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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사랑한 여인의 모든 챕터: 챕터 271 - 챕터 280

2479 챕터

0271장

무슨!기모진의 말에 소만영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다리에 힘이 풀려 뒷걸음질 쳤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다름 아닌 과거 자신이 천미랍에게 했던 경고와 협박의 말들이었다.“천미랍, 그때 소만리 얼굴을 망가트렸던 사람이 바로 나야. 감히 나한테 대든다면 너도 그와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해 줄 거라고!”소만영은 아까보다 얼굴이 더 희게 질려있었고 얼마나 긴장한 건지 심장은 쿵쿵대며 뛰고 있었다. 조금 전 그 말들은 정말 홧김에 내뱉은 말들이었다. 천미랍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차에 자신의 본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자신이 했던 일들을 전부 불어버린 것이었다.기모진은 소만영의 안색과 눈빛의 변화를 살펴보더니 실망 가득한 얼굴로 얘기했다.“너 나한테 그랬었잖아. 만리의 얼굴이 그렇게 된 건 네 아빠인 모현이 사람을 시켜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그런 짓을 한 건 바로 너였던 거야.”“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소만영은 기모진의 팔뚝에 매달리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했다.“난 진짜 만리를 다치게 한 적이 없어. 난 진짜 아니야… 난 피만 봐도 기겁을 하는데 어떻게 칼을 들고 만리를 해치겠어? 만리가 군군을 다치게 하는 바람에 아빠가 화가 나서 걔 혼쭐을 내주겠다고 그런 거야. 그 일은 정말 나랑은 상관없어. 모진아, 나 믿어줘. 천리 좀 믿어줘…”천리의 이름이 나오자 그때 그 시절 그 감정이 떠올라 모진은 치밀어오르는 노기를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가 내뿜던 싸늘한 냉기가 조금 가시자 소만영은 억울하다는 듯한 어투로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모진아, 날 믿어줘. 날 자꾸 몰아붙여서 어쩔 수 없었어. 내가 그런 몹쓸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아까는 내가 실수한 거야. 천미랍이 자꾸 날 괴롭히길래 걔 겁주려고 그런 거지. 내가 진짜 그 사람을 해칠 리가 없잖아, 모진아…”소만영은 이 틈에 기모진의 동정을 사려 시도했지만 기모진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손을 쳐냈다. 사람을 홀릴 듯이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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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2장

전예는 기모진과 소만영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고, 그녀도 일이 이렇게 탄로가 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애써 소만영을 위로하며 말했다.“만영아, 너 지금 와서 포기하면 안 돼. 기씨 집안 사모님 자리는 네가 가져야지. 이건 단지 지위를 상징하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끝도 없는 부를 가져다주는 거라고!”탐욕으로 번들거리는 전예의 눈동자에서 독기가 흘렀다.“천미랍은 엄마한테 맡겨!”소만영은 한동안 분풀이를 하다가 자신의 얼굴 위에 난 상처를 매만지며 말했다.“내가 이렇게 물러날 것 같아? 감히 내 남자를 빼앗으려 하다니, 죽여버리겠어!”그녀의 눈동자는 독기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보이는 건 음흉하고 악랄한 간계였다.“흥, 천미랍은 엄마가 손 봐야지. 하지만 엄마가 아니라 사화정이야 해.”……기모진은 병원에서 나와 차를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그는 마치 감각과 사고를 전부 잃어버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무감각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소만영이 했던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소만리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이가 소만영이었다니. 하. 기모진은 겉으로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속으로는 차게 웃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리미티드 에디션인 스포츠카가 한 낡은 아파트 아래에 멈춰 세워졌다. 기모진은 매우 익숙하게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서 어느 집 문 앞에 섰다. 그곳은 소만리가 생전에 지내던 곳으로 기모진은 그곳을 두 배의 가격으로 사들였다. 이미 3년이나 지났으니 그녀의 숨결은 남아있지 않지만 기모진은 병적인 수준으로 이곳의 모든 것에 집착했다. 소만리가 그리워질 때마다 그는 묘원으로 가 그녀의 비석 앞에서 혼잣말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여기로 향했다. 그 모든 게 전부 쓸모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이미 너무 늦어버렸단 걸 알면서도 말이다,텅 비어버린 집 안. 그가 처음 소만리의 얼굴 위에 칼로 두 번 그어진 흉터를 보게 된 곳이 이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바닥에 쓰러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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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3장

본가로 돌아가는 길에 기모진의 머릿속은 조금 전 어머니가 했던 얘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속도를 높였고, 십여 분 정도 지나 본가에 도착한 그는 차고에 차를 주차해두었다. 차에서 내린 뒤 그는 곧바로 거실로 향했고 입구에 도착해보니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발걸음이 멈췄고, 심장이 두근댔다. 소만리가 고개를 들어 기모진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그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마치 유리구슬처럼 맑고 깨끗했다.“전 묵비 씨께서 오신 줄 알았는데, 기모진 씨였군요.”소만리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쿵쾅대던 기모진의 심장은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기묵비 씨를 기다렸나요?”“묵비 씨랑 저랑 여기 같이 오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하길래 제가 먼저 왔죠.”소만리는 느긋하게 설명했다.“모진씨 때마침 잘 오셨네요. 저랑 묵비씨가 따로 얘기를 전할 필요는 없겠네요.”“무슨 얘기요?”기모진은 소만리의 앞에 서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고, 기모진의 탐구심 가득한 눈동자를 그녀는 태연하게 마주하며 얘기했다.“저랑 묵비씨 결혼하는 거요.”부드러운 그녀의 말이 기모진의 귓가에 닿고, 심장에 닿았다. 그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순간 호흡이 멈추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기모진 씨는 저랑 묵비씨 축하해 주실 거죠? 어쨌든 묵비씨가 삼촌인데.”순간 굳어진 기모진의 얼굴을 보며 소만리는 환히 웃고 있었다.“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랑 결혼하는데,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기모진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게 소만리는 꽤 의외라고 생각됐지만 그녀는 담담히 웃어 보였다.“그럼 기모진 씨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꼭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그녀의 역질문에 기모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고, 소만리의 웃음은 더욱더 짙어졌다.“제가 알기론 기모진씨 전처인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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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4장

기모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기묵비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소만리가 그의 곁을 지날 때 그녀의 단아한 향기가 그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 향은 무척이나 달고 특별한 것이었다.“모진아.”기묵비는 기모진을 보고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한결같이 우아하면서도 여유가 넘쳤고 그가 하는 행동들은 무척이나 신사다웠다. 기모진은 자신의 앞에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을 차가운 눈빛으로 스쳐 가듯 쳐다보았고, 소만리는 그런 기모진을 힐긋 보고는 고개를 돌려 기묵비를 보며 생긋 미소 지어 보였다.“묵비씨, 저희 들어가요.”“응.”기묵비는 부드러운 얼굴로 미소 짓고는 소만리의 손을 잡고 거실로 향했다. 기모진의 어머니는 통화 중인지 전화를 들고 있었고 소만리와 기묵비가 손을 잡고 다정히 들어오는 모습에 불쾌한 얼굴로 눈을 흘기고는 전화를 끊었다.“어, 묵비씨, 왔어요?”기모진의 어머니는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하면서 소만리를 힐긋 쳐다봤다.“정말 이 여자랑 결혼하려고요?”기묵비는 신사답게 미소 지으면서 예의 있게 대답했다.“어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세요. 이 여자라뇨, 제 약혼녀예요.”“흥.”기모진의 어머니는 우습다는 듯이 냉소를 흘렸고 기모진이 돌아온 걸 보고는 얼른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모진아, 너 들었니? 너도 봤지? 네 삼촌이 네 전처랑 똑같이 생긴 여자랑 결혼한단다! 정말 재밌네.”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고, 막 계단에서 내려오려던 기모진의 할아버지도 그 소리를 들었다.“묵비 씨, 그때 본가로 돌아왔을 때 그렇게 소만리를 챙기던 게 다 이유가 있었네요. 그때 이미 마음에 둔 거죠? 소만리가 죽고 나니 이젠 소만리랑 똑같이 생긴 여자를 어디서 찾아와선 그 여자를 대신하려고, 묵비 씨도 참 대단하네요.”어머니의 말에 기모진은 그때 그날 밤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소만리는 기묵비와 가까이 지냈었고 그 모습에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눈에 거슬렸던 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질투였다. 소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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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5장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입을 연 기모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수려한 얼굴에는 서리가 낀 듯했고 눈빛 역시 싸늘하고 날카로웠다.“모진아, 나랑 미랍이는 꼭 결혼할 거야.”기묵비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지만 그의 말투는 절대적이었다.“전 두 사람 결혼하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기모진은 단호한 태도로 바로 대답했고 그의 어투는 기묵비보다 훨씬 더 결연했다. 소만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미간을 구겼다.“기모진 씨,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쪽이 뭔데 저랑 묵비씨 결혼을 반대한다는 거죠?”기모진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차가운 눈빛으로 소만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지독히도 공격적이었다.“그 얼굴이요, 전 절대 당신이 제 숙모가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그는 단호히 얘기했고 표정은 결연했다. 그에 소만리는 피식 웃었다.“제가 전처분이랑 닮았다고 해서 제가 묵비씨랑 결혼할 수 없다고요? 그럼 기모진씨는 제가 그쪽이랑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하고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기모진은 그녀의 질문을 듣고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둘의 시선이 얽히고 둘 사이에 어떤 미묘한 스파크가 튄 것 같기도 했다.“우리 모진이랑 결혼하려는 생각이야? 꿈 깨!”기모진의 어머니는 굉장히 거만한 태도로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전국에 우리 모진이한테 어울릴 만한 사람은 모씨 집안의 딸 소만영 뿐이야! 이제 둘은 곧 있으면 결혼할 거야. 너? 흥! 소만리 그 천한 것이랑 똑같게 생겨서는 안 봐도 뻔하지!”기모진은 어머니가 소만리를 모욕하자 불쾌한 듯 미간을 좁히면서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제가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모씨 집안하고 결혼 취소했다고요, 전 소만영이랑 결혼 안 해요!”기세등등해져 있던 기모진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그 말을 부정당하고는 머쓱한지 얼굴을 붉히면서 그를 설득했다.“모진아, 너랑 만영이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는 거 나도 알아. 너도 성질 그만 부려. 만영이가 애까지 낳아줬는데 어떻게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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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6장

소만리는 홀로 소만영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병원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만리 역시 위를 살펴보니 흰옷을 입은 누군가가 난간 위에 앉아있는 게 보였고 그건 소만영이 확실했다.소만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향했다. 그녀는 기모진이 이미 도착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모진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때 심각한 얼굴을 해 보이더니 소만영을 걱정한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그는 급하게 어디로 간 거지? 그런 의문들이 이어질 때쯤 그녀의 앞에서 사화정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만영아, 이러지 마. 엄마가 부탁할게. 일단 거기서 내려와!”사화정은 우느라 목소리가 쉬어있었다. 진짜 소만영을 걱정하는 것 같아 보였다. 소만리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면서 앞을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자신의 친부인 모현도 있었다. 그는 가슴이 찢어지게 대성통곡하는 사화정을 붙잡고 한편으로는 소만영을 설득하고 있었다. 말끝마다 우리 아가라고 부르면서 소만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와 사화정 모두 소만영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소중히 생각하는, 친딸이라고 여기는 그녀를.“모진이, 모진이는 아직 안 왔어요?”그때 소만영이 입을 열었다. 작은 목소리, 연약한 모습으로. 그러나 소만리는 그것이 연기임을 알 수 있었다.“모진이 금방 올 거야! 만영아, 꼭 모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절대 바보 같은 짓 하지 마!”사화정은 울면서 그녀를 설득했다. 당장이라도 소만영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내리고 싶은데 혹시 그녀를 자극하게 될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소만리는 소만영이 차라리 누군가 그녀를 끌어내려 줬으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연기일 뿐이니까.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전예는 더 과장스레 울부짖었다.“만영아, 만영아! 너 왜 이리 바보 같아! 왜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자신을 벌하는 거야. 그때 너랑 모진이가 결혼하지 못한 건 소만리 때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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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7장

소만리가 그 말을 내뱉고 나서 주변의 공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오로지 옥상에 부는 가을바람이 얼굴 위를 스쳐 갈 뿐이었다. 사화정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만리를 바라보며 얘기했다.“뭐,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모현 역시 큰 걸음으로 사화정의 옆에 걸어가서 똑같이 추궁하는 눈빛으로 소만리를 노려보고 있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 딸은 여기 잘 살아있는데 3년 전에 죽었다고 저주를 하다니!”소만리는 냉소를 흘리며 사화정의 손을 놓아줬다.“당신 딸 저주한 거 아니에요. 사실을 얘기한 것뿐이지.”그녀는 차분히 말하면서 전예를 가리켰다.“저 여자가 얘기하는 걸 제가 직접 들은 거거든요. 당신들 친딸은 이미 3년 전에 죽었다고.”“뭐라고?”사화정과 모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빛을 주고받더니 전예를 바라보았다.“헛소리예요!”전예는 얼른 부인했다. 솔직히 당황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모현 씨, 사화정 씨. 절대 저 여자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전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천미랍,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길래 날 키워주신 엄마를 모함하는 거야? 너 설마 내가 우리 엄마 아빠 친딸이 아니란 얘길 하고 싶어서 그래? 그래서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단 거지?”소만영은 격분해서 말했고, 전예는 초조한 듯 말하면서 그녀의 연기에 어울려주었다.“만영아, 일단 화내지 말고, 거기서 내려와. 너한테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너희 엄마 아빠가 얼마나 속상하겠니.”사화정과 모현은 그 말에 다시 걱정스러운 듯 시선을 소만영에게로 옮겼다. 그러나 소만영은 실망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엄마, 아빠. 저 여자가 한 말 믿는 거야? 내가 정말 엄마, 아빠 친딸이 아니란 말을? 그럼 이젠 내가 죽든 살든 상관없겠네. 그래, 그래…”그녀는 미련 없다는 듯이 쓰게 웃어 보였다.“모진이도 나한테 관심 없고 엄마, 아빠도 이젠 나 신경 안 쓰는데, 내가 더 살아서 뭐 해…”소만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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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8장

“소만리가 악독한 년이면, 그럼 당신 딸 소만영은 뭐죠?”소만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사람들 시켜서 자기 아들 납치시키고 소만리한테 덮어씌운 건 잊었나 봐요? 기모진이 소만리를 싫어하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 팔찌 훔쳐서 소만리한테 덮어씌운 거는요? 사화정 씨, 잘 생각해보세요. 누가 진짜 악독한 년인지.”“너…”사화정은 순간 반박하지 못했다.“내가 안 그랬어요. 난 그런 적 없어…”소만영은 울면서 부정했고 억울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은 주위 사람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천미랍, 도대체 왜 날 모함하는 거야? 나랑 모진이 사이 이간질하고, 내 얼굴 망가뜨리고, 정말 내가 죽어야 만족하겠어? 그래, 네가 바라는 거 내가 해줄게. 지금 당장 여기서 뛰어내린다고!”“안돼, 만영아!”“만영아!”사화정과 모현은 조급했지만 소만리는 우습다는 듯이 냉소를 흘렸다.“그래, 얼른 뛰어.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소만리는 미묘하게 변한 소만영의 안색을 보고 웃었다.“소만영, 뛰라니까. 왜 아직 안 뛰어?”“너…”“내가 저 사람들처럼 멍청해 보였나 봐? 네가 연기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네가 네 자신을 다치게 할 리가 없지. 너 이러는 거 기모진이 나타나면 네가 원하는 거 얘기하려고 그러는 거잖아.”“…”소만리가 자신의 속내를 전부 파악하고 있자 소만영은 안색이 휙휙 바뀌면서 입꼬리가 떨렸다. 사화정과 모현은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소만리를 옆으로 밀쳤다.“천미랍, 너 감히 만영이를 자극해? 너 정말 인성이 바닥이구나!”모현은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손을 들어 소만리를 때리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소만리는 소만영과 전예가 눈빛을 주고받는 걸 보았고, 소만영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아빠, 엄마. 불효녀라 미안해요. 다음 생에 다시 만나요.”“만영아!”바로 다음 순간, 하늘을 찢을 듯이 날카로운 전예의 목소리가 울렸다. 모현의 손이 내려가기도 전에 그는 사화정과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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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9장

“만영아! 만영아! 내 소중한 아가!”사화정은 히스테릭하게 울부짖다가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모현의 품 안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모습에 소만리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졌다. 사화정이 자신의 친모였으니까 말이다. 비록 그녀가 자신을 살갑게 대해 준 적이 없더라도 소만리는 사화정과 모현이 잘 지냈으면 했다. 하지만 그 둘은 지금 소만영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그에 소만리는 쓰게 웃었고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 소만리는 기모진이 조금 전 소만영이 뛰어내린 곳에 다다른 것을 발견했다. 기모진은 심각한 얼굴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곧 몸을 돌려 다시 걸어왔다.“아래층에 있는 베란다 쪽에 떨어졌던데, 크게 다친 것 같진 않네요.”기모진은 덤덤한 어투로 말했지만 소만리는 그의 눈에서 그가 한숨 돌렸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역시나 그는 소만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죽을까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소만리의 예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소만영은 미리 다 계획해 놓은 거였다. 먼저 지형을 파악하고 뛰어도 안전하겠다 싶으니까 대담하게 “투신”한 거다. 그런데도 소만영은 응급실로 실려 갔고, 사화정도 그때쯤에 깨어나 소만영이 이십여 층에서 떨어진 게 아니란 걸 전해 듣고는 다행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기모진이 뒤늦게 도착한 걸 보고 사화정은 분노한 얼굴로 그의 앞에 가서 그를 원망했다. “기모진, 너 도대체 우리 딸 언제까지 괴롭힐 작정이니? 걔가 널 위해서 자기 청춘까지 다 받쳤는데, 저런 악독한 년 때문에 우리 만영이를 다치게 해? 소만리 하나로는 부족해서 이제는 천미랍이야? 만영이가 진짜 목숨을 잃기라도 했으면 평생 발 뻗고 잠이나 잘 수 있겠어?”기모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사화정의 질책을 받아내고 있었다. 발 뻗고 잠을 잔다고? 소만리가 떠난 그 날부터 그는 한 번도 편히 잠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잠시 후 기모진은 의미심장하게 얘기했다.“이제 더는 그녀를 괴롭히고 싶지 않으니까 따님하고 결혼 취소하겠습니다.”“뭐라고? 정말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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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0장

다음 순간, 기모진이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으며 차에서 내렸다. 차디찬 얼굴을 한 그는 양손이 붙잡혀있는 소만리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고, 소만리를 경찰들의 손에서 구출해내 자신의 옆에 세워두었다.“소만영이 건물에서 뛰어내린 건 사고였죠. 천미랍씨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대로 조사하고 사람 잡으셔야죠.”냉랭한 말투와 압도적인 기세였다. 그는 소만리의 어깨를 끌어당기고는 조수석의 문을 열면서 얘기했다.“타요.”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모진의 차가 경찰차보다 나았다. 기모진은 곧 스포츠카를 몰아 그녀를 인적 드문 교외로 데려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만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쪽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저 때문에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왜 절 도와주는 거죠?”기모진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누군지 알아요?”“저만 아는 게 아니라 경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아는 사실이죠. 그쪽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소만영이고 가장 미워하는 여자는 그쪽 전처라는 거.”소만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기모진은 그녀의 대답에 미간을 구기더니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침묵에 소만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아까 도와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그쪽도 이젠 사랑하는 여자 곁에 가야죠. 아마 평생 그쪽 없이는 살지 못할 텐데.”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손목이 끌어당겨 졌다. 차가운 체온이 피부를 통해 침투해왔고 그녀의 심장을 감쌌다. 기모진은 소만리의 손목을 붙잡고 그녀의 뒤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그날 저한테 물었었죠? 그쪽이 제 전처랑 똑같게 생겼으니, 저랑 똑같이 생긴 남자랑 결혼해야 하는 거냐고. 지금 대답할게요, 네.”“…”소만리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그의 진지하면서도 알쏭달쏭한 눈빛과 마주쳤다.“하지만 이 세상에 저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당신이랑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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