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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그냥 말을 말아야지! 원래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외로운 법!이도현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후배야, 산을 내려왔으면 산 아래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게 당연해. 할 일을 찾아서 하지 않으면 많이 따분할 거야. 너도 돈을 벌어야지. 이 세상은 돈이 없으면 안 돌아가는 세상이야.”“하고 싶은 게 뭔지 잘 생각해 봐. 이 선배가 다 도와줄게!”신연주가 웃으며 말했다.이도현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마저 잃게 된다.비록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사부가 준 카드만으로 평생 일을 안 하고 먹고 살 수는 있지만 그래도 뭔가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선배, 난 무공 제외하면 별로 아는 게 없어요. 의술도 조금 하지만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 예전에 대학은 나왔지만 8년 동안 산에서 살면서 이미 현실 사회와 멀어져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이도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남들이 취직하고 스펙을 쌓고 있을 때 8년을 산에서 보냈으니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괜찮아. 네가 할 줄 아는 걸 다른 사람은 못 하니까. 작은 진료소 하나 차리는 건 어때? 그러면 시간도 자유롭고 네 성격이랑도 잘 어울릴 것 같아.”신연주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그건 나중에 얘기해요. 도착했네요.”이도현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진료소를 차리기 싫은 건 아니지만 작은 진료소에 얽매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는 아직 세상을 더 돌아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그럴 능력도 없고 기회도 없었지만 지금은 충족한 돈도 있고 자신을 지킬 무공도 있으니 한곳에만 머물러 있기는 아쉬웠다.여자에 미친 그의 스승마저 산을 내려오기 전에 그에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수련에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가자. 이따가 일꾼을 고용해서 별장 내부를 청소해야겠어. 후배 넌 마음껏 즐겨. 지음이 병만 치료하면 이 선배가 중매를 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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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색골 스승의 말에 따르면 교룡은 원래 색에 미친 종족이라고 했다. 이도현은 교룡의 척추를 소유했기에 매번 여자와 근거리에서 접촉할 때면 몸에 이상반응이 생길 거라고도 말했다.그는 이제야 그 이상반응이 어떤 건지 경험하게 되었다.별장을 나온 이도현은 옛날 기억을 되짚어 가며 한 한의원 쪽을 향해 걸어갔다.8년을 떠나 있는 사이 완성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대체적인 위치는 기억이 났다.그는 느긋하게 느낌을 따라 걸었다. 한 시간 뒤, 그는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드디어 한의원 거리에 도착했다.이곳은 완성에서 한의원이 가장 밀집한 곳이었다.이도현은 이 도시를 설계한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의사들을 한 거리에 집중하게 했을까? 멀리 있는 사람들도 불편하고 의원간의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설계한 건지.이도현은 거리를 둘러보다가 환자가 가장 많은 한 병원으로 들어갔다.의사는 거짓말을 해도 환자들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는 건 의사의 실력이 아무리 못해도 다른 의원의 의사들보다는 낫다는 것을 설명했다.이도현은 신농관이라는 한의원으로 들어갔다.병원 안에는 온통 약을 보관하는 서랍으로 배치되었는데 각 서랍마다 약재의 명칭이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었다.옆에 있는 항아리에서는 약이 끓고 있었다.병원 내부는 진한 한약 냄새가 진동했다.벽에는 많은 상장이 걸려 있었는데 온통 원장의 실력을 찬양하는 상장들이었다.본관에는 한 노인이 책상에 앉아 환자의 진료를 보고 있었다.약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도 꽤 많았다. 이 일대에서는 꽤 잘나가는 한의원으로 보였다.이도현은 느긋하게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그러면서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한참 관찰하다 보니 이 의사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 환자들의 병명을 제대로 진단하고 정확한 처방을 내렸다. 아마 몇십 년의 시간을 거쳐 축적한 경험에서 나온 실력일 것이다.한의학은 서의학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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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주인장의 싸늘한 태도에도 이도현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그가 자리를 뜨려는데 한 여자가 휠체어를 밀고 입구로 들어왔다.“좀 비켜주세요. 감사합니다!”이도현이 옆으로 비키자, 여자는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휠체어에는 한 노인이 타고 있었는데 의식은 또렷해 보였으나 안색이 좋지 않았다.이도현이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신농관 관주 장지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노인의 맥을 짚었다.잠시 후, 장지민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한의원에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의사가 표정이 좋으면 아무 일 없는 것이고 의사가 미간을 찌푸리면 큰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장지민은 손을 내려놓더니 말했다.“어르신, 상황이 좋지 않네요.”노인은 전혀 슬퍼하는 기색 없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많은 전문가를 찾아가서 보였지만 속수무책이더군요. 난 괜찮다는데도 애들이 포기를 못해서 따라온 거예요.”장지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르신, 저는 실력이 부족해서 이 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따가 약을 지어드릴 테니 병증을 조금 완화할 수는 있을 겁니다.”“그래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나한테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노인이 물었다.“어르신, 아마 3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안 남은 것 같아요. 이런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장지민은 정중한 얼굴로 말했다.“3개월이라… 충분하네. 난 이 정도 산 거로 만족한다네.”노인은 죽음 앞에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그와 함께 온 여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이고 있었다.“울긴 왜 울어? 사람이 늙으면 병 들고 죽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냐? 울지 말고 이제 돌아가자. 바깥 공기를 좀 마시고 싶구나.”노인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여자는 눈물을 닦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장지민에게 고개를 숙인 뒤, 휠체어를 끌고 문밖으로 향했다.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이도현은 갑자기 가슴에서 뭉클한 감정이 치솟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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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노인의 앞으로 다가갔다.“어르신, 제가 병을 고쳐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한번 믿어보시겠습니까?”“어르신, 저 녀석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실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어르신도 자신의 상황을 이미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큰 병원에서도 포기한 병을 저 녀석이 고칠 수 있다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장지민은 다급히 다가와서 노인을 설득했다.조금 전 그가 진찰한 결과를 보면 노인의 간 상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간 동맥이 좁아지면서 혈류가 혈관을 막았고 이미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서의학에서는 노령화로 인한 간경화 말기라고도 이야기한다. 이미 이 상태까지 진행되었으면 이식해도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만약 이도현이 정말 이 병을 완벽히 치료한다면 그거야 말로 세상이 미쳐돌아간다는 증거인 것이다.처음부터 이도현을 믿지 않았던 여자는 그 말을 듣고 더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당연히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할 생각이 없었다.“마음은 감사하지만 됐어요. 할아버지를 당신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상대의 단호한 거절에 이도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코끝을 매만졌다.현재 그의 의술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아마 수많은 중증 환자들이 줄을 서서 치료해달라고 애걸복걸할 텐데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을 당하다니.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그런데 이때, 잠자코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아가, 저 젊은 친구도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자신하는 거겠지. 난 한번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구나. 어차피 3개월 뒤에 죽을 목숨인데 기적에 기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만약에 완치가 가능하다면 잘된 일 아니냐.”“하지만 할아버지….”“걱정 마. 실패해도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되겠어?”노인은 손녀의 말을 끊고 이도현에게 말했다.“젊은 친구, 염치 없지만 이 한 목숨 자네에게 부탁해도 되겠나? 성공만 하면 보수는 섭섭지 않게 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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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진짜 고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이다.이도현은 태극 침술로 눈 깜빡할 사이에 정확하게 노인의 간경맥을 연결하는 혈자리에 침을 꽂았다.“꽂았어! 저 자식 용기가 대단한데?”“여자를 위해 사람 목숨을 이용하다니!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저러다가 인명 사고라도 나면….”사람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그들 중에 이도현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다들 닥쳐!”갑자기 들려온 근엄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지민을 바라보았다.장지민은 그런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앙된 표정으로 이도현에게 물었다.“이거 혹시 태극 침술입니까?”이도현이 오히려 당황하며 그에게 물었다.“태극 침술에 대해 아십니까?”“20년 전에 운이 좋게 한번 본 적이 있지요. 의학 학술 교류회에 참석한 적 있었습니다. 그때는 서의학자들이 한의학자들을 무시할 때였지요. 그때 얼굴에 가면을 쓴 도사 한분이 나타나셔서 태극 침술을 시전하셨습니다. 작은 금침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정확한 혈자리에 침을 놓는 모습은 모두를 놀라게 했지요.”“침을 놓았다 하면 불치병 환자들이 완치가 되어 생기를 회복했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지요. 그때 그 도사님은 모든 환자를 치료한 뒤,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다시 그분을 뵙지 못한 게 제 평생 유감이 되었지요.”“죽기 전에 그 침술을 다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제가 고수를 못 알아보고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말을 마친 장지민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겠습니까? 저는 평생 한의학을 위해 인생을 바쳤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게 제 기쁨입니다. 제자로 받아주세요!”장지민의 모습은 현장에 있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60세가 넘은 한의사가 20대 청년 앞에 무릎을 꿇고 제자로 받아달라니!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장지민은 완성, 나아가서 염국에서도 꽤 유명한 한의사였고 사람들은 그를 신이 내린 손이라고 불렀다. 염국 전체를 통틀어도 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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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장지민은 신성한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두 손으로 받아 다급히 노트를 펼쳤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떠지더니 감격에 겨워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이 노트에 기재된 처방과 약학은 그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차원의 한의학이었다.이 노트만 있다면 자신의 의술은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까지 돌파할 수 있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다 되었다. 이도현이 허공에 손을 뻗자 노인의 혈자리에 꽂혔던 침들이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침을 제거하자 여자는 다급히 다가가서 노인의 상태를 살폈다.“할아버지! 괜찮아요? 좀 어때요?”노인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아오고 표정도 한결 편해졌다.“아주 좋아.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숨을 쉬는 것도 예전처럼 힘들지 않아. 근육통도 사라지고 온몸에 힘이 차고 넘치는 것 같아.”말을 마친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려 힘을 주었다.그는 거짓말처럼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축이 없이 신농관 안을 빙 돌았다.예전에는 간경화 때문에 다리가 퉁퉁 부어 걷기도 힘들던 노인은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육안으로 봐도 노인의 상태는 많이 호전된 것처럼 보였다.“젊은 친구, 정말 고마워. 난 소창열이라고 하네.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저 말고 나한테 연락하게. 내가 이래 봬도 염국에서는 힘 좀 쓸 수 있거든.”노인이 이도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노인이 이름을 밝히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소창열이라는 이름은 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소 장군님…?”“맞아! 저분이 바로 진북 장군 소창열 장군님이셔!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다 했는데 장군님이셨어!”모두가 경외에 찬 시선으로 소창열을 바라보았다.진북 장군 소창열, 염국을 위해 위대한 공훈을 세운 노장군이었다. 오랜 시간 염국의 북부를 지키며 수많은 적들을 물리친 불후의 명장!노인은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위대한 인물이었다.이도훈은 비록 속세를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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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저기… 어르신, 일단 앉으세요. 병이 다 나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너무 흥분하시면 안 좋아요.”이도현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자리를 권했다.그는 조금씩 이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할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소유정도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장지민이 약 보따리를 들고 나오더니 공손히 말했다.“사부님, 요구한 약재는 여기 넣었습니다.”약재를 확인한 이도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장지민을 바라보았다.‘눈치는 빠르다니까!’이 약재만 있으면 한지음의 막힌 혈관을 치료할 수 있었다.약재를 확인한 이도현은 소창열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도망치듯 신농관을 떠났다.여기 계속 있다가는 소창열 손녀와 약혼식 날짜라도 잡힐 것 같았다.‘남자는 자기를 보호할 줄 알아야 돼!’신농관을 나온 이도현은 곧장 옛저택으로 향했다.어제 마당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는 모두 사라지고 바닥에 흥건하던 핏자국도 사라졌다. 결전 중에 갈라진 벽과 땅이 파괴된 자국들만 간간이 남아 있었다.이도현은 가족의 위패를 챙겨 재빨리 저택을 나왔다.주변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택을 나온 뒤에도 그 시선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이도현은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굳이 붙잡고 물어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면 부딪히는 게 나았다.별장으로 돌아와 보니 저택에는 젊고 예쁜 여자들이 메이드 복장을 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굶주린 시선들을 보고 있자니 이도현은 머리털이 곤두섰다.굳이 묻지 않아도 신연주가 데려온 고용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저 차림새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누님 머리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음란마귀들이 살고 있는 거야?“어때? 이 선배가 직접 선별한 고용인들이야. 괜찮지?”이도현을 본 신연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물었다.이도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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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도련님을 외치자 이도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들어도 절대 적응할 수 없는 호칭이었다.마치 테마 업소에 들어갔는데 업소녀들이 손님을 부르는 호칭 같았다.‘나와는 절대 안 어울리는 호칭이야!’“멍청한 자식!”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연주가 입을 틀어막으며 꺼이꺼이 웃음을 터뜨렸다.“가자! 식사 이미 준비됐어. 밥부터 먹자. 그런데 손에 그건 뭐야?”신연주는 그제야 이도현의 손에 든 보따리를 발견하고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한지음 씨 치료에 필요한 약재들이에요.”이도현은 보따리를 테이블에 놓으며 덤덤히 말했다.“이런. 그래도 약혼녀라고 챙기는 걸 보니 기특하네? 여자를 아껴줄 줄도 알고. 철 들었어.”신연주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도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반박했다.“제발 그 약혼녀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요? 상의할 일이 있어요.”“무슨 일인데?”신연주는 금세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부모님과 여동생 위패를 여기 모시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이도현이 위패를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상의할 필요도 없지. 어차피 널 위해 구매한 저택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신연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도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장 작은 방으로 가서 위패를 꺼내 놓고 향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부모님 위패에 절을 올린 뒤, 밖으로 나왔다.밖으로 나오자 향긋한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신연주는 벌써 식탁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한지음과 이설희는 외출하고 돌아오지 않았기에 식탁에는 둘만 남았다.“후배, 빨리 와서 밥 먹어!”신연주가 그를 재촉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대부분은 신연주가 질문하고 이도현이 대답하는 식이었다.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건 이도현의 산에서의 생활과 스승님에 관한것이였다.이도현은 소통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성격 급하고 곤란한 질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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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산 아래로 내려간 신연주는 대문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는 한 청년을 발견했다.남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마녀, 오랜만이야!”“왕주영? 새끼 독수리 이 녀석 살아 있었구나? 네가 어쩐 일이야?”신연주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알면서 왜 물어? 서북후 피살 사건 때문에 왔지. 그 녀석을 나한테 넘기면 넌 건드리지 않을게.”왕주영이 웃으며 말했다.“그럴 수는 없지.”신연주는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이 살기 위해 후배의 목숨을 내놓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이도현에게 해를 가하는 자는 그게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마녀, 난 한가하게 의논이나 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야. 성존 사부님의 명령이다. 너와 녀석을 같이 데려오라고 하셨지만 너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스승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너한테 기회를 준 거라고. 착각하지 마.”왕주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독수리 영감이 선 넘었네. 이건 우리 태허산의 일이다. 너희는 간섭할 자격이 없어. 서북후 그 녀석이 죽음을 자초한 거야. 놈이 먼저 내 후배 녀석을 건드렸다고.”신연주도 지지 않고 차가운 기세로 응수했다.“완강하네. 그럼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날 원망하지나 마!”왕주영이 분노하며 으르렁거렸다.“창영 어르신, 노사 어르신, 저 여자를 제압하세요!”왕주영의 지시가 떨어지자 뒤에 있던 머리가 히끗한 노인 두 명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앞으로 나섰다.그들은 왕주영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신연주에게 다가갔다.두 사람을 알아본 신연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신영성존을 모시는 그 창영과 노사?”“그렇다!”한 중년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순순히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지.”다른 남자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한마디 덧붙였다.그들은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가소로운 눈빛으로 신연주를 바라보았다.“고작 둘이서 나를 무릎 꿇리려고? 독수리 영감이 수족을 보냈다는 건 그만큼 날 존중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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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뭐지?”창영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근거리에서 불의의 습격을 가했는데 공격이 빗나갈 줄이야.신연주의 반응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싸늘한 느낌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신연준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젠장!”피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신연주의 주먹이 그대로 그의 가슴팍을 강타했다.우드득!아찔한 소리와 함께 창영이 피를 뿜으며 뒤로 물러났다.쾅!간신히 중심을 잡은 창영이 창백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너… 어떻게 이렇게 빠를 수가 있지? 무슨 짓을 한 거야?”“이게 빠르다고? 내 후배의 실력을 못 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군.”느긋하게 그녀의 뒤를 따라온 이도현이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독이 바짝 올랐는데 그걸 자극하네!’“너….”왕주영도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신연주를 노려보았다. 내가 상대를 너무 얕잡아본 걸까?“창영 어르신, 괜찮으십니까?”종급 고수인 창영이 이렇게 쉽게 이 여자에게 패배할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신연주, 꼭 스승님과 대립할 거야? 그 결과가 어떨지 생각은 해봤어?”왕주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헛소리 그만 지껄이고 당장 꺼져!”신연주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신연주 너… 옛정을 생각해서 며칠 더 고민할 시간을 주지. 잘 고민하고 결정해. 스승님과 대립해 봐야 너한테 좋을 게 없어. 갑시다.”왕주영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지만 창영의 표정을 보고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그는 여느 패배자들이 항상 하던 대사를 끝으로 도망치듯 산을 내려갔다.“어르신, 노사 어르신과 둘이 힘을 합쳐도 그 여자를 제압하는 게 불가능한가요?”차에 오른 왕주영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확신할 수 없어요.”“그 마녀의 실력은 이미 우리의 예상을 훨씬 초월했어요. 신출귀몰한 몸놀림에 아까 소름이 돋더군요.”“강자끼리는 한수만 실수해도 생사가 판가름 나지요. 그 마녀가 날 죽이려고 마음 먹었으면 난 아마 저세상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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