다봐? 내가 남이야?”정유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남이 아니라 내 남편이죠.”‘내 남편'이라는 세 글자에 강지찬은 또 한 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그녀 옆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 또 힘 빼고 싶어서 그래?”그
오랜 세월을 참고 견디던 강원훈은 이런 쓸모없는 사람을 찾아 강지찬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차 사고로 죽은 게 확실해?”순간 멍해진 장형준은 이내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사람은 확실히 교통사고로 죽은 게 맞아요. 대표님, 혹시 의심하고 있는 것이라도 있나요?”강지찬이 담담하게 말했다.“밀입국을 하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게 너무 웃기지 않아?”장형준은 순간 흠칫 놀랐다.“계속 조사해 보겠습니다.”하지만 장형준의 이번 조사에서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강원훈이 강지찬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다는 것이다.설을 앞둔 시점이라 K그룹은 송년회 준비가 한창이었다.강지찬은 여전히 회사에 가지 않았고 당분간은 정유진이 회사를 돌봤다.올해 K그룹의 송년회도 여느 해처럼 스타들을 초대했다. 게다가 강지찬까지 돌아왔으니 회사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강지찬이 며칠째 본가로 돌아가지 않자 임미연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그녀에 대한 강지찬의 태도가 변한 것은 분명해졌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 몸이 한결 좋아지자 임미연은 드디어 집 밖을 나갔다.강원훈은 도착하자마자 선글라스를 낀 그녀의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혀 혀를 끌끌 찼다.“겁이 그렇게 많으면 아무것도 하지 마.”강원훈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큰 저택도 이제 손에 넣었으니 너도 손해 볼 게 없잖아.”임미연은 이 인간이 일부러 자기를 자극한다는 것을 알고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아들과 손자 사이가 되는 게 싫은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요?”강원훈은 손가락으로 웨이터를 불러 커피 한 잔을 달라고 한 후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언제? 너의 배 속에 호랑이가 있든 고양이가 있든 나와 상관없어. 앞으로 강씨 집안 전체가 배 속의 아이 것이 되더라도 나와 상관없어.”그럴듯한 말이었지만 임미연은 믿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강원훈에게 부탁해야 하는 처지니 당연히 내색할 수 없었
조예원이 말을 하지 않자 임미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나를 무시해요?”조예원의 피식 웃는 모습이 임미연의 눈에 너무 거슬렸다. 사실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무런 명분 없이 이 저택으로 들어왔다. 다른 점이라면 조예원의 아들은 강지현의 친자식이지만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나이가 어린 임미연은 이런 상황에서 역시나 화를 참지 못했다.“정말 너무 버릇이 없네요. 어쩐지 지현 오빠가 그쪽을 좋아하지 않더라니.”강지현이 조예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하지만 이것은 조예원에게 전혀 상처가 되지 않았다.임미연의 배를 힐끗 본 조예원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참 공교롭네? 강지찬도 그쪽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잖아. 동생, 거울 있어? 거울 좀 봐.”조예원은 말을 마치자마자 숨도 쉬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갔다.화가 난 임미연은 피를 토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특히 조예원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임미연은 또 한 번 당황했다.“이 집안 여자는 정상인 사람이 하나도 없어”그 후로 임미연은 정원으로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너무 답답해서 참지 못하면 가끔 집 앞마당을 어슬렁거렸다.집이 너무 큰 탓일 수도 있지만 왠지 이 집안의 사람들이 너무 차갑다고 느껴졌다.분명 다섯 가족이 살았지만 평소에 서로의 집을 드나들지 않았다.고세연은 그녀를 상대도 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늙은이에게 시집간 고세연을 혐오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소 닭 보듯 했다.주연지는 그녀와 강원훈의 관계를 모르지만 강지찬의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멀리했고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둘째네 집에 있는 송지윤은 정유진이 친하기에 그녀를 보면 모른 척했다.조예원은?이 여자는 더욱 뜬금없었다.임미연은 조예원과 잘 지내고 싶었다. 두 사람은 적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어떻게 보면 동맹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조예원은 전혀 그런 뜻이 없었다.혼자 고
강지아는 사실 만취하기는커녕 아주 멀쩡한 모습이었다. 정유진을 보자마자 억울하다는 듯 새언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무슨 일이야?”정유진도 강지아를 못 본 지 며칠 됐다.강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분은 매우 나빠 보였다.정유진이 다시 최의현을 쳐다보자 최의현은 손사래를 쳤다.“나는 몰라요. 요즘 너무 바빠서 이 계집애가 뭘 하는지도 몰라요. 이렇게 해요. 유한이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죠.”강지아는 온유한과 가까운 사이이기에 아마 온유한만이 그녀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최의현이 전화를 걸자 휴대폰 너머의 온유한은 바빠서 못 온다고 했다.“너의 병원은 연말에도 이렇게 바빠? 와서 술 먹을 시간도 없어?”“친구가 외국에서 와서 만나야 해.”온유한이 휴대전화 너머로 말하자 최의현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그래. 그럼 너의 이 조상님은 내가 돌볼게. 너는 네 일이나 봐.”전화를 마치고 뒤를 돌아보니 강지아의 얼굴이 완전히 어두워졌다.강지아는 서원준을 끌고 춤추러 가자고 난리였다. 서원준이 어찌 쉽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정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서원준은 그들과 같은 편이지만 남녀 사이의 일이었기에 정유진은 그를 믿지 않았다.“됐어요. 내가 지아를 돌볼게요. 이곳은 잘 부탁할게요.”정유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강지아를 잡으러 갔다.방금까지 정유진과 붙어있던 강지아는 서원준의 품에 안기더니 그의 허리를 꼭 껴안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오늘 이 사람과 함께 놀 거예요. 아무도 말리지 말아요.”정유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계집애에게 걱정거리가 있는 게 분명했다.서원준 이 자식도 별로 좋은 놈은 아닌 듯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말했다.“정 대표님, 보세요. 저도 강요한 적 없어요.”“X발!”최이현이 서원준의 멱살을 잡더니 당장 때릴 기세였다.정유진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며 말했다.“둘 다 진정하세요. 두 분 꼴 좀 보세요.”그리고 강지아를 강제로 서원준의 품에서 끌어와 옆에 있던
저녁이 되자 정유진은 강지찬과 강지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온유한 씨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지아와 싸웠어요?”“주유정이 돌아왔어.”강지찬이 말했다.“주유정이 누구예요?”강지찬은 몇 초가 지난 후 말했다.“유한이 전 여자친구.”정유진은 깜짝 놀랐다.“첫사랑이에요?”“어.”입을 딱 벌린 정유진은 한참 후에야 말했다.“어쩐지 지아 그 계집애가 요즘 이상하더라니. 온유한 씨는 대체 무슨 뜻인데요, 첫사랑에 대한 옛 감정이 되살아난 거예요? 그리고 지아에게 그런 감정이 있긴 한 거예요?”이 물음에 강지찬은 순간 멈칫했다.강지아는 열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병원에 있었다. 그래서 그의 형제들은 그녀를 모두 어린애로 여겼고 나중에 병이 나아도 강지찬의 눈에 이 계집애는 여전히 어린애였다. 비록 지아가 온유한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았지만 은연중에 그런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 관계를 확실히 하지 않았다.온유한에게 강지아에 대한 마음이 어떻냐고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다. 강지찬이 아무리 오빠라고 해도 이 부분에서는 잘 모를 것 같았다.“기회가 되면 유한이와 이야기를 나눠볼게.”강지찬이 말했다.정유진은 걱정스러운 듯 휴대전화를 건넸다.“지아와 얘기 좀 해볼게요.”하지만 메시지 몇 통을 보내도 강지아는 답장하지 않았다.“온유한 때문에 화가 나서 서원준에게 막 덤비는 건 아니겠죠?”정유진은 생각할수록 걱정이었지만 강지찬은 아주 덤덤했다.“아니, 계집애가 일부러 장난치는 거야. 서원준 그 자식도 함부로 하지 않을 거야.”“정말이죠? 당신 남자들이 남자를 그렇게 잘 알아요?”정유진이 강지찬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말하자 강지찬은 약간 득의양양했다.“서원준을 아는 게 아니라 내 안목을 믿는 거야. 그 녀석은 겉보기에는 날라리 같아도 아주 보수적인 사람이니까. 게다가 강지아가 진짜로 서원준과 같이 있겠다고 하면 나도 반대할 생각은 없어.”강지찬의 말에서도 온유한에 대해 불만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는 정유진을 다시
“유한 씨, 뭘 보고 있어?”주유정은 온유한의 시선을 따라 춤을 추는 남녀들을 보았다.가운데에 포니테일을 높게 묶은 여자애가 특히 눈에 띄게 예뻤고 춤도 잘 춰서 무대 위의 메인 인물이 되었다.온유한은 주유정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위로 향했다.신나게 뛰고 있던 강지아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손목을 잡혔다.앞에 있는 남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대역무도한 나쁜 짓을 하다가 덜미를 잡힌 것처럼 말이다.“왜 안 춰요. 이 사람 누구예요?”“이쁜 아가씨, 계속 춤춰요.”두 남학생이 옆에서 강지아를 불렀다.한편 옆에 있던 서원준도 멈춰 섰다.양복 외투를 벗고 셔츠 깃의 단추를 몇 개 연 건들건들한 모습은 불량배 같았다.“누구세요?”온유한을 보는 서원준의 얼굴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적대적이다.하지만 그 말에 대꾸할 온유한이 아니었다. 굳은 얼굴로 강지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누가 이런 데 오라고 했어? 오빠는 알아?”이때, 주유정이 다가와 온유한의 또 다른 팔을 잡아당겼다.“유한 씨, 왜? 아는 사이야?”온유한은 여전히 강지아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런 곳은 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돌아가.”강지아는 그의 팔을 뿌리치더니 주유정을 힐끗 쳐다보고는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왜 못 오는데? 나 이제 성인이야,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내 일이라고.”그러고는 서원준을 향해 말했다.“계속 춰요.”서원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사람들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더 따라가려던 온유한은 주유정에게 붙잡혔다.주유정이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 너무 시끄러워. 저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들면 우리 저기에서 기다려.”강지아의 성격이 얼마나 고약한지 잘 알고 있는 온유한인지라 그녀가 바로 화를 풀지 않을 것을 알고 주유정과 옆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렸다.무대 위의 음악 소리가 점점 강렬해져 가까이에서 말할 때도 소리를 질러야 했다.주유정은 온유한의 시선이 무대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동생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강지아도 더 이상 춤출 기분이 나지 않아 서원준을 끌고 술집을 나섰다.온유한과 주유정도 걸어 나왔다.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재킷을 입은 강지아는 외출하자마자 추위에 떨었다.대리운전 기사에게 차 키를 맡긴 서원준은 몸을 떨고 있는 강지아의 모습을 보고 얼른 입고 모직 코트를 걸쳐줬다.재킷을 벗으려던 온유한은 순간 몸이 굳었다.“다음에 나올 때는 많이 껴입고 나와요. 바보도 아니고.”“참견하지 마요!”서원준은 욕을 먹었지만 화를 내지 않고 손을 뻗어 강지아의 얼굴을 주물렀다.“내가 어떻게 참견을 안 해요? 이러다가 나중에 아프면 강 대표님과 정 대표님이 따지러 오면 어떡하려고요?”강지아는 콧방귀를 뀌고는 온유한과 주유정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서원준은 아주 외향적인 사람인 듯 온유한과 전혀 모르는 사이이지만 기어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서원준이라고 합니다. K그룹에 계열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명품 브랜드 정장 차림에 수십억 원이 넘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이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하니 은근히 우스웠다.“온유한이라고 합니다.”온유한은 자기 이름만 알렸다.상대방이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았지만 서원준은 꼬치꼬치 캐물었다.“지아의 친구예요? 그쪽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어요.”“집안끼리 잘 알아요.”온유한은 고개를 숙인 채 바로 옆에 있는 돌을 차는 지아를 보며 말했다.“타. 집까지 바래다줄게.”강지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자기에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상관하지 마.”서원준은 피식 웃었다.“괜찮아요. 제가 바래다주면 되니까, 온 선생님은 여자친구부터 배웅해 주세요.”강지아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온유한은 서원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그럼 부탁할게요. 시간이 늦었으니까 일찍 바래다주세요.”그리고 다시 강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집에 도착하면 전화해.”강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기까지 말했지만 차를 가지러 간 대리운전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