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배준석의 말은 안 그래도 참고 있는 강이한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쨍그랑!잡고 있던 와인잔 손잡이가 그대로 부러졌다.배준석이 화들짝 놀라며 겁에 질린 얼굴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강이한과 박연준이 학교 다닐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렇다면 유영과 박연준 사이에 접점이 없어야 맞는데 어떻게 둘이 같이 앉아서 밥을 먹게 되었는지 궁금했다.게다가 강이한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라니!“최근에 둘이 같이 협업하고 있어.”“협업?”“그래!”“형수 일 안하고 집에만 있지 않아? 아니면 형이 주는 용돈이 적은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나와서 일할 이유가 없잖아.”안 그래도 표정이 안 좋은 강이한의 얼굴이 그 말을 듣자 더 퍼렇게 굳었다.식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이한은 입맛이 없는지 음식에 수저를 거의 대지 않았다. 반면 유영은 맛있게 먹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박연준이 이미 계산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유영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제가 산다고 했잖아요.”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사람인데 밥은 열기라도 더 사줄 수 있었다.박연준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여자한테 밥 얻어먹는 건 불편해서요.”그 말에 오히려 유영이 당황했다.레스토랑을 나오자 이미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박연준은 부드러운 얼굴로 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타요. 사무실까지 데려다줄게요.”“여보!”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두 사람 다 할 말을 잃었다.씩씩거리며 다가온 강이한이 고집스럽게 유영을 품에 안았다.유영이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우악스럽게 그녀를 껴안았다.유영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다망한 박 대표한테 운전기사 노릇까지 부탁할 건 아니지?”유영은 난감한 얼굴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돌아가서 주변 시설들 설계 도면을 요구하신 대로 수정하고 보내드릴게요. 점심은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그거 그냥 메일
귀뺨을 맞은 강이한은 멍한 얼굴로 잠자코 유영을 바라보았다.박연준 때문에 맞았다고 생각한 건지, 곧이어 그의 얼굴이 서슬퍼렇게 굳었다.“내가 방해해서 화가 난 거야? 말해! 둘이 차 타고 또 어딜 가려고 했었어? 리조트? 아니면 호텔?”이성을 잃은 그의 입에서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어떻게 다른 남자 때문에 날 칠 수가 있지?그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유영은 한치 두려움 없는 얼굴로 인상을 쓰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강이한, 내가 경고했지? 얌전히 있으라고. 자꾸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면 나도 이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방해라는 말에 강이한이 헛웃음을 지었다.“둘 사이에 뭔가 있었던 게 분명하네.”그렇지 않고서야 박연준처럼 까다로운 인간이 유영을 디자인 파트너로 고용할 리 만무했다.수많은 원고가 퇴짜 맞았는데 그녀의 설계도만 통과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됐다.강성건설에는 전국의 에이스들만 모아놓은 건축 디자인 부서가 따로 있었다.디자인팀에서 내놓은 방안이 유영의 것만 못해서 채용한 걸까?게다가 박연준은 친히 부족한 부분을 꼬집어 주며 꼼꼼하게 피드백까지 해주었다고 들었다.둘 사이에 무언가 거래가 오가지 않고 정상적인 절차대로 진행됐다고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분노한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이유영, 내가 그렇게 만만해? 우리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밖에서 대놓고 남자를 홀리고 다니는 거야?”이성이 사라진 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유영과 박연준 사이의 추악한 거래만 생각하고 있었다.어떻게 여자가 이 정도로 타락할 수 있지?할 말을 잃은 유영이 뒤돌아섰다.자신을 버려두고 혼자 가버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강이한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잠시 걸음을 멈춘 유영이 말했다.“옷 갈아입으러 가는 거야. 시간 맞춰서 데리러 와. 늦으면 나 안 가.”강이한은 순간 당황했다.할머니 칠순잔치에 같이 가겠다는 말인가?둘이 전에 그렇게 싸워댔으니 당연히 코빼기도 안 비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다.
해외 저택에 있는 그녀의 방도 외숙모가 꾸며준 것이었다. 아침에 외삼촌이랑 출근하기 전에는 꼭 외숙모가 친히 준비한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유영은 거기 살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다.신분의 격차나 이런 것들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 그게 가족이었다. 그녀가 세강의 안주인으로 살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이었다.“액세서리도 몇 세트 주문했어.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담다 보니 좀 가짓수가 많아졌네. 그리고 디자이너한테 따로 주문 제작을 맡겼는데 그건 디자인이 완성되면 네가 한번 확인해 봐.”“외숙모, 저 액세서리 많아요.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아니, 필요해. 외모를 잘 꾸미고 다녀야 무시도 안 당하는 법이야. 외숙모 말 들어.”유영은 또 다시 가슴이 뭉클했다.“유라 말인데… 남자로 태어날 애가 여자로 태어난 것 같아. 유라가 네 반만 닮았으면 얼마나 좋겠니?”“내가 걔 여자 만든다고 공들여서 산 옷들이랑 액세서리에 먼지가 다 끼었더라!”외숙모는 일에만 몰두하는 딸 얘기를 꺼내며 푸념을 늘어놓았다.외삼촌 내외는 딸을 공주처럼 키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었다.그래서 첫째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엄청 기뻐했다고 한다.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유라는 어릴 때부터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더니 커서는 운동에 취미를 들이면서 공주풍 드레스는 입지도 않고 모두 옷장에 처박았다.외숙모와 통화를 마친 뒤, 유영은 순정동 집사에게서 온 연락을 받았다. 집에 드레스가 도착했는데 와서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이미 그녀의 방에 있는 옷장으로는 다 수납할 수 없었기에 옷방을 따로 꾸몄다고 했다.그 말을 들은 유영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드레스와 액세서리를 부탁했더니 외숙모가 과도하게 쇼핑을 한 모양이었다.집사와 간단한 통화를 마친 뒤, 드디어 휴식의 시간이 찾아왔다.사무실로 들어온 조민정이 말했다.“강성건설에서 요구한 초안인데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유영은 서류를 받아 일일이 확인했다.조민정이
전에 본가에서 가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유영은 주방 담당이었기에 지금처럼 신경 써서 꾸민 적이 없었다. 그가 사준 드레스들도 전부 옷장에서 먼지만 날리고 있었다.그녀와 10년이나 함께 살면서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었다.지금 보니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천상의 아름다움이었다.강이한은 저도 모르게 위기감을 느꼈다.차에 오른 유영이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빤히 봐?”“드레스 참 잘 어울리네.”정신을 차린 강이한이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한집에서 살면서 이렇게 예쁜 사람인 것을 모르고 살았다니.한때는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자신한 적 있었다.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건 모두 오만한 착각이었다. 성격도 그가 알던 것과는 달랐고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이처럼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있었다.유영은 오늘 새로 한 네일아트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밖에서 만나고 다닌 여자들보다 내가 더 예뻐?”“그 입만 다물면 완벽했을 거야.”강이한이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여자는 입 다물고 있을 때 정말 예쁜데 입만 열면 얄미웠다.유영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흘기며 말했다.“내가 이런 말하는 거 듣기 싫어?”“오늘만큼은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보자. 나도 최대한 맞출 테니까.”강이한이 정색하며 말했다.“그건 당신이 하는 거 봐서.”강이한은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그 난리를 부린 게 다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되자 유영은 눈을 감고 뒷좌석에 머리를 기댔다.강이한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며 간곡히 말했다.“이제 싸움은 그만하면 안 될까?”그는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과거의 온순하던 유영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유영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정말 이 싸움의 근원이 누구한테 있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어차피 말해 봐야 또 피곤해질 것 같았기에 그녀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강이한은 할 수만 있다면 유영을 홍문동 저택에 감금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녀가 이혼 얘기를 꺼낸 그날부터 그녀의 세상에는 수많은 거슬리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정국진과의 스캔들이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박연준이라는 변수까지 나타난 상황.그녀에게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꺾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위험한 기운이 유영을 포위했다.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강이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오늘 할머니 생신이라며. 계속 싸울 거야?”강이한은 그제야 멈칫하며 정신을 차렸다.그랬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화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였다.최근 보였던 유영의 기행으로 보아 기분이 나쁜 채로 본가에 돌아간다면 또 무슨 난동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안 그래도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은데 여기서 더 악화되는 건 그들의 미래에도 좋지 않았다.결국 강이한은 혼자 화를 삭였다.“내일 다시 얘기하지.”본가에서는 진영숙이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경원을 옆에 애지중지 끼고 다니며 손님들에게 소개했다.손님들 모두 유경원을 미래의 세강 사모님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그런데 이때, 강이한이 유영과 함께 입장했다. 같이 들어오는 둘의 모습을 본 손님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진영숙의 얼굴도 음침하게 굳었지만 손님들 앞이라 화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며느리를 힐끗 쳐다본 뒤, 작은 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쟤는 왜 데려왔어? 또 무슨 창피를 당하려고?”조금 전까지 유경원을 극찬하는 손님들의 반응을 보고 흐뭇해하던 진영숙이었다.그런데 유영이 강이한과 함께 나타남으로써 전에 흉흉하게 퍼졌던 불화설을 일축해 버렸다.유경원의 표정도 미세하게 일그러졌다.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다.하지만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표정을 숨기는 데는 능숙했다.“집사람이랑 같이 온 게 뭐가 잘못됐나요?”“이한이 너….”말문이 막힌 진영숙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유영의 얼굴만 보면 짜증이
강이한과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불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왜 여기 인간들은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기 좋아하는 걸까?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적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고고한 자태로 그녀에게 명령하는 진영숙이었다.전에는 저런 모습이 보기 싫어 주방으로 도망쳤는데 그들은 그곳이 당연히 그녀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유영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디저트는 힘들 것 같네요, 어머님. 고용인들도 있는데 굳이 저까지 나설 필요가 없잖아요. 누가 뭐래도 지금은 제가 세강의 안주인인걸요?”“뻔뻔한 년!”“그만하세요!”유영이 뭐라고 반박하기 전에 강이한이 짜증스럽게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고 나섰다.그는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하듯, 유영을 감싸 안았다.남자는 단호한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이 사람은 제 아내입니다. 어머니가 돈 주고 고용한 고용인이 아니라고요. 그러니 주방 일을 할 이유가 없어요.”“너 지금 사람들도 있는데 누구 편을 드는 거야!”진영숙이 더는 참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렸다.사람들이 보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당장 유영의 저 얄미운 얼굴에 싸대기를 날렸을 것이다.강이한은 더 말하지 않고 유영의 손을 잡고는 자리를 떴다.“할머니께 인사부터 드리고 오자.”홀로 남겨진 진영숙은 상실감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사람들 눈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폭발했을 것이다.그녀는 잔치가 끝나면 유영을 따로 불러서 혼내야겠다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유영과 강이한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유영이 하고 있는 목걸이를 알아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둘이 이혼하는 거 아니었어? 저거 이번 년도 록스 작품인데? 하나뿐이라 나도 못 산 걸 저 여자가 하고 있네?”“보기엔 평범해 보이는걸?”“그건 네 안목이 별로라서 그런 거야. 자세히 봐봐.”록스 작품에 열광하는 팬 중 한 명이 불만을 토로했다.올해 작품이 유난히 심플하긴 하지만 이 디자인에
유영의 표정은 담담했다. 노부인이 아무리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무시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때 강이한이 유영의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잡으며 말했다.“저 그 사람이랑 별로 안 친해요.”그 말에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노부인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기분이었기 때문이다.유영이 미소 지으며 이어서 입을 열었다.“강이한 씨, 엄연히 임자가 있는 몸이에요. 유경원 씨처럼 귀한집 따님을, 이 시기에 단둘이 만난다? 그녀의 명성에 해가 되지 않을까요?”“…”“찾아간다고 해도 연회가 끝난 후에 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어요?”무심히 던진 듯한 말한마디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중에서 안색이 가장 나빠진 건 다름 아닌 유경원의 아버지였다. 그는 마침 선물을 건넨 뒤, 노부인에게 말을 건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좀 전에 강이한의 말투에서 그의 의중을 눈치채고 말았다.그는 무엇보다 지금 좀 전에 유영이 한 말이 신경 쓰였다. 지금 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연회가 끝나고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그럼 지금 내 딸이 상간녀처럼 몰래 강이한을 만나야 한다는 것인가?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안 좋아졌다.그러나 오히려 이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인 유영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니, 당하는 입장에선 더 약이 올랐다.노부인은 잡아먹을 듯이 유영을 노려보며 말했다.“강이한, 네가 아주 얘 버릇을 제대로 잘못 굳혀 났구나!”평이한듯 보이는 목소리였으나, 유영은 그 속에 담긴 분노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대응했다. 예전의 그녀였으면 몰랐을까, 지금의 유영은 이정도로 주눅들지 않았다.과거에 그녀는 겨우 연회장 주방을 맴도는 신세였으나, 지금 그녀는 당당히 강이한 옆에서 빛나고 있었다.“나 좀 배고픈데.”유영이 강이한에게 말했다.강이한은 간단하게 노부인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한 뒤, 유영과 함께 식사 자리로 갔다.“성질 좀 죽여!”강이한이 작게 유영의 귀에다가 대고 속삭였다.그도 유영이 이 집안
강이한은 유영의 팔목을 잡아끌며 강서희에게 말했다.“우린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까 넌 다른 여자들 불러서 같이 가.”현장에 사람도 많은데 굳이 유영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전에는 그녀가 괴롭힘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방관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그가 모르는 곳에서 이 정도로 심하게 괴롭힘 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강서희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 전에는 동생이 원하는 건 다 줄 것처럼 행동하던 오빠였다.그런데 그랬던 오빠가 지금은 유영만 감싸고 있었다.“가자.”그의 목소리는 강압적이었지만 그게 강서희 들으라고 한 말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유영도 그가 많이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방식이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그는 모든 사람에게 그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과거의 유영이었다면 조금은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한지음이 끼어 있는 이상, 이미 벌어진 감정의 구멍은 다시 가까워질 수 없었다.이미 연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들에 대한 여론은 떠들썩했다.그리고 한지음이 연회장에 나타난 순간, 모든 풍향이 바뀌었다. 유경원이 진영숙이 점찍은 미래의 며느리감이라면 최근 강이한과 뜨거운 스캔들에 휩싸였던 한지음은 그녀보다 더 특별한 존재였다.그런 상황에서 강이한은 아내를 대동하고 연회에 참석했다. 그의 의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유영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안은 강이한을 바라보며 눈빛에 비웃음을 머금었다.“나중에 설명할게.”강이한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원래는 차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그녀 때문에 화가 나서 미리 말한다는 것을 깜빡했다.유영은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빤히 보며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그의 손을 밀어냈다. 미약한 힘이었지만 강이한은 그 동작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유영.”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유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말했잖아. 오늘은 조용히 얼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