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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1화

정유진은 단지 소희를 상대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욕설을 서슴없이 퍼붓다니! 정유진은 손에 물 한 바가지를 들고 와 바로 소희에게 뿌렸다.바로 얼굴에 뿌리지 않았지만 물이 옆으로 쏟아지며 소희의 몸에 튀었다.“지금 나에게 물을 뿌린 거야? 미쳤어?”깔끔한 구두에 물이 튀자 소희의 얼굴은 화가 잔뜩 났는지 하얗게 질렸다.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정유진도 마찬가지였다.“잘 알아보고 얘기해. 내가 한빈을 찾으러 간 게 아니라 한빈이 직접 본인 발로 찾아온 거야. 나도 바쁘니까 이만 꺼져.”“그럼 누가 나더러 여기에 오라고 했는지 알아?”소희는 오늘 정유진을 톡톡히 혼내주기로 다짐하고 온 듯했다.“누구인데?”“조예원.”소희는 피식 웃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하하,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네? 너의 절친이 말하길 성원이 너와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고 나더러 가서 막아달라고 그랬어. 물론 조예원은 이 일로 내가 한빈과 싸우길 원했겠지. 하지만 내가 바보야? 한빈과 싸우게? 너도 제일 친한 친구에게서 배신당하는 날이 오네? 벌 받은 거야. 알아?”정유진은 그녀를 상대도 하지 않고 바로 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성원과 협력하기 위해 조예원은 또다시 정유진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두 번 다시 예전의 그 사이로 돌아갈 수 없다.길 건너편 검은색 승용차에서 장형준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여부를 알게 된 장형준은 바로 강지찬에게 알렸다.“대표님, 성원에서 조예원과의 협력을 뒤로 미뤘습니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성원 대표님의 결정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성원 대표님은 계속 해외에 있어서 어떤 사람인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강지찬이 진지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알아볼 필요 없어. 때가 되면 얼굴을 드러내겠지.”한빈이 성원의 부사장이 된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강지찬은 분명 배후에 누군가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몇 년을 찾아도 찾지 못하자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대표님, 성원이 콕 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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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와, 저 사람이 강지찬이에요? 우리 사장님과 어떻게 아는 사이인데요?”“성원에서도 사장님과 협력하고 싶어 하던데 K그룹에서도 사장님과 협력 제안하려고 온 거예요?”입사한 지 며칠 안 된 직원들은 본인들이 작은 회사와 계약한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 개업 첫날부터 직접 회사를 방문해 러브콜을 보내는 거물들이 있다니!강지찬을 본 한빈도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몇 년 전, 상대방에게 기선 제압당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강지찬도 자기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가슴을 쭉 폈다.“강 대표님, 오랜만이에요.”한빈이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강지찬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바로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머쓱한 한빈은 손을 거두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자리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강지찬이 들어간 것을 본 정유진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새 회사의 면적은 생각보다 작은 편은 아니었다. 예담 스튜디오보다 두 배 더 컸고 위층과 아래층을 합치면 150평이 훌쩍 넘었다.아래층에 있는 직원들이 손님을 맞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바람에 위층에는 아무도 없었다.정유진은 강지찬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여긴 왜 왔어요? 이혼 얘기 말고는 할 말이 없어요.”“누가 그래? 이혼 얘기 말고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얘기해야지.”강지찬은 마치 자기 집안을 둘러보듯 두리번거렸다.최근 ‘협력’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들은 정유진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K그룹 대표님께서 직원 1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에 직접 협력 제안을 한다고요? 강지찬 씨, 저를 모욕하는 수법이 정말 다양하네요.”강지찬은 아무 사무실이나 찾아서 들어갔다. 이 방이 정유진 사무실이라는 느낌만 갖고 직감적으로 들어간 것이었다.정유진의 의자에 앉은 강지찬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와 거래할래? K그룹과 협력하면 3년 후에 이혼해 줄게.”정유진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3년이라고?하지만 3년을 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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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결국 세 사람이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다.사실 정유진은 강지현과 함께 식사할 생각으로 레스토랑과 먹을 음식을 예약했었다. 그동안 강지현이 많이 도와준 것에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했다.하지만 강지찬까지 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웨이터를 불러 몇 가지 요리를 더 추가했다.자기가 제3자임을 알게 된 강지찬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다.정유진은 강지찬의 존재를 아예 무시한 듯 술 대신 찻잔을 들며 말했다.“지현 씨,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회사 집도 알아봐 주고 인테리어에도 신경 써줘서요. 지현 씨가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그렇게 예의 차리지 않아도 돼요.”강지현이 웃으며 대답하자 옆에 있던 강지찬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지현 씨?”강지찬은 차가운 얼굴로 정유진을 노려보며 말했다.“잊지 마. 우리 아직 이혼하지 않았어.”“어차피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우리가 헤어진 줄로만 알죠. 그런데 내가 지현 씨라고 부르는 게 어때서요?”오늘 점심 식사 자리는 정말 불쾌했다. 테이블에 앉은 내내 강지찬은 젓가락 한 번 들지 않고 싸늘한 얼굴로 정유진을 쳐다봤다.하지만 그의 기분에 신경 쓸 정유진이 아니었다. 오후에 일도 계속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배불리 먹어야 일할 힘도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식사를 마친 강지현은 정유진을 따라 회사로 갔다.“유진 씨, 성원에서 협력 제안이 왔다면서요. 거절했다는 말은 들었어요. 한빈 때문이에요?”커피 두 잔을 타고 있던 정유진은 강지현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한빈과 상관없어요. 내가 성원의 협력 제안을 받아들이면 예원이가...”조예원은 분명 그녀를 죽도로 미워할 것이다.“죄송해요. 예원 씨와의 사이가 이렇게 된 것은 제 책임이 커요.”정유진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와 예원이는 성격이 정반대에요. 지현 씨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되었을 거예요.”강지현은 정유진의 회사에 오래 머물지 않고 커피를 마신 후 바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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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다음 날 한빈이 또 찾아 왔다.이번에 성원이 한발 물러섰다. 정유진이 협력 제안을 받아 주면 조예원과도 계속 협력하겠다는 입장이었다.“왜 꼭 나여야 하는데?”정유진의 물음에 한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네가 인테리어 총괄 디자이너잖아. 너를 찾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게다가 서울시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미안한데 거절할게. 나와 예원이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우리 사이의 신뢰는 완전히 깨졌어.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어.”한 번 결심한 것은 절대 굽히지 않는 정유진의 성격을 너무 잘 아는 한빈은 지금 이 상황이 그저 골치 아프고 화가 날 뿐이었다. 한빈이 떠난 후 키키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오며 말했다.“누나, 우리가 보낸 광고 주문들이 전부 다 거절당했어요.”정유진은 흠칫 놀랐다.“무슨 말이야?”키키는 휴대전화를 정유진에게 건넸다. 화면에는 누군가와의 채팅 기록들이 있었다.“상대방에서 우리의 주문을 못 받겠대요. 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플랫폼에서 다 우리의 광고 주문을 거절하고 있어요.”채팅 기록을 보니 홍보할 수 없다고만 했을 뿐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누군가 일부러 뒤에서 이런 짓을 꾸미고 있는 거 아닐까요?”개업하자마자 누군가에게 저격을 당하고 있으니 앞으로 비즈니스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인테리어 회사의 대부분 비즈니스 고객은 온라인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각 광고 업체들마다 연우 인테리어의 광고 주문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 뜻인즉슨 연우 인테리어에는 고객이 없다는 것이다.고객이 없으면 인테리어를 할 곳도 없다.키키는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누나, 우리 이제 어떡해요?”정유진은 이미 다른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 듯 얼굴이 한없이 평온했다. “일단 손에 있는 일들은 계속 진행해. 나머지는 내가 방법 좀 생각해 볼게.”키키와 그가 데려온 디자이너들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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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강지찬, 이 뻔뻔한 자식!”정유진은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서류를 강지찬의 얼굴에 내던지고 싶었다.아마 서울 전체에서, 아니 전국에서 정유진만이 강지찬에게 삿대질하며 이렇게 욕을 퍼부을 수 있을 것이다.정유진에게 하도 많이 혼난 탓인지 강지찬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내가 뻔뻔한 거 오늘 처음 알았어?”“뭐라고?”강지찬의 뻔뻔함은 정말 사람을 미치도록 화나게 했다.“어차피 결론은 하나야. K그룹과 협력해. 그렇지 않으면 그 회사는 절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테니까.”화가 잔뜩 난 정유진은 강지찬을 쏘아보며 말했다.“인터넷 광고가 안 되면 내가 알아서 고객들을 찾을 거예요. 온라인 하나 컨트롤 한다고 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요.”강지찬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그래? 어디 한 번 해봐.”정유진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다음날, 홍보하기로 했던 모든 플랫폼에서 연우 인테리어의 주문을 거절했다. 그 어떤 플랫폼에서도 연우 인테리어의 홍보 광고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이 뜻은 연우 인테리어에 고객들이 없고 영업팀 직원들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정유진은 직원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논의했다. 온라인이 안 되면 오프라인으로 진행하자고 누군가가 제안했다.이때 키키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최근 새로 분양을 시작한 아파트 단지에 가서 판촉 활동하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 관리비만 좀 내면 될 거예요.”정유진과 조예원도 예전에 이런 프로모션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온라인 홍보에 돈이 필요했지만 예담 스튜디오가 설립되었을 초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 고객들도 꽤 많이 잃었다.일 처리 하나만큼은 똑 부러진 키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바로 판촉용 전단지를 디자인해 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영업팀 사람들을 데리고 고급 아파트에 가서 판촉을 시작했다.하지만 판촉 활동 반나절 만에 아파트 관리원에게 쫓겨났다.쉽게 의지를 굽힐 수 없었던 키키는 또 다른 아파트를 찾아 나섰다. 아파트 관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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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드디어 큰 주문을 받았지만 결국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는 직원들의 기분은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었다. 연우 인테리어는 안 그래도 직원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런데 온전한 고객조차 없다면 어쩌면 지금 있는 직원들마저 떠날 수 있다.강지찬은 일거수일투족 모두 간섭하고 있었다. 정유진이 한 건의 주문도 못 받게 하려고 작정한 듯하다.어차피 회사에 돌아가도 할 일이 없던 정유진은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다.지엘 별장으로 돌아오니 조예원이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하려던 조예원은 정유진을 보자 다시 전화기를 가방에 넣었다.조예원은 정유진의 차를 뒤따라 집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여긴 왜 왔어?”조예원을 본 정유진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물었다. 조예원을 초대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비밀번호 바꿨어?”조예원의 물음에 정유진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 피곤하니까.”여전히 깔끔한 단발머리에 프로페셔널하게 차려입은 조예원은 한눈에 봐도 예쁘고 똑 부러지는 커리어 우먼이였다.조예원은 정유진을 바라보며 피식 웃더니 말했다.“네가 피곤할 게 뭐 있어? 연우가 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어. 네가 강지찬을 건드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힘들 게 뭐가 있어?”어려운 상황이 그대로 들통나자 정유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조예원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언급되니 말이다. 그동안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정유진은 자기의 경험과 실력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쯤은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그런데 강지찬이 이 정도로 비열한 수법으로 그녀의 앞길을 막아버릴 줄 어찌 알았겠는가?정유진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본 조예원은 또다시 거리낌 없이 말했다.“지금은 고객이 없는 것에 그치겠지만 곧 알게 될 거야. 인테리어 자재들도 구매하기 어려울걸? 업계 사장님들은 이미 다 알고 있어. 누가 감히 강지찬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겠어.”“뭐라고?”이 말은 정유진도 처음 들었다. 만약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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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정유진은 대표이사실로 들어오자마자 온미정이 먹다 남은 커피를 강지찬의 얼굴에 끼얹었다.뒤따라 온 임우연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강 대표님!”강지찬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 의자에 앉은 채 한 바퀴 빙 돌았다. 커피는 뒤의 책장에 뿌려졌고 극소량만 강지찬의 다리와 책상 위에 쏟아졌다.임우연은 얼른 사무실의 문을 닫으며 말했다.“사모님, 진정하시고 무슨 일이든 말로 하세요.”조금 전까지 가까스로 화를 참고 있었던 정유진의 분노도 이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말로 하라고요? 고객도 다 차단하고 인테리어 자재 업체들에게 연락해 내가 납품받지 못 하게 뒤에서 수작을 부렸어요. 일부러 작정하고 손을 쓰는데 어떻게 말로 해요? 말은 사람과 하는 거예요.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말이에요!”정유진의 목소리가 대표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강지찬도 이토록 언성을 높이는 그녀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휴식실에 있던 온미정은 속으로 정유진을 응원하고 있었다.임우연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상황을 중재하는데 나섰다.“사모님, 화내지 마세요. 연우 인테리어가 K그룹과 협력한다면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 최고의 인테리어 회사가 될 거예요.”그 말에 정유진은 강지찬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그런 거 필요 없어요. 강지찬 씨, 설마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와 협력하려는 거예요?”티슈로 바지를 닦던 강지찬의 손이 순간 멈췄다.“나가.”정유진과 임우연은 동시에 어리둥절해졌다. 임우연은 곧바로 나가라는 말이 자신을 보고 한 말임을 알았다.“강 대표님, 사모님. 천천히 얘기하세요... 커피 준비해 오겠습니다.”말을 마친 임우연은 도망치듯 대표이사실을 나왔다.강지찬은 정유진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휴식실로 갔다.휴식실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온미정은 갑자기 들어온 강지찬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식! 여기 왜 들어왔어! 이러다 들키겠어!”강지찬은 귀찮은 듯한 얼굴로 말했다.“고모님, 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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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정유진이 뿌린 커피 때문에 다리가 끈적끈적해 강지찬은 어쩔 수 없이 샤워한 것이었다.이 남자는 매일 꾸준한 운동으로 역삼각형의 탄탄한 체형을 보유하고 있었다. 몸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어 방안은 성숙한 남자의 호르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개를 홱 돌린 정유진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강지찬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그리고 이내 옷장에서 새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수십 층에 달하는 K그룹의 창가에 서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는 정유진은 마치 서울의 제일 꼭대기에 서 있는 듯했다.이 회사 대표는 확실히 서울의 꼭대기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큰 도시에 그녀의 설 자리가 없었다.뒤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정유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어디 지옥 끝까지 따라와 보든지요. 강지찬 씨.”말을 마친 정유진은 강지찬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K그룹 나왔다.강지찬은 조금 전 정유진이 서 있던 자리에 서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봤다.이렇게 큰 서울에서 한 사람을 붙잡는 것조차 이렇게 어렵다니...다음날 연우 인테리어의 직원이 물건을 구매하러 갔을 때, 인테리어 자재 원재료 업체는 역시나 그들에게 자재를 팔지 않았다.“대표님, 건축자재 시장을 다 돌아다녀 봐도 우리에게 팔려고 하는 곳이 하나도 없어요. 어떡하죠?”어제저녁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정유진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서울에서 구할 수 없으면 다른 도시에서 물건을 들여올 수밖에.”옆에 있던 키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러면 원가가 많이 오를 텐데...”“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어.”강지찬이 다른 도시까지 쫓아올 거라고 그녀는 믿지 않았다.키키는 서둘러 새로운 건축 자재 공급업체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다른 도시에서는 정상적으로 주문할 수 있었다.오후에 온미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객을 소개해주겠다며 나와서 차 한잔 마시자고 했다.정유진은 별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온미정의 체면을 봐서 일단 갔다.약속장소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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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오후 내내 할머니를 모시고 고스톱을 친 결과 정유진은 드디어 이번 주문을 받는 데 성공했다.온미정이 집 키를 건네며 말했다. “강지찬이 일부러 너를 힘들게 하는 일을 할머니에게 말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할머니께서 연세가 많으신 것 같아도 모든 것을 다 꿰뚫고 계시니까.”정유진은 이런 온미정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고모님, 나중에 제가 꼭 밥 한 끼 살게요.”“그렇게 예의 차리지 않아도 돼. 말했잖아, 너는 젊었을 때의 나보다 훨씬 더 용감하다고. 나는 그때 울기만 했어. 그러면서 인생을 다 망쳤지. 그때는 그러면 남자의 마음이 약해질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고. 오히려 나에게서 더 정이 떨어졌지.”털털해 보이는 온미정이었지만 마음속에 큰 상처를 안은 채 살고 있었다.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다. 욕조에 누운 정유진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겨우 주문을 받긴 했지만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모든 재료를 전부 다른 도시에서 사들여야 한다면 이윤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다음 날 아침, 강지현이 그녀를 찾아왔다.강지현은 여유로운 얼굴로 사 온 아침을 정유진에게 건네며 말했다.“어려운 게 있으면 나부터 찾지 않고요?”정유진이 웃으며 말했다.“다 들었어요? 이런 거 잘 모르잖아요. 괜히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방법도 찾았고요.”강지현은 국을 떠주며 말했다. “무슨 방법인데요? 형이 이미 얘기 다 해놓았으니 서울 전체에서 연우 인테리어에 원자재를 공급하려는 곳은 아마 없을 거예요.”정유진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연우 인테리어에 안 팔아도 누군가가 가서 사면 팔겠죠? 키키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사달라고 하면 살 수 있을 거예요. 지찬 씨가 설마 이것까지 생각했겠어요?”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은 생각이네요. 한 번 해보세요.”정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지금 당장에는 주문 건수가 없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어제 고모님이 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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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정유진은 요즘 매우 바삐 보내고 있었다. 두 집의 설계도 모두 그녀가 담당해야 했다.인맥을 통해 겨우 받은 주문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어려워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키키의 아버지가 연우 인테리어의 건축자재 구매를 담당해줬다. 일단 물건 들여오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 방법도 얼마나 오래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두려워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안 되면 저희 삼촌도 있어요. 사람은 많아요.”키키는 불굴의 의지로 맞서고 있었다.민 교수의 집은 위치가 아주 좋았다. 요란한 도시 생활 속에서도 주위가 조용하여 노인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했다.정유진은 사람들과 같이 직접 집안 이곳저곳의 사이즈를 재기 시작했다. 사이즈를 재는 것도 몇 년 만인지 모른다. 데이터를 기록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한참 사이즈를 재며 사진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의 큰 손이 정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정유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홱 돌렸다.“왜 여기 있어요?”강지찬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왜? 여기 있으면 안 돼?”하지만 정유진은 그와 입씨름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아무 기척 없이 다가온 이 인간 때문에 하마터면 그의 품속에 안길 뻔했다.이 사람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에 놓여있었다.정유진은 몸을 옆으로 돌려 강지찬과 멀찌감치 떨어졌다.“여긴 왜 왔어요?” 정유진은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 인간이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강지찬은 그녀의 허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뭔가 미련이 남아 있는 눈빛이었다.가느다란 그녀의 허리는 한 번 만지면 확실히 놓기 아쉬웠다.“수단이 생각보다 좋은데? 틈을 비집고 이렇게 할 줄은 몰랐네?”강지찬은 경멸이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물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정유진은 이런 강지찬을 당장이라도 씹어먹고 싶었다.“서울에서 발 디딜 곳이 없어도 당신에게 타협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강지찬은 앞으로 한발 다가가 그녀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그래? 당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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