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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해서 결혼했어요의 모든 챕터: 챕터 291 - 챕터 300

929 챕터

제291화

강지찬은 사실 이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오면 먼저 주도하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 그녀에게 키스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녀에게 취해 있었다. 정유진 이 여자는 마치 마약 같았다. 강지찬은 진작 이 마약에 깊이 취해 있었다.“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건데?”빨간 셔츠를 벗긴 강지찬은 그녀의 하얀 어깨를 물어 이빨 자국을 남겼다.그동안 정유진에 대한 원망까지 모두 담아서 힘껏...살짝 아파 보였지만 다행히 피부는 벗겨지지 않았다.꾸물거리기 싫었던 정유진은 바로 손을 올려 그의 바지 지퍼를 열었다.“짜고 치는 고스톱에 놀아나는 내가 굳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강지찬에게 밀쳐 침대에 눕혀진 정유진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약속 지켜요, 남교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한 거.”그러자 강지찬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말했다.“나와 이혼하겠다고 한 건?”정유진은 이 순간 자신이 마치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한 번 더 자야 한다면 기꺼이 맞춰 줄게요.”순간 강지찬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정유진의 손목을 꽉 잡고 있는 강지찬은 조금 전 불타오르던 욕망마저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정유진, 나를 자극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왜 항상 당신을 원망하게 만드는 건데?”그 말에 정유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서로 피차일반이잖아요. 뭐해요? 빨리 시작해요.”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강지찬은 정유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복수하면 통쾌할 거라 예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왜 이렇게 서둘러? 안 본 사이에 더 능숙해졌네? 당신은 이제 창피한 것도 없나 봐?”강지찬이 계속할 생각이 없는 듯하자 정유진은 살짝 당황스러웠다.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면 조예원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이며 그러다가 연우 일이 강지찬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정유진은 비아냥거리는 강지찬의 말 따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그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뭐가 창피한데요? 우리 아직 이혼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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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정유진은 아무 말 없이 밥만 묵묵히 먹었다. 옆에 있는 강지아는 겁에 질려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식사를 마친 강지아는 식탁까지 치우며 부지런히 움직였다.물 한 잔을 손에 들고 있는 정유진은 창가에 서서 넋이 나간 듯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강지아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새언니, 왜 그래요?”강지아를 향해 돌아선 정유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너 이제 짐 싸. 나 요즘 혼자 있고 싶어.”정유진의 얼굴은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해 보였다. 강지아는 그런 그녀를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더 이상 정유진의 말을 안 들을 수 없었던 강지아는 그저 주섬주섬 짐을 싼 후 현관 앞에 섰다.“새언니, 기분 좀 풀어요. 저 이제 갈게요, 집에 도착해서 전화할게요.”강지아는 정유진이 자살이라도 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정유진 또한 강지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부모님과 딸을 남겨두고 어떻게 쉽게 떠날 수 있겠는가? 절친 한 명을 잃었을 뿐이다. 절대 죽을 수도 죽을 필요도 없다. 강지아는 약속대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에게 전화했다.정유진은 자기가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가 이내 끊었다.온종일 잔 정유진이 저녁때쯤 일어났을 때 조예원이 집으로 찾아왔다.정유진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조예원은 알아서 문을 열고 집안까지 들어왔다.그러다가 때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는 정유진과 마주쳤다.“저녁 좀 사 왔어. 조금이라도 먹어.”조예원이 가져온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았다.그녀는 지금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리에 앉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조예원이 먼저 정유진의 시선을 피했다. “일단 밥부터 먹어. 일은 내일 회사에 도착하고 다시 얘기해.”조예원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한편, 정유진은 그녀가 가져온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직접 주방에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끓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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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K 그룹 내부의 이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지분을 갖고 있는 한 무리의 어르신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렇다고 강지찬에게 뭐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 최의현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여러분, 조급해하지 마세요. 그저 양로원 하나일 뿐입니다. 저희가 양로원에 가서 지낼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그러자 화가 잔뜩 나 있는 사람이 책상을 ‘탁’치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강지찬 씨, K그룹 회장으로서 이사회에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강지찬은 입을 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이때 최의현이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한마디 했다.“급해 하지 마시라니까요. 강 대표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프로젝트로 여러분들께 보답하면 되지 않습니까?”이때 전태연의 아버지 전수호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강 대표님, 혹시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그러자 강지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들은 소문에 의하면 시청이 북쪽으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순간 회의실 모니터에 서울의 지도가 나타났다. 임우연은 빨간색으로 북쪽 어딘가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사람들은 남교 프로젝트의 시작을 기점으로 정부에서 분명 동서로 횡단해 있던 서울을 이제 남쪽으로 개발하기 위해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했다.그러다 보니 남쪽의 땅값은 진작 엄청나게 폭등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강지찬의 입에서 시청이 북쪽으로 옮겨질 거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전수호는 유난히 더 흥분한 것 같았다. 이것은 사업가로서 돈 냄새를 맡아 기분이 한껏 상기된 것도 있었지만 미래의 사위가 보면 볼수록 더 마음에 들어 도저히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 대표, 진짜 믿을 만한 소식인가요?”그러자 최의현이 대답했다.“당연히 믿을만한 정보입니다. 서울의 동서 양쪽은 이미 충분히 핫한 지역입니다. 남쪽은 지금 양로원 등 노후를 책임질 기지로 개발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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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강지찬은 눈앞의 이혼 합의서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정유진이 앉아 있었다.넥라인에 있는 단추를 풀자 그녀의 하얀 목에 남겨진 키스 마크가 그대로 드러났다. 강지찬이 눈썹을 찡그리자 정유진이 물었다.“지금 시간 있어요? 아니면 밥 먹고 호텔로 갈까요?”순간 강지찬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여자는 이혼을 위해서라면 체면이 구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말이다.“정유진, 이리 천박한 사람이었어?”그런 말 따위에 더 이상 흔들리고 상처받을 정유진이 아니었다. 그녀는 심지어 미소까지 살짝 지으며 말했다.“한 번 자나 여러 번 자나 별 차이가 있을까요?”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의 눈에는 그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무나와 자는 여자일 뿐이지 않겠는가? 이때 사무실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경호원을 대동하고 들어온 전태연의 모습이 보였다. “강 대표님, 우리 엄마가 닭고기 수프 좀 끓였는데... 당신이 왜 여기 있어?”정유진을 발견한 전태연은 순간 멈칫했다. 그러자 정유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강지찬 씨에게 이혼 도장 받으러 왔어요. 전태연 씨, 때마침 잘 왔네요. 강 대표님 좀 설득해 주시죠? 전태연 씨에게 유부남이나 만난다는 꼬리표를 붙일 수 없잖아요. 저는 얼마든지 강씨 집안 사모님 자리를 양보할 수 있으니 전태연 씨가 강지찬 씨 좀 설득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네요.”책상 위에 있는 이혼 합의서를 본 전태연은 정유진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 알았다. 전태연은 경호원에게 수프가 담긴 보온병을 내려놓으라고 한 다음 일단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경호원이 나간 후, 그녀는 강지찬의 옆에 다가와 말했다.“강 대표님, 제가 사적인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발목이 잡혀 대표님 인생을 허비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말을 마친 전태연은 고개를 든 순간, 정유진의 목에 있는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 그녀는 정유진을 가리키며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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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정유진은 오늘 취할 작정이었다. 취하기 전에는 어디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작정하고 취하려면 정신이 오히려 더 말짱해질 때가 있다. 정유진 또한 두 병이나 마셨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의식이 또렷했다. 그녀는 이내 앞에 서 있는 두 사람 중의 한 명이 강지찬의 사촌 동생인 경은우라는 것을 알아챘다.“형수님, 왜 혼자 술을 드시고 계세요?”정유진이 또다시 술병을 들자 경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에서 술을 빼앗았다.경은우의 직업이 머릿속에 떠오른 정유진은 그를 보며 물었다.“이혼소송 잘하는 변호사 좀 소개해 주실래요?”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한마디 덧붙였다.“간이 큰 사람이어야 할 거예요. 경은우 씨 형과 소송하려면.”그녀의 말에 경은우는 살짝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그건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그러자 맞은편에 자리 잡은 한규진이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뭐가 어려워? 이혼소송이잖아. 내가 할게.”경은우는 어이가 없어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우리 형의 사적인 일이야. 우리 엄마 아빠도 감히 뭐라고 못하는데 참견하지 마.”하지만 한규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정유진을 보며 말했다.“강지찬 씨와 진짜 이혼할 겁니까?”“네, 진짜로 이혼할 거예요.”정유진은 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한규진을 쳐다보며 말했다.“그쪽도 변호사인가요?”그녀의 물음에 한규진이 대답했다.“네, 저도 변호사예요. 도와드릴 수는 있지만 제가 좀 비싸요.”한규진의 진지한 얼굴에 경은우는 어이가 없었다.“너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나는 우리 형의 손에 죽고 싶지 않으니까.”말을 마친 경은우는 얼른 강지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규진이 형수님의 이혼소송을 도와주겠대. 형이 와서 좀 어떻게 해봐.]한참 후, 경은우와 한규진도 술을 끊임없이 마시는 정유진을 막지 못했다. 강지현이 술집에 도착했을 때, 정유진은 이미 만취한 상태였다.“지현이 형, 혹시 형수님... 데리러 온 거야?” 경은우는 그를 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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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강지현은 이불을 잡아당겨 정유진에게 덮어주고 방을 나왔다.방에 가서 샤워를 마쳤을 때 문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도련님, 큰 도련님이 밖에 계십니다.”순간 강지현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강지찬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집사더러 가서 쉬라고 한 후 계단을 내려갔다.대문 밖에 서 있는 강지찬의 안색은 강지현보다 더 어두웠다.그는 정유진의 집에 찾아갔다가 그녀가 없는 것을 보고 여기에 왔던 것이다. 강지찬 또한 강지현이 정유진을 집에 바래다주지 않고 상록수 별장으로 데려왔을 줄은 몰랐다.이제는 아예 티를 내고 다니겠다는 것인가?이때 옆에서 장형준의 목소리가 들렸다.“작은 도련님께서 나오셨습니다.”가운을 입고 나온 강지현은 금방 샤워를 마쳐 온몸으로 개운하고 산뜻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강지현의 모습을 본 강지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정유진은?”강지현은 강지찬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유진 씨는 이미 잠들었어.”가운을 입고 나온 강지현이 나와서 하는 말이 정유진이 잠들었다니! 이 말을 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두 남자는 철문을 사이에 두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강지찬이 굵직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문 열어.”강지현이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늦었어. 형도 이만 돌아가.”강지현의 행동은 강지찬과 끝까지 맞서 보겠다는 것이 틀림없었다.강지찬은 가까스로 화를 참으며 말했다.“강지현! 내가 이혼하지 않은 한, 정유진은 나 강지찬의 아내야!”정유진의 목에 난 키스 마크가 생각난 강지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래서 뭐? 두 사람은 원래부터 아무 감정이 없었잖아. 그리고 유진 씨의 마음에도 더 이상 형이 없어.”“그럼 너는 있어?”강지찬이 되묻는 물음에 강지현은 피식 웃었다.“내가 지금 유진 씨를 깨운다고 쳐. 그럼 유진 씨가 우리 집에 남으려 할까, 아니면 형과 같이 가려고 할까?”강지찬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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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연우와 통화하는 강지현의 목소리는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통화했는지 꽤 많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가스 불을 끄고 돌아선 강지현은 그제야 뒤에서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정유진을 발견했다. “엄마가 일어났는데 바꿔줄까?”강지현이 전화기 너머의 연우에게 물자 녀석은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네! 네!”강지현이 귀에 있는 이어폰을 빼며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정유진은 이어폰을 받아 직접 귀에 꽂으려 했다. 하지만 강지현이 다가오더니 직접 그녀의 귀에 꽂아줬다.전화기 너머의 연우가 흥분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는 바람에 정유진도 더 이상 강지현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 잠꾸러기야!”딸의 목소리에 정유진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내렸다.“내일부터 엄마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게. 우리 애기,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응...”강지현이 밥을 그릇에 옮겨 담는 모습을 본 정유진은 얼른 가서 그를 도왔다.그는 직접 밥도 짓고 두 가지 야채 요리까지 볶았다. 게다가 가스 불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찐빵까지 있었다.두 사람이 아침 식사 준비 중이라는 것을 안 연우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찐빵까지 할 줄 알아요? 그동안 못했었잖아요?”정유진이 엄지를 척 내보이자 강지현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찐빵은 아줌마가 한 거예요. 오늘 하루 쉬라고 집에 보내 드렸어요.”“아, 그랬군요.”정유진은 웃으며 접시를 들고 냄비에서 만두를 꺼내 옮겨 담았다. 그러자 강지현이 다시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채소와 밥은 다 제가 한 거예요.”정유진은 기분이 꽤 좋은 듯했다.“고생했어요.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강지현은 할 말이 많았지만 다시 목구멍으로 삼켰다.아침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날 무렵, 정유진이 강지현을 보며 말했다.“저 예담에서 나왔어요.”순간 강지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왜요?”정유진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예원이가 연우를 빌미로 저더러 지찬 씨를 찾으러 가라고 해서요. 그 일로 싸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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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정유진과 조예원이 처음 회사를 차릴 때 창업자금은 1억도 채 안 되었다. 사실 이 돈도 두 사람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끌어모은 것이었다.조예원이 이체한 4억이라는 돈을 본 정유진은 순간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새로 구한 작업실부터 인테리어 시공에 돌입해야 했기 때문이다.다행히 예전에 알고 지내던 시공 아저씨들과 계속 연락을 이어왔고 어떤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일은 그나마 쉽게 바로 할 수 있었다.자기가 지낼 사무실이었기에 도면도 일찍 완성되었고 인테리어도 빨리 시작했다.정유진은 매일같이 공사장에 틀어박혀 인테리어 진도를 체크했고 가끔은 강지현도 와서 그녀를 도왔다.어느 날, 정유진이 강지현과 한창 작업자들이 모델하우스를 공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때 키키가 갑자기 찾아왔다.“누나, 저도 그만뒀어요.”“왜?”정유진은 장갑을 벗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예담의 규모가 이제 점점 커지고 있는데 처음부터 예담에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면 어떡해?”키키는 머리를 쥐어 잡으며 말했다.“더 이상 못 있겠어요. 회사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야 모두 조 대표님에게만 잘 보이면 되는데 저는 누나가 직접 키워준 사람이잖아요. 누나가 없는데 내가 있어서 뭐해요?”키키는 돌려 말했지만 정유진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었다.인간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정유진이 퇴사를 했으니 회사에 있는 키키의 입장도 난처했을 것이다.정유진은 키키에게 장갑을 던지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럼 너는 그냥 나와 같이 일하자. 때마침 나도 일손이 부족하던 참이었어.”키키가 기다린 것 또한 그녀의 이 말이었다.“누나, 나도 누나만 보고 온 거예요.”키키는 바로 장갑과 안전모를 쓰고 모델하우스 시공자들 지휘에 돌입했다. 키키의 합류로 정유진의 마음은 더없이 든든해졌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노을빛 프로젝트의 입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K그룹에서 입찰을 포기한 바람에 정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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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조예원이 회사로 찾아 왔을 때 정유진은 한창 키키와 샘플 작업을 논의하고 있었다.“유진아, 시간 돼? 할 얘기가 있어.”조예원이 먼저 말을 걸었다.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커피숍을 찾았다.요즘 정유진은 공사현장을 돌보느라 옷도 캐주얼하게 입고 다녔다. 하지만 심플한 옷일수록 그녀의 화려한 얼굴이 눈에 더 띄었다.어떤 사람은 용포를 걸쳐도 자태가 나지 않지만 정유진은 허름한 옷을 두르고 있어도 미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모카 두 잔을 주문한 조예원은 웨이터가 저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이렇게 빨리 회사를 차릴 줄은 몰랐어. 작업실까지 이미 다 꾸며놨네.”정유진은 조예원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할 말이라는 게 뭐야? 빨리 얘기해.”직접 찾아온 조예원의 모습에 정유진은 마음이 심란했다.물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원수를 진 것도 아니었기에 친구로서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유진아, 예담으로 다시 돌아와.”조예원의 말에 정유진이 물었다.“왜?” 조예원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정유진이 조금만 알아보면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원이 낙찰받았다는 말은 들었지?”“응, 알아. 축하해.”이때 웨이터가 커피를 가져왔다. 한 모금 마신 조예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유진아, 난 가끔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조예원의 갑작스러운 멘트에 정유진은 아리송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얼굴이 이쁜 것은 인정해. 하지만 나도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네가 없었다면 학교 퀸카는 나였을 수도 있겠지. 너는 공부도 잘했어. 하지만 내 성적도 괜찮았고. 그러나 우리 과의 모든 교수들은 너만 좋아했어. 프로젝트가 있으면 항상 너부터 찾았어. 그때 얼마나 많은 애들이 뒤에서 이상한 소문을 내고 다닌 줄 알아? 네가 분명 정정당당하게 따낸 것은 아닐 거라며 너를 더러운 여자라고 그랬지. 하지만 나는 알아. 너는 절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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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조예원의 표정도 매우 심각했다.착하고 여린 사람 같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한 정유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한빈과 강지찬이라는 사람을 겪은 이후로 정유진은 자기를 해친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대했지만 일단 상처를 받으면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절대 다시 마음이 약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정유진의 어두워진 안색에 조예원은 그제야 자기가 말실수했음을 알아채고 다급히 설명하려 했다.“그런 뜻이 아니야. 이 프로젝트는 네가 담당한 거잖아. 네가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내가 다 들어주겠다는 뜻이야.”정유진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조예원, 사실은 너도 잘 알잖아. 내가 더 이상 너와 협력할 일 없다는 거. 네가 연우를 들먹이며 나를 협박할 때부터 우리 사이에 더 이상 할 말은 없어. 그리고 한빈이 말은 믿지 않아도 돼.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일 리는 없으니까. 아마 일부러 너를 난처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일 거야.”말을 마친 정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바빠서 먼저 가볼게.”멀어지는 정유진을 바라보고 있는 조예원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한빈은 이번 결정이 성원의 대표님 뜻이라고 했다.그렇다면 성원의 대표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하지만 그 누구도 성원의 대표가 누구인지 모른다.조예원은 정유진의 말에 어쩌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성원의 사장이 누구든 정유진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어쩌면 한빈이 일부러 꾸며낸 말일지도 모른다.분명 정유진을 잊지 못해 끌어들이려는 게 틀림없다.요즘 정유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인테리어에 신경 쓰는 것 말고도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준비가 잘된 덕분에 무사히 사업자등록증을 받을 수 있었다.“연우 인테리어, 입에 착 감기는데요?”키키는 역시 아부에 약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회사 대문 앞 파라솔 아래에 앉아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햇빛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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