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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왕의 비밀: Chapter 301 - Chapter 310

382 Chapters

제301화 불경한 마음

연일의 얼굴에서는 전혀 놀라거나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하지만 쉽게 물러설 무안희도 아니었다.‘흥! 어디 한번 변명해 보거라!’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강현준도 조용히 서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마치 그녀의 말에 아무런 흥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무안희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다.그녀는 강현준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그날 밤 연일이 고씨를 안고 왕부로 돌아오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연일은 말이 없었고 강현준도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고는 서신으로 눈길을 돌렸다.지언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연일은 전하의 충직한 신하로 평생을 일해왔습니다. 왕비… 아니 월영 아씨에게도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한 것뿐이니 이간질을 하실 거라면 그만두시지요.”“전하, 저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 눈으로 본 사실만 말한 것입니다. 옷차림이 다 흐트러진 고씨를 연일이 안고 돌아왔단 말입니다.”무안희는 고개를 돌려 연일을 향해 차갑게 비웃었다.“네가 결백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테냐? 고씨의 흐트러진 옷차림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아무것도 안 입은 채 겉옷만 간신히 걸치고 있었단 말이다!”연일은 여전히 그녀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현왕께서 뭐라고 하시지 않았는데 그가 해명할 이유는 없었다.무안희는 연일이 말이 없자 더 신이 나서 그를 추궁했다.“어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지?”그녀는 고개를 돌려 강현준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전하, 연일이 고씨를 안고 왕부로 돌아온 건 전하께서도 알고 계실겁니다. 다만 연일이 고씨의 방에서 적어도 한 시진 이상 머무르다 나온 건 아십니까?”붓을 잡았던 강현준의 손이 흠칫 떨렸다.그는 고개를 들고 연일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물었다.“이건 어떻게 해명하겠느냐?”“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연일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하지만 절대 잘못을 저지른 후의 두려움은 아니었다.“소인이 월영 아씨께 안타까운 마음을 품은 건 사실입니다.”분명 무례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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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질리면 선물로 주지

“전하…”강현준이 줄곧 말이 없자 무안희는 조바심이 났다.“연일이 고씨에게 불경한 마음을 품은 건 사실이잖습니까. 그날 밤 그런 차림으로 돌아온 걸 본 사람도 적지 않은데….”“소인과 월영 아씨 사이는 결백합니다. 절대 선을 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 소인에게는 뭐라고 욕하셔도 상관없지만 월영 아씨의 결백까지 모함하지 마세요!”연일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안희는 현왕부의 남자들이 왜 하나같이 고월영을 감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전하….”“그래서 이제 와서 나한테 이 얘기를 꺼내는 저의가 뭐지? 연일이 눈에 거슬려서 내 손을 빌려 연일을 제거하려는 건가?”강현준의 말에 무안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어찌 그런 마음으로….”“정말 내가 여자 하나 때문에 수족을 내칠 거라 생각하느냐?”그 말에 무안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전하….”연일도 그 말에 움찔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아직은 그 여자에게 완전히 질린 게 아니다. 그리고 난 다른 남자와 내 여자를 공유하고 싶지도 않고.”강현준의 싸늘한 시선이 연일을 향했다.“그 여자에게 마음이 있다면 내가 질릴 때까지 기다리거라. 어쩌면 어느 날 내가 그 여자한테 갑자기 질려서 너한테 선물로 줄 수도 있겠지. 물론 네가 내키지 않으면 그 마음, 하루빨리 거두는 게 좋을 거다.”“전하! 소인이 어찌 그런 불경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나이까!”연일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소인이 그런 마음을 품었다고 하더라도 절대 전하를 배신할 생각은 없습니다! 소인을 믿어주십시오.”“내가 단지 홧김에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느냐?”강현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나한테 고월영은 이제 시종과도 다를 바 없는 존재이니라. 어찌 시종이랑 나와 전장을 함께 누빈 수족이랑 비교할 수 있겠느냐.”“전하….”강현준의 말에 연일은 온몸에 피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만약 고월영이 이 말을 들었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연일은 갑자기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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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내 정녕 모를 줄 알았느냐

연일은 진심으로 고월영을 지켜주고 싶었다.정욕이라기에는 보다 순수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지언이었기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지언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월영 아씨가 전하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몰라서 그래? 어떻게 그런 여인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단 말이냐? 평생 전하를 위하겠다던 그 마음은 대체 어디로 간 거냐!”연일 역시 괴로웠다.고월영을 미워해야 하지만 매번 곧 무너질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 미운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연일은 이런 자신이 미웠다.그는 지언에게 등을 돌리고 먼 산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분이 우는 모습을 본 적 있어?”지언은 황당한 표정으로 친우를 바라봤다.“수십 리를 달리고 달려서 드디어 인적이 없는 길목에 도착한 뒤에야 구석에 주저앉아 홀로 울고 있었어.”반달이 지났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연일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아마 그 모습을 본 순간 그녀를 연모하게 된 것 같았다.그런 마음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끊임없이 자책했다.하지만 후회는 없었다.“너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지언은 친우가 알면서도 그릇된 길에 점점 빠져드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정신 차리거라. 전하께서 홧김에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그건 절대 진심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멍청한 자식!”연일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지언이 쫓아가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어디 가는거냐?”하지만 연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현왕이 만약 영원히 고월영을 곁에 두고 지켜준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적어도 그녀는 행복할 것이다.연모한다고 꼭 그 여인을 소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그녀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연일은 생각했다.한편, 연일과 지언이 떠나고 서재에는 무안희와 강현준 두 사람만 남았다.무안희에게 이는 절호의 기회였다.항상 현왕과 단둘이 있는 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 왔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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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울지 말라고

무안희의 절절한 말에도 강현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안희를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나가.”무안희는 겁에 질려 후다닥 줄행랑을 놓았다.비록 쫓겨나기는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고월영이 자신 때문에 죽을 뻔한 걸 알고도 현왕은 자신을 벌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했다.아주 좋은 징조였다.고월영은 이제 그의 마음 속에서 악의 근원이 되어버린 것이다.‘앞으로 전하께서는 더 이상 널 애지중지하지 않을 거야! 두고 봐!’그날 밤, 고월영이 목욕을 하고 있는데 방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방으로 들어선 사내는 욕조에서 그녀를 끄집어내고는 침대에 던졌다.잔등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그녀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정수리 위에서 사내의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체 무슨 방법을 써서 내 신변의 호위 기사마저 홀린 거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말해! 네가 뭘 했길래 연일이 너한테 푹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지? 그날 연일이랑 같이 돌아온 날 방에서 둘이 무슨 짓을 한 거냐!”“모릅니다….”남자는 폭언을 터뜨리면서도 유린을 멈추지 않았다.강현준은 언제부턴가 미친 폭군이 되어 있었다.“이러지 마세요. 아픕니다…. 전하….”“아파? 어디가 아픈데? 말해! 어디가 그리도 아프냐고!”‘넌 아파할 자격도 없어!’현왕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더 거칠게 그녀를 다루었다.“전하,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저를 죽여서 그 아이의 복수를 하세요.”고월영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강현준은 그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고월영은 절망했다.이제 뭘 위해서 악착같이 살아 남아야 하는지 의미도 느껴지지 않았다.‘이대로 날 죽여줘. 날 죽이면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까?’“죽여달라? 그렇게 쉽게 끝낼 것 같은 것이냐?”“전하… 악!”그날 밤, 강현준이 유린한 건 그녀의 몸뿐이 아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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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그의 분노

고월영이 울음을 멈추었다.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더 이상 볼을 타고 흐르지 않았다.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녀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목각 인형을 다루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남자가 다시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그녀는 인격체가 없는 인형처럼 가장 굴욕적인 자세로 남자의 손길을 받아내야 했다.온몸에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반항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강현준은 그 모습을 보자 더 짜증이 치밀었다.결국 흥미를 잃은 그는 그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고월영은 끈 떨어진 연처럼 그대로 침상에 쓰러지면서 벽면에 이마를 부딪혔다.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강현준은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손을 뻗은 순간에 다시 짜증이 확 치밀어 손을 내렸다.노리개가 죽든 살든 나랑 무슨 상관이지?잠깐이나마 스쳤던 연민의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남은 건 혐오와 증오뿐이었다.“내 질문에 넌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고월영은 이불을 당겨 몸을 가리느라 여념이 없었다.헐벗은 모습으로 그의 눈앞에 있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다.하지만 강현준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애써 잡아당긴 이불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다.“내 인내심을 도발하는 것이냐!”고월영은 눈을 질끈 감고 길게 심호흡한 뒤, 입을 열었다.“무슨 답을 원하십니까?”기억 속에 그녀와 연일은 거의 접점이 없었다.“혹시 전하께서 저를 정왕부에 버리고 가신 날,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그곳을 빠져 나왔다가 다시 현왕부로 잡혀온 그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담담한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미워하고 원망해도 소용이 없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감정을 감추는 법을 배웠다.고월영은 눈을 뜨고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날 밤 저는 거리에서 이미 기절한 상태였습니다. 기절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연일이었고요.”“제가 어떻게 왕부로 돌아왔는지, 돌아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하나도 모릅니다.”가능하다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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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네 마음에는 나만 없어

고월영은 손목을 조여오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더 충격이었던 건 강현준이 한 말이었다.‘연일이 나를?’그녀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그녀의 공허한 두 눈에 두려운 감정이 스쳤다.“역시 너도 녀석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게구나!”강현준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조금 전까지 세상 살기 싫다던 얼굴이 연일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상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밤새 그녀를 품었을 때도 보이지 않던 표정이었다.“고월영, 대체 그 머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게냐? 너 현우 뿐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제는 연일도 보니까 가지고 싶어? 방탕한 년 같으니라고!”고월영은 그의 비난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억울함, 절망감, 그리고 실망.차라리 그가 없는 죄마저 뒤집어씌워서 자신을 죽여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할 말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 것이냐?”그녀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강현준이 아니었다.“너 같이 헤프고 방탕한 여자를 대체 뭐라고 그리 애지중지했던 것인지!”그가 분노에 치를 떨었다.고월영은 고요한 눈망울로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그래. 난 당신의 뭘 보고 좋아했던 걸까?’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반면 강현준은 고월영이 강현우를 제외하고 연일에게까지 마음을 주었다는 것에 분노했다.‘빌어먹을 여자가!’“그렇게 나 아닌 다른 남자가 가지고 싶었어? 꿈 깨! 내 손으로 널 죽이는 한이 있어도 너를 다른 놈에게 넘길 일은 없을 테니까!”그는 손을 뻗어 고월영을 돌려세웠다.남자의 싸늘한 몸이 자신의 위에 올라탔을 때, 고월영은 무기력하게 눈을 감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방 안에는 남자의 거친 호흡과 여자의 갈린 신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결국 그 가녀린 신음소리는 울음으로 바뀌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가 울고 애원한다고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악몽 같았던 시간은 고월영이 세 번째로 기절했을 때 드디어 멈추었다.생기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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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죽음

시안의 방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고월영은 몇 번이나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밖에서 불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고월영의 불길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시안아, 깼니? 어서 문 좀 열어봐. 안 그러면 문 부수고 들어간다?”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고월영은 당황한 마음에 힘껏 어깨로 문을 부딪쳤다.하지만 소리만 클 뿐, 그녀는 그대로 튕겨져 나와 바닥에 주저앉았다.문을 부술 힘은 그녀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최근 이틀간 강현준에게 유린을 당할 대로 당한 몸은 조금만 부딪혀도 사지가 아파왔다.고월영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품에서 호신용 단도를 꺼냈다.그리고 문가로 다가가서 단도를 문틈으로 집어넣고 어렵게 문을 땄다.문을 따는 그 순간 그녀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왜 이런 불안감이 드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안이 어제 문 앞을 다녀간 건 확신할 수 있었다.강현준은 왜 시종이 다녀간 기척도 못 느꼈을까? 어쩌면 너무 분노에 휩싸여서 그럴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은은하게 느껴진 약 냄새가 아니었다면 그녀마저도 시안이 다녀간 걸 몰랐을 수도 있었다.혹시 어제 밤에 찾아왔다가 처절한 비명소리를 듣고 놀라서 도망간 걸까?문틈이 조금씩 벌어질수록 고월영의 마음은 참담해져만 갔다.시안은 그녀의 옆에 가장 오래 함께한 시종이었다. 이 몸의 주인의 기억에서도 그랬고 그녀가 이곳에 와서도 가장 오래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 시안이었다.그리고 한 번도 시안은 그녀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시안아!”탁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드디어 열리자 고월영은 다급히 안으로 달려들어갔다.그리고 눈앞의 현실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그녀의 손끝에서 단도가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그녀를 마주한 것은 목을 매달고 죽은 시안의 시체였다.고월영은 미친 사람처럼 달려가서 허공에 매달린 시안을 안아서 내렸다.힘이 얼마 없었기에 그녀는 그대로 시안을 안고 엉덩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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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철보다 단단한 마음

하지만 곧이어 날아온 강현준의 싸늘한 시선에 그녀는 지척에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다섯 걸음 안으로는 절대 곁을 허락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옆에서 차 시중을 드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고월영을 제외하고 그는 아무에게도 곁을 허락하지 않았다.“어제도 제대로 쉬지 못하셨다고 들었는데 들어가서 쉬지 그러세요?”무안희는 그의 거처에서 밤을 새워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그녀 본인조차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다만 그가 언제 고월영의 낡아빠진 정자를 떠나 자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올지 궁금했을 뿐이었다.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짜증이 솟구쳤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렇게 무안희 역시 밤을 새웠다.하지만 강현준은 침방으로 가는 대신, 서재로 갔다.그 덕분에 무안희 역시 꼬박 밤을 새웠다.며칠 간 고월영만 찾아가는 그를 생각하면 무안희는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전하, 며칠 뒤면 저는 운조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머니의 사람들이 제가 있는 곳을 알아낸 것 같아요.”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하며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다.하지만 남자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동요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무 소리도 못 들은 사람 같았다.무안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원망이 가득 담긴 말투로 말을 이었다.“전하께서 저 때문에 다치고 돌아오신 걸 알고 어머니께서 화가 많이 나셨어요. 지금 돌아가면 한소리 들을지도 몰라요.”“힘들게 찾은 후계자를 때려 죽이기야 하겠어?”무안희는 그를 구하기 위해 백단교를 떠났다. 만약 그녀가 이곳에서 고월영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살았더라면 강현준도 이처럼 매몰차게 그녀를 대할 이유가 없었다.어찌되었든 만약 그 날 무안희가 아니었으면 강현준과 고월영은 무사히 백단교를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전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시면….”“여기 남고 싶으면 남는 거고 돌아가고 싶으면 사람 시켜서 백단교까지 안전하게 모시도록 하지.”강현준의 싸늘한 태도에 무안희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10년 전 첫눈에 반한 뒤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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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죽여버릴 거야!

무안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단도를 잠시 바라보았다.고월영은 거의 탈진 상태였기에 쉽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하지만 비켜서려던 그녀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몸을 약간만 비틀어서 심장 쪽을 피했다.단도는 그대로 무안희의 가슴에 꽂혔다.“악!”고월영이 단도를 다시 뽑았을 때, 무안희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선혈이 그녀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와 바닥을 적셨다.고월영은 목숨을 빼앗는데 실패하자 다시 단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하지만 측면에서 날아온 장풍이 그녀를 계단으로 밀어냈다.강현준의 장풍에 밀려난 고월영은 그대로 계단을 굴러 바닥에 쓰러졌다.“이게 무슨….”강현준은 흠칫하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그런데 옆에서 무안희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전하… 너무 아프옵니다. 이러다 저 죽은 거 아니옵니까?”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 고월영은 안간힘을 써서 몸을 일으켰다.강현준이 손짓하자 연일이 다가와서 그녀를 부축했다.“아씨, 이게 무슨….”“이거 놔! 저년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고월영은 장풍으로 연일의 가슴을 밀쳤다.연일은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거의 탈진 상태의 고월영에게서 어디서 난 힘인지 연일의 입가에서 피가 스며나왔다.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월영을 부축하며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아씨,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이거 놓거라!”고월영은 힘껏 몸을 비틀었다.연일은 그녀가 손에 든 칼을 마구 휘두르다 다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그녀를 놓쳐버렸다.고월영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무안희에게 다시 달려들었다.무안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강현준이 있는 쪽으로 몸을 사렸다.강현준이 고월영을 저지하며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조금 전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무안희의 심장을 노리고 달려든 게 분명했다.만약 심장을 다쳤다면 무안희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거 놔! 죽여 버릴 거야! 놓으라고!”이성을 잃은 고월영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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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유서

무안희는 중상을 입었고 그녀의 장풍을 맞은 고월영도 혼수상태가 되었다.왕부의 의원들은 한참을 바쁘게 돌아쳐야 했다.지언은 고월영이 왜 이런 미친 행각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낱낱이 조사했다.현왕의 거처로 돌아온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아뢰었다.“시안이 목을 매달아… 자결했습니다.”문밖을 지키던 연일도 그 말을 듣고 어깨를 흠칫 떨었다.침상 앞에 선 강현준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은 이 충격적인 소식을 받아들였다.강현준은 고개를 돌리고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지언에게 물었다.“이유가 뭐지?”지언은 말없이 그에게 다가가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시안이 남긴 유서였다.“아가씨, 죄송해요. 그 여자 말이 맞았어요. 제가 살아 있는 자체가 아가씨의 짐이었군요. 저 때문에 아가씨가 곤란해지는 건 원치 않아요. 그래서 먼저 갈게요. 제가 떠나면 더 이상 현왕 전하께서도 제 목숨을 가지고 아가씨를 협박하지 못하겠죠. 이제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요. 함께할 수 없어서 죄송해요.”강현준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시안이 남긴 게 확실하느냐?”“그건… 잘 모릅니다.”지언은 조심스럽게 고월영의 얼굴을 살폈다.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그녀에게서는 생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아씨께서 이런 격한 반응을 보였다는 건 이 유서가 시안 본인의 것이라는 걸 증명하지 않을까요?”“무안희가 직전에 찾아간 적이 있다고?”“예, 어제 월영 아씨의 거처에서 나오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다만 그때 아씨는 장군댁 여덟 째 아가씨의 거처에 가 있어서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시안을 직접 찾아갔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지언도 이 사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무안희가 직접적으로 월영과 시안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시안의 유서에서 나온 그 여자는 아마 무안희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무안희가 가서 무슨 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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