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시집간 내 남편이 재벌이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231 - 챕터 240

1650 챕터

제231화

최연희가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일어나더니 비몽사몽한 얼굴로 문에 기댔다. 주방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냅다 밖으로 뛰어나갔다.역시나 식탁 위에 놓은 음식들은 그녀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와, 언니는 우렁각시예요?”최연희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아침부터 뭘 이렇게 많이 했어요?”강서연이 방긋 웃으며 야채죽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로써 아침 준비가 모두 끝났다.“얼른 먹어요.”그녀는 최연희에게 수저를 건넸다.“연희 양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한식이랑 양식 이것저것 해봤어요. 입맛에 안 맞아도 많이 먹어요.”“안 맞을 리가 없죠!”최연희는 빵부터 하나 집어 흐뭇한 얼굴로 맛있게 먹었다.강서연은 요리도 참 잘했다. 평범한 식자재들로 이렇게 맛있게 만들다니, 그녀 집의 요리사보다도 훨씬 솜씨가 뛰어난 것 같았다.‘이러니 오빠가 언니한테 푹 빠져서 집에 안 오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역시 입맛부터 사로잡아야 해.’그 생각에 최연희는 저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왜 그래요?”강서연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무슨 기분 좋은 일 있어요?”“아니에요. 그냥 언니랑 함께 사는 형부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지금 언니가 해준 아침을 먹으니까 저도 너무 행복해요.”강서연의 두 볼이 발그스름해졌다. 최연준도 그녀에게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이 두 사람은 맨날 행복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네...’그녀는 피식 웃고는 최연희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연희 양, 지금 제인 호텔에 묵고 있죠? 이따가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최연희가 활짝 웃었다.“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어요.”“누군데요?”최연희는 아무 말 없이 히죽 웃기만 했다. 두 볼이 발그스름해진 걸 보니 아무래도 남자인 모양이다.잠시 후, 역시 강서연의 예상대로였다. 집 밑에서 최연희가 그녀에게 소개해주었다.“여긴 저의... 친구 인지석이에요.”‘남자친구겠지?’강서연은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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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나중에 겨우 위험한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더는 과로해서도 안 되고 충격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하여 최연준이 최재원 대신 최상 그룹을 잠시 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강주로 돌아가는 일정이 점점 미뤄졌다.강서연은 별다른 불만 없이 그저 그에게 마음 편히 일에만 몰두하라고 했다. 하지만 최연준은 한시도 그녀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못 보면 계속 불안했다.“지금 할아버지 뵈러 가도 돼?”“경수 아저씨가 그러시는데 지금 둘째 어르신이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최연준이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이틀 전에 은미연이 전화로 최문혁과 싸우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은미연은 최재원의 건강이 좋지 않으니 최문혁에게 당장 가서 병간호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매사에 굼뜬 최문혁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은미연은 분통이 터져 욕설을 퍼부었다.“지금 잘 보이지 않으면 또 동생한테 기회를 주려고 그래? 당신은 왜 이리 겁쟁이야? 어떻게 모든 걸 다 최진혁한테 뺏겨?”‘역시 은 대표님의 말이 옳았어.’최연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비서가 노크하고 들어와 서류 한 무더기를 내려놓았다.“도련님, 이건 그룹의 개혁 시행 방안입니다. 회장님께서 도련님더러 오늘 연관 부분과 회의하여 대체적인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십니다.”최연준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할아버지는 날 예뻐하셔서 절대 하루에 이 많은 일을 시키지 않는데 오늘은 왜 이러시지?’평소와 다른 상황에 최재원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알았어.”최연준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그럼 회의는 오후 4시에 하는 걸로 해. 그 전에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일단 할아버지 좀 뵙고 올게.”비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도련님, 그건...”“왜?”최연준이 살벌한 분위기를 내뿜었다.“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뵈러 가겠다는데도 말리려고?”방한서가 재빨리 비서 앞을 막아섰다. 비서는 꼼짝도 못 했고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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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웬일인지 약속이나 한 듯이 최진혁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구현수를 잡은 후에 계속 비밀리에 훈련하긴 했지만 구현수는 최연준과 완전히 비교도 안 되었다. 뼛속부터 타고난 게 다르다 보니 아무리 훈련해도 최연준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다.구현수에게 최연준을 사칭하여 영국에 가서 사인하고 돈을 뜯어내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영국에 최연준의 친어머니가 있는데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만약 일이 크게 번지면 결국 내동댕이쳐지는 건 최진혁일 뿐이다.“구현수라는 사람 정말 연준이랑 비슷하게 생겼어?”무심한 척 묻는 최재원의 질문에 최진혁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네... 게다가 강씨 가문과 혼약을 맺은 사람이 바로 구현수라고 해요.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연준이가 그 마을에 가서 요양하게 되면서...”최진혁은 말을 하려다 멈췄다. 더 얘기했다간 최연준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했다는 것까지 말할 뻔했다.“아무튼... 대충 그런 상황이에요.”최진혁이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원래부터 오해였어요. 연준이가 아마 평범한 여자를 만나보지 못해서 신기해서 마음이 갔을 거예요. 강서연을 없애면 연준이는 계속 우리 최씨 가문에서 가장 훌륭한 후계자일 겁니다. 하하...”이 웃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었다. 강서연을 제거하는 건 최연준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말이다.이 방법은 그 어떤 방법보다도 효과가 있을 것이고 남을 이용하여 눈엣가시를 제거하는 것이니 자기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최재원도 마침 그 여자를 탐탁지 않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내가 머리 하나는 참 좋다니까.’“아버지.”최진혁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강서연의 거처도 알아냈고 또 연준이랑 강주에서 작은 커피숍을 차렸더라고요. 지금 당장 구현수를 보낼 테니까 아버지는 연준이만 잡아두시면 돼요.”최재원은 고개를 들어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래, 이 일은 너한테 맡길게. 깔끔하게 처리해!”“나중에 연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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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여보세요, 아들!”휴대 전화 너머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연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엄마,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하셨어요?”런던은 지금 오전이라 어머니가 한창 회사에서 바쁠 시간이었다. 하여 절대 수다나 떨자고 전화한 건 아닐 것이다.“가짜 아들을 나한테 보내겠다며? 나더러 그 사람을 잡아놓으라고 하더니 며칠이 지났는데도 왜 아무 소식이 없어? 그 사람은 어디 있는 거야?”최연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대로라면 최진혁과 최지한이 이미 움직였어야 하는데.전화를 끊은 최연준은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한서야.”최연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작은삼촌 요즘 뭐 하고 있어?”“계속 회장님 곁에서 회장님을 보살펴드리고 계세요.”“지한이 형은?”방한서의 대답을 듣기 전에 최연준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치 마음 한구석이 찢겨나간 듯한 그런 고통이었다.그는 본능적으로 강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강서연은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최연준이 잔뜩 굳은 얼굴로 결정을 내렸다.“지금 당장 티켓 끊어. 강주로 돌아간다!”“하지만 도련님...”“내 말 못 알아들어?”최연준은 초조해하며 넥타이를 힘껏 잡아당겼고 심장이 터져 나올 듯이 쿵쾅거렸다....저녁 무렵, 강서연이 커피숍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당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왔다.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훤칠한 키의 누군가가 마당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강서연은 기쁜 마음에 활짝 웃으며 목청껏 불렀다.“여보!”남자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없었지만 눈빛이 어딘가 음흉해 보였다. 그나저나 최연준의 얼굴과 너무나도 닮은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보! 일주일 후에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한테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갑자기 돌아온 거예요?”강서연은 폴짝폴짝 뛰어나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런데 그의 품에 안긴 순간 이상한 기분이 밀려왔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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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구현수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옷소매에 숨겨둔 비수를 몰래 움켜쥐었다.이곳에 오기 전에 최진혁은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말을 아끼고 깔끔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생각보다 만만한 여자는 아닌 듯싶다.게다가 강서연을 죽이려면 사람이 없는 곳에 데리고 가야 했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커피숍에서 처리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구현수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그녀를 힐끗거렸다.‘이 여자가 바로 강서연이구나. 나 대신 최연준이 결혼한 여자!’그가 손가락이 잘린 채로 길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최연준이 그를 도와 인생의 일대사인 결혼을 해결해줬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이 예쁜 여자를 바로 죽이기엔 좀 아까운데? 내가 먼저 즐기다가 죽여야겠어.’구현수가 입꼬리를 씩 올렸고 두 눈에 사악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헛기침으로 자신의 속내를 숨기려 했다. 강서연은 재빨리 그에게 물 한잔을 따라주며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능숙하게 앞치마를 입고 음식을 준비했다.그녀는 곁눈질로 의자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는 남자를 지켜보았다.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표정도 이상했으며 커피 한잔도 평소답지 않게 아주 천천히 마셨다. 그녀가 알고 있는 구현수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움직임을 잠깐 멈춘 강서연의 눈에 펜넬이 들어왔다. 그녀는 몰래 펜넬을 한 줌 집어서 방금 만든 비빔밥에 넣었다.“여보, 다 됐어요.”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음식을 내왔다. 구현수는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컵을 깨뜨릴 뻔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컵을 잡던 그때 강서연은 그의 왼쪽 손가락에 끼고 있던 골무를 발견했다.“여보.”그녀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었다.“손 왜 이래요? 다쳤어요?”구현수는 고개를 번쩍 들고 그녀를 째려보았다. 그 모습에 강서연은 마음이 움찔했다. 이렇게나 날카롭고 흉악한 눈빛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여보...”“난 괜찮아.”구현수는 고개를 숙이고는 평소처럼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허겁지겁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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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하지만 그 전에...”...최연준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계속 강서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받질 않았다. 불안한 예감이 마치 수만 마리의 벌레처럼 그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그는 재빨리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집 밑에 도착하자마자 방한서가 보낸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저마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도련님, 가게에 가신 거 아니었어요?”“뭐?”최연준은 마음이 움찔했다.“가게라니?”“가게 쪽을 지키던 애들이 그러던데요? 도련님이 커피숍에 들어갔다고. 전에 한서 형님이 도련님이랑 서연 씨가 함께 있을 땐 방해하지 말라고 해서 도련님이 가게에 들어가시는 걸 보고 다 철수했거든요.”“젠장!”최연준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로 알아챘다. 가게에 들어간 건 구현수이고 지금 이 순간... 강서연 혼자서 구현수를 상대하고 있었다.“지금 당장 가게로 간다!”몇몇 경호원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바로 차에 올라타 커피숍으로 최대한 빨리 달려갔다....강서연은 구현수에게 따귀를 몇 대 맞은 바람에 입가가 퉁퉁 부었고 의식도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힘을 쥐어 짜내며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구현수가 비수를 목에 겨누고 있어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고 목에서도 시뻘건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그때 구현수가 갑자기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옷을 확 찢어버렸다.훤히 드러난 속살에 구현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두 눈이 반짝였다. 그는 다시 한번 강서연의 머리채를 확 잡아당겨 바닥에 두 번 내리쳤다. 강서연이 더는 반항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음흉하게 웃으며 옷을 벗었다.“잠깐!”강서연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힘겹게 말했다.“구현수... 여기서는 싫어...”“뭐라고?”강서연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마음을 진정하려 노력했다.“여기 바닥이 너무 차...”“거참 따지는 것도 많네!”“죽을 때가 돼서 그래...”강서연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구현수, 내가 이미 여기 갇혔는데 도망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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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그 순간 총알이 유리창을 뚫는 소리가 마당 상공에 울려 퍼졌고 곧이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바닥에 쓰러진 강서연은 의식이 점점 흐려졌지만 마지막 힘을 내어 밖으로 기어나갔다.“여보, 살려줘요...”그런데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 두피가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에 차가운 칼날이 피부를 스쳤고 이어 구현수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도련님, 절 놓아주면 이 여자를 넘길게요. 어때요? 괜찮은 거래인 것 같은데. 이대로 그냥 보내준다면 다시는 두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도련님 와이프는 앞으로 도련님 한 사람의 것이에요!”최연준이 소리를 지르자 몇몇 경호원들이 구현수를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구현수가 비수로 강서연의 목을 겨누고 있었고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싸늘하게 웃던 구현수가 문 쪽으로 물러서더니 강서연을 최연준의 품에 확 던져버렸다.경호원들이 그를 쫓아갔지만 구현수가 한발 먼저 검은색 세단에 올라탄 바람에 잡지 못했다. 번호판도 없는 그 차는 길가에서 오래 기다린 듯했다.구현수도 놓치고 운전자의 얼굴도 확인 못 한 경호원들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당장 병원으로 가!”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최연준은 강서연을 꼭 끌어안았다. 몸과 손이 그녀의 피로 물들었다.머릿속이 하얘진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러 방법으로 지혈하려 애를 썼지만 피가 멈추지 않았다.“서연아, 강서연!”최연준은 그녀를 미친 듯이 불렀다.“눈 뜨고 나 좀 봐봐!”강서연은 아무 반응이 없었고 얼굴과 입술에 핏기가 전혀 없었다. 최연준은 절망에 빠진 얼굴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죽음과 이 정도로 가까이 마주한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번호판이 없는 검은색 세단은 미친 듯이 질주하여 인적이 드문 교외까지 달려왔다.강가의 바람이 시내보다 훨씬 더 셌다. 구현수가 유리창을 닫으려던 그때 백미러로 그를 섬뜩하게 쳐다보는 눈빛과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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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아까 당신이 실패했을 때 이미 그 사실을 어르신께 알려드렸어요.”남자가 고개를 돌렸다.“이 돈은 어르신이 주신 거예요. 당신을 살려두면 앞으로도 쓸모가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남자는 갑자기 손을 뻗어 구현수의 얼굴을 덥석 잡았다. 그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좋을 거예요... 이대로 죽으면 얼마나 아까워요.”구현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감옥살이를 오래 하고 육경섭 같은 깡패를 만나도 눈앞의 이 청년처럼 두려움에 떤 적이 없었다.“그만 가봐요.”차가 길가에 멈춰 섰고 싸늘한 목소리가 구현수의 귓가에 들려왔다.“앞으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거예요.”돈뭉치를 챙긴 구현수는 차 문을 열고 황급히 도망쳤다. 모자를 눌러쓰던 남자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최연준은 응급실 문 앞에서 애타게 기다렸다. 손에 묻은 피가 검붉게 변해버렸다. 그는 떨리는 두 손을 맞잡은 채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최연준의 뒤에 서 있는 경호원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그때 맨 앞에 선 경호원이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도련님, CCTV를 돌려봤는데 교외 방향으로 도망친 걸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운전자가 아주 교활하더군요. 게다가 강주에 번호판이 없는 차량이 많고 특별한 차종도 아니라서 조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최연준은 아무 말 없이 싸늘한 기운만 내뿜었다.임우정은 초조한 마음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손톱을 계속 물어뜯었다. 응급실 위쪽의 빨간 불이 마치 뜨거운 불꽃처럼 그녀의 마음을 태우는 것 같았다.육경섭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최연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에게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고 얘기할 참이었는데 임우정이 먼저 눈살을 찌푸리고 차갑게 물었다.“저 사람이 진짜 최연준이야?”육경섭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듯 그녀를 보며 입술을 적셨다.강서연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 알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스무 번은 물어봤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육경섭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그래, 최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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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육경섭은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복잡한 눈빛으로 임우정을 쳐다보았다.“제발 진정 좀 해. 연준 씨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모르긴 뭘 몰라?”임우정이 목청을 높였다.“오성에서 재벌의 삶이 하도 지루해서 범죄자의 신분으로 사기 결혼하러 온 거겠지.”“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넌 상황을 잘 몰라. 그때 연준 씨가 남의 음모로 중상을 입은 바람에 강주에서 이름을 숨기고 지냈던 거야.”임우정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육경섭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너 이 사람에 대해 많이 아네?”육경섭은 아무 말이 없었다.“육경섭!”육경섭은 자신의 따귀를 내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최연준 씨.”임우정은 너무도 화가 나 목소리마저 떨렸다.“치료하겠으면 조용히 치료나 할 것이지, 왜 가만히 있는 서연이를 건드렸어요? 자기가 무슨 황태자라도 되는 줄 알아요? 중상을 입은 와중에도 여자를 꼬시다니. 당신네 형제들이 아주 부러워하겠어요? 그나저나 서연이는 어떡해요? 진짜 서연이랑 결혼할 거예요?”“우정아!”육경섭의 표정이 무척이나 진지했다.“그만해!”임우정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참았다.병원 복도가 갑자기 진공 속에 빠진 듯 조용해졌다. 잠시 후, 응급실 불이 꺼지자 최연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신석훈이 응급실에서 걸어 나오며 홀가분하게 한숨을 돌렸다.“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았고 동맥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다른 상처는 그냥 찰과상이라 천천히 치료하면 돼요.”최연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연준을 마주한 신석훈은 마음이 복잡했다. 그때 자신이 구한 사람이 이런 엄청난 사람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도... 도련님.”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간호사가 안에서 마지막으로 상처를 처리하고 있어요. 한동안 관찰하다가 아무 이상이 없으면 일반 병실로 옮길 거예요.”최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아 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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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최연준은 그녀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였다.“내가 널 속였어.”그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네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나 때문이야.”강서연의 두 눈에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그녀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왜 그에게서 일반인에게는 볼 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지, 왜 매번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마다 쉽게 해결했는지, 왜 돈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왜 이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었는지...이 세상을 발아래에 둔 최씨 가문의 도련님이니 두려울 리가 있었겠는가?강서연이 씁쓸하게 웃었다. 전에는 그에게 바보라고 했었지만 그의 손에 놀아난 자신이야말로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서연아...”“그만 나가요.”강서연이 이불을 뒤집어쓴 채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헝클어진 머리가 이불 밖으로 나왔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최연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고 싶었고 예전처럼 품에 안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그는 묵묵히 병실을 나와 복도 의자에 한참 동안 앉아있었다....며칠 후 강서연은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문 앞에 멈춰 선 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임우정이 나지막이 물었다.“우리 집에서 며칠 지낼래?”강서연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가뜩이나 요 며칠 신세를 많이 졌는데 더 민폐를 끼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고비는 그녀 스스로 넘어야만 했다.강서연은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허리를 숙이고 슬리퍼로 갈아신던 그때 신발장 안에 있는 최연준의 가죽 신발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이 움찔했다.집안의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베란다에 그가 훈련할 때 쓰는 샌드백과 복싱 글러브가 있었고 화장실의 빨래 바구니에는 그가 갈아입은 셔츠가 있었으며 소파에는 그가 평소에 있던 잠옷이 널브러져 있었다.그리고 세면대 옆에는 두 사람의 칫솔이 예전처럼 서로 맞대어있었다.강서연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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