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이른 아침, 임서우와 허민서는 나란히 집에서 내려와 그들이 사는 낡고 허름한 대문 앞에 도착했다.두 사람이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임서우가 허민서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더 생각해보지 않을 거야?”허민서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이미 다 결정했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녀가 새로 산 구찌 가방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는 최신형 아이폰을 꺼내 들었다.허민서는 발신자 표시를 보더니 옆에 있는 오동나무 아래로 걸어가 부드러운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몇 달 전만 해도 그녀의 이런 부드러운 목소리는 오직 임서우 전용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어느덧 전화기 너머의 딴 남자에게 돌아갔다.임서우는 두 사람의 감정이 끝났다는 걸 확인한 후 더는 집착하지 않았다.곧이어 버스가 도착하고 차 문이 열리자 임서우가 이제 막 통화를 마친 허민서에게 얼른 차 타라고 곁눈질했다.버스 앞에 도착한 허민서는 그를 힐긋 쳐다봤는데 눈빛 속에 가여움과 야유, 경멸이 살짝 담겨있었다.“서우야, 몇 달 전에 우리 결혼할 때 버스 타고 혼인 신고하러 갔는데 오늘 이혼하는 것도 버스 타고 가네. 잘 들어, 이게 바로 우리가 이혼한 이유야.”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가면 구청이다.둘은 앞뒤 좌석으로 앉아 아무런 교류도 없었다.구청에 곧장 도착했고 직원이 두 사람을 자리에 안내한 후 각종 서류를 요구했다.직원은 서류를 검토하며 그들에게 물었다.“두 분 모두 충분히 생각하셨죠? 재산분할은 마치셨나요?”허민서가 지체 없이 말했다.“네, 이미 결정했으니 얼른 절차 진행하세요. 우리는 딱히 나눌 재산이 없어요. 집은 셋집이고 차 살 돈도 없어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전 재산이에요. 얘가 산 것도 있고 내가 산 것도 있는데 전부 다 얘한테 남겨줄 거예요. 적금도 몇만 원 정도 있겠는데 그것도 얘한테 다 주겠어요.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허민서는 아주 관대한 척하며 말했지만 정작 경멸에 찬 그 표정은 전남편에게 동전이라도 쥐여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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