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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후 전남편과 이혼의 모든 챕터: 챕터 111 - 챕터 120

967 챕터

제111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내가 당신한테 사과하라고 강요했어. 하지만 기자들한테 그걸 사실대로 말해버리면 한지음 입장이 얼마나 곤란해질지 생각해 봤어? 대체 왜 한지음한테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쾅!유영은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강이한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과격한 모습이었다.그녀의 주변으로 진한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강이한은 분노도 잊고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이한 씨,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한지음한테 뭘 했어? 내가 한지음 납치하는 거 당신이 봤어? 내가 그 여자 눈을 멀게 하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거 봤냐고?”강이한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당신이 말도 안 되는 죄명을 나한테 갖다 뒤집어씌운 거잖아!”“납치범들한테 돈을 준 건 당신이야. 당신 계좌에서 돈이 흘러나갔다고!”“하!”유영은 냉소를 지었다.남자는 그 증거를 아직까지 믿고 있었단 말인가?결국 쟁점은 그 은행 카드의 입금 기록으로 돌아왔다.유영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나가!”그와 이야기하는 매 순간이 지치고 괴로웠다.자리에서 일어선 강이한이 말했다.“이유영, 적당히 해. 오늘 같은 일은 다시없었으면 좋겠어.”“그럼 시비가 생길 일을 하지 말든가! 또 나한테 협박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그녀는 혼자서 모든 오물을 뒤집어쓰고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보살이 아니었다.강성건설과의 계약 때문에 처리가 늦어지긴 했지만 기자회견도 예정된 수순이었다.시간적 여유가 되면 자신에게 해코지했던 사람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안겨줄 생각이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자 유영은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전에는 내가 오해할 만한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부터 명심해. 난 당한 만큼 갚아주는 사람이야.”온순하고 순종적인 현모양처?사랑이 사라진 지금 그런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사람마다 참을 수 있는 한계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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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강성건설과의 협약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오로라 스튜디오도 괜찮은 명성을 얻었다.아직도 강이한의 영향력은 유효하지만 앞으로 의뢰가 더 많아질 것이다.물론, 외삼촌의 개입으로도 받을 수 있는 의뢰는 충분했다.조민정이 일정을 확인하고 말했다.“오후에 고객 미팅이 있어요. 남안시에서 온 고객이에요.”남안시?하룻밤 사이에 소문이 남안시까지 퍼진 걸까?“외삼촌과 친분이 있는 고객인가요?”그녀의 질문에 조민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어제 입찰 때 공개한 설계 도면이 전국에 퍼진 것 같아요.”강이한에게 패배를 선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화제성은 충분했다.그래서 많은 기업인들이 이 작은 스튜디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전에는 작은 작업실들이 생존하기 힘든 이유가 좋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참, 문 비서님한테 연락이 왔는데 박 대표님이 점심을 같이 하고 싶어한다고 하셨어요.”“나야 좋죠.”안 그래도 박연준에게 밥 한번 살 생각이었다. 강이한이 그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렸다.그와 이혼하기 전에 조용히 살기는 그른 것 같았다.지금 강이한을 보고 있으면 막다른 골목에 갇히자 무분별하게 사람을 물어대는 개 같았다.“세강 노부인 칠순잔치 행사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아침에 정국진이 한번 언급한 적 있었기에 조민정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영은 당연히 가기 싫었다.하지만 강이한이 자신에게 했던 것과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대던 진영숙, 그리고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오는 유경원을 생각하면 고민이 깊어졌다.한참 고민하던 유영이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저녁 일정은 다 비워두세요. 아직은 이혼하기 전이니까 얼굴이라도 비춰줘야 명분이 설 것 같네요.”절대 웃어른을 공경해서 가려는 모양새는 아니었다.조민정은 왠지 연회가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강이한도 잘한 건 없지만 유영 역시 받은 만큼 돌려주었다.둘이 연회에서 싸워대는 모습을 상상하니 조민정은 저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렸다.“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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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하지만 배준석도 만만치 않았다.그는 나이프를 내려놓고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형,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형이 나한테 부탁할 게 있다고 해서 이 자리를 만든 거거든?”그는 젊은 나이에 골든아워로 불릴 정도로 성공한 의사였다.강이한과는 전부터 알고 지낸 후배였는데 해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금을 들여 그를 국내로 부른 것이었다.한지음의 시력 때문에 부른 것인데 하필 식사 자리에서 유영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오늘은 급한 일이 있어. 천천히 먹고 저녁에 내가 술 살게.”“나 술 안 마시는 거 알잖아!”강이한이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배준석은 자유분방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자기관리가 똑 부러진 사람이었다. 의사의 길을 걷기로 한 뒤로 좋아하던 술까지 끊었다.강이한은 음침한 눈빛으로 후배를 노려보다가 결국 외투를 다시 의자에 던져놓았다.“그럼 화장실 좀 다녀올게.”“아니, 이 사람이 정말!”배준석이 뒤에서 불만을 토로했지만, 강이한은 무시하고 자리를 떠났다.그 시각 배연준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유영은 어딘가에서 풍기는 찬 기운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하얀 셔츠에 정장 바지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강이한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겉으로 보기에도 그는 최근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그를 발견한 유영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눈치 빠른 박연준이 그녀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내가 먼저 들어갈게요.”“네.”말을 마친 박연준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강이한을 지나치면서도 그에게 시선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매사에 진중한 박연준에 비해 강이한은 지금 온몸으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박연준이 안으로 들어가자 유영을 바라보는 강이한의 눈빛도 더 차게 식었다. 조금 전 박연준과 함께 차에서 내리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둘이 무슨 일로 여기 온 거야?”전에 그와 같이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나빴는데 사적으로 둘이 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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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남이 벌어온 돈을 받아서 쓰면서 갑질을 당할 바에야 그냥 내가 벌고 말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말을 마친 그녀는 우아하게 남자의 옆을 지나쳤다.혼자 남은 강이한은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그녀는 능력이 있는 여자라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박연준과의 협력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시킨 것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했길래 인정을 받은 걸까?유영과 박연준은 강이한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등지고 앉았다.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두 사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스테이크가 올라오자 그는 넉살 좋게 고기를 한조각씩 잘라 유영에게 건네주었다.유영도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감사해요.”“전에 자주 오던 곳인가요?”“아니요. 전에는 외식을 거의 안 했어요.”물론 맛집은 많이 알고 있었지만 나와서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외출할 때마다 시어머니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할 일 없을 때면 책을 읽는 게 그녀의 유일한 취미였다.지금 생각해 보면 유영은 그렇게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했던 것 같았다.유영은 조금씩 고기를 잘게 썰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육집은 부드러웠지만 안 그래도 얼굴이 작아 볼이 빵빵하게 부풀려졌다. 그럼에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고 사랑스러운 게 더 신기했다.“왜 그렇게 봐요?”박연준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유영이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먹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랑은 좀 달라서요.”유영이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다르다는 표현보다는 별로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먹어서인 것 같았다.어릴 때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요조숙녀에 비하면 그녀는 먹을 때 내숭을 떨지 않는 편이었다.매번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먹을 때면 품위 떨어진다고 진영숙에게 지적을 받았었다.그래서 본가로 가서 식사할 때는 일부러 더 늦게 먹었다.남자가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냥 보기 좋다는 얘기였어요.”“저도 이게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안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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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그리고 배준석의 말은 안 그래도 참고 있는 강이한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쨍그랑!잡고 있던 와인잔 손잡이가 그대로 부러졌다.배준석이 화들짝 놀라며 겁에 질린 얼굴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강이한과 박연준이 학교 다닐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렇다면 유영과 박연준 사이에 접점이 없어야 맞는데 어떻게 둘이 같이 앉아서 밥을 먹게 되었는지 궁금했다.게다가 강이한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라니!“최근에 둘이 같이 협업하고 있어.”“협업?”“그래!”“형수 일 안하고 집에만 있지 않아? 아니면 형이 주는 용돈이 적은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나와서 일할 이유가 없잖아.”안 그래도 표정이 안 좋은 강이한의 얼굴이 그 말을 듣자 더 퍼렇게 굳었다.식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이한은 입맛이 없는지 음식에 수저를 거의 대지 않았다. 반면 유영은 맛있게 먹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박연준이 이미 계산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유영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제가 산다고 했잖아요.”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사람인데 밥은 열기라도 더 사줄 수 있었다.박연준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여자한테 밥 얻어먹는 건 불편해서요.”그 말에 오히려 유영이 당황했다.레스토랑을 나오자 이미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박연준은 부드러운 얼굴로 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타요. 사무실까지 데려다줄게요.”“여보!”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두 사람 다 할 말을 잃었다.씩씩거리며 다가온 강이한이 고집스럽게 유영을 품에 안았다.유영이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우악스럽게 그녀를 껴안았다.유영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다망한 박 대표한테 운전기사 노릇까지 부탁할 건 아니지?”유영은 난감한 얼굴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돌아가서 주변 시설들 설계 도면을 요구하신 대로 수정하고 보내드릴게요. 점심은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그거 그냥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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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귀뺨을 맞은 강이한은 멍한 얼굴로 잠자코 유영을 바라보았다.박연준 때문에 맞았다고 생각한 건지, 곧이어 그의 얼굴이 서슬퍼렇게 굳었다.“내가 방해해서 화가 난 거야? 말해! 둘이 차 타고 또 어딜 가려고 했었어? 리조트? 아니면 호텔?”이성을 잃은 그의 입에서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어떻게 다른 남자 때문에 날 칠 수가 있지?그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유영은 한치 두려움 없는 얼굴로 인상을 쓰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강이한, 내가 경고했지? 얌전히 있으라고. 자꾸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면 나도 이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방해라는 말에 강이한이 헛웃음을 지었다.“둘 사이에 뭔가 있었던 게 분명하네.”그렇지 않고서야 박연준처럼 까다로운 인간이 유영을 디자인 파트너로 고용할 리 만무했다.수많은 원고가 퇴짜 맞았는데 그녀의 설계도만 통과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됐다.강성건설에는 전국의 에이스들만 모아놓은 건축 디자인 부서가 따로 있었다.디자인팀에서 내놓은 방안이 유영의 것만 못해서 채용한 걸까?게다가 박연준은 친히 부족한 부분을 꼬집어 주며 꼼꼼하게 피드백까지 해주었다고 들었다.둘 사이에 무언가 거래가 오가지 않고 정상적인 절차대로 진행됐다고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분노한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이유영, 내가 그렇게 만만해? 우리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밖에서 대놓고 남자를 홀리고 다니는 거야?”이성이 사라진 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유영과 박연준 사이의 추악한 거래만 생각하고 있었다.어떻게 여자가 이 정도로 타락할 수 있지?할 말을 잃은 유영이 뒤돌아섰다.자신을 버려두고 혼자 가버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강이한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잠시 걸음을 멈춘 유영이 말했다.“옷 갈아입으러 가는 거야. 시간 맞춰서 데리러 와. 늦으면 나 안 가.”강이한은 순간 당황했다.할머니 칠순잔치에 같이 가겠다는 말인가?둘이 전에 그렇게 싸워댔으니 당연히 코빼기도 안 비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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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해외 저택에 있는 그녀의 방도 외숙모가 꾸며준 것이었다. 아침에 외삼촌이랑 출근하기 전에는 꼭 외숙모가 친히 준비한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유영은 거기 살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다.신분의 격차나 이런 것들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 그게 가족이었다. 그녀가 세강의 안주인으로 살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이었다.“액세서리도 몇 세트 주문했어.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담다 보니 좀 가짓수가 많아졌네. 그리고 디자이너한테 따로 주문 제작을 맡겼는데 그건 디자인이 완성되면 네가 한번 확인해 봐.”“외숙모, 저 액세서리 많아요.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아니, 필요해. 외모를 잘 꾸미고 다녀야 무시도 안 당하는 법이야. 외숙모 말 들어.”유영은 또 다시 가슴이 뭉클했다.“유라 말인데… 남자로 태어날 애가 여자로 태어난 것 같아. 유라가 네 반만 닮았으면 얼마나 좋겠니?”“내가 걔 여자 만든다고 공들여서 산 옷들이랑 액세서리에 먼지가 다 끼었더라!”외숙모는 일에만 몰두하는 딸 얘기를 꺼내며 푸념을 늘어놓았다.외삼촌 내외는 딸을 공주처럼 키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었다.그래서 첫째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엄청 기뻐했다고 한다.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유라는 어릴 때부터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더니 커서는 운동에 취미를 들이면서 공주풍 드레스는 입지도 않고 모두 옷장에 처박았다.외숙모와 통화를 마친 뒤, 유영은 순정동 집사에게서 온 연락을 받았다. 집에 드레스가 도착했는데 와서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이미 그녀의 방에 있는 옷장으로는 다 수납할 수 없었기에 옷방을 따로 꾸몄다고 했다.그 말을 들은 유영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드레스와 액세서리를 부탁했더니 외숙모가 과도하게 쇼핑을 한 모양이었다.집사와 간단한 통화를 마친 뒤, 드디어 휴식의 시간이 찾아왔다.사무실로 들어온 조민정이 말했다.“강성건설에서 요구한 초안인데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유영은 서류를 받아 일일이 확인했다.조민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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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전에 본가에서 가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유영은 주방 담당이었기에 지금처럼 신경 써서 꾸민 적이 없었다. 그가 사준 드레스들도 전부 옷장에서 먼지만 날리고 있었다.그녀와 10년이나 함께 살면서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었다.지금 보니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천상의 아름다움이었다.강이한은 저도 모르게 위기감을 느꼈다.차에 오른 유영이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빤히 봐?”“드레스 참 잘 어울리네.”정신을 차린 강이한이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한집에서 살면서 이렇게 예쁜 사람인 것을 모르고 살았다니.한때는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자신한 적 있었다.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건 모두 오만한 착각이었다. 성격도 그가 알던 것과는 달랐고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이처럼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있었다.유영은 오늘 새로 한 네일아트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밖에서 만나고 다닌 여자들보다 내가 더 예뻐?”“그 입만 다물면 완벽했을 거야.”강이한이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여자는 입 다물고 있을 때 정말 예쁜데 입만 열면 얄미웠다.유영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흘기며 말했다.“내가 이런 말하는 거 듣기 싫어?”“오늘만큼은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보자. 나도 최대한 맞출 테니까.”강이한이 정색하며 말했다.“그건 당신이 하는 거 봐서.”강이한은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그 난리를 부린 게 다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되자 유영은 눈을 감고 뒷좌석에 머리를 기댔다.강이한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며 간곡히 말했다.“이제 싸움은 그만하면 안 될까?”그는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과거의 온순하던 유영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유영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정말 이 싸움의 근원이 누구한테 있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어차피 말해 봐야 또 피곤해질 것 같았기에 그녀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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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강이한은 할 수만 있다면 유영을 홍문동 저택에 감금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녀가 이혼 얘기를 꺼낸 그날부터 그녀의 세상에는 수많은 거슬리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정국진과의 스캔들이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박연준이라는 변수까지 나타난 상황.그녀에게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꺾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위험한 기운이 유영을 포위했다.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강이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오늘 할머니 생신이라며. 계속 싸울 거야?”강이한은 그제야 멈칫하며 정신을 차렸다.그랬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화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였다.최근 보였던 유영의 기행으로 보아 기분이 나쁜 채로 본가에 돌아간다면 또 무슨 난동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안 그래도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은데 여기서 더 악화되는 건 그들의 미래에도 좋지 않았다.결국 강이한은 혼자 화를 삭였다.“내일 다시 얘기하지.”본가에서는 진영숙이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경원을 옆에 애지중지 끼고 다니며 손님들에게 소개했다.손님들 모두 유경원을 미래의 세강 사모님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그런데 이때, 강이한이 유영과 함께 입장했다. 같이 들어오는 둘의 모습을 본 손님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진영숙의 얼굴도 음침하게 굳었지만 손님들 앞이라 화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며느리를 힐끗 쳐다본 뒤, 작은 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쟤는 왜 데려왔어? 또 무슨 창피를 당하려고?”조금 전까지 유경원을 극찬하는 손님들의 반응을 보고 흐뭇해하던 진영숙이었다.그런데 유영이 강이한과 함께 나타남으로써 전에 흉흉하게 퍼졌던 불화설을 일축해 버렸다.유경원의 표정도 미세하게 일그러졌다.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다.하지만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표정을 숨기는 데는 능숙했다.“집사람이랑 같이 온 게 뭐가 잘못됐나요?”“이한이 너….”말문이 막힌 진영숙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유영의 얼굴만 보면 짜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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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강이한과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불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왜 여기 인간들은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기 좋아하는 걸까?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적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고고한 자태로 그녀에게 명령하는 진영숙이었다.전에는 저런 모습이 보기 싫어 주방으로 도망쳤는데 그들은 그곳이 당연히 그녀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유영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디저트는 힘들 것 같네요, 어머님. 고용인들도 있는데 굳이 저까지 나설 필요가 없잖아요. 누가 뭐래도 지금은 제가 세강의 안주인인걸요?”“뻔뻔한 년!”“그만하세요!”유영이 뭐라고 반박하기 전에 강이한이 짜증스럽게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고 나섰다.그는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하듯, 유영을 감싸 안았다.남자는 단호한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이 사람은 제 아내입니다. 어머니가 돈 주고 고용한 고용인이 아니라고요. 그러니 주방 일을 할 이유가 없어요.”“너 지금 사람들도 있는데 누구 편을 드는 거야!”진영숙이 더는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렸다.사람들이 보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당장 유영의 저 얄미운 얼굴에 싸대기를 날렸을 것이다.강이한은 더 말하지 않고 유영의 손을 잡고는 자리를 떴다.“할머니께 인사부터 드리고 오자.”홀로 남겨진 진영숙은 상실감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사람들 눈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폭발했을 것이다.그녀는 잔치가 끝나면 유영을 따로 불러서 혼내야겠다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유영과 강이한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유영이 하고 있는 목걸이를 알아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둘이 이혼하는 거 아니었어? 저거 이번 년도 록스 작품인데? 하나뿐이라 나도 못 산 걸 저 여자가 하고 있네?”“보기엔 평범해 보이는걸?”“그건 네 안목이 별로라서 그런 거야. 자세히 봐봐.”록스 작품에 열광하는 팬 중 한 명이 불만을 토로했다.올해 작품이 유난히 심플하긴 하지만 이 디자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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