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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왕의 비밀: Chapter 291 - Chapter 300

382 Chapters

제291화 사라진 희망

안타깝게도 고월영이 아무리 애걸해도 강현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녀가 매번 품에서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다시 그녀를 잡아당겼다.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이미 곤장 스무 대가 끝났다.시안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다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호위무사가 다가와서 그녀의 몸에 찬물을 끼얹었다.일반인인 시안에게 있어서 곤장 스무 대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모든 게 끝나자 시안은 바닥에 엎드린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호위 무사가 문앞에 다가와서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전하, 끝났습니다.”“방으로 끌고 가거라. 또 곤장을 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문 앞에 대기하고 있어.”강현준이 싸늘하게 명령했다.“예, 전하!”두 명의 호위 무사가 시안을 질질 끌고 밖으로 향했다. 시안은 갈린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으나 아무도 그녀를 안타깝게 여기지 않았다.고월영은 시안의 비명을 들으며 점점 피가 차갑게 식고 있었다.그녀는 마치 영혼 없는 목석처럼 멍하니 강현준의 품에 안겨 있었다.“몸조리가 이제 끝났다지?”강현준이 그녀의 턱을 움켜쥐더니 물었다.고월영은 공허한 눈동자로 그의 눈을 바라봤다.“내가 묻고 있잖느냐. 아니면 시종이 대답을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거냐?”강현준이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오늘이 마지막입니다.”고월영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너는 참으로 내 취향을 잘 아는구나. 이렇게 떨고 있으면 내가 더 흥분하는 걸 알고 이러는 같단 말이지.”강현준은 냉소를 지으며 시선을 그녀의 몸 곳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겉옷을 벗어보거라.”고월영의 몸이 긴장감으로 바짝 경직되었다.진작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 정도로 잔인하게 자신을 대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강현준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눈에 담긴 싸늘함에 머릿속이 온통 하얘졌다.“왜? 또 내 인내심을 자극하는 것이냐?”강현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저는 우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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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비명이 가득한 밤

고월영은 반항을 포기하고 고분고분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얇은 속옷이 허리춤으로 내려갔다.약간의 주저함이 있었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마지막 남은 가리개까지 전부 벗어버렸다.눈처럼 하얀 피부가 바깥으로 드러났다.바라만 보고 있어도 호흡이 가빠질 만큼 아찔한 모습이었다.강현준은 그녀의 맨몸을 빤히 노려보며 거친 숨을 뱉어냈다.원하던 그림이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심지어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했다.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러면 내가 널 놓아줄 것 같으냐? 고월영, 아직도 내가 네 몸짓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멍청이로 보이냐!”고월영은 조용히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처음에는 수치심으로 빨갛게 상기되었던 볼도 차분함을 되찾았다.생각을 비우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저에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강현준은 짜증스럽게 그녀의 턱을 움켜잡고 강제로 시선을 맞추었다.“이건 또 무슨 신선한 꿍꿍이냐?”그녀가 말이 없자 그는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안타깝지만 이제 네가 뭘 해도 더는 흔들리지 않아. 넌 나의 노리개일 뿐이니까.”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그의 손길이 가녀린 목을 타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차분함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저절로 반응하는 몸 때문에 호흡이 거칠어졌다.강현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얌전히 따라주기로 했으면 이번에는 네가 한번 나를 즐겁게 해보거라.”그 말에 고월영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왜? 싫으냐?”강현준은 긴 의자에 느긋하게 허리를 기댄 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원래 인내심이 많지 않아. 셋 셀 시간을 주지. 셋! 둘!”고월영은 주먹에 꽉 힘을 주고 슬픔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그리고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옷섶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현준은 그런 그녀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그녀의 눈에 비친 고통과 아픔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그녀가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전혀 안쓰럽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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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지옥과도 같은 과정이 한 시진 정도 지속되었다.모든 일이 끝난 뒤, 고월영은 다 쓰고 버려진 도구처럼 침상에 널브러졌다.이불을 끌어다가 몸을 가릴 기운조차 그녀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등 뒤에서 남자가 옷을 입는 소리가 사락사락 들려왔다.그가 또 모욕적인 말을 뱉을 줄 알았지만 그는 옷을 다 입은 뒤에 조용히 방을 나갔다.방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월영은 울음소리를 겨우 참아냈다.그녀의 나신이 그대로 허공에 드러나 있었다.만약 문 밖을 지키던 호위가 고개를 들고 안쪽을 본다면….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그 뒤로 무기력하게 침대에 다시 쓰러졌다.입술에서 알싸한 고통이 전해졌다.너무 힘주어 깨물고 있어서 찢어졌던 상처가 힘을 쓰면서 다시 벌어진 것이다.손을 들어 피를 닦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그녀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결국 그녀는 눈을 감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얼마나 잤을까, 눈을 떴을 때는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이었다.두 시진 정도 잔 것 같았다.고월영은 길게 심호흡하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사지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침상을 내려 걸으려니 허벅지 사이가 아파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하지만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시안을 보러 가야 했다.고월영은 힘겹게 옷을 챙겨 입고 의약품 상자를 챙겼다.그리고 힘겹게 문 앞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다행히 문밖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밖으로 나갈 자유까지는 제한하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녀는 복도의 난간을 잡고 힘겹게 시안의 방 문 앞까지 왔다.안으로 들어가기 전, 고월영은 길게 심호흡하고 표정을 관리했다.허리를 곧게 펴자 두 다리 사이에서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똑바로 걸었다.시안은 기절했는지 잠들었는지 침상에 엎드린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옷에 피가 흥건한 것으로 보아 방으로 데려온 뒤로 아무도 치료를 해주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고월영은 씁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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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신분을 박탈당하다

고월영은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시안은 이제 고작 열여섯 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장군부에 있을 때는 단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순진한 아이였다.이 순진한 아이는 여왕 강현우만 돌아오면 이 모든 상황이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고월영은 이 아이에게 여왕이 돌아온다고 변하는 건 없을 거라는 말을 차마 해줄 수 없었다.이 상황을 해결할 사람은 고월영 자신뿐이었다.하지만 시안은 여전히 여왕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이렇듯 단순하고 착한 아이를 어찌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을까?“넌 잘못이 없어. 내가… 내가 잘못해서 현왕 전하의 눈밖에 나서 그래. 하지만 내 몸에 매를 들 수 없으니… 아랫사람인 너에게 분풀이를 하신 거야.”고월영은 눈을 질끈 감고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그럼 전하께서… 아가씨한테는 벌을 내리지 않으셨나요?”시안은 아파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녀의 안위를 걱정했다.“난 괜찮아. 너한테 화풀이를 하시고 그냥 가셨어. 나 때문에 네가… 고생 많았지.”고월영은 차마 시안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미안하구나, 시안아. 주인을 잘못 만나 네가 고생이다.”“아가씨만 괜찮으면 저는 참을 수 있어요… 앗! 좀 아프긴 하지만… 곧 나을 거예요.”시안은 자신이 월영을 대신해 벌을 받았다는 말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차라리 나니까 다행이지, 곱게 자란 아가씨가 맞았으면….’“그런데….”시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아가씨, 앞으로는… 전하의 심기를 건드리지 마세요. 저도… 곤장을 더 맞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고월영은 길게 심호흡하며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래. 앞으로는 성질 좀 죽이고 절대 전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게. 그러니 지금은 약부터 바르자꾸나.”시안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고월영이 시안의 속바지를 벗겨냈을 때, 시안은 너무 아파서 몇 번이나 기절할 뻔했다.고월영은 대충 상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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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언니가 왜?

여기서 더 나빠질 건 없다고 생각했던 고월영의 마음이 또다시 심연으로 가라앉았다.꼭 이런 식으로 수치를 주어야 속이 후련했을까?“내 여왕비의 자격은 현왕 전하께서 결정하실 일이 아니다.”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왕비 신분을 잃고 그의 후원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완전히 그의 노리개가 되라는 말과 같았다.현왕비나 측실이 아닌,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가 원할 때 기꺼이 몸을 내어주는 첩과 같은 존재였다.고월영은 문고리를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지언도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이 좋지 않았다.많이 힘들고 상심했을 텐데도 그녀는 겉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녀는 이곳에서 점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지언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전하께서 그러셨습니다. 자신이 마음껏 주무르고 놀던 여인을 동생의 왕비로 계속 둘 수는 없다고요. 앞으로… 여왕비라는 신분에 미련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고월영은 말없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지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아씨, 시안이가 많이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그런 일을 당한다면 살아남기 힘들지도 모릅니다.”“지금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그녀가 고저 없이 공허한 목소리로 물었다.지언이 말이 없자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뒤돌아서며 그에게 말했다.“뜻은 잘 알겠다.”그날 이후, 고월영은 강현준의 후원으로 거처를 옮겼다.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들을 만났다.한 명은 무안희였고 한 명은 장군부의 여덟 째, 고여추였다.고월영이 홀로 시안을 부축하며 후원에 나타났을 때, 고여추는 시녀를 물리고 종종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오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니? 시안이는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어?”시안은 통증에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고여추를 보자 반가운 마음보다는 불길한 마음이 더 들었다.고월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언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요.”그들의 거처는 후원에서도 가장 편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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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습격의 이유

고여추는 착잡한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고월영은 불길한 느낌을 애써 뒤로하고 다시 물었다.“현왕 전하께서 강제로 언니를 여기로 끌고 왔나요?”그런데 둘이 어떻게 알게 된 거지?강현준이 비를 간택할 때 장군부에서는 고여추의 화상을 보내지 않았다.그런데 둘이 어쩌다가 이렇게 가까워진 걸까?“월영아, 난 현왕 전하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고여추가 말했다.다른 여자한테 그 말을 들었으면 가식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담담한 얼굴로 말하는 고여추의 얼굴을 보자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고월영의 손을 잡고 의자에 앉더니 주변을 둘러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큰 오라버니께서 옥으로 끌려가셨어.”“뭐라고요?”고월영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녀는 그날 이후로 크게 앓고 현왕에 의해 감금 생활을 하면서 거의 외부와 단절된 한 달을 보냈다.그 사이에 집안에 그렇게 큰일이 있었다니!“무슨 연유로요?”“그건 나도 잘 몰라. 시종들 말을 들어 보니 현왕 전하께 습격을 시도했다더구나. 물론 그날 그 자리에 현왕 전하와 큰 오라버니 둘만 있으셨대.”“오라버니는 감옥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현왕 전하께서는 몸이 불편하시다는 이유로 심문을 차일피일 미루고 계신다는구나.”고여추는 불안함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큰 오라버니가 사고를 당한 뒤로 조부께서는 앓아 누우셨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도….”“설 이모님은 지금 괜찮으신가요?”고월영은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한달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어머니는 괜찮으셔. 다만 아버지께서 요즘 부쩍 짜증이 많으셔서 걱정이야. 가끔 어머니에게 매질을 하실 때도 있으신데… 나도 조급한 마음에 현왕 전하께 사정을 드리러 온 거야.”“전하께서는 도와주기로 하셨나요? 언니를 이곳에 묶어두는 대가로?”그게 아니라면 고여추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고월영은 착잡한 마음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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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낡은 거처의 불청객

아무도 고용기가 왜 갑자기 현왕을 습격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용기가 지난번에 운려각에 침입해서 정보를 캐내려고 한 일을 고월영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날 사건에 대해 고용기에게 물었을 때 그는 아주 진실한 눈빛으로 아니라고 답했다.비록 시공간을 넘어 이곳으로 오게 된지 일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여왕과 혼례를 올리기 전에 고월영과 고용기가 매일 붙어 다녔다는 건 알고 있었다.충직한 성격의 고용기는 절대 나라를 배신하고 황족을 해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 무슨 이유로 현왕부에 침입하고 현왕에게 습격까지 시도했을까?도중에 뭔가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닐까?고월영은 고여추의 방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한 달간에 장군부에 생긴 크고 작은 일들을 전해들었다.다만 고여추도 사랑 받지 못하는 첩의 자식이라 아는 게 별로 없었다.그래도 고월영은 귀를 열고 자세히 들었다.그날 그녀는 고여추의 방에서 한 시진을 머물렀다.그리고 그 시각, 그녀의 초라한 거처에 불청객이 방문했다.시안을 제외하면 이 거처에는 시중을 드는 하인도 없었다.영하각에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그래서 시안도 고월영을 제외하고 자신의 방에 들어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저는 괜찮다고 했잖아요. 여추 아가씨랑 좀 더 이야기하고 돌아오시지 그러셨어요.”고월영이 왕부에 감금되어 있는 시간 동안 얼마나 적적했는지 시안도 알고 있었다.고여추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래도 말동무 상대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상대는 말없이 시안의 침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시안은 의아함을 느끼며 애써 고개를 들었다.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시안이 경계 어린 얼굴로 물었다.“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무안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왜? 내가 못 올 데를 왔어? 어디서 비천한 시종 따위가 따박따박 질문질이야?”무안희는 의자를 끌어다가 침상 앞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건방진 것.”그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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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그냥 죽어

시안이 그걸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어젯밤 곤장이 끝나고 찬물 세례까지 당했기에 방으로 끌려 왔을 때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고월영이 찾아와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그래서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알 턱이 없었다.“설마 아가씨도 곤장을 맞았나요?”하지만 고월영은 많이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매를 맞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아씨,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빨리 하세요. 그렇게 빙빙 돌리며 사람 불안하게 하시지 말라고요!”무안희가 고월영을 고깝게 생각한다는 건 시안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당장은 고월영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가 더 중요했다.고월영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시안도 그녀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기 힘들었다.그래서 시안은 더 조바심이 났다.무안희는 초조해하는 시안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 주인이 현왕 전하를 거부해서 네가 맞은 것이야.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겠지?”시안은 말없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현왕이 잔인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비겁한 방식으로 고월영을 압박했을 줄은 몰랐다.“나중에 너 방으로 끌려가고 네 주인은 네가 불쌍했는지 결국 전하의 요구를 받아들였지.”“그리고 기생방의 기녀처럼 비천하게 오로지 전하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온갖 재주를 부렸단다.”시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서러움에 눈물이 나고 치가 떨렸다.“넌 잠자고 있어서 네 주인의 처참한 비명소리를 못 들었겠구나. 하지만 영하각을 지키고 있던 호위들은 다 들었단다.”“기녀처럼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어찌나 추하고 역겹던지… 마치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고 호위들이 그러더라고.”“그만하십시오!”시안이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고월영처럼 자존심 강한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졌다.무안희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주인은 자신을 위해 그 정도는 기꺼이 감내해 줄 분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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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무안희의 간계

무안희는 싸늘한 얼굴로 시안에게 다가갔다.그리고 침상에 엎드려 아무것도 못하는 시안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네 꼴을 좀 보거라. 이대로는 고월영에게 짐만 될 뿐이야.”“그만하세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절대 속지 않을 겁니다!”그녀는 홀로 왕부에 남겨진 고월영의 처지가 얼마나 적막하고 괴로울지 알고 있었다.적어도 살아서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이 힘든 세상에서 자신마저 죽으면 상심이 지나쳐 고월영도 같이 죽을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무안희가 차게 웃으며 말했다.“충직한 시종인 줄 알았더니 그냥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개였구나”“너처럼 죽기를 두려워하는 인간이 진심으로 주인을 모실 리가 없지!”시안은 그 말에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반박했다.“그런 말로 저를 자극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끝까지 살아남을 테니까요!”“그럼 마음대로 하거라. 그 쓸모 없는 몸뚱아리로 왕부에 있어봐야 현왕 전하께 이용만 당할 테니까. 한 번이 있었는데 두 번을 못 하실 것 같으냐!”무안희는 시안을 빤히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어쩌면 전하께서 고월영이 싫증 나면 너한테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겠구나.”“아니면 둘 다 노리개로 삼든가!”“당장 나가세요! 당장요!”시안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울부짖었다.자신을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월영까지 모욕하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었다.무안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그리도 아끼는 네 주인이 매일 현왕 전하의 노리개로 놀아나는 꼴을 옆에서 꼭 지켜보거라. 믿기지 않으면 밤에 몰래 네 주인 방 앞에 가서 엿들어도 좋고. 네 주인이 얼마나 처량하게 울부짖는지 말이다.”“고월영은 현왕부를 떠나지 않는 이상 인간 대접받지 못할 거다. 네가 살아 있으면 현왕부를 떠날 엄두도 못 낼 거고. 잘 생각하렴.”무안희는 등을 돌려 나가면서 저주를 퍼부었다.“물론 난 그 고고하던 고월영이 천한 기녀처럼 남자 앞에 자존심 다 굽히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는 게 아주 즐겁단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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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고발

연일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저의 충심은 오로지 전하만을 위한 것입니다. 아씨가 뭐라고 하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무안희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그럼 현왕 전하 앞에 가서 한번 속 터놓고 얘기나 해볼까?”연일도 물러서지 않았다.“저는 전하께 누가 될 일을 저지른 적 없으니 정 그러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지요.”그들이 여기서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지언이 다가왔다.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무안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전하께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무안희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언을 바라봤다. 이 왕부에서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지언이었다.이 콧대 높은 호위대장은 한 번도 그녀의 앞에서 태도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하지만 그에 반해 지언은 고월영과 그 시종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대했다.그게 무안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무안희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마침 안 그래도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었던 참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연일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연일 너도 같이 가자꾸나. 물론 거절해도 좋아. 나 혼자 가서 얘기하면 되니까.”연일은 그 말을 깔끔히 무시하고 성큼성큼 현왕의 거처를 향해 걸어갔다.아무것도 거리낌이 없는 그의 모습에 뒤에서 무안희가 눈을 부릅떴다.‘이따가 전하 앞에 가서도 그리 당당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그 시각, 강현준은 서재에서 서신을 읽고 있었다.무안희는 잔뜩 짜증이 난 상태였지만 서재로 들어가기 전에는 애써 표정을 수습했다.서재의 문을 열자 그녀는 어느새 온화하고 우아한 귀족 아가씨로 변해 있었다.가면 벗듯이 뒤바뀐 얼굴에 지언은 속으로 혀를 찼다.너무 완벽해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전하, 저를 찾으셨다고요?”안으로 들어간 무안희가 강현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하지만 강현준이 여인의 접근을 매우 꺼리는 걸 알기에 다섯 발 정도 남은 거리에서 멈추었다. 이는 그녀가 장기간 강현준의 주변을 배회하며 알아낸 가장 적당한 거리였다.자칫 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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