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자 정유진은 강지찬과 강지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온유한 씨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지아와 싸웠어요?”“주유정이 돌아왔어.”강지찬이 말했다.“주유정이 누구예요?”강지찬은 몇 초가 지난 후 말했다.“유한이 전 여자친구.”정유진은 깜짝 놀랐다.“첫사랑이에요?”“어.”입을 딱 벌린 정유진은 한참 후에야 말했다.“어쩐지 지아 그 계집애가 요즘 이상하더라니. 온유한 씨는 대체 무슨 뜻인데요, 첫사랑에 대한 옛 감정이 되살아난 거예요? 그리고 지아에게 그런 감정이 있긴 한 거예요?”이 물음에 강지찬은 순간 멈칫했다.강지아는 열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병원에 있었다. 그래서 그의 형제들은 그녀를 모두 어린애로 여겼고 나중에 병이 나아도 강지찬의 눈에 이 계집애는 여전히 어린애였다. 비록 지아가 온유한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았지만 은연중에 그런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 관계를 확실히 하지 않았다.온유한에게 강지아에 대한 마음이 어떻냐고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다. 강지찬이 아무리 오빠라고 해도 이 부분에서는 잘 모를 것 같았다.“기회가 되면 유한이와 이야기를 나눠볼게.”강지찬이 말했다.정유진은 걱정스러운 듯 휴대전화를 건넸다.“지아와 얘기 좀 해볼게요.”하지만 메시지 몇 통을 보내도 강지아는 답장하지 않았다.“온유한 때문에 화가 나서 서원준에게 막 덤비는 건 아니겠죠?”정유진은 생각할수록 걱정이었지만 강지찬은 아주 덤덤했다.“아니, 계집애가 일부러 장난치는 거야. 서원준 그 자식도 함부로 하지 않을 거야.”“정말이죠? 당신 남자들이 남자를 그렇게 잘 알아요?”정유진이 강지찬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말하자 강지찬은 약간 득의양양했다.“서원준을 아는 게 아니라 내 안목을 믿는 거야. 그 녀석은 겉보기에는 날라리 같아도 아주 보수적인 사람이니까. 게다가 강지아가 진짜로 서원준과 같이 있겠다고 하면 나도 반대할 생각은 없어.”강지찬의 말에서도 온유한에 대해 불만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는 정유진을 다시
“유한 씨, 뭘 보고 있어?”주유정은 온유한의 시선을 따라 춤을 추는 남녀들을 보았다.가운데에 포니테일을 높게 묶은 여자애가 특히 눈에 띄게 예뻤고 춤도 잘 춰서 무대 위의 메인 인물이 되었다.온유한은 주유정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위로 향했다.신나게 뛰고 있던 강지아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손목을 잡혔다.앞에 있는 남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대역무도한 나쁜 짓을 하다가 덜미를 잡힌 것처럼 말이다.“왜 안 춰요. 이 사람 누구예요?”“이쁜 아가씨, 계속 춤춰요.”두 남학생이 옆에서 강지아를 불렀다.한편 옆에 있던 서원준도 멈춰 섰다.양복 외투를 벗고 셔츠 깃의 단추를 몇 개 연 건들건들한 모습은 불량배 같았다.“누구세요?”온유한을 보는 서원준의 얼굴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적대적이다.하지만 그 말에 대꾸할 온유한이 아니었다. 굳은 얼굴로 강지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누가 이런 데 오라고 했어? 오빠는 알아?”이때, 주유정이 다가와 온유한의 또 다른 팔을 잡아당겼다.“유한 씨, 왜? 아는 사이야?”온유한은 여전히 강지아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런 곳은 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돌아가.”강지아는 그의 팔을 뿌리치더니 주유정을 힐끗 쳐다보고는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왜 못 오는데? 나 이제 성인이야,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내 일이라고.”그러고는 서원준을 향해 말했다.“계속 춰요.”서원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사람들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더 따라가려던 온유한은 주유정에게 붙잡혔다.주유정이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 너무 시끄러워. 저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들면 우리 저기에서 기다려.”강지아의 성격이 얼마나 고약한지 잘 알고 있는 온유한인지라 그녀가 바로 화를 풀지 않을 것을 알고 주유정과 옆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렸다.무대 위의 음악 소리가 점점 강렬해져 가까이에서 말할 때도 소리를 질러야 했다.주유정은 온유한의 시선이 무대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동생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강지아도 더 이상 춤출 기분이 나지 않아 서원준을 끌고 술집을 나섰다.온유한과 주유정도 걸어 나왔다.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재킷을 입은 강지아는 외출하자마자 추위에 떨었다.대리운전 기사에게 차 키를 맡긴 서원준은 몸을 떨고 있는 강지아의 모습을 보고 얼른 입고 모직 코트를 걸쳐줬다.재킷을 벗으려던 온유한은 순간 몸이 굳었다.“다음에 나올 때는 많이 껴입고 나와요. 바보도 아니고.”“참견하지 마요!”서원준은 욕을 먹었지만 화를 내지 않고 손을 뻗어 강지아의 얼굴을 주물렀다.“내가 어떻게 참견을 안 해요? 이러다가 나중에 아프면 강 대표님과 정 대표님이 따지러 오면 어떡하려고요?”강지아는 콧방귀를 뀌고는 온유한과 주유정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서원준은 아주 외향적인 사람인 듯 온유한과 전혀 모르는 사이이지만 기어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서원준이라고 합니다. K그룹에 계열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명품 브랜드 정장 차림에 수십억 원이 넘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이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하니 은근히 우스웠다.“온유한이라고 합니다.”온유한은 자기 이름만 알렸다.상대방이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았지만 서원준은 꼬치꼬치 캐물었다.“지아의 친구예요? 그쪽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어요.”“집안끼리 잘 알아요.”온유한은 고개를 숙인 채 바로 옆에 있는 돌을 차는 지아를 보며 말했다.“타. 집까지 바래다줄게.”강지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자기에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상관하지 마.”서원준은 피식 웃었다.“괜찮아요. 제가 바래다주면 되니까, 온 선생님은 여자친구부터 배웅해 주세요.”강지아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온유한은 서원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그럼 부탁할게요. 시간이 늦었으니까 일찍 바래다주세요.”그리고 다시 강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집에 도착하면 전화해.”강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기까지 말했지만 차를 가지러 간 대리운전
서원준은 강지아를 일 층까지 바래다줬고 엘리베이터까지 눌러줬다.“모레 오후 5시에 데리러 올게요. 화장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회사에 스타일리스트가 있으니까.”서원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서울의 최고급 동네답게 곳곳에 CCTV가 있었고 24시간 순찰하는 경비원이 있어 싱글이고 돈 많은 여자들이 살기에 아주 적합했다.강지아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차 한 잔 알래요? 이틀 동안 같이 있어 줘서 고마워요.”서원준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아니에요.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감기약 먹어요. 내일 꼭 따뜻하게 입고요.”“네.”강지아는 대답을 하며 그에게 코트를 돌려주었다.그녀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서원준은 손을 흔들며 떠났다.집은 정기적으로 하인이 와서 청소하고 냉장고는 방경숙이 정기적으로 와서 여러 음식과 음료수를 넣어줬다.난방도 잘되는 집이라 강지아는 맨발로 걸어 나와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셨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온유한에게서 걸려온 전화이다.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고 핸드폰을 탁자 위에 놓고 방으로 가서 잠을 잤다.K그룹.점심을 먹은 정유진은 근처에 있는 유명한 마사지 가게에 가서 사우나를 했다.요즘 너무 바빠서 요가 할 틈이 없었기에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목뼈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옷을 벗을 때 목과 가슴에 키스 마크가 보여 당황하기도 했다.사우나를 마치니 온몸이 편안해졌다.K그룹 로비에 들어서자 프런트 데스크 안내직원이 멀리 보고 반겨 주었다.“정 대표님, 누가 찾아왔습니다.”“어디에 있는데요?”“유진 언니, 나예요.”고개를 돌려보니 임미연이 한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다가왔다.임신한 티가 나지 않은 상태에 이런 동작을 하니 보기에 좀 이상했다.정유진이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일, 일이 있어요...”정유진의 목덜미를 바라본 임미연은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착각이 아니라면 정유진의 목에 있는 것은 분명 키스 마크이다.목에 어떻게 키스 마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설
강지찬은 최근 다시 살아난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고 점심에는 아예 드러누운 채 두 부녀가 티타임을 가졌다.연우는 종업원의 보살핌을 받으며 즐겁게 먹었다.강지찬은 옆에 있는 장형준의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그 사람의 죽음, 역시 사고가 아니었어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찾고 있는데 아마 금지 물품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강지찬은 눈썹을 찡그렸다. 진짜로 속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다.경솔하게 굴다가 들통날 수 있기에 그는 장형준에게 더 이상 알아보지 말라고 했다.저녁에 정유진과 이야기를 나누자 정유진이 말했다.K그룹이 땅을 손에 넣자마자 강원훈과 고남준이 다시 조용해졌어요. 셋째 숙부는 심지어 매일 회사에 오고요. 참, 두 사람이 그렇게 가까이 지내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찾아보면 알겠지?”강지찬은 무심히 대답했다.금방 샤워한 정유진인지라 손끝이 너무 부드러워 앞에 있는 남자는 또 한 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오늘 임미연이 회사에 찾아왔어요.”“자기들끼리 소란 피우게 내버려 둬. 신경 쓰지 말고.”강지찬이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정유진은 불타오르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손으로 그의 입술을 가렸다.“오늘 밤은 안 돼요.”“왜 안 돼요?”“그날이에요.”강지찬은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자기 물건을 만지더니 순식간에 맥빠진 개처럼 그녀의 목에 머리를 묻고는 길게 들이마셨다.그리고 다시 일어나 샤워를 하며 욕망의 불씨를 가라앉혔다.그 모습이 정유진은 너무 우스웠다.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보며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휴대전화에는 서울의 재벌 집 사모님들이 단톡이 있었다. 그 단톡에서는 한창 온유한과 주유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그해 고등학생 때, 온유한과 주유정이 학교에서 얼마나 유명한 커플이었어요][주유정이 결혼 안 한 이유가 아직도 온유한을 못 잊어서일 거라고 우리 모두 의심하고 있잖아요.][둘 다 나이가 찼으니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어요.][근데 그때 왜 헤어진 거예요?][장거리였으니까
강지아가 잠에서 깼을 때 방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정유진과 온유한이다.“새언니? 왜 여기에 있어요?”“성유 송년회 보러 왔어.”정유진은 온유한을 힐끗 쳐다본 뒤 말했다.“송년회가 끝나가는데 현장을 예쁘게 디자인이 한 사람이 왜 여기에서 자고 있어?”강지아는 머리를 쥐여 잡으며 말했다.“같이 소란 피우기 싫어서 잠깐 눈을 붙인 건데... 새언니, 이제 가려고요? 같이 가요.”정유진이 엉겁결에 온유한을 쳐다보자 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강지아는 마치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를 공기처럼 여겼다.그 모습에 정유진이 웃으며 말했다.“일 있으면 먼저 가봐요. 지아는 내가 데려다줄게요.”온유한이 떠나자 강지아는 두 눈이 멍해졌다.정유진이 다가가 안아주자 계집애는 이내 정유진을 꼭 껴안았다.극도의 안정감이 필요한 모양이다.“새언니, 왜 같이 왔어요?”“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있었어.”강지아는 잠이 쏟아지는 눈으로 정유진을 바라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첫사랑과 같이 안 있고 여긴 뭐하러 왔대요?”“네 생각엔? 성유의 송년회가 유한 씨와 무슨 상관이 있겠어? 네가 걱정되어서 온 게 아닐까?”“그런 걱정 따위 필요 없거든요.”“그럼 주유정과 재결합하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강지아는 뽀로통하게 말했다.“새언니, 굳이 자기 것이 아니라면 뺏을 필요도 없겠죠.”정유진은 본인 기분이 강지아에게 영향을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진짜로? 정말 너의 유한 오빠를 다른 사람에게 줄 거야? 내가 알기로는 지금 주유정과 사귀는 사이는 아닌데. 한 번 도전해 보지 않을래?”강지아는 짜증이 난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몰라요. 그 여자가 돌아온 이후로 연락을 잘 안 해요.”“이렇게 내버려 두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 너도 유한 씨를 놓지 못하겠다는 뜻이야. 어찌 됐든 너의 오빠와 나는 항상 너를 응원할 거니까 너의 행복이 제일 중요해.”“새언니가 제일 좋아요!”정유진은 그녀에게 옷을 건네며 말했
드디어 방학이 되었다. 강지찬은 가족을 데리고 곧장 해성시로 날아갔다.그가 설 쇠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본가는 아내와 아이, 장인어른과 장모를 데리고 해성시에 나가 설을 쇤다는 말을 들었다. 강홍식은 하마터면 화가 나 기절할 뻔했다.임미연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지찬 오빠와 유진 언니가 해성에 갔다고요?”“그럴 리가.”고세연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속은 은근히 통쾌했다.강씨 가문은 절대 쉽게 들어올 수 없을뿐더러 강지찬과 정유진도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임미연 같은 여자가 들어온다면 고세연의 그동안 고생은 헛된 것이 아니겠는가?“강지찬과 정유진이 화해한 거 아니에요?”임미연이 서운한 얼굴을 보이자 고세연은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그래서 요즘 본가에 통 나타나지 않은 거였네요. 그리고 얼마 전에 연우를 데리고 놀이공원과 승마장에 갔다고 하던데 인제 보니 계속 정유진의 집에 머물고 있었네요.”임미연의 안색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고세연은 아주 통쾌했지만 일부러 아닌 척했다.“미연 씨,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아파요?”임미연은 눈시울을 붉히던; 억울한 듯 강홍식을 바라봤다.“어르신, 지찬 오빠를 불러주면 안 돼요?”강홍식은 난처했다.강지찬이 부른다고 쉽게 온다면 매일 그를 불효자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대여섯 살 때 할아버지를 따라다닌 강지찬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그, 그게...”강홍식이 우물쭈물하자 임미연은 다시 말했다.“지찬 오빠는 강씨 집안의 기둥이고 집안의 가장이에요. 가장이 없는데 설을 어떻게 보내요? 밖에 다른 사람이 알면 우리 강씨 집안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맞는 이치지만 강지찬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에게 직접 말할 사람은 없었다.임미연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어르신, 배 속에 강씨 집안의 장손이 있어요.”원래부터 귀가 얇은 강홍식은 손자 체면을 봐서라도 전화는 걸어야 했다.하지만 직접 걸지 않고 집사에게
설날 강원훈이 집에서 아이를 때렸고 강지호의 울음소리가 본가 전체에 울려 퍼졌다.주연지는 아들과 새해에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강원훈이 번복해 강지호가 소란을 피우다가 결국 얻어맞았다.아들이 숨을 내쉬며 우는 것을 보니 주연지도 답답했다.“호텔까지 다 잡았는데 왜 못 간다는 거예요? 내연녀가 같이 있어 달래요?”강원훈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순간 이 모자를 집안에 데려온 것이 큰 실수라고 생각했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으니 말이다.“닥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짐 싸서 꺼져!”말을 마친 뒤 떵떵거리며 계단을 올라갔고 그 모습에 주연지는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고 강지호만은 옆에 가만히 있었다.옷을 갈아입은 강원훈을 보니 외출하려고 하는 것 같다.주연지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설날 아침부터 어디에 가려고요?”강원훈이 코웃음을 쳤다.“요즘 한 여대생이 눈에 띄더라고.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들어. 왜, 불만이 있어?”주연지는 온몸을 떨었지만 강원훈은 아무런 미련 없이 가버렸다.이 사람이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닌 것을 알지만 아들 때문에 한 번도 여자를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최대한 주연지에게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주연지도 그냥 모른 척해다. 여자가 없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적어도 강원훈이 그녀에게 돈을 주고 확실한 명분도 주지 않았는가? 강씨 집안의 셋째 사모님 명의가 있고 아들에게 돈이 있으니 더 욕심낼 것도 없었다.그런데 지금 강원훈은 아들 앞에서 바깥 여자 얘기를 꺼냈다.“강원훈, 이 나쁜 놈!“주연지는 고가의 값비싼 꽃병을 깨뜨렸다.조예원도 셋째 집에서 나는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들었다.휴대폰 영상 속에서 조예원 어머니가 정유진에 대해 물었다. 조예원 어머니는 두 사람이 손절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당부했다.“날씨가 따뜻해지고 유진이가 한가해지면 아이들과 함께 돌아와. 나도 유진이를 본지 오래돼서 보고 싶어.”조예원은 자기 어머니가 외손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최신애는 반평생 살면서 오늘 처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고고한 이미지를 다 내려놓은 채 마치 미친 사람처럼 싸워봤다.그리고 온유한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더욱 흥분해서 그에게 물었다.“봐봐,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가 지금 어떤 꼴인지. 더 할 말이 있어?”온유한은 그저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는데 침대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된 채 바닥에는 뜯긴 콘돔이 널려져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주 덤덤하게 현채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샤워 가운을 다시 입혀준 뒤 머리도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요?”현채영은 재빨리 답했다.“아니요.”“그럼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온유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최신애는 자기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온유한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끄, 끝이야?”그리고 온유한을 잡고 헝클어진 침대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저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보이냐고! 현장까지 잡은 마당에 넌 아무렇지도 않아?”그러나 온유한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건 저랑 채영 씨 사이의 문제니까 상관하지 마세요.”“온유한!”최신애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변했어?”온유한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답했다.“지태주 씨와의 일은 채영 씨가 나중에 해명할 겁니다. 저는 저 사람을 믿거든요.”“아직도 믿는다고?”최신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두 눈으로 직접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군 꼴을 보고도 믿을 수 있어?”“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죠.”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태주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온 대표님은 정말 좋은 남자의 표본인 것 같네요.”그의 말에 온유한이 그를 힐끔 쳐다보자 지태주도 같이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았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쳤어, 진짜 미쳤어.”계획대로라면 오늘 밤 현채영을 바로 쫒아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안에서 나왔다.제일 앞에 서 있던 강지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뒤따라오던 최의현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저 사람 현채영 아니야? 저 남자는 누가야? 낯이 익네.”한규진은 호텔 로비에 막 들어선 최신애를 보고 한마디 했다.“쯧쯧, 볼거리가 생겼네.”현채영은 그 남자와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최신애가 뒤따라가자 최의현 일행도 따라갔다.“미친, 생각났어.”최의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저 자식, 그 지씨 가문 셋째 아니야? 추호와 친하던 애 있잖아. 지씨 가문에서 꽤 총애를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지씨 가문 셋째?”한규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서울에서 지씨 가문은 명성이 높은 집안은 아니지만 구설수는 꽤 많다.예전에 지씨 집안의 막내아들이 밖에서 데려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사생아이지만 정실 마누라가 낳은 아들보다 더 총애를 받고 있다고 했다.틀림없이 지씨 가문 셋째 아들 지태주일 것이다.지태주와 현채영이 만난다고?생각보다 재미있는 관계가 될 것 같다.최의현은 당당한 모습으로 최신애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스위트룸 방문 앞에 멈춰선 최신애는 노크를 하는 대신 손목시계만 계속 들여다봤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20여 분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온유한은 강지찬 일행과 마주쳤다.온유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찬을 슬쩍 쳐다봤다.강지찬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온유한을 시크하게 흘겨보았다. 화가 난 건지 짜증 난 건지 알 수 없었다.옆에 있던 최의현이 온유한 앞에 다가가더니 턱으로 스위트룸 방향을 가리켰다.“어떻게 된 일이야? 현채영이 왜 지태주와...”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온유한의 말에 강지찬 일행은 온유한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남자와 여자가 한밤중에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서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설마 철학 토론이라도 하겠는가?하지만 온유한은 그들의 생각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본인
“지찬아, 유한이가 미친 거 아닐까? 임유희를 집에서 쫓아내고 현채영을 온씨 저택에 데려갔어. 최신애가 엄청 화를 낼 것 같은데?”최의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현채영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몰랐네... 그때 지아를 신경 쓰는 것보다 더...”강지찬이 힐끗 바라보자 최의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임유희 때문에 온씨 가문과 임씨 가문 사이도 안 좋아졌어. 임씨 가문이 체면을 완전히 구겼잖아. 아마 이번 기회에 단단히 복수하려 할 거야. 그 임씨 부부도 생각이 있는 어른들은 아닌 것 같아. 온유한이 임유희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딸을 이용해 온씨 가문에 바싹 달라붙어 가문의 지위를 올리려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최신애만 그걸 모르고 어떻게든 유한이와 임유희를 엮어주느라 골머리를 앓았지. 온유한은 임씨 가문의 속셈을 알았을까?”한규진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그 자식 계속 약속 펑크내서 이제 어떻게 생겼는지도 까먹을 것 같아.”경은우가 말했다.“유한이 형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일 거야. 유한이 형이 절대 함부로 누구를 대하는 사람이 아닌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까.”최의현이 말했다.“며칠 전 만났을 때 임씨 가문 얘기를 몇 마디 했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몇 사람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지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밤 10시가 넘은 시각. 하루 종일 잠을 잔 현채영은 가방을 들고 외출 준비에 나섰다.“잠깐!”거실에 앉아 있던 최신애는 현채영의 화려한 차림을 보고 화를 냈다.온유한이 석식이 있어 집을 비우니 현채영은 한밤중에 외출을 하려 했다.현채영이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어디 가는 거야?”“친한 여자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어 오늘 밤엔 안 들어올 거예요.”그 말에 최신애는 바로 화를 냈다. “친한 여자친구들?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밖에 안 하는 날라리 여자들?”현
임유희도 온유한에게 쫓겨난 후 몸져누워 열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임유희는 이제 주위에서 웃음거리가 됐다.이 때문에 임씨 부부와 임유희 오빠는 온씨 가문에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바쁜 일과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한 온유한은 문 앞에서 온혁진과 최신애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그때 임유희를 집에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온유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병실에서 최신애가 병상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그럼 내 탓이란 말이에요? 당신 하나뿐인 아들이 현채영 그 여자와 엮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 강지아가 어때서?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최신애, 우리 온씨 가문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온혁진의 말을 들은 최신애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평생 사랑한 이 남자가 그녀를 이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내가 그런 거라고요? 다 유한이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온혁진은 더 이상 이 일로 최신애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유한이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당신이 기어코 유한이와 지아를 갈라놓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강씨 가문과 원수가 되었고 임씨 가문의 미움도 샀어. 만약 임씨 가문이 그때 강지찬처럼 작정하고 우리를 괴롭힌다면 이번에는 누구에게 부탁해서 도와달라고 할 거야?”집안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온혁진의 말에 최신애도 바짝 긴장했다.“투자자들도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자하는데 임씨 가문 때문에 우리에게 뭐라고 하겠어요?”“당신이 뭘 알아?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우리보다 우수한 의료 회사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경쟁업체에서 얼마 전에 외국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도입했다고 들었어. 우리가 올해 주력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는데...”온혁진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이런 얘기를 당신에게 해봤자 당신이 뭘 알겠어. 어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씨 가
강지아도 명성 빌딩에 오래 묵을 생각이 없었기에 아침을 먹자마자 서원준과 함께 집을 나섰다.현관문 너머로 서원준의 목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그제야 어젯밤에 서원준도 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벽을 내리쳤다.한편 기분이 좋아진 서원준은 일부러 온유한을 도발하기 위해 한마디 했다.“지아야, 이 집 어차피 비어 있는데 우리가 이사 오는 게 어때?”강지아는 서원준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꿈 깨.”서원준이 일부러 다가가서 강지아를 품에 꽉 껴안자 강지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뭐 하는 거야?”서원준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내 여자친구에게 뭘 하겠어?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중요한 걸 못했네.”강지아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함부로 행동하기만 해 봐!”강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무언가를 기대하던 서원준은 순간 주눅이 들었다.이런 상황에 사랑하는 남녀들이라면 분명 저도 모르게 끌려서 그다음 진도로 넘어갔을 것이다.놀라움만 가득한 눈빛으로 서원준을 바라보는 순수한 강지아에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하긴 강지아가 왜 고백을 받았는지 서원준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온유한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서원준은 아쉬운 마음에 강지아의 볼을 꼬집은 뒤 말했다.“내일 나 출장 가. 저녁 비행기인데 같이 갈래? 꽤 재미있는 곳인데.”서원준은 연예계 활동 때문에 출장을 가야 했다. 강지아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거기에 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안 가. 요즘 작업실에서 현지 수주를 받은 게 있어서 자리 비우면 안 돼.”“알았어. 그럼 빨리 갔다 올게.”두 사람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만날 수는 없었다.오늘 서원준은 석식 약속이 있었고 내일도 바쁘기에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야 강지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차에 타기 전에 서원준은 우물쭈물하더니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여기
오늘 기분이 좋은 서원준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강지아는 진수혁의 도움을 받아 서원준을 명성 빌딩에 데려다줬다. 그나마 여기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다.진수혁은 이미 자신의 물건을 모두 옮겨갔기에 집은 예전 상태로 되었으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까지 했다.두 사람은 서원준을 게스트 룸, 즉 진수혁이 묵었던 방에 데려다 눕혔다.이불을 끌어안은 서원준은 계속 웃고 있었다.“지아야... 나 너무 좋아... 정말 기뻐...”강지아는 진수혁에게 말했다.“이 집 어차피 비워둘 건데 그냥 있어도 되는데.”“여태까지 묵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워.”진수혁은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전기와 가스 카드는 모두 원래 있던 곳에 놓아뒀어. 비용은 이미 지불했고.”말을 마친 진수혁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진수혁은 온유한에게 명성 빌딩에서 이사를 했기에 더는 가지 않을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온유한은 휴대전화를 힐끗 본 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병상에 누워있는 최신애는 최씨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이 자식 머릿속에 온통 그 여자 생각뿐이야. 우리 온씨 가문과 이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니까!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그러나 봐. 내가 죽어야 본인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내 팔자야! 힘들게 키운 아들이 얼마 전까지 멀쩡했는데 지금은 원수나 다름없게 되었어. 하느님, 제가 살아서 뭘 하겠습니까?”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얘기하고 계세요. 야식 좀 사 올게요.”황은숙도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한밤중이고 최신애의 하소연을 한참 동안이나 들으니 지칠 대로 지쳤다.“됐어. 나도 금성이 집에 가봐야 해. 유한아, 엄마 화나게 하지 말고 잘 모셔.”황은숙과 최금성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병실에는 온씨 모자만 남아 있었다.최신애의 얼굴에 있던 슬픔이 어느새 원망으로 변했다.“왜, 나와 같이 있기도 싫은 거야?”온유한이 말했다.“채영이 집
강지아의 인터뷰는 아주 재미있었다. 사회자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화령이 차를 우리면서 잡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강지아의 다도 실력도 선보이게 되었다.녹화가 끝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 화령이 강지아에게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얼마 전에 온씨 집안이 떠들썩했던 거 알아?”강지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화령이 말을 이었다.“나도 금성 씨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아직 외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국물을 한 모금 마신 강지아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화령이 말하는 것을 제지하지도 않았다.“두 가지 일이 일어났어. 첫 번째는 최신애가 온씨 가문에서 며느리에게 물려줄 가보를 현채영이 훔쳤다면서 누명을 씌웠지. 그래서 경찰까지 불렀대. 온유한이 최신애와 싸우고 나서 경찰이 갔고 현채영은 별일 없었대. 두 번째 일은 어젯밤 온유한이 현채영을 위해 최신애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임유희를 온씨 저택에서 쫓아냈고 최신애는 한밤중에 화를 내며 병원에 입원했대.”강지아는 국물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잘됐네. 두 사람 다 힘든 것보다 낫네. 적어도 현채영 씨는 힘들지는 않으니까.”강지아가 별 반응이 없자 화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온유한이 많이 변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강지아가 말했다.“좋은 사람을 만났나 보지 뭐. 현채영 씨, 괜찮잖아.”화령은 온유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작업실로 돌아온 강지아는 커피 한 잔을 끓였다.서랍을 열어보니 서원준에게 선물할 넥타이를 아직 전달하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휴대폰이 울려서 수신자를 보니 진수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새집을 찾았기에 명성 빌딩에서 묵지 않겠다고 했다.월세도 내지 않고 강지아의 집에 산 것에 대해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남자친구 데려가도 돼?”“당연하지. 단골 술집에서 만나. 사장님더러 십몇 년 동안 간직해온 술을 오픈하라고 해야겠네.”“그래.”강지아
순간 임유희는 오늘 밤 온유한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천천히 다가가 온유한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던 임유희였다.임씨 가문이 온유한을 몰아세우면 그녀는 온유한 앞에서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여주며 그에게 점수를 딸 생각이었다.임근우와 장희수도 잘 협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변고가 생겼다.“콜록... 유한 오빠... 그게...”“봤냐니까?”온유한은 다시 한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표정이 매우 사나워 보였다.“아니, 아니...”임유희는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흘렸다.“방금 본 건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네네, 알겠어요!”임유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이 순간 온유한의 얼굴이 너무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었다.온유한이 한참 후에야 손을 뗐고 임유희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졌다.하마터면 온유한의 손에 죽을 뻔했다.이 남자는 더 이상 3년 전 그녀를 설레게 했던 온유한이 아니었다.지금의 온유한은 강지아를 위해 미쳐버린 상태였다.그는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지'자를 문신했다.미친 거 아닐까?너무 무섭다!현채영을 집으로 데려온 목적은 분명했다.강지아를 위해서라면 친엄마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다.이런 남자를 그녀가 어떻게 옆에 둘 수 있겠는가?감히 엄두도 못 낼 것이다.임유희는 기다시피 하며 온유한의 방을 뛰쳐나갔다.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혹시라도 온유한이 따라올까 봐 서둘러 문을 닫은 뒤 방문을 잠갔다.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보니 목에 빨간 자국이 생겼다.온유한이 진짜로 그녀를 목 졸라 죽일 뻔했다!침대에 몸을 웅크린 뒤 장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다.“엄마, 온유한이랑 결혼하기 싫어. 집에 가고 싶어.”장희수는 지금 한창 신이 난 상태였다. 최신애가 장희수와 친해지기 위해 카드도 많이 양보했다.“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장희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
“진짜 열받아 죽겠어. 정말!”화가 난 최신애는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엄마인 나를 점점 안중에도 안 두는구나. 같이 지옥에 가자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온혁진은 이런 최신애가 너무 귀찮았다. 낮에 임씨 가문 사람들과 만나면 그들은 온유한과 임유희의 혼사를 언제 치를 것이냐고만 물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 온유한이 임유희와 약혼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애초에 임씨 가문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우리가 오히려 발목이 잡혔어.”온혁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어떻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유한이 결혼에 대해 나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경고하는데 당신도 좀 똑똑하게 굴어, 나중에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되지 말고. 임씨 가문 사람들도 속셈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최신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속셈이가 있어 봤자 무슨 속셈이가 있겠어요? 유희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것뿐이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유희가 유한이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임씨 가문도 그저 말로만 재촉하는 것이니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나라고 상관하고 싶겠어요? 현채영 같은 여자가 강지아보다 훨씬 못한데 어떻게 우리 온씨 가문에 들이겠어요? 그런 여자를 들였다가는 서울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온혁진은 골치가 아팠다. 말로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온유한이 진짜로 현채영과 결혼하려 한다면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그래서 이 일은 최신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이날 오후 최신애는 장희수와 함께 미용실에 갔다. 대화가 잘 통했는지 저녁에는 카드 놀이하러 함께 갔다.온유한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임유희만 있었고 현채영은 다른 일이 있어서 현씨 저택으로 돌아갔다.“유한 오빠, 아직 밥 안 먹었죠?”온유한이 ‘응’이라고 대답하자 임유희는 얼른 하인을 시켜 밥을 차리게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일이 있으셔서 밖에서 저녁 드시고 오겠대요. 아버님도 석식이 있으시다고 했고 현채영 씨도 저녁에 늦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