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진은 괜히 전유하가 불편해할까 봐 웃으며 유하 씨로 호칭을 바꿔 불렀다. 그러면서 심효진은 마음속으로 하예정의 도련님들은 성격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화면발이 잘 받는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매일 읽고 있는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보다도 훨씬 멋진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뭘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어요.”하예정이 짐들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열어 보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야. 집에 보양식이 좀 많아져서.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너무 많이 먹어도 안 좋잖니. 넘쳐나면 오히려 독이니까 너희에게 주려고 가져왔어. 젊은이들은 매일 일하느라 피곤하잖아. 보양식도 잘 먹어둬야지.”전씨 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해산물도 좀 가져왔어. 네 시어머니가 너 해산물 좋아하는 거 알고 너에게 전해주라고 한 거야.”“지금 저와 태윤 씨, 태윤 씨네 피크 별장에서 지내고 있어요. 거긴 부족한 게 없어요.”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이렇게 많은 해산물을 보내준 장소민에게 하예정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네 시어머니가 나에게 부탁했으니 난 가져올 수밖에 없었어.”전씨 할머니는 ‘난 그저 짐꾼일 뿐이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심효진은 두 사람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손에 들린 물건을 내려놓은 전유하는 하예정이 자신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자 한달음에 달려가 의자를 건네받으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전씨 할머니가 하예정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입으로만 보고 싶다 소리하지. 정말 보고 싶었다면서 너와 태윤이는 왜 돌아와서 이 할머니와 며칠 있어줄 생각은 없었던 거야?”“거긴 너무 멀어요. 아니면 할머니가 오셔서 저희와 잠시 지내는 건 어떠세요? 예전처럼요.”하예정이 펜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매일 병원으로 언니 병문안을 가야 했고 가끔은 우빈이도 보살펴야 했다. 왔다 갔다 하기엔 너무 불편했다. 전태윤 명의로 된 별장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편했다. 당시 전태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전유하는 전태윤이 관리가 제일 어려운 회사를 넘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전씨 그룹은 수많은 계열사를 갖고 있었다. 각 계열사에서 나온 자회사도 많았다. 일부 자회사는 사업이 잘되지 않아 부도 위기에 처한 곳도 있었다. 전태윤의 동생들이 막 회사에 입사하면 일반적으로 전씨 할머니나 전태윤이 그들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가끔은 아예 전씨 그룹 밑바닥부터 시작할 때도 있었다. 또 가끔은 경영 부진으로 부도 위기에 놓인 자회사로 가 경험을 쌓기도 한다. 그 경우가 제일 난도가 높았다. 만약 자회사를 부도 위기에서 구해내고 회사의 비전을 키울 수만 있다면 그건 그들이 실력이 있다는 얘기였고 경영 쪽으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초반 단련을 거친 후, 전태윤은 또 상당한 실력을 갖춘 계열사를 동생들에게 맡겼다. 마지막으로 동생들의 인사 평가에 따라 그들에게 전씨 그룹 중 어느 계열사를 맡겨 그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전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고 싶지 않으면 직접 창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창업하려 한다면 집안에서는 공짜로 창업 자금을 대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돈을 빌려 창업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차용증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이자도 똑똑히 계산해야 했다. 전씨 할머니는 늘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전씨 가문은 돈이 많지만 그들이 돈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얘기했었다. 전씨 가문의 돈은 조상 대대로 모아 온 것이지 그들의 돈이 아니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자신의 두 손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니 전씨 가문 남자들은 스스로 창업을 하고 싶어도 집안으로부터 무상으로 창업 자금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창업 기간에는 전씨 그룹의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뭐든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물론 전씨 할머니 손에서 자란 자식들과 손주들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가족 사업을 물려받은 자식이든 스스로 창업한 자식이든 전부 전씨 할머니를 만족시켰다
어르신이 이렇게 말한 후에야 하예정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그렇지 않으면 전씨 집안 작은 사모님으로서 실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예정아, 효진아. 너희는 가서 볼일 봐. 난 유하랑 초대장을 직접 전달하러 갈 거란다.”어르신은 잠시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그러자 하예정과 심효진도 따라서 일어섰다.“할머니, 점심 드시러 오실 거예요?”“아니, 난 고씨 집안 도련님과 우리 호텔에서 점심 약속이 있단다. 셋째랑 같이 가면 돼.”이 말을 할 때 하예정을 보는 어르신의 눈빛엔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그녀도 이를 눈치채고는 웃으며 말했다.“네, 그러세요. 시간이 되시면 자주 놀러 오세요. 저와 태윤 씨랑 함께 지내시는 게 가장 좋아요. 저희는 언제나 환영하거든요.”하예정도 ‘환영’이 두 글자를 입에 담을 때, 어르신을 향해 눈짓을 했다.어르신도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유하 생일이 지난 후에 그곳으로 옮기마. 만약 태윤이 그 녀석이 달가워하지 않거든 이 할미 편을 들어줘야 한다? 어머, 나도 태윤이랑 말다툼한 지 꽤 오래 지나서 그런지 슬슬 그리워지는구나.”이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형수님, 효진 누나, 저랑 할머니 먼저 가볼게요.”전유하는 웃으면서 어르신을 좀 부축하려 했으나 어르신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이 할미는 아직 너희들이 부축해야 할 만큼 늙지 않았어. 그때가 온다면 너희 할아버지를 만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돌아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남편을 떠올리니 어르신은 참지 못하고 한탄했다.“너희 할아버지와 함께 일출과 일몰을 보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눈 깜박하니 벌써 10년이나 다 되어가는구나.”“할머니.”전씨 집안 식구들은 어르신이 돌아가신 남편을 떠올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어르신은 곧 잡생각을 거둔 후 말했다. “이미 여러 해가 지났으니 할미는 지금 태연하게 마주할 수 있단다. 사람은 빠르나 늦으나 결국 죽게 돼. 너희 할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극락세계에 갔으니 내가 찾아갔을 때 그 사람은
전유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스물셋 밖에 되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어쨌든 그는 위의 형들을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어서 말이다. 그의 친형은 올해 26살이 되었는데도 아직 여자 친구가 없었다. 그러니 할머니가 결혼을 재촉하려고 해도, 먼저 그의 친형부터 재촉할 거다.“형수님, 효진 누나, 배웅 안 하셔도 돼요, 할머니 모시고 성씨 집안에 다녀올게요.”전유하는 차 문을 열고 어르신을 차에 태운 후 고개를 돌려 하예정과 심효진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은 서점 입구에 서서 어르신과 전유하를 배웅 했다.전유하의 차가 멀어지자 심효진은 이렇게 말했다.“유하 씨 되게 조용하게 사는 것 같아.”전유하의 차는 매우 평범한 브랜드였고 시장 가격은 고작 2,000만 원 정도였다. 전태윤 등 전씨 집안 사람들이 자주 타는 차에 비하면 전유하의 차는 그야말로 자전거 급이었다.하예정은 말했다.“유하 도련님께선 막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 그래서 생활을 너무 즐기면 안 되기 때문에 조용히 살고 있어. 언젠가 유하 도련님도 형들처럼 자신의 사업도 있고 또 전씨 그룹에서 관리층 직위까지 맡게 되면 원하는 대로 차를 바꿀 수 있을 거야.”심효진은 감탄했다.“예정아, 넌 정말 운이 좋아. 어쩌면 이렇게 좋은 시댁을 찾았어? 시댁의 가풍도 진짜 좋고 말이야.”“할머니께서 예뻐해 주셔서 그래. 네 시댁도 나쁘지 않잖아.”하예정은 어르신께서 그녀에게 큰 손자를 소개시켜 주어, 둘이 연애에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었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장 좋은 손자만 소개해 줄 뿐, 절대 그녀를 푸대접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어르신은 했던 말은 반드시 지켜냈다.아니나 다를까, 그녀랑 결혼한 남자는 전씨 집안 형제들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그렇지. 내 시댁도 좋긴 하지만 너처럼 도련님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심효진도 자신의 예비 시댁에 매우 만족했다.그녀는 하예정과 함께 서점으로 돌아왔다.“예정아, 너희 집안 그 도련님들은 정
하예정은 심효진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아이를 질투하다니.”심효진은 당당하게 말했다.“정남 씨는 내 남자야. 다른 사람이 정남 씨 주의력을 뺏어갔는데 내가 어떻게 질투하지 않고 버티겠어? 그 사람이 설령 우리 아이라고 해도 나중에 분명 애인이 사랑해 줄 텐데, 뭐 아무튼 정남 씨 사랑 나누어 가면 안 돼.”“그러다가 나중에 정남 씨가 아이를 질투할 수 있겠어.”하예정은 웃었다.“내 남편은 분명 아이를 질투할 거야. 항상 제멋대로 군다니까? 겉으로 보기엔 너그럽지만 실은 속도 좁고 제멋대로야.”“예정아, 난 왜 지금 네가 자랑하고 있는 것 같지?”“네 앞에선 굳이 할 필요 없어. 너도 정남 씨랑 엄청 금실이 좋잖아. 아, 맞다. 효진아, 너 오늘 계속 가게에 있을 거지?”“응.”심효진은 대답한 후 또 물었다.“처리할 일 있어? 그럼 넌 가서 일 봐. 분재 사러 가지 않아도 돼.”“그러면 네가 가서 많이 좀 사와.”“응. 알겠어.”하예정은 차 키를 들고 서점에서 나가 밖에서 돌고 있던 경호원에게 말했다.“꽃필무렵에 갈 거니까 따라오지 않아도 돼요.”“네, 사모님.”경호원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사모님을 은밀히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가 함께 가지 않아도 사모님의 안전은 보장되었다.게다가 사모님도 솜씨가 재빨랐다.지금 아마 그 누구도 사모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거다.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했다간 분명 여러 재벌 집안에게 밉보일 거니까.하예정은 꽃필무렵에 갔지만 여전히 여운초가 보이지 않았다.“사장님 아직 안 오셨어요?”하예정은 장미꽃 가지를 다듬고 있는 한 점원에게 물었다.“사장님께서 아까 돌아오신 후, 단골손님 한 분으로부터 꽃다발을 주문하는 전화를 받고 직접 갖다주러 가셨어요.”“얼마나 걸려요?”“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모님께서 먼저 돌아가시는 게 어떠세요? 사장님께서 돌아오시면 사모님께 전화 드리라고 할게요.”하예정은 말했다.“운초 씨가 돌아온 다음에도 저한테 전화를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전이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은 후 입을 열었다.“도련님, 운초 씨가 전화번호를 바꾸었더라고요. 오늘 오전에 두 번이나 가게에 갔는데 만나지 못했어요. 도련님은 만났어요?”전이진은 대답했다.“전 지금 소희 카페에서 운초가 꽃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전이진도 여운초의 새 전화번호를 몰랐다. 가게 점원도 알려주지 않으니 그는 어쩔 수 없이 꽃필무렵의 가게 번호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희 카페 점장에게 도움을 청해 꽃필무렵에 전화를 걸어서 꽃을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이렇게 해야만 그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운초 씨가 혼자 갔나요?”“다른 점원 한 명이 오토바이로 데려다주었어요. 형수님, 고마워요.”형수님은 비록 여운초를 만나지 못해 그에 관한 좋은 말을 해주지 못했지만, 그의 일로 오전에 두 번이나 꽃필무렵에 갔으니 형수님이 그의 일을 중시하는 것 같아 엄청 감동되었다. “한 집안 사람들끼리 그렇게 서먹하게 굴지 마요. 나중에 운초 씨를 만나면 절대 놀라게 하지 말고요.”“형수님, 전 지금 너무 후회돼 미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절대 그런 실수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여운초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무례한 짓을 저질렀으니 그녀가 놀라 도망갈만했다.전이진은 자신을 듬직하지 못한 놈이라고 여러 번 욕했다.하예정은 드디어 마음을 놓고 전화를 끊은 후, 운전하여 서점에 돌아갔다.다른 이야기.어르신은 전유하와 함께 먼저 공씨 일가에 가서 초대장을 건넨 후, 그 길로 성씨 일가에 갔다. 두 집안이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편리했다.어르신이 성씨 집안에 갔을 때 예준하는 마침 새 이웃의 신분으로 성씨 집안에 방문을 했었다. 모양새를 보니 남아서 밥이라도 먹을 기세였다.어르신과 전유하가 왔다는 소리를 듣자 성씨네 부부는 친히 마중을 나왔다.“어르신께서 오시면서 왜 미리 알리지 않으셨어요. 그랬다면 모시러 갔을 텐데요.”어르신이 차에서 내리자, 성씨네 사모님은 얼른 다가가
하필 딸애가 예준하와 사이가 좋아 마음이 혼란스러웠다.태윤에게 예준하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한 것도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예준하가 하필 이웃의 신분으로 자주 찾아오고, 또 하필 밥을 먹을 시간에만 찾아왔는데 그건 분명 얻어먹으려는 속셈이었다.모두가 방에 들어간 후, 성소현은 직접 어르신에게 물을 따라주었다.그리고 예준하는 과일과 과자를 가져왔다.어르신은 예준하가 성씨 집안의 모든 것에 이미 익숙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교활한 녀석. 성씨 집안 사모님도 어쩔 수 없게 만들었구나.’어쨌든 그는 아직 성소현에게 고백하지 않았고, 단지 이웃으로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많이 와봤으니 성씨 집안의 모든 것을 잘 아는 것도 정상이었다.게다가 예준하는 낯이 아주 두꺼워서 성소현 어머니가 딸애 몰래 눈치 주는 것도 보지 못한 척 행동했고, 성소현 아버지가 노려보는 것도 무시했다. 어쨌든, 성소현이 그와 함께 지내기를 원한다면 그는 뻔뻔스럽게 그 집안에 발을 들여놓았다.성소현에 대한 예준하의 마음은 오직 유청하 한 명만 지지했다.그녀는 예준하와 시누이가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쿵 짝이 잘 맞아 나눌 화제가 많았다는 점이 지지하는 데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예전에 성소현이 전태윤을 좋아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우울했고 소극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다. 조금의 응답도 얻지 못했으나 또 포기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고백하고 대담하게 사랑했지만 결국 모두 수포가 되고 말았다.하지만 예준하와 함께 지낼 때 유청하는 시누이의 웃음소리를 자주 들었고, 얼굴 또한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래서 유청하는 남편에게 예준하가 성소현을 좋아하는 것을 막지 말라고 설득했다. 성소현이 예준하와 함께 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기 때문이었다.새언니로서 시누이를 멀리 시집보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성소현이 행복하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만약 시누이가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한다면 예준하와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예준하는 특
“청하 씨는 아직도 토하나요? 임신 3개월이죠?”어르신이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던 유청하가 답했다.“네, 이제 3개월이 지났는데도 가끔 토하고 있어요. 보통은 식사하고 나서 30분 정도 후부터 토하기 시작하는데, 토하고 나서야 속이 편한걸요. 어머니께서 그러는데 제가 아마도 출산할 때까지 토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임신 반응이 심한 유청하는 매우 힘들었지만, 배 속의 아이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시간이 좀 지나면 태동을 느낄 수 있게 된다.만 3개월이 되었을 때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한 번 했는데 컨디션이 양호하다고 나왔다.다만 아직 태동이 미세해서 느낄 수 없을 뿐이다.관련 책의 내용에 따르면 16주가 지나야 태동이 뚜렷하게 느껴지고 태아가 자랄수록 태동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고 했다.애당초 아내가 아까워 아이를 지우려고 했던 성기현도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었을 때 그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손에서 놓기를 아쉬워했다.유청하는 남편이 아이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임신 반응이 심한 아내를 보는게 마음이 아파 아이를 지우려 했을 뿐이다.다행히 모두의 설득 끝에, 성기현은 아이를 지우겠다던 결심을 접었다.그는 매번 아내가 죽을 듯이 토하는 것을 볼 때마다, 옆에서 안쓰럽게 쳐다보며 아내 배 속의 아이를 욕하곤 한다.“요 녀석, 이제 엄마 배에서 나오기만 해봐라, 엉덩이를 때려줄 테니. 너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봐봐.”유청하는 생각하며 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이때 어르신이 말했다.“임신 반응은 정말 속수무책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출산할 때까지 토하기도 하죠. 예전에 소민이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도 심하게 토하고, 낳을 때까지 토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첫째랑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가 셋째를 임신하자 아주 심하게 토했답니다. 반응이 달라 셋째가 딸인 줄 알았더니 고 녀석도 아들일 줄이야.”어르신의 말을 듣고 유청하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
고빈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윤미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조금 전에 멈칫했던 것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애초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누나가 내게 소개해 줬을 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물론 그녀에게 대시한다 해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이윤미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강인한 성격을 만들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상대를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르는 데 능숙했다.고빈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윤미처럼 가식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여자였다.‘이윤미 같은 여자는 형에게 적합해. 둘이 함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형이 이윤미를 높게 평가한 것을 감안할 때 둘이 충분히 한 쌍의 커플로 발전할 수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놀아나겠지. 아니구나. 난 형이 없잖아! 강성의 사람들은 내게 형이 없고 누나만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자신과 인사하는 것만으로 고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을 이윤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이윤미가 비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윤미 씨, 뭐 드실래요? 비서에게 준비하라고 말할게요.”“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됩니다. 밤에 잠 못 잘까 봐 커피는 감히 마시지 못하겠네요.”고현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라고 자기 비서에게 지시했다.자리에 도로 앉은 고현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저는 아침과 오후에 한 잔씩 마셔요. 습관 돼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는 데 별 지장은 없어요.”그녀는 보통 카페인이 효력이 사라진 자정이 되어서야 자는지라 걱정거리가 없는 한 수면에 큰 영향
“그러면 지금 바로 할머니께 전화할게. 퇴근 후 집에서 샤부샤부 먹겠으니, 집사에게 말하라고 말이야. 사람 좀 있어야 분위기도 나니까 이진 부부도 부를게. ”그러자 하예정이 말했다.“제가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당신은 가서 일 보세요. 아니면 오늘 밤 관성에 있는 사람 중 시간 있는 사람들을 와서 밥 먹으라고 가족 단톡방에 말 보낼게요. 하긴 사람이 많으면 시끌벅적하고 좋긴 하죠.”전태윤이 웃었다.“다들 바쁘니까 오지 못할 거야. 이진 부부만 불러.”“당신 말한 대로 할 테니 얼른 가서 일 보라니까요. 수중의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나중에 그나마 수월해질 건데.”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한 전태윤은 야근하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려 했다.아내의 거듭된 재촉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하예정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저녁에 전이진 부부를 불러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말하자,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당연히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강성, 이윤미가 타고 있던 차량이 고씨 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차에서 내린 이윤미의 비서는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이윤미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수십 층에 불과한 이씨 그룹의 청사와 달리 중심상업지역에 자리 잡은 고씨 그룹의 청사는 강성의 모든 대기업 중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이미 오기 전에 고현에게 전화하여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를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고현이 자신의 계획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윤미는 그래도 이씨 가문 딸의 신분으로 협력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다.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사적으로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얘기해 볼 속셈이었다.고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윤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뻔했다.이윤미가 여러
전태윤의 뒷부분 말을 들은 소정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지 넌 모를걸. 약속 지켜. 네가 회사로 돌아오면 날 며칠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네가 잊을 수 있으니 내가 계속 일깨워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 우리 효진이가 아이를 낳을 때 나에게 출산 휴가를 두 달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잊지 마.”전태윤은 그를 꾸지람했다.“네가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휴가는 한 달이면 돼. 네 아내의 산후조리만 잘 돌보다가 바로 출근해. 게다가 너의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산후조리가 끝나면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걸. 내가 두 개월 휴가를 주는 것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줬다고 생각하다니.”소정남은 바로 반박했다.“예정 씨가 아기를 낳을 때 네가 매일 회사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일할 수 있고 예정 씨의 산후조리를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출산 휴가를 한 달만 낼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남편으로서 효진이가 날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3개월 휴가 줄게, 됐지?”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전태윤도 하예정이 출산하면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산후조리 때 특별히 잘 보살펴야 한다.소정남은 재빨리 말했다.“예정 씨, 들으셨죠? 태윤이가 저에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증인으로 되어드릴게요. 태윤 씨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심효진의 임신 기간이 하예정보다 길었기에 내년 5월쯤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정남도 그의 상사와 내년 출산 휴가를 미리 상의하고 있었다.소정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으며 일어나 전태윤에게 말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일할게. 오늘 업무를 전부 처리해 놓아야 내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 테니까.”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소정남은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
우빈은 형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내가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서너 살밖에 안 되는데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하예정은 웃으며 우빈을 안았다.우빈은 뚱뚱하지 않다.녀석은 정말 졸렸는지 하예정에게 안긴 지 2분도 안 되어 금세 잠이 들었다.30분 후, 차 두 대가 전씨 그룹으로 들어섰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려고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그를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저녁에 퇴근할 때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는 알려주지 않았다.지금 앞당겨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나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다.심효진은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때때로 상대방에게 서프라이즈 해주면 부부 감정을 두텁게 해준다고 말한 적 있다.소설을 많이 본 성소현은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능력이 하예정보다 더 대단했다.하예정은 성소현에게서 이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사모님, 제가 우빈을 안아드릴게요.”경호원은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을 안아오려고 했다.그러나 하예정이 거절했다.“괜찮아요. 제가 안으면 돼요. 1층에서 기다리세요. 만약 볼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일을 보셔도 돼요. 태윤 씨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그녀는 남편의 차를 타고 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경호원은 공손히 대답했다.“다른 개인적인 일은 없습니다. 큰 사모님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호원들과 함께 회사 안으로 건물로 들어섰다.들어가는 길에 하예정을 본 직원들은 전부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인사했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1층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하예정과 우빈을 싣고 곧장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우빈은 너무 정신없이 놀고 피곤한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다. 아마 깨우지 않으면 어두워질 때까지 잘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전태윤의 비서가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모연정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용정은 가끔 혼자 놀 때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고 인기척을 듣지 못할 때 용정을 찾아가 보면 분명 사고를 치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녀석이 제 립스틱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니까요.”성소현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접하는 아이가 바로 우빈이였다.성소현은 우빈이가 항상 철이 들고 귀엽고 총명하다고만 느꼈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전부 천사로 보였다.성소현의 친조카처럼 막 태어났을 때는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예뻐지고 있다.그녀는 친조카의 성장 다큐멘터리를 찍어준다며 매일 조카의 사진을 몇 장씩 찍어두었다.다만 눈물이 좀 많을 뿐이다.배가 고프면 울고 응가 해도 울었다. 말을 못 한 탓으로 아기는 입만 벌리면 울었다.모연정과 하예정은 잠시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예지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쌍둥이가 깨어난 것을 보자 모연정은 일어나서 아들을 안으러 갔다.딸은 이미 예준성에게 안겨 있었다.예준성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었는데 예준하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형,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연이 안아줄게.”예준성은 캐리어를 예준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캐리어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차에 실어줘. 이따가 우리를 서원 리조트로 데려다줘.”그들의 개인 비행기는 서원 리조트에 주차되었다.예준하의 별장에는 예준하 부부의 개인 비행기를 주차할 수 있는 큰 공간이 없다.예준하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중얼거렸다.“지연이를 안고 싶은데 자꾸 캐리어만 끌게 하다니. 곧 돌아갈 거면서 지연이를 안지도 못하게 해.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중얼중얼하던 예준하는 결국 예준성을 도와 캐리어를 끌어갔다.예준성은 딸을 안고 하예정 자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연정이 예지호를 안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모연정에게 말했다.“연정아, 가자. 용정은?”“밖에서 우빈이와 놀고 있어요. 나가서 불러오면 돼
하예정은 갑자기 점쟁이가 자신과 전태윤의 결혼을 지지하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아들딸을 낳을 거라는 말을 떠올렸다.만약 하예정이 딸을 낳으면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만약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처럼 딸을 낳아도 잘 키울 수 없다면 그녀는 아이를 낳지 않을지언정 아이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서원 리조트의 풍수에 문제가 있는 건가!그러나 점쟁이는 리조트의 풍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점쟁이는 서원 리조트의 풍수 구조가 사업과 자식들이 번창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정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하예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유심히 본 성소현이 걱정스레 물었다.“내가 전씨 가문에서 대대로 낳은 딸이 세상을 뜨는 일을 언급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네 뱃속의 이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우빈이가 말했듯이 네 배 속의 아기는 남자 아기일 거야. 게다가 네가 딸을 낳았다고 해도 현재 의학이 발달하고 임신 중에 그렇게 많은 임신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분명 건강하게 자랄 거야. 태윤 씨 조상들의 일은 옛날얘기잖아. 청나라 말기 때 의학 기술이 얼마나 뒤처졌는데,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시기잖아.”고대 궁안의 생활도 아주 좋았지만 죽은 아기들도 얼마나 많았던가!말을 마친 성소현은 일부러 하예정의 어깨를 감싸며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너도 태윤 씨에게 딸을 낳을 만큼 그렇게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걸. 너희들은 아들을 낳을 운명인 거지. 안 좋은 일은 생각하지 마. 너 놀란 것 좀 봐. 잘 들어. 내가 아기에게 준비한 선물들은 전부 남자아이 물건들이니까 꼭 아들을 낳아야 해.”하예정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켰다.아직 딸을 낳지도 않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할 필요 없었다.게다가 점쟁이는 하예정이 아들딸을 낳을 운명이라고 했기에 그녀가 딸을 낳는다고 해도 반드시 건강하게 키워 안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혹은 둘째를 가
하예정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용정을 예준하 곁으로 먼저 보냈다. 예준성 부부는 관성에 온 뒤로 줄곧 예준하의 별장에 머물렀다.예준하의 집에 도착하여 용정을 모연정 부부의 손에 넘겨주고 나서야 하예정의 긴장했던 신경이 풀리기 시작했다.“아줌마, 저 여기서 좀 더 놀 수 있을까요?”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우빈은 아쉬워하며 용정과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어 했다.우빈이가 입을 열었다.“용정이가 이번에 떠나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저랑 놀 수 있거든요.”하예정은 모연정을 쳐다보았고 모연정이 말을 건넸다.“저희도 짐을 정리해야 해서 30분 정도 있다가 집으로 갈 거예요. 두 아이를 30분만 더 놀게 해요. 용정도 우빈이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계속 놀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신나게 놀면 마음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워져요.”“그러게요.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꾸 놀 생각만 하고 유치원은 가기 싫어질 거예요. 용정과 비교되지 않았다면 우빈은 아마 그의 사촌 이모처럼 강제적으로 차에 태워야 했을걸요.”성소현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꺼린 사실이 언급되자 모연정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소현은 예준성 부부를 배웅하러 왔는데 하예정이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얼굴을 붉히며 하예정을 가볍게 때렸다.“예정아, 너 정말 못된 것만 배운 거 아니야? 누가 어릴 때 유치원에 가고 싶었겠어?”하예정은 히죽히죽 웃었다.“저는 아마 가기 싫어한 적 없을걸요.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는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우리 언니도 말 한 적 없는걸요.”하예정은 유치원에 간 기억이 없지만, 하예진이 5살 연상이라 하예정이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 경험이 있으면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우빈아, 얼른 놀아. 시간이 30분밖에 없어. 우리 모 아줌마를 배웅해 드려야 해. 그리고 이모부 회사로 가서 이모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가서 밥 먹자. 오늘 실컷 놀고 내일부터 유치원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