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명은 하예정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불평하지 않을 수 없었다.‘역시 전태윤의 마누라답군. 이 부부는 일을 보는 거나 말하는 거나 거의 똑같이 행동하네.’“예정 씨, 저는 예진 씨가 재혼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노동명이 매우 진지하게 말하자 하예정도 더 이상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다른 이유를 떠나 노동명이라는 사람을 봤을 때 하예정 역시 그가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으니 말이다.세 사람은 함께 입원실 건물로 들어갔고 얼마 안 지나 하예진의 병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또 이른 아침부터 병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주형인을 보았다.이번에는 김은희와 주서인 없이 주형인 혼자 왔고 그 역시 손에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 있었다.이것은 부모님이 주형인에게 이렇게 하라고 요구한 것이었다.주형인을 보자 하예정은 다소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할머니 할아버지가 저 사람을 막지 않았다고?’그래도 이번에는 김은희와 주서인이 오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었다.주형인은 하나의 모순체와 같아 비교적 쉽게 쫓아낼 수 있었다.“어이, 거기 주씨. 또 우리 예진 누나 쉬는 거 방해하지 말고 얼른 꺼져!”하지철이 하예정 등 사람들을 지나쳐 먼저 주형인의 곁으로 달려갔다.그러고는 한 손으로 주형인의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을 빼앗아 땅에 던져놓았고 발을 들어 잔인하게 밟기 시작했다.뒤이어 나머지 보온도시락마저 빼앗으려 하자 주형인이 절대 안 뺏기겠다는 듯 고집스레 안았고 하지철은 어떻게든 빼앗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전씨 가문 경호원들은 바로 옆에서 이 “연극”을 보고 있었다.“지철아.”어느새 다가온 하예정이 자신의 사촌 동생을 불렀다.“예정 누나, 왔구나. 이 자식 너무 괘씸해. 제 부모님을 이용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막고 혼자 빠져나왔어. 내가 차를 몰고 끝까지 쫓아오기는 했지만 결국 못 따라잡았고... 아니나 다를까 또 여기로 예진 누나 방해하러 온 거 있지?”하지철은 이렇게 말하며 주형인의 집중력이 흐려진 틈을 타 마침내 보온도시락을
전태윤이 경호원에게 눈짓하자 경호원이 바로 전태윤의 뜻을 알아차렸다. 노동명이 마지막으로 병실로 들어섰다. 주형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꽃다발과 보온병을 들고 있는 노동명을 발견했다. ‘저건 분명 하예진을 꼬시려는 거잖아.’주형인의 마음이 순간 질투로 씁쓸해졌다. “예진아, 예진아...”주형인이 겨우 두 번 불렀을 뿐인데 하지철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하지철은 젊은 데다 깡패들과 잠깐 어울리고 다녔었기에 행동이 굉장히 거칠었다. 게다가 주형인에게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으니 사무실에 앉아있기만 하는 주형인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이제 갓 열여덟 살이 된 청년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게 주형인은 하지철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멀리 끌려가서야 하지철이 그를 놓아주었다. “날 숨 막혀 줄게 할 셈이야?”주형인이 하지철에게 욕설을 지껄였다. “이게 위아래도 없이. 엄연히 말하면 넌 날 형부라고 불러야 해.”“쳇. 형부? 우리 형부가 될 자격이 있기는 해? 양심도 없지. 우리 누나와 이혼한 지도 6개월이 넘었고 다른 사람과 재혼한 지도 몇 개월이 지났어. 그러고도 나더러 형부라고 부르라고? 퉤.”혈기 왕성한 하지철은 주형인의 한마디에 몇 번이나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다 하지철은 정말로 침을 튀겼다. 얼굴에 침을 맞은 주형인은 비위가 상해 토하고 싶어졌다. 그는 얼른 종이를 꺼내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았다. “이 하씨 놈들아, 너희들 평소엔 분명 하예진 자매에게 신경도 쓰지 않더니 요즘은 무슨 신세라도 진 거야? 너희들 셋은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러는 거야.”하지철이 콧방귀 뀌며 말했다. “내가 예진 누나를 돕지 당신들을 돕겠어? 아무리 신경 쓰지 않아도 결국은 가족이야. 당신은 남이고. 우리끼리 아무리 피 터지게 싸워도 결국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주형인 씨, 경고하는데 또 우리 예진 누나에게 찝쩍거렸다간 내 손으로 죽여버릴 줄 알아. 내가 당신 택시 운전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거야.”주형인은 하지철에게 몇 마디 욕을 내
하예정은 병실을 나서는 노동명을 지켜보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태연하기만 한 전태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태윤은 이미 노동명이 어떤 반응일지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전태윤은 노동명을 배웅했다. “예정아, 가게도 바쁠 텐데 얼른 들어가.”“언니, 내가 같이 있어줄게.”“이제 같이 안 있어도 돼. 이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괜찮아. 의사가 고집부리지만 않으면 난 지금이라도 퇴원하고 싶어.”하예진은 하루 토스트가 마음에 걸렸다. “의사 말 들어.”하예정이 말했다. “며칠 더 입원하고 퇴원해. 어차피 퇴원해 봐야 언니는 지금 당장 다시 가게로 출근할 수도 없어. 집에서 푹 쉬어야 한다고.”“이미 병원에 두 주일이 되도록 누워만 있었어. 퇴원하고도 누워있으면 몸이 무너져 내릴 거야. 퇴원하면 내가 직접 안 하고 그냥 가게를 지키기만 할게. 결제나 하고. 그러면 되지? 걱정하지 마. 내 몸이야. 나도 내 몸 아껴.”하예정이 보온병 뚜껑을 열어 그릇에 국을 떴다. “언니, 동명 씨가 가져온 거, 마실 거야?”“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겠어. 대표님이 멀리까지 가시면 숙희 아주머니 드시라고 가져다드려. 매일 여기서 나 보살피느라 힘드실 텐데.”노동명은 꽃과 보온병을 놓고 바로 가버렸다. 아마 하예진이 자기가 가져온 보신탕을 거절할까 봐 그런 것 같았다. 사실 노동명이 빨리 자리를 뜨지 않았다면 하예진은 노동명에게 보온병을 가져가라고 했을 것이다. 노동명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하예진은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가 가져온 보신탕을 마시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많이 마실 수도 없었다. 하예진은 평소 다른 사람이 가져온 보신탕도 숙희 아주머니에게 나눠주었었다. 그렇지 않으면 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없이 살아봤었던 하예진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음식이 버려지는 걸 볼 수 없었다. 숙희 아주머니에게 주면 몸보신도 할 수 있으니 그녀를 더욱 잘 보살필 수 있었다. “제부더러 대표님께 내가 보신탕을 많이 먹을 수는
하예정이 전태윤에게 말했다. “이진 씨는 휴가고 정남 씨는 회사로 안 갈 수도 있잖아요.”전태윤이 웃으며 대답했다. “비서에게 회의 미루라고 하면 돼. 가자, 데려다줄게. 당신 차는 우진이 더러 직접 가게에 두라고 하면 돼.”하예정은 전태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저녁에 데리러 갈게. 밤에 술자리가 있는데 당신이 함께 가줬으면 해.”“그래요.”하예정이 쿨하게 대답했다. 전태윤은 하예정을 서점에 데려다준 후 바로 회사로 돌아가 바쁜 일과를 시작했다. 심효진이 오늘은 가게로 출근했다. 하예정이 장난스럽게 심효진에게 말했다. “집에서 결혼식 준비 안 해? 너희 집 그분은 마음이 급하신 것 같던데, 난 네가 오늘도 안 오는 줄 알았어.”“내가 할 일도 별로 없고, 집에만 있기엔 갑갑해서 나왔어.”얼굴이 환해진 심효진을 보며 하예정은 그녀가 정말 많이 예뻐졌다고 생각했다. 하예정은 손을 뻗어 심효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칭찬했다. “부드러운 것 좀 봐. 네 피부가 점점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 역시 사랑받는 여자는 예뻐진다니까. 내가 남자였어도 널 좋아했을 거야.”심효진도 하예정의 얼굴을 꼬집었다. “네 피부도 부드럽잖아. 너희 집 태윤 씨가 사준 화장품이 효과가 좋은가 봐.”하예정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태윤 씨가 사준 건 소현 언니가 준 것과 비슷한 브랜드야. 태윤 씨가 주기적으로 제일 좋은 미용사를 고용해 줘서 집에서 관리받고 있어.”물질적으론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뭐든 제일 좋은 것만 해줬다. 단 한 번도 그녀를 푸대접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초고속 결혼을 했을 때도 말이다. “태윤 씨는 점점 더 다정해지는 것 같아. 진보가 너무 빨라.”“할머니께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랬어.”전씨 할머니 얘기가 나오자 심효진이 말했다. “할머님 뵌 지도 오래된 것 같아. 괜히 할머님 보고 싶네.”“우리 진이 할머니 보고 싶었어? 할머니 왔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전씨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
심효진은 괜히 전유하가 불편해할까 봐 웃으며 유하 씨로 호칭을 바꿔 불렀다. 그러면서 심효진은 마음속으로 하예정의 도련님들은 성격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화면발이 잘 받는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매일 읽고 있는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보다도 훨씬 멋진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뭘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어요.”하예정이 짐들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열어 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야. 집에 보양식이 좀 많아져서.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너무 많이 먹어도 안 좋잖니. 넘쳐나면 오히려 독이니까 너희에게 주려고 가져왔어. 젊은이들은 매일 일하느라 피곤하잖아. 보양식도 잘 먹어둬야지.”전씨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해산물도 좀 가져왔어. 네 시어머니가 너 해산물 좋아하는 거 알고 너에게 전해주라고 한 거야.”“지금 저와 태윤 씨, 태윤 씨네 피크 별장에서 지내고 있어요. 거긴 부족한 게 없어요.”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이렇게 많은 해산물을 보내준 장소민에게 하예정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네 시어머니가 나에게 부탁했으니 난 가져올 수밖에 없었어.”전씨 할머니는 ‘난 그저 짐꾼일 뿐이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심효진은 두 사람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손에 들린 물건을 내려놓은 전유하는 하예정이 자신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자 한달음에 달려가 의자를 건네받으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전씨 할머니가 하예정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입으로만 보고 싶다 소리하지. 정말 보고 싶었다면서 너와 태윤이는 왜 돌아와서 이 할머니와 며칠 있어줄 생각은 없었던 거야?”“거긴 너무 멀어요. 아니면 할머니가 오셔서 저희와 잠시 지내는 건 어떠세요? 예전처럼요.”하예정이 펜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매일 병원으로 언니 병문안을 가야 했고 가끔은 우빈이도 보살펴야 했다. 왔다 갔다 하기엔 너무 불편했다. 전태윤 명의로 된 별장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편했다. 당시 전태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전유하는 전태윤이 관리가 제일 어려운 회사를 넘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전씨 그룹은 수많은 계열사를 갖고 있었다. 각 계열사에서 나온 자회사도 많았다. 일부 자회사는 사업이 잘되지 않아 부도 위기에 처한 곳도 있었다. 전태윤의 동생들이 막 회사에 입사하면 일반적으로 전씨 할머니나 전태윤이 그들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가끔은 아예 전씨 그룹 밑바닥부터 시작할 때도 있었다. 또 가끔은 경영 부진으로 부도 위기에 놓인 자회사로 가 경험을 쌓기도 한다. 그 경우가 제일 난도가 높았다. 만약 자회사를 부도 위기에서 구해내고 회사의 비전을 키울 수만 있다면 그건 그들이 실력이 있다는 얘기였고 경영 쪽으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초반 단련을 거친 후, 전태윤은 또 상당한 실력을 갖춘 계열사를 동생들에게 맡겼다. 마지막으로 동생들의 인사 평가에 따라 그들에게 전씨 그룹 중 어느 계열사를 맡겨 그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전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고 싶지 않으면 직접 창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창업하려 한다면 집안에서는 공짜로 창업 자금을 대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돈을 빌려 창업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차용증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이자도 똑똑히 계산해야 했다. 전씨 할머니는 늘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전씨 가문은 돈이 많지만 그들이 돈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얘기했었다. 전씨 가문의 돈은 조상 대대로 모아 온 것이지 그들의 돈이 아니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자신의 두 손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니 전씨 가문 남자들은 스스로 창업을 하고 싶어도 집안으로부터 무상으로 창업 자금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창업 기간에는 전씨 그룹의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뭐든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물론 전씨 할머니 손에서 자란 자식들과 손주들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가족 사업을 물려받은 자식이든 스스로 창업한 자식이든 전부 전씨 할머니를 만족시켰다
어르신이 이렇게 말한 후에야 하예정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그렇지 않으면 전씨 집안 작은 사모님으로서 실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예정아, 효진아. 너희는 가서 볼일 봐. 난 유하랑 초대장을 직접 전달하러 갈 거란다.”어르신은 잠시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그러자 하예정과 심효진도 따라서 일어섰다.“할머니, 점심 드시러 오실 거예요?”“아니, 난 고씨 집안 도련님과 우리 호텔에서 점심 약속이 있단다. 셋째랑 같이 가면 돼.”이 말을 할 때 하예정을 보는 어르신의 눈빛엔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그녀도 이를 눈치채고는 웃으며 말했다.“네, 그러세요. 시간이 되시면 자주 놀러 오세요. 저와 태윤 씨랑 함께 지내시는 게 가장 좋아요. 저희는 언제나 환영하거든요.”하예정도 ‘환영’이 두 글자를 입에 담을 때, 어르신을 향해 눈짓을 했다.어르신도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유하 생일이 지난 후에 그곳으로 옮기마. 만약 태윤이 그 녀석이 달가워하지 않거든 이 할미 편을 들어줘야 한다? 어머, 나도 태윤이랑 말다툼한 지 꽤 오래 지나서 그런지 슬슬 그리워지는구나.”이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형수님, 효진 누나, 저랑 할머니 먼저 가볼게요.”전유하는 웃으면서 어르신을 좀 부축하려 했으나 어르신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이 할미는 아직 너희들이 부축해야 할 만큼 늙지 않았어. 그때가 온다면 너희 할아버지를 만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돌아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남편을 떠올리니 어르신은 참지 못하고 한탄했다.“너희 할아버지와 함께 일출과 일몰을 보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눈 깜박하니 벌써 10년이나 다 되어가는구나.”“할머니.”전씨 집안 식구들은 어르신이 돌아가신 남편을 떠올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어르신은 곧 잡생각을 거둔 후 말했다. “이미 여러 해가 지났으니 할미는 지금 태연하게 마주할 수 있단다. 사람은 빠르나 늦으나 결국 죽게 돼. 너희 할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극락세계에 갔으니 내가 찾아갔을 때 그 사람은
전유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스물셋 밖에 되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어쨌든 그는 위의 형들을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어서 말이다. 그의 친형은 올해 26살이 되었는데도 아직 여자 친구가 없었다. 그러니 할머니가 결혼을 재촉하려고 해도, 먼저 그의 친형부터 재촉할 거다.“형수님, 효진 누나, 배웅 안 하셔도 돼요, 할머니 모시고 성씨 집안에 다녀올게요.”전유하는 차 문을 열고 어르신을 차에 태운 후 고개를 돌려 하예정과 심효진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은 서점 입구에 서서 어르신과 전유하를 배웅 했다.전유하의 차가 멀어지자 심효진은 이렇게 말했다.“유하 씨 되게 조용하게 사는 것 같아.”전유하의 차는 매우 평범한 브랜드였고 시장 가격은 고작 2,000만 원 정도였다. 전태윤 등 전씨 집안 사람들이 자주 타는 차에 비하면 전유하의 차는 그야말로 자전거 급이었다.하예정은 말했다.“유하 도련님께선 막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 그래서 생활을 너무 즐기면 안 되기 때문에 조용히 살고 있어. 언젠가 유하 도련님도 형들처럼 자신의 사업도 있고 또 전씨 그룹에서 관리층 직위까지 맡게 되면 원하는 대로 차를 바꿀 수 있을 거야.”심효진은 감탄했다.“예정아, 넌 정말 운이 좋아. 어쩌면 이렇게 좋은 시댁을 찾았어? 시댁의 가풍도 진짜 좋고 말이야.”“할머니께서 예뻐해 주셔서 그래. 네 시댁도 나쁘지 않잖아.”하예정은 어르신께서 그녀에게 큰 손자를 소개시켜 주어, 둘이 연애에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었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장 좋은 손자만 소개해 줄 뿐, 절대 그녀를 푸대접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어르신은 했던 말은 반드시 지켜냈다.아니나 다를까, 그녀랑 결혼한 남자는 전씨 집안 형제들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그렇지. 내 시댁도 좋긴 하지만 너처럼 도련님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심효진도 자신의 예비 시댁에 매우 만족했다.그녀는 하예정과 함께 서점으로 돌아왔다.“예정아, 너희 집안 그 도련님들은 정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