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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Chapters

제271화 전하를 따라가겠습니다

”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연일이 약간 분노한 기색으로 말했다.하지만 이번에는 고월영도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그녀는 담담히 앞으로 다가와서 온몸으로 진기를 뿜어내는 연일과 시선을 마주했다.“그럼 어디 해보거라!”“이….”연일은 당연히 그녀에게 실질적으로 상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여왕비였고 상전이었다.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고 미운 상전이라도 아랫것이 상전의 몸에 손을 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이때, 난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무 공자가 무슨 목적으로 이걸 만들었든, 그자가 만든 도구는 최상품 중의 최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 말을 들은 지언이 다가와서 연일을 잡아당겼다.“전 의원님까지 좋다고 하시니 그쪽에서 무슨 목적으로 이걸 보냈든 이것에 독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될 것 같사옵니다.”도구는 도구일 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사용처가 달라진다.지언은 아직까지는 고월영을 믿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가 현왕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믿고 있었다.조금 전에 그녀가 한 말들을 들어봐도 그랬다.적어도 여왕비는 이 왕부에서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힌 적은 없었다.오히려 여왕을 구한 사람도 고월영이었다.여왕의 몸을 오랫동안 잠식시켰던 그 독을 제거한 사람이 고월영이었다.난원까지 3개월의 시간밖에 안 남았다고 포기했던 독이었다.그런데 여왕비는 혼자 힘으로 여왕을 살렸다.그것은 아주 대단한 업적이었다.지언은 연일을 힐끗 바라봤다.연일도 고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까 했던 말은 아마 분을 참지 못해서 홧김에 나온 말이 분명했다.지언의 말에 그는 이성을 되찾고 옆으로 물러섰다.고월영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지언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약조 하나 해줄 수 있겠느냐?”“무슨 약조 말씀입니까?”“이따가 현왕께서 발작을 일으키실지도 모른다. 침관을 뽑으려고 하면 지언 네가 전하를 꽉 잡아주거라. 이 침관은 나도 어렵게 구한 거라 다시 무 공자께 부탁을 드릴 수도 없어.”연일이 그녀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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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제발 눈을 떠주세요

고월영의 침관은 강현준의 사혈을 뚫고 그녀가 직접 제작한 약물을 그의 체내로 흘려보냈다.초저녁까지는 딱히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지만 자정이 되자 그의 얼굴이 갑자기 시뻘겋게 달아오르다가 자줏빛을 띄기 시작했다.육안으로 봤을 때는 중독된 것 같기도 했다.그러다가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의식을 회복하고 있다는 징조였다.난원은 크게 기뻐하며 강현준의 맥을 짚었다.“왕비마마, 전하의 맥상이 이상합니다!”그가 고월영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고월영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난원, 내 현왕 전하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으니 자리를 좀 비켜줬으면 하네.”난원은 말없이 강현준을 빤히 바라보며 머뭇거렸다.“내가 현왕 전하를 해칠 거라고 생각하는가?”고월영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전하를 해친 진짜 가해자가 누군지 난원 자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난원은 말없이 물러갔다.밖으로 나오자 지언과 연일이 착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난원은 아무 말없이 그들의 옆에 서서 문 앞을 지켰다.고월영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끝내고 침관과 약물을 정리해서 상자에 넣었다.그녀는 침상 옆에 앉아 멍하니 강현준을 바라보았다.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정신을 차렸을 텐데 그는 끝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눈꺼풀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강현준 본인이 깨어나기를 거부하는 상황이었다.“그 정도로 이 세상에 실망하셨습니까?”고월영은 그의 손을 꼭 잡아주며 구슬프게 중얼거렸다. 손바닥에 온기가 돌아와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강현준은 눈을 뜨기를 거부했다.“전하, 아직도 저에게 화가 나 계신 겁니까?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회임 사실을 몰랐단 말입니다.”강현준의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사실은 눈을 뜨고 싶은 거지요? 뭐가 전하를 이토록 힘들게 만든 걸까요?’“전하, 눈을 뜨고 저를 한번 보세요.”그와 처음 만난지도 벌써 일년이 지났다. 둘이 언제부터 서로를 사무하게 되었는지 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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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도망가자

진심으로도 그의 의식을 불러올 수 없다면 복수심을 자극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그녀가 그 말을 내뱉기 바쁘게 방 안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그가 천천히 손가락을 오므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고월영은 다급히 그에게 손을 뻗으며 울먹였다.”전하….”그런데 그녀의 손길이 닫기도 전에 강현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이어진 건 숨막히는 고통이었다.사내가 그녀의 숨통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침상에 던져버렸다.눈을 뜬 고월영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사나운 눈빛과 마주했다.강현준은 그녀의 두 눈을 빤히 노려보며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조금 전에 했던 소리, 다시 지껄여 보거라!”“전하….”남자가 손가락에 힘을 꽉 주자 고월영은 순식간에 숨이 확 막혀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드디어 인정하는구나! 네가 내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말이다!”그는 점점 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그가 의식을 회복한 건 고월영에게도 기쁜 일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죽을 것 같았다.무안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의식을 회복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그녀를 죽일 거라는 말.설마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어 버리다니!“현왕 전하….”점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숨이 안 쉬어지고 심장박동도 느려지기 시작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월영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전하….”고월영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눈을 떴다.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목안이 쓰리고 아직도 그가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아가씨, 드디어 깨셨군요!”그녀의 옆을 밤새 지켜준 시안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언이 기절한 채 꼼짝도 않는 고월영을 안고 돌아왔을 때, 시안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물 좀….”고월영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목안이 너무 아파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시안은 다급히 달려가서 따뜻한 물을 잔에 따라 가져다 주었다.물을 마실 때조차도 그녀는 쓰린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너무 아파서 눈물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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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불길한 예감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절망을 느낄까?고월영은 이미 절망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 남자는 이제 더 이상 그녀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그날 밤, 자정이 넘은 시각에 고월영은 시안과 함께 후문으로 왕부를 떠났다.짐은 따로 챙길 필요가 없었다. 고월영은 약간의 노잣돈과 강현우에게서 받았던 옥패만 지니고 나왔다.이 옥패만 있으면 언제든 성을 지키는 사병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 있었다.“아가씨, 왜 바로 장군부로 안 가시나요?”시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이 드넓은 땅에서 장군부를 제외하고 마땅히 묵을 거처를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현왕 전하께서는 이미 장군부에 불만을 가지고 계신다. 지금 내가 장군부로 돌아가면 아버지와 오라버니께 누만 끼치게 될 거다.”그날 밤 자객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강현준은 그녀의 오라버니인 고용기를 의심하고 있었다.그때는 그녀와의 정분을 생각해서 장군부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를 극도로 혐오하는 강현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군부로 돌아가면 그때는 완전히 현왕의 눈밖에 나버리는 상황이 올 것이다.“아가씨, 현왕 전하와의 오해가 아직도 안 풀린 건가요? 달리 방법이 없을까요?”시안은 여전히 고월영과 현왕 사이에 오해만 풀리면 다시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아마 그 오해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구나.”고월영은 고개를 들고 칠흙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두 눈은 진한 살기를 품고 있었다.그것은 그녀를 향한 분노였다. 그는 진심으로 고월영을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만약 다른 여자였다면 울며 왜 이러느냐고 따지고 오해를 풀기 위해 설명을 늘어놓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고월영은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인 사람이었다.“아가씨….”시안은 고독한 상전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분명 많이 외롭고 힘들 텐데도 고월영은 여전히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시안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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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포위당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월영이 탄 말이 길게 울부짖으며 걸음을 멈추었다.위험을 감지한 것이다.고월영은 더 고민하지 않고 말 머리를 돌려 이곳을 떠나려 했다.그런데 방향을 돌리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서 수십 명의 장정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고개를 돌리자 반대방향에서도 수십 명이나 되는 무사들이 그녀의 퇴로를 틀어막았다.도망칠 수 없게 된 고월영은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탄 호위무사들이 양 갈래로 갈라지더니 한 사내가 말을 타고 느긋하게 앞으로 다가왔다.정왕이었다.정왕의 옆에는 그의 심복인 주희가 따르고 있었다.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여왕비, 오랜만일세.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가?”고월영의 앞으로 다가온 정왕이 말을 세우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고월영은 최대한 당황한 티를 들키지 않으려고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말에서 뛰어내려 정왕의 앞에 한쪽 무릎을 살짝 꿇으며 예를 올렸다.“정왕 전하를 뵙습니다.”“야심한 밤에 어찌 호위무사도 없이 홀로 황성을 나온 겐가? 밤길은 위험하니 내 친히 목적지까지 호송해 주겠네.”고월영은 손에 진땀이 났지만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지아비가 너무 그리워서 잠이 안 와 홀로 산책을 나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5황은 설산으로 갔다고 알고 있네만, 왕비, 여긴 설산이랑은 반대방향이지 않은가.”정왕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비소를 머금었다.“혹시 가다가 길을 잃은 겐가?”“예. 바깥 지리에 생소하다 보니 아마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습니다.”고월영은 긴장감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혹시 설산으로 가는 길을 아십니까? 아시면 소첩에게 방향만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정왕은 말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고월영은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이대로 지나가 줬으면 좋겠는데….’잠시 후, 정왕은 갑자기 말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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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도망

고월영은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그녀와 시안은 황성을 나온 지 불과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았다.이 야심한 밤에 대체 누가 정왕한테 소식을 전한 걸까?어찌됐건 1황인 정왕이 직접 나섰으니 여기서 도망치는 건 힘들 것 같았다.그녀는 슬슬 뒷걸음질치며 말고삐를 더듬었다.“전하, 저의 죄는 전하가 아닌 황제 폐하께서 직접 속단하셔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요?”“아바마마를 뵙고 싶나 보군.”정왕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여왕비, 자네는 아바마마가 황족의 위엄을 떨어뜨린 자네를 용서할 것 같은가?”“자네가 간첩과 내통하고 죄가 들킬까 두려워서 야반도주를 시도했다고 고하면 아무도 자네를 구해줄 수 없을 걸세.”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 목숨 불사하고 자네를 구하러 올 사람이 한 명 있군. 누구일 것 같아?”고월영이 말이 없자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도발했다.“우리 5황이 정이 좀 많기는 하지. 설산에 있는 5황이 황성으로 내려온다면 모를까….”잠자코 듣고 있던 고월영이 손을 들었다.무수히 많은 은침들이 정왕을 향해 날아갔다.그녀가 수많은 호위무사들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 대놓고 정왕을 공격할 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전하!”“전하를 호위하라!”수십 명의 호위무사들이 달려와서 정왕을 겹겹이 에워쌌다.정왕이 분노한 목소리로 고함쳤다.“멍청한 것들! 다 속았어! 당장 저년을 잡아!”고개를 들어 보니 조금 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여왕비가 말 등에 훌쩍 뛰어올라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그녀가 정왕을 향해 공격을 시전한 순간, 사람들은 정왕의 안전 확보에 정신이 팔려 정작 그녀가 뭘 하는지 주의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정왕은 그녀가 떠난 방향을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당장 쫓아!”“예, 전하!”수십 명의 호위무사들이 말을 타고 그녀를 쫓아갔다.정왕이 굳은 목소리로 지시했다.“다쳐도 상관없지만 살려서 끌고 오거라!”“예!”주희는 멀어지는 호위무사들을 눈으로 쫓다가 정왕에게 다가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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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벼랑 끝에서

고월영은 호위대에게 쫓겨 결국 벼랑 끝까지 밀려났다.등 뒤에는 깊이조차 보이지 않는 골짜기, 앞에는 정왕의 호위무사들이 겹겹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저들에게 끌려간다면 정왕이 무슨 짓을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만약 이곳에서 뛰어내린다면….고월영은 곁눈질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해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여기서 뛰어내린다면 그대로 즉사할 것이다.“왕비님, 이제 도망갈 곳도 없는데 우리랑 돌아가시지요.”호위무사들 중 한 명이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고월영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죽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 정왕에게 잡혀가서 이상한 죄명까지 뒤집어쓰면 장군부에까지 피해가 갈 수 있었다.호위 무사와 그녀의 거리는 열 걸음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뒤에서 쫓아오는 정왕과 주희의 모습도 보였다.저들에게 잡혀서 괴롭힘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여기서 뛰어내리면 살 확률이 얼마나 될까?’정왕과 호위무사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고월영은 길게 심호흡한 뒤, 이를 악물고 뒤로 뛰어내렸다.“저런!”정왕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다 잡은 토끼가 죽음을 불사하고 뛰어내릴 줄이야!그곳은 깊이를 알 수도 없는 심연이었다.고월영이 뛰어내린 순간에 정왕이 뒤늦게 몸을 날렸지만 이미 추락한 그녀를 잡을 수는 없었다.이 거리에서 같이 뛰어내린다면 죽는 길밖에 없었다.그가 주저하는 사이, 옆에 있던 주희가 벼랑 끝으로 몸을 날렸다.‘어떻게?’고월영 본인조차 정왕의 인파들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려고 뛰어들 줄은 몰랐다.그녀는 추락하는 고월영에게로 몸을 날려 손목을 잡았다.하지만 고월영의 몸은 이미 허공에 떠있었기에 둘이 같이 벼랑으로 추락하게 되었다.주희는 품에서 단도를 꺼내 벼랑 끝을 힘껏 내리쳤다.하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절벽에 단도를 박아넣는데는 실패했다.다만 그녀가 그런 시도를 한 덕분에 추락하는 속도가 조금 늦춰졌다.고월영도 그 순간에 살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그녀는 허리춤에서 단도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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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정왕의 초대

‘밤에 정왕께서 현왕 전하를 왕부로 초대하실 겁니다.’주희의 말은 하루종일 고월영의 귓가를 맴돌았다.잡혀왔을 때가 새벽이었고 이제는 다시 날이 어두워져 밤이 되었다.고월영은 목석처럼 침상에 앉아 있었다.주희가 보낸 시종들이 와서 그녀의 목욕 시중을 들고 예쁘게 단장시켜 주었다.당장을 마친 고월영을 보자 주희의 두 눈에 착잡한 감정이 스쳤다.“여왕비 마마는 제가 봤던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토록 마마께 목매다는 거겠지요.”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고월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고월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대부분 여자들은 그녀의 얼굴을 시기하고 갖은 방법을 써서 망가뜨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런 건 다 상관 없었다.고월영에게 미모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참 차분하십니다. 제가 질투에 눈이 멀어 이 얼굴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데 걱정도 안 되시나 보군요?”주희가 웃으며 천천히 고월영의 턱을 치켜 올렸다.고월영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신이 내린 외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주희는 단장을 좀 아는 사람이었다.긴 머리를 반묶음 해서 틀어 올리고 나머지는 길게 드리운 모습은 청초하면서도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았다.분조차 바르지 않은 하얀 얼굴은 투명하게 빛이 났고 이슬을 머금은 듯한 두 눈은 잔잔한 호수를 연상케 했다.주희는 그녀의 눈가에 붉은 점을 찍어주었다.하얀 얼굴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점이 요염한 분위기를 더했다.화려하지 않지만 연한 하늘색 치마는 더욱더 그녀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강조했다.주희가 고월영을 데리고 대전에 나타났을 때, 뭇 남자들의 시선이 전부 그녀에게 쏠렸다.호위 무사들의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정왕마저도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단 한 사람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왕의 옆에 앉은 남자는 느긋하게 술잔을 들고 있었다.고개를 든 고월영은 그가 들고 있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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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도발

강현준은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정왕에게 물었다.“성밖에서 누구를 만나셨습니까?”“현왕부의 여왕비가 운조의 오랑캐놈과 밀회를 즐기고 있더구나.”정왕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강현준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었다.그가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고개를 돌려 고월영에게 시선을 주었다.“여왕비, 오랑캐와 밀회를 가진 죄, 인정하느냐?”고월영은 고개를 들고 정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히 답했다.“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어찌 인정하겠습니까.”“나와 내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어디서 발뺌을 해?”정왕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4황, 여왕비와 내통한 남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느냐?”“누굽니까.”강현준은 여전히 고저 없는 목소리로 심드렁하게 물었다.하지만 정왕은 그가 속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고월영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불사했던 동생이었다.지금 이렇게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분명 속은 이미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여왕비와 밀회한 정인과 4황을 저격한 자객이 동일 인물이었더군.”“그래요? 그럼 놈은 어디 있습니까?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정왕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무공이 뛰어난 자라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멀리 도망치고 있었어. 쫓아갔는데 결국 놓치고 말았지.”“그러니까 결국 둘이 밀회를 했는지 아니면 그냥 우연이었던 건지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는 거네요?”강현준은 고개를 돌리고 정왕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여왕비 말처럼 여왕비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쓴 거로군요.”“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고 하지 않았나. 내 눈이 바로 그 증거야.”정왕은 이미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고월영은 그에게 잡혀 있는 신세이고 현왕이 자신의 말을 믿든 안 믿든 상관은 없었다.고월영이 오랑캐 첩자랑 내통했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다.아무도 그의 말에 반기를 들 수 없을 것이다.“4황, 난 내가 본 것만 말했을 뿐이고 사실인지 여부를 4황에게 설명해야 할 이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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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능멸

대전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치는데 강현준이 못 들었을 리 없었다.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무덤덤하게 자신의 마차로 다가갔다.지언이 가림막을 열어주자 강현준은 주저 없이 마차에 올랐다.가림막이 내려지고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지언이 마차에 뛰어오르더니 마차가 출발했다.잠시 후, 정왕의 호위 무사 한 명이 급급히 안으로 들어오며 공손히 말했다.“전하, 현왕께서는 이미… 왕부를 떠나셨습니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약이 오른 정왕이 들고 있던 술병을 바닥에 내던졌다.술병은 고월영의 발치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며 고월영의 종아리를 스쳤다.선혈이 치맛자락을 적시며 흘러내렸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조용히 대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실망감과 씁쓸한 마음에 그녀는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다.갑자기 주변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지척으로 다가온 정왕이 그녀의 옷깃을 와락 잡아당겼다.“왜 현왕이 그대로 가버린 거지? 둘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야! 녀석은 분명 모르는 척 흉내만 내고 있는 거야!”분노에 이성을 잃은 정왕의 얼굴은 퍼렇게 질렸다. 이날을 위해 수많은 준비를 했는데 강현준에게 역으로 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안돼!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말해! 둘이 뭘 꾸미고 있는 것이냐!”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는 정왕 때문에 고월영은 머리가 울렁거렸다.“빨리 말하라고 했다!”분노한 정왕이 고함쳤다.고월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정왕과 시선을 마주했다.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하, 저는 버려진 장기판의 말일 뿐입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현왕께서는 진작에 저를 버리셨습니다!”“그럴 리 없다!”정왕은 절대 믿고 싶지 않았다.잠깐 고민하던 그가 갑자기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너희 둘 다 아닌 척 연기하는 거야! 현왕이 이곳에서 난동을 부리면 나한테 현왕을 칠 명분이 생기는 거니까! 그래서 꾹 참고 너를 모른 척한 것뿐이야. 그게 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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