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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1화

전태윤은 전이진의 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형...”“꺼져.”그렇게 전태윤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전이진은 투덜거렸다.“자기가 잘살고 있으니까 동생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야 뭐야.”그때, 박 집사가 꽃 한 다발을 안고 들어왔다. 이것은 전이진이 오자마자 정원에 가서 잘라 오라고 그에게 분부한 꽃다발이었다.“둘째 도련님, 큰 도련님께 한마디 들으셨죠? 시간 좀 보고 오시지 그랬어요. 지금 시간에 깨어있는 건 닭밖에 없을 겁니다.”매일 울음소리로 사람들을 깨워야 하므로 닭들은 일찍이 잠에서 깬다.“여기 도련님 분부대로 꽃다발 가져왔습니다.”박 집사는 그 꽃다발을 전이진에게 건네주었다.곧이어 꽃다발을 받아안은 전이진은 조금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집사님, 제 기억에 정원에 핀 꽃들은 아주 찬란하고 예뻤는데, 이 꽃들은 꽃송이가 왜 이렇게 작죠? 예쁘지도 않고요.”그러자 박 집사가 말했다.“사모님이 꽃송이가 크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셔서 그것들은 도련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꽃송이가 작은 것들만 고른 거예요. 사모님이 안 좋아하시는 건 도련님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가져다드릴 수 있습니다.”‘우리 별장에 있는 꽃이 많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아서 형수님한테 도움도 청할 겸 특별히 형네 별장에 있는 걸 잘라 달라고 한건데... 비록 형수님이 도와주겠다고 승낙하긴 했지만, 급해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 말이지. 빨리 나를 도와 가서 좋은 말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게다가 나 형한테 미움까지 샀잖아.’전이진은 박 집사가 잘라준 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꽃집이 없었는지라 결국 이 꽃다발을 안고 가야만 했다.하지만 큰형수님에 대해서 그는 일단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큰형수님을 더 이상 귀찮게 할 배짱이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계속 성가시게 군다면 전태윤이 경호원에게 명령을 내려 시체 들어 올리듯 전이진을 밖에 내던질 수 있다.‘그건 너무 창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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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2화

엄마에게 아침 주러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주우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옆에 있던 전태윤은 그 두 사람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여보, 여보 지금 매일 아이들 깨우고 학교 보내는 부모님 같아.”그러자 하예정은 왜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않았냐 말하려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지만, 어느새 전태윤은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요? 벌써 정장도 다 입고?”“아, 사랑에 빠진 얼간이가 시끄럽게 전화를 거는 바람에 깼어.”하예정은 그가 전이진을 말하는 것임을 눈치채고 얼른 물었다.“이렇게 이른 아침에 도련님이 전화를 걸었다고요? 무선 전파 타고 기어가서 때리지 그랬어요?”“꼴에 그래도 내 동생이니까 때리지는 않았어. 이런 작은 일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애초에 나를 비웃고 내 웃음거리를 즐기긴... 자기한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할머니인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야.”“아참, 요 며칠 할머니 못 봬서 그런지 많이 보고 싶네요.”전태윤은 주우빈을 안고 하예정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틀림없이 또 여기저기서 손자며느리를 고르셨을 거야. 한가한 걸 참지 못하는 분이시거든. 만약 한가해지시면 우리 모두 긴장 잔뜩 해야 할 걸? 우리를 엄청 괴롭히실 테니까... 할머니가 느끼시는 즐거움은 모두 우리의 고통으로 이뤄낸 거야.”“감히 할머니 앞에서 그런 말 할 수 있어요?”“...그럴 리가. 말하면 진짜 고통스러워질 거야.”“겁쟁이네요.”하예정이 피식 웃었다.“할머니 앞에서 겁쟁이라고 인정하는 건 전혀 창피하지 않아.”인제 보니 전태윤은 할머니에게 적잖이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았다. 혼나는 것보다 겁쟁이가 되는 것을 원할 정도니 말이다.“할머니도 무책임하셔. 둘째랑 셋째한테 사진 한 장씩 던져주고 나 몰라라 하시잖아. 이진이가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서 하루가 멀다고 우리한테 달려와 귀찮게 하는 것 좀 봐. 내가 경험이 많아 보이나? 그렇다 해도 우리 둘을 걔들이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전태윤은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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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3화

핸드폰을 탁자에 올려놓고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말했다.“할머니가 점점 뻔뻔해지시네.”본래 그는 “늙을수록 더욱 교활해지나 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할머니의 귀에 들어가 자신이 혼날까 봐 결국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할머니는 그저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만 할 뿐, 아들을 낳는 것까지는 책임지지 않으세요.”하예정도 피식 조롱하며 한마디 했다.할머니는 손자를 도와 손주며느리를 고르는 일만 할 뿐이지 어떻게 손자의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게다가 집에는 아직 장가를 가지 못한 손자가 여러 명이나 더 있지 않은가.할머니가 이렇게 손주며느리를 고르신다는 것을 알고, 넷째부터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손주들은 요즘 벌벌 떨며 다들 긴장하고 있다.매일 할머니가 어떤 아내감을 골라줄까 추측하며 말이다.그래서 그들은 달콤한 말로 최근 매일 할머니를 달래 즐거워하게 만들고 있었다. 급히 결혼시키지 않게, 자신을 몇 년 더 혼자 있게 내버려두도록 말이다.아무튼 계속 혼자 있고 싶어 손주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할머니를 구슬렸다.아침을 먹은 후, 하예정은 쉬지도 못한 채 바로 언니에게 아침을 가져다주어야 했다.주우빈은 수업하러 가야 했고 강일구는 이미 그녀를 데려다줄 준비를 마쳤다.“이모, 오늘은 수업하기 싫어요. 엄마 보러 가고 싶어요.”녀석은 며칠 동안 수업을 받더니 다시 농땡이를 치려 했다.이윽고 하예정의 손에 이끌려 집에서 나선 주우빈은 강일구가 있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이모를 꼭 감싸안았다.그러자 하예정이 몸을 웅크린 채 조카에게 말했다.“우빈아, 무슨 일을 할 때든지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면 안 돼. 꼭 끝까지 해내야지. 우빈이 무술 잘 배워서 엄마랑 이모 잘 보호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우빈이가 끝까지 버티지 않으면 무술을 배울 수 없고 엄마를 보호할 수도 없어. 우빈아,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결정한 뒤로는 꼭 진지하게 하고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돼.”주우빈은 그 작은 입을 앙다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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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4화

주우빈이 수업을 들으러 간 후에야 하예정은 전태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봄이 와 길거리에 꽃잎이 흩날리자, 그녀는 가는 길에 전태윤에게 차를 세우라 했다. 가게로 들어가 꽃 한 다발을 사기 위해서 말이다.하지만 여운초는 가게에 없었다.“사장님 혹시 배달하러 가셨나요?”하예정이 직원에게 물었다.“사장님은 아침 일찍 물건 사러 가셨어요. 대략 10시쯤에나 돌아올 겁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무슨 중요한 일로 저희 사장님을 찾아오셨어요? 사장님 돌아오면 사모님께 전화하라고 할까요?”“네, 운초 씨 돌아오면 나한테 전화 좀 해달라고 말해줘요.”직원은 하예정의 요구에 응한 뒤 그녀를 가게 밖으로 배웅했다.꽃다발을 안고 차에 오른 하예정은 차 문을 닫으며 전태윤에게 말했다.“운초 씨 가게에 없어요. 아침 일찍 물건 들이러 가서 10시쯤에 돌아온대요. 태윤 씨가 이진 도련님한테 말해줄래요? 저 10시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요. 효진이가 있어야 내가 올 수 있어요.”“상관하지 마. 이진이도 알아서 하겠지. 이틀 동안이나 휴가를 줬는데도 자기 일 하나 잘 처리하지 못하니... 일 처리 능력이 심히 의심되는군.”“제가 잘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따지자면 제가 이진 도련님 형수인 게 잘못이죠.”전태윤에게 친동생이 여덟 명이나 있다는 것이 떠오르자 하예정은 이렇게 생각했다.‘만약 한 명씩 다 나한테 와서 도움을 청한다면 결혼컨설팅 회사를 차려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어휴, 내가 형수인 탓이지, 뭐.’전태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차를 몰아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곧이어 부부는 병원에서 노동명과 마주쳤다.그는 한 손에 꽃다발을, 한 손에 보온도시락을 들고 있어 딱 봐도 하예진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하예정 부부는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기에, 노동명은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전태윤이 하예정에게 말했다.“동명이 정말 요령이 튼 것 같아. 저 거친 남자가 처형한테 밥까지 나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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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5화

노동명은 하예정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불평하지 않을 수 없었다.‘역시 전태윤의 마누라답군. 이 부부는 일을 보는 거나 말하는 거나 거의 똑같이 행동하네.’“예정 씨, 저는 예진 씨가 재혼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노동명이 매우 진지하게 말하자 하예정도 더 이상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다른 이유를 떠나 노동명이라는 사람을 봤을 때 하예정 역시 그가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으니 말이다.세 사람은 함께 입원실 건물로 들어갔고 얼마 안 지나 하예진의 병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또 이른 아침부터 병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주형인을 보았다.이번에는 김은희와 주서인 없이 주형인 혼자 왔고 그 역시 손에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 있었다.이것은 부모님이 주형인에게 이렇게 하라고 요구한 것이었다.주형인을 보자 하예정은 다소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할머니 할아버지가 저 사람을 막지 않았다고?’그래도 이번에는 김은희와 주서인이 오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었다.주형인은 하나의 모순체와 같아 비교적 쉽게 쫓아낼 수 있었다.“어이, 거기 주씨. 또 우리 예진 누나 쉬는 거 방해하지 말고 얼른 꺼져!”하지철이 하예정 등 사람들을 지나쳐 먼저 주형인의 곁으로 달려갔다.그러고는 한 손으로 주형인의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을 빼앗아 땅에 던져놓았고 발을 들어 잔인하게 밟기 시작했다.뒤이어 나머지 보온도시락마저 빼앗으려 하자 주형인이 절대 안 뺏기겠다는 듯 고집스레 안았고 하지철은 어떻게든 빼앗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전씨 가문 경호원들은 바로 옆에서 이 “연극”을 보고 있었다.“지철아.”어느새 다가온 하예정이 자신의 사촌 동생을 불렀다.“예정 누나, 왔구나. 이 자식 너무 괘씸해. 제 부모님을 이용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막고 혼자 빠져나왔어. 내가 차를 몰고 끝까지 쫓아오기는 했지만 결국 못 따라잡았고... 아니나 다를까 또 여기로 예진 누나 방해하러 온 거 있지?”하지철은 이렇게 말하며 주형인의 집중력이 흐려진 틈을 타 마침내 보온도시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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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6화

전태윤이 경호원에게 눈짓하자 경호원이 바로 전태윤의 뜻을 알아차렸다. 노동명이 마지막으로 병실로 들어섰다. 주형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꽃다발과 보온병을 들고 있는 노동명을 발견했다. ‘저건 분명 하예진을 꼬시려는 거잖아.’주형인의 마음이 순간 질투로 씁쓸해졌다. “예진아, 예진아...”주형인이 겨우 두 번 불렀을 뿐인데 하지철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하지철은 젊은 데다 깡패들과 잠깐 어울리고 다녔었기에 행동이 굉장히 거칠었다. 게다가 주형인에게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으니 사무실에 앉아있기만 하는 주형인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이제 갓 열여덟 살이 된 청년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게 주형인은 하지철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멀리 끌려가서야 하지철이 그를 놓아주었다. “날 숨 막혀 줄게 할 셈이야?”주형인이 하지철에게 욕설을 지껄였다. “이게 위아래도 없이. 엄연히 말하면 넌 날 형부라고 불러야 해.”“쳇. 형부? 우리 형부가 될 자격이 있기는 해? 양심도 없지. 우리 누나와 이혼한 지도 6개월이 넘었고 다른 사람과 재혼한 지도 몇 개월이 지났어. 그러고도 나더러 형부라고 부르라고? 퉤.”혈기 왕성한 하지철은 주형인의 한마디에 몇 번이나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다 하지철은 정말로 침을 튀겼다. 얼굴에 침을 맞은 주형인은 비위가 상해 토하고 싶어졌다. 그는 얼른 종이를 꺼내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았다. “이 하씨 놈들아, 너희들 평소엔 분명 하예진 자매에게 신경도 쓰지 않더니 요즘은 무슨 신세라도 진 거야? 너희들 셋은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러는 거야.”하지철이 콧방귀 뀌며 말했다. “내가 예진 누나를 돕지 당신들을 돕겠어? 아무리 신경 쓰지 않아도 결국은 가족이야. 당신은 남이고. 우리끼리 아무리 피 터지게 싸워도 결국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주형인 씨, 경고하는데 또 우리 예진 누나에게 찝쩍거렸다간 내 손으로 죽여버릴 줄 알아. 내가 당신 택시 운전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거야.”주형인은 하지철에게 몇 마디 욕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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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7화

하예정은 병실을 나서는 노동명을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태연하기만 한 전태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태윤은 이미 노동명이 어떤 반응일지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전태윤은 노동명을 배웅했다. “예정아, 가게도 바쁠 텐데 얼른 들어가.”“언니, 내가 같이 있어줄게.”“이제 같이 안 있어도 돼. 이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괜찮아. 의사가 고집부리지만 않으면 난 지금이라도 퇴원하고 싶어.”하예진은 하루 토스트가 마음에 걸렸다. “의사 말 들어.”하예정이 말했다. “며칠 더 입원하고 퇴원해. 어차피 퇴원해 봐야 언니는 지금 당장 다시 가게로 출근할 수도 없어. 집에서 푹 쉬어야 한다고.”“이미 병원에 두 주일이 되도록 누워만 있었어. 퇴원하고도 누워있으면 몸이 무너져 내릴 거야. 퇴원하면 내가 직접 안 하고 그냥 가게를 지키기만 할게. 결제나 하고. 그러면 되지? 걱정하지 마. 내 몸이야. 나도 내 몸 아껴.”하예정이 보온병 뚜껑을 열어 그릇에 국을 떴다. “언니, 동명 씨가 가져온 거, 마실 거야?”“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겠어. 대표님이 멀리까지 가시면 숙희 아주머니 드시라고 가져다드려. 매일 여기서 나 보살피느라 힘드실 텐데.”노동명은 꽃과 보온병을 놓고 바로 가버렸다. 아마 하예진이 자기가 가져온 보신탕을 거절할까 봐 그런 것 같았다. 사실 노동명이 빨리 자리를 뜨지 않았다면 하예진은 노동명에게 보온병을 가져가라고 했을 것이다. 노동명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하예진은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가 가져온 보신탕을 마시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많이 마실 수도 없었다. 하예진은 평소 다른 사람이 가져온 보신탕도 숙희 아주머니에게 나눠주었었다. 그렇지 않으면 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없이 살아봤었던 하예진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음식이 버려지는 걸 볼 수 없었다. 숙희 아주머니에게 주면 몸보신도 할 수 있으니 그녀를 더욱 잘 보살필 수 있었다. “제부더러 대표님께 내가 보신탕을 많이 먹을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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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8화

하예정이 전태윤에게 말했다. “이진 씨는 휴가고 정남 씨는 회사로 안 갈 수도 있잖아요.”전태윤이 웃으며 대답했다. “비서에게 회의 미루라고 하면 돼. 가자, 데려다줄게. 당신 차는 우진이 더러 직접 가게에 두라고 하면 돼.”하예정은 전태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저녁에 데리러 갈게. 밤에 술자리가 있는데 당신이 함께 가줬으면 해.”“그래요.”하예정이 쿨하게 대답했다. 전태윤은 하예정을 서점에 데려다준 후 바로 회사로 돌아가 바쁜 일과를 시작했다. 심효진이 오늘은 가게로 출근했다. 하예정이 장난스럽게 심효진에게 말했다. “집에서 결혼식 준비 안 해? 너희 집 그분은 마음이 급하신 것 같던데, 난 네가 오늘도 안 오는 줄 알았어.”“내가 할 일도 별로 없고, 집에만 있기엔 갑갑해서 나왔어.”얼굴이 환해진 심효진을 보며 하예정은 그녀가 정말 많이 예뻐졌다고 생각했다. 하예정은 손을 뻗어 심효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칭찬했다. “부드러운 것 좀 봐. 네 피부가 점점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 역시 사랑받는 여자는 예뻐진다니까. 내가 남자였어도 널 좋아했을 거야.”심효진도 하예정의 얼굴을 꼬집었다. “네 피부도 부드럽잖아. 너희 집 태윤 씨가 사준 화장품이 효과가 좋은가 봐.”하예정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태윤 씨가 사준 건 소현 언니가 준 것과 비슷한 브랜드야. 태윤 씨가 주기적으로 제일 좋은 미용사를 고용해 줘서 집에서 관리받고 있어.”물질적으론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뭐든 제일 좋은 것만 해줬다. 단 한 번도 그녀를 푸대접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초고속 결혼을 했을 때도 말이다. “태윤 씨는 점점 더 다정해지는 것 같아. 진보가 너무 빨라.”“할머니께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랬어.”전씨 할머니 얘기가 나오자 심효진이 말했다. “할머님 뵌 지도 오래된 것 같아. 괜히 할머님 보고 싶네.”“우리 진이 할머니 보고 싶었어? 할머니 왔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전씨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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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9화

심효진은 괜히 전유하가 불편해할까 봐 웃으며 유하 씨로 호칭을 바꿔 불렀다. 그러면서 심효진은 마음속으로 하예정의 도련님들은 성격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화면발이 잘 받는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매일 읽고 있는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보다도 훨씬 멋진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뭘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어요.”하예정이 짐들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열어 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야. 집에 보양식이 좀 많아져서.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너무 많이 먹어도 안 좋잖니. 넘쳐나면 오히려 독이니까 너희에게 주려고 가져왔어. 젊은이들은 매일 일하느라 피곤하잖아. 보양식도 잘 먹어둬야지.”전씨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해산물도 좀 가져왔어. 네 시어머니가 너 해산물 좋아하는 거 알고 너에게 전해주라고 한 거야.”“지금 저와 태윤 씨, 태윤 씨네 피크 별장에서 지내고 있어요. 거긴 부족한 게 없어요.”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이렇게 많은 해산물을 보내준 장소민에게 하예정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네 시어머니가 나에게 부탁했으니 난 가져올 수밖에 없었어.”전씨 할머니는 ‘난 그저 짐꾼일 뿐이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심효진은 두 사람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손에 들린 물건을 내려놓은 전유하는 하예정이 자신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자 한달음에 달려가 의자를 건네받으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전씨 할머니가 하예정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입으로만 보고 싶다 소리하지. 정말 보고 싶었다면서 너와 태윤이는 왜 돌아와서 이 할머니와 며칠 있어줄 생각은 없었던 거야?”“거긴 너무 멀어요. 아니면 할머니가 오셔서 저희와 잠시 지내는 건 어떠세요? 예전처럼요.”하예정이 펜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매일 병원으로 언니 병문안을 가야 했고 가끔은 우빈이도 보살펴야 했다. 왔다 갔다 하기엔 너무 불편했다. 전태윤 명의로 된 별장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편했다. 당시 전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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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0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전유하는 전태윤이 관리가 제일 어려운 회사를 넘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전씨 그룹은 수많은 계열사를 갖고 있었다. 각 계열사에서 나온 자회사도 많았다. 일부 자회사는 사업이 잘되지 않아 부도 위기에 처한 곳도 있었다. 전태윤의 동생들이 막 회사에 입사하면 일반적으로 전씨 할머니나 전태윤이 그들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가끔은 아예 전씨 그룹 밑바닥부터 시작할 때도 있었다. 또 가끔은 경영 부진으로 부도 위기에 놓인 자회사로 가 경험을 쌓기도 한다. 그 경우가 제일 난도가 높았다. 만약 자회사를 부도 위기에서 구해내고 회사의 비전을 키울 수만 있다면 그건 그들이 실력이 있다는 얘기였고 경영 쪽으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초반 단련을 거친 후, 전태윤은 또 상당한 실력을 갖춘 계열사를 동생들에게 맡겼다. 마지막으로 동생들의 인사 평가에 따라 그들에게 전씨 그룹 중 어느 계열사를 맡겨 그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전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고 싶지 않으면 직접 창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창업하려 한다면 집안에서는 공짜로 창업 자금을 대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돈을 빌려 창업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차용증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이자도 똑똑히 계산해야 했다. 전씨 할머니는 늘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전씨 가문은 돈이 많지만 그들이 돈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얘기했었다. 전씨 가문의 돈은 조상 대대로 모아 온 것이지 그들의 돈이 아니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자신의 두 손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니 전씨 가문 남자들은 스스로 창업을 하고 싶어도 집안으로부터 무상으로 창업 자금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창업 기간에는 전씨 그룹의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뭐든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물론 전씨 할머니 손에서 자란 자식들과 손주들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가족 사업을 물려받은 자식이든 스스로 창업한 자식이든 전부 전씨 할머니를 만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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