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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죄로의 모든 챕터: 챕터 151 - 챕터 160

485 챕터

제151화

별장 앞 잔디밭은 거의 농구장 절반 정도 크기로 매우 넓었고 정원사에 의해 정연하게 가꾸어졌다.다양한 계절의 꽃이 심겨 있는 것 외에도, 키 낮게 자란 관목숲이 우거져있었다. 여기서 작디작은 반지를 찾으려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임재욱은 위층에 서서 청회색 옷을 입은 유시아가 파란 잔디밭에서 천천히 기어다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마치 파충류 같았다.그녀는 처참한 모습으로 잔디밭에 꿇어앉아 있었다. 세심하게 한 포기의 풀마다 심지어 덤불 사이의 가지마저도 놓치지 않았다. 대개는 땅을 석 자 파려는 태도로 그 어느 구석도 놓치지 않고 찾았다.임재욱은 다소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그 불빛에 어둑하던 하늘은 쫙 갈라졌다.오후부터 날씨는 계속 흐려있었다. 심한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임재욱의 발걸음은 느려졌다. 그는 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그런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다봤다.허 씨 아주머니는 이미 나가 있었다.“유 아가씨,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 비가 그치면 다시 찾으세요.”유시아는 듣지 못한 듯 전혀 풀이 죽지 않았고 여전히 잔디밭에서 더듬으면서 찾고 있었다.그것은 현우가 선물해 준 프러포즈 반지다. 평생 기념으로 간직해야 할 정도였다.설령 그녀가 원하는 대로 소현우에게 시집가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기억할 것이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미소를 가진 한 남자가 그녀를 부드럽게 대했었다는 것을, 아무리 그녀가 무뚝뚝하고, 감옥살이를 했었을지라도 전혀 싫어하지 않았었다는것을, 게다가 기회를 노려가며 그녀를 소유할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었다는것을, 그녀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그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 남자였다.그녀는 그에게 미치도록 노력해 갔다. 비록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차버렸지만, 이 반지를 남기고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하나의 기념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또 천둥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굵은 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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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임재욱은 눈을 내리깔고 아래층 잔디밭의 모습을 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제 밑에 있습니다.”말을 마치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의 이 별장은 깊숙이 숨겨져 있는데다 평소에도 자주 오지 않았다. 소현우가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마저도 금방 여기로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필경 누가 그리 미련해서 억대의 별장을 자기와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하겠는가?소현우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을 때는 전화가 이미 꺼져 있었다. 그는 초조하게 발만 구르며 오래도록 어머니의 병실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 여사는 언제나 굽 높은 구두만 신었는데 이번에 소현우가 밀어놓음으로써 뼈를 심하게 상해 아마도 꽤 긴 시간 더는 걷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이 여사는 이내 썰렁한 병실에서 그 누구도 문안하러 오지 않음을 원망했다. 예전에는 병이 났을 때마다 심하윤이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 가지고 와서 껍질을 깎아주고 먹기 좋게 잘라서는 입에까지 넣어주며 그녀가 심심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웃곤 했다. 하지만 이제 심하윤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 역시 자신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소현우가 그녀의 재결합 요구를 거절하고 그녀의 절친과 함께 있기로 한 이상 더는 이 여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속물이 아니라, 다만 더는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을 따름이다. 게다가 그녀도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겼으니 전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보살필 필요가 없었다. 소현우는 출근도 해야 했고, 어머니한테만 집중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 여사는 집에서 밥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와 몇 마디 주고받을 뿐 티비를 보거나 잡지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께서도 모든 검사는 다 마쳤으니, 집에 가서 요양해도 된다고 하셨다. 뼈가 갈라진 것은 수술할 필요도 없고 또 다른 특별한 치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뼈가 스스로 자라 잘 봉합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으며 정기적으로 재진료를 받으러 오면 된다고 했다. 이 여사는 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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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비를 무릅쓰고 대우 그룹에 도착하고 보니 소현우는 허탕을 치고 말았다. 카운터 아가씨는 오늘 임 대표님께서 오전에 떠나가신 뒤 다시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말해주었다. 소현우는 이를 악물며 대우 그룹을 나왔다. 비서에게 전화하여 부동산관리업체에 가서 임재욱의 이름으로 된 모든 부동산자료를 알아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임재욱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리라고는 바라지 말아야 했다. 소현우는 그의 아지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방법을 대여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차례의 폭우가 지난 뒤 이튿날 아침부터 개이기 시작했다. 햇살은 밝게 대지를 비추었고 공기는 한결 맑아졌다. 임재욱은 두 명의 비서와 함께 공교도관이 가르쳐주는 대로 정운 여자감옥의 곳곳을 참관했다. 아침에 공 교도관의 전화를 받았을 때에야 임재욱은 몇 달 전 대우 그룹이 책걸상과 책들을 주문 제작하여 정운 여자감옥에 기부했는데 마침 오늘에 도착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임재욱은 원래 다녀올 마음이 없었지만 결국 오고야 말았다. 감옥의 홀에 들어서니 회청색 죄수복을 입은 여수감자들이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쪽걸상에 일렬로 줄지어 앉아서 사람마다 책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끔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는데 모두 무뚝뚝하고 겁먹은 듯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몸집이 크고 귀티가 흐르는 남자는 여기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임 대표님께서 기부한 책과 책걸상 덕에 무미건조한 감옥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공 교도관은 뜨겁게 소개를 이어가면서 먼 곳을 가리키더니 말을 이었다. “저기는 여자감옥 구역인데 열 명이 한 칸에 갇혀있습니다. 여름에는 아침 5시에 일어나고 겨울에는 여섯 시에 일어나는데 내무정리를 하고 아침밥을 먹끼까지 한 시간 걸리며 그 뒤에 줄지어 일하러 나갑니다...”임재욱은 마당에 들어서서 쇠창살에 의해 무수하게 조각난 하늘을 바라보며 멍때리더니 천천히 물어보았다.“그녀들은 오후엔 또 무엇을 하는 거지?”“뜨개질을 합니다.”곽 경찰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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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임재욱은 아무 말도 없이 몸을 돌려 차를 향해 걸어갔다.그린 레이크에 돌아왔을 때, 유시아는 한창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그녀는 순순히 임재욱이 그녀에게 준비해 준 순면 잠옷으로 갈아입고 도우미가 만들어준 영양죽을 먹고 있었다. 이마에 해열패치를 붙이고 손등에는 링거를 맞고 남은 테이프가 붙어있었다.허 씨 아주머니는 그녀의 반지가 임재욱의 손에 있으며 그는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임재욱은 그녀에게로 걸어가서 자신의 큰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아직도 미열은 남아있었으나 이미 거의 열이 내린 상태였다. 이제 김 닥터를 불러 링거 하나쯤 더 맞으면 다 나을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곁에 털썩 주저앉은 대로 가벼운 어조로 물었다. “죽 먹고 있네?”유시아는 흰 사기 숟가락을 손에 든 채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제 반지는요?”집아래 잔디밭에서 온 오후를 더듬거려도 끝내 반지를 찾을 수 없었고 저녁이 될 떄쯤에는 이미 온몸이 얼어들어있었다. 허 씨 아주머니는 반지가 그에게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유시아는 그 반지는 사실 그가 던진 적도 없으며 줄곧 그의 손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재욱도 매우 대범하게 호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내밀더니 말했다. “돌려줄게.”유시아는 급급히 손을 뻗어 반지를 받아서 자신의 상처투성이인 손가락에 끼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죽을 먹기를 거부했다. “배가 불렀어요.”말을 마치고 이내 몸을 돌려 밖을 향해 걸어갔다. 임재욱의 곁을 지나갈 때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꽉 잡더니 뒤로 확 잡아당겼다. 유시아는 얼떨결에 그의 다리에 걸터앉아버리고 말았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어디서 얻어왔는지 모를 연고를 꺼내며 말했다. “손이 상했잖아. 약 발라야지.”그러면서 연고를 꺼내 그녀의 손에 조금씩 발라주었다. 유시아는 흠칫했다. “앗...”손은 아직도 아팠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임재욱은 두 손을 작게 떨더니 최대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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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임재욱은 그녀의 말을 듣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몸을 돌려 안으며 한마디씩 뱉어냈다. “내가 어울린다면 어울리는 거야.”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받쳐 들며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반지를 가졌으니 이젠 도망이라도 가려고?”“이 반지는 원래 제 거예요...”“너도 원래는 나를 사랑했잖아.”임재욱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왜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거지?”유시아는 침묵했다. 조금 뒤 그녀는 말했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일 뿐이에요. 함께 논할 수 없어요.”“그럼, 왜 반지는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네 것인데?”유시아는 또다시 침묵했다. ‘이게 다 무슨 망나니 논리야?’임재욱은 입술을 오므리며 그녀의 왼쪽 손목을 꽉 잡고 다시 그녀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지켜보았다. 그 눈빛은 조금 음험했으며 또 약간의 불꽃이 일고 있었다. 이제 곧 불길로 번져 품에 안은 이 여자를 다 태워버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유시아는 그의 눈빛에서 일종의 위험을 읽으며 그가 또다시 자기의 반지를 빼앗아 갈까 봐 손을 빼려고 했다. 임재욱은 더더욱 움켜쥐며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좀처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놔요. 임재욱 씨, 아프잖아요.”유시아는 급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서 눈물까지 흘러나오려 했다. “임재욱 씨, 이거 좀 놔요.”임재욱은 손목을 놓아주고는 되려 그를 안아 들더니 그녀의 몸부림에도 아랑곳없이 층계를 올랐다. 커다란 침대 위에 던져진 유시아는 공포에 떨면서 말했다. “싫어요. 임재욱 씨, 아파요...”그녀는 이 남자가 침대를 벗어나 옷차림이 단정할 때만이 사람다워 보일 뿐 침대 위에서 옷을 벗어 던지는 순간 이미 모든 수양과 자제를 벗어나 가장 원시적인 부름에만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임재욱은 그녀의 두 손을 뒤로 잡아 쥐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유시아, 너 혹시 잊었을 수도 있는데 애초에 네가 먼저 나를 건드렸던 거야.”그녀가 시작했지만, 결말을 짓는 것은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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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임재욱의 물건이라면 그는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키스 자국이든 물린 자국이든.소현우가 없어서 볼 수가 없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깨끗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다만 표면의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그를 보며 미동도 하지 않고 자기의 목을 온찜질하고 있었다. 임재욱은 그녀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 손을 뻗어 등 뒤로 껴안아 그녀의 등에 자신의 가슴을 바짝 붙이더니 장난스럽게 그녀의 목에 힘주어 키스했다. “아, 이것 봐, 또 빨개졌잖아...”그의 흔적을 지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녀가 흔적을 지워가는 속도는 그가 흔적을 만들어가는 속도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다. 유시아는 거울 속의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임재욱 씨, 날 가만두지 않을 생각인 거죠? 평생 당신 곁에 둘 생각인 거죠?”임재욱은 그녀의 부드럽고 온순한 순종에 빠져들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결연한 기색을 보아내지 못한 채 말했다. “아니면? 소현우를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거야?”포기하지 않더라도 이 여사가 살아있는 하나 그녀는 소 씨 집안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못할 것이다. 이 여사는 명성과 재물을 그렇게도 사랑하는데 유시아한테는 그 두 가지가 다 없었으니, 무엇으로 소현우한테 시집간단 말인가?유시아는 그의 말에 의외로 매우 평온해지더니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세수를 좀 하려고 하는데 제가 쓸 스킨케어가 있나요?"”“가져다줄게.”그에게는 마침 어느 화장품 회사의 큰 고객이 선물한 세트가 있었는데 여태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비록 그다지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당분간 사용하는 데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유시아가 혼자 세수하도록 남겨두고 임재욱은 침대에 걸터앉아 유시아를 데리고 이틀쯤 나가 놀아줘야 하나를 생각했다. 아니면 영감탱이가 그의 아지트로 찾아올지도 모르니 남아있는다는 것은 방법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는데 욕실에서 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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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유시아는 이불속에서 몇 번을 뒤척거리더니 이내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임재욱은 그녀의 옆에서 신이 나서는 핸드폰을 꺼내 그녀의 잠든 옆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자기 턱을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걸치고는 지극히 다정해 보이는 셀카를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야 핸드폰을 접고 침실을 나와 서재로 갔다. 그는 유시아를 데리고 홍콩에 이틀쯤 놀러 가려고 하다 보니 일부 일들을 미리 처리하여 떠난 뒤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도우미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문을 두드렸다.“임 도련님, 저녁 준비가 다 되었으니 식사하세요.”그러자 임재욱은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 “아직도 자고 있어?”허 씨 아주머니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방금 침실을 지나며 보니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열한 시 남짓 되어서야 일어났는데 너무 많이 자도 머리가 아프지 않을까요?”“내가 깨울게.”임재욱은 말을 하며 몸을 일으켜 침실쪽 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자, 그녀가 아까의 등 돌린 모습 그대로 옆으로 누워 잠들어있는 모습이 보여왔다. “시아야...”임재욱은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잠을 많이 자도 머리가 아파. 저녁 먹고 다시 재워줄게. 말 들어. 어서 일어나.”유시아는 아무 소리도 없었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그는 또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지만, 그녀의 얼굴이 너무 차가운 것을 느꼈다. 그는 뭔가 생각난 듯 동공이 갑자기 움츠러들더니 단번에 그녀가 덮은 이불을 제꼈다. 그때 유시아는 한 손은 주먹을 꽉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유리 조각이 들려있었는데 붉은 피가 그녀의 잠옷과 백색의 자수 침대 세트를 물들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그녀가 더 이상 울지도 떠들지도 않은 것은 그녀가 정말로 그의 곁에 남아있겠다는 뜻이 아니라 더는 그와 싸울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망칠 수도 없고 남아있기에는 내키지 않고, 그녀의 지친 마음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였다. 그녀는 깨뜨린 유리 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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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순간적으로 절망의 빛이 짙어졌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왜 염라대왕도 나를 원하지 않는 거지?”임재욱은 그녀의 붕대로 감긴 손목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나랑 함께 있는 것이 죽기보다 더 힘들어? 그래?”“네.”유시아는 조금도 꺼리지 않고 대답했다. “당신과 함께 있는 매 순간, 저는 죽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니 임 대표님, 제발 제가 훌쩍 떠나갈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그녀는 더는 견뎌낼 수 없었다. 소현우의 존재조차도 그가 임재욱의 곁에서 구차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탱해 줄 수 없었다.그의 곁에서 그에게 날마다 짓밟히는 것은 1분 1초가 고통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유시아는 임재욱의 옆에 머물기보다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임재욱은 쓰게 웃으며 입가를 끌어당겨 조롱이 담긴 웃음을 짓더니 반지를 그녀의 침대맡에 놓아두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몇분 뒤 한 젊은 간병인이 들어와서 말했다. “유 아가씨, 저는 간병인 이 씨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제가 돌봐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요구가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유시아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고마워요. 임재욱 씨는요?”“금방 나가신 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는 가시면서 아가씨를 잘 돌봐드리라고 부탁했어요.”유시아는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을 수가 없었다. 3일 뒤 그녀는 바닥에 내려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어 스스로 약을 바꿀 수 있게 되자 떠날 준비를 하였다. 간병인 이 씨는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유 아가씨, 아직 몸도 제대로 낫지 않으셨는데 잠시는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전 이미 다 나았어요.”유시아는 그를 향해 웃으며 자기의 손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게다가 제가 상한 것은 왼손이지 오른손도 아니라서 별로 지장이 없어요. 약을 갈아붙이거나 하는 것도 얼마든지 저절로 할 수 있어요.”간병인은 그를 막을 수 없게 되자 가만히 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재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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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유시아는 임재욱이 그녀를 데리고 홍콩행 비행기에 오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밤 비행기는 에어컨을 너무 틀어서 유시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임재욱은 스튜어디스를 불러 얇은 담요를 가져와서는 그녀의 몸에 덮어주며 말했다. “시아야, 우리 한 번도 같이 여행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이 처음이지?”유시아는 그를 보며 담담히 웃을 뿐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찌 여행만 함께 떠나지 않았겠는가?그들은 함께 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유시아가 절망에 이른 게 아닌가!비행기가 홍콩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이었다. 임재욱은 예전에 함께 들었던 호텔에 예약했다. 다만 이번에는 유시아 혼자 방을 썼다. 처음으로 밤 비행기를 탄 유시아는 몹시 피곤해서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막 잠이 들었다.이튿날 아침, 그녀는 임재욱의 노크 소리에 잠을 깼다. “시아야, 오늘 일이 있으니 늦잠 자면 안 돼.”유시아는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임재욱은 차에 그를 태운 뒤 또 석 선생님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갔다. “석 선생님, 안녕하세요.”임재욱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진작에 와서 재검사를 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일이 좀 늦어졌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시아에게 다시 한번 검사해 주세요...”유시아는 자기의 작은 손을 내밀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석 선생님은 그의 맥을 짚어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회복이 잘 되고 있어요, 나중에 약 몇 첩 더 처방해 드릴게요. 평소에도 자양분 섭취에 신경 쓰고 철분 보충제를 많이 먹어야 합니다. 여자가 빈혈이 생기면 안색도 안 좋아져요.”유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석 선생님은 그녀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밖으로 나가 제자들에게 약을 달이도록 분부했다. 진찰실에 단둘이 남자 임재욱은 입을 열었다. “다음에... 다음에 너 혼자 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데려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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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당연히 마셨죠...”유시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꼬박꼬박 제때 챙겨먹었다. 그녀가 마시기 싫으면 집에 가져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도 몸은 자신의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대신 아껴주겠는가!임재욱은 그녀의 말을 일단 믿으면서 손을 뻗어 트렁크를 닫고는 말했다. “이제 어디로 가고 싶어? 전시회 보러 갈래?”그녀는 미술생이라 아마 매우 좋아할 것이었다. 임재욱이 남운대에서 공부할 때, 그녀는 친구들과 전시회에 자주 갔었고 한때 그와 함께 가자고 초대했던 적도 있었다. 유시아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한가롭게 길가의 돌멩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여기로 오자고 한 것은 당신이 제기했어요.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당신이 정하세요. 저도 약속한 이상 따르겠어요.”그녀의 말투는 조금 쌀쌀맞기도 하고 무심한 듯하기도 했으며,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했다. 임재욱은 손을 들어 양미간을 집더니 웃으며 말했다.“내 말에 따르겠다면 일단 차에 타자. 먼저 전시회를 보고 빅토리아항의 야경을 보러 가자.”유시아는 더 말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며 임재욱의 차에 올랐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자 몹시 기뻐했다. 여기에 관심도 있었던데다가 이처럼 규모가 큰 전시회는 정운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그녀는 한편으로 그림을 감상하면서 한편으로는 스태프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마치 오로지 미술에 관해 이야기할 때만이 그녀의 몸에서는 아련히 남아있는 예전의 활발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임재욱은 휴식 구역에서 멀리 그녀를 바라보다가 큰 걸음으로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사줄게.”“됐어요.”유시아가 말했다. “여기 그림들은 모두 값도 엄청날 텐데...”임재욱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난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전 아직 그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아요.”이건 사실이었다. 예전에 임재욱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을 때도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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