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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화

하준은 주방으로 가서 밥을 담았다. 여름이 웃으면서 이진숙에게 속삭였다.“환자인 건 알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정상으로 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조심스러워할수록 하준 씨도 더 민감하고, 감정적이고 예민해질 것 같거든요.”이진숙이 깜짝 놀랐다.“사모님은 역시 대단하세요. 그렇네요. 회장님도 아직 안 드셨는데 식사 좀 하게 해주세요.”곧 하준이 밥 한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자긴 안 먹어요?”“방금 먹어서 별로 배가 안 고파.”하준이 여름 앞에 밥그릇을 놓아주었다.“거짓말! 이모님이 자기 밥 먹어야 한다고 하던데.”여름이 억지로 하준을 끌어다 앉혔다.“꼭 먹어야 해.”“밥이 안 넘어가.”“내가 먹여줄게요.”여름이 새우를 집어 하준의 입에 넣었다.“……”‘뭐지? 그 맛없던 새우가 갑자기 맛있네?’“하나 더.”새우 하나를 꿀꺽 삼키더니 졸랐다.“혼자서 먹어 봐요.”여름이 젓가락을 쥐어 주었다.“싫어. 입맛이 없단 말이야.”하준이 얼굴을 홱 돌리며 극혐 얼굴을 했다.여름은 진땀이 났다.‘하아아… 새우 먹는 거 보니까 입맛 없는 거 아닌데?내가 먹여주면 뭐 맛이 다르냐?어쨌거나 뭘 먹여야 하니까….’여름은 할 수 없이 직접 먹이기로 했다.어느새 여름이 한 그릇을 먹는 동안 하준은 두 그릇을 먹었다.이진숙이 보더니 너무 기뻐했다.“회장님이 이렇게 드시는 거 너무 오랜만에 보네요. 역시 사모님이 먹여 드려야겠어요.”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전에는 왜 이렇게 유치한 최하준의 모습을 몰랐을까?’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꾹 쥐는 느낌이 들었다돌아보다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하준의 눈과 마주쳤다.“아까 밥 먹고 나면 안마해달라면서요.”“어?.... 아, 응.”여름은 흐뭇했다.‘밥 먹인 보람이 있군.’잠시 후 여름은 깩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살살~ 아파요.”“살살 하는 건데.”“아니, 그만, 그만! 아파 죽겠네.”여름이 후다닥 하준의 손에서 벗어났다.“다른 거 하죠. 이따가 나 샤워할 건데 그 힘으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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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화

여름이 말은 그렇게 하긴 했지만 정말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부끄러웠다.“됐어요. 내가 할게.”얼른 가서 하준을 밀어내려고 했다.“안 돼. 우리 마누라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직접 느껴봐야 해.”하준이 새빨개진 여름의 얼굴을 보고 일부러 놀렸다.“제대로 빨 줄도 모르면서.”여름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그렇게 문지르면 안 돼요. 다 망가지겠네.”“그럼 가르쳐 주던가.”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어린애처럼 얌전히 가르쳐 달라는 표정을 했다.여름은 마침내 자기가 제 무덤을 팠다는 것을 깨달았다.“얼른.”하준이 재촉했다.여름은 할 수 없이 울상을 하고 쪼그리고 앉아 하준을 가르쳤다.“이렇게 뒤집어서 반대쪽으로…”가르치는 대로 조심스럽게 자기 속옷을 빠는 하준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빨래를 널더니 하준이 돌아봤다. 복잡하면서도 감개무량한 여름의 눈을 보더니 우습기도 하고 슬쩍 짜증도 났다.“그런 눈으로 볼 일인가?”“당연하죠. 남이 내 속옷 빨아준 거 처음이거든요.”여름이 입을 비죽거렸다. 전에 한선우와 몇 년을 사귀었지만 두 사람은 이 정도까지 친밀하지는 않았다.남친이 속옷을 빨아준다는 것은 남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함께 살고 나서 그 거만한 최하준이 자기 빨래를 해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당신 속옷 빨래해 줄 남자가 더 필요한 건 아니겠지?”하준이 여름을 안아 침대에 올려놓으며 경고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한선우와 양유진이 당신 속옷을 안 빨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그 손모가지를 그냥….”“그럴 일 없네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최하준 밖에 없으니까.”여름이 하준의 목에 손을 걸더니 먼저 입을 쪽 맞췄다.“쭌, 사랑해요.”여름의 가벼운 키스에 하준은 심장이 떨렸다.손을 뻗어 여름의 코끝을 살짝 꼬집었다.“진짜?”“내가 거짓말한 적 있던가?”여름은 마음이 답답했다.‘완전 진심으로 고백하는 거라고, 이 바보.’“예전에!”하준의 눈에 원망스러운 빛이 돌았다.“전에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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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화

하준이 웃었다.“알겠어. 아주 노래 가사를 외우는구먼. 처음 날 만났을 때 느낌부터 시작해서 읊어 보시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자. 다 꺼내 봐.”“……”여름은 이제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결국 어쩔 수 없이 하준의 목을 안고 애교를 떨었다.“내가 잘못했어요, 여보. 대체 언제 사랑에 빠졌는지 말하라니, 그걸 어떻게 알아? 같이 살면서 순간순간, 그리고 내가 위험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날 구해줄 때마다 빠져들었겠지.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을 사랑하고 있던 걸.”하준은 완전히 여름에게 녹아버렸다.“진짜야?”“그럼.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은 내가 평생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평소에 성격이 좀 안 좋아서 그러지. 어쨌든 매일 나에게 미운 말만 골라서 해서 날 울리고 그랬잖아. 안 그랬으면 훨씬 더 빨리 사랑하게 됐을 텐데.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거든.”여름이 두 손으로 하준의 얼굴을 받쳤다. 검은 눈동자에 하준의 모습이 가득했다.하준이 여름의 입술에 쪽하고 뽀뽀했다.“요, 요, 요 입으로 사람 낚는 기술 보라고. 전에는 대체 남자를 얼마나 낚은 거야?”“당신밖에 없는데. 앞으로도 당신밖에 없을 거고.”여름이 하준을 꼭 안았다.하준의 목젖이 꿀꺽했다.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자꾸 이러면 아기 만들고 싶어진다니까.”여름이 얼굴을 붉혔다. 고개를 끄덕하려는 찰라, 하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하준이 슬쩍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머리끝까지 화가 난 최대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놈의 자식! 넌 네 마누라 간수도 못 해? 감히 FTT에서 반도체 소유권을 가져가겠다니? 어디서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까불어?”여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하준이 웃으며 여름을 쓱 쳐다봤다. 목소리는 사뭇 냉정했다.“제 와이프의 생각이 제 생각입니다.”“네가 정말 나 숨 넘어가는 꼴을 보겠다는 거냐?”최대범의 목소리가 떨렸다.“할아버지, 저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FTT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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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화

”앞에 세 가지는 말도 안 된다.”최대범이 깜짝 놀랐다.“추신그룹 올해 재무재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추신그룹만 내내 성적이 저조했는데 평소 가만히 실력을 숨기고 있다가 최양하가 무대에 올라오더니 5가지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추신이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였을까요?최대범은 흠칫했다.“일단 FTT가 무너지면 추신이 절대적으로 윗자리로 치고 올라갈 겁니다. 하지만 제가 FTT를 장악하고 나면 우리 집안의 지위는 변함없을 겁니다. 저야 뭐 별 상관 없습니다. FTT를 제게 넘겨주지 않는다고 해도 제 지위는 흔들림 없을 겁니다. 다만 FTT의 생사는 저와는 상관 없는 일이 되겠죠.”“하지만 넌 병이….”“못 믿으시겠다면 그만 두겠습니다. 할 일이 있어서 이만….”그렇게 말하고 끊으려고 하자 최대범이 급히 말했다.“그래, 난 이제 늙었으니 너희 젊은 애들과는 싸울 수가 없지. FTT를 넘기마. 하지만 회사는 잘 경영해주고, 네 이모는… 걔들이 너에게 잘못했지. 나도 용서해달라고는 차마 말 못하겠구나. 하지만 다들 한 가족 아니냐, 너무 뚝 끊지는 말자꾸나.”“저는 언제나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 사람이었어요.”“얘야….”“이건 협상의 여지가 없습니다.”전화를 끊은 하준의 눈은 한없이 싸늘했다.여름은 하준이 그런 싸늘한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준의 품에 덥석 뛰어들어 꼭 안으며 말을 돌렸다.“추신의 자산 규모가 정말 그 정도예요?”“어떨 것 같은데?”하준의 눈에서 싸늘함이 서서히 가시고 대신 따스함이 돌아왔다.“조금 믿을 수가 없네. 추신은 내내 그렇게 별볼일 없어서 주민그룹이랑 쿠베라가 더 대단한 줄 알았거든요.”“응, 추신이 워낙 발톱을 잘 숨기고 있었지. 이번에 약혼식에서 추성호가 너무 거만하게 굴지만 않았으면 내가 가서 뒤져볼 일이 없어서 몰랐을 거야.”하준은 생각에 잠겼다.“추신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내 의부도 겉보기처럼 간단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여름은 완전히 깜짝 놀랐다.“추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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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화

”하준이 말이 지금 추신 자본 규모가 우리 나라에서 손에 꼽는 수준일 거라는데.”최대범이 갑자기 말했다.장춘자가 놀랐다.“그럴 리가?”“아직도 20년 전 추신만 생각하는 거요? 그 때만 해도 내가 동현이를 우습게 생각했지. 음악에서는 프린스니 뭐니 했지만 가업은 별볼일 없었잖아. 그래서 란이가 추신을 많이 도와주기도 했지. 나도 다 알면서도 못 본 체해줬어. 하지만 하준이 말이 사실이라면 추신이 뭔가 꿍꿍이가 있어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구먼.”“그러네요. 지난 번에 약혼식 만해도 사부인은 몇 년째 추신 상황이 굉장히 어렵다면서 많이 도와달라고 하던데.”장춘자가 울컥했다.“전에 내내 하준이가 일을 열심히 안 해서 내 체면만 깎아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양하에게 FTT 경영을 맡긴 건데 양하가 이렇게 계속 친가라고 추신만 도와주다가는 FTT가 길가로 나앉을 판이야.”최대범이 그 길로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이리로 한 번 건너오게.”한나절 만에 최대범이 FTT주식과 회장자리를 모두 최하준에게 양도한다는 이야기가 온 서울에 다 퍼졌다.온 가족이 본가로 모여들었다.최민이 제일 먼저 반대했다.“왜 이러세요? 왜 갑자기 FTT를 하준이에게 물려준다고 그러셔? 내가 그동안 아빠한테 어떻게 했는데?”“뭐라고?”그 말을 듣고 최대범은 등짝이라도 후려치고 싶었다.“아니, 걱정돼서 그러죠. 하준이가 날 미워하니까 걔가 회장자리 올라가면 분명 나랑 대립하게 될 텐데.”최민이 놀라서 얼른 최대범이 손을 꾹 잡아 누르며 말했다.“오빠랑 언니는 할 말 없어?”최진은 입을 비죽거렸다.“난 하준이랑 뭐 딱히 얽힌 건 없는데. 하준이에게 FTT를 안 맡기면 뭐, FTT 절단 나는 꼴을 보자는 거야? 지금 다들 비웃으면서 우리 회사 망하기만 기다리고 있는데.”“말은 잘도 하셔.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저렇게 쓸모가 없으니….”최민이 대놓고 최진을 욕했다.“입 다물어.”최대범이 짜증스럽게 최양하를 쳐다봤다.“양하는 어떻게 생각하니?최양하는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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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화

“뭐라고?”추성호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지금 엄청난 자금 들여서 생산라인 다 만들어 놨더니 인제와서 죽으란 소립니까?”“아니 뭘 또 죽기까지 해. 지금까지 번 것도 꽤 되잖아?”최양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최하준 어렸을 때 사진은 추신 쪽에서 흘러나온 거 아닌가?”“강여름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믿는 겁니까? 게다가 우리가 가족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사진을 구해요?”최양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추동현의 평소 행실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하여간 우리 식구들이 죄다 날 의심하고 있어서 최하준이 회장으로 올라가고 나면 제일 먼저 나부터 해 넘기려고 들 텐데.”“됐어요. 어쨌든 어머님도 계신데. 어머님의 주식은 결국 당신이 물려받을 거 아닙니까?”이쪽 전화를 끝내자마자 추성호는 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계획이 실패했습니다.”“그래. 내가 최하준과 최대범의 투지와 강여름을 모두 너무 얕잡아 봤어.”추성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에 강여름에 대해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화신 대표라고는 하지만 대표 자리에 앉은 지도 얼마 안 된다. 하지만 어제 라이브를 보니 전 세계로 송출되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도 침착했다. 심지어 청중과 국내 최고라는 FTT에 맞서면서도 내내 냉철하고 날카로웠다.하준의 병이 재발하고 나서 여름이 여하를 일부 떠받쳤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왠지 약혼녀인 서유인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다르다지만 한 아버지 자식인데 서유인은 왜 저렇게 하찮아 보일까?’“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합니까?”“다행히 내가 애진작에 플랜B를 준비해 뒀었지. 이제 걔가 등장할 때가 됐군.”“기대하겠습니다.”추성호가 한껏 공손하게 답했다.‘이분의 작전 능력은 정말 감탄스러워. 얼마 안 가서 추신은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 될 거야.FTT만 끝장난다면…’******다음날장춘자는 해변 별장으로 주식을 직접 들고 왔다.들어가서 보니 청소하는 이진숙을 제외하고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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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화

장춘자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을 하준을 상대할 각오를 하면서 왔는데 이렇게 평온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두 사람이 문으로 들어오다가 장춘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하준의 얼굴에서 온기가 싹 가시더니 방어적이고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장춘자는 철렁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여름이 시원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불쾌한 일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사뭇 평온한 말투였다.장춘자는 여름을 흘겨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하준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내 와이프가 눈치 보게 만드실 거면 돌아가세요.”“얘가….”장춘자는 혈압이 확 올랐다.“난 네 할미다. 내가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니?”“우리 식구들은 항상 내 상처에 칼을 꽂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번에 여름이 아니었으면 날 또 무자비하게 정신병원에 처넣었을 겁니다.”하준이 비꼬아 말했다.“정말 내게 조금이라도 가족의 정이라는 게 있다면 강여름 씨를 존중해 주시죠.”장춘자는 마음이 답답했다.여름이 상황을 보고 있다가 끼어들었다.“사실 얼굴까지 이 지경이 됐는데 화는 제가 내야죠. 설마 제가 FTT 정도 되는 집안 출신이 아니라고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장춘자는 입이 벌어진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하준이 먼저 말했다.“처음부터 내가 먼저 강여름에게 매달렸어요. 쓸데없는 생각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날 처음 만났을 때 강여름은 내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서유인이랑 사귀는 척했던 것도 다 내가 강여름에게 질투를 불러일으키려고 벌인 일입니다.”“어떻게 네가 유인이한테 그런 짓을 하니?”장춘자는 좀 화가 났다.“그렇게 서유인이 좋으시면 손녀로 입양하세요.”하준의 눈동차가 차가웠다.“다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었니? 유인이가 얼마나 괜찮은 애인에….”“강여름은 괜찮은 사람이 아니란 말씀입니까?”하준이 갑자기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둘 다 서경주의 딸입니다. 내 와이프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누구에게서 태어날지를 여름이가 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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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화

“그건 위자영이 몇 억을 집어넣었으니까 그런 겁니다.”하준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이모가 여름 씨 얼굴을 망치는 대가로 위자영이 지불한 거니까 다 허위 실적입니다.”장춘자는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이 정도로 끝나는 걸 고맙게 생각하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안 끝납니다.”하준이 일어섰다.“자식들 간수 잘하십시오. 하나는 남편에게 퍼줄 줄밖에 모르고, 하나는 허위 실적이나 만들어 내고,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건 무능하기 짝이 없고. 제가 없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년에 발 뻗고 지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장춘자는 충격으로 몇 년은 팍삭 늙어버린 기분이었다.******12시 30분.여름이 다 된 음식을 들고 나와서 보니 분위기가 사뭇 무거웠다.일단 할머니께 밥을 담아 내드렸다.장춘자가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보더니 조금 놀랐다. 자기 집에서 셰프가 한 음식보다 가정식 느낌인데도 매우 진수성찬이었다.게다가 그렇게도 징글징글하게 밥을 안 먹던 최하준이 너무나 맛있게 식사하는 게 아닌가? ‘정말 맛있게 먹네….’장춘자도 보쌈 고기를 한 점 집어 보았다.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아주 일품이었다.그런데 한 점 더 먹으려고 봤더니 하준이 얼마나 빨리 먹어 치웠던지 벌써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아유, 그만 먹어. 할머니 아직 잡숫지도 못했는데….”여름이 접시를 장춘자 앞으로 밀었다.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아, 좀 더 하지, 왜 요거밖에 안 했어?”“어제 저녁에도 먹었잖아? 이렇게 똑같은 것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아.”여름이 나물을 집어 주었다.“영양을 균형 있게 섭취해야지. 편식하면 안 돼. 자꾸 이렇게 편식하면 다시는 밥 안 해줄 거야~.”“쳇, 그러면 할 수 없지.”뭘 먹어도 한두 젓가락 먹고 나면 상을 물리던 하준이 이렇게 얌전히 나물을 받아 밥 두 그릇을 비우는 것을 보고 장춘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덩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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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화

“쭌, 나도 할머니가 계셨어요. 돌아가시고 나서야 왜 진작 할머니랑 더 시간을 보내지 못했나 후회가 되더라고요. 가족은 피로 연결된 존재잖아요. 떼내고 싶다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자기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포용하고, 더 용서할 수 있어요.”여름이 하준의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하준은 감동했다.가슴 밑바닥에서 흐르던 감정이 갑자기 마그마처럼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여름의 얼굴을 꼭 붙들고 고개 숙여 입을 맞췄다.“자기, 미안해.”‘정말 너무 미안해. 내 가족이 당신의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도 날 위해서 모두를 포용하겠다니….하지만 그러지 마.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내가 하나하나 다 갚아줄 거야.이모라도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어.’“언젠가는 내가 당신 얼굴 꼭 되돌려 줄게. 사랑해. 죽을 때까지, 죽으면 다음 생에서까지도 변함없이 사랑해.”여름은 두 눈을 감았다. 이 순간, 너무나 든든하고 평온한 느낌이었다.‘얼굴이 어떠면 어때? 괜찮아. 최하준만 괜찮다면 난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다음 날.여름은 출근했다.상혁이 간호조무사 몇 명을 데리고 아주 이상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회장님, 병원에서 추천한 간호조무사들입니다.”책을 읽던 하준이 얼굴을 들었다.하준의 병은 하루 이틀에 좋아지는 병이 아니었다. 여름도 자기 일이 있는데 24시간 붙어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관리를 위해 집에 전문 간호 요원이 필요했다.그런데 하준의 시선이 한 간호조무사의 얼굴에서 멈추더니 몇 초간 숨 쉬는 것도 잊은 듯했다.그러나 곧 정신을 차렸다.“이름이 뭔가?”하준이 너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상대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지다빈이라고 합니다.”“지다빈이라고?”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백지안이란 사람이랑 압니까?”“사촌 언니인데요.”지다빈이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우리 언니를 아세요?”“……”‘안다 뿐이겠어?’하준은 속으로 긴 한숨을 쉬었다.“그렇다며 이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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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화

그 말을 듣고 하준의 눈이 어두워졌다.“여기는 우연히 오게 됐나?”“그런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이번 시즌에 가장 근무 성적이 좋은 사람들만 뽑아서 후보로 보냈거든요.”하준은 끄덕였다. 마침내 마음에 의심을 걷어냈다.“영하는 지금 누가 최고 책임자지?”“백소영 씨입니다.”“남의 자리를 뺏어 놓고 아직 욕심을 놓지 못했군. 영하에는 반도체 공급하지 마.”“…알겠습니다.”상혁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오후 5시.여름은 조금 일찍 퇴근했다. 막 차에서 내리려는데 농구장에서 공 소리가 들렸다.여름의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하준이 두 손을 살짝 들고 점프했다. 깔끔하게 3점 슛이 들어갔다. 한참 그러고 놀았는지 등이 살짝 젖어 있었는데 활기차 보였다.여름은 넋을 잃고 하준을 바라보았다.학생 때는 한선우가 세상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의 하준과 비교해 보니 진짜 농구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짝짝짝!”농구장에 갑자기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름은 그제야 코트 가장자리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평범한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검은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어 올리고 있었다.“회장님 너무 멋지세요.”여자애가 물과 수건을 들고 다가갔다.“벌써 40분 지났어요. 이제 좀 쉬셔야죠.”“응.”하준이 물을 받아 꿀꺽꿀꺽 마셨다. 저녁노을을 받은 두 사람의 모습이 눈부셨다.“쭌….”여름이 부르면서 얼른 다가갔다.하준이 돌아보더니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자기, 오늘은 일찍 왔네?”“좀 일찍 퇴근했지. 혼자 심심할까 봐.”여름이 그 여자애를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말쑥하게 생기긴 했지만 예전의 자신의 미모만 못했다. 심지어 서유인보다도 못한 듯했다.여름은 속으로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을 혹시나 잃게 될까 싶어 속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여름도 예외가 아닌 듯했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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